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스 루거
1. 프로필
2. 소개
WCW, WWF, TNA에서 활동했던 프로레슬러. 미식축구선수 출신으로 프로레슬링에 입문한 케이스이며, 프로레슬링 실력[5] 이 뛰어난 레슬러는 아니었으나, 신체적인 능력[6] 으로 커버해 인기를 끌었으나, 아이콘으론 성장하지 못했다.[7] 그래도 WCW에서 가장 화려하게 활동한 편으로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도 2번 했었고[8] 스팅과 함께 nWo 울프팩의 멤버이기도 했다.[9] 그리고 이 두명은 빌 골드버그를 프로레슬링에 데뷔시킨 인물들이기도 하다.
3. 커리어
고등학생 시절에 촉망받는 미식축구 인재라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게 된다. 1979년 NFL에 뛰어들어 활동했지만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한 채 이리저리 이적되며 팀을 옮겨 다니다가 1985년 잭슨빌 불스를 끝으로 미식축구 선수로서의 삶을 마감하게 되고, 프로레슬러로 데뷔하기로 한다. 히어로 마츠다[10] 의 가르침을 받고, 1985년 9월에 데뷔를 한다. NWA 플로리다에서 주로 활동하며 서던 헤비급 챔피언에도 올랐고, 와후 맥도널드, 배리 윈덤, 릭 플레어 등 여러 선수들과 대립하며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린다.
[image]
1987년 루거는 당시 NWA의 주력 프로모션이었던 짐 크로켓 프로모션으로 가게 되었고, 당대 최고의 스테이블로 군림하던 포 호스맨의 새로운 멤버로 들어가게 된다.[11] 먼저 US 타이틀 획득을 위해 니키타 콜로프와 대립할 때까지는 괜찮았지만 스타케이드에서 열렸던 더스티 로즈와의 경기에서 패배하자 포 호스맨은 루거를 축출시켜 버린다. 이에 루거는 플로리다 시절 동료였던 배리 윈덤과 태그팀 트윈 타워스를 구성해 포 호스맨에 맞서 싸웠고, 툴리 블랜차드와 안 앤더슨을 꺾고 NWA 월드 태그팀 챔피언에 오르는데 성공한다. 허나 윈덤이 루거를 배신하고 포 호스맨에 가입해버렸고, 루거는 와신상담해 포 호스맨의 리더 릭 플레어와 셀 수 없이 싸우나 월드 챔피언에는 오르지 못한다.
[image]
이후에도 루거와 포 호스맨의 대립은 계속된다. US 챔피언에 오른 뒤 마이클 헤이즈와 팀을 맺고 포 호스맨과 싸웠으나 헤이즈가 그를 배신하는 바람에 US 타이틀을 놓고 수차례 싸웠고, 헤이즈를 꺾은 다음에도 수많은 도전자를 받았는데 리키 스팀보트, 브라이언 필만, 스티브 윌리엄스, 스탄 한센과 싸우며 한센에게 한 차례 타이틀을 내주긴 했지만 다시 찾아온 뒤 벨트를 굳건히 지켜낸다.
[image]
그렇게 루거는 US 챔피언이면서도 단체 최고의 선수로 활동했고, 이런 기류를 타 WCW 그레이트 아메리칸 배쉬(1991)에서[12] 배리 윈덤을 꺾고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하게 된다.[13] 230일간 군림했다가 슈퍼 브롤 2에서 스팅에게 벨트를 내주게 된다. 이후 WCW를 떠났고, 이때 잠시 빈스 맥마흔이 만들었던 보디빌딩 대회인 WBF에 나갔다가 빈스 맥마흔과 접촉해 WWF와 계약을 맺게 된다.
[image]
WWF 로얄럼블(1993)에서 바비 히난의 소개를 받아 본격적으로 데뷔한 루거는 나르시스트란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먼저 바비 히난을 놓고, 미스터 퍼펙트와 대립하게 되었고, 레슬매니아 9에서 미스터 퍼펙트를 꺾는데 성공한다.
[image]
그러던 중 헐크 호건이 WWF를 완전히 떠나버리면서 그의 위치를 대신할 존재가 필요하게 되었고, 루거가 낙점돼서 올 아메리칸이란 새로운 기믹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일명 렉스 익스프레스란 투어를 다니며 성조기 스타일의 버스를 타고 다니며 팬들을 모았다. WWF 섬머슬램(1993)에서 요코주나의 월드 타이틀에 도전해 승리는 했지만 벨트를 취하지는 못했고, 반미 기믹을 고수하던 루드빅 보르가와 대립을 했고,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3)에서는 미국인 팀 VS 외국인 팀 대결을 가져 승리를 취한다. 그러다 WWF 로얄럼블(1994)에서 브렛 하트와 공동 우승했으나 레슬매니아 10에서 월드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한다. 브렛 하트가 그의 자리를 꿰차게 되면서 루거의 입지는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고, 크러시, 타탕카, 킹 콩 번디, 뱀 뱀 비글로 등과 대립을 갖는다. 이후 데이비 보이 스미스와 앨리드 파워란 태그팀을 결성했지만 얼마 안 가 사라진다.
[image]
입지를 잃은 루거는 친구 스팅에게 WCW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고,[14] 스팅은 이를 에릭 비숍에게 이야기한다. 비숍은 그와 물 밑 작업을 벌여 비밀리에 계약을 체결했고, WCW 나이트로 1회에서 렉스 루거가 생방송 중 TV에 나오며 기존의 WWF 팬들은 큰 충격을 받고 만다.[15] 처음에는 던전 오브 둠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곧바로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타이틀을 얻기 위한 경기에 참가한다.
[image]
스팅과 태그팀을 이루어 할렘 히트를 꺾고, 월드태그팀챔피언에도 올랐고 싱글로는 TV 챔피언에도 오르는데 성공한다.
[image]
1996년 6월 WCW에 WWF에서 2명의 선수들이 침공한다. 케빈 내시와 스캇 홀의 아웃사이더즈의 침공이 시작되었고, 렉스 루거는 스팅과 마초맨과 함께 그들에게 맞섰고, WCW 배쉬 앳 더 비치(1996)에서 3:3 매치를 가졌으나 경기 초반 링 밖으로 던져져서 기절했고, 팀의 패배에 일조하고 만다. nWo가 결성되면서 루거는 WCW의 지도층 중 한 명으로 선수들을 이끌었고, 본인은 헐리우드 호건에게 도전해 나이트로에서 호건을 꺾고 월드 챔피언에 오른다.[16]
[image]
그러나 5일 만에 다시 타이틀을 내주게 되고, 때마침 nWo가 분열되면서 루거는 스팅과 함께 울프팩에 참가해 헐리우드 호건에게 맞서 활동한다. 그러다 1999년 초 그 유명한 핑거 포크 오브 둠 사건 이후 nWo가 하나로 통합되며 루거도 여기에 참여했으나 곧바로 이두근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휴식에 돌입한다.
[image]
부상에서 돌아온 루거는 토탈 패키지란 기믹으로 활동하며 미스 엘리자베스를 매니저로 데리고 다닌다.
1999년 12월 PPV 스타케이드에서 스팅과 싱글매치에서 의자를 사용하여 반칙패를 당한다.
이후 그는 닫힌 강철 의자에 팔을 넣고 밟아서 상대방의 팔을 부수는 비열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2000년 2월 PPV 수퍼브롤에서 헐크호건에게 패하였고 릭플레어와 연합하여 팀 패키지라는 태그팀을 이루어 스팅 , 뱀피로와 대립을 하였다.
이후 밀리네오스클럽 vs 뉴 블러드 퓨드에선 부상으로 장기간 링을 떠나있다 11월에 복귀를 하여 골드버그를 습격 본격적으로 골드버그와 대립을 하였다.
11월 메이햄 12월 스타케이드에서 연달아 경기를했지만 두번다 패하였다.
이후 버프베그웰과 연합하여 토털리버프라는 태그팀을 형성해 계속해서 골드버그와 대립하였다.
2001년 1월 PPV 씬에서 토털리버프 vs 골드버그,사지와의 태그팀매치에서 승리하여 골드버그의 연승행진을 저지하였다.
씬 PPV 이후 다음날 나이트로에서 릭플레어 스캇스타이너 제프제럿 로드워리어애니멀 버프베그웰과 함께 매그니피센트 세븐 스테이블 형성해 업스타츠와 대립하였고 루거는 베그웰과 함께 크로닉과 태그팀타이틀도전권을 걸고 대립을 하였다.
크로닉을 꺽고 태그팀타이틀도전권을 획득하여 2001년 3월 PPV 그리드에서 태그팀챔피언 션오헤어 , 척팔럼보에게 도전하였지만 패하였다.
이후 매그니피센트 세븐맴버로 활동 하지만 이미 WCW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고, 그의 행보도 별 주목을 받지 못한 채 WCW의 멸망을 지켜본다.
이후 2005년에 사실상 은퇴를 선언했다.
4. 은퇴 이후
2007년에 항공기 내에서 갑자기 목이 뻣뻣해지는 증상을 느껴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목을 꺽어 제자리로 돌리려는 등의 시도를 했으나 목 아래가 마비되었다. 정확한 병명은 척수경색[17] 으로 NFL과 프로레슬링에서의 과도한 육체 혹사 및 약물사용이 원인으로 지적되었으며, 한 달 이상의 기간동안 팔다리 전부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일 년 정도 지난 이후 보조기구를 사용해서 잠깐씩 걸을 수있게 되었고, 2010년에는 호전되어 전보다는 편안하게 걷고 운전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휠체어에 상당수 의존하게 되었지만 프로레슬링의 부상과 약물 및 장애의 위험성 등과 관련하여 강의활동을 하는 한편 WWE 웰니스 정책 기관에서 근무한다.
[image]
2010년대 들어서 암에 걸려 과거의 잘생기고 근육질인 몸매는 온데간데 없고, 삐쩍 마른 몸매가 되었다.
5. 여담
[image]
- TNA에 아주 가끔씩 출연하기도 했는데 별 특징이 없었고, 2012년 절친 스팅을 TNA 명예의 전당에 헌액시키기도 했다.
- WCW 시절 이상한 각본때문에 굴욕 아닌 굴욕을 당했는데 헐리우드 호건이 링 세그먼트로 "렉스 루거같은 젊은 애새끼는 챔피언으로는 무리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루거는 40대 초반이었다...
- 템파베이 밴디트 시절 룸메이트가 론 시몬스였다.
- 미스 엘리자베스와 사귀는 사이였는데 문제는 둘다 WCW 멸망 이후 온갖 약물에 취해 허우적 거렸는데 그러다 엘리자베스가 그의 집에서 죽고 말았고, 이와 관련해 루거는 살인죄로 조사를 받아야 했었다.
- 흔히 실패한 유망주의 대표격으로 회자되곤 하는데 특히 로만 레인즈와 관련해 말이 많이 나오기도 했다.[18]
6. 둘러보기
[1] '''A'''ttitude '''A'''djustment. 존 시나의 피니쉬 무브와 이름만 같은 기술이다.[2] WWE에서 주요 필살기로 사용했으며 팔꿈치 부분에 강철(?)로 된 인공뼈를 삽입하여 위력을 높였다는 설정이 있었다고 한다. 두 종류의 기술이 있었는데 상대방에게 달려가서 팔꿈치로 가격하는 러닝 엘보와 점프해서 상대방에게 팔꿈치로 맞추는 플라잉 엘보로(얼티밋 워리어나 존 시나의 점핑 솔더 어택과 비슷하지만 어깨 대신 팔꿈치를 사용했다.)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3)에서는 이 기술로 루드빅 볼가를 침몰시켰다. 여담으로 이 철제의 인공뼈는 각본상의 설정 뿐만이 아니라 루거의 오토바이 사고 후 실제로 삽입한 것이긴 하나, 실제로 이를 무기로 사용하면 팔만 다시 아작나니 따라하지 말자(...)[3] WCW때의 경력과 합쳤을시에 최장기간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챔피언 보유자이기도 하다[4] 브렛 하트와 공동 우승.[5] NWA에서 수련을 받아서 답이 없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피겨 포 레그락이나 슬리퍼 홀드를 어색하게 걸 때도 있었다.[6] 베어허그를 건 상태에서 상대의 두 어깨를 바닥에 닿게 해 커버를 시도한 후 다시 스탠딩 자세로 상대를 들어올릴 수 있었고, 요코주나를 바디슬램으로 던질 수 있었다. 또 몸을 날렸지만 상대가 피하면서 탑로프 위로 점프해 장외 바닥에 떨어지는 접수도 할 수 있었다.[7] 그렇다보니 이미지 자체도 특히 NWA에서는 어느 정도 콩라인으로 각인박힌 것도 있다.[8] 그중 하나는 무려 헐크 호건을 위클리쇼에서 물리치고 획득한것이다![9] 스팅과는 WCW 초기부터 오랜 절친이라서 은퇴후에 함께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다.[10] 헐크 호건, 폴 온돌프 등 다수의 레전드 레슬러들을 가르친 일본의 전설의 레슬러다.[11] 올레 앤더슨이 쇼를 불참하는 바람에 해고되어서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12] 당시 릭 플레어가 벨트 채로 WWF로 이적하는 바람에 새로운 챔피언을 정하는 토너먼트가 열렸다.[13] US 타이틀은 반납했다.[14] 루거는 헐크 호건과 싸워보고 싶었는데 그걸 이루지 못했다는게 불만이었다고 한다.[15] 렉스 루거의 출연에 많은 전현직 WWF 관계자들이 단체의 차기 얼굴을 뺐겼다며 이는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한다.[16] 여담으로 빅 골드 벨트에 칠한 페인트를 지우느라 정말 고생을 했다고 한다.[17] 뇌경색과 마찬가지로 척수의 혈액 공급이 갑작스럽게 막혀 서서히 마비가 오는 병명이다. 선천적 신경이상이 대다수지만, 후천적으로 퇴행성 신경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 렉스 루거의 경우 프로레슬링의 혹사가 주 원인이라고 평가받는다.[18] 물론 WWE 기준으로 그렇다는 말이고 NWA 및 WCW에서는 몇번 월드 챔피언도 차지하는 등 꽤 잘 나간 편이다.[★] 오른쪽이 도전자, 밑줄이 승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