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드 후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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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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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With Fire & Sword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
윙드 후사르가 나오는 영화 중 하나[1]

1683년 비엔나 포위전에서 오스만 제국에 큰 타격을 입힌 폴란드 윙드 후사르의 활약을 담은 뮤직비디오[2]
  • 폴란드어: Towarzysz husarski(토바지시 후사르스키), Husaria(후사리아)
  • 영어: Winged Hussar.
1. 개요
2. 형성 배경
3. 활약상
4. 특징
5. 대중매체에서


1. 개요


1503년 ~ 1775년에 존속한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정예 기병부대. 독특한 장식과 무쌍 찍는 전장의 활약상 덕분에 후세에 길이 길이 회자되는 기병이다.
파이크 방진을 무너뜨리기 위해 5 m짜리 대형 랜스와 윙드 후사르의 상징으로 굳어진 날개 장식을 달고 있는데, 서유럽동유럽의 특징이 혼합된 독특한 기병이었다.[3]

2. 형성 배경


후사르의 본고장 발칸 반도오스만 제국에게 점령되자, 패망한 세르비아 공국, 불가리아 제국, 왈라키아 공국, 헝가리 왕국의 후사르들은 국가를 잃고 용병으로 떠돌았는데, 이들 중 일부가 폴란드 왕국에 고용되었다. 이때 3개 부대를 폴란드의 입법부 '세임'이 고용, 고용 & 신설하여 폴란드식 후사르가 생겼다.
이후 신분에 따른 차별 없이 귀족, 평민 모두 받아들이면서 체계화되고 급속도로 성장하여 윙드 후사르가 나타났다. 이들은 고도로 체계적이고 엄격한 훈련을 통해 근세에 활약한 주요 병종으로 손꼽힌다.

3. 활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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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강의 기병들 중 하나답게 전적도 굉장히 화려하다. 주로 나열되는 전적들만 해도 다음과 같다.
  • 스웨덴전, 1605년 키르홀름 전투에서 윙드 후사르 2600명이 기마돌격을 한 번 하여 칼 9세가 직접 지휘하는 스웨덴군 기병 2500명과 보병 8300명 중 7600 ~ 8천 명이 전사했음
  • 러시아전, 4만 ~ 8만으로 추정되는러시아군을 상대로 전투, 러시아군 1만 ~ 3만 전사
  • 오스만전, 윙드 후사르 300명이 오스만군 1만 5천에 돌격, 오스만 군 천여 명 전사
  • 오스만전, 윙드 후사르가 돌격하여 오스만군 3만 5천 명이 붕괴
  • 코사크 - 타타르전, 코사크 - 타타르군 14만이 모인 부대가 괴멸적 타격을 받았지만, 폴란드군의 손실은 700명
  • 1683년, 제2차 빈 포위전, 을 최소 9만 ~ 최대 30만으로 추정되는 대병력이 포위하자, 윙드 후사르 1만 8천 명이 (후대에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기병 돌격'으로 불리는) 전설적인 돌격으로 붕괴시킴
위 전적들을 자세히 설명해보면 보통 윙드 후사르는 스웨덴, 오스만 제국, 합스부르크 제국, 모스크바 대공국과의 전쟁에서 대활약했다. 1514년 9월 8일 폴란드러시아가 겨룬 오르샤 전투에서는 1만 2천 ~ 3만여 명으로 러시아군 4만 5천 ~ 8만 명 중 1만 ~ 3만여 명을 전사시키고 3천 ~ 5천여 명을 포로로 사로잡은 적도 있다'''.
이후에도 다방면으로 활약하여 폴란드 국왕 스테판 바토리 사후, 막시밀리안 대공 휘하의 오스트리아군이 침공해 오자 이 군대를 비치나(Byczyna)에서 패배시켜 막시밀리안 대공을 포로로 사로잡았으며, 1600년스웨덴과 전쟁이 발발하자 역시 활약을 펼쳐, 벤덴(Wenden), 코켄하우젠(Kokenhauzen), 락베레(Rakvere), 비아위 카미엔(Bialy Kamien) 등에서 대승을 이끌었다.
특히 1605년 스웨덴과의 키르홀름(Kircholm) 전투에서는 스웨덴군 1만 2천 명을 윙드 후사르 2500명이 돌격해 스웨덴군의 전열을 패배시킨 적도 있다. 이 전투에서 스웨덴군은 대략 '''60% ~ 80%가 전사'''했다. 말 그대로 학살.[4] 그밖에 수많은 전투에서 활약했으며, 이 때문에 스웨덴은 윙드 후사르와 평지에서의 전투는 최대한 피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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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쿠쉰 전투에서 러시아 - 스웨덴 연합군[6]랜스에 대한 방책을 준비했지만, 이번엔 휠락 머스킷을 들고서 카라콜을 구사한 데다가, 러시아군이 뻘짓[7]을 하는 바람에 쿠쉰 전투는 폴란드의 대승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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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0년 체초라 전투에서는 비록 전투 자체는 패배[8][9]하기는 했으나, 윙드 후사르 300명이 오스만 제국군 1만 5천 명에게 돌격하여 피해 1천여 명을 입히고 격퇴시키기도 했고, 1621년 코침 전투에서도 몰려드는 오스만 제국군을 상대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길이를 늘리기 위해 속을 파낸 가벼운 랜스 탓에 스웨덴중보병을 상대로 고전하기도 했다. 1620년대 폴란드 후사르와 스웨덴 보병대가 맞부딛친 전투에 대한 한 기록을 보면 후사르의 랜스가 스웨덴 보병의 판금 갑옷을 관통하지 못해 후사르들이 고전하였다고 한다.[10][11]
또한 후사르들 자체도 갑옷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한 시기가 있어 '경무장한 폴란드 군인과 중무장한 스웨덴 군인'이라는 비교가 나오기도 하였다. 이 문제는 얀 소비에스키 재위시기에 가면 많이 해결되었다.
물론, 갑옷으로 중무장하지 않은 경무장한 전력을 상대로는 매우 탁월하다. 1660년 러시아와 치른 한 전투에 대한 기록을 보면 후사르가 랜스로 러시아 보병 6명을 일격에 꿰뚫었다고 하고 코침 전투에서도 오스만 제국의 기병인 시파히 6명을 한번에 꿰뚫었다고 한다.[12]
그렇게 윙드 후사르는 폴란드쑥밭 재배자로 유럽 전역에 그 이름을 널리 알렸으며, 우크라이나 헤트만 보흐단 흐멜니츠키가 이끈 코사크 대봉기 당시 있었던 1651년의 베레스테츠코 전투에서는 코사크 - 타타르 연합군 14만이 괴멸했다. 이 때 코사크 - 타타르 연합군의 피해는 전사 3만 ~ 7만. 그런데 폴란드 측의 피해는 700명.
1673년 오스만의 폴란드 침공 당시에는 코침 전투에서 오스만군 3만 5천을 상대로 승리하는 등 활약했다.
17세기 말 당시에는 유럽의 중심 을 공성 중인 오스만 제국의 군대를 기습 돌격해 승리를 거둔다. 제2차 빈 포위 문서 참조.
그러다가 폴란드 분할과 창기병의 쇠퇴. 거기에다가 스웨덴과의 전투에서 한계성이 드러나게 되자, 1775년 윙드 후사르는 정식으로 해체되고 역사 속으로 잊혀지게 된다. 이후 프랑스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사실상 후손인 울란을 만들었다. 물론 중기병급 무장인 윙드 후사르와 달리 울란은 기동성을 살린 경기병이었다.

4.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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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특징인 에 달린 날개 장식은 몽골 제국유럽을 침공할 때, 몽골군이 후사르한테 그물을 던져 낙마시키자 뒤에 철조각들을 날개처럼 붙인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13] 혹은 날개들이 돌진할 때 깃털이 진동하면서 위압적인 소리를 낸다고 하는 설도 있다. 그 뒤로도 저 날개 장식이 그냥 장식인지, 아니면 실용성이 있었는지 여러 가지 의견이 많다. 군사 서적 전문 출판사 오스프리에서 펴낸 폴란드 후사르 관련 서적에서는 실험을 수 차례 했어도 올가미에 낚이는 것을 방지하는 데에도 소용이 없고, 전속력으로 돌격해도 위압적인 소리 같은 것도 없었다. 아니, 저 장식이 소리를 '''전혀 내지 않았다'''고 한다.[14]
그 외에도 적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해서 붙였다는 추정도 있다. 사람보다 덩치가 큰 물체가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려오는 데다가 뒤에 덩치를 더 크게 보이게 만드는 날개 장식까지 붙였으니 그 위압감은 실로 충분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어깨표범이나 호랑이 모피[15] 망토처럼 걸치기도 했다. 이것 역시 날개 장식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장신구 역할과 동시에 혼란을 주기 위한 용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실용적인 측면에서의 추측 외에도 상징적인 면에서 이 날개 장식의 용도를 추측하는 설도 있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윙드 후사르가 착용하는 날개 장식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왕국'의 상징에 대입된다. 본래 우리가 폴란드라고 부르는 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은 별개의 국가로 존재하던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왕국이 연합해 생겨난 국가인데, 본래 폴란드의 상징은 '''날개를 활짝 펼친 독수리''', 리투아니아 왕국의 상징은 '''말을 달려나가는 기사'''였다. 즉, 이 '날개 장식+기병'이란 조합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결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자 함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다.
사실 저렇게 완전무장하고 두터운 모습이지만 원래 후사르는 '''경'''기병이었고 윙드 후사르도 원래 경기병에서 출발했다.
이들이 무장한 장비로는 앞서 사진에 나온 갑옷과 투구, 앞서 언급한 속이 빈 5 m짜리 랜스와 기병도 '샤블라', 에스터크 등으로 무장했고, 지휘관이나 귀족병사들은 샤블라 대신 철퇴나 도끼로 무장하기도 했다. 또한 초기에는 방패를 사용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안 쓰지 않았다.
다만 윙드 후사르의 전과가 과장되었다는 주장도 분명히 있다. 사실 폴란드 자체가 전쟁을 거의 동유럽에서만 치렀고, 당시 군사기술 발전이 빨랐던 서유럽의 군대와 싸운 일이 별로 없다.
파이크병을 상대로 몇번 승리를 거둔 적은 있으나(키르홀름 전투와 클루시노 전투) '''제대로 된''' 파이크 방진을 격파한 적은 별로 없다. 스웨덴의 파이크 병은 1601년 군제 개혁하려고 데려온 요한 반 나사우에게 '"파이크 쓸 줄도 모르는 양민 수준"'이란 평가를 들었을 정도로 형편없는 군대였다. 요한 반 나사우는 군제개혁 하겠다고 스웨덴군 좀 만지작 거리다가 돌아가버렸고, 이 파이크 방진은 고작 4년 후에 키르홀름에 투입되었다가 윙드 후사르의 기동에 반응도 못해보고 박살나버렸다. 또한 키르홀름 전투처럼 기병만으로 파이크 방진을 돌파하는 사례는 폴란드 내에서도 '''이례적인 경우'''인 것 같고, 후사르들 피해가 적지 않았다.
클루시노 전투(Battle of Klushino)는 그래도 좋은 성과를 냈는데, 러시아 차르국(Tsardom of Russia) 3만군과 스웨덴 5천군(이 연합군은 파이크병, 머스킷티어, 화승총병-아쿼버시어로 구성 됨)을 5천여 기병으로 돌격해서 대승을 거두었다. 물론 전투 초반에 윙드 후사르가 보병 방진에 돌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돌진 횟수는 알 수 없고 사견에 따라 다름) 전열을 제대로 무너뜨리지 못해서 초반에 고전한 건 사실이다. 또 러시아군이 무너진 이유로 반격에 나선 러시아 기병들이 대삽질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후사르 기병이 클루시노 전투에서 주력군으로 활약했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 근거는 당시 폴란드군 6500 ~ 6800명 중 후사르 비율이 최소 80%, 대략 5500명이었고, 기병이 아닌 타 병과는 규모가 매우 작고 지원도 애매했기 때문이다. 또 이 전투에서 제대로 싸웠다고 나오는 보병은 왼쪽에 배치된 보병 400여 명, 나중에 지원 온 보병 200여 명 정도였고 대포는 2문 밖에 없었다. 심지어 이 대포 2문도 나중에 온 보병 200명과 함께 늦게 왔던 터라 초반 전투에는 아예 쓰이질 못했다. 여기에 전황을 다 나열할 순 없겠지만, 결론적으로 이 전투는 후사르 기병을 앞세워 파이크병을 포함한 적군을 제대로 격파한 몇 안 되는 사례이다.[16]
어찌되었던 후사르가 먼치킨이라고 평가받는 한 가지 이유인, '''제대로 된 파이크 방진을 상대해서 격파'''했다는 기록은 생각보다 적고 어느 정도 과장이 들어간 것이 맞다. 중무장 갑옷을 뚫는 총기가 보편화 되기 전까진 기병 돌격을 그나마 저지 해볼만한 수단은 보병의 장창 방진 뿐이었고[17] 그래서 테르시오라는 전술이 이름을 떨친 것인데 정작 후사르는 파이크 방진을 정면돌격으로 깨부순 사례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기 때문. 애초에 동유럽은 서유럽과 달리 평원과 스텝 지대가 널리 펼쳐져 있어 보병보다는 기병에 투자하는 성향이 강했기에, 그 기병 중 가장 중무장한 윙드 후사르가 활약할 여지가 많았다고 볼 수 있다. 보병들의 질은 서유럽에 비해 극히 떨어졌고, 그나마 서유럽을 따라하던 스웨덴도 초창기에는 그 수준이 확연히 떨어졌다. 반면 구스타프 2세 아돌프의 개혁으로 이전까지 서유럽을 모방하기 급급했던 후발주자에서 아예 서유럽을 포함한 유럽식 군제의 원조로 떠오른 전성기의 스웨덴군에게는 확연히 고전했다. 즉, 윙드 후사르 역시 제대로 된 근대식 군대에게는 큰 전과를 내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윙드 후사르에 대한 군사적 평가가 과장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또 다른 점은, 윙드 후사르의 직계 후손이라 할 수 있는 폴란드 창기병 울란이 그 전투력을 높이 평가받아 동시대 전 유럽에 보급된 반면, 윙드 후사르가 활약하던 시대에 윙드 후사르와 같은 랜스를 차용하여 이를 모방하려는 노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돌격기병이 다시 대두되기 시작한 기점인 스웨덴의 하카펠에서도 하카펠은 검과 총을 썼지 랜스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윙드 후사르는 강력했지만, 시대의 흐름과 그다지 맞아떨어지는 병과는 아니었던 셈.
이후 한참이 지난 후에야 다시 기병돌격의 장점이 재평가되면서 창기병이 부활하게 된다. 또한 이후의 기병들이 랜스를 사용하지 않은것은 기병 자체의 패러다임이 바뀐 점이 크다. 당시 재정비된 기병돌격은 이제 막 생겨나는 전열보병 앞에서 정면돌격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었고, 이는 기병이 전장의 주력이 아닌 부가적인 역할을 하는 보조병과로 전환되도록 만들었다. 이후의 기병 돌격 또한 기병도를 사용해 측면이나 후면에서 공격해 방진을 흐트려 놓는것으로 바뀌었고, 기동성을 저지하는 지나치게 긴 랜스는 불필요해졌기 때문.
또한 위에서 비교된 스웨덴의 하카펠이, 다시금 기병돌격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례긴 했지만, 정작 하카펠은 '''검기병'''이었다. 랜스를 사용하던 윙드 후사르와 검과 피스톨을 사용하던 하카펠을 동일시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하카펠이 돌격전을 벌였다고 하지만, 랜스는 장비하지 않았고 검만 들고 싸웠다.
또 다른 근세의 상징인 테르시오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래 쇠퇴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5. 대중매체에서


폴란드에서는 엄청 띄워준다. 밀어주는 것만 보면 거의 신병(神兵)이라고 해도 될 수준.
레딧 폴란드볼에서도 엄청 띄워준다. 컨테스트 우승자에게 수여되는 아이콘이 윙드 후사르 날개다.
현대 폴란드군제11 기갑기병사단은 윙드 후사르의 날개와 투구를 부대마크로 사용하고 있다. 기갑기병의 직계 후손이란 점을 생각해 보면 아주 적절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national shrine of our lady of czestochowa'에는 카틴 학살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거대한 후사르 동상이 있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정복자에서 출현한 유닛이며 제국 시대에 가능한 경기병 업그레이드를 할 경우 호위 경기병이 양 쪽에 날개를 달고 있는데 윙드 후사르의 날개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날개만 붙었을 뿐 여전히 창이 아닌 검을 쓰며 딱히 전투력이 월등해지거나 하진 않는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에서도 등장한다. 독일 한정으로 일회용 카드로 한번 받아 십여기의 윙드 후사르 부대를 수송받을 수 있다. 외형이라도 비슷했던 2편과 달리 3에서는 이름만 윙드 후사르일뿐 일반 후사르와 완전히 똑같이 생겼고 성능도 후사르와 동일하다(...).
엠파이어: 토탈 워에서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 왕국의 고유 기병유닛으로, 총 10부대 한정 수량으로 생산 가능하다. 중기병의 방어력과 근접 공격력, 창기병의 돌파력과 이동 속도를 모두 갖추어 무적일 것 같지만, 스테미너가 부족하고 방향을 전환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워해머 판타지의 가상의 국가인 키슬레프는 윙드 후사르를 모티브로 한 윙드 랜서와 그리폰 리전이란 병과가 존재했으나, 판매량이 매우 저조한 관계로 스톰 오브 카오스 캠페인에서 제국 동맹군 형식으로만 사용할 수 있었다. 결국 엔드 타임워리어 오브 카오스에게 국토가 완전히 파괴되고 군대도 전멸하여 멸망하였고, 미니어쳐 모델 또한 절판되어버렸다.(키슬레프의 미니어쳐 모델들)
스페이스 마린다크 엔젤 챕터의 2중대인 레이븐윙의 모티브가 윙드 후사르인데, 구판 모델일수록 더더욱 비슷하다. 다크엔젤의 컨셉이 중세 무렵의 기사들이기 때문에 더더욱 비슷한 편.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에서는 폴란드 침공편에서 등장하는데 웹연재판에서는 갈리토스와 그CCCV(...)들로 등장. 대전차오함마술로 독일군 전차군단을 상대로 승전하는듯 하지만, 결국 브로켄 히틀러, 루시퍼 괴벨스, 칸젤 괴링의 공세에 밀려 패배하고 만다. 그런데... 단행본 판에서는 개그 하나 없는 진지한 모습으로 나오며 여기에서는 폴란드 군인들로 나온다.[18]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선에서 은퇴하게 된 군마들과 엮어 시대의 흐름을 읽지못한 퇴물 취급[19]을 받지만, 전투 앞에서 비참하게 죽기보다 창을 들고 말들과 함께 전차로 기병돌진을 하는 그모습은 그야말로 간지폭풍.
위와 비슷한 내용의 만화.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는 아니다. 이 만화의 고증 관련 지적과 원작자로 추정되는 사람의 반론이 있는데, 양쪽 다 읽어봄 직 하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챔피언 신 짜오의 스킨중 '윙드 후사르 신 짜오'스킨이 이기병을 모티브로 했다. 그렇지만 기마상태는 아니다.
레인보우 식스 시즈 에서 후사리아 라는 스킨이 등장.
마운트 앤 블레이드 With Fire & Sword 에 Polish Commonwealth의 기병으로 등장한다. 성능은 기병 중 최강이지만 돌격 시 랜스만 들 수 없는 시스템의 한계 때문인지 무기를 랜스 하나만 들도록 설정되어 말에서 내리면 고자가 된다.
문명 5에서는 문명 5 폴란드의 특수유닛으로 날개 달린 후사르라는 번역명으로 등장. 창기병의 대체유닛으로 나오며 '''충격'''과 '''육중한돌격''' 진급을 달고 나온다. 일반 창기병보다 전투력이 3, 이동능력이 1 높으며, 특수 진급으로 인해 선봉에 서서 전선을 밀어내는 데 특화되어 있다. 운만 좋다면 '''전차를 이길 수도 있다.'''
문명 6에서도 폴란드의 문명 특수유닛으로 나온다 오프닝 트레일러에서도 아버지가 윙드 후사르가 되어 적진으로 돌격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성능은 전작과 동일.
갓 오브 하이스쿨에 G.O.H 세계대회 폴란드팀으로 등장한다. 바티칸팀처럼 팀 전체가 원래 한 조직이었던 팀으로 바티칸팀을 손쉽게 이기며 한국팀과 붙지만 세 명 모두 휘모리에게 끔살(...).
코사크가 중심이 되는 동유럽계 영화/TV극화의 많은 작품들이 코사크를 중심으로 폴란드에 항쟁하는 줄거리이다보니 심심하면 코사크들에게 발리는 졸개 역할이다. 그래도 중장비를 가진 꽤나 위협적인 상대라서, 코사크들도 야습하는 척 훼이크를 한다던가 하여 수면부족을 유발해서 승리하는 등, 정면에서 싸워 이기는 묘사 보다는 여러가지 요소를 활용하여 이기는 경우가 많다.
반지의 제왕나팔산성 전투에서 로한 기병은 제2차 빈 포위 당시 윙드 후사르의 포지션을 모티브로 하였다. 다만 외형적인 모티브는 11세기 무렵 노르만 기병.[20]
2015년 9월 21일자 JTBC의 월요일 예능프로그램인 비정상회담 '다시 쓰는 세계사 - 패션의 역사' 코너에서 폴란드 비정상 패널인 프셰므스와브가 이 윙드 후사르를 소개하였다. 덤으로 이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방송에서는 폴란드로 소개)에서는 붉은색 옷이 당시의 패셔니스타(귀족)들만 입던 귀한 옷이란 일화도 소개되었다.
역사적 소재를 다루는 노래를 부르는 스웨덴의 헤비메탈 밴드 새버턴 또한 윙드 후사르를 주제로 노래를 불렀다. 2016년 앨범 'The Last Stand'의 10번 트랙인 'Winged Hussars'로 곡의 주 내용은 제2차 빈 포위와 오스만군을 격퇴시켜 빈을 해방한 윙드 후사르.
명군이 되어보세!에서 황진이 처음 조우한다. 여기서는 후사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동유럽 기병들의 전술을 익히고 싶어한 황진에 의해 이들의 지휘관 바토리 지그몬드가 흔쾌히 1백기를 내주지만 루돌프 2세가 오스만 제국과 전쟁 중이라 병사 한 명이 아쉬운 시점이고 전술 익히는데 무슨 그렇게 많이 가냐며 20기로 줄여 버렸다. 조선에서는 이들 20명을 교관으로 삼아 윙드 후사르를 본격적으로 양성하여 비호군이라는 이름으로[21]일본 원정 때 실전 투입한다.[22]
도미네이션즈에서 전술성 병력으로 등장한다.
[1] 영화의 전투는 1656년의 프로스트키 전투를 다루었다. 국내에는 주인공의 이름을 딴 크미치스란 이름으로 방영된 적이 있다.[2] 스웨덴 메탈밴드 사바톤의 2016년 앨범 'The Last Stand'에 수록된 '윙드 후사르(Winged Hussars)' 영상은 패러독스 인터랙티브 갤러리에서 만들었다.[3] 검기병이라고도 하는 후사르랜스를 쓰는 게 특이할 수 있지만, 서유럽으로 유입된 후사르들과 달리 동유럽 원조 후사르들은 때로는 랜스를 사용하기도 했다.[4] 이 날 전투에서 스웨덴 제국 원수였던 레나르트손이 전사했고, 같이 참전했었던 스웨덴 국왕 카를 9세는 목숨만 간신히 건져 탈출했다. 그리고 포위당한 스웨덴군폴란드군에 의해 무참히 도륙당했다. 스웨덴군은 6천 ~ 9천여 명이 전사한 데 비해, 폴란드 - 리투아니아 군은 고작 100명 전사하는 경이적인 교환비를 보였다.[5] 이때의 안 좋은 기억을 바탕으로 스웨덴군사자왕 구스타프 아돌프의 군제 개혁을 거쳐 강군이 되어 30년 전쟁에서 맹활약한다.[6] 당시 스웨덴 측은 프랑스계 귀족인 야콥 드 라 가르디가 이끄는 외국인 용병대가 주력이었다. 가르디의 용병대는 러시아군이 병크짓을 저지른 것과 다르게 침착하게 윙드 후사르의 돌격을 막아냈으나 포병대와 보병 부대를 지원받은 폴란드군에게 뚫려 결국 용병대의 대부분이 항복하고 드 라 가르디는 겨우 목숨을 건져 탈출했다.[7] 당시 드 라 가르디가 했던 것 처럼 목책 방진을 세워 윙드 후사르의 돌격을 나름 막아내면서 버텼지만 러시아 측 지휘관인 드미트리 슈이스키가 반격을 가한답시고 라이터 기병대를 윙드 후사르의 정면에 꼴아박았다. 그 덕에 윙드 후사르는 이 라이터 기병대들에게 돌진을 시전하여 개박살을 내줬고, 기병대가 무참하게 쳐발리는 광경을 본 러시아 보병대는 겁을 지레 먹고는 모두 잽싸게 튀었다. 지휘관인 드미트리 슈이스키는 물론이다![8] 당시 동맹이었던 몰다비아군 애들이 오스만 쪽에 붙으면서 배신을 때렸고(다만 더 따지고 들어가면 몰다비아는 150년 가까이 오스만의 신하국이었다가 폴란드의 회유로 잠시 등을 돌렸던 것이기 때문에, 마냥 배신이라고 하기도 무엇하다), 폴란드 - 리투아니아 연방 왕국 측 의회에서 전쟁 예산을 일체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물자가 딸렸었다.[9] 이 전투에서 지휘관인 스타니스와프 주키에브스키가 전사하고, 스타니스와프 코니에츠폴스키, 미코와이 포토츠키 등 폴란드의 걸출한 무장들 대부분이 오스만 제국의 포로로 끌려갔다. 주키에브스키는 전날 쿠쉰 전투에서 러시아 - 스웨덴 연합군 3만 5천 명을 박살냈었던 명장이었다.[10] 현존 유물을 보면 윙드 후사르의 랜스는 길이가 5 m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드문데, 이 중에 3 kg를 넘어가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한다. 창이 돌격할 때 한 번 찌르고 나면 쉽게 부러졌는데, 이 정도 강도는 거의 토너먼트에 사용한 주스트용 랜스나 다름없는 수준.[11] 물론 본래 돌격용 랜스는 적을 맞춰서 부러지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나, 후사르가 쓴 랜스는 기존의 랜스 들보다도 내구도가 떨어졌다. 그렇다고 창이 부러진 후에는 바로 세이버를 쓰지는 않고 랜스를 주로 쓰던 기사들처럼 적의 방진이 유지되는 상황이라면 말을 돌려 후방으로 가 새 랜스를 들고 와 다시 돌격을 행했다. 안장에 달고 다니는 서유럽식 롱소드나, 허리에 찬 세이버로 적을 도륙하는건 적의 대열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뿐이였다. 윙드 후사르들은 선두에서 돌격하는 임무 탓에 창을 부러뜨리지 못함을 불명예로 간주하기도 했다.[12] 다만 당시 시파히들은 일반적으로는 경무장을 했다고 한다.[13] 혹은 오스만 제국의 경기병 아큰즈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큰즈는 독수리 깃털을 단 장식을 차고 다닌다고 한다.[14] 오스프리의 서적에 따르면 축제나, 예식용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왜냐면 문에 들어갈 때나 나무 사이로 지나갈 때 저 날개 때문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었기 때문.[15]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카프카스 혹은 중동산을 수입한 것이라고 추정 하고 있다.[16] 당시 전황은 이 링크에 전부 나오기에 생략함. 참고로 적군 대포는 훨씬 많은 11문. 물론 적군이 대포 활용을 거의 못해서 큰 의미는 없었지만, 요점은 클루시노 전투는 대포로 제압한 전투도 아니었고. 기병 전력을 앞세워 승리한 전투가 명백하다는 것.[17] 물론 본고장 서유럽에서 오히려 중기병대를 파이크 방진에 정면으로, 적극적으로 돌진 한 것을 보면 파이크 방진 역시 기병 돌격을 완전히 저지하는 것은 무리였다.[18] 이 챕터에서 개그는 말들이 대부분 한다[19] 실제 폴란드 침공 당시 폴란드 기병들은 전부 윙드 후사르의 후손이라고도 하는 울란이였다.[20] 로한의 컨셉도 '만일 영국이 대륙국가였다면'이었다고 한다.[21] 몸에 호랑이나 표범가죽을 두르고 전장에 나섰기 때문. 실제 윙드 후사르들도 했던 장식이기도 하다.[22] 이들뿐 아니라 장다르메도 이항복이 데려와 편입되었지만 윙드 후사르는 (본질이 경기병이라 갑옷이 없어도 양성할 수 있으므로) 창만 후사르용 랜스로 바꾸면 큰 문제 없이 바로 투입할 수 있었지만, 장다르메는 당장의 갑옷 공급과 중무장한 기사에 강철 마갑까지 버티며 적진으로 돌격이 가능한 군마 공급이 힘들어 당장 일본 원정까지 부대가 완편하기가 무리라 처음 온 20기 그대로 실전 투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