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장공
1. 개요
과거,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신하와 장군에게 내리는 시호인 충장(忠莊/忠壯)을 받은 사람들을 높여 이르는 말로 추존된 작위에 따라 충장공(忠莊公/忠壯公)이라고 한다.
2. 상세
문신에게는 忠莊, 장군에게는 忠壯을 내리며, 당연히 최고의 시호인 '''충무보다는 좀 격이 떨어진다.''' 조선에는 이 시호를 받아 충장공으로 불리는 사람이 15명이다.[1]
3. 목록
- 정분 - 계유정난 때 숙청
- 이보흠 - 단종복위운동 참가자
- 신립 - 여진 토벌에 종군. 임진왜란때 탄금대 전투에서 전사
- 윤경원 - 임진왜란 때 전사
- 한백록 - 임진왜란 시기 원균 휘하에 종군.[2] 미조항 해전에서 전사.
- 정운 - 임진왜란 시기 이순신 휘하에 종군. 임진년 모든 해상작전에 참전하였고, 부산포 해전에서 전사
- 김덕령 - 임진왜란 시기의 대표적 의병장. 누명으로 옥사[3]
- 정발#s-3 - 임진왜란에 종군. 임진왜란의 첫 전투에서 사망
- 이복남 - 임진왜란에 종군. 남원성 전투에서 전사
- 권율 - 임진왜란에 종군. 이치 전투, 행주 대첩 이후 도원수로 활약[4]
- 남이흥 - 이괄의 난에 종군. 정묘호란 시기 안주성 전투에서 전사
- 이의배 - 정묘호란, 병자호란에 종군. 쌍령 전투에서 전사
- 지여해 - 정묘호란, 병자호란에 종군. 남한산성에서 출성해 싸우다 전사
- 유림 - 병자호란에 종군. 김화에서 청군을 격파
- 천만리 - 명군 출신으로 임진왜란에 종군. 전후 조선에 귀화
- 양헌수 - 병인양요 때 정족산성에서 프랑스 군 격퇴
- 어재연 - 신미양요 때 미군을 상대로 분전하다 전사
[1] 충무 시호와는 달리 충장, 충정 등의 시호는 받은 사람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2] 이순신 휘하라 되어 있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한백록은 지세포만호로 경상우수영 소속, 즉 원균 휘하였다. 이순신의 삼도 수군 통제사 임명 후라면 이순신 휘하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전에 죽었으므로 지휘 계통상 원균 휘하가 맞다. 물론 그 원균 밑에 있었다고 다 겁쟁이는 아니다.[3] 광주광역시 구도심의 번화가 충장로는 여기서 따온 것이다.[4] 행주산성이 있는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충장로는 여기서 따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