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2001년
1. 개요
2001년에 열린 프로야구 시즌. 프로야구가 출범한지 20주년이 되는 시즌이다.
팀당 133경기씩 총 532경기가 열렸다.
2000년 시즌의 심각한 양대리그의 불균형으로 단일리그로 환원되었다.
롯데 자이언츠가 7월 24일 김명성 감독이 시즌 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1] , 이후 잔여경기를 우용득 감독 대행 체제로 치렀으나 9월 18일 마산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펠릭스 호세가 삼성 배영수의 빈볼 투구에 열받은 나머지 1루에서 뛰쳐나와 배영수의 얼굴을 가격하는 바람에 잔여경기 출장정지를 먹으면서[2] 전력 손실이 생겼고, 그 해 시즌을 꼴찌로 마감한다. 이것이 바로 8888577 중 첫 자리 기록.[3]
펠릭스 호세는 사건 전날인 9월 17일 출루율과 장타율 두 부문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었고, 이승엽과 홈런왕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였으나 이 사건으로 출장정지를 먹으면서 홈런왕 자리를 이승엽에게 헌납해야 했다. 하지만 호세는 장타율(.695, 2위 이승엽 .605)과 출루율 (.503, 2위 두산 심재학 .473) 타이틀을 거머쥐는 데 성공했고, 특히 출루율은 1982년 MBC 청룡의 백인천이 수립한 한 시즌 최고 출루율 기록인 .497를 갈아치우는 데 성공했다.
해태 타이거즈는 7월 29일 마지막 홈 경기를 치렀고, 이틀 뒤인 31일 SK와의 인천 원정에서 고별경기를 치를 예정이었으나 그 경기는 우천순연되었다. 그 다음날인 8월 1일 경기부터 KIA 타이거즈라는 새 이름으로 야구를 계속하게 된다.
2. FA
16명중 6명이 신청을 하였다.
잔류
삼성 김기태 : 4년 18억 원
삼성 김상진 : 3년 8억 5천만 원
한화 장종훈 : 3년 7억원 (옵션 연간 5천만 원 포함)
한화 강석천 : 3년 5억 1천만 원 (옵션 연간 3천만 원 포함)
두산 조계현 : 1년 2억 8백만 원
이동
해태 홍현우 → LG : 4년 18억원 / 보상선수 최익성
3. 정규시즌 최종순위
'''역대 최고의 평준화 시즌'''
삼성이 양민학살하며 저만치 앞서나가고 그 뒤를 현대, 두산이 잇고 나머지 5개 팀이 4위 자리를 놓고 다툰 유례없던 중하위권 싸움이 치열했던 시즌으로 선두와 꼴찌의 게임차가 20게임차밖에 안 났을 정도로 역대급의 평준화 시즌이라 볼 수 있겠다. 특히 4할7푼3리의 승률로 한화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한건 역대 포스트시즌 진출팀 중 가장 낮은 승률이며 4위 한화와 꼴찌 롯데의 게임차는 '''2게임차'''에 불과했다. 결국 엘롯기와 SK 와이번스가 탈락했다. 특히 엘롯기의 동반 탈락은 사상 최초. 그런데 꼴찌인 롯데가 무려 '''59승'''에 '''4할 5푼 7리'''라는 상당히 높은 승률을[4] 기록했으며, 심지어 우승팀 두산이 정규시즌 우승팀 삼성보다 꼴찌 롯데와 경기차가 더 작았고[5] , 심지어 포스트시즌을 '''탈락'''한 2006 두산보다도 승률이 낮았을 정도로 전체적인 승률 디플레가 괴상하기 짝이 없었다.
삼성은 단일리그 체제 이후 팀 최초로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다.
4. 신인드래프트
한국프로야구/2002년/신인드래프트
5. 포스트시즌
한국프로야구/2001년 포스트시즌으로 이동.
6. 다른 시즌 보기
[1] 2011시즌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이었던 장효조 감독도 시즌 도중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2] 이 사건으로 호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이대호 선수가 1군 무대 데뷔를 했다.[3] 하지만 그 해 페넌트레이스 4위였던 한화 이글스와 승차는 불과 2게임이었다, 즉 중하위권 싸움이 치열했던 시기.[4]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꼴찌를 한 팀이 4할 5푼을 넘긴 적은 이때가 유일하다.[5] 심지어 피타고리안 승률은 '''롯데가 두산보다 더 높았다!''' 득실차가 롯데는 +48인 반면, 두산은 '''-1'''(...) 프로야구 역사상 우승팀이 꼴찌팀보다 피타고리안 승률이 낮은 시즌은 이 해가 유일하다. 앞으로도 깨지기 쉽지 않을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