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야마 히로유키

 

1. 개요
2. 참여 작품


1. 개요


星山博之
일본각본가. 1944.5.13 ~ 2007.2.7. (향년 62세)
일본 애니메이션 각본가 중에서도 보기 드믈게 과거에 담당했던 개별 에피소드까지 찾아가면서 보는 매니아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 각본가이다. [1]
토미노 요시유키, 칸다 타케유키, 타카하시 료스케와 함께 무시 프로덕션 시절부터 일한 애니메이터로 린 타로에게 작화를 배우고 있었으나 토미노, 칸다, 타카하시 3인방의 재능에 좌절해 각본가로 전향하였다. 무시 프로덕션이 망했을 때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나리오 학교를 다녀 시나리오를 철저하게 재공부하였다.
이후 친구인 토미노, 칸다, 타카하시를 따라서 선라이즈에서 일하며 수많은 명작을 배출해 선라이즈를 지금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한국에선 감독이 아니라는 이유로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일본에선 거장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상당히 부드러운 대사를 구사하며 부족한 점이 있지만 상냥한 마음을 가진 주인공이 점점 성장해내가는 성장 스토리를 매우 잘 쓴다. 본인도 "내 작품은 쓰다보면 어딘가 상냥해진다." 라고 평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영화를 좋아했다고 하며 특히 이탈리아의 네오 리얼리즘 영화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카이 시덴미하루 라토키에 에피소드는 이탈리아 영화 '자전거 도둑'에서 따왔다고 한다. [2] 또한 애니메이션 현장이 업무에 시달리는 지옥 같은 현실이란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원안이 지켜질 리가 없고 현장 상황에 따라 자주 바꿔줘야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숙지하고 작업했으며 후배들에게도 이 사실을 숙지하라고 강조하였다. 그래서 자신이 제출한 각본이 바뀌어도 별 말 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동전사 건담의 성공은 토미노 요시유키의 덕택으로 흔히 여겨지지만 호시야마 히로유키의 공으로 돌리는 경우도 있다. 분명 원안[3]이나 연출은 토미노였지만 대부분의 스토리는 호시야마가 구상한 것을 토미노가 수정해서 사용했다. '''토미노부시'''라는 난해한 화법으로 유명한 토미노의 초기작인 퍼스트 건담이 토미노의 다른 작품보다 대사가 부드럽고 이해하기 쉬운 것은 이 사람 덕분이다. 아무로 레이는 호시야마, 샤아 아즈나블은 토미노라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토미노의 작품 중에서 유독 이해하기 쉽다는 평가를 받는 다이탄3와 턴에이 건담도 호시야마와 토미노의 공동 저작이라는 점도 이 두 사람의 조합이 꽤나 괜찮은 조합이란 것을 보여준다. 또한 토미노가 턴에이 건담을 제작하기 위해 가장 먼저 끌어들인 중요 스탭이 호시야마였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서가 없는 현실에 한탄해 '호시야마 히로유키의 애니메 시나리오 교실'이라는 책을 집필했으며 이 책을 완성하고 세상을 떠났다.
각본가 오코우치 이치로는 소설가가 목표였지만 그의 각본에 큰 감명을 받아 각본가로 꿈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의 각본을 100번씩 읽으면서 연습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팬들이 전설의 명작으로 여기는 기동전사 건담 1화 '건담 대지에 서다'를 정작 호시야마는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토미노가 자기 멋대로 샤아 아즈나블이 '인정하고 싶지 않군. 내 젊음으로 인한 과오라는 것을...' 라고 말하는 장면을 넣어서라고 한다. 그런 대사가 왜 들어가야 하는지를 맥락상 전혀 알 수가 없었다고. 하지만 나중에 마음에 들지 않았어도 그 대사 때문에 1화가 더 눈에 띄게 되었다며 결과적으론 괜찮았다고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2. 참여 작품


굵은 글씨는 참여 비중이 높은 경우

[1] 특촬옴니버스가 많아서 이런 문화가 있는데 애니메이션은 드믈다.[2] 이 에피소드는 나중에 토미노가 콘티를 제작해놓고 나서 보고 울었으며, 야스히코 요시카즈도 보고 울었고, 이타노 이치로가 지나가다가 "아니 나이도 먹으신 분들이 왜 저래" 하고 봤다가 자신도 울었다는 전설이 있다.[3] 전함과 로봇이 함께 싸우고, 실제 전쟁을 그려내고, 보급 같은 개념을 리얼하게 다룬다는 원안은 토미노의 것이다. 그런 세계관에서 어떤 등장인물들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인지는 호시야마가 정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