조너선 아이브
[clearfix]
1. 개요
Apple의 전 최고 디자인 책임자(CDO, Chief Design Officer).[4] iMac을 기점으로 현 Apple 디자인의 트레이드 드레스를 세웠다.
2. 상세
Apple에 입사한 연도는 1992년이며 당시 입사 동기는 다름 아닌 Mac이었는데, Mac을 처음 접하고 자신과 같은 컴맹도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입사 후엔 Newton MessagePad 같은 상업적으론 성공하지 못했어도,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기기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별로 대단한 평가를 받지 못하다가 1997년에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돌아오고 그로부터 1년 후인 1998년, 그가 디자인한 iMac G3가 첫선을 보이면서부터 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다.
사실 잡스가 Apple에 복귀했을 당시 아이브는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당시 길 아멜리오 CEO 체제에 불만을 품고 퇴사를 결심한 상태였다. 잡스 역시 외부 디자이너 고용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아이브와 대화를 나눈 후 서로의 디자인 철학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게 된다. 그 결과 잡스는 아이브와 디자인 팀의 사내 권한을 확대하여 기존의 엔지니어가 기기를 설계하면 디자이너가 그에 맞춰 외형을 구상하는 일반적인 디자인 프로세스를 뒤집어 디자이너가 제품 설계의 중심에 자리하게 만들었다. 이런 디자인 중심 문화는 파워 맥 G4 큐브의 발열이나 iPhone 4의 안테나게이트 같은 기능적 문제들을 야기하기도 했지만 아이브가 산업디자인 역사에 남을 제품들을 설계하는 배경이 된다.
2017년 다이슨 창립자 제임스 다이슨의 후임으로 왕립 예술 대학(RCA) 총장(Chancellor)에 지명되었다. 임기는 2017년 7월 1일부터 5년으로 알려졌다. 제임스 다이슨은 Provost라는 직함으로 학교를 대표했는데, 아이브는 학교 행정을 적극적으로 총괄하기보다는 자문과 의전에 비중을 두고 본업인 디자인에 집중할 모양.[5]
2018년 초, Apple의 디자인 팀으로 복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관련 기사. 새로 시공되는 Apple Park에 집중하기 위해서 거의 2년간 Apple의 디자인 업무에는 임하지 않았다는 것.
2019년 애플을 퇴사하고 LoveFrom이라는 디자인 회사를 새로 차릴 예정이라고 한다. Apple도 이 회사의 주요 고객 중 하나가 될 거라고.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 저널은 아이브가 팀 쿡과의 불화로 인해 회사를 나가는 것이라고 내부 사정을 폭로했는데 이례적으로 쿡은 즉각적으로 볼화설에 대해 정면 반박했다. 불화설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iPhone 5s 이후로 아이브가 주도해서 만들어진 제품 디자인이 없고 본인 역시 평소 하던 일과 관계없는 Apple Park 프로젝트로 넘어간 것으로 미루어보아 전자 제품 디자인 업무에 흥미를 잃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2019년 11월 28일, Apple 임원진 소개 사이트에서 조니 아이브의 프로필이 사라진 것이 확인되었다. 이로서 Apple을 퇴사한 것이 확실해졌다.
3. 디자인
"미니멀리즘" 이라는 한 단어로 대표될 수 있다. Apple에서 디자인한 모든 것들에 그의 디자인 철학이 들어가 있다. Newton MessagePad 같은 군더더기 없는 PDA부터 시작해서 최초의 iMac인 iMac G3, iPod, iPhone 같은 미니멀리스틱한 디자인 역시 마찬가지.
이 미니멀리즘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일화로 다른 기업들은 하나의 기능이라도 더 넣고 싶어할 때 조니 아이브의 디자인팀은 기능을 제거하는 것을 생각했다고.[6] 단, 미니멀리즘한 디자인과는 반대되게 어떤 요소를 끼워넣기도 하는데 iMac G3, iBook G3의 손잡이 같은 경우가 그런 경우이다. 이 손잡이는 기기에 좀 더 친근감을 주기 위한 디자인이었다고 한다. 특히 iMac 같은 경우는 한 번 자리를 두면 딱히 옮길 일이 없는 데스크톱임에도 이 손잡이는 그가 의도한 대로 먹혀 들어가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이런 단순함을 최고로 생각했기에 스큐어모피즘을 선호했던 소프트웨어부 부사장 스콧 포스톨과는 디자인적으로 항상 대립하는 입장이었고, 사이도 별로 좋지 않았다.[7] 스티브 잡스 역시 스큐어모피즘을 선호하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iOS 7과 OS X Yosemite 이전까지 Apple 기기들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미래적인 하드웨어 디자인에 디테일하고 현실적이며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디자인이 참으로 애플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의 윗선이던 잡스가 사망하고, 포스톨이 해고[8] 된 이후엔 직접 소프트웨어 디자인에 개입하여 iOS 7[9] 에서 완전히 새로운 컨셉의 디자인을 선보였고, OS X도 OS X Mavericks부터 스큐어모피즘을 차차 걷어내기 시작해 OS X Yosemite에서는 iOS와 같은 컨셉의 디자인으로 변경했다.
디터 람스를 가장 존경하는 디자이너라고 하며, 때문에 애플의 디자인에서도 브라운스러운 미니멀리즘을 엿볼 수 있다. iPod 이후 Apple 초창기 디자인은 디터 람스가 지휘한 브라운 사의 제품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iPhone 6의 절연테이프 디자인을 보고 뭇 사람들이 조니 아이브를 원망했는데, 막상 새 iPhone은 새로 영입한 디자이너인 마크 뉴슨이 디자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Apple Watch의 명품화를 본인이 추진했다고 한다. 18k 금으로 된 에디션 모델에 대해 회사 내에서도 의견이 많았지만 디자인 쪽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는 아이브가 강력 주장해서 회사 사람들을 설득했다고. 결국 2세대인 Apple Watch Series 2부터는 1/10 가격의 세라믹 재질로 변경하면서 한발 물러섰다.
4. 성격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은 차분한 성격이며, 실제로도 차분하고 부드러운 성격이다. 언성 높이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WWDC 같은 공개적인 제품 소개 자리에서도 무대에 선 적이 많이 없다. 대신 소개 동영상에서는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또 히키코모리스러운 행동도 많이 하는데 자신이 작업하는 디자인룸에는 거의 아무도 들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10] 존 스컬리 CEO 시절 스컬리조차 자신의 방에 들인 적이 없어 미운 털이 단단히 박힌 적도 있다. 단 한 사람만이 예외적으로 저 방에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했는데, 그게 바로 스티브 잡스. 아예 두 사람의 사무실을 연결하는 전용 통로까지 있을 정도였다고. 잡스가 아이브보다 더 하면 더 했지 절대 꿀릴 위인이 아닌 것을 생각하면 두 사람이 얼마나 절친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5. 기타
- 스티브 잡스는 사망 전에 핵심 간부들에게 '스티브라면 어떻게 했을까?' 식의 생각은 하지도 말라며 자신의 영향력에 얽매이지 말라고 조언했지만, 디자인에 관해서는 아이브에게 일임할 것을 당부했다. 잡스가 아이브의 디자인 능력을 얼마나 깊이 신뢰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아버지가 지역에서 유명한 은 세공사였다. 어릴적부터 그와 세공에 대한 각종 도안을 만들며 놀아주었다고 한다. 밖에서 놀기보단 아버지의 세공 작업장에서 노는게 일상이었다는데 이게 조너선 아이브가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인 듯하다.
- 출퇴근은 1시간 거리로, 벤틀리 뮬산을 탄다. 개인적으로는 애스턴 마틴 DB4를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상당한 차덕후라 영국의 굿우드에서 열리는 자동차 박람회에 매년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고 한다.
- 2015년에 개봉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등장인물인 카일로 렌이 사용하는 독특한 디자인의 라이트세이버에 아이브가 영감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이브와의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아이브는 J.J. 에이브럼스 감독과 라이트세이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12]
- 목소리가 상당히 좋아 많은 Apple 공식 제품 홍보영상에서 기술 및 디자인을 소개했다. 심지어 본인이 디자인에 참여하지 않은 iPhone X 시리즈에서도 소개 영상에는 참여했다. 다만 본인 성격이 내성적인 데다가 말을 약간 더듬는 버릇이 있어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키노트 이벤트에서는 2008년 유니바디 MacBook Pro 발표회 이후로는 잘 등장하지 않는다.
- 머리가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이미지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1] 2006년 신년서훈명단(2006 New Year Honours)에서 대영제국 훈장 3등급(CBE) 수훈자로 선정되었고, 2012년 신년서훈명단(2012 New Year Honours)에서 기사작위 서임 대상이 되는 2등급(KBE)으로 승급 지명되었다. 아이브의 경우는 일반적인 기사작위와 좀 차별되는데, 기사작위(Knighthood)라 하면 대부분의 경우 아이브와 같은 승급의 형식보다는 'Knight Bachelor'라는 것을 따로 받는 식으로 부여하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의전서열(order of precedence)상 KBE가 Knight Bachelor보다 한 단계 위이기도 하다.[2] 종종 조니(Jony)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3] 한국에서는 주로 '''조나단''' 아이브, '''조니''' 아이브, '''조너선''' 아이브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4] 원래는 디자인부 부사장(SVP, Senior Vice President)이었지만 2015년 5월 말에 새로운 직책으로 임명되었다. Apple은 스콧 포스톨의 퇴출 이후로 조니 아이브가 한동안 같이 맡고 있었던 하드웨어 산업 디자인 부문과 소프트웨어 UX 디자인 부문의 책임자를 2년 반 만에 다시금 분리하게 되었고, 아이브는 그 위에서 새로운 직책을 부여받아 양쪽 부문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5] 영국 대학에서 총장(chancellor)은 명예직이다. 왕족이나 높은 귀족, 또는 사회저명인사들이 맡지만 실권도 없고 대학에 상주하지도 않는다. 영국 대학에서 실제 학교 행정을 총지휘하는 사람은 부총장(vice chancellor)이며 부총장이 한국 대학의 총장에 대응하는 자리다.[6] 민음사에서 번역해 출판한 본 항목과 동명의 책 《조너선 아이브》에 소개된 일화[7]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은 포스톨이 포스트 잡스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독선적인 성격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Apple 사내에서도 포스톨과 사이가 좋다고 할 만한 사람은 단 한 명뿐으로 크레이그 페더리기 정도였다고 한다.[8] Apple 지도의 책임을 물어 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독선적인 성격과 권력 남용 때문이라고 팀 쿡이 직접 얘기했다. 물론 Apple 지도의 뻘짓으로 꼬투리가 잡힐 만하긴 했다.[9] flat한 디자인이라고 일컬어지는 단순함이 극대화된 디자인이다. iOS 6의 스큐어몰피즘 디자인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iOS 7의 아이콘 디자인은 기존과는 달리 명암 구분이 없는 플랫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10] Glass Cube라고 하는데 이곳엔 책상, 의자, 전등뿐이라고 한다. 심지어 가족 사진도 없다고.[11] 위키피디아의 난독증을 진단받은 인물 목록에도 등재되어 있다. #[12] "라이트세이버가 정교하지 않고 불안정하면 더 강렬해보이지(spitty)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디자인된 무기는 더 아날로그하면서, 거칠고 험악해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