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엘리엇

 

'''George Eliot'''
[image]
'''본명'''
메리 앤 에번스
Mary Anne Evans
'''국적'''
영국 [image]
'''출생'''
1819년 10월 22일, 영국 워릭셔 너닝턴
'''사망'''
1880년 12월 22일(65세), 영국 런던 첼시
'''언어[1]'''
영어
'''직업'''
소설가, 비평가, 번역가
'''학력'''
베드포드 칼리지, 로열 홀로웨이
'''가족'''
'''아버지''' : 로버트 에번스 Robert Evans
'''어머니''' : 크리스티나 피어슨 Cristina Pearson
'''형제 자매''' : 크리스티나 애번스 Cristina Evans, 아이작 에번스 Isaac Evans, 로버트 에번스 Robert Evans, 페니 에번스 Penny Evans
'''연인'''
'''배우자''' : 존 크로스 John Cross (1880)
'''파트너''' : 조지 헨리 르웨스 George Henry Lewes (1854–1878)
'''대표작'''
플로스강의 물방앗간 The Mill on the Floss (1860)
실라스 매너 Silas Marner (1861)
미들마치 Middlemarch (1871–72)
1. 개요
2. 영향력
3. 생애
4. 문체
5. 여담
6. 작품
6.1. 번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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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세상에 선을 자라나게 하는 일은

역사에 남지 않는 보편적인 행위들에 달렸다.

우리가 그렇게 나쁜 일을 겪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절반은

드러나지 않는 삶을 충실하게 살아 낸 사람들 덕분이고,

나머지 절반은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에 묻힌 사람들 덕분이다. ”

- 그녀의 대표작, 미들마치 의 마지막 문장[2]

19세기 영국작가이며 영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중 한 명이다.

2. 영향력


한국에서는 영문학 전공자 외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조지 엘리엇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작가 중 가장 뚜렷한 행보를 보인 작가 중 한 명이며, 문학계와 영국에서의 위상은 엄청나다. 그녀의 최고 걸작 "미들마치"("Middlemarch")는 2015년 BBC가 뽑은 최고의 영국 소설에서 1위를, 2020년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선정한 최고의 소설 1위를 기록했다.
기존의 수많은 영국소설들은 모두 천편일률적으로 이러한 스토리를 지니고 있었다.

''주인공의 어려운 가정 형편 (사유는 집안의 몰락, 아버지의 폭력, 가난) → 부잣집 남자와 첫눈에 반하여 연애하고 바로 결혼에 골인 →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지만 조지 엘리엇은 이와 같은 신데렐라 콤플렉스식 플롯을 깨트리고 결혼 이후 잘못된 배우자를 만나 고생한다는 전개를 채택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성인들[3]

을 위한 몇 안되는 영미소설"

또한 ''미들마치'' 는 자신과 같은 후대 영국 여성 작가. 버지니아 울프에게도 호평을 받기도 한다
또한 1994년, 유명 문학 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조지 엘리엇을 '서양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명'이라고 극찬한다. [4]

1위 안나 카레니나 - 레오 톨스토이

2위 마담 보바리 - 귀스타브 플로베르

3위 전쟁과 평화 - 레오 톨스토이

4위 롤리타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5위 허클베리 핀의 모험 - 마크 트웨인

6위 햄릿 - 윌리엄 셰익스피어

7위 위대한 개츠비 - F. 스콧 피츠제럴드

8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마르셀 프루스트

9위 체호프 단편집 - 안톤 체호프

10위 미들마치 - 조지 엘리엇

결국 2007년, ''미들마치'' 는 타임(주간지)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10개의 작품'에 등록되었다. ''플로스강의 물방앗간'' 도 영문학의 빼어난 수작으로 평가된다. 또한 그녀의 작품들은 무수한 드라마나 영화로도 재구성되었다.

3. 생애


그녀는 로버트 에번스와 공장주의 딸, 에번스 피어스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형제들 중 셋째로 태어난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독서와 공부에 두각을 나타내었으며, 16살 까지 다양한 기숙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
그러나 집안 사정으로 인해 16살 이후 거의 정식 학교에서는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된다. 그 때문에 그녀는 도서관을 전전하며 수많은 고전을 읽었는데 이를 통해 그녀는 수많은 그리스 비극 전집들을 탐독하며 견문과 문학지식을 넓혀가게 된다.
1836년, 그녀의 어머니가 죽게 되자 가족들은 원래의 부지를 첫째 아들에게 상속하고 코번트리로 이사하게 된다. 여기에서 엘리엇은 전원 생활을 즐기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시골의 풍모와 정취를 깨닫게 된다. 이 시기는 나중에 플로스강의 물방앗간 등의 작품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친 시기이다.
이후 그녀는 런던으로 가게 되어, 문예 편집지의 편집자로 일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적성이 소설가라고 생각하여 편집자로서의 생활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글을 쓰며 수많은 작품들을 써내며 인생의 정점을 맞게 된다.
결혼 생활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녀는 오랫동안 독신으로 살면서[5] 유부남과 로맨스를 펼치는 등 지금에서도 파격적인 삶을 살아오기도 했다. 1880년 61세로 처음으로 21세 연하의 남자랑 정식 결혼을 했는데, 나이차가 많은 결혼으로 당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이 결혼 생활은 그해 엘리엇이 사망하면서 끝났다.

4. 문체


그녀는 다른 작가와 같이 자신의 삶에서 주로 많은 아이디어를 착안하여 작품을 썼다. 특히나 그녀는 번역가, 소설가, 비평가 등의 다채로운 직업과 커리어를 갖고 있었기에 문체도 그만큼 많이 변하게 된다.
그녀의 삶에서 16세 까지는 그녀의 작품활동이 두드러지지 않아 문체가 보이지 않지만 이때 당시 그녀는 자신이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자신의 작품의 방향성을 찾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17세 부터 그녀는 '코번트리'라는 시골마을에 이사를 가게 되는데 이때부터 그녀는 폐쇄적인 농촌 사회에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때의 작품이 바로 그녀의 또 다른 수작 ''플로스강의 물방앗간'' 이다.
다른 대표작으로는 ''실라스 마너''가 있다. 희망을 잃은 중년의 남성 실라스 마너가 자신을 찾아온 소녀를 키우면서 인간에 대한 믿음을 되찾는다는 내용으로, 레 미제라블과 함께 아저씨와 소녀 클리셰를 시도한 초창기 소설로 꼽힌다.
그녀는 현실주의적인 필체로 농촌 사회의 어두운 이면과 소외된 사람들의 모습에 천착하여 현실주의 소설의 길을 열었다고도 평가받는다. 일부 학자들은 그녀가 현실주의적인 필체와 함께 농촌의 풍경을 섬세하게 그려내어 또한 19세기의 자연주의 작가라고도 일컷는다.
또한 그녀는 굉장히 정치적인 색을 많이 드러내는 작가였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제목 부터가 정치적인 ''진보주의자 펠릭스 홀트'' 도 아주 좋은 예시에 해당한다.
그녀는 정치적일 뿐만 아니라, 종교적이기도 했다. 그녀는 편집자 일 전에 번역가로 일한 적이 있는데 이때 그녀는 독일 종교서적을 번역하다가 [크리스천교]에 흥미가 생겨서 이를 작품에 그대로 녹여내기도 했다. 그녀가 런던으로 이사해서 본격적으로 편집자로서 일하고 출판업에 종사를 할 때 즈음, 그녀의 문학생활에는 꽃이 핀다.
그녀는 편집자 일을 그만 두고 먹고 살만한 재산과 함께 글을 써가기 시작했고, 결국 이때 그녀는 앞에서 언급한 ''미들마치'' 를 쓰게된다. ''미들마치'' 는 장장 약 1000쪽이 넘는 서적이기에 (한국어 번역본 기준) 이는 그녀가 얼마나 시간이 많았는지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말년에 이르렀을 때에는 그녀는 이미 많은 부를 거머쥐고 그 당시 웬만한 남성들보다도 더 당당하게 살았다는 점에서 그녀의 재능을 엿볼 수 있다.

5. 여담


여성 작가임에도, '조지'라는 남성적인 필명을 사용하여 많은 이들이 남성 작가로 오해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당시에 남성들만이 글을 쓸 수 있었다는 편견 때문이라고 하지만,[6] 조지 엘리엇이 활동할 당시에는 이미 영문학계에서 상당수의 여성 작가들이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조지 엘리엇이 남성적인 필명을 택한 데에는 여러 추측이 있는데, 엘리엇 본인이 당대 여성 작가들이 찍어내는 천편일률적 로맨스 소설에 회의적이었고, 따라서 남성적인 필명을 통해 본인의 차별화를 꾀했다는 추정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자신의 파격적인 사생활에 대해서 알리고 싶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다.
조지 엘리엇이 제인 오스틴을 포함한 영국 여성 작가들에 대해 견지한 태도를 더 알고 싶다면 그의 에세이 <여성 작가들의 어리석은 소설들>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슬프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엘리엇의 인지도가 대단히 낮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만한 문학상을 타지도 않았으며[7] 그녀의 문학적 능력이 잘 맞지 않아서도 있겠지만 조지 엘리엇은 다름 아닌 번역의 문제 때문에 우리나라에 소개가 안 된다.
당장에, 교보문고 사이트에 들어가서 국내도서 섹션에 '조지 엘리엇'을 치면 나오는 것은 30권 남짓이다. 반면에 해외도서 섹션에는 약 1000권이 넘는 서적이 나온다. 이는 우리나라의 번역 시장이 시망이라는 점과 또한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 출판업계가 그리 발전하지 못했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8]

6. 작품


더욱 자세한 작품들은 http://www.gutenberg.org/ebooks/authors/search/?query=George_Eliot를 참고. 굵은 글씨는 그녀의 대표작이며, 한국어 표기는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법을 이행했다.
'''소설'''
아담 베드 Adam Bede, 1859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The Mill on the Floss, 1860
'''실라스 매너''' Silas Marner, 1861
로몰라 Romola, 1863
진보주의자, 펠릭스 홀트 Felix Holt, the Radical, 1866
'''미들마치''' Middlemarch, 1871–72
다니엘 데론다 Daniel Deronda, 1876
벗겨진 베일, 1859
'''시'''
런던 화방에서 In a London Drawingroom, 1865
두 연인들 Two Lovers, 1866
보이지 않는 성가대 The Choir Invisible, 1867
스페인 집시 The Spanish Gypsy, 1868
아가사 Agatha, 1869
형제와 자매 Brother and Sister, 1869
리사는 어떻게 왕을 사랑하게 되었는가 How Lisa Loved the King, 1869
암가트 Armgart, 1871
스트라디바리우스 Stradivarius, 1873
주발의 전설 The Legend of Jubal, 1874
당신에게 충분한 이별을 준다 I Grant You Ample Leave, 1874
아리온 Arion, 1874
사소한 선지자 A Minor Prophet, 1874
대학교 아침식사 파티 A College Breakfast Party, 1879
모세의 죽음 The Death of Moses, 1879
잃어버린 그날을 세라 Count That Day Lost, 1887

6.1. 번역서


현재 우리나라에 번역된 판본을 기재하였으며, 절판되거나 품절된 판본의 경우에는 절판은 [절판]이라고 기입하였으며, 품절은 [품절]이라고 기입하였다. 단, 보급판이나 원서발췌 등의 완번역 이외의 판본은 기입하지 않았다. 시의 경우에는 여러 작가가 복합적으로 섞여들어가 있기에, 포함하지 않았다.
- ''플로스강의 물방앗간'' - 출간: 민음사 / 번역: 이봉지, 한애경, 2007.03
출간: 신아사 / 번역: 한애경, 2010.12 - ''미들마치'' - 출간: 주영사 / 번역: 이가형, 2019.06
출간: 지만지(지식을 만드는 지식) / 번역: 한애경, 2012.01 [절판]
- ''벗겨진 베일'' - 출간: 민음사 / 번역: 정윤희, 2019.07
- ''사일러스 마너'' - 출간: 지만지(지식을 만드는 지식) / 번역: 한애경, 2012.12
- ''아담 비드'' - 출간: 현대문화센터 / 번역: 유종인, 2007.09
출간: 나남출판 / 번역: 이미애, 2009.08
- ''다니엘 데론다'' - 출간: 한국문화사 / 번역: 정상준, 2016.12

[1] 문학을 집필할 때 주로 사용한 언어를 의미한다.[2] 위는 본 작품 미들마치 를 관통하는 주제인 '겸손'을 나타내기도 하며,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에 묻힌 사람들 덕분이다.'라는 구절은 자신의 덕을 알리지 않는 겸손의 미를 보여주는 구절이다.[3] 여기서는 성숙한 이들을 일컷는다[4] #[5] 단, 조지 르웨스라는 남자와 한 번 연애했다.[6] 에밀리 브론테가 대표적인 예시이다.[7] 일단 조지 엘리엇이 활동하던 당시에는 제대로 된 문학상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았다.[8] 이게 정말 사실인 이유는 '넬라 라르센'이라는 미국의 유명한 모더니즘 흑인 소설가는 미국 문학사에서 꽤나 커다란 족적을 남겼지만 한국어로 번역된 작품은 그녀의 명성과는 다르게 단 한 작품도 없다. 이는 'The Joy Happy Club'으로 전미도서상을 탄 중국계 미국인 작가인 '에이미 탄' 등 많은 외국 작가들이 거의 비슷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