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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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뉴질랜드 출신의 영화 감독. 1961년 10월 31일생. 저예산 B급 스플래터의 대부로 명성을 날렸지만, '''블록버스터 판타지 영화 반지의 제왕 실사영화 시리즈로 대성공'''한 특이한 이력의 감독. 다만 반지의 제왕 이후로는 더 이상 스플래터는 만들고 있지 않다. 초반의 커리어를 스플래터로 시작해 대중적인 블록버스터 감독으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샘 레이미 감독과 비슷한 편. 반지의 제왕, 킹콩 같은 판타지/괴수물에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오덕 감독이란 점에서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과도 비슷한 느낌이 있다.
2010년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뉴질랜드 공로 훈장 2등급(KNZM)을 받았다. 뉴질랜드 공로 훈장 1등급과 2등급 수훈자에게는 기사 칭호(Knighthood / Damehood)가 함께 부여된다. 2012년에는 뉴질랜드의 최고 훈장인 뉴질랜드 훈장(Order of New Zealand)을 받았다. 보통 영미권 매스컴에서 등장할 때는 Sir Peter Jackson.
# 현재, 전세계 영화 감독 흥행 순위에서 4위에 있는 감독이다.
2. 생애
2.1. 데뷔
1987년 고무인간의 최후(Bad Taste)라는 영화로 데뷔한다. 지역 신문사에 다닐 때 주말에 친구들과 같이 조금씩 조금씩 촬영하면서 자신이 배우로까지 활동하던 이 영화는 저예산 호러물의 전설이 되어버렸다. 지구인 고기로 햄버거 우주 사업을 하고자 지구로 쳐들어와 뉴질랜드 작은 시골 마을을 공격한 우스꽝스러운 외계인들과 이에 맞서는 몇몇 젊은이들의 혈투를 호러와 액션, 그리고 풍자(람보를 비아냥거리는 듯한 패러디도 있다!)로 뒤섞어 만든 섞어찌개식 영화였다. 감독 자신도 주역 중 한 명으로 나오지만 동시에 외계인으로도 나와 목에 칼이 꽂혀 죽는 최후를 당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초청 받아서 상영되었고, 전세계에 판매되었다.
1989년에 내놓은 피블스를 만나요는 연예계에서 벌어지는 온갖 범죄들을 코믹하게 풍자한 퍼핏 애니메이션이다. 마약 밀매, 성상납, 뇌물 수수, 살인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만 캐릭터가 인형이라서 체감 수위는 낮다. 중간에 나오는 화장실 유머 장면은 좀 다른 의미로 실감난다(...).
이후 찍은 영화가 데드 얼라이브를 꼽을 수 있다. 사람 입을 벌려놓으니 좀비가 튀어나온 포스터부터가 엽기적인데,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쿵후로 좀비를 때려잡는 신부와 잔디깎이 기계로 좀비를 갈아버리는 장면이 유명하다.
위 영화들은 막나가는 스플래터 영화이고, 한국에서는 이런 영화를 방영한다는 것이 가능할리가 없어서 매니악한 영화팬들에게만 유명세를 얻었다. 하지만 이전에도 피터 잭슨 감독의 세계적 유명세는 상당했다. 상단에도 언급한 것처럼 고무인간의 최후는 칸 영화제에 초대 되어서 전세계에 팔려나갔고, '피블스를 만나요'는 이 때문에 일본영화자본이 붙어서 완성되었다. 이어서 데드 얼라이브는 300만 달러 이상의 자본이 들어갔고[3] , 그 수익금으로 피터 잭슨은 천상의 피조물들을 만들기 위한 특수효과 회사를 설립할 수 있었다.
2.2. 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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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뉴질랜드에서 일어난 실제 살인 사건[4] 을 모티브로 한 <천상의 피조물>을 만들었다. 오늘날 세계적인 CG 업체로 성장한 웨타 디지털은 이 때 피터 잭슨 감독이 창설한 것이다. 케이트 윈슬렛이 첫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기존 작품과 다른 진지한 주제의식으로 호평을 받으며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 감독상을 받았으며 토론토 국제영화제 감독상, 런던 영화제 비평가협회 감독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크게 흥행하지는 못했으나 평단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그동안 <고무인간의 최후>나 <피블스를 만나요>, 혹은 <데드 얼라이브>에 열광하던 팬들 중 실망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이 영화의 성공을 바탕으로 할리우드에 가서 킹콩의 리메이크 영화화를 시도했으나[5] , 결국 좌초되고 뉴질랜드로 돌아와 <포가튼 실버>라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다. 세계 영화사에 관한 일종의 퀴즈 프로그램 같은 작품인데, 이쪽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다면 크게 웃을 수 있다.
하지만 1996년에 다시 할리우드로 건너가 코믹 호러 영화 프라이트너를 제작한다. 평가나 흥행은 좋지 못했지만, 이 영화를 통해 훗날 <반지의 제왕>에 사용될 CG 기술의 기초를 닦게 된다.
2.3. 반지의 제왕 이후 성공 가도
1999년, 반지의 제왕 실사영화 시리즈의 감독을 맡아 2001년부터 한 편씩 전세계에 개봉하게 된다. 전에 만들던 작품들이 작품들인지라 웬 B급 슬래셔 무비나 만들던 듣보잡 감독이 뜬금없이 반지의 제왕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시선이 많았으나[6] , 피터 잭슨 역시 골수 톨키니스트였으며 그의 연출력으로 절정의 영상미와 스펙터클을 보여줌으로써 순식간에 전세계 관객들을 떡실신시키고 흥행작 반열에 들게 됨과 동시에, 아카데미에서 온갖 상을 '''싹쓸이'''했다. 또한 뉴질랜드는 반지의 제왕 덕분에 7억 뉴질랜드달러 이상의 관광 수익을 올렸고, 이를 공로삼아 피터 잭슨은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2005년에는 마침내 그의 숙원이었던 킹콩의 리메이크판을 제작했고,[7] 많은 찬사를 들으며 흥행에 성공하였다. 이어서 2009년에는 살인마에게 당한 소녀가 림보에 간 이후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 <러블리 본즈>를 영화화했는데, 이 작품은 약간 호불호가 갈렸다. 대부분 일치하는 것은 '피터 잭슨이라는 이름값에 미치는 작품은 아닌 것 같다'라는 평. 흥행 성적은 손익분기점에 약간 미치지 못했다.[8]
2011년에 반지의 제왕의 이전 이야기를 다루는 호빗 실사영화 시리즈의 촬영을 시작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처럼 호빗 시리즈도 2012년부터 한 편씩 3년에 걸쳐 개봉되었다. 다만 호빗은 반지의 제왕에 비해 평가가 좋지 않은 편이다. 반지의 제왕은 방대한 세 권짜리 소설을 압축한 것이지만, 호빗은 한 권짜리 소설을 3부작으로 길게 늘인 것이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보는 의견이 많다. 일단 피터 잭슨은 제작사의 지시 때문이라고 주장하였으나, '''반지의 제왕 영화판의 성공으로 A급 감독이 된''' 피터 잭슨이 제작사에게 휘둘렸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차라리 원래 감독을 맡기로 되어 있었던 길예르모 델 토로가 하차하면서 스케줄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또한 상업영화 최초로 48fps 촬영을 시도하였는데, 관객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갈렸다. 가장 주된 비판은 "영화가 아니라 연극, TV 드라마 같다"는 것.
반지의 제왕을 성공적으로 영상화시켜서 엄청난 명성을 얻기는 했으나, 근래에 들어와서 비판을 좀 받고 있다. 아라고른 역으로 출연했던 비고 모텐슨은 2014년 5월 14일, 영국 텔레그라프지와의 인터뷰에서 피터 잭슨이 지나치게 큰 규모의 영화에만 집중하게 된 것과 CG의 과도한 사용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면서도 리들리 스콧처럼 피터는 하나의 거대기업이 되었고, 그만큼 그에게 의존하는 사람이 많은지라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선택지가 있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반지의 제왕을 만들면서 성공을 장담할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제작비 문제로 인해 반지의 제왕 1, 2, 3편을 한 번에 촬영하던 시점에서 1편을 제외한 2, 3편의 분량은 형편 없었고, 1편의 초대박 성공으로 돈이 들어와 대대적인 추가 촬영이 가능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반지의 제왕 2, 3편은 곧바로 비디오 가게로 갈 수도 있었던 영화였다"라며 당시의 엉성하던 제작 환경도 지적했다.
뉴질랜드의 원로 감독인 제프 머피 감독은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가 오히려 뉴질랜드 영화를 쇠퇴시켰다"라고 비난하였다. 이에 대해 논란이 일자 머피는 피터 잭슨이 뉴질랜드 감독임에도 할리우드 영화를 만들 뿐 자국 문화에 기여하는 바가 없음을 지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2.4. 이후
2014년 12월 17일, 피터 잭슨 감독은 더 이상 가운데땅 시리즈를 영화화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 사실 처음에는 반지의 제왕만 영화화할 계획이었지만, 잇따른 영화화 요청에 할 수 없이 호빗도 제작에 들어간 것이라고 한다. 아직 실마릴리온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런 작품까지 아는 건 매니아들 뿐이고, 설령 영화화를 한다고 쳐도 반지의 제왕부터 시작해 호빗 시리즈에서 타우리엘로 정점을 찍은 원작 설정파괴와 그에 따른 원작 팬들의 비판, 다양성이 떨어지는 본인의 감독 커리어 때문에 더 이상 만들지 않기로 한 듯하다. 게다가 감독이 만들고 싶다며 마음을 바꾼다고 한들,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영화도 아니다. 실마릴리온은 이전 영화 시리즈의 원작 파괴를 보고 실망한 J. R. R. 톨킨 재단 측에서 '''절대로''' 판권을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으니...[9]
한편, 또다른 판타지 소설 테메레르 시리즈의 판권도 구입했다. 그런데 테메레르는 반지의 제왕보다도 훨씬 긴 소설이라 영화로 만들지, 드라마로 만들지, 아니면 제3의 매체를 이용할지 고민 중이라고 한다. #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의 후속작은 시나리오 작업을 마쳤으며#, 호빗의 차기작으로 연출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1955년작 전쟁물 <댐 버스터즈>의 리메이크와 SF 소설 <모털 엔진>의 영화화를 계획 중이다. #1#2
할리우드 첫 진출작인 프라이트너의 속편 제작도 하고 싶다고 말했으나, 프라이트너는 흥행에 실패하였고[10] 예전에 속편를 만들려면 DVD를 많이 팔아야 한다고 밝힌 바 있지만 DVD 판매량도 좋지 않았기에 속편 제작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주연으로 나왔던 마이클 J. 폭스가 파킨슨병으로 인해 최근 들어 활동을 많이 못 하는 편이다.
한때는 남아공의 신예 감독 닐 블롬캠프를 기용하여 헤일로 시리즈의 영화화를 추진했지만 제작비 문제로 무산되었다.[11] 또한 닥터후[12] 의 에피소드 하나를 연출할 것이라는 말도 나왔는데, 워낙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 있어서 당분간은 힘들 듯하다. #
지금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비밀 프로젝트 2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 비밀 프로젝트 2개를 마치면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의 후속편을 연출한다고 한다. 링크 또한 2018년에 개봉하는 SF 영화 모털 엔진의 제작자를 맡았는데, 연출은 다른 감독이 담당하고 본인은 제작과 각본에만 참여한다고 한다. #
2016년에 레딧에서 나오미 노빅이 진행한 AMA에 의하면, 피터 잭슨 감독이 소유했던 테메레르 영화화 판권은 시한이 지나 만료되었으며, 다시 노빅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
2018년, 제작을 맡은 모털 엔진이 평이 매우 안 좋게 나오면서 흥행에 참패하였고, 프랜차이즈화 계획도 사실상 무산된 상황이다.
2020년 발표로 아동소설 원작 영화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의 특수효과를 맡는다. #
2.5. 다큐멘터리 제작
2018년에 데이 쉘 낫 그로우 올드(They Shall Not Grow Old)라는 제1차 세계대전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제국 전쟁 박물관에서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피터 잭슨에게 의뢰를 했는데, 완벽주의자에 밀덕후인 그가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장면은 장인정신 그 자체다.
- 제국 전쟁 박물관에서 관련 영상들을 받아 필름 복구, 명암비 보정, 프레임 보정[13] 등의 작업을 진행했으며 3D 작업까지 완료했다. 참고로 받은 영상들의 재생 시간을 모두 합치면 100시간이 넘어간다고(...) 또한 다큐멘터리 나래이션에 사용된 참전용사들의 당시 인터뷰의 총 재생시간은 600시간이 넘어갔다고 한다. 100시간 중 약 2시간 분량만 영화에 썼지만, 잭슨은 이 복원된 영상을 제국 전쟁 박물관에 기부했다.
- 다큐멘터리에 사용될 영상의 색상 복원을 위해서 말 그대로 온갖 자료를 쓸어 담았다. 전투장비부터 당시 신문지의 잉크색까지 모조리 뒤져서 찾아냈으며, 전장의 풍경의 경우엔 실제 전투 지역이었던 곳을 찾아가 방대한 양의 사진을 찍어서 이를 복원에 활용했다. 색상 복원 작업에 투입된 제작진은 잭슨의 자택에 방문해 소장하고 있는 당시 군복들을 레퍼런스 자료로 썼다.
- 무성 영상들에 소리를 집어 넣을 때, 실제 그 당시에 사용된 무기의 작동, 발포 소리를 찾아 집어 넣었다. 대포의 내부 작동음은 잭슨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샘플에서 녹음했고, 발사음이나 폭음은 비슷한 구경의 현대 포를 운용하고 있는 뉴질랜드 육군의 훈련장을 방문해 소리를 녹음했다.
- 영상에 출연하는 인물들의 대사의 경우에는 립 리더(lip-reader)들을 고용해 움직이는 입 모양을 보고 해당 문장이 어떻게 되는지 파악했고, 그 인물들의 출신 지역 성우들을 데려와 직접 더빙을 했다. 장면 중에 장교가 전투 하루 전에 사기를 북돋아주는 연설을 하는 장면에서는 입 모양을 읽을 수 없자 해당 부대의 자료관을 방문해 그 연설문을 인쇄한 문서를 찾아내어 녹음했다.
2020년에는 비틀즈의 음반 및 영화 Let It Be의 50주년을 맞아 앨범 제작 다큐멘터리를 새로 제작할 예정이라 한다. 1차 영상을 간단히 편집한 1970년 당시 원본 Let It Be와 어떠한 차별점이 있을지 아직은 공개되지 않은 상황. 애초에 Let It Be 다큐멘터리가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을 풀버전으로 공개한 적이 없어 해당 영상의 고화질 리마스터가 대거 공개된다는 점만으로도 화제를 불러모을 듯하다.
3. 까메오
자기의 영화에 까메오로 출연한 적이 제법 있다.
- 반지의 제왕의 매 편마다 카메오로 출연했다.
- 반지 원정대에선 호빗들이 브리 마을로 들어갔을 때 술에 취해서 당근을 씹는 아저씨로 나왔다.
- 두 개의 탑에서는 헬름협곡의 문을 부수려는 우루크-하이들에게 크고 아름다운 금빛 창을 던지는 군인으로 나왔다.
- 왕의 귀환에선 움바르의 해적선을 타고 올라오다 레골라스의 활에 맞아 죽는 해적으로 나왔다.[14] 물론 죽는 장면은 편집당해서 극장판에서는 안 나왔지만 확장판에서는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오스길리아스 전투 직전 간달프가 피핀에게 사우론의 동맹군에 대해서 설명해줄 때 하라드림들과 함께 해적들도 언급이 되는데, 해당 씬에서 갑판 위에서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풍채 좋은 인물이 바로 피터 잭슨이다. 여담으로 해적선 선장도 스태프 중 한명이었는데 그 사람 아들이 스튜디오에 왔다가 해적으로 분장한 자기 아빠를 봤지만 못 알아봤다고...
- 호빗: 뜻밖의 여정에서도 에레보르를 탈출하는 난쟁이 중 한 명으로 나오며,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에서는 반지 원정대를 오마주한 듯이 브리에서 비를 맞으며 당근을 씹는 취객으로 등장한다. 호빗: 다섯 군대 전투에서는 통 속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으로 나온다.[15]
- 2005년에 제작한 킹콩 리메이크 작품에서도 카메오로 출연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옥상에 올라간 킹콩을 공격하는 전투기 조종사로 출연. 이는 1933년에 제작한 최초의 킹콩영화에서 당시 감독이던 쿠퍼 감독이 전투기 사수로 깜짝 출연한 것을 오마쥬 한 것이다.
4. 작품 세계
초기 피터 잭슨의 작품세계는 상당히 고어하며 우스꽝스러운 B급 영화가 주를 이뤘다. 이후 할리우드로 건너가 프라이트너, 반지의 제왕으로 점점 그의 작품세계가 정립되기 시작한다.
우선, 초창기 피터 잭슨의 영화는 과도기적 작품들로 기괴한 영상미와 특유의 고어함이 눈에 띈다. 특히 킹콩까지 보자면 크리쳐들의 디자인들이 깔끔하고 정형화된 것이 아니라 뒤틀리고 난잡하여 "피터 잭슨식 크리쳐"가 확립이 된다. 반지의 제왕의 오크는 말할 것도 없고 와르그도 전혀 깔끔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특히 킹콩에 나오는 해골섬의 공룡들은 기존의 쥬라기 공원에서의 깔끔한 공룡들과 다르게 덧니가 여기저기 삐죽 튀어나오고 살가죽이 난잡하고 상처가 노골적으로 묘사되며 거친 게 특징이다.
하지만 킹콩과 호빗을 기점으로 다시 한번 그의 작품세계가 바뀐다. 일단 특유의 뒤틀린 모습이 킹콩까지는 유지되지만 호빗에서 많이 줄어든다. 오크의 경우 호빗의 오크들이 (주로 CG로 묘사되었기에) 반지의 제왕보다 조금 더 깔끔하게 바뀌었으며, 와르그도 두 개의 탑에서 나왔을 때와 다르게 많이 깔끔하지고 전형적인 늑대의 모습으로 바뀐다. 또한 스마우그는 피터 잭슨의 영화에서 나오는 크리쳐치고는 굉장히 깔끔하고 정갈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16]
그러나 호빗에서도 기존의 취향이 아직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3부작 중 마지막 편인 호빗: 다섯 군대 전투에서 등장하는 트롤과 고블린들은 정말로 무지막지하게 못생겼다. 머리와 몸통은 비대하면서 팔다리만 가느다란 고블린이나 팔다리를 다 잘라서 철추와 가시로 대체해 놓고 눈에 쇠사슬을 박아 고삐로 사용하는 트롤 등은 혐오감이 들 지경으로, 반지의 제왕 때 등장한 괴물들과 비교해도 상당히 고어도가 높은 편. 또한 확장판에서는 아예 작정하고 R등급을 노려 오르크가 갈라드리엘의 마법에 산산조각나거나 오크들이 산양 전차 바퀴의 칼날에 모조리 다리가 잘려나가 무릎으로 걷고(...) 트롤들 여러 마리 또한 전차에 달려들다가 바퀴의 칼날에 일제히 목이 날아가 피보라를 뿌리는 등 상당히 고어한 장면이 대 놓고 나와 작품세계가 완전히 바뀌진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거미 같은 절지류를 매우 사랑하는지 거대한 절지류 괴물을 작품에 많이 집어넣는 편. 그것도 매우 디테일하게!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쉴롭은 말할 것도 없고 킹콩의 계곡 밑바닥에서 쏟아져나오는 각종 크리처, 어둠숲에서 나오는 거대거미들과 지네를 닮은 벌레[17] 등등. CG도 쓸데없이 디테일하고 섬세해서 이런 쪽에 면역없는 사람들은 경기할 정도.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나 마틴 스콜세지처럼 고급스런 촬영 테크닉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대신 역동적이며 피사체를 향해 미끄러지듯 들어가는 카메라워크가 주를 이룬다. 대표적인 것이 킹콩에서 V렉스 3마리와 킹콩이 싸우는 장면인데, 카메라가 정신없이 회전하는 등의 무브를 보여준다. 특히 반지의 제왕이나 킹콩 같은 영화들은 딱히 3D로 제작된 영화가 아님에도 3D로 변환하면 상당히 어울릴 법한 앵글이나 구도가 많다.
반지의 제왕 촬영당시 오크 등의 분장에 상당히 질린 듯한 모습을 보였는데[18] , 이 때문에 호빗에서는 대부분의 오크들이 CG로 묘사된다.
5. 살과 관련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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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영화팬들로부터 '다이어트 비디오 출시해도 대박날 텐데'라는 소릴 듣는다. 반지의 제왕 감독 전 사진과 현재 사진을 비교해보면 정말 '''헉''' 소리 날 정도로 슬림해진 몸매를 자랑한다. 흠좀무...[19] 결정타로, 호빗 촬영과 관련해 올라온 아래의 스틸컷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사실 피터 잭슨이 살이 호빗 촬영 중 빠진 건 복부 질환으로 인해 도중 수술을 받아 병원식을 계속 먹었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호빗 촬영에 큰 지장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 몇 달 동안은 감독이 없어져 영화 제작 진행이 거의 멈춘 것과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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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호빗 메이킹 영상에 올라온 피터 잭슨의 모습을 보면 볼수록 이 분이 다시금 몸에 살이 붙고 있다. 나이도 50이 넘은 만큼 몸매 관리가 꽤 힘든 듯하다.
6. 필모그래피
[1] Order of New Zealand. 뉴질랜드 군주의 지위에서 영국왕이 내릴 수 있는 최고훈장.[2] Knight Companion of the New Zealand Order of Merit. 기사작위급 훈장이다.[3] 참고로 천상의 피조물들의 제작비는 500만 달러이다.[4] 파커-흄 사건(Parker-Hulme Case)이라 알려진 이 살인사건은 1954년 6월 22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빅토리아 파크에서 일어났다. 피해자는 45세의 오노라 리퍼(Honora Rieper)였고, 줄리엣 흄(Juliet Hulme)과 폴린 리퍼(Pauline Rieper)라는 열다섯, 열여섯 살의 소녀가 그 범인이었다. 폴린 리퍼는 오노라 리퍼의 딸이었는데, 사건이 발생하고 얼마 되지 않아 오노라 파커가 허버트 리퍼와 공식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져 엄마의 처녀적 성을 따라 폴린 파커가 되었다. 그리고, 드러난 사실은 줄리엣과 폴린이 서로 사랑하던 걸 막으려던 오노라를 영화처럼 벽돌로 쳐 죽여버린 사건. 법정에서 이 둘은 또박또박 반론하고 미쳤다느니 뭐니 봐달라고 하지 말라며 증언했다. 판결은 5년 징역형과 같이 이 둘은 출소 이후 만나는 걸 금지하는 판결. 현재 이 둘은 살아있지만 서로 떨어져 살고 만나지도 않는다고 한다.[5] 피터 잭슨 감독은 1933년작 킹콩을 보고 영화 감독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6] 최소한 리들리 스콧이나 스티븐 스필버그 정도의 거장은 돼야 영화화 시도라도 해볼만 하다는 의견이 대세였는데 난데없이 피터 잭슨이 감독으로 발표되자 다들 충격을 받았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탔다고는 해도 일반인들한테는 듣보잡이었고, 특히 <고무인간의 최후> 같은 그의 괴랄한 전작을 아는 소수 영화팬들은 패닉 상태였다(...). 사실 이건 한국영화팬들의 한계였고, 해외에선 공포영화 감독들이 대작 영화, 특히 특수효과가 많이 들어가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감독이 된 사례가 엄청나게 많다. 특수효과와 실사영화의 조합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블 코믹스 원작 영화가 흥행한 이후 불어닥친 슈퍼히어로 영화 열풍에서도 현재 진행형이다. 피터 잭슨은 여기에 더해서 웨타 디지털의 창설자이기도 하니.[7] 실제로 그는 킹콩의 열혈 팬이다.[8] 여담이지만 원래 이 영화는 린 램지 감독이 맡으려고 했으나 모종의 이유로 하차하고, 대신 피터 잭슨이 들어온 것이다.[9] 하지만 2018년에 아마존닷컴에서 판권을 사들여 반지의 제왕 드라마를 제작하겠다는 소식이 떴다. 그동안 마음이 바뀐 듯.[10] 제작비를 겨우 넘기는 수준에 그쳤는데, 손익분기점은 보통 제작비의 2~3배 이상이므로 적자를 본 셈이다.[11] 대신 블롬캠프 감독에게 저예산 SF 영화를 찍게 했는데, 이 작품이 바로 디스트릭트 9이다.[12] 피터 잭슨은 후비안이기도 하다. 닥터후 다큐멘터리에도 짤막하게 출연.[13] 당시 비디오 카메라는 촬영자가 크랭크를 직접 돌려가며 촬영해야 했기 때문에 프레임 속도가 일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 시기의 프레임 속도는 초당 10-16으로 현재보다 훨씬 느리다. 이 시기에 찍은 필름을 보면 피사체의 움직임이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는것처럼 매우 어색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기존의 1차대전 다큐멘터리가 대단히 비현실적으로 보였던 중요한 이유였다. 본작은 엄청난 노력과 기술력을 투입해서 프레임을 조정한 덕분에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움직임이 매우 자연스럽다.[14] 사실 위협용으로 귀만 쏘려 했는데 김리가 일부러 도끼로 활을 툭 건드려서 맞아 죽었다. 이 부분은 확장판에만 나온다.[15] 이 장면은 삭제장면이어서 본편에는 나오지 않는다.[16] 본래 컨셉아트까지만 해도 피터 잭슨 취향에 맞춰 가지런하지 못한 이빨과 듬성듬성 나 있는 머리털, 누더기마냥 지저분한 가죽 등 엄청나게 꾀죄죄한 괴물 모습으로 만들려 했던 모양이었지만 스마우그를 그냥 괴수가 아니라 인격체로 묘사하기 위해서 인상을 훨씬 깔끔하고 사람처럼 묘사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듯 하다.[17] 숲 밑바닥에 떨어진 절대반지 근처에서 튀어나와 지나가다가 빌보에게 두들겨맞는 녀석[18] 배우 한명당 수시간의 분장 시간이 필요하고, 매 컷마다 분장을 다시 정비해야 했다. 또한 착용감이 몹시 불편했다고 한다.[19] 피터 잭슨이 살을 뺀 방법은 간식을 햄버거에서 요구르트로 대체한 것이었다고 한다. 살을 뺀 이유는 데드 얼라이브 시절부터 현재까지 각본가로 함께 일하고 있는 부인 프랜 월시가 킹콩 촬영 현장에서 '그렇게 살찐 몸매를 유지하고 있으면 배우들이 감독을 무시할 수도 있다'고 조언했기 때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