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헤닉
1. 프로필
2. 소개
WWE(당시 WWF)와 WCW에서 활약했던 프로레슬러로, 월드 챔피언 경력은 없지만 빼어난 기량으로 가장 위대한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으로 첫손에 꼽히는 테크니션이다.'''"Absolutely~ Perfect!"'''
3. 생애
미네소타 주 로빈스데일에서 태어났다. AWA의 레슬링 스타였던 아버지 래리 '더 액스' 헤닉의 뒤를 따라 아버지의 태그팀 파트너로 데뷔했다. 아버지의 후광에서 벗어나 AWA에서 챔피언에 오를 만큼 성장한 그는 WWF로 이적한다.
1988년 커트 헤닉은 운동만능의 재수밥맛인 캐릭터 미스터 퍼펙트로 WWF에 입성한다. 이 캐릭터를 위해 WWF에서는 볼링에서 한핀도 안 놓친 퍼펙트스코어, 농구 3점슛-하프 코트슛-림을 등진 상태에서 슛 성공, 야구에서는 홈런을 치고, 미식축구에서 자기가 던진 공을 자기가 받아내는 '퍼펙트한' 모습을 선전하는 프로모를 선보였고, 그의 절친인 야구선수 웨이드 보그스를 비롯한 여러 스포츠 스타들이 홍보에 동원되었다. 악역 매니저인 바비 '더 브레인' 히난의 매니지먼트를 받으며 혜성처럼 등장해 데뷔 후 자버와 미드카더들을 잡으며 1년 가까이 무패행진을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매니저가 지니어스로 바뀌었는데 결국 무적의 헐크 호건과의 대립을 하며... 전용 샌드백 역을 하기도 했다.
WWF 레슬매니아 V 에서는 당시 블루 블레이저 기믹으로 활동하였던 오웬 하트에게 명경기 끝에 깔끔하게 승리를 거두며 인터뷰에서 브렛 하트를 완벽하게 이기겠다고 도발하기도 하였다.
WWF 레슬매니아 VI에서 얼티밋 워리어가 WWF 챔피언에 오르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벨트를 반납하게 되었다. 이때 새로운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을 뽑기 위해 8강 토너먼트가 벌어졌는데 결승전에서 미스터 퍼펙트가 티토 산타나에게 롤업으로 승리하면서 챔피언에 올랐다. 이후 '텍사스 토네이도' 케리 폰 에릭과 대립하다가 허리 디스크로 인한 등부상으로 벨트를 내려놓아야 할 상황에 처한다. 그리고 WWF 섬머슬램(1991)에서 브렛 하트와 명경기를 만든 후 타이틀을 내준다.
이후 선수생활은 잠시 쉬고 바비 히난과 함께 릭 플레어의 매니저를 맡기도 했으며, 해설자로 등장해 빈스 맥마흔과 만담을 주고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릭 플레어와 바비 히난에게 배신을 당하자 턴페이스해 다시 선수로 복귀하여 1993년 1월 RAW에서 릭 플레어와 패배자가 WWF를 떠나는 조건의 경기로 맞붙어 승리한다[2] . 렉스 루거, 숀 마이클스와 대립을 맺은 후 데뷔 초기 귀족 기믹시절 트리플 H의 조언자 역할로 등장하다 퇴사하였다.
WWF를 떠나 1997년에 WCW로 이적해 포 호스맨에 잠깐 있다 배신 후 nWo로 넘어가 WCW U.S챔피언에 등극했다. nWo 축출 후에는 웨스트 텍사스 레드넥스라는 남부 카우보이 기믹의 집단을 이끌었다. 그러나 2000년까지 WCW에서 활동할 당시 무릎부상에 시달렸으며, nWo에서 존재감도 낮았고 축출시의 대우도 형편없었다. 게다가 웨스트 텍사스 레드넥스는 커트 헤닉 본인이 가장 맘에 들어했던 기믹이지만 Rap is crap이라는 커리어 최악의 흑역사를 남겼다.
WWF 로얄럼블(2002)의 30인 로얄럼블 경기에 깜짝 등장해 커트 앵글에게 퍼펙트 플렉스를 시전하며 최후의 3인까지 버티는 활약을 보이며 다시 WWE로 복귀했다. 하지만 지옥의 비행 사건(the plane ride from hell) 이후 방출되어 TNA에서 활동하던 중 2003년 2월 10일 플로리다 주 탬파의 한 호텔방에서 코카인 중독으로 44세에 사망한다.
오랜 친구였던 웨이드 보그스에게 헌액되어 2007년 WWE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이때 아들 조 헤닉이 아버지가 입던 자켓을 입고 나와 아버지의 등장신을 그대로 재현했다.
4. 커리어
- WWF 로얄럼블(1989)의 30인 로얄럼블 경기에 4번으로 출전했다.
- WWF 레슬매니아 V에서 블루 블레이저와 경기를 가졌다.
- WWF 섬머슬램(1989)에서는 레드 루스터와 경기를 가졌다.
- WWF 서바이버 시리즈(1989)에서 릭 루드, 페뷸러스 루조스와 더 루드 브루드라는 팀을 이루어 로디즈 라우디즈 (로디 파이퍼, 부쉬웨커스, 지미 스누카)와 경기를 가졌다. 이 경기에서 유일하게 생존하면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 WWF 로얄럼블(1990)에 마지막 30번으로 출전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헐크 호건에게 퍼펙트 플렉스를 시전했으나 호건이 이 때 헐크 업되면서 아쉽게 탈락되었다.
- WWF 레슬매니아 VI에서 브루투스 비프케익에게 패했다.
- 레매에서 얼티밋 워리어가 WWF 챔피언이 되면서 그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벨트를 반납했다. 이후 이 벨트의 주인을 가리기 위해 8명이 토너먼트를 가졌는데 파이널에서 티토 산타나에게 승리하면서 미스터 퍼펙트가 챔피언이 되었다.
- 그러나 WWF 섬머슬램(1990)에서 텍사스 토네이도에게 벨트를 내준다.
-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0)에서는 데몰리션 3명과 더 퍼펙트 팀을 이루었다. 얼티밋 워리어, 리전 오브 둠, 텍사스 토네이도로 이루어진 더 워리어즈와 경기를 가졌다.
- WWF 로얄럼블(1991)에도 23번으로 출전했으나 브리티시 불독에게 탈락되었다.
- WWF 레슬매니아 VII에서 빅 보스 맨에게 DQ로 패하면서 벨트는 지켜 냈다.
- WWF 섬머슬램(1991)에서 브렛 하트와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을 가졌다.
- WCW 배쉬 앳 더 비치(1997)에서 DDP와 팀을 이루었으나 랜디 새비지, 스캇 홀 팀에게 패했다.
- WCW 로드 와일드(1997)에서 DDP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 WCW 할로윈 해벅(1997)에서 릭 플레어에게 승리하면서 WCW US 챔피언십 방어에 성공했다.
- WCW 언센서드(1998)에서 브렛 하트와 재대결을 벌였다.
- WCW 언센서드(1999)에서 배리 윈드햄과 팀을 이루어 크리스 벤와, 딘 말렌코를 상대로 럼버잭 매치 WCW 태그팀 챔피언십 방어에 나섰으나 실패.
- WWF 로얄럼블(2002)에 25번으로 출전했다.
5. 경기 스타일
'''미스터 퍼펙트'''라는 이명에 걸맞는 뛰어난 운동신경을 지니고 있었으며 매트 레슬링의 기본기가 매우 훌륭했다. 가장 크게 주목받았던 악역 시기에도 테크니컬한 운영으로 경기를 풀어갔던 게 특징으로, 캐릭터의 선악에 몰입하는 특성이 강했던 90년대의 어린이 레슬링 팬들도 납득시킬 수 있을 만한 빼어난 기량을 선보여 기믹과 상관없이 팬들과 동료들의 리스펙트를 받는 선수였다. 예전 인터컨티넨탈 타이틀이 뛰어난 기량의 워커들이 많이 가져가며 흥행 담당 타이틀인 WWF/WWE 타이틀과 대조되는 경기력 담당 타이틀로 여겨졌던 때가 있었는데 그러한 인식의 필두에 있었던 명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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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능력도 뛰어났는데 힘으로 어필하는 선수가 아니었음에도 완력도 대단했다. 그의 피니쉬 무브인 퍼펙트 플렉스는 말 그대로 완벽해서 그 덩치 큰 빅 쇼에게도 깔끔하게 시전하는 완성도를 자랑했다.[3]
6. 가족
아들 조 헤닉과 딸 에이미 헤닉이 WWE 수련생 계약을 맺었으나 에이미는 행실이 문제되어 방출되었다. 장남 조 헤닉이 WWE의 산하단체인 FCW에서 활동하다가 마이클 맥길리커티라는 이름으로 NXT 시즌 2를 통해 WWE에 데뷔한 후 커티스 액슬로 링네임을 바꿨다. 아들은 드웨인 존슨과 브록 레스너의 훈련 파트너가 되는 등 트레이너로선 내부적으로 좋은 평을 받는 듯 하나 링 위에선 아버지의 운동능력[4] 과 카리스마를 따라가지 못했다.
7. 기타
확고한 메인 이벤터급은 아니었으나, 최고의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으로 꼽힐 만큼 뛰어난 경기력에 백스테이지에서 농담 잘하고 장난 잘치는 호인이었다. 숀 마이클스의 별칭 '하트 브레이크 키드'를 지어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얍삽한 이미지와는 달리 의리있고 할 말 다 하는 성격 때문에 자신이 손해 보는일도 잦았고, 친한 친구인 야구선수 웨이드 보그스가 사냥 중 덫에 발목이 끼는 사고가 발생하자 그걸 '''완력으로''' 열어 구해준 일화도 있다.
경기장 입장 시 씹던 껌을 뱉음과 동시에 손바닥으로 탁 쳐서 공중에 뜬 껌을 저 멀리 날리는 퍼포먼스도 유명.[5] 훗날 커트 헤닉이 사망한 바로 다음 주의 RAW에서 크리스 제리코는 크리스찬와의 세그먼트를 마치면서 커트 헤닉의 씹던 껌을 쳐서 날리는 퍼포먼스를 재연하며 그를 추모하기도 했다.
8. 둘러보기
[1] 프로레슬러 커티스 액슬이 그의 아들들 중 하나이다.[2] 당시 RAW는 막 출범한 신생 TV 쇼였고 해당 경기는 RAW의 3회차 에피소드의 메인 이벤트였다.[3] 심지어 마지막 WWE 복귀때는 빅쇼의 몸무게가 WCW때보다 더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깔끔하게 시전하였다[4] 그래도 아버지의 기술이었던 퍼펙트 플렉스와 드롭킥 구사는 제법 훌륭하다.[5] WWE RAW TV방영 25주년 기념 영상에서도 해당 퍼포먼스가 스치듯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