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시호)
1. 개요
'''충무(忠武)'''는 충성 충(忠) 자와 호반[1] 무(武) 자로 이루어진 시호이다. 주로 무인으로서 공을 세운 이들이 받았다. 추존된 작위에 따라 충무공(忠武公), 충무후(忠武侯) 등으로 부른다.
'신하의 도리를 지키고 나라를 위하여 몸을 아끼지 않아 밖으로는 외적을 물리치고 안으로는 법도를 바로 세운' 것으로 평가되는 이들에게 내려지는 시호이므로 무인이 받을 수 있는 시호로서는 최고의 선시(善諡). 문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급의 시호는 충문, 문충과 문성공 정도가 있다.
2. 상세
3. 사례
3.1. 한국
과거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장군에게 내리는 시호인 충무(忠武)를 받은 사람들을 높여 이르는 말. 조선에는 이 시호를 받아 충무공으로 불리는 사람이 총 9명이다. 인지도 순으로 따지면 이순신-김시민-남이-그 외 기타다.
- 조선
- 조영무
- 이준
- 남이
- 이순신: 그의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던 경상남도 통영군에서 과거 그의 시호를 딴 '충무시'가 분리되었다가 1995년, 통영군과 도로 통합하였다. 충무김밥이 이때의 흔적이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김시민: 경상남도 진주시에 위치한 경남진주혁신도시 일대에 '충무공동(洞)'이 존재하는데, 김시민이 진주 대첩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 이수일: 임진왜란에 종군, 이괄의 난 평정의 공신. 이완의 부친.
- 정충신: 임진왜란에 종군, 이괄의 난 평정의 공신. 정묘호란에서 부원수로 종군. 명청 사이에서 외교관으로도 활약했다. 본래 노비로 글도 모르는 천출이었지만 권율 휘하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이항복의 제자가 되어 학문을 익히고 무과에 급제해 양반이 된, 더 나아가 당상관 위치에까지 올라간 조선왕조 500년을 통틀어 유래가 거의 없을 정도의 인생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자 이름처럼 평생을 충신으로 살다 간 인물이기도 하다.
- 구인후: 인조반정의 공신이자 정묘호란 및 병자호란에 종군
- 김응하: 임진왜란에 종군, 사르후 전투에서 전사
조일전쟁이라는 불쏘시개에서는 이순신 말고 김시민 역시 충무공의 시호를 받은 장수인데 왜 이순신 한 명만 충무공으로 여기고 김시민은 칭송을 안 해주냐고 썼다. 거기까지였으면 괜찮은데, 문제는 "충무공은 이순신과 김시민 두 명이었다."라고 한 것이다. [3] 참고로 이순신의 시호 '충무공'을 선조가 붙인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매우 많은데, 이순신의 시호는 선조가 아니라 인조 때인 1643년에 붙여진 시호다.
충무공이 여러 명이므로 시호 뒤에는 이름을 붙여 혼동하지 않도록 하는 게 좋다. 다만 현재 대한민국의 관습상 '충무공'이라 하면 가장 유명한 이순신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3.2. 중국
시호 자체가 중국에서 유래한 만큼 중국에서도 상시로 쓰였는데 유명한 사람으로는 촉한의 충무후 제갈량과 남송의 명장 악비 등이 있다. 중국에서는 작위 제도를 유지했기에 받은 작위에 따라 공(公)과 후(侯) 등으로 따로 칭했다. 제갈량을 제갈무후, 혹은 그냥 무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시호에서 비롯한 호칭이다.
[1] 무인(武人), 무반(武班). 어째서 호반이라고 부르는지는 피휘 문서 고려 문단 참조.[2] 앞에 언급된 각 자를 조합하면 충무-충장-장목-무목이 나온다. 충무는 이 문서에 언급되었고, 충장은 권율이 받았으며, 장목은 관우에게 내려졌던 시호이고, 무목은 악비가 받았던 시호다. 하나같이 격이 높은 상시다.[3] 물론 9명이라는 것은 조선 건국~조선 멸망까지 전부 계산했을 때의 이야기고 임진왜란 시기에 한정짓는다면 맞는 얘기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