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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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集團軍
Army Group
몇 개의 야전군을 하나의 상급사령부 휘하에 두고 있는 군사조직. 보통 지리적으로 특정한 전쟁 지역을 책임지며, 보통 원수 또는 대장을 단일 지휘관으로 둔다. 국군에서도 특히 육군 규모 중 최상위 규모이며 가장 큰 규모인 야전 조직이다. 일반적으로 40만~150만 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21세기 초인 현재까지 집단군을 제대로 편제해서 운용한 경험이 있는 건 독소전쟁 시기의 소련군과 독일 국방군, 서부 전선의 미군이다.[1] 그도 그럴 것이, 집단군이라는 것이 일개 국가, 그것도 중소국가 중에서 최강국 정도의 전체 군대 수와 맞먹을 정도로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보니 군대의 규모가 작으면 구성 자체가 어렵다. 미래에도 1억이 넘는 인구를 가진 미군, 중국군, 인도군, 제한적으로 대한민국 국군[2][3] 이나 북한군, 러시아군 정도만 운용 가능할 것으로 평가된다. 다시 말해 원수가 명예 계급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의미가 있는 계급으로서 다뤄질 정도의 상황에서나 집단군 편제가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2. 특징
집단군의 기원 중 하나로 미국 남북전쟁 당시 애틀랜타 전역에서 연방군의 윌리엄 테쿰세 셔먼이 이끈 편제가 꼽히기도 한다. 당시 셔먼은 제임스 B. 맥퍼슨의 테네시군, 조지 H. 토머스의 컴벌랜드군, 존 M. 스코필드의 오하이오군 등 3개 야전군을 거느리고 애틀랜타로 남하하였으며, 이후 후방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해 오하이오군과 컴벌랜드군의 일부를 돌려보낸 뒤에도 컴벌랜드군의 나머지 군단들로 조지아군을 창설하여 2개 야전군을 이끌고 바다로의 진군과 캐롤라이나 전역을 치렀다. 단, 셔먼의 편제는 정식으로 집단군 명칭을 사용하지는 않았으며 병력 규모 자체도 양차대전보다는 훨씬 작은 10만명 내외에 머물렀다.[4]
소련군에서 집단군은 전선군(фронт : 프론뜨)이라고 하였다. 독소전쟁 말기 13개 전선군을 전개하고 있었으며 유럽 방면에는 10개 전선군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 후 소련군은 1950~60년대의 군제개혁으로 군단을 거의 폐지하다시피 하고 군을 서방의 군단급 부대로 삼았기 때문에[5] 집단군급의 부대는 소련군 집단(Group of Soviet Forces)이 되었다고 보면 된다. 가장 유명한 건 동독에 배치된 소련군 집단이었다.
독일 국방군은 바르바로사 작전 때 북부, 중부, 남부 집단군을 운용했고, 각 집단군의 점령지역에는 북·중·남부후방집단군의 주둔군의 편제[6] 가 있었다. 전세가 악화되자 남부집단군을 나눠 A집단군과 B집단군으로 개편했고, 중부집단군이 붕괴하자 비스툴라 집단군으로 개편해서 운용했다. 1945년 1월 25일, 쾨니히스베르크에 포위되자 기존의 북부집단군이 쿠를란트집단군(쿠를란트 포켓. 병력 약 20만 명)으로 바뀌고 중부 집단군이 북부 집단군이 되었다. 그리고 A 집단군은 중부 집단군으로 바뀌었다. 이 2번째 중부 집단군은 항복 직전까지 활동했다.
일본 제국 육군의 동급 부대단위는 총군(総軍)이다. 약어로는 전군. 그러나 이는 독일이나 소련과는 달리 전구 사령부 개념이 강하다. 데라우치 히사이치 원수가 맡았던 남방군이 대표적 예이며, 남방군은 필리핀, 미얀마, 태국을 포함한 동남아 전역을 맡았다. 그 외에 군집단은 방면군, 야전군은 군으로 불렀다. 일본군은 군단 단위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렇게 부르며 실제로는 방면군은 야전군, 군은 군단 단위로 취급하며 해외의 번역명도 그런 추세이다.
좀 더 깊게 얘기를 한다면, 평시에는 일본 본토 내에는 사단까지만 설치했으며 관동군, 조선군(조선 주둔 일본군), 대만군(대만 주둔 일본군), 지나 파견군(중국 주둔 일본군)은 평시에는 해외파견부대를 총괄하는 단위로서 군(군단) 단위이다. 물론 정치적인 이유로 규모에 맞지 않게 칭호를 달기도 하는데 조선군의 경우 19사단, 20사단의 2개 사단으로 구성되었으며 나머지는 상설사단 자체가 편제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륙침략을 진행시키면서 전력은 증강시킨 관동군과 지나군은 총군 단위로 확장되었으며 남방군을 새로 창설했다. 거기에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본토에 3개의 총군,[7] 외지에 2개의 총군[8] 을 두었다. 조선군과 대만군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군 단위였다.
현재 인민해방군의 집단군은 이 항목의 집단군이 아니라 군단에 가깝다. 군제개혁으로 군단을 폐지하면서 집단군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차라리 인민해방군의 집단군은 1950년대의 야전군에 가깝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 인민지원군은 제2야전군이 주력이었고, 현재 선양군구로 개편되었다.
집단군은 다국적 군대의 편제로 구성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연합군의 경우, 남부집단군(미국 제6집단군)은 미국 7군과 프랑스 1군으로 구성되었고, 제21집단군은 영국 2군, 캐나다 1군 그리고 미국 9군으로 구성되었다. 미 제9군이 나중에 빠져나가서 21집단군은 영연방군만으로 편성되었다.
[1] 영국군은 야전군 정도만 운용했다.[2] 산술적으로만 따지면 육군은 2개의 야전군을 굴리고 있고(제2작전사령부도 야전군급 부대.) 전쟁이 발발하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예비군(2018 기준 약 275만)이 튀어나올테니 집단군을 마음 먹으면 운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3] 다만, 집단군이라는 편제가 넓은 전장에서의 전투지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편제인 만큼, 오히려 한반도와 같은 협소한 전장에서는 이미 합참이나 육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쓸데없이 보고체계를 하나 더 만듦으로써 명령하달 지연 등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형국이 될 수도 있다. 한중전쟁이 일어나서 주 전장이 중원과 만주벌판이 된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현재 병력 수 기준으로는 육군 전체가 집단군 1개 정도의 크기다. 또한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이 처음 선보이고 지금까지 미군의 기조가 된 통합군 체제가 육해공이 긴밀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현대전의 추세에는 보다 더 적합하기도 하여 전시라도 다국적 동맹국 전 병력이 한데 모이는 상황이 아닌 한 육군만 대규모로 한데 모으는 집단군 체제가 부활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4] 남북전쟁은 최초의 현대전이라는 말도 나올 만큼 이후 대전기의 육군 편제의 원형을 볼 수있지만 같은 야전군, 군단, 사단 등의 단위라도 이후보다 규모가 작은 편이었다.[5] 사족이지만 미군의 연대도 기갑기병연대 같은 것을 제외하면 연대라는 편제 자체가 거의 유명무실해졌다.[6] 다만 원수가 지휘하는 집단군은 아니였고 이름만 집단군인 주둔부대를 지칭하였다. 지휘관은 병과대장급 장군이 맡았다.[7] 제1전군 - 원수 스기야마 하지메 대장, 제2전군 - 원수 하타 슌로쿠 대장. 항공전군 - 카와베 마사카즈 대장. 참고로 구 일본군의 원수 계급은 대장 계급에서 받는 칭호였다.[8] 관동군 - 야마다 오토조 대장, 지나 파견군 - 오카무라 야스지 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