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술
槍術 / Spear Exercise
창을 사용하는 무술.
창술은 기원을 특정하기 어렵다. 창이라는 무기가 전 세계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생겼으며, 기원도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인데, 이는 고대 수메르 왕국의 유적인 우르의 스탠다드의 그림이나 이집트 고왕국 유적 등에서도 이미 창을 든 병사들이 그려져 있어 창이 군대의 주요 무기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대에서 창을 쓰는 방법은 주로 던지는 투창과 방패와 창을 함께 쓰는 방법이었다. 《일리아스》를 비롯한 고대 서사시나 군대를 나타내는 자료에서도 방패와 창을 든 군대가 전열을 짜고 충돌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이 시대에는 창의 용법은 주로 찌르기 뿐으로, 전투 양상도 방패로 밀어붙이며 서로 찔러대는 방식이었으며 사용법도 매우 단순했다.
창술이 '무술' 수준으로 올라간 것은 양 손으로 창을 사용할 때부터 시작되었다. 방패를 사용하면 창의 길이를 절반밖에 살릴 수 없고 진형이 둔중해지며 개인장비가 무거워지는 단점이 있었지만, 보병교전시 상대의 창을 거의 완벽하게 막아낼 수 있고, 특히 훈련수준이 높기 어려운 병사들은 실패확률과 어려움을 내포한 창으로 창을 막는 기술을 가르치기보다는 방패를 주는 것이 전투에서 훨씬 유리했다. 따라서 고대와 중세까지는 방패와 창을 동시에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양손으로 창을 사용하면 조작도 더 수월하고 찌를 수 있는 거리도 길었기에 기법 면에서 한손으로 사용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고, 방어도 창으로 해야 했으므로 기술적인 면에서 높은 수준이 필요했다. 이러한 창술은 유럽보다는 중국, 일본 등에서 더욱 발달했는데, 유럽은 갑옷의 발달로 창보다는 폴 암이 더욱 실전에서 유효했기 때문이었다. 유럽에서 15세기에 남겨진 검술서들은 창술 또한 수록하고 있는데, 검과 창을 동시에 잡고 쓰거나 창을 수직으로 세워 상대의 창을 방어하는 독특한 창술을 수록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활과 함께 창이 주력 무기였으니만큼 창술도 주요 군사훈련 종목인 궁술, 민속놀이인 택견이나 씨름과 함께 조선 초중기까지 잘 전승이 된 몇 안 되는 무술 중 하나였고 궁술과는 달리 화약무기의 등장 이후에도 그 중요성이 계속 유지되었다. 조선 후기에도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하면서 장창을 가장 중요한 무예로서 가장 첫번째로 등재할 정도로 중시하는 성향을 보였다. 다만 이것이 중국의 장창술을 들여온 것으로 한국 고유의 장창술은 이때쯤 실전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 외에도 세계적으로도 유일하게, 기창이 실전성이 떨어진다는 것에도 불구하고 정식 군사과목으로 훈련시키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창술이 존재했으며 양가창법이 잘 알려져 있다. 그외 다양한 창술 유파들이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지나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은 서적이 남아있는 것 혹은 비교적 가까운 시기 민간에서 만든 것 정도다. 이것을 현대화하여 재정립한 우슈에서도 창술 과목이 있으나, 실전보다는 아름답게 기술을 보여주는 표연에서 사용하기 위한 것들이다. 긴 길이를 활용해 전방을 향해 집중적으로 공격을 하는 전투시의 창술과는 달리 현대 우슈의 창술은 곡예화되어 회전하는 동작이 많아졌기에 창대의 길이도 대폭 짧아져 자신의 키와 같거나 약간 긴 정도의 창을 사용하고 심지어 한 손 동작과 경량화된 무게를 선호하는 현대 중국 무기술답게 한 손으로 창대 끝을 잡고 쓰기 편하게 가볍고 잘 휘어지는 목재로 만든걸 사용한다.
절강성의 군사령관으로써 왜구퇴치에 큰 공을 세운 척계광은 자신의 저서 기효신서에서 왜구를 무찌르기 위한 낭선, 당파를 비롯한 다양한 창과 창계열 폴암에 대한 해설과 사용법을 해설했고, 창술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의견을 가필하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현대 중국군에서는 총도 창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본래 방패와 창을 함께 쓰는 풍조가 있었으나[1] , 소수 엘리트의 봉건무사들의 전투로 전쟁 양상이 변하면서 보다 다양하게 쓸 수 있는 나기나타에 밀려 오랫동안 쓰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도보전이 중시된 남북조시대에 들어서 양손으로 창을 사용한다. 아시가루를 징집하여 대규모 군대로 전투를 벌이는 풍조가 정착된 전국시대에는 가르치기 쉽고 집단전에서 나기나타보다 우월하다는 이유로 창이 주력 무기로 등극했으며, 4.5m를 넘겨 6m까지 넘기는 장병창(나가에야리. 長柄槍)을 쓰기도 했다.
길이 때문에 파이크와 비교하기도 하나, 장병창은 아직까지는 고안 이유를 명확하게 특정할 수 없다. 또한 유럽처럼 전 병력이 다 장병창으로 무장한 것도 아니었다. 사용법도 높이 올렸다가 내려치는 방식이 더 많았다.
일본 특유의 능선 지형에서 적을 찌르기 위해 길어졌다는 등 여러 설이 있지만, 어느 쪽이던 간에 일본에는 유럽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 보이는 기병 돌격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기마병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은 신빙성이 없다[2]
유럽과 마찬가지로 장병창은 일반적인 창과는 사용법이 달랐으며 찌르고 방어하는 일반적인 창과 창술은 따로 존재했고, 이러한 창술을 가르치는 유파 중에서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유파가 있다.
서양에서는 중세를 지나면서 등자와 겨드랑이 랜스 방식의 보급으로 기병의 양성이 쉬워지고 위력과 숫자가 늘어나, 과거의 보조적인 용도의 주력에 이를 만큼 큰 위치를 차지했으므로 자연히 보병들도 이에 대응하여 기동력과 리치를 추구하기 위해 방패를 잘 안 쓰게 되었다. 방패를 쓰면 4m짜리 창이라도 중간을 잡지 않고는 쓸 수 없었으므로 장점인 길다란 길이를 절반이나 희생했으며, 기병의 랜스돌격에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기병에 대응해서는 방패보다는 창을 두손으로 쓰는게 나았으며, 그 편이 개인장비의 무게가 줄어들고 진형의 유연성과 기동력도 높아졌으므로 그렇게 변화했던 것이다.
16세기에서 유럽에서는 창술이 크게 흥하는데 그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창술이 아니라 6m에 달하는 파이크라는 커다란 창을 쓰는 기술이었으며, 흔히 한국에 알려진 창술은 파르티잔과 같은 창계열 폴암의 기술로 계승된다. 파이크 창술은 개인이 창을 찌르고 휘두르기는 매우 힘든 거대한 창임을 감안하여 주로 제식동작과 명령에 따라 동작을 바꾸는 것을 중시했으며, 기병에 대응할 때에는 자루끝을 땅에 박고 창끝을 말의 몸통이나 머리 높이로 맞추었으며 이럼으로써 말이 창의 벽에 본능적으로 돌진을 못하고 멈춰서거나 돌격 속도가 느려져 랜스돌격의 위력이 크게 반감되는 효과가 있었다. 보병을 상대할 때는 창을 머리 높이로 올려 수평으로 눕혀 적의 머리나 가슴을 겨누었으며, 적과 접근하면 상대 창을 툭툭 때려 견제하다가 온몸으로 찌르는 방식으로 싸웠다.
흔히 알려진 루머 중 하나가 장창으로 방진을 짜면 돌격하던 기병이 우수수 찔려죽는다는 것인데, 당시의 전법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생기는 대표적인 오해이다. 18~19세기의 총검방진과 마찬가지로 말은 본능적으로 앞이 막혔다고 생각하면 들이받지 않고 방향을 바꾸거나 멈춰 버리며, 기사의 랜스는 이러한 장애물이 되는 적병을 창으로 선공을 가해 장애물을 제거함으로써 돌입의 여지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 무기였다. 따라서 기사들도 실제로는 랜스 한번 박고 그대로 적진으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돌격하고 나서 적진이 동요하고 무너지기 시작할 때까지 몇번이고 다시 전열로 돌아가 랜스를 보급받고 재돌격에 나서는 식으로 싸웠다. 칼을 뽑아 맞상대하는 것은 적진이 크게 동요하여 조금만 더 하면 무너질 것 같을 때에나 하는 것이다.
파이크는 6m에 달하는 길이로 4.7m의 당시 기사 랜스와 비교해 길이면에서 우월하여 랜스돌격의 위력인 말의 속력을 상당부분 반감시킬 수 있었기에, 랜스 돌격을 맞기 전에 군마를 저지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도 안 죽는 건 절대 아니며, 파이크 방진 측은 5열까지 대기병자세를 취해야 할 만큼 랜스 돌격은 여전히 위력적이었고, 기사가 계속해서 재돌격을 하다 보면 적진을 붕괴시킬 수 있었다.
16세기의 파이크 방진이 기사들을 크게 몰락시킨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파이크 방진이 갑옷을 뚫을 수 있는 총병을 보호했기 때문. 기사들은 재돌격을 위해 후퇴할 때마다 총의 공격으로 과거의 화살과는 비교도 안되는 소모율을 보였다. 결국 재돌격을 반복해 방진을 쳐부순다 해도 엄청난 피해를 입거나 무너트리기 전에 패퇴하는 경우만이 남을 뿐이었다.
그러나 총병이 있다고 장창 방진이 랜스 돌격을 완벽히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1515년 마리냐뇨 전투에서 프랑스 기병은 30여회의 근성 랜스돌격을 감행해 명성높은 스위스 창병을 격파하고 군기를 빼앗기까지 했다. 이 전투에서 스위스 창병은 총병이 있었지만 결국 패했다.
물론 기병이나 기사는 소위 엘리트 병과로, 한 명의 기사/기병을 훈련시키고 무장시켜 실전에 투입하는 데 드는 비용은 창병 한 명을 그리 하는 것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높다. 창병을 일부 소모하거나 완전히 소진하더라도, 기병/기사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면 창병을 운용하는 쪽의 승리인 것이다.
18세기에 들어서는 기존의 파이크와 폴암들은 군대에서 폐지되었으며, 창은 장교준사관/부사관이 소지하는 지위의 상징으로써 이용되었고, 이런 창을 스펀툰(Spontoon)이라고 불렀다. 길이는 1.8~2.2m 정도.
현대 총검술과 유럽 창술이 관련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초기 총검술은 머스킷의 긴 길이를 이용해 파이크를 대체하는 용도로 쓰여 창처럼 운용했지만, 점차 다양한 동작이 필요해짐에 따라 18세기경 스몰소드 검술을 토대로 재구성되어 근대 총검술이 되었다.[3] 다만 그 이후 총의 길이 자체가 짧아지고 총검술의 교리도 멀리서 찌르는 방식에서 개인의 보호를 우선시 하는 방향으로 변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현대의 총검술은 총 자체를 무기로 본다는 점에서 봉과도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군의 경우 찌르기 위주의 19세기식 근대 총검술을 고집하는 바람에 다양한 초식(...)을 쓰는 연합군에게 근접전에서 밀리기도 했다.
크게 마상 창술과 지상 창술로 나뉜다.
마상창술은 신(新)아시리아 제국에서 기원전 900년경 세계 최초로 기병을 양성하여 실전에 투입한 것에서 시작되나, 이때는 아직 마상 활쏘기와 마상투창이 기본 전술이었으며 흔히 알려진 중기병 돌격 전술의 기원은 기원전 4세기 사르마티아인이 시초로 추정된다.
부르는 단어는 다르되 공통적인 자세들이 있으며, 각 자세는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 근대 유럽과 일본의 용어를 사용한다.
기본적으로 왼발이 전방을 향해 앞으로, 오른발은 발꿈치가 왼발 뒤로 가도록 해서 발끝이 오른쪽을 향하게 한다. 90도 각도로 벌린 상태가 된다. 왼발의 발꿈치와 오른발의 발꿈치는 선을 그었을 때 항상 같은 일직선상에 위치해야 한다. 왼발과 오른발은 원래 조금 떨어지는 것이 기본이나, 때에 따라붙기도 한다. 근대 펜싱과 동일한 보법을 지니는데 이러한 보법은 사부리류나 오와리관류와 같은 일본의 창술 유파들도 똑같이 하고 있으며, 창술에서는 보편적인 보법이다. 이러한 스텝이 정착된 것은 창의 찌르는 무기로써의 아이덴디티가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측면 이동에는 불리하지만 찌르는 무기의 경우 빠르고 길게 찌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스몰소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찌르기를 중심으로 한 무기들은 모두 이러한 보법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중단/미들가드에서 창끝을 오른쪽/왼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티에르스/콰르트(Tierce/Quarte)라고 부른다. 펜싱에서의 방어 자세를 총검과 근대 창에도 적용시킨 결과. 검술에서의 티에르스/콰르트는 각자의 방향으로 들어오는 베기와 찌르기를 막기 위한 자세이지만 창술에서의 티에르스/콰르트는 중단으로 찔러 들어오는 적의 창을 오른쪽/왼쪽으로 창을 대어 밀어내는 것을 말한다. 상대의 창은 오른쪽/왼쪽으로 빗겨나가게 된다.
창을 수직으로 세우는 자세가 있다. 창에 대응하기 위한 자세로써 창이 찔러들어오면 대어 옆으로 밀면 그대로 엉뚱한 곳으로 빗겨나가게 된다는 논리. 조금 어이없어 보일 수도 있겠으나 중세 서양 검술 매뉴얼에는 당당히 삽화로 들어가 있으며 일본의 봉술 유파에서도 창에 대한 대응책으로 가르친다.
팔상/프라임 자세와 동일하나 창을 머리 뒤로 넘겨서 취하는 자세가 있다. 유럽 파이크 창술에서도 보이고, 일본에서도 보인다. 보법에서 서술한 볼타 자세를 취할 경우 자연스럽게 나오는 자세.
기본적인 파지법은 왼손과 오른손 모두 정수(正手)로 잡으며, 왼손이 앞으로 간다. 그러나 창술에 따라 왼손을 역수로 잡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할 경우 찌르기는 잘 안되나 창을 돌려가며 자유 자재로 사용하고 타격하는 데에 좋다. 프라임 자세에서 창을 머리 위로 아주 들어 올릴 경우에도 이렇게 잡는다.
쿠리츠키/슬립 스러스트를 할 때에 왼손은 단지 느슨하게만 잡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찔렀을 때에는 왼손의 손등이 위로 오도록 손을 돌려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창끝이 찌르면서 왼쪽으로 가버리게 된다. 걸레를 안쪽으로 짜는 것과 비슷한 손동작이다. 올바르게 했을 경우 창끝이 원하는 곳으로 딱딱 가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창대가 부들부들 떠는 것도 볼 수 있다. 힘이 완전히 제대로 창끝으로 전달되었다는 신호. 이렇지 않을 경우 물체가 제대로 뚫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창의 어디를 잡아야 하는가는 그때그때 다르다. 양가창법이나 파이크창술, 오와리관류등은 오른손이 창끝을 잡도록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뒤로 자루에 여유를 주고 잡기도 한다. 또 오른손으로 창끝을 잡도록 하는 유파라 하더라도 적이 근접하거나 기타 여러 상황에는 거리낌없이 창을 크게 뒤로 빼서 잡아 사용한다. 기본적으로 파지법은 하나의 원칙적 경향만이 있을 뿐, 세부 사항은 각자 해봐서 자신에게 맞게 정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다.
풍전류 창술. 가장 기본적이고 세계적으로도 공통되는 창술의 원리를 선보인다.
가시마 신류 창술 강좌. 특유의 창 파지법, 오토나시노 카마에, 때리기의 활용 등의 특색을 주목하자.
가토리신토류의 창술. 창과 도검이 붙었을 때에 발생하는 하시카카리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제압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일본 흥복사 봉납연무에서 시연된 창술 유파, 각각 오와리관류, 사부리류, 보장원류 타카다파이다. 위 항목에서 설명된 각 유파별 특징을 주목하여 보도록 한다.
근대 유럽의 창술/총검술 체계 설명.
Academy of Historical Fencing의 집단 스파링
HEMA의 창 대 소드 앤 버클러 스파링
Academy of Historical Fencing의 개인 스파링.
1 대 1과 집단전투를 가리지 않고, 창은 백병전에서 제일 유용한 무기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냉병기가 주무기였던 시절에는 전쟁터에서 검은 보조무기였고, 주무기는 주로 창이었다. 서로 다른 무기로 개인간에 대결을 하더라도 길이가 긴 무기라, 거리나 간격의 이점이 크기 때문에 실력차가 확연하지 않으면 유/불리가 눈에 띠게 두드러진다. 개개 동호회에서 창을 상대로한 이종무기 대결 스파링이 많이 치뤄지고 또 유튜브를 통해 공유도 많이 된 상태인데, 그나마 방패라도 들어야 대처가 가능하지만, 길이가 짧은 단병기들로는 창을 상대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더군다나 여러명이서 싸우게 된다면, 그 숫자가 3~5명 정도에 대열이 그리 촘촘하지 않더라도, 창을 든 쪽이 훨씬 유리하게 싸움을 전개하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창술은 스몰소드와 비슷한 특성을 지닌다. 전진스텝과 찌르기가 중심이다. 이 때문에 찌르기 이외에는 별다른 효과를 가지기 어려운 무기의 특성과 한계도 똑같이 가지고 있다. 또한 스몰소드가 그러한 것처럼 공격과 방어가 명확하게 분리되는 두박자 방어, 리뽀스트(Reposte)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동서양을 구분하지 않고 동일하게 존재하는 특성이다.
마찬가지로 그래서 측면으로 이동하는 상대에게 대응이 어렵다. 특히 창을 주로 쥔 손의 반대방향으로 돌면서 공격해 들어오면 대응이 무척힘들다. 가령 창잡이가 오른손 잡이인데, 상대가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창잡이의 왼쪽으로 이동해온다면 창잡이는 상대를 견제하기 위해 계속 따라서 돌아가야된다.
또한 창이라는게 길고 가볍지만, 찌르는 날도 작은데다, 날 이외에 다른 부속물이 없다보니, 상대가 창대를 붙잡거나, 제압하며[6] 공격을 들어올 경우 창대의 중간부위 만으로 상대를 저지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대처하기 어렵다.[7] 특히나 상대가 갑옷과 방패등으로 무장을 했다면, 창으로 찌르더라도 단 번에 제압되지 않기에 상대가 창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파고들어올 수도 있다.
전열을 짤 경우 이러한 단점은 상당부분 상쇄돼지만, 측면이나 후방에서 진입해오는 적이 창날 안쪽으로 들어오게 되면, 대처하기 어렵고 그 때문에 키노스케팔라이 전투, 피드나 전투 등에서 사리사를 든 마케도니안 팔랑크스가 검을 든 로마군에게 크게 패배하기도 했다. 위 장점 항목의 동영상에서도 나오는 장면으로, 창날이 잡히거나, 한 명을 찌르고 나서 창날을 못빼게 될 때 단병기를 든 상대방 여럿이 창수 한 명에게 몰려들어와서 각개격파를 하기 시작하면 딱히 대응방법이 없고, 동료창수도 도와주기 힘들다. 정면에서라면 창끝이 집중되어 저지를 받으니 이런 장면이 잘 등장하지 않지만, 측면이나 후방에서는 창끝이 집중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장면이 종종 등장하였다. 그래도 여전히 단병기에 비해서 간격이나 거리의 이점이 커 전투에서는 유리했기 때문에 너무 무겁고 긴 창은 사장되었지만, 비교적 길이가 짧은 창은 사리사가 사라진 이후에도 많이 활약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던 대열재정비나 대처가 힘든 측면이나 후방에서의 접전에서 창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폴 암과 같은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는 창이 많이 이용되었다. 특히 갑옷이 크게 발달하였고 개개인 단위의 전투가 절정에 달했던 유럽의 중세시기나 일본의 14세기에 들어서는 나기나타, 글레이브, 할버드, 폴액스 등이 전쟁터에서 대활약을 했다. 이들 무기는 공통적으로 날이 일반적인 창보다 크고, 자루는 보다 짧아, 창날 안쪽으로 파고들기 힘들고, 또 상대방이 날 안쪽으로 파고들더라도, 베기와 찌르기를 융통성있게 구사하며 대처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도검이나 단병기는 물론이거니와, 개별적으로 싸울 때는 창과의 대결에서도 우위를 차지하곤 했다. 특히 폴액스나, 할버드 같은 경우 중량도 더 나가기 때문에 낙차를 이용하여 내려치거나, 횡으로 공격할 경우 갑옷 입은 사람을 공격할 때도 뛰어났다.
서양검술단체 MEMAG의 다양한 스크립트에 의한 폴액스술 재현.
가토리신토류의 나기나타술 예제. 7분 54초부터 나온다.
이러한 이유로 창에 갈고리를 달거나 칼날이 옆으로 튀어나오는 무기가 등장한 적도 있다. 중화권에서는 극(무기)으로, 유럽권에서는 폴암으로 구분했다.
현대에는 기본적으로 검술보다 인기가 없으며 검술보다도 남아있는 자료가 없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창술 그 자체에 대한 복원보다는 한스 탈호퍼, 피오레 디이 리베리 등의 마스터들의 저작에 수록된 스크립트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창술을 보조적으로 연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복원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검술, 그중에서도 평복 전투를 전제로 하는 blossfechten 이며, 갑주 검술이나 창술은 보조적이고 마이너한 종류이다. 그에 비해 파이크 창술은 복잡한 무술적 원리를 내포하지 않았으며 제식훈련에 대부분의 훈련 중점을 두므로 전쟁 재현을 하는 리인액터들이 행사 등지에서 어렵지 않게 시연한다. 18~19세기의 부사관용 단창인 스펀툰(Spontoon)도 마찬가지 처지이며, 서양 창술의 처지는 아직 무술적 복원이 아니라 형태만을 재구성하여 복원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우슈 표연의 한 종목으로써 스포츠화가 완료된 상태. 물론 검과 마찬가지로 얘도 사용방법은 다 사라졌다. 양가창법은 물론 기타 다른 창술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청대에 등장한 무술 문파에서 구성한 창술은 각 문파별로 남아있으며, 화려한 표연으로써의 창술과는 달리 창의 기본적이고 실전적인 움직임을 잘 구현한 상태.
일본에서는 창술을 가르치는 고류 유파들이 일부 현존하고 있으며, 풍전류, 보장원류, 오와리관류, 사부리류, 가토리신토류, 가시마신류 등이 그것이다. 다른 지역의 창술이 실전되거나, 복원되고 있으며, 혹은 실전성을 잃어버린 것에 비해 과거의 훈련 시스템과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지구상에서도 오직 일본의 창술만이 가진 장점. 다만 고류검술도 수련자가 별로 없는 현 상황에서[8] 창술은 더욱 마이너한지라 창술 전문 유파들은 처지가 별로 좋지 않다. 보장원류의 경우는 보존회를 결성해 유지해 나가고 있으며, 오와리관류의 경우는 전통적인 부분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현대적인 커리큘럼을 새롭게 도입하고 고류 특유의 딱딱함과 보수성을 어느정도 배제하면서 어린 아이들이나 성인 수련자들이 많이 찾아오는 편으로, 이들 유파는 지역적인 토착성과 더불어 현대의 사회환경에 대해 알맞게 변화를 하여 세력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던 축에 속한다.
창을 사용하는 무술.
1. 역사
창술은 기원을 특정하기 어렵다. 창이라는 무기가 전 세계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생겼으며, 기원도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인데, 이는 고대 수메르 왕국의 유적인 우르의 스탠다드의 그림이나 이집트 고왕국 유적 등에서도 이미 창을 든 병사들이 그려져 있어 창이 군대의 주요 무기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대에서 창을 쓰는 방법은 주로 던지는 투창과 방패와 창을 함께 쓰는 방법이었다. 《일리아스》를 비롯한 고대 서사시나 군대를 나타내는 자료에서도 방패와 창을 든 군대가 전열을 짜고 충돌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이 시대에는 창의 용법은 주로 찌르기 뿐으로, 전투 양상도 방패로 밀어붙이며 서로 찔러대는 방식이었으며 사용법도 매우 단순했다.
창술이 '무술' 수준으로 올라간 것은 양 손으로 창을 사용할 때부터 시작되었다. 방패를 사용하면 창의 길이를 절반밖에 살릴 수 없고 진형이 둔중해지며 개인장비가 무거워지는 단점이 있었지만, 보병교전시 상대의 창을 거의 완벽하게 막아낼 수 있고, 특히 훈련수준이 높기 어려운 병사들은 실패확률과 어려움을 내포한 창으로 창을 막는 기술을 가르치기보다는 방패를 주는 것이 전투에서 훨씬 유리했다. 따라서 고대와 중세까지는 방패와 창을 동시에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양손으로 창을 사용하면 조작도 더 수월하고 찌를 수 있는 거리도 길었기에 기법 면에서 한손으로 사용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고, 방어도 창으로 해야 했으므로 기술적인 면에서 높은 수준이 필요했다. 이러한 창술은 유럽보다는 중국, 일본 등에서 더욱 발달했는데, 유럽은 갑옷의 발달로 창보다는 폴 암이 더욱 실전에서 유효했기 때문이었다. 유럽에서 15세기에 남겨진 검술서들은 창술 또한 수록하고 있는데, 검과 창을 동시에 잡고 쓰거나 창을 수직으로 세워 상대의 창을 방어하는 독특한 창술을 수록하고 있다.
1.1. 동양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활과 함께 창이 주력 무기였으니만큼 창술도 주요 군사훈련 종목인 궁술, 민속놀이인 택견이나 씨름과 함께 조선 초중기까지 잘 전승이 된 몇 안 되는 무술 중 하나였고 궁술과는 달리 화약무기의 등장 이후에도 그 중요성이 계속 유지되었다. 조선 후기에도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하면서 장창을 가장 중요한 무예로서 가장 첫번째로 등재할 정도로 중시하는 성향을 보였다. 다만 이것이 중국의 장창술을 들여온 것으로 한국 고유의 장창술은 이때쯤 실전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 외에도 세계적으로도 유일하게, 기창이 실전성이 떨어진다는 것에도 불구하고 정식 군사과목으로 훈련시키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창술이 존재했으며 양가창법이 잘 알려져 있다. 그외 다양한 창술 유파들이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지나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은 서적이 남아있는 것 혹은 비교적 가까운 시기 민간에서 만든 것 정도다. 이것을 현대화하여 재정립한 우슈에서도 창술 과목이 있으나, 실전보다는 아름답게 기술을 보여주는 표연에서 사용하기 위한 것들이다. 긴 길이를 활용해 전방을 향해 집중적으로 공격을 하는 전투시의 창술과는 달리 현대 우슈의 창술은 곡예화되어 회전하는 동작이 많아졌기에 창대의 길이도 대폭 짧아져 자신의 키와 같거나 약간 긴 정도의 창을 사용하고 심지어 한 손 동작과 경량화된 무게를 선호하는 현대 중국 무기술답게 한 손으로 창대 끝을 잡고 쓰기 편하게 가볍고 잘 휘어지는 목재로 만든걸 사용한다.
절강성의 군사령관으로써 왜구퇴치에 큰 공을 세운 척계광은 자신의 저서 기효신서에서 왜구를 무찌르기 위한 낭선, 당파를 비롯한 다양한 창과 창계열 폴암에 대한 해설과 사용법을 해설했고, 창술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의견을 가필하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현대 중국군에서는 총도 창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본래 방패와 창을 함께 쓰는 풍조가 있었으나[1] , 소수 엘리트의 봉건무사들의 전투로 전쟁 양상이 변하면서 보다 다양하게 쓸 수 있는 나기나타에 밀려 오랫동안 쓰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도보전이 중시된 남북조시대에 들어서 양손으로 창을 사용한다. 아시가루를 징집하여 대규모 군대로 전투를 벌이는 풍조가 정착된 전국시대에는 가르치기 쉽고 집단전에서 나기나타보다 우월하다는 이유로 창이 주력 무기로 등극했으며, 4.5m를 넘겨 6m까지 넘기는 장병창(나가에야리. 長柄槍)을 쓰기도 했다.
길이 때문에 파이크와 비교하기도 하나, 장병창은 아직까지는 고안 이유를 명확하게 특정할 수 없다. 또한 유럽처럼 전 병력이 다 장병창으로 무장한 것도 아니었다. 사용법도 높이 올렸다가 내려치는 방식이 더 많았다.
일본 특유의 능선 지형에서 적을 찌르기 위해 길어졌다는 등 여러 설이 있지만, 어느 쪽이던 간에 일본에는 유럽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 보이는 기병 돌격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기마병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은 신빙성이 없다[2]
유럽과 마찬가지로 장병창은 일반적인 창과는 사용법이 달랐으며 찌르고 방어하는 일반적인 창과 창술은 따로 존재했고, 이러한 창술을 가르치는 유파 중에서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유파가 있다.
1.2. 서양
서양에서는 중세를 지나면서 등자와 겨드랑이 랜스 방식의 보급으로 기병의 양성이 쉬워지고 위력과 숫자가 늘어나, 과거의 보조적인 용도의 주력에 이를 만큼 큰 위치를 차지했으므로 자연히 보병들도 이에 대응하여 기동력과 리치를 추구하기 위해 방패를 잘 안 쓰게 되었다. 방패를 쓰면 4m짜리 창이라도 중간을 잡지 않고는 쓸 수 없었으므로 장점인 길다란 길이를 절반이나 희생했으며, 기병의 랜스돌격에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기병에 대응해서는 방패보다는 창을 두손으로 쓰는게 나았으며, 그 편이 개인장비의 무게가 줄어들고 진형의 유연성과 기동력도 높아졌으므로 그렇게 변화했던 것이다.
16세기에서 유럽에서는 창술이 크게 흥하는데 그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창술이 아니라 6m에 달하는 파이크라는 커다란 창을 쓰는 기술이었으며, 흔히 한국에 알려진 창술은 파르티잔과 같은 창계열 폴암의 기술로 계승된다. 파이크 창술은 개인이 창을 찌르고 휘두르기는 매우 힘든 거대한 창임을 감안하여 주로 제식동작과 명령에 따라 동작을 바꾸는 것을 중시했으며, 기병에 대응할 때에는 자루끝을 땅에 박고 창끝을 말의 몸통이나 머리 높이로 맞추었으며 이럼으로써 말이 창의 벽에 본능적으로 돌진을 못하고 멈춰서거나 돌격 속도가 느려져 랜스돌격의 위력이 크게 반감되는 효과가 있었다. 보병을 상대할 때는 창을 머리 높이로 올려 수평으로 눕혀 적의 머리나 가슴을 겨누었으며, 적과 접근하면 상대 창을 툭툭 때려 견제하다가 온몸으로 찌르는 방식으로 싸웠다.
흔히 알려진 루머 중 하나가 장창으로 방진을 짜면 돌격하던 기병이 우수수 찔려죽는다는 것인데, 당시의 전법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생기는 대표적인 오해이다. 18~19세기의 총검방진과 마찬가지로 말은 본능적으로 앞이 막혔다고 생각하면 들이받지 않고 방향을 바꾸거나 멈춰 버리며, 기사의 랜스는 이러한 장애물이 되는 적병을 창으로 선공을 가해 장애물을 제거함으로써 돌입의 여지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 무기였다. 따라서 기사들도 실제로는 랜스 한번 박고 그대로 적진으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돌격하고 나서 적진이 동요하고 무너지기 시작할 때까지 몇번이고 다시 전열로 돌아가 랜스를 보급받고 재돌격에 나서는 식으로 싸웠다. 칼을 뽑아 맞상대하는 것은 적진이 크게 동요하여 조금만 더 하면 무너질 것 같을 때에나 하는 것이다.
파이크는 6m에 달하는 길이로 4.7m의 당시 기사 랜스와 비교해 길이면에서 우월하여 랜스돌격의 위력인 말의 속력을 상당부분 반감시킬 수 있었기에, 랜스 돌격을 맞기 전에 군마를 저지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도 안 죽는 건 절대 아니며, 파이크 방진 측은 5열까지 대기병자세를 취해야 할 만큼 랜스 돌격은 여전히 위력적이었고, 기사가 계속해서 재돌격을 하다 보면 적진을 붕괴시킬 수 있었다.
16세기의 파이크 방진이 기사들을 크게 몰락시킨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파이크 방진이 갑옷을 뚫을 수 있는 총병을 보호했기 때문. 기사들은 재돌격을 위해 후퇴할 때마다 총의 공격으로 과거의 화살과는 비교도 안되는 소모율을 보였다. 결국 재돌격을 반복해 방진을 쳐부순다 해도 엄청난 피해를 입거나 무너트리기 전에 패퇴하는 경우만이 남을 뿐이었다.
그러나 총병이 있다고 장창 방진이 랜스 돌격을 완벽히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1515년 마리냐뇨 전투에서 프랑스 기병은 30여회의 근성 랜스돌격을 감행해 명성높은 스위스 창병을 격파하고 군기를 빼앗기까지 했다. 이 전투에서 스위스 창병은 총병이 있었지만 결국 패했다.
물론 기병이나 기사는 소위 엘리트 병과로, 한 명의 기사/기병을 훈련시키고 무장시켜 실전에 투입하는 데 드는 비용은 창병 한 명을 그리 하는 것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높다. 창병을 일부 소모하거나 완전히 소진하더라도, 기병/기사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면 창병을 운용하는 쪽의 승리인 것이다.
18세기에 들어서는 기존의 파이크와 폴암들은 군대에서 폐지되었으며, 창은 장교준사관/부사관이 소지하는 지위의 상징으로써 이용되었고, 이런 창을 스펀툰(Spontoon)이라고 불렀다. 길이는 1.8~2.2m 정도.
현대 총검술과 유럽 창술이 관련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초기 총검술은 머스킷의 긴 길이를 이용해 파이크를 대체하는 용도로 쓰여 창처럼 운용했지만, 점차 다양한 동작이 필요해짐에 따라 18세기경 스몰소드 검술을 토대로 재구성되어 근대 총검술이 되었다.[3] 다만 그 이후 총의 길이 자체가 짧아지고 총검술의 교리도 멀리서 찌르는 방식에서 개인의 보호를 우선시 하는 방향으로 변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현대의 총검술은 총 자체를 무기로 본다는 점에서 봉과도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군의 경우 찌르기 위주의 19세기식 근대 총검술을 고집하는 바람에 다양한 초식(...)을 쓰는 연합군에게 근접전에서 밀리기도 했다.
2. 종류
크게 마상 창술과 지상 창술로 나뉜다.
마상창술은 신(新)아시리아 제국에서 기원전 900년경 세계 최초로 기병을 양성하여 실전에 투입한 것에서 시작되나, 이때는 아직 마상 활쏘기와 마상투창이 기본 전술이었으며 흔히 알려진 중기병 돌격 전술의 기원은 기원전 4세기 사르마티아인이 시초로 추정된다.
- 투 핸드(Two Hand) - 랜스를 두 손으로 잡고 돌격하는 것. 고대 사르마티아에서부터 시작된 유구한 방식으로, 창의 중간 혹은 뒤쪽을 두 손으로 단단히 잡고 창의 높이는 허리춤에, 창끝의 높이는 적의 위치에 따라 조절한다. 카우치드 랜스 방식이 나오기 전까지는 돌격력을 가장 크게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카르헤 전투에서 파르티아의 수레나스가 이끄는 카타프락토이들이 이 방식으로 돌격을 하였는데, 로마군의 방패를 뚫고 병사 2명을 관통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방패를 쓸 수 없고, 말고삐를 잡을 수 없어 돌격하는 동안에는 말을 제대로 조작할 수 없다는 것이 최대 단점이었다. 그 외에 흔히 서브컬쳐에서 묘사되는 난전상황에서 창을 두손으로 잡고 휘두르며 여기저기 찔러대는 것도 투핸드에 포함된다.
- 오버핸드(Overhand) - 랜스를 한손으로 잡고 잡은 손을 머리 위로, 창끝은 적의 위치에 따라 조절한다. 상대를 '찌른다'가 아니라 '찍는다'에 더 가까우며, 돌격을 제외한 모든 방식 중에서 가장 강한 위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리치가 매우 짧고 돌격에 쓸 수 없다는 것이 단점.
- 언더핸드(Underhand) - 랜스를 한손으로 잡고 잡은 손은 허리 높이 정도에 놓고 창끝은 적의 위치에 맞춘다. 돌격에도 쓸 수 있고, 난전에도 쓸 수 있으며 방패와 함께 쓸 수 있고 전투 중에도 말고삐를 잡을 수 있는 등 융통성이 높은 방식이다. 알렉산드로스 3세의 헤타이로이 기병대[4] 부터 19세기의 유럽 창기병에 이르기까지, 이 방식을 쓰지 않는 군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이 쓴다. 다만 창을 한 손으로 잡다 보니 창의 무게중심을 잡아야 해서 길이의 절반밖에 살리지 못하며, 돌격력을 완벽하게 적에게 전달하지 못하므로 효율이 좋지 않다는 점, 투핸드에 비해 창의 컨트롤이 어렵다는 점 등이 단점이다.
- 카우치드 랜스 - 앞의 3가지 방식보다 나중에 나온 방식. 겨드랑이에 창을 끼워 돌격하는 방식이다.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를 묘사한 바이외의 테이피스트리에서 최초로 등장하여 노르만 기병이 가장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돌격력을 가장 완전하게 전달할 수 있고, 리치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말고삐나 방패를 들어 방어와 말의 컨트롤이 자유자재인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나 돌격하고 랜스를 버리는 식으로 싸워야 하는게 단점. 기사들은 돌격하고 적진이 무너지지 않으면 다시 전열로 돌아가서 랜스를 보급받아 다시 들이받는 식으로 싸웠다. 전열을 짜고 랜스돌격을 할 때에는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방식이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융통성이 매우 떨어지는 방식. 따라서 중장기병은 이 카우치드 랜스 방식으로 전투하고, 경기병은 언더핸드 방식으로 전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으나, 경기병도 돌격력을 필요로 할 때에는 카우치드 랜스 방식으로 창을 파지하고 전투하였다.
- 방패와 함께 쓰는 창술의 자세
- 투 핸드(Two Hand) - 방패와 함께 투핸드로 창을 사용한 경우는 매우 한정적인데, 대표적인 것이 알렉산드로스 3세의 페제타로이 보병대이다. 이들은 지름 60cm의 방패를 어깨끈을 이용하여 목에 걸었고,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사리사창대의 끝으로부터 1.8m정도 떨어진 곳을 잡았다. 이로써 방패를 들고도 투핸드로 창을 쓸 수 있었으며, 앞열은 언더핸드, 후열로 갈수록 앞열의 방패를 감안하여 오버핸드로 잡았다. 그러나 창 하나만을 쓰는 창술처럼 창을 자유롭게 쓰기 위해 이렇게 잡은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방패 + 한손 창술의 연장선상으로써 두손이 된 만큼 더 길고 무거운 창을 써서 위력을 강화시키겠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잡은 것이며, 전투법도 적과 접근하면 일제히 몇걸음 달려나가 전력으로 적이나 적의 방패를 체중을 실어 찔러버리는 것이었다. 이럼으로써 적 전열에 강력한 타격을 주어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어나갈 수 있었으며, 어지간한 방패는 뚫려버렸다고 한다.
- 오버핸드(Overhand) - 창을 머리 위로 올려 내리찍듯이 사용하는 기법. 마상창술에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리치가 짧다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개인 단위의 전투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았으나, 전열을 짤 경우에는 이렇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특히 방패가 서로 겹칠 정도로 밀집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오버핸드로 사용했다.
그리스의 고전식 팔랑크스가 이 방식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팔랑크스는 방패를 서로 겹쳐질 정도로 밀집하여 거대한 방패벽을 형성하므로 언더핸드 방식으로 공격할 수가 없었다. 고대 그리스군의 전투 양상은 이러한 방패벽이 밀착하여 서로 밀어 붙이면서 오버핸드로 창을 들어 상대의 머리나 상체를 찔러대는 양상으로 흘러갔는데, 머리에는 견고한 청동 투구를 쓰고 몸은 커다란 호플론 방패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았던 만큼 오버핸드로 강력하게 찔러 타격이라도 주는 것이 그나마 유리했다고. 짧은 리치는 아예 서로 밀착하여 진형을 만들어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보완하였다고 한다.
- 언더핸드(Underhand) - 창을 허리 정도의 높이에 두고 찌르는 기법. 위력은 오버핸드보다 떨어지지만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고 리치도 길었기 때문에 너무 많이 밀집하지 않는 진형이나 개인 단위의 전투시에는 이 방식으로 운용했다.
2.1. 양손 창술
부르는 단어는 다르되 공통적인 자세들이 있으며, 각 자세는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 근대 유럽과 일본의 용어를 사용한다.
2.1.1. 보법
기본적으로 왼발이 전방을 향해 앞으로, 오른발은 발꿈치가 왼발 뒤로 가도록 해서 발끝이 오른쪽을 향하게 한다. 90도 각도로 벌린 상태가 된다. 왼발의 발꿈치와 오른발의 발꿈치는 선을 그었을 때 항상 같은 일직선상에 위치해야 한다. 왼발과 오른발은 원래 조금 떨어지는 것이 기본이나, 때에 따라붙기도 한다. 근대 펜싱과 동일한 보법을 지니는데 이러한 보법은 사부리류나 오와리관류와 같은 일본의 창술 유파들도 똑같이 하고 있으며, 창술에서는 보편적인 보법이다. 이러한 스텝이 정착된 것은 창의 찌르는 무기로써의 아이덴디티가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측면 이동에는 불리하지만 찌르는 무기의 경우 빠르고 길게 찌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스몰소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찌르기를 중심으로 한 무기들은 모두 이러한 보법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 1.전진(To advance) - 가장 기본적인 보법. 창을 겨누고 왼발이 먼저 앞으로, 오른발이 왼발이 전진한 만큼 따라간다. 항상 나의 전방만을 적에게 노출할 수 있으며 세밀하고 정확한 간격 조절이 가능하다.
- 2.보통걷기(To pass) - 상대와의 간격이 멀 때 이용하는 보법. 창을 겨누고 오른발이 각도를 유지한 채 왼발 앞으로, 이때 발끝은 평상시와 똑같이 측면을 향한다. 그리고 왼발이 다시 앞으로 나온다. 발꿈치가 서로 일직선으로 맞아야 하므로 볼 때는 마치 팔자걸음처럼 보인다. 먼 거리를 이동할 때 쓰이는 보법이나, 교전간격에 들어서면 다리가 꼬여 중심이 불안정해지므로 사용하지 않는다.
- 3.측면이동(The Traverse) - 창술의 교전은 기본적으로 빠른 전진과 후퇴를 기본으로 하나, 상대의 중심선에서 벗어나 반격한다는 개념도 매우 중요했다. 가장 중요한 방법론은 트라이앵글(Tryangle) 스텝과 볼타(Volta)이다. 트라이앵글 스텝은 좌우 대각선 앞쪽으로 전진하면서 중심선으로 벗어날 때 쓰는 보법으로 왼쪽으로 갈 때는 오른발이 왼쪽 전방으로, 오른쪽으로 갈 때는 왼발이 오른쪽 전방으로 간다. 볼타는 이와는 달리 발이 꼬이듯이 이루어지는 보법으로, 왼쪽으로 갈 때 왼발이 왼쪽 측면으로, 오른쪽으로 갈 때 오른발이 오른쪽 측면으로 간다.
이 두 가지 보법은 서로 상하관계에 있다. 직선으로 들어오는 적에게 트라이앵글 스텝으로 공격하면 적의 공격은 피하고 나는 산다. 둘 다 트라이앵글 스텝을 취하면 둘 다 공격이 맞지 않는다. 적이 트라이앵글 스텝을 취할 때 내가 볼타를 하면 적은 죽지만 나를 맞추지 못한다. 이러한 특징이 있다.
- 4.런지(Lunge) - 몸을 던져 왼다리는 90도로 꺾이고 오른 다리는 쭉 펴는, 먼 거리에서 초고속으로 창의 간격 안으로 쳐들어가는 보법. 많은 면에서 스몰소드 검술과 동서양을 불문하고 교집합이 있는 양손 창술이지만, 창술에서는 펜싱과 같은 런지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창은 훨씬 길고 무겁기 때문에 자세 회복이 매우 어려우며 공격 후 창을 디스암(Disarm)당하기 쉽고 반격에 대처할 수가 없기 때문. 그러나 간혹 의외의 한방을 노리고 이루어지는 경우도 존재한다.
2.1.2. 기본 자세
- 중단/미들가드(中段/Middle Guard) - 한손창술의 언더핸드와 동일하며, 창을 잡은 손은 허리높이에, 창끝은 배와 가슴, 목과 얼굴 등 다양한 곳을 노린다. 양손 창술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자세이며, 찌르기를 전제로 한다.
- 상단/하이가드(上段/High Guard) - 창을 잡은 손은 허리 높이에, 창끝은 상대의 머리 위 높이로 올린다. 이 자세는 창을 들어올려 때리거나 베기를 하거나, 프라임/팔상 자세에서 들어오는 찌르기를 막는 등의 역할을 한다. 완전히 창을 수직으로 들어올리지 않는 것은 그럴 경우 방어를 완전히 해제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며 상대의 공격이나 반응에 따라 빠르게 반응해야 하는데 아주 들어올리면 대응하기가 늦어지기 때문. "창은 베는 것"이라는 독특한 사상을 지니는 사부리류 건창술에서 이 자세를 많이 볼 수 있다.
- 하단/로우가드(下段/Low Guard) - 창을 잡은 손은 머리나 어깨 높이에, 창끝은 상대의 다리나 땅을 향하고 있는 자세이다. 아래를 찌르는 데에 사용되고, 아래를 찔러 들어오는 창을 막기에 좋은 자세. 하지만 별개의 이유로 상당히 많이 쓰였는데 하단을 취하면 상대가 나와의 간격을 재기가 어려워지고, 초보의 경우 방어가 해제된 것으로 알고 치고 들어오다 당하는 경우도 있으며, 특히 창끝을 아래로 내렸다가 위로 올리면서 들어가는 찌르기는 오히려 중단 자세에서 그대로 찌르는 것보다도 위력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 팔상/프라임(八相/Prime) - 창을 잡은 손은 머리나 어깨 높이에, 창끝도 상대의 머리나 어깨 높이로 겨누는 자세이다. 창끝이 상대의 얼굴을 향하므로 느껴지는 심리적인 압박감도 크지만, 상대의 창의 베기나 내려치기를 방어할 수 있고, 방어한 상태에서 그대로 찌를 수도 있다. 또한 상대의 찌르기를 걷어 팔상/프라임 자세로 전환하면 상대의 찌르기가 위쪽으로 날아가 버리고, 반격의 가능성을 차단하며 반격을 가할 수도 있다. 물론 상대의 얼굴이나 상체 상부를 공격하기 위한 자세이기도 하다. 아예 창 전체를 오버핸드처럼 머리 위로 올리고 창끝을 얼굴 높이로 드는 경우도 있다.
2.1.3. 그 외의 자세
유럽에서는 중단/미들가드에서 창끝을 오른쪽/왼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티에르스/콰르트(Tierce/Quarte)라고 부른다. 펜싱에서의 방어 자세를 총검과 근대 창에도 적용시킨 결과. 검술에서의 티에르스/콰르트는 각자의 방향으로 들어오는 베기와 찌르기를 막기 위한 자세이지만 창술에서의 티에르스/콰르트는 중단으로 찔러 들어오는 적의 창을 오른쪽/왼쪽으로 창을 대어 밀어내는 것을 말한다. 상대의 창은 오른쪽/왼쪽으로 빗겨나가게 된다.
창을 수직으로 세우는 자세가 있다. 창에 대응하기 위한 자세로써 창이 찔러들어오면 대어 옆으로 밀면 그대로 엉뚱한 곳으로 빗겨나가게 된다는 논리. 조금 어이없어 보일 수도 있겠으나 중세 서양 검술 매뉴얼에는 당당히 삽화로 들어가 있으며 일본의 봉술 유파에서도 창에 대한 대응책으로 가르친다.
팔상/프라임 자세와 동일하나 창을 머리 뒤로 넘겨서 취하는 자세가 있다. 유럽 파이크 창술에서도 보이고, 일본에서도 보인다. 보법에서 서술한 볼타 자세를 취할 경우 자연스럽게 나오는 자세.
2.1.4. 공격과 방어
- 전투의 원리 - 창술은 적의 창을 중심선에서 확실히 치운 다음, 드러난 오프닝을 공격하는 것이 기본 원리이다.
- 1.찌르기(突き/Thrust) - 창술의 가장 기본이자 근본 공격법. 한손창술과는 달리 양손을 사용하므로 세가지의 찌르기가 존재한다. 하나는 양손의 위치가 변하지 않는 일반적인 찌르기, 그리고 또 하나는 서양 창술에서는 잘 안하는 쿠리츠키(繰り突き/Slip Thrust)라는 이름의 찌르기이다. 창의 리치를 최대한으로 살리는 방식인데 동아시아 창술의 원류라고 할수 있는 양가창법에도 당연히 존재하며, 왼손은 느슨하게 잡고, 오른손은 잘 파지한 다음 왼팔을 쭉 펴고 오른손을 밀어 찌른다. 최대한 찔렀을 때에는 왼손과 오른손이 맞닿는다. 양손창술의 이치를 극대화시킨 최고의 리치를 살리는 찌르기이다. 이렇게 밀어 찌르는 데에는 손동작뿐만 아니라 스텝을 밟거나 허리를 틀고 몸을 조이는 등의 전신 운용이 필요한데, 이걸 제대로 행하는 모습을 직접 보면 낭창거리는 창조차도 순간적으로 쑥 펴지며 허공에 꽂히는 게 상당히 살벌하다. 마지막은 아예 왼손을 놔버리고 창 끝을 잡은 오른손만으로 최대한 쭉 뻗는 찌르기가 있다. 런지와 동반하는 경우가 많고, 간격 밖이라고 안심한 적에게 가하는 기습적인 찌르기이지만, 실패한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2.베기(切り/Cut) - 잘 안쓰이지만 때때로 유용한 공격법. 간혹 베기를 주력으로 삼는 창술 유파도 있다. 창은 대체적으로 소켓 방식[5] 을 채택하기 때문의 소켓 부근의 자루가 부러질 우려가 있었고, 창날도 찌르기를 위해 두껍고 폭이 좁아 칼날각이 컸으므로 베기 성능도 그저 그런 편이었다. 자루가 둥글었으므로 베기각을 잡기도 어려웠다. 따라서 창술에서 베기는 제대로 된 절단을 노리기보다는 견제책에 가까운 용도로 쓰였으나 때때로 유효한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바이킹들의 사가(Saga) 에서는 '베는 창'으로써 묘사되는 Hewig Spear가 등장하며, 일본의 고류 무술인 사부리류 건창술은 "창은 베는 것"이라는 이념을 내세우며 날길이 60.6cm의 거대한 창날을 가진 사부리류 특유의 창으로 베기를 중심으로 하는 독특한 창술을 선보인다.
- 3.때리기(叩き/Beat) - 공격법이면서도 또한 방어법이며, 공격법으로써는 베기와 같이 보조적인 용도에 지나지 않는다. 때리기의 가치는 상대의 창을 견제하거나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데에 있는데, 찔러 들어오는 창은 옆에서 가해지는 힘에 쉽게 궤도가 바뀌어지므로 단지 밀어내는 것뿐만이 아니라 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소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상대의 창과 접촉하는 시간이 길지 않으므로 빠른 반격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상대와의 장창교전에도 유효한데 파이크장창끼리의 교전의 경우, 창들끼리 닿을 정도가 되면 서로의 창을 툭툭 쳐대기 시작하는데, 이럼으로써 상대가 창을 떨구지 않으려고 꽉 잡으므로 빠른 대응을 느리게 할 수 있고, 찔렀을 때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었다. 3.6m의 긴 창을 사용하는 오와리관류의 경우도 대련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상대의 창을 견제한다. 가시마신류의 경우는 검술유파이지만 면허개전을 따면 창술을 가르치는데 오른손이 앞으로 가게 잡으며 중단을 잡지 않고 특유의 "오토나시노 카마에"를 취한 다음 창으로 상대의 창을 때려 놓치도록 하는, 때리기를 중시한 창술을 선보이고 있다.
- 4.밀어내기 - 찔러 들어오는 창에 자신의 창을 대어 바깥쪽으로 밀면 상대의 창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게 된다. 주요한 방어법 중 하나. 초보자들은 상대가 중단을 취하고 있으면 자기 창을 갖다대고 억지로 밀어서 치우려고 하는 경향이 있으나 반격에 걸리기 딱 좋은 행동이다. 밀려고 하다 상대가 창을 확 내리면 알아서 옆으로 창을 치워주는 꼴이 되기 때문. 실제로 이런 경우에 대응하는 기술은 어디에나 있다.
- 5.돌리기 - 밀어내기만으로는 상술한 약점이 있기 때문에 더 선호되는 방어법이 창을 상대의 창에 대고 돌려서 치워버리는 것이다. 힘이 한 방향으로만 가해지는 밀어내기와는 달리, 위에서 눌렀다가 옆에서 밀고 밑에서 들어올려버리는 3차원적인 방향에서 힘이 가해지므로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우며 확실하게 상대의 창을 치워버릴 수 있다. 찔러 들어오는 창 뿐만 아니라 상대가 단단히 잡고 있을 때도 어느정도 효과가 있으며, 창을 치운 다음 즉시 비어있는 공간으로 찌르기를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 6.기타 특이한 공격/방어 - 옆에 낫 형태의 칼날이나 갈고리 등이 달린 겸창(鎌槍), 건창(鍵槍), 스피툼(Spetum), 파르티잔(Partisan) 등의 창, 또는 창계열 폴암들만이 가능한 공방으로 걸기가 존재한다. 창으로 밀어내거나 때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상대의 창을 갈고리나 칼날로 걸어서 내려치우고 옆으로 치워버리거나 아예 눌러서 쓰지도 못하게 버틸 수도 있다. 또한 상대의 다리를 걸어 넘어트리거나 갑옷, 의복에 걸어 방해하는 등의 용도가 가능하다.
칼날이 튀어나온 겸창이나 스피툼이라면 걸기 뿐만이 아니라 찌르면서 칼날로 베어버릴 수가 있다. 또 상대가 창을 빗겨냈다고 하더라도 다시 끌어당기며 칼날로 베어버릴 수 있다. 또 단순히 걸어서 넘어트려도 상대의 다리를 베면서 넘어트리거나 하는 부가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 단순한 갈고리는 오히려 손에 잡혀서 자신이 옴짝달싹할수 없는 경우도 있으나, 칼날이 튀어나온 종류는 잡을 수가 없으므로 이러한 점에서 보다 안심할 수 있다. 다만 실력이 좋은 사람은 오히려 자기 무기를 일부러 걸어 버텨서 반대로 봉쇄를 당하게 하고 다른 무기로 반격하는 경우가 있다.
총검술에서의 개머리판 사용처럼 창대 끝부분을 이용해 돌려 칠 수 있는데, 창이 길 경우 걸리적거리고, 창끝을 치우면 가장 강력한 방어를 해지하는 셈이므로 선제 공격 용도로는 쓰이지 않는 기술이다. 주로 상대가 창의 간격을 돌파해 접근해오면 그제서야 사용하는 기술로써, 풍전류 창술이나 보장원류 창술에서 해당 예제가 존재한다.
총검술에서의 개머리판 사용처럼 창대 끝부분을 이용해 돌려 칠 수 있는데, 창이 길 경우 걸리적거리고, 창끝을 치우면 가장 강력한 방어를 해지하는 셈이므로 선제 공격 용도로는 쓰이지 않는 기술이다. 주로 상대가 창의 간격을 돌파해 접근해오면 그제서야 사용하는 기술로써, 풍전류 창술이나 보장원류 창술에서 해당 예제가 존재한다.
2.1.5. 파지법
기본적인 파지법은 왼손과 오른손 모두 정수(正手)로 잡으며, 왼손이 앞으로 간다. 그러나 창술에 따라 왼손을 역수로 잡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할 경우 찌르기는 잘 안되나 창을 돌려가며 자유 자재로 사용하고 타격하는 데에 좋다. 프라임 자세에서 창을 머리 위로 아주 들어 올릴 경우에도 이렇게 잡는다.
쿠리츠키/슬립 스러스트를 할 때에 왼손은 단지 느슨하게만 잡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찔렀을 때에는 왼손의 손등이 위로 오도록 손을 돌려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창끝이 찌르면서 왼쪽으로 가버리게 된다. 걸레를 안쪽으로 짜는 것과 비슷한 손동작이다. 올바르게 했을 경우 창끝이 원하는 곳으로 딱딱 가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창대가 부들부들 떠는 것도 볼 수 있다. 힘이 완전히 제대로 창끝으로 전달되었다는 신호. 이렇지 않을 경우 물체가 제대로 뚫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창의 어디를 잡아야 하는가는 그때그때 다르다. 양가창법이나 파이크창술, 오와리관류등은 오른손이 창끝을 잡도록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뒤로 자루에 여유를 주고 잡기도 한다. 또 오른손으로 창끝을 잡도록 하는 유파라 하더라도 적이 근접하거나 기타 여러 상황에는 거리낌없이 창을 크게 뒤로 빼서 잡아 사용한다. 기본적으로 파지법은 하나의 원칙적 경향만이 있을 뿐, 세부 사항은 각자 해봐서 자신에게 맞게 정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다.
2.1.6. 영상 예제
풍전류 창술. 가장 기본적이고 세계적으로도 공통되는 창술의 원리를 선보인다.
가시마 신류 창술 강좌. 특유의 창 파지법, 오토나시노 카마에, 때리기의 활용 등의 특색을 주목하자.
가토리신토류의 창술. 창과 도검이 붙었을 때에 발생하는 하시카카리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제압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일본 흥복사 봉납연무에서 시연된 창술 유파, 각각 오와리관류, 사부리류, 보장원류 타카다파이다. 위 항목에서 설명된 각 유파별 특징을 주목하여 보도록 한다.
근대 유럽의 창술/총검술 체계 설명.
2.2. 훈련 방법과 도구
- 훈련 방법
- 기본 동작(Basic Exercise) - 말 그대로 찌르기, 베기, 막기와 각 자세 등의 동작을 연속시키지 않고 따로 떼어서 하는 것.
- 펠 스러스팅(Pell thrusting) - 특정한 물체를 찌르거나 가격하는 훈련법. 허공에만 하는 공격 훈련은 명백하게 한계가 있으며, 통나무나 타이어 등으로 표적을 만들어놓고 공격을 하는 것은 공격적인 태도와 실제 적을 타격한다는 느낌을 주며, 최대한 기세를 실어 찌르게 함으로써 돌격적이고 용맹한 태도를 기르게 할 수 있다. 다만 기세를 싣는 데에만 집중하다 보면 스텝이나 동작을 너무 과도하게 하여 실제 사람을 찌르거나 허공을 찌르게 하면 앞으로 엎어지는 경우가 생기거나 너무 깊숙히 찔러 뽑기 어려운 경우가 발생하며, 이러한 경우에는 짚단이나 기타 부드러운 물체를 표적으로 만들어 실전에서의 찌르기를 가상하게 해서 너무 과도한 찌르기로 인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짚단 등을 표적으로 삼았을 때 너무 과도하게 찌르면 엎어질 수 있으므로 알아서 자세를 교정해나가기 때문.
- 플러리쉬/투로(Florysh/套路) - 기본 동작을 연속해서 행하는 것. 플러리쉬는 정해진 순서를 따르는 것과 독자적으로 구성해서 해보는 것 둘다 포함하며, 투로는 정해진 순서를 따른다. 각 동작과 자세의 연계성을 실습해보기 위해 행해지는 것으로, 혼자서 하는 것이다.
- 교전/카타(交戰/形/Combination) - 교전은 한국어이고, 카타는 일본어. 상호 2명이서 정해진 동작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훈련하는 방식이다. 혼자서 하는 플러리쉬/투로에 비해 서로의 무기를 어떻게 방어하고 공격하는가, 서로간의 간격은 어느 정도인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이는가 등을 학습할 수 있다는 데에서 다대한 장점이 있지만, 순서가 정해져 있음으로 인해 형식화/매너리즘에 빠질 우려가 있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존재하며, 또한 중시되는 훈련법.
- 대련 - 적절한 방어구와 장비를 가지고 모든 의외성을 완전 개방하여 실전에 가깝게 대결하는 훈련. 대체적으로 17~18세기경에 이러한 훈련법이 정착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이러한 훈련법을 지양하는 풍조가 있었는데, 방어구를 착용하면 실제 평복 상황과는 몸의 운용이나 감각이 달라지고, 결과적으로 방어구를 입어서 안전하다는 생각 때문에 자살적인 공격 경향이 많아져 나쁜 버릇을 들이며, 상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 대련용으로 변형된 무기를 써야 하므로 실전전투술과 괴리가 커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 유럽에서는 펜싱 수트와 마스크가 개발되고, 일본에서는 나카니시파일도류에 의해 죽도와 호구가 개발되면서 이러한 훈련법도 정착이 되었다. 상술한 문제점은 존재하였으나 실전에 가깝게 모든 의외성을 개방하여 치고 받는다는 점에서 많은 호응을 얻었다. 기본적인 시스템은 배운 기본동작과 반격법을 격렬하고 빠른 대련 상황에서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실전에서도 기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방식이었으나, 승리를 위해 훈련 도구의 특징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비판을 받기도 하는 방식. 유럽에서는 김나지움은 물론 군대나 민간 펜싱스쿨에서도 검술뿐만 아니라 총검술, 창술도 대련 형태로 교습이 되었으며 널리 퍼졌지만, 일본에서는 창술유파 중에서는 오와리관류정도가 창술용 호구를 채택하고 대련 시스템을 도입한 정도였다.
- 제식훈련 - 창을 사용하는 군대에서는 무조건 이루어지던 훈련. 군대에서의 창의 사용은 보병을 이용한 전열 형성이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특히 군대에서 쓰는 창은 긴 경우가 많았으므로 이러한 제식훈련을 하여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쉽게 혼란에 빠질 수 있었다.
그리스 리인액터들이 재현한 고대 그리스 제식동작.
- 마상창술훈련 - 마상창술훈련은 주로 기병들이 했으며, 훈련에 따라 지상에서 하는 훈련과 마상에서 하는 훈련이 있었다. 지상훈련은 땅에서 말을 타는 자세를 취하고 기본동작을 연습하는 것이며, 가장 기초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말을 탈 필요가 없어 번거롭지 않아 자주 할 수 있었다. 목마를 타고 말을 탄 감각 하에서 기본동작을 연습하는 것도 존재했다. 마상훈련은 처음에는 말을 타는 법과 안장과 고삐 등의 장비교육, 자유자재로 모는 방법을 체득시킨 다음 무기를 사용하는 훈련으로 들어가는데, 마상창술의 경우 언더핸드일 경우 전후좌우를 자유자재로 공격하는 방법과 돌격시의 창 운용을 가르치며, 투핸드도 마찬가지이다. 언더핸드와 투핸드일 경우 이슬람권에서는 도자기로 만든 바구니를 준비해서, 돌격을 하여 도자기 바구니 안에 안전하게 들어가면 손을 놓는 등 돌격시의 노하우를 가르쳤다. 카우치드 랜스가 발달한 유럽의 경우 맞으면 돌아가는 표적을 만들어 돌격을 시켰고, 집단군사훈련에서 발전하여 나중에는 대회화된 멜레(Melee)와 토너먼트(Tournement)가 있었다.
- 훈련 도구
- 목창/봉(木槍/Staff) - 창날이 붙어 있으면 위험하므로 훈련시에는 봉 또는 봉끝에 충격흡수용의 탄포(Tanpo)를 달아놓은 것을 사용했다. 겸창이나 건창, 할버드같이 특별한 종류의 물건들은 나무막대기를 자루에 끼워놓아 겸창의 낫 같은 역할을 하게 했고, 할버드 같은 무기를 상정할 때에는 가죽으로 할버드 도끼날처럼 모양을 만들어 자루에 끼워 썼다. 현대에도 가장 많이 쓰이는 종류. 대련용으로 사용할 때에도 똑같이 사용하며, 현대에도 그대로 사용된다.
- 창술용 호구/펜싱 수트 - 일본에서는 호구가 개발된 이후로 오와리관류 등의 소수 유파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창술용 호구를 도입했다. 기본적으로는 나카니시파 일도류/검도용 호구와 다를 바가 없으나, 검도용 호구가 가려주지 못하는 왼팔, 겨드랑이를 가려주도록 어깨보호구가 추가되었고, 팔보호대도 검도용 호완과는 조금 다른 것이 있다. 총검도에서도 사용한다. 펜싱 수트는 검술 훈련시에 사용하던 수트와 마스크를 그대로 사용했는데, 펜싱 마스크는 촘촘한 철제 망사로 만들어져 있으며 단단하고 철제 포일을 상정했기 때문에 창술이나 총검술 훈련에도 좋았지만, 수트는 호구에 비하면 유연한 편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의가 필요한 편이었다. 현대에는 보다 튼튼한 서양검술용으로 나온 수트를 사용하거나, 기존의 스포츠용 방호구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3. 실전
3.1. 장점
Academy of Historical Fencing의 집단 스파링
HEMA의 창 대 소드 앤 버클러 스파링
Academy of Historical Fencing의 개인 스파링.
1 대 1과 집단전투를 가리지 않고, 창은 백병전에서 제일 유용한 무기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냉병기가 주무기였던 시절에는 전쟁터에서 검은 보조무기였고, 주무기는 주로 창이었다. 서로 다른 무기로 개인간에 대결을 하더라도 길이가 긴 무기라, 거리나 간격의 이점이 크기 때문에 실력차가 확연하지 않으면 유/불리가 눈에 띠게 두드러진다. 개개 동호회에서 창을 상대로한 이종무기 대결 스파링이 많이 치뤄지고 또 유튜브를 통해 공유도 많이 된 상태인데, 그나마 방패라도 들어야 대처가 가능하지만, 길이가 짧은 단병기들로는 창을 상대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더군다나 여러명이서 싸우게 된다면, 그 숫자가 3~5명 정도에 대열이 그리 촘촘하지 않더라도, 창을 든 쪽이 훨씬 유리하게 싸움을 전개하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3.2. 위치와 한계
창술은 스몰소드와 비슷한 특성을 지닌다. 전진스텝과 찌르기가 중심이다. 이 때문에 찌르기 이외에는 별다른 효과를 가지기 어려운 무기의 특성과 한계도 똑같이 가지고 있다. 또한 스몰소드가 그러한 것처럼 공격과 방어가 명확하게 분리되는 두박자 방어, 리뽀스트(Reposte)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동서양을 구분하지 않고 동일하게 존재하는 특성이다.
마찬가지로 그래서 측면으로 이동하는 상대에게 대응이 어렵다. 특히 창을 주로 쥔 손의 반대방향으로 돌면서 공격해 들어오면 대응이 무척힘들다. 가령 창잡이가 오른손 잡이인데, 상대가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창잡이의 왼쪽으로 이동해온다면 창잡이는 상대를 견제하기 위해 계속 따라서 돌아가야된다.
또한 창이라는게 길고 가볍지만, 찌르는 날도 작은데다, 날 이외에 다른 부속물이 없다보니, 상대가 창대를 붙잡거나, 제압하며[6] 공격을 들어올 경우 창대의 중간부위 만으로 상대를 저지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대처하기 어렵다.[7] 특히나 상대가 갑옷과 방패등으로 무장을 했다면, 창으로 찌르더라도 단 번에 제압되지 않기에 상대가 창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파고들어올 수도 있다.
전열을 짤 경우 이러한 단점은 상당부분 상쇄돼지만, 측면이나 후방에서 진입해오는 적이 창날 안쪽으로 들어오게 되면, 대처하기 어렵고 그 때문에 키노스케팔라이 전투, 피드나 전투 등에서 사리사를 든 마케도니안 팔랑크스가 검을 든 로마군에게 크게 패배하기도 했다. 위 장점 항목의 동영상에서도 나오는 장면으로, 창날이 잡히거나, 한 명을 찌르고 나서 창날을 못빼게 될 때 단병기를 든 상대방 여럿이 창수 한 명에게 몰려들어와서 각개격파를 하기 시작하면 딱히 대응방법이 없고, 동료창수도 도와주기 힘들다. 정면에서라면 창끝이 집중되어 저지를 받으니 이런 장면이 잘 등장하지 않지만, 측면이나 후방에서는 창끝이 집중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장면이 종종 등장하였다. 그래도 여전히 단병기에 비해서 간격이나 거리의 이점이 커 전투에서는 유리했기 때문에 너무 무겁고 긴 창은 사장되었지만, 비교적 길이가 짧은 창은 사리사가 사라진 이후에도 많이 활약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던 대열재정비나 대처가 힘든 측면이나 후방에서의 접전에서 창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폴 암과 같은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는 창이 많이 이용되었다. 특히 갑옷이 크게 발달하였고 개개인 단위의 전투가 절정에 달했던 유럽의 중세시기나 일본의 14세기에 들어서는 나기나타, 글레이브, 할버드, 폴액스 등이 전쟁터에서 대활약을 했다. 이들 무기는 공통적으로 날이 일반적인 창보다 크고, 자루는 보다 짧아, 창날 안쪽으로 파고들기 힘들고, 또 상대방이 날 안쪽으로 파고들더라도, 베기와 찌르기를 융통성있게 구사하며 대처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도검이나 단병기는 물론이거니와, 개별적으로 싸울 때는 창과의 대결에서도 우위를 차지하곤 했다. 특히 폴액스나, 할버드 같은 경우 중량도 더 나가기 때문에 낙차를 이용하여 내려치거나, 횡으로 공격할 경우 갑옷 입은 사람을 공격할 때도 뛰어났다.
서양검술단체 MEMAG의 다양한 스크립트에 의한 폴액스술 재현.
가토리신토류의 나기나타술 예제. 7분 54초부터 나온다.
이러한 이유로 창에 갈고리를 달거나 칼날이 옆으로 튀어나오는 무기가 등장한 적도 있다. 중화권에서는 극(무기)으로, 유럽권에서는 폴암으로 구분했다.
4. 현대의 창술
현대에는 기본적으로 검술보다 인기가 없으며 검술보다도 남아있는 자료가 없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창술 그 자체에 대한 복원보다는 한스 탈호퍼, 피오레 디이 리베리 등의 마스터들의 저작에 수록된 스크립트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창술을 보조적으로 연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복원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검술, 그중에서도 평복 전투를 전제로 하는 blossfechten 이며, 갑주 검술이나 창술은 보조적이고 마이너한 종류이다. 그에 비해 파이크 창술은 복잡한 무술적 원리를 내포하지 않았으며 제식훈련에 대부분의 훈련 중점을 두므로 전쟁 재현을 하는 리인액터들이 행사 등지에서 어렵지 않게 시연한다. 18~19세기의 부사관용 단창인 스펀툰(Spontoon)도 마찬가지 처지이며, 서양 창술의 처지는 아직 무술적 복원이 아니라 형태만을 재구성하여 복원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우슈 표연의 한 종목으로써 스포츠화가 완료된 상태. 물론 검과 마찬가지로 얘도 사용방법은 다 사라졌다. 양가창법은 물론 기타 다른 창술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청대에 등장한 무술 문파에서 구성한 창술은 각 문파별로 남아있으며, 화려한 표연으로써의 창술과는 달리 창의 기본적이고 실전적인 움직임을 잘 구현한 상태.
일본에서는 창술을 가르치는 고류 유파들이 일부 현존하고 있으며, 풍전류, 보장원류, 오와리관류, 사부리류, 가토리신토류, 가시마신류 등이 그것이다. 다른 지역의 창술이 실전되거나, 복원되고 있으며, 혹은 실전성을 잃어버린 것에 비해 과거의 훈련 시스템과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지구상에서도 오직 일본의 창술만이 가진 장점. 다만 고류검술도 수련자가 별로 없는 현 상황에서[8] 창술은 더욱 마이너한지라 창술 전문 유파들은 처지가 별로 좋지 않다. 보장원류의 경우는 보존회를 결성해 유지해 나가고 있으며, 오와리관류의 경우는 전통적인 부분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현대적인 커리큘럼을 새롭게 도입하고 고류 특유의 딱딱함과 보수성을 어느정도 배제하면서 어린 아이들이나 성인 수련자들이 많이 찾아오는 편으로, 이들 유파는 지역적인 토착성과 더불어 현대의 사회환경에 대해 알맞게 변화를 하여 세력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던 축에 속한다.
5. 관련 항목
[1] 이런 창은 '호코(矛)'라 불린다. 자세한 건 해당 항목 참조.[2] 물론 '일본에 기병이 없었다'라거나 '일본 기병은 말에서 내려 싸웠다' 등의 이야기 또한 확실하고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일본 군마가 작다 하여 충격력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 또한 어폐가 있다'라는 주장(전국시대 당시 일본인의 평균 신장이나, 비슷한 크기의 몽골 군마 등을 근거로 들어 일본 군마의 충분한 충격력을 이야기하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일본 열도 내에서의 기병 운용이 서양에서의 그것처럼 규모가 크고 활발하지는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기에 일본의 나가에야리와 야리부스마 등이 대 기병용으로 개발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3] 스텝이라던지 휘두르는 것, 내지르는 것등에서 많이 차용했다.[4] 다만, 헤타이로이는 언더핸드보다는 상술돤 투핸드 방식을 더 많이 사용하였다. 이 시대에는 아직 등자가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5] 창날에 소켓이 붙어있어 나무 자루를 연필처럼 깎고 창날을 끼운 다음 못으로 고정하는 방식. 흔히 창 하면 떠올리는 방식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방식이다. 만들기가 쉽지만 소켓부위의 자루가 부러지는 것이 단점. 서양에서는 베고 때리는 폴암의 경우 확실히 문제가 되었으므로 랑게트라는 보강 철판을 자루로 연장시켜 강도를 강화하는 대책을 썼었다.[6] 무기로 창대를 눌러버리면서 파고 들어 공격하는 것을 하시카카리(橋かかり)라고 한다[7] 가토리신토류등에서 이러할 때를 대비한 기술이 있지만, 창의 근본적인 약점이라 온전히 다 극복하기는 힘들다[8] 현재 일본의 고류 유파는 강해지고 싸우기 위한 기술이라기보다는 전통 문화의 보존이라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보수적인 면이 매우 강하고, 기술 유출에 민감해서 상당히 폐쇄적인 성향을 띄는데다가 도장의 수 역시 적고, 그마저도 접근성이 좋지 않은 곳에 위치한 경우가 많아 신규 수련자가 유입되기에 매우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수련의 형식 역시 시참(베기술)이나 대련과 같이 쉽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의 비중이 적고, 형 수련 등 다소 지루하다고 느끼기 쉬운 부분의 비중이 높다보니 젊은 수련자들은 특히 고류가 고리타분하다고 느끼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