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시 샌더스

 

'''트레이시 샌더스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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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43번'''
김형성(1997~1998)

'''트레이시 샌더스'''(1999)

제이슨 배스(2000)

[image]
'''이름'''
트레이시 샌더스 (Tracy Sanders)
'''생년월일'''
1969년 7월 26일 (55세)
'''국적'''
[image] 미국
'''출신지'''
노스캐롤라이나 개스토니아
'''포지션'''
1루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90년 드래프트 58라운드 (전체 1384번, CLE)
'''소속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1990~1993)
샌디에이고 파드리스(1993)
뉴욕 메츠(1994~1995)
피츠버그 파이리츠(1997~1998)
해태 타이거즈(1999)
피츠버그 파이리츠(2000)
1. 소개
2. 선수 생활
4. 연도별 성적
5. 관련 문서


1. 소개


해태 타이거즈에서 활동한 외국인 선수. '''타이거즈 역사상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자'''(40홈런).[1] 거기다가 현재 '''KBO에서 단 5명뿐인 한 시즌 40홈런 좌타자'''이다. 다른 네 명은 이승엽과 2015년 40-40을 기록한 에릭 테임즈, 그리고 2018년 40홈런 고지를 정복한 김재환한동민. 여기에 최초로 40홈런을 넘긴 외국인 좌타자이기도 하다. 30홈런으로 줄여도 김기태-이승엽-양준혁에 이어 KBO 리그 4번째로 좌타자 30홈런을 달성하였다.

2. 선수 생활


메이저리그 경력은 없고 마이너리그 AA에서 주로 뛰다가 1999년외국인 선수 드래프트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게 된다. 시범 경기에서부터 2개의 홈런포를 가동하며 한껏 화력을 과시했고, 시즌 초반 이승엽이 두각을 드러내기 전까지 이병규[2]와 홈런왕 경쟁을 했다. 그러나 이승엽이 5월부터 본격적으로 다른 타자들보다 압도적 기세로 홈런을 몰아치기 시작하며 추월을 허용하고, 결국 40홈런으로 그 해 홈런 3위를 기록하였다. 이 해 해태는 팀 홈런 210개[3]를 쳤는데, 이는 양준혁(32홈런), 홍현우(34홈런), 장성호(24홈런), 스토니 브릭스(23홈런)[4]과 함께 그의 도움이 매우 컸다 할 수 있겠다. [5] 또한 만루홈런만 3개를 날리며 역대 외국인선수 한시즌 최다 만루홈런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6]
그러나 이듬해 해태는 재계약을 하지 않았는데, 그가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요구했다는 설이 있다. 해태는 2000년 이대진#s-1, 최상덕, 성영재가 꽤 준수하게 활약한 마운드에 비해, 장성호헤수스 타바레스 이외에는 믿을만한 타자가 없을 정도로 타선이 폭망하여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외국인 타자 교체만 '''6번''' 한 것을 생각하면[7][8] 그와 재계약하지 못한 것을 김응용감독은 아쉬워했을 것이다.[9]
여기까지만 보면 그저 한 해 뛰어난 성적 올리고 본국으로 돌아간 외국인 선수 같아 보이지만, 샌더스가 가지는 의미는 따로 있었다.

3. KBO 리그애덤 던


1999년 그의 성적은 101안타 '''40홈런 105볼넷 133피삼진''' 94타점 타출장 슬래시라인 0.247/'''.408/.575''' OPS .983. 스탯만 봐도 알겠지만 샌더스는 그 당시는 물론이고 현재도 KBO에서는 보기 힘든 애덤 던 유형의 OPS 히터였다. 비록 133개의 피삼진은 해당 시즌 피삼진 1위이자 역대 단일시즌 최다삼진 신기록이었지만[10], 무려 105개의 볼넷을 골라내 시즌 볼넷 2위를 기록했고, 덕분에 0.247라는 낮은 타율에도 불구하고 4할이 넘는 우수한 출루율을 기록했다. 여기에 40홈런만 봐도 받쳐주는 우수한 장타력까지, '''스탯을 홈런/볼넷/삼진으로 3등분한 선수'''였다. OPS도 0.983으로 이 해 타율 0.328에 30-30, OPS 0.940을 기록한 제이 데이비스보다 더 높았다. 여러모로 KBO 리그의 애덤 던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적절한 선수. 심지어 샌더스는 압도적인 파워를 바탕으로 구장을 가리지 않고 홈런을 뻥뻥 때려냈다. 그 드넓은 잠실에서만 9홈런을 쳤으며 덕분에 이 시즌 해태는 잠실 19경기에서 23홈런을 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보이는 타율만이 다가 아니었던 선수.
그렇지만 당시 시기는 국내 야구는 고사하고 MLB에서조차 세이버메트릭스를 비롯한 질적 평가가 잘 활용되지 않던 시기였기 때문에[11] 샌더스를 단지 타율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그저그런 공갈포 타자로 평가절하했다. 당장 세이버 스탯이라고 하기도 뭐한 OPS가 KBO 홈페이지에 처음 올라온게 2010년이니... 때문에 한국의 야구인들은 샌더스의 진가를 알지 못한 채 성적에 의구심을 가졌고, 이는 표면적으로는 금액 차이로 협상이 결렬되었다고 하는 재협상의 결렬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 유형의 선수에 대한 저평가는 이후에도 오랫동안 이어져, 2007년 홈런왕 심정수는 wRC+ 153.8에 WAR 5.15를 찍고도 .258이라는 낮은 타율로 인해 저평가를 받았고, 제이미 로맥은 KBO 첫 시즌 .242/.344/.554의 슬래시라인과 102경기 31홈런이라는 파워를 선보이고도 재계약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12] 과거에도 이런 유형의 OPS 히터는 포지션의 특수성이나 우월한 수비력같은 다른 툴이 아니면 주전으로 자리잡기 힘들었고[13], 때문에 백업 요원을 전전하거나 아니면 컨택을 개선해서 아예 완전체 슬러거로 대성하던가 했기 때문에 보기 힘들었으며, 현 시대에도 MLB에 비해 선수풀이 작은 KBO에서는 확실히 보기 어려운 스타일이다. 이런 유형의 선수가 등장하면 웬만해서는 컨택에 손을 대서 완벽한 슬러거로 성장시키려는 육성 기조가 팀 입장에서는 더 낫기도 하고.
야만없이라지만 샌더스의 타율이 0.280~0.290까지 올라갔다면 그 유명한 '''타이론 우즈'''와 비견될 법 했다. 특히나 샌더스같은 타자가 타율을 0.280까지 끌어올린다면 IsoP가 3할을 넘는 샌더스의 성적을 감안하면 홈런 역시 더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14] 멀리 안가고 2017년 OPS 히터의 모습을 보이다가 2018년 타율을 3할대로 끌어올리자 그대로 리그를 폭격해버린 제이미 로맥의 사례도 있고. 특히나 2017년의 로맥과 1999년의 샌더스는 둘 다 BABIP가 리그 평균에 비해 크게 낮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4. 연도별 성적


<color=#373a3c> 역대 기록[15]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1999
해태
125
.247
101
14
0
40
94
86
3
105
7
133
.408
.575
.983
<color=#373a3c> '''KBO 통산'''
(1시즌)
125
.247
101
14
0
40
94
86
3
105
7
133
.408
.575
.983

5. 관련 문서


[1] 10년 후인 2009년 김상현이 도전했지만 깨지 못했다.(36홈런)[2] 물론 1999 시즌이 타고투저이기도 했고, 이병규는 이 해 잠실구장을 쓰면서 30-30을 달성하는 등 장타력이 있었다.[3] 그 당시 팀 홈런 역대 1위, 2017년 현재 역대 3위.[4] 당시 그의 타격 기록은 상당히 극과 극이었다. 383타석에서, '''16사사구에 85삼진을 기록하면서 타율은 .283 홈런은 23개...'''[5] 이것은 당시 해태의 투수진이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기 때문이다. 곽현희(146⅓이닝 11승 11패 4세이브, 평균자책점 6.15), 곽채진(109⅓이닝 8승 7패 8세이브, 평균자책점 4.77), 최상덕(121⅔이닝 7승 5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5.33), 유동훈(155⅓이닝 7승 9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4.75), 오봉옥(116⅓ 이닝 6승 9패 8세이브, 평균자책점 3.40)수준이였다. 1998년 조계현이 4억원에 삼성으로 팔려나가고 그나마 있던 이대진은 혹사로인한 침체기 이강철은 무릎부상, 임창용은 트레이드되어 양준혁이 해태로 왔었고, 김상진은 위암으로 인해 병원에 있다가 시즌 중에 결국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투수진이 부진했으니 아무리 타자들이 활약을 해줘도 한계가 있었던 것.[6] 국내 타자들을 따져도 한시즌 4개의 만루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1999년의 박재홍, 2009년의 김상현, 2015년의 강민호 세명 뿐이다.[7] 에디 피어슨, 호세 말레브, 아르키메데스 포조, 제이슨 배스, 케이스 미첼, 헤수스 타바레스. 그나마 타바레스가 타율 0.334에 도루 2위(31개)를 기록했다. 경기당 도루 수는 그해 도루왕이었던 정수근보다도 많았다.[8] 당시까지만 해도 외국인 선수 교체한도 규정이 없어 성적이 신통치 않으면 방출하고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는 게 무제한으로 가능했다. 실제로 2001년 한화 이글스도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외국인 투수를 5번이나 교체해댔고, 결국 2002년부터 외국인 선수 교체 제한규정이 생기게 되었다.[9] 안그래도 덩치 큰 왼손잡이를 선호하는 김응용 감독 특성상 더욱 아쉬워 했을수밖에...[10] 1년 후 톰 퀸란이 173삼진(...)을 당하며 기록을 40개 차이로 경신했다.[11] 이 당시 빌리 빈 단장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유일하게 세이버를 선구적으로 활용하던 팀이었다.[12] 다만 이 둘은 저평가를 받게 된 다른 이유가 존재하기도 한다. 심정수는 현대시절 보여준 파괴력이 원체 대단했다보니 그 성적에 못미치는, 특히 타율이 크게 하락한 2007년의 성적은 팬들 눈에는 성에 차지 않았고, 로맥은 저 슬래시라인을 타고투저가 강하던 2017년에 기록해서 wRC+는 117.3으로 생각보다는 낮았다. 하지만 2007년 심정수의 성적은 심한 투고타저 속에서 이룬 결과물이라 저 성적으로도 리그 OPS 7위에 랭크될 정도였고, 로맥은 BABIP가 .263으로 리그 평균이었던 .327에 비해서 6푼이나 낮았기 때문에 컨택의 약점 외에도 운이 없었던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실제로 BABIP가 올라간 2018년의 로맥은 '''리그를 씹어먹었다.'''[13] 박경완이 좋은 사례다. 어느정도 주전으로 자리매김 한 이후 부진했던 한 두 시즌 정도를 제외하면 매 시즌 110~120이 넘는 wRC+를 포수를 보면서 꾸준히 기록할 정도로 타격 생산성이 뛰어났지만, 오히려 포수였기 때문에 낮은 타율로 저평가받기 좋은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당대 한국야구에서 꾸준히 주전으로 나설 수 있었다. 물론 박경완 본인의 수비력이 KBO 역대 포수들 중에서도 원탑으로 불릴 정도였던 점도 한 몫 했다.[14] 샌더스의 1999년 스탯에서 타수를 그대로 두고 타율만 0.280으로 끌어올리면 안타는 총 114개로 13개를 더 치게 되는데, 안타 대비 홈런 비율이 그대로면 약 5.1홈런이 추가되니 최종적으로는 45홈런 정도가 예측된다. 참고로 같은 해 한화를 우승으로 이끌고 한화 역사상 최고의 임팩트를 보여준 외국인 타자로 평가받는 댄 로마이어가 0.292-45홈런-109타점을 기록했다.[15] KBO에서의 성적만 기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