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시대
Смутное время
Time of Troubles
1. 개요
1598년 러시아 류리크 왕조의 차르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사망하고 1613년 미하일 1세가 새로운 러시아의 차르가 되면서 로마노프 왕조가 시작되는 시기까지의 혼란기. '동란 시대'라 번역하기도 한다.
2. 배경
862년 류리크가 노브고르트 주변을 평정하고 홀름가르트란 이름의 정착촌을 건설한 이래로 러시아에서 군주는 곧 류리크의 피를 이은 소위 '류리크 왕가'의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몽골의 침입과 함께 시작되는 러시아의 암흑기와 현대 러시아의 기틀을 닦은 모스크바 대공국까지 러시아인들의 군주는 류리크의 부계 자손들이었다. 이로 인해 러시아에서 류리크 가문이 지니는 권위는 영원한 러시아의 지배자이자 군주에 해당할 정도로 절대적이었다.
그런데 1598년 류리크 왕조의 차르 표도르 1세가 적법한 후계자를 두지 못한 상태에서 급사하는 바람에 그만 그 혈통이 끊어지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물론 당시 러시아에는 여전히 류리크의 부계 혈통을 이어온 자손임을 주장할 수 있는 귀족들이 있었으나 러시아를 통일한 모스크바 공작 이반 3세와 초대 루스 차르 이반 4세의 직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차르위 계승의 정통성을 주장할 수 없는 인물들이었다. 당시 러시아가 서유럽마냥 살리카법과 귀천상혼 개념이 있어서 방계 왕족의 왕위 계승에 너무나도 익숙했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라서 결국 류리크 왕조의 단절을 막을 수는 없었다. [1] 이러한 사태로 인해 잠시 표도르 1세의 황후이자 보리스 고두노프의 여동생이었던 이리니가 대리 차르를 맏았지만 곧 표도르 1세의 뒤를 이을 인물로 표도르 1세의 처남이자 섭정직을 맡고 있었던 보리스 고두노프가 선출됐고 이리니는 힘에 이기지 못해 오빠에게 양보했다.
사실 왕가 직계의 단절로 방계 왕족이 뒤를 잇거나 어떻게든 그 계통을 찾아내고, 그래도 안되면 가장 가까운 인척을 내세워 뒤를 잇게 하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면 보리스 고두노프는 러시아의 영원한 군주인 류리크 왕가 출신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많은 보야르(대귀족)들과 러시아의 민중들은 보리스가 차르를 계승했다는 것에 상당한 반감을 품고 있었다. 게다가 보리스가 펼치는 무능으로 점철된 통치는 가뜩이나 불안불안한 차르의 권위를 깎아먹는 요소로 작용했으며[2] 보야르들은 사사건건 디스를 퍼부어대는 상황을 빚고 말았다. 종국에는 자연 재해로 발생한 피해도 류리크 왕가 출신이 아닌 보리스가 차르가 되어 막장 정치를 펼쳤기에 그렇게 된 것이란 소문이 돌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자신이 류리크 왕가의 직계 혈통이자 그동안 죽은 걸로 알려진 이반 뇌제의 아들 우글리치 공작 드미트리임을 주장하는 인물이 나타나면서 마침내 헬게이트가 열렸다.
3. 경과
훗날 가짜로 판명되어 가짜 드미트리로 불리게 되지만 당시에는 사실 우글리치 공작 드미트리는 죽지 않았고 류리크 왕조를 부활시켜 러시아를 통치해나갈 것이란 믿음이 퍼져 있었다. 이에 드미트리를 자칭하는 인물의 등장은 보리스에게도 큰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이에 드미트리를 자칭하는 인물이 가짜임을 증명하기 위해 나섰으나 되려 역공을 당해 오히려 보야르와 민중들이 진짜 우글리치 공작 드미트리가 돌아왔다고 믿게 되는 상황까지 악화되고 말았다.
결국 차르와 가짜 드미트리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으나 1604년에 보리스가 사망하면서 내전은 일단락됐다. 보리스가 사망한 이후 그의 아들이 차르를 계승했으나 민심은 이미 가짜 드미트리에게 쏠려있었다. 결국 차르의 군대도 깃발을 바꿔들어 가짜 드미트리를 지지했으며 결국 보리스의 아들이 살해당하면서 러시아의 차르위는 가짜 드미트리에게 넘어갔다.
그렇게 러시아에 다시 평화가 찾아오나 했으나…… 가짜 드미트리는 차르위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지원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가짜 드미트리를 모시는 사람들 중에는 폴란드인들이 많았고, 폴란드인 귀족가의 여성과 결혼하는 등,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입김 아래에 놓일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대대로 러시아와 대립하던 경쟁국이었고, 러시아의 보야르들은 이러한 사태에 반감과 우려를 가지기 시작했다.[3]
결국 당시 보야르들의 실세였던 바실리 슈이스키는 현재 드미트리가 가짜임을 주장하면서 쿠데타를 일으켰고, 1605년 가짜 드미트리를 살해하면서[4] 스스로 차르 바실리 4세가 되었지만, 바실리 4세의 배경도 보리스 고두노프에 비교하면 별다를 바 없었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5] 이로 인해 나라 꼬라지를 보고 열이 뻗힌 백성들과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런 혼란이 계속되는 와중에 다시 드미트리임을 자칭하는 인물(가짜 드미트리 2세)이 등장했다. 심지어는 자신이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진 이전 드미트리임이라 주장했는데 실제로는 외모나 목소리까지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하지만 바실리 4세를 인정하지 않던 세력들은 그런 사항을 잘 알고 있음에도 기꺼이 그의 존재를 인정했다(…). 바실리 슈이스키는 이 골치아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웨덴에 원조를 요청했고, 이에 가짜 드미트리 2세를 지원하고 있던 폴란드 - 리투아니아 연방은 이를 빌미삼아[7] 러시아에 군대를 파견했다.
바실리 4세는 러시아-스웨덴 연합군 3만을 거느리고 침입한 폴란드군을 격퇴하려 했으나 크우신 전투에서 스타니스와프 주키에프스키가 이끄는 5천의 윙드 후사르에게 그야말로 개발렸고, 이 패전으로 인해 차르위에서 폐위 당한다음 쫓겨났다.[8] 이후 러시아 귀족들은 폴란드와 협상을 진행하여 지그문트 3세의 아들 브와디스와프 4세를 러시아의 새로운 차르로 선출했다.
한편 당연히 차르위를 물려받을 것이라 생각했던 가짜 드미트리 2세는 강력히 반발했지만 모스크바에 입성하지 못하고 쫓겨났다. 결국 모스크바에서 밀려난 이후 지방에서 계속 기회를 엿봤으나 부하의 배신으로 암살당했다. 이후 가짜 드미트리 1세의 아내이자 가짜 드미트리 2세의 아내였던 마리나 므니제치가 전 남편의 아들 작은 악당 이반을 지도자로 추대했으나 결국 토벌당했다. 작은 악당 이반을 비롯하여 체포된 인물들은 대부분 처형당했으며 마리나 므니제치는 감옥에서 수감 생활을 하다가 1614년에 옥사했다.
한편 러시아 귀족들이 폴란드와 협상하면서 내건 조건은 "브와디스와프가 정교회로 개종한 다음 차르위에 오른다", "러시아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 "가톨릭을 강요하지 않는다"였다. 브와디스와프 자신은 정교회 개종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지그문트 3세가 극렬히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9] 그리고 역사가 언제나 그렇듯이 폴란드는 귀족들과 약속한 조건을 모두 뒤엎어 버렸다. 여기에 스웨덴 역시 브와디스와프를 차르로 지명한 것을 빌미로 1610년부터 러시아를 공격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가짜 드미트리임을 자칭하는 세번째 인물이 나타나 스웨덴, 폴란드, 러시아 국경 지역인 프스코프를 중심으로 세력을 키우기도 했다.
결국 러시아인들은 침략자로부터 러시아를 지켜내기 위해 저항할 수 밖에 없었으며 1612년에 간신히 폴란드 세력을 러시아에서 축출할 수 있었다. 이후 1613년 이반 4세의 사돈 가문인 미하일 로마노프를 러시아의 새로운 차르로 선출하여 정국을 안정시키고자 했다.
폴란드 세력을 몰아낸 뒤에도 러시아의 차르위를 노리는 폴란드와 배반 행위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스웨덴의 공격으로 위기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결국 1617년 스웨덴에게 핀란드 인근 킥스홀름과 발트해로 향하던 유일한 출구 잉그리아를 할양하고, 1618년에는 데울리노 조약으로 스몰렌스크와 체르니호프, 세베리아를 폴란드에게 할양하여 양국가를 달래면서 간신히 최악의 시기를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브와디스와프는 계속 차르위를 주장했고 러시아는 빼앗긴 스몰렌스크를 되찾고 싶었다. 결국 휴전 기간이 끝난 1632년 러시아는 폴란드를 침공했으나 대패했다.[10]아무튼 폴란드에게 수도를 점령당하고 영토까지 뭉텅 떼주는 등 제대로 굴욕을 당한 러시아는 폴란드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갈고 대홍수 때 굴욕을 갚아주며 이후 폴란드 분할로 러시아 혁명 때까지 폴란드를 철저하게 짓밟는다. 스웨덴 또한 대북방전쟁으로 탈탈 털어버렸다
4. 결과
류리크 왕조는 완전히 단절됐으며 더 이상 드미트리를 자칭하는 인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러시아의 차르는 미하일 로마노프의 직계가 이어나갔으며 로마노프 왕조가 시작됐다.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폴란드와 스웨덴에 영토를 내어주는 선택지를 취할 수 밖에 없었으나 미하일의 아들 알렉세이의 치세에 대홍수로 위기에 빠진 폴란드를 침공, 폴란드를 탈탈 털어버리면서 빼앗긴 영토보다 훨씬 더 넓은 영토를 빼앗았으며 표트르 대제의 치세 대엔 스웨덴과의 대북방전쟁에서 승리하여 빼앗긴 영토는 물론 발트 해로 통하는 출구를 추가로 확보하면서 북유럽의 패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5. 그 외 이야기
이 때의 러시아를 그린 작품으로 요한 마테존의 오페라인 "보리스 고두노프"[11] 미하일 글린카의 오페라 "차르에게 바친 목숨"과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희곡 "보리스 고두노프"가 있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무소륵스키에 의해 동명의 오페라로 작곡되었으며, 차르에게 바친 목숨은 제목 탓에 소련 시절에는 오페라의 주인공의 이름을 따온 이반 수사닌[12]으로 불렸고 1812년 서곡 피날레를 땜방할 때도 이 오페라의 곡 일부가 사용되었다.
바실리 슈이스키는 크우신 전투에서 참패한 이후 폴란드 - 리투아니아의 수도 바르샤바로 끌려가 지그문트 3세와 귀족들 앞에서 절을 하며 폐위당했다. 폴란드인 입장에서는 자국 역사상 최고의 순간이라 할 수 있으며 폴란드를 대표하는 역사화가 얀 마테이코는 이에 관련된 그림을 그려 남겼다.
가짜 드미트리 2명과 그의 아내 마리나 므니제치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막장 드라마 수준의 황당무계한 스토리를 자랑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가짜 드미트리 항목에 서술한다.
브와디스와프의 차르위 계승 거부로 시작된 폴란드와 러시아의 전쟁에서는 의용군의 활약이 돋보였다. 이 때 큰 활약을 한 인물로 니즈니노브고로드의 상인 쿠지마 미닌[13]과 류리크 왕조의 핏줄인 수즈달의 귀족 드미트리 포자르스키가 있다. 이들의 활약을 기려 두 사람의 동상이 세워졌는데 원래는 미닌이 손을 뻗어 크렘린을 가리키는 모습으로 붉은 광장 한가운데에 있었다. 하지만 소련에서 군사 퍼레이드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성당 앞으로 옮겨버렸다.
[1] 사실 이렇게 당시 러시아가 통일 국가 초대 군주의 방계 후손이 군주의 자리를 계승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은 몽골 치하에서 몽골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을 것이다. 몽골 제국은 훗날 청나라의 숭덕제가 대칸위를 차지하기 전까지는 칭기즈 칸의 직계 후손만이 대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러시아가 킵차크 칸국의 후계국들을 정복하면서부터는 러시아의 군주가 타타르인들 앞에서 대칸 칭호까지 쓰게 되었으니, 방계 혈족에게 차르위를 물려줄 경우 타타르인들이 반발할 우려도 있었을 것이다. 발해에서 창건자 대조영의 직계 혈통이 단절된 뒤에도 그의 동생 대야발의 후손이 대대로 왕위를 계승하였던 점, 네덜란드에서 초대 총독 침묵공 빌럼 1세의 직계 혈통이 단절된 뒤에도 그의 동생인 나사우-딜렌부르크 백작 요한 6세의 후손이 대대로 네덜란드를 통치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는 점, 송나라에서도 창건자 조광윤에서 동생 조광의에게 형제상속으로 넘어가서 계속 조광의의 후손으로 상속되다가 훗날 남송 때가 되어 다시 조광윤의 후손으로 돌아왔던 점 등과는 대조적이다.[2] 만약 보리스 고두노프가 루스 차르국을 나름 괜찮게 통치했다면 고두노프 왕조가 실제 역사처럼 허무하게 단명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변수에 따라 훗날 류리크 왕조의 방계 후손 여성을 황후로 맞이함으로써 고두노프 왕조의 부족한 정통성을 보완할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류리크 왕조의 피가 흐르지도 않으면서 들어선 로마노프 왕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는데, 로마노프 왕조가 들어설 당시엔 후술할 전쟁으로 인한 혼란 때문에 류리크 왕조의 혈통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집착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한 상황이었다.[3]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평민 출신이었던 예카테리나 1세와 그녀의 직계 후손들이 러시아 제국 황제위를 대대로 계승하게 되었다.[4] 얼마나 폴란드와 가짜 드미트리에게 열 받았는지 가짜 드미트리를 죽이고 난도질한 후 '''시신을 대포속에 집어넣고 폴란드 쪽으로 발사했다.''' [5] 바실리 4세의 가문인 슈이스키는 류리크 가문의 방계이긴 하다. 하지만 방계 계승을 인정 안하는 러시아 혈통법상 당연히 정통성이 떨어젔다.[6] 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은 선거군주제였는데 지그문트 3세의 어머니가 폴란드 왕 지그문트 1세의 딸이었기 때문에 폴란드 왕위에 오를 자격이 있었고 지그문트 3세의 아버지는 스웨덴 왕 요한 3세였다.[7] 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군주 지그문트 3세는 본래 스웨덴 바사 왕가의 사람으로 한때나마 '''폴란드-리투아니아와 스웨덴의 군주'''였다가[6] 스웨덴의 가톨릭화 정책에 반발한 숙부 칼 9세와 스웨덴 귀족들의 반란으로 스웨덴 왕위에서 폐위당한 상황이었다. 지그문트 3세는 당연히 이를 인정하지 않아 폴란드-스웨덴 관계는 악화되었고 칼 9세가 죽고 그 아들인 구스타브 2세 아돌프가 즉위한 상황에서도 자주 전쟁을 벌이는 상황이었다. 폴란드 바사 왕가의 스웨덴 왕위 주장은 1626년 ~ 1629년 전쟁에서 스웨덴한테 깨지고 1635년 30년 전쟁에서 밀리던 스웨덴을 압박해 슈툼도르프 조약을 맺고서야 철회한다.[8] 쫓겨난 바실리는 전리품으로서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로 압송, 지그문트 3세 앞에 무릎을 꿇는 치욕을 당하고 강제로 수도승이 되어 바르샤바 근교의 고스티닌 성에 유폐되었다가 1612년 사망했다.[9] 지그문트 3세에게 있어 폴란드-리투아니아는 가톨릭 방어의 보루인 동시에 가톨릭 포교의 교두보였기에 들어줄 수 없는 조건이었다.[10] 러시아가 스몰렌스크에 파견한 주력군이 폴란드 구원군에게 전멸했다. 폴란드는 스몰렌스크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는 공세를 펼쳤지만 러시아군은 수비에 성공했다.[11] 보리스 고두노프 시대와는 다르게 바로크 오페라 답게 사랑과 정치적 암투를 담은 조용한 곡이라 역사적 사실과는 전혀 무관하다.. 게다가 1710년에 초연되었다는 기록이 없어서 부분적인 초연은 1965년에, 전체곡 초연은 2005년에 이루어 졌다.. 그래도 표도르 1세의 황후이자 고두노프의 여동생인 이리니 등 나올 인물은 다 나온다.[12] 혼란 시대에 살았던 농민으로 러시아에 쳐들어온 폴란드군을 숲 속으로 유인해 혼란시켰고 보복으로 살해되었다.[13] 정육 사업. 그러니까 도축일로 재산을 모은 백정 출신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