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삭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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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원추추파크에 복원된 구 통리역 - 심포리역 사이의 강삭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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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화물 운송목적으로 만들어진 도계역 인근의 도계광업소 강삭철도로, 오른쪽으로 분기되는 선로는 안전측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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綱索鐵道 / Cable Railway
산악철도의 하나로 인클라인이라고도 한다.[2] 일단 급경사에 선로를 깔고 정상부에 전기나 기름으로 구동되는 모터를, 그리고 선로 중간에 강삭(강철 케이블)을 떠받치기 위한 도르래[3] 를 일정 간격으로 설치한다. 그 뒤 강삭을 선로에 내리면서 그 끝 부분에 차량을 매달 갈고리나 해당 구간'''만''' 운행하는 차체에 '''단단히 결속하고 조이면''' 설치가 완료된다.
그래서 운용법도 우물에서 두레박을 쓰듯, 위에서 줄을 감거나 푸는 식으로 강삭 끝의 차량을 위/아래로 견인하게 된다. 또한 선로에 강삭이 두 가닥 이상 있는 경우 보통 해당 선로를 그 가닥 수만큼 복수의 차량들이 공유한다는 의미이지만, 강삭 하나가 끊어져도 미끄러지지 않게 잡아주는 예비용일 수도 있다.
그리고 열차 두개가 강삭 양쪽으로 묶여 한대가 올라가면 한대는 내려오는 구조[4] 도 있는데 해외에서는 관광용은 Funicular,[5] 화차나 화물용은 Cable Railway 등으로 구분지어 칭하지만 아시아권에서는 그냥 똑같이 강삭철도 또는 케이블카라고 부른다.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는 주로 강삭이 아닌 체인으로 끌어올려지므로 치상궤도에 속한다. 또한 몇몇 심도가 깊은 역에 설치된 경사형 엘리베이터도 강삭철도의 원리가 적용되었다.
스위스의 Gelmer(Gelmerbahn) 푸니쿨라(강삭철도).
일반적인 철도로는 돌파할 수 없는 정도인 수 백 퍼밀급의 급경사 구간에서도 운행이 가능하고, 차량에 연결된 케이블이 견인하므로 무거운 기관차를 쓸 필요가 없으며 바람의 영향을 덜 받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급경사에 선로를 까는 것도 일이거니와 강삭의 인장력에도 한계가 있어 차량을 하나하나 분리해 견인하기에 주변을 우회하는 선로에 비해 운송 가능한 물동량이 적다. 또한 무엇보다도 '''위험하다'''. 일단 견인 도중 강삭이 이런저런 이유로 끊어질 경우(다른 강삭이 함께 견인중이거나 제동용 톱니가 함께 있지 않는 한) 해당 차량은 쇠로 된 선로를 거침없이 굴러내려가 하단부에 대기중인 다른 차량이나 시설과 충돌할 것이다.[6] 또한 견인중인 차량은 외부와 고립된 상태이기에 견인 도중 내부에 문제가 생길 경우 차량 내에서 혹은 견인 이후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7] 하여간 이런 이유로 강삭 전용이 아닌 일반 객차가 이곳에 다다르면 승객들은 '''하차해서 반대편까지 걸어가야 한다'''.[8]
이 때문에 여건만 된다면 이것보다는 스위치백을 포함해[9] 주변을 빙빙 돌아가는 걸 선호하거나 혹은 기술이나 자본이 충분하다면 솔안터널처럼 똬리굴을 건설할 수도 있다. 만약 이럴 여건도 안된다면 차선책으로 치상궤도로 만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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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의 강삭철도는 후술할 황지본선이 개통되기 전까지 영동선의 통리역 - 심포리역 사이에 존재했었으나 63년 이를 우회하는 황지본선의 개통과 더불어 폐선 및 철거되었으나 근래들어 하이원추추파크에 의해 관광목적으로 다시 복원되었다. 당시 저 구간을 어떻게 운행했는지에 대해 나오는 영상이 남아있다. 출처는 다큐멘터리 '그때를 아십니까' 22화.
정규열차 운행 시절에는 영동방향의 열차운행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던 악명높은 구간이었다. 당시의 운행방식을 보면 일단 통리재역에서 '''차량을 한 량 한 량 끊어 인클라인을 지나게 만든 뒤 다시 붙이는''' 식이었다.
거기다 여객열차는 수요 및 안전을 이유로 아예 운행하지도 않았고, '''이 구간을 지나는 열차 탑승자들은 심포리역과 통리역 사이를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이 때문에 당시 통리역-심포리역을 오가는 지게꾼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무거운 짐이 있을 경우 돈을 받고 그걸 대신 언덕 위로 실어다 주는 일을 했다고. 심지어 거기다 반대쪽에는 스위치백 구간도 있었다(...).
이 때문에 일일 물동량이 745톤으로 제한되었고, 말년에는 고장도 잦았다. 1956년 11월 23일에 한 차례 고장나자 영동 지방에서 올라오는 물류의 흐름이 그야말로 뚝 끊겼다. 이때는 아직 국도도 없던 시절이라 철도가 모든 교통을 담당했다. 그래서 1959년에 대대적으로 수리를 했는데 수리한 지 한 달 만인 7월 20일에 또 고장났고, 두 달이 넘도록 못 고쳤다.
이게 두 달 넘게 고장나자 그 영향으로 시멘트 값까지 오르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삼척에 대규모 시멘트 공장이 있어서 서울 쪽으로 가는 시멘트 운송을 영동선이 담당했는데 그게 끊어져 버리니 운송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운송 차질은 그대로 시멘트 품귀 현상으로 이어지면서 가격 상승으로 직결됐다.
결국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 구간을 안정적으로 지나기기 위한 우회노선을 계획하게 되어 서쪽으로 크게 우회하는[10] '''황지본선'''이 1963년 5월 20일 개통되어 구비구비 우회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돌아가도 하나하나 분리해 끌 필요가 없어진 만큼 기존의 강삭철도 방식보다 월등하게 빠르고 수송량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토목 기술의 발달과 이런 우회 및 스위치백 구조에 대한 불편이 계속 체감되자 해당구간을 보다 더 빠르게 지나가기 위해 똬리굴인 솔안터널이 개통되어 이 구간조차 폐선되어 지금은 대신 하이원추추파크에 의해 관광용으로 재개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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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거대한 우회루트를 보라(...)
우회루트 이름은 황지본선이며 이 노선 완공으로 철암선, 영암선, 동해북부선이 모두 연결되어 영동선이 되었다. 또한 구 인클라인의 흔적이 지금도 많이 남아있으며 찾아가기도 쉬우니 철덕이라면 답사해 보자.
하이원추추파크 건설사업에 통리역 - 심포리역 사이의 강삭철도를 복원하는 것이 포함되어 사업이 착수되었으며, 상기의 사진에 나온 것처럼 현재 완공된 상태다. 궤도운송법의 적용을 받는다.
푸니쿨라는 수도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설치 장소는 다음과 같다. 푸니쿨라라는 명칭보다는 주로 '경사형 엘리베이터'로 불리고 있다.
아직도 최소한 세 군데에 남아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는데, 신흥선의 송흥역 - 부전령역 구간과 장진선의 보장역 - 황초령역(진흥왕순수비가 있다는 그 황초령 맞다) 구간, 그리고 강계선의 십리평역 - 상신원역 구간. 구글어스로 보면 어지럽다 못해 현기증이 날 정도의 높이차를 아예 '''정면돌파'''한다.
참고로 높이차는 다음과 같다.
신흥선의 경우 부전령 서쪽에 높이가 1,741m인 백암산이 있어서 철도가 넘어가야 하는 높이가 더 높고(실제로 최고 높이는 1,550m) 강삭철도가 시작되는 부분인 해발 1,050m에서 최고점까지의 직선 거리가 불과 1km인지라... 경사가 '''500퍼밀'''[12] 인 셈이다. 점착식 철차륜 철도의 경우 표준궤에서 80퍼밀 이상의 경사를 오르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유사시의 구원기 투입과 안전한 사후처리를 위해 코레일의 경우 '''35퍼밀'''을 한계구배로 설정한 상태이다. 무산선의 스위치백 구간이 33퍼밀이고,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의 효창역과 용산역 사이 구간이 34.5퍼밀이다. 그리고 저 500퍼밀 경사는 도 단위로 따지면 약 26.57도의 엄청난 경사. 스키장의 상급 슬로프 경사도다. '''차량도 4륜구동 켜고 올라가야 한다.'''[13]
장진선도 만만치 않아서 해발 1,000m부터 1,200m까지 올라가는 데 직선거리는 불과 600m. 이쪽의 경사는 330퍼밀이니 철도가 버틸 수 있는 한계의 10배 정도의 엄청난 경사를 자랑하는 셈. 강삭철도가 얼마나 높은 경사를 버텨낼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예시다. 그래서 장진호 전투 당시 미국 해병대가 해당 구간을 케이블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참고로 통리역의 높이는 고작(?) 700m이며 심포리역은 450m에 당시 인클라인이 있던 부분의 경사는 약 220퍼밀. 상당한 높이차이긴 한 셈. 위의 두 개만은 못하지만.
그나마 강계선은 북한 자료(출처)에 따르면 57.8퍼밀로 그다지 높진 않다. 하지만 위성사진으로 경사를 재보면 300퍼밀 정도 된다.
재미있는 건 세 철도 모두 협궤이기 때문에 통일이 되면 표준궤로 재건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데... 글쎄? 애초에 신흥선이나 장진선이나 수력발전소 건설 및 유지용으로 만든터라 수요가 적은데다가 다른 노선과 이어지지 않고 산악지대 한중간에서 멈춰 굳이 표준궤를 깔 이유가 없고, 고원지대의 관광수요와 맞물려 협궤 자체가 희소성 때문에 관광자원으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북한에서 백무선을 표준궤로 개간하려다가 예산 부족으로 실패했는데...[14] 철도 자원을 매우 중시하는 북한이 그렇게 나올 정도니 이쪽이 제대로 재건되려면 통일 후에도 한 몇십 년은 걸리지 않을까. 참고로 백무선의 경사도는 33퍼밀이다. 차라리 고속도로나 국도를 먼저 건설할 가능성도 높다. 그나마도 이도 상당한 난공사가 될 게 뻔하고.
그 외에도 백두산에서 '향도봉'이라는 여객용 강삭철도가 운행하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신흥선 강삭철도는 표준궤로 개궤할 수 없다. 신흥선 강삭철도 구간은 600퍼밀인데, 표준궤 강삭철도는 400퍼밀까지만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협궤 강삭철도는 900퍼밀까지 버틸 수 있다.
일본에도 여객용 강삭철도가 많이 남아있다. 예를 들면 간사이 지역에 여행 가서 스룻토 간사이 패스를 산 뒤에 안내도를 펼쳐 보면 곳곳에 이코마 케이블, 니시시키 케이블, 히에이잔 사카모토 케이블, 고야산 케이블 등등의 철도 이름이 보이는데, 이게 바로 강삭철도다. 대개 우리나라에서 케이블카가 하는 역할을 강삭철도가 한다고 보면 된다.(단 일본에도 우리가 생각하는 케이블카는 많다. 우리가 생각하는 케이블카는 일본에서는 '로프웨이'라고 부른다.)
한편 영국의 경우 "린튼 앤 린무스 클리프 레일웨이"(The Lynton & Lynmouth Cliff Railway)라는 이름의 수력 강삭철도가 존재한다.(#)
홍콩에는 피크트램이라는 이름으로 트램이 있다. 원래 증기 기관차였다가 전철화시켜 현재는 전기로 운행한다. 한국 정서와 달리 아열대인 홍콩은 산 위가 시원해서 산에 사는 사람들이 부자들이며, 원래 목적은 영국인 이민자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서였다. 실제로 1960년대까지 중국인은 돈이 많아도 산동네에 살 수 없었다.[15]
이스라엘 하이파의 '''도시철도'''(!) 칼멜릿도 강삭철도다. 동시에 세계에서 제일 짧은 지하철로 기네스북에 올랐다.참고
텔레비전에서 한번쯤 들어봤을 노래인 이탈리아 나폴리의 민요 푸니쿨리 푸니쿨라도 사실 폼페이 멸망의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유명한 베수비오 산에 설치된 강삭철도 홍보 CM송이다.
하이원추추파크에 복원된 구 통리역 - 심포리역 사이의 강삭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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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화물 운송목적으로 만들어진 도계역 인근의 도계광업소 강삭철도로, 오른쪽으로 분기되는 선로는 안전측선.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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綱索鐵道 / Cable Railway
산악철도의 하나로 인클라인이라고도 한다.[2] 일단 급경사에 선로를 깔고 정상부에 전기나 기름으로 구동되는 모터를, 그리고 선로 중간에 강삭(강철 케이블)을 떠받치기 위한 도르래[3] 를 일정 간격으로 설치한다. 그 뒤 강삭을 선로에 내리면서 그 끝 부분에 차량을 매달 갈고리나 해당 구간'''만''' 운행하는 차체에 '''단단히 결속하고 조이면''' 설치가 완료된다.
그래서 운용법도 우물에서 두레박을 쓰듯, 위에서 줄을 감거나 푸는 식으로 강삭 끝의 차량을 위/아래로 견인하게 된다. 또한 선로에 강삭이 두 가닥 이상 있는 경우 보통 해당 선로를 그 가닥 수만큼 복수의 차량들이 공유한다는 의미이지만, 강삭 하나가 끊어져도 미끄러지지 않게 잡아주는 예비용일 수도 있다.
그리고 열차 두개가 강삭 양쪽으로 묶여 한대가 올라가면 한대는 내려오는 구조[4] 도 있는데 해외에서는 관광용은 Funicular,[5] 화차나 화물용은 Cable Railway 등으로 구분지어 칭하지만 아시아권에서는 그냥 똑같이 강삭철도 또는 케이블카라고 부른다.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는 주로 강삭이 아닌 체인으로 끌어올려지므로 치상궤도에 속한다. 또한 몇몇 심도가 깊은 역에 설치된 경사형 엘리베이터도 강삭철도의 원리가 적용되었다.
2. 장점과 단점
스위스의 Gelmer(Gelmerbahn) 푸니쿨라(강삭철도).
일반적인 철도로는 돌파할 수 없는 정도인 수 백 퍼밀급의 급경사 구간에서도 운행이 가능하고, 차량에 연결된 케이블이 견인하므로 무거운 기관차를 쓸 필요가 없으며 바람의 영향을 덜 받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급경사에 선로를 까는 것도 일이거니와 강삭의 인장력에도 한계가 있어 차량을 하나하나 분리해 견인하기에 주변을 우회하는 선로에 비해 운송 가능한 물동량이 적다. 또한 무엇보다도 '''위험하다'''. 일단 견인 도중 강삭이 이런저런 이유로 끊어질 경우(다른 강삭이 함께 견인중이거나 제동용 톱니가 함께 있지 않는 한) 해당 차량은 쇠로 된 선로를 거침없이 굴러내려가 하단부에 대기중인 다른 차량이나 시설과 충돌할 것이다.[6] 또한 견인중인 차량은 외부와 고립된 상태이기에 견인 도중 내부에 문제가 생길 경우 차량 내에서 혹은 견인 이후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7] 하여간 이런 이유로 강삭 전용이 아닌 일반 객차가 이곳에 다다르면 승객들은 '''하차해서 반대편까지 걸어가야 한다'''.[8]
이 때문에 여건만 된다면 이것보다는 스위치백을 포함해[9] 주변을 빙빙 돌아가는 걸 선호하거나 혹은 기술이나 자본이 충분하다면 솔안터널처럼 똬리굴을 건설할 수도 있다. 만약 이럴 여건도 안된다면 차선책으로 치상궤도로 만들 수도 있다.
3. 각 국가별
3.1.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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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의 강삭철도는 후술할 황지본선이 개통되기 전까지 영동선의 통리역 - 심포리역 사이에 존재했었으나 63년 이를 우회하는 황지본선의 개통과 더불어 폐선 및 철거되었으나 근래들어 하이원추추파크에 의해 관광목적으로 다시 복원되었다. 당시 저 구간을 어떻게 운행했는지에 대해 나오는 영상이 남아있다. 출처는 다큐멘터리 '그때를 아십니까' 22화.
정규열차 운행 시절에는 영동방향의 열차운행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던 악명높은 구간이었다. 당시의 운행방식을 보면 일단 통리재역에서 '''차량을 한 량 한 량 끊어 인클라인을 지나게 만든 뒤 다시 붙이는''' 식이었다.
거기다 여객열차는 수요 및 안전을 이유로 아예 운행하지도 않았고, '''이 구간을 지나는 열차 탑승자들은 심포리역과 통리역 사이를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이 때문에 당시 통리역-심포리역을 오가는 지게꾼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무거운 짐이 있을 경우 돈을 받고 그걸 대신 언덕 위로 실어다 주는 일을 했다고. 심지어 거기다 반대쪽에는 스위치백 구간도 있었다(...).
이 때문에 일일 물동량이 745톤으로 제한되었고, 말년에는 고장도 잦았다. 1956년 11월 23일에 한 차례 고장나자 영동 지방에서 올라오는 물류의 흐름이 그야말로 뚝 끊겼다. 이때는 아직 국도도 없던 시절이라 철도가 모든 교통을 담당했다. 그래서 1959년에 대대적으로 수리를 했는데 수리한 지 한 달 만인 7월 20일에 또 고장났고, 두 달이 넘도록 못 고쳤다.
이게 두 달 넘게 고장나자 그 영향으로 시멘트 값까지 오르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삼척에 대규모 시멘트 공장이 있어서 서울 쪽으로 가는 시멘트 운송을 영동선이 담당했는데 그게 끊어져 버리니 운송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운송 차질은 그대로 시멘트 품귀 현상으로 이어지면서 가격 상승으로 직결됐다.
결국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 구간을 안정적으로 지나기기 위한 우회노선을 계획하게 되어 서쪽으로 크게 우회하는[10] '''황지본선'''이 1963년 5월 20일 개통되어 구비구비 우회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돌아가도 하나하나 분리해 끌 필요가 없어진 만큼 기존의 강삭철도 방식보다 월등하게 빠르고 수송량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토목 기술의 발달과 이런 우회 및 스위치백 구조에 대한 불편이 계속 체감되자 해당구간을 보다 더 빠르게 지나가기 위해 똬리굴인 솔안터널이 개통되어 이 구간조차 폐선되어 지금은 대신 하이원추추파크에 의해 관광용으로 재개발되었다.
[image]
저 거대한 우회루트를 보라(...)
우회루트 이름은 황지본선이며 이 노선 완공으로 철암선, 영암선, 동해북부선이 모두 연결되어 영동선이 되었다. 또한 구 인클라인의 흔적이 지금도 많이 남아있으며 찾아가기도 쉬우니 철덕이라면 답사해 보자.
하이원추추파크 건설사업에 통리역 - 심포리역 사이의 강삭철도를 복원하는 것이 포함되어 사업이 착수되었으며, 상기의 사진에 나온 것처럼 현재 완공된 상태다. 궤도운송법의 적용을 받는다.
푸니쿨라는 수도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설치 장소는 다음과 같다. 푸니쿨라라는 명칭보다는 주로 '경사형 엘리베이터'로 불리고 있다.
- 지하철 6호선 버티고개역
- 지하철 2호선 이대역
-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신길역
- 지하철 8호선 산성역
-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용인 에버라인 기흥역
- 지하철 4호선ㆍ수도권 전철 서해선 초지역
- 남산오르미[11]
- 용산구 해방촌 108계단
- 북서울 꿈의 숲 전망대
3.2. 북한
아직도 최소한 세 군데에 남아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는데, 신흥선의 송흥역 - 부전령역 구간과 장진선의 보장역 - 황초령역(진흥왕순수비가 있다는 그 황초령 맞다) 구간, 그리고 강계선의 십리평역 - 상신원역 구간. 구글어스로 보면 어지럽다 못해 현기증이 날 정도의 높이차를 아예 '''정면돌파'''한다.
참고로 높이차는 다음과 같다.
신흥선의 경우 부전령 서쪽에 높이가 1,741m인 백암산이 있어서 철도가 넘어가야 하는 높이가 더 높고(실제로 최고 높이는 1,550m) 강삭철도가 시작되는 부분인 해발 1,050m에서 최고점까지의 직선 거리가 불과 1km인지라... 경사가 '''500퍼밀'''[12] 인 셈이다. 점착식 철차륜 철도의 경우 표준궤에서 80퍼밀 이상의 경사를 오르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유사시의 구원기 투입과 안전한 사후처리를 위해 코레일의 경우 '''35퍼밀'''을 한계구배로 설정한 상태이다. 무산선의 스위치백 구간이 33퍼밀이고,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의 효창역과 용산역 사이 구간이 34.5퍼밀이다. 그리고 저 500퍼밀 경사는 도 단위로 따지면 약 26.57도의 엄청난 경사. 스키장의 상급 슬로프 경사도다. '''차량도 4륜구동 켜고 올라가야 한다.'''[13]
장진선도 만만치 않아서 해발 1,000m부터 1,200m까지 올라가는 데 직선거리는 불과 600m. 이쪽의 경사는 330퍼밀이니 철도가 버틸 수 있는 한계의 10배 정도의 엄청난 경사를 자랑하는 셈. 강삭철도가 얼마나 높은 경사를 버텨낼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예시다. 그래서 장진호 전투 당시 미국 해병대가 해당 구간을 케이블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참고로 통리역의 높이는 고작(?) 700m이며 심포리역은 450m에 당시 인클라인이 있던 부분의 경사는 약 220퍼밀. 상당한 높이차이긴 한 셈. 위의 두 개만은 못하지만.
그나마 강계선은 북한 자료(출처)에 따르면 57.8퍼밀로 그다지 높진 않다. 하지만 위성사진으로 경사를 재보면 300퍼밀 정도 된다.
재미있는 건 세 철도 모두 협궤이기 때문에 통일이 되면 표준궤로 재건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데... 글쎄? 애초에 신흥선이나 장진선이나 수력발전소 건설 및 유지용으로 만든터라 수요가 적은데다가 다른 노선과 이어지지 않고 산악지대 한중간에서 멈춰 굳이 표준궤를 깔 이유가 없고, 고원지대의 관광수요와 맞물려 협궤 자체가 희소성 때문에 관광자원으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북한에서 백무선을 표준궤로 개간하려다가 예산 부족으로 실패했는데...[14] 철도 자원을 매우 중시하는 북한이 그렇게 나올 정도니 이쪽이 제대로 재건되려면 통일 후에도 한 몇십 년은 걸리지 않을까. 참고로 백무선의 경사도는 33퍼밀이다. 차라리 고속도로나 국도를 먼저 건설할 가능성도 높다. 그나마도 이도 상당한 난공사가 될 게 뻔하고.
그 외에도 백두산에서 '향도봉'이라는 여객용 강삭철도가 운행하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신흥선 강삭철도는 표준궤로 개궤할 수 없다. 신흥선 강삭철도 구간은 600퍼밀인데, 표준궤 강삭철도는 400퍼밀까지만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협궤 강삭철도는 900퍼밀까지 버틸 수 있다.
3.3. 일본
일본에도 여객용 강삭철도가 많이 남아있다. 예를 들면 간사이 지역에 여행 가서 스룻토 간사이 패스를 산 뒤에 안내도를 펼쳐 보면 곳곳에 이코마 케이블, 니시시키 케이블, 히에이잔 사카모토 케이블, 고야산 케이블 등등의 철도 이름이 보이는데, 이게 바로 강삭철도다. 대개 우리나라에서 케이블카가 하는 역할을 강삭철도가 한다고 보면 된다.(단 일본에도 우리가 생각하는 케이블카는 많다. 우리가 생각하는 케이블카는 일본에서는 '로프웨이'라고 부른다.)
3.4. 영국
한편 영국의 경우 "린튼 앤 린무스 클리프 레일웨이"(The Lynton & Lynmouth Cliff Railway)라는 이름의 수력 강삭철도가 존재한다.(#)
3.5. 홍콩
홍콩에는 피크트램이라는 이름으로 트램이 있다. 원래 증기 기관차였다가 전철화시켜 현재는 전기로 운행한다. 한국 정서와 달리 아열대인 홍콩은 산 위가 시원해서 산에 사는 사람들이 부자들이며, 원래 목적은 영국인 이민자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서였다. 실제로 1960년대까지 중국인은 돈이 많아도 산동네에 살 수 없었다.[15]
3.6. 이스라엘
이스라엘 하이파의 '''도시철도'''(!) 칼멜릿도 강삭철도다. 동시에 세계에서 제일 짧은 지하철로 기네스북에 올랐다.참고
4. 여담
텔레비전에서 한번쯤 들어봤을 노래인 이탈리아 나폴리의 민요 푸니쿨리 푸니쿨라도 사실 폼페이 멸망의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유명한 베수비오 산에 설치된 강삭철도 홍보 CM송이다.
5. 관련 문서
[1] 해당 사진은 간사이전력 인클라인.[2] 하지만 인클라인은 강삭철도용 차량까지 포괄하므로 일대일로 들어맞지는 않는다.[3] 이게 없으면 강삭이 지면에 끌려 손상된다.[4] 이 때문에 한 열차만 따로 이동시킬 수 없다. 또한 이렇게 묶인 두 열차를 선로 하나에서 교행시킬 경우 중간에 서로 부딪치지 않고 지나갈 수 있는 복선 구간이 필요하다.[5] 옥토랩이나 버거킹 광고 노래(...)로 알려진 '푸니쿨리 푸니쿨라'라는 유명한 이탈리아 노래의 소재가 이것이다. 베수비오 화산에 개통된 철도를 사람들이 위험할 것 같다고 안 타서(...) 홍보하기 위해 만든 노래라고. 결국 걱정대로(...) 1944년에 베수비오 화산분화로 파괴되어서 폐선되고 만다.[6] 이를 위해 선로 하단부에 이런 차량들을 주 선로 밖으로 빼거나 반대편 경사로 연결시켜 관성에 의해 제동되는 회피용 선로(안전측선)를 따로 부설할 수도 있다.[7] 실제 오스트리아 카프룬 터널 화재 때에는 견인 도중 객차 내에서 화재가 일어났는데, 하필 그 지점이 암흑천지인 터널 중간이고 구조대의 접근도 여의치 않아 사태를 키웠다.[8] 이 과정에서 짐이 무겁거나 많아 애먹을 승객들을 위해 짐을 들어주는 짐꾼들도 있었다.[9] 다만 후진할 때는 위험하므로 역무원이 후미에서 상황을 봐가며 저속으로 운행한다. 물론 2인 승무 동차 편성을 넣으면 속도나 후진의 위험성 문제는 해결되긴 하지만.[10] 통리역 - 심포리역을 잇는 인클라인 구간의 직선 거리는 1.5km 정도이나 황지선은 7.7km다.[11] 남산3호터널 북쪽입구 부근[12] 천분률, 1/1000 단위로, 경사도에 사용시 수평거리대비 높이의 비율을 뜻함. 철도 쪽에서는 1km당 생기는 높이차를 퍼밀이라 한다. 즉 이 경우는 1km당 500m의 높이 차가 있는 것. 이게 어느 정도 경사인지 느껴보려면 보통의 아파트 계단에 널빤지를 깔아 보면 된다.[13] 만약 4륜 차량이 아닌 경우 변속기를 활용해야된다. 수동변속기의 경우 무조건 1단으로만 주행해야 되며, 힘센 차는 2단까지도 된다. 만일 주행 도중에 서게 되면 반클러치를 써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그냥 출발하면 차량이 뒤로 크게 밀리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고 방지를 위해 오른손을 핸드 브레이크에 둬야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자동변속기의 경우는 1(L)또는 2로 표시된 곳에 놓고 올라가야된다. D나 3에 놓으면 중간에 힘이 떨어진다.[14] 다만 백무선은 그 노선의 특성상 통일 이후 표준궤화를 할 가능성은 있다. 다만 워낙 험준해서 시간이 많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15] 홍콩의 슬럼가는 한국의 달동네와 달리 평지, 그것도 고층 건물 한 채였다. 구룡성채 참조. 이 성채는 베트남 전쟁 이후 몰린 베트남 피난민들까지 들어와 미어 터지다가 중영공동선언 이후인 1993년 철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