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요미야 코타로
1. 개요
일본프로야구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야구선수.
거구의 강타자 유망주로, 사람들이 기대한대로 프로에서 순조롭게 성장한다면 2020년 이후 WBC, 프리미어 12 등 각종 국제 대회를 앞두고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과 관련해서 지겹게 이름을 듣게 될 지도 모를 선수이다.
일본 럭비 국가대표 출신이자 일본 사회인 럭비 야마하발동기 현감독인 기요미야 카츠유키를 아버지로 둔 스포츠 엘리트 집안의 장남으로서 중학교 때부터 프로에서 대성할 재목으로 주목을 받았고[2] '''고교 통산 111홈런'''[3] 을 기록한 강타자 유망주이다.
다만, 키요미야의 고교 통산 홈런 기록에는 주의가 필요한데 111홈런은 고시엔 예선, 본선 뿐만 아니라 전국체전, U-18 대표팀을 비롯하여 타 학교와의 연습경기에서 친 기록도 다 포함한 기록이다. 즉 동호회 수준의 팀을 상대로 친 홈런, 연습경기라서 실제 기록으로 인정되지 않는 홈런 등등 온갖 잡다한 홈런을 다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그런 관계로 대충 일본 야구에서 "역대급 장타력 포텐셜을 '''가졌을지도 모를''' 유망주가 나왔다" 정도로만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참고로 고교 3년간 공식경기에서의 통산기록은 .405, 29홈런, 95타점. 공식경기에서의 기록도 훌륭하지만 공식경기라고 해도 대회 초반에는 수준이 낮은 팀들과 붙기 때문에 이런 팀들을 상대로 친 홈런은 큰 의미는 없다. 기요미야의 경우에는 아버지도 유명 스포츠 스타이고 모교인 와세다실업고[4] 가 고시엔에서 성적만 좋으면 사람들이 주목을 하는 인기학교라 더더욱 주변에서 유난을 떤 점도 고려할 요소이다.[5]
고시엔은 1학년이었던 2015년 여름 대회에 단 1회 참가했고 본선에서 홈런을 2개 때려냈다. 고시엔 역사상 1학년이 2홈런을 친 것은 기요미야를 포함해서 단 2차례 뿐이다.[6] 그리고 팀은 4강까지 진출했는데 이게 오랜만에 도쿄의 두 팀이 동시에 4강에 진출한 케이스라 화제가 되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7][8] 다만 1학년 이후로는 3학년 봄 대회에 출전해서 16강전에서 탈락한 것이 전부다.
수비 포지션은 주로 1루수를 맡고 있다. [9][10] 출신 학교인 와세다실업 고등학교는 일본 야구계를 대표하는 강타자 오 사다하루와 고시엔 스타 사이토 유키의 출신 학교이기도 하다. 주루는 50m 6.3초로 의외로 중간 수준은 된다.
키요미야가 2017년 여름 야마모토 히로키[11] 가 갖고 있던 고교 통산 최다 홈런(107호)을 경신하면서, 일본 매스컴에서는 일제히 키요미야 코타로의 향후 진로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결국 키요미야는 9월 프로행을 결정하고 드래프트 참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여담으로, 고시엔 대회 이후 열린 2017년 WBSC U-18 야구 월드컵에 참가한 강백호에게 뜬금없는 칭찬을 받았다. 영상
참고로 왕정치와 장훈은 순수 슬러거라기보다는 홈런을 꽤 많이 칠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중장거리 교타자로 키요미야를 평가했다. 물론 장타포텐이 떨어진다기보다는 컨택이 좋고 프로에서도 그런 스타일의 플레이를 기대해서 말한 것으로 보이지만.
2. 드래프트 과정
2017년 드래프트를 앞두고 벌써 전구단 지명이니 최소 10구단 지명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 상황. 다만 종목은 다르지만 스포츠계의 레전드 아버지를 둔 덕분에 스포츠계의 분위기를 잘 아는 아버지의 간섭이 여간 심한게 아닌데 "우리 아들을 믿고 맡길만한 시스템과 육성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구단의 지명은 거부하겠다.", "우리 아들은 메이저리그를 지망하고 있기 때문에 포스팅을 허용하지 않는 구단의 지명은 사양하겠다.", "만약 맘에 들지 않는 구단이 지명할 경우 프로 입단을 거부하고 아들은 와세다 대학에 보내겠다[12] ." 등등 엄포를 놓았다.
아직 프로에 발도 들여놓지 않은 신인이 이렇게 고자세로 나오는 경우도 드문 일이고 웬만한 신인 같으면 이딴 소리를 하고 있으면 구단 측에서도 기존 선수들과의 팀워크를 고려해서 "그럼 즐"하고 관심을 끌 상황인데 장타 포텐셜 + 화제성, 스타성 풍부라는 점에 이끌린 구단들이 기요미야 부자를 일부러 찾아와서 "그럼 저희 구단의 시스템과 육성계획을 소개할 테니 한번 들어보시죠"하면서 무려 '''10개 구단이 고등학생과 학부모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13] 그래서 벌써부터 팀 시스템이 망가진 주니치나 롯데, 훈련시설이 열악한 세이부, 신인들의 무덤이자 포스팅은 죽어도 허락하지 않는 요미우리 등이 지명하는 경우 입단을 거부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등 여러가지로 화제몰이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14]
10월 중순 들어와서는 거의 매일 어느 팀이 지명할까 가지고 스포츠 뉴스에 나오고 있는 중이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보통은 웬만큼 뛰어난 신인이 나와도 구단 스카우트진이 선수와 야구부장, 감독을 찾아와서 "이번 드래프트에 지명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저희 팀이 교섭권을 가지게 되면 잘 부탁드립니다"하고 드래프트 전에 인사정도 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것도 아주 특출난 신인의 경우고 보통은 조사서 라는 것을 해당 선수에게 보내서 드래프트 지명의향을 암시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기요미야의 경우는 지명도 안 했는데 구단들이 최소 20~60페이지에 이르는 자료를 들고 와서 미리부터 선수와 학부모에게 면담을 하고 학부모에게 "우리 구단이 지명에 성공하면 이렇게 키울테니 제발 지명되면 거부하지 마시고 보내주시죠"하는 취지로 프리젠테이션을 그것도 10개 구단이나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심지어는 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1루수 밖에 못하는 이 선수 때문에 그 극보수 센트럴 리그가 '''"지명타자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올 정도였다. 게다가 학부모가 이렇게 전면에 나서서 드래프트 전에 아들의 진로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도 극히 드문 일이고. 다르빗슈나 다나카, 오타니 지명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 오타니의 경우는 드래프트 직전까지만 해도 지명 여부와는 상관없이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해 공공연히 뜻을 내비친 영향도 있지만 키요미야 정도 수준의 설명회는 지명이 끝나고 나서 오타니의 입단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했다.] 드래프트를 몇 시간 앞두고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감독은 키요미야 지명에 대한 추첨을 성공하게 해 달라고 메이지 신궁까지 참배했다고 한다.
닛칸스포츠의 예상에 따르면 요미우리 자이언츠, 한신 타이거스,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치바 롯데 마린즈,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15]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총 7개 팀이 키요미야를 1차지명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 언급된 7개팀이 모두 1차지명했고 추첨을 통해 '''대어가 나오면 지명을 거부한다 해도 지명하는''' 닛폰햄이 제비뽑기에 성공해 교섭권을 획득했다! [16] 7개 팀의 지명은 역대 2위, 고졸 선수 그리고 야수로서는 1995년의 후쿠도메 고스케와 타이 기록이다. [17]
이미 메이저로 가겠다는 오오타니를 설득해 일본을 대표하는 훌륭한 선수로 육성시킨 전례가 있으며 선수의 해외진출에 적극적인 닛폰햄 구단[18] 이기에 무난하게 입단할 것으로 예상되었고, 11월 24일 입단 회견을 갖고 닛폰햄에 정식으로 입단했다.
오타니 쇼헤이가 2018 시즌부터 MLB에 진출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는 가운데, 닛폰햄 입장에서는 키요미야를 선발함으로써 오타니가 없는 동안 새로운 프랜차이즈를 키울 수 있게 되었다. [19] 도쿄대학 출신 미야다이도 지명했니...
3. 프로 입단 후
3.1. 2018년
스프링캠프 직전 2군 숙소 입주 및 신인 합동 트레이닝부터 높은 기대치를 증명하듯, 숙소에 들어가기 전 취재진과 환영인파들만 600명에 가까운 사람들로 북적였을 정도.#
1월 14일에 열린 신인 선수 환영회에는 무려 2800명이 모였을 정도로 정말 엄청난 기대를 받고있는 중. #
곧바로 1군 스프링캠프 명단에 포함됐다. #
자율 트레이닝 도중 손가락 부상때문에 캠프 참가여부가 불투명했지만 단순 타박상으로 진단을 받고 예정대로 스프링캠프에 참가했다. #
2월 10일에 kt wiz와의 연습경기에서 1루수로 교체 출전하며 프로 무대에서 처음으로 실전을 치뤘다. 다만 손가락 부상에서 타격훈련을 다시 시작한지 얼마되지않아 수비수로만 출전. [20]
부상회복 후 순조롭게 프리배팅으로 컨디션을 끌어올리던 중 갑작스런 컨디션 난조로 병원에서 급성 위장염을 진단받았다.#[21][22]
다행히 곧바로 회복해서 다시 훈련에 복귀했다.#
2월 24일 주니치와의 시범경기에 9회말 대타로 등장했지만 헛스윙 삼진으로 프로 첫 타석을 마무리. 25일 야쿠르트와의 경기에선 2볼넷을 얻어내며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출루에 성공했다. 그리고 28일 라미고 몽키스와의 연습경기에서 2루타로 첫 안타를 쳐냈다.
3월 1일에는 4번으로 교체출전하여 2루타를 치며 이틀 연속 안타를 기록했으며, 3일 치바 롯데와 경기에선 사구와 볼넷을 기록하며 출루.
그러나 3일 경기 이후 한 차례도 안타를 쳐내지 못하며 19타석 무안타의 부진에 빠졌다. 심각한 건 빠른 공과 변화구 어느 쪽에도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 그리고 개막 엔트리에 들지 못하고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그러나 1군 데뷔기회가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4월 중순경부터 2군에서 타격감을 찾으면서 홈런을 날려대더니 마침내 5월 2일 1군으로 콜업됐다. 1군으로 콜업된 당일 경기 6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23] 첫 타석에서 라쿠텐의 선발투수 키시 타카유키로부터 좌중간 펜스 상단을 직접 때리는 2루타로 첫 안타를 장식했다. 조금만 더 뻗었으면 홈런이 될 뻔한 타구. 이로써 프로 입단 전에 사람들이 기대를 걸었던 장타력이 결코 과대평가가 아니었음을 증명하였다. 다만 나머지 두 타석은 삼진으로 물러나 프로데뷔 첫 경기를 3타수 1안타로 마무리지었다. 데뷔 이후 줄곧 선발로 출전하고 있으며 홈런은 나오지 않고 있으나 6게임 연속 안타를 기록하는 등 만만치 않은 타격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5월 9일 오릭스 전에서 2회초 오릭스 선발 딕슨으로부터 우중간 2층석에 떨어지는 초대형 홈런을 치면서 프로데뷔 7경기만에 첫 홈런을 기록했다. 데뷔후 7경기 연속안타 기록은 덤.
다만 이후에는 고졸신인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고 5월 28일부로 2군으로 넘어갔다. 그래도 2군에서는 23경기만에 10홈런 고지에 도달하며 고졸신인 주제에 이스턴리그 홈런 선두를 달리는 등 파워히터로서의 포텐셜은 진퉁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 결국 2군리그를 씹어먹고 더 이상 보여줄 게 없어지자 7월 말을 기해서 다시 1군으로 승격했다. 그리고 나서 8월 한달동안 30타수 10안타, 홈런 3개, 8타점을 올리면서 서서히 1군 무대에도 적응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1군에 데려다니면서 키우는 방향으로 정해진 듯.
시즌 최종 성적은 53경기 출장, 160타수 32안타[24] 7홈런[25] 18타점, 19사사구 60삼진, 타율 .200/출루율 .283/장타율 .381. 참고로 2군(이스턴리그) 성적은 45경기 182타석 .244/.324/'''.606''' OPS .930 17홈런 42타점인데, 1, 2군을 오가느라 2군경기에 45경기밖에 안 나왔으면서도 2군리그에서 100경기 이상 출장한 이스턴리그 홈런왕 와다 렌(요미우리 자이언츠)[26] 와 1개 차이로 홈런 2위이다.
3.2. 2019년
1년차의 기록도 훌륭했고 본인도 점점 1군 수준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매우 기대가 컸었다. 캠프와 시범경기에서도 순조롭에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으나 시범경기 타격 도중 오른손 유구골 골절상을 입으며 개막전 로스터 진입이 좌절되었다. 전치 1개월 이상을 소요한 중상으로 완치와 감각회복에 걸리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빨라야 5월 이후에나 볼 수 있는 상황. 잔뜩 기대를 걸었던 팀도 당초 구상이 어그러지면서 대책 마련에 부심해야 했다. 3월 8, 9일에 열렸던 멕시코와의 대표팀 친선경기 선수단 멤버로도 뽑혀 모든 사람들이 기대해 마지 않았던 국가대표 데뷔전을 앞두고 당한 부상이라 일본 야구관계자들의 낙담도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이로써 2019시즌 끝나고 개최될 프리미어 12 대표팀에도 승선할 가능성이 매우 낮아졌으며 2020년 도쿄 올림픽 승선여부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생겼다. 그 틈에 동세대 타자들의 대표주자 자리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무라카미 무네타카가 치고 올라오면서 국제 경기에서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려면 좀더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9월 8일에 눕요미야를 보여줬다. 투수 플라이를 잡으러 갔다가 마운드에 걸려넘어져 그대로 눕방한 것.
시즌 최종 성적은 81시합에 출장해서 250타수 .204 7홈런 33타점을 기록했다. 부상도 부상이었지만, 복귀 이후 그냥 성적 자체가 신통치 않았다. 컨택도 안 되고, 장타도 안 나오는 모습. 소포모어 징크스에 제대로 걸린 한 해였다.
3.3. 2020년
7월 31일 기준 타율 .150에 3홈런 OPS도 5할 대다. 이미 작년에 주전급 타자로 성장한 무라카미 무네타카는 3할 3푼 대 고타율에 OPS 10할대를 찍으며, 작년에 1군을 밟지도 못했던 또 다른 라이벌 야스다 히사노리도 타율 .242에 3홈런, OPS 6할대 후반을 기록하며[27] 서서히 정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보니 본인 입장에서도 조금이나마 긴장될듯. 게다가 이젠 내년까지 포함하면 4년차다. 즉 적응을 어느정도 한 시기인지라 내년에 터지지 않는 이상 진지하게 사이토 유키처럼 망픽이 될지 아니면 우와사와나 나카타처럼 성공한 픽인지 갈릴수 있는 부분
4. 기타
- 표준 외래어 표기법으로 표기하는 이름은 기요미야 고타로이다. 한국의 미디어에서는 주로 이 이름으로 표기를 하고 이 이름을 접한 한국 팬들은 이름 앞 3글자 에서 "귀요미"를 연상하는 듯.
- 1순위 지명자임에도 불구하고, ootp18에서는 쩌리급 유망주인 20/20으로 나타나있다.[28]
- 영어를 잘 한다고 한다. 아버지가 나이지리아인이라 기본적인 영어회화가 되는 오코에 루이에게 어려운 영어를 통역해줬다는 말이 있었고, 팀내 용병 선수들이랑 통역 없이 대화를 잘만 한다고.
5. 연도별 성적
[1] '''描き出す 理想は久遠高く 鍛えし腕で清宮打て(그려내는 마음은 아득히 높게. 단련한 그 팔로 쳐라 키요미야.)'''[2] 그가 중학 3학년이던 2014년, 골수 고교야구 팬으로 유명한 개그콤비 안잣슈의 와타베 켄이 "반드시 고교야구에서 활약할 선수"라며 후배에게 부탁해 사인을 받았다고 아메토--크에서 언급했을 정도. 당시 와타베는 개그맨으로서는 물론, 미식가 연예인으로서 상종가를 달리고 있던 전국구 연예인이었는데 일반에는 무명이었던 중학생 선수의 사인을 받았다고 방송에서 자랑할 정도로 중학야구 팬들 사이에선 알아주는 인재였다[3] 일단 현재까지 역대 고교생 통산 최다 홈런으로 간주되고 있다.[4] 유난히 이 학교 출신들이 실제 포텐셜에 비해서 고교시절 과도한 주목을 받아 과대평가 받는 일이 많다. 80년대의 아라키 다이스케라든가 다나카 마사히로와 맞대결은 한 사이토 유키라든가.[5] 참고로 한국은 고교 대학 7년 합쳐서도 홈런 20개 치는 선수가 거의 없다. 나지완, 모창민 정도? 고졸타자는 3년 동안 10개만 쳐도 초고교급 즉전감 슬러거 유망주다. 다만 이건 당연한게 우린 고교야구에서 나무배트를 쓰고 일본은 '''알루미늄배트'''를 쓴다.[6] 의외인 것이 이전에 1학년으로서 본선에서 2홈런을 쳤던 다른 선수는 고시엔 본선 최다홈런 기록을 가진 기요하라 가즈히로가 아니라 기요하라의 동료이자 당시 PL가쿠엔 고교의 투수였던 쿠와타 마스미다.[7] 기요미야의 학교인 와세다 실업고는 서도쿄 대표였고, 동도쿄 대표는 간토이치 고등학교. 이 해에 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나이지리아계 혼혈 오코에 루이가 일본수준을 초월하는 주력을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다. 1루수 앞 내야 '''2루타'''를 쳤다. 정확히는 1루수 글러브를 맞고 튕긴 내야안타로 2루까지 뛴 것. 그러나 두 학교 모두 4강에서 패하면서 도쿄 학교들 끼리의 결승대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8] 여름 고시엔 대회에서 같은 도도부현의 학교가 결승에 붙을 수 있는 경우는 평소에는 지구가 둘로 나뉘는 도쿄와 홋카이도 뿐이다. 그 외에 특별대회 때 지구가 둘로 나뉘는 오사카, 가나가와, 사이타마, 아이치 등이 가능성이 있으나 특별대회는 10년에 한번씩이라 쉽지 않다. 참고로 2018년 대회가 여름 고시엔 제100회 대회로 특별대회 치러지면서 참가팀이 늘어날 전망이다.[9] 단 역대급이라는 장타력에 비해 아직 수비 실력은 부족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10] 고교야구 레벨에서도 1루 수비가 약하다고 까였고, 닛폰햄에서 프로 1년차 때 죽어라 수비연습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1루 수비는 프로에서는 최하수준(그나마 이게 장족의 발전이라는 평가다.). 좌익수 겸업도 시키고 있는데 이것도 딱히... 다만 콘도 켄스케와 왕보롱 때문에 지명타자 고정출장이 불가능해서 1루랑 좌익수 수비는 계속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11] 정작 이 사람은 사회인 야구 JR 니시니혼에 4년간 소속되어 있다가 현역에서 은퇴했으며, 현재는 히로시마 사이죠역에서 JR니시니혼의 직원으로 근무 중이다. 이 사람한테 프로에 가지 않은 이유를 물어보았을때 대답이 자신은 140km/h가 안 되는 똥볼 투수들의 공을 쳐서 100홈런을 넘긴 것인데다 코시엔에 나가지 못해 수준급 투수의 공을 쳐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공이 프로에서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서 사회인 야구로 진출했다고 한다. 그의 예상이 슬프게도 적중하여 사회인야구에서조차 4년 동안 5홈런밖에 치지 못했고, 결국 야구를 은퇴하고 소속 기업의 일반 사원으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12] 기요미야 고타로의 아버지도 와세다 대학 출신으로 모교 럭비부 감독까지 역임했다.[13] 이 때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 연고지 히로시마 출신의 대형 포수 나카무라쇼세이를 지명할 것으로 예상된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제외한 10구단이 프레젠테이션을 했던 탓에 닛폰햄이 키요미야의 지명을 하지 않을것이라는 추측도 있었다.[14] 키요미야의 아버지에게 공개적으로 2군 시설의 열악함, 특히 숙소 시설에 대해 지적받아 망신을 당한 세이부는 2017년 11월 10일에 숙소 개보수를 결정했는데, 키요미야 건이 아니더라도 세이부는 이 이전부터 시설 및 선수영입 투자와 관련해 주주총회에서도 매년 비판이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15] 이 팀은 대어가 나오면 무조건 지명한다. 메이저 직행한다고 하든 대학을 간다고 하든 요미우리 아니면 안 된다고 하든...[16] 구단 차원에서 4년째 뽑기 운이 극도로 없는 쿠리야마 히데키 감독을 대신해 키다 GM 보좌를 제비뽑기 담당으로 선정했다. 그리고 한방에 7분의 1의 확률을 뚫었다.[17] 1위 기록은 1989년의 노모 히데오와 이어진 1990년의 고이케 히데오의 8구단이었다. 노모에 대해서는 다들 알 테니까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고이케의 경우에는 8구단 경합 끝에 당시 롯데 오리온즈가 당첨이 되었으나 당시 막장을 달리던 가와사키 시절이라 그 딴 팀 안가 하고 지명을 거부하고 사회인 야구로 진로를 튼 다음에 2년 후 드래프트 재수 때 긴테쓰의 1위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다만 사회인 야구 시절에 부상을 입은 바람에 드래프트 재수 때는 가치가 매우 떨어져 있었고 프로에 와서도 1997년 15승으로 다승왕을 한번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어정쩡한 성적을 거두다가 2000년에 주니치로 트레이드 됐다가 2년만에 전력외 통보를 받고 2002년에 다시 긴테쓰 복귀, 그리고 긴테쓰-오릭스 합병과정에서 라쿠텐에 입단해서 딱 1년만 뛰고 은퇴했다. 통산 성적은 51승 47패로 매우 초라하나 다승왕 타이틀을 차지한 것으로 볼 때는 프로 지명 당시 거부하지 않고 바로 진출했으면 그보다는 나은 성적을 거두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는 선수였다. 참고로 이 고이케의 대학 시절 동기가 다름아닌 '''타카츠 신고'''.[18] 사실 키요미야의 아버지가 제시한 조건을 대부분 충족하는 곳이 닛폰햄이다. [19] 팀 내 와세다대학 출신으로는 선발 아리하라 코헤이, 2017년 드래프트 2순위로 지명되어 전구단 루키 중 가장 먼저 홈런을 터뜨린 이시이 카즈나리 등이 있다. 둘 다 기복은 심하지만 나름 쏠쏠한 역할을 해주는 중.[20] 원래 이 날 경기에선 강백호의 출전도 예상되었으나 수비 훈련 중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다.[21] 이에 대해서 추측하는 이야기로는 어릴 때부터 일본 야구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왔던 키요미야가 저런 병이 갑자기 올 시기도 아닌데다 기존의 1루수였던 나카타 쇼가 같은 포지션의 후배이자 경쟁자인 키요미야를 의식해서 뭔가 괴롭힌게 아닌가하는 말이 있다. 알다시피 나카타 쇼는 성격도 그렇지만, 후배 선수들 괴롭히기에 대놓고 알려진 인물이라...[22] 추측을 뒷받침하는 근거 중에 하나가 다음 날에 팀 내 야수 최선참인 츠루오카 신야와 다나카 켄스케가 합류했기 때문. 물론 스프링캠프 기간 동안 으레 있는 선수들의 1,2군 이동이지만 현재 니혼햄 내에 나카타를 경력으로 누를수 있는 선수는 츠루오카와 다나카 외에 요미우리 시절 이승엽의 한일통산 400호 홈런당시 3루주자였던 야노 켄지 정도다. # [23] 여담으로 이 날 관중들에게 키요미야의 첫 1군 출장을 기념으로 "인증서"를 나눠주었다고 한다. 그 내용이 무려 '당신은 키요미야 코타로 선수의 삿포로돔 데뷔전을 그 눈으로 목격해, 역사의 증인이 된 것을 여기에 증명합니다(...)'[24] 2루타 4개,3루타 2개[25] 고등학교 대선배인 오 사다하루의 프로 첫 시즌 홈런수와 같으며 고졸 1년차의 성적으로는 1993년 마쓰이 히데키 이후로 최다 기록이다. 참고로 고졸 1년차 야수의 시즌 최다홈런 기록은 기요하라 가즈히로의 31홈런(1986년). 고졸 1년차가 주전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어려운데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바로 1군무대에서 30홈런을 넘게 날리며 주전을 차지한 것만 해도 신급의 기록인데 심지어 소속팀인 세이부 라이온즈는 전년도 우승팀이자 기요하라 입단 직전 4년동안 리그우승 3번, 일본시리즈 우승 2번을 기록한 초강팀이었다. 괜히 기요하라가 초특급 스타 대접을 받고 야구팬들이 30대 이후의 잦은 부상과 약한 멘탈로 '''고작''' 525홈런에 그친 것을 안타까워한 게 아니다.[26] 시즌이 끝나고 라쿠텐으로 갔다. [27] 시즌 초에 무안타 행진을 벌여서 전체 성적은 낮지만 7월 성적만 보면 타율 .289에 OPS도 7할대 후반으로 현재 페이스는 꽤 좋다.[28] 이는 라이벌 무라카미 무네타카도 마찬가지이고, 또 다른 라이벌 야스다 히사노리는 반대로 엄청나게 탑급 유망주로 나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