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승부

 



[1]
1. 개요
2. 내용
3. 등장인물
3.1. 주연
3.2. 명성대학교[2] 농구부
3.3. 한영대학교[3] 농구부
3.4. 신라대학교[4] 농구부
3.5. 동민의 가족
3.6. 철준의 가족
3.7. 기타
3.8. 꿈의 캐스팅
3.9. 배우들의 위상 변화
4. 결말
5. 드라마의 영향력
5.1. 마지막 승부 세대
6. 미디어믹스
7. 기타
8. 주제가 표절 사건


1. 개요


1994년 1월 3일부터 1994년 2월 22일까지 방영된 MBC의 월화 드라마로, 슬램덩크와 함께 1990년대 대한민국에서 농구 붐을 일으킨 작품.
대장금 등 다른 드라마들에 비해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드라마 한류의 시초가 된 작품 중 하나'''로,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만 - 홍콩 방송에 수출되어 방영되었다. 홍콩 내 방영을 한 위성방송 스타TV[5]는 첫 방영 전 신은경 등 주연배우들의 인터뷰 등으로 꾸민 특집방송을 먼저 내보냈다. 본방송 때에는 광고로 나온 것이 당시 홍콩에 진출했던 원비디이다.
이후 한국 드라마동남아권과 중국에도 수출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 문화를 알리는데 선봉장을 하게 된다.
해피타임! 170회 해피타임 명작극장에서 이 드라마를 소개했다. 20여분 짜리 요약이라 중요 내용들만 소개하고 있는데, 이 영상에는 왜 동민이 신라대에서 명성대로 돌아섰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이 영상만 본 사람들은 "이동민은 친구 뒤통수 치고 명문대로 떠난 나쁜놈이네" 라고 생각할 듯 하다.

종영 후 대한영상이 VHS 비디오테이프로 냈고, 케이블 TV채널 MBC 드라마넷과 Dramax, MBC ON 등지에서도 수차례 재편성됐다. 또한 MBC 홈페이지에서도 다시보기 서비스를 하고 있다.

2. 내용


약간 열린 결말이라는 소리도 들렸지만[6] 엔딩은 명확하다. 아직까지도 한국 스포츠 드라마 중에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남아있다.
대학 최고의 슈터 이동민(손지창 분), 이동민을 따라 신라대를 가기로 했다가 이동민의 변심[7][8]으로 대학행이 좌절된 뒤 시험을 쳐 농구부가 있는 대학교에 입학[9][10]해 이동민에게 복수할 것을 다짐하는 윤철준(장동건 분)의 라이벌 구도, 청춘들의 좌절과 극복, 성공스토리가 그려진 전형적인 스포츠 드라마이다.

3. 등장인물



3.1. 주연


  • 윤철준(장동건) - 한영대의 에이스이자 본 드라마의 진 주인공. 고교시절엔 뛰어난 게임 운영과 어시스트 능력을 가진 포인트 가드였으나 이동민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11][12] 원래 이동민을 따라 신라대에 진학하기로 했다가 동민이 명성대로 진로를 바꾸면서 철준과 그 친구들은 공중에 붕 떠버리게 되고[13] 이후 역시 대학 진학을 물먹고 좌절하며 재수를 하면서 지내던 친구 호성이 철준과 술을 마시다 "너도 이동민처럼 해보란 말이야" 라고 말하고 화가 나서 떠나게 되는데 그를 뒤쫒아가다 호성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이에 철준은 동민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재수를 해 한영대에 입학한다. 그럼에도 농구를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학과별 체육대회에서도 농구 대신 축구를 하겠다고 했지만 어쩌다 농구경기를 뛰게 되고 마침 그 경기를 구경하던 한영대 코치 유학수의 눈에 들게 되어 농구를 다시 시작해보지 않겠나는 제안에 고민하다 결국 한영대 농구부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 과거 동민에게 가려져 있던 포텐을 한껏 폭발시키면서 어시스트는 기본에 득점력까지 갖춘 에이스 플레이어로 성장한다[14][15]. 참고로 국가대표 선발 위원회에서 명성대 감독이 말한 바에 따르면 철준이 경기의 흐름을 잘 읽으면서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선수라는 듯 하다. 그 점에서는 이동민이나 장용호는 그 점에서 부족한데 철준이 그 점을 만족하는 선수인 듯 하다. 동민과는 호성의 일 이외에도 다슬이 때문에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는 사이였지만, 다슬에게서 동민이 어머니의 병 치료를 위해 명성대로 갔다는 사정을 듣고 나서 동민을 찾아가 "우리가 그래도 친구였는데, 너희 어머니 때문에 그렇다고 우리한테 말만 했더라면 우리가 그걸 이해 못 했을 것 같냐?!"면서 다그친 후에 화해하게 된다. 이후 동민과 나란히 국가대표에 선발되고, 한영대를 농구대잔치 우승으로 이끈다. 수 년 뒤엔 은퇴 후 다슬이와 결혼하고 한 시골 초등학교의 농구부 코치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 이동민(손지창) - 명성대의 에이스 슈터이자 포지션은 짤없는 슈팅 가드.[16]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 득점 기계이며 돌파와 외곽슛 에 매우 능하다. 과거 고등학교 때부터 주목받아온 선수로 원래는 신라대로 들어가려 했으나 집안 사정(이유는 아래에 후술) 때문에 동민에게 지원을 약속한 명성대로 가게 되었고, 그 결과 친구들이 나가리가 된 건 둘째치고 대학 진학이 좌절된 친구 호성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철준과 사이가 멀어진다. 명성대로 입학해 뛰어난 활약을 하여 스타가 된다. 나중에 다시 윤철준과 화해하고 절친으로 돌아가게 되고, 나란히 국가대표에 선발된다. 철준이 은퇴한 이후에도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하는 한편, 최종화에선 다슬에 대한 마음을 접고 미주와 결혼한다. 절대로 악한 캐릭터는 아니지만 책임감과 승부욕이 강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개인주의적인 성격이 강한 편이라서 극중에서 여러 문제를 만들곤 한다. 명성대로 방향을 틀었던 이유가 어머니 때문이라는 걸 이야기만 했다면 친구들도 실망은 할 망정 어느정도 납득은 했겠지만 끝까지 그걸 숨기는 바람에 여럿이 절망하고 그 와중에 죽는 친구까지 생겼으니....[17][18] 그 일 말고도 뭔가 오모하게 단체생활에서 모난 돌이다 싶은 부분들이 하나씩 있다보니, 당시 만재에게 당하는 동민의 상황이 옳다고는 할 수 없어도 뭔가 현실적이기는 했던 면이 있었다. 오히려 만재가 나중에 동민과 화해하는 부분이 갑작스러울 정도로[19]...

  • 정다슬(심은하) - 본편의 진 히로인. 사실 알고보면 어장관리를 대놓고 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명성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재학. 주인공 이동민과 윤철준 양쪽의 구애를 받는 여주인공으로 다슬 역시 두 사람 사이에서 갈등하며 답답한 모습도 많이 보여 동민, 그리고 특히 친구 미주의 속을 많이도 뒤집어 놓지만, 결국 철준에게 마음을 굳히면서 연인이 되고 나중에 철준과 결혼한다. 결말을 보면 알겠지만, 분명히 사범대학을 다녔는데[20] 초등교사가 된다. 당시 심은하의 머리 스타일이었던 포니테일이 인기를 끌기도 했었다.

  • 최미주(이상아) - 정다슬의 절친. 명성대 문과대학 불어불문학과 재학. 빨간 스쿠프[21]를 몰고 다니며 등하교 때 동민을 자주 태워준다. 동민을 짝사랑했지만, 동민이 다슬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도 뒤에서 응원해주는 대인배,[22] 하지만 그 기다림이 보답을 받았는지[23] 결국 동민과 이어지게 되고, 최종화에서 동민이 철준, 다슬이 있는 초등학교에 방문하게 되는데 이 때 임신 때문에 오지 못했다.

3.2. 명성대학교[24] 농구부


  • 장용호(박형준) - 명성대의 원투펀치로, 그 실력은 이동민에 절대 떨어지지 않고[25] 그 재능 역시 뛰어나다.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 득점력도 있고 경기운영도 잘하는 선수로 나온다. 동민이 다른 선수들로부터 왕따를 당할 때 가장 먼저 친구가 되어주었으며[26][27], 호감가는 인상에 유쾌한 성격이다. 동민과는 친구이자 선의의 경쟁자. 김만재와는 고등학교 2년 선후배 지간.
  • 김만재(허준호) - 명성대 농구팀 주장. 포지션은 스몰 포워드이자 들개 수비수. 처음엔 이동민을 탐탁치 않게 여겨 괴롭히고[28] 심지어 구타까지 하지만 .사실 만재가 동민을 그렇게 갈군 이유는 허 감독의 지시 때문이었다. 나중에 만재가 동민에게 "그 때 내 행동은 반은 진심이 아니었어."라고 말하며 화해(?)한다. 그 후로는 누구보다 동민을 아낀다.[29] 용호와는 고등학교 2년 선후배 지간. 실업팀에 스카웃되어 명성대를 떠나게 된다. 졸업 후에 한영대와의 경기에도 지고 기강이 헤이해진 후배들을 보러 찾아왔다가 실망하여 기합을 주고 엉덩이에 막대걸레자루로 매질을 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끝에 두 명의 엑스트라가 안쪽에 충격 흡수 보호대를 착용하는 걸 깜빡하여 진짜로 맨살(...)에 맞았다는 일화가 있다. 처음에 이동민을 괴롭힌다거나, 한영대와 경기에 진 후배들 기합주고 매질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때 조금 의외의 측면이 있다면, 그 시절치고 의외로 꼰대와는 거리가 있는 면모도 있다. 2년 후배라는 장용호나 이동민이 좀 심하게 기어올라와도[30] 그냥 웃고 넘어가는 모습도 많이 보여주는가 하면, 한영대한테 진 이유가 한영대 애들이 악을 단단히 품고 나와서 그렇다는 장용호의 말에 '마, 농구를 무슨 악으로 해?'라면서 은근히 근성론을 까는 모습도 보여주는 등등... .

  • 허진수(송기윤) - 명성대 농구팀 감독. 이동민의 독기를 기르기 위해서 김만재를 비롯한 선배들에게 이동민을 괴롭히라고 지시하기도 한다. 최종회 시점에선 국가대표 코치를 겸하게 됐는데, 철준의 노력하는 자세와 패스 센스를 높게 평가, 애제자 용호가 아닌 철준을 국가대표로 선발한다. 사실 그가 작중에서 동민과 만재에게 한 행동은 실제로는 짤려도 할 말이 없다. 드라마에서는 좋게 넘어갔지만.[31] 이거 말고도 이동민의 독기를 키우기 위해서 심할 정도로 수단방법을 안 가리고 행동하는 일이 많은데, 이 당시에도 좀 심하다 싶은 정도였을 뿐더러 요즘 같은 경우는 더 크게 비난받을 만하다. 다만 저 시절에는 저런게 지도자의 덕목이라고 포장되기도 했던 시절이라는 것을 감안은 해야 한다... 물론 공과 사를 제대로 구분해서 용호 대신 철준을 추천해서 뽑는 모습이라든가, 나중에 이동민이 방황할 때 동민의 마음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모습 등을 보면 실제로 작가가 이 캐릭터를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으로 묘사하려고 한 모습들이 많이 보이기는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지금 보기에는 좀 무리가 가는 행동들을 많이 했다는게 문제였다. 시대상이 희한한 캐릭터로 만든 경우일 수도 있다.
  • 장코치(이동신) - 명성대의 코치. 본명은 나오지 않았고, 한영대 코치 유학수와 현역시절 같이 뛰었던 절친이다. 의외로 병풍이다.
  • 종렬(최종환) - 김만재의 친구. 설정상 5~6번째 옵션급 식스맨으로 나오는데, 의외로 명문 실업팀에 스카웃되었다고 나온다(...)

3.3. 한영대학교[32] 농구부



  • 김선재(이종원) - 한영대의 선수로 포지션은 스몰포워드 , 과거 철준, 동민이 있는 성운고등학교와의 결승전 대결에서 패배했다. 실력은 이동민 못지 않지만 멘탈이 잘 흥분하는 스타일이라 경기를 망치기도 하는 양날검 같은 존재.[33] 그 외 주먹을 상당히 잘 쓴다. 철준과 사이가 안좋았지만 나중에는 친하게 지내게 된다.[34] 훗날 명성대와의 경기 중 부상을 당해[35] 농구를 접는다. 고아원 출신으로 자신이 고아라는 것에 대한 자격지심때문에 수진을 밀어내고 있었지만, 결국 수진과 사귀게 되고,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그만둔 뒤엔 자신이 자란 고아원의 아이들에게 농구를 가르치면서 살아간다. 다리부상으로[36] 선수생활이 끝났을 때 철준과 한 가지 약속을 했는데, 그건 바로 철준이 국가대표로 선발되면 선재의 등번호인 12번을 다는 것이었고, 철준은 국가대표가 되어 그 약속을 지킨다.
  • 김수진(신은경) - 한영대 농구부의 매니저. 한영대 부속 중-고등학교 출신이고 , 고등학교 때부터 한영대 선수단과 안면을 익혔다고 한다. 왈가닥이긴 하지만, 거친 남자 농구부 선수들을 때로는 다그치고, 또 때로는 보듬을 줄 아는 모성애의 소유자. 선재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 견원지간으로 지냈지만, 그러던 중에 서로 정이 들면서 연인 사이가 된다. 맘에 안 들면 사람을 미물로 부르는 습관이 있는데, 김선재에게 말미잘이라고 부르는 거야 그렇다 치고 윤철준에게도 '바퀴벌레' 라고 부른 적이 있다.
  • 마이클 최(박재훈) - 한영대로 유학 온 한국계 미국인으로 한국 이름은 최욱. 키가 크고 탄력이 좋아 멋있는 덩크슛[37]이 가능한 선수이며[38] 센터내지 파워포워드를 맡았다. 철준에게 덩크슛을 가르쳐 준 선수이기도 하다. 슬램덩크의 강백호가 연상 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은 덩크밖에 할 줄 모른다는 대사를 쳐서다.
  • 박용주(이정훈)[39] - 한영대 농구부 주장. 포지션은 슈팅가드. 성격이 원만하고 자상한 성격[40]. 한영대에서 김선재에 이은 제 2의 득점 옵션이다. 물론 윤철준의 포텐이 터진 후에는 3옵션이 되었으며 김선재가 부상 당하자 다시 2옵션이 된다. 작품 막판에 학교의 우승을 위해 졸업까지 미룬 것이 언급된다. 농구대잔치 결승전 마지막 경기에서 윤철준이 역전 덩크슛을 넣을 때, 시간 거의 안 남은 상황에서 명성의 공격권을 빼앗는 인터셉트를 한 다음 철준의 슛을 어시스트하는 꽤 큰 활약을 한 인물이다.
  • 종순(오현섭) - 한영대 농구팀 주장 박용주의 절친, 포지션은 파워포워드. 원래 주전이었으나 마이클이 입단하면서 벤치워머가 된다(...) 애시당초 별다른 목적도 의지도 없는 전형적인 한영대 농구부의 초기 분위기를 보여주는 인물상이긴 한데, 그래도 성격 자체는 둥근 편이라서 다른 부원들과 사이는 꽤나 좋은 모양. 용주와 함께 졸업까지 미루면서 농구부로 활동한다.
  • 영만 - 한영대 센터. 성이 안나와있다(....) 설정상 팀내 유일의 인사이드 득점 옵션이지만, 이상하게도 종순이나 마이클보다도 비중이 낮으며, 대사는 "알겠습니다"와 "김선재랑 윤철준이 말이냐?" 란 것 뿐이다(...) 의외로 게임 중에 덩크도 하는데, 아무도 대단하게 안 본다(...) 실업팀이나 금융단팀에 스카웃도 안 되어[41] 유학수 코치가 여기저기 알아보고는 있는데 취업마저도 잘 안 된 모양인지[42] 졸업할 때가 지나서도 학교에 있다. 여러모로 안습한 캐릭터
  • 한영대 감독(강인덕) - 한영대 농구팀 감독. 출중한 능력을 갖춘 코치에 비해 지도력이 떨어져서[43] 코치인 유학수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44] 선수들의 뒷담화에 따르면 학교 이사장의 먼 친척이라고 하며, 한영대 농구팀이 해체된 이후 천안캠퍼스 교직원으로 가게 된다. 그 이후 자취를 감춘다(...)
  • 유학수(전인택) - 한영대 농구팀 코치. 실질적인 감독이고, 나중에 농구부가 재창단되고 정식 감독이 된다. 왕년에는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명성을 날렸으며[45][46] 철준의 포인트가드로서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철준에게 농구를 다시 시작해볼 것을 권한다.
  • 정도일(정욱) - 한영대 총장. 경기 중 난투극 사건으로 인해 이사회로부터 압박을 받자 한영대 농구부 해체를 지시한다. 이후 재창단 움직임 때 그만두라며 유학수 코치에게 압력을 넣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날 밤 전용차(?)[47]를 타고 가다가 야외 운동장에서 연습에 매진하는 한영대 농구부원들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를 느꼈는지 이후 한영대 농구부의 재창단을 정식으로 허락한다.

3.4. 신라대학교[48] 농구부


  • 신라대 감독(박인규) - 작중 이름은 불명. 당시 대웅제약 여자농구팀 감독이었던 실제 농구인인 박인규[49]가 직접 맡았다.
  • 배창훈(윤제한) - 신라대 농구팀의 주포. 작중 최고수준의 실력자[50]로 장용호, 이동민보다도 더 괴물같은 선수라 평가 받는다[51][52]. 주인공들보다 한 학년 아래의 선수로 나오는데, 장용호 이동민 때문에 매번 깨진 신라대가 독을 품고 엄청난 돈으로 스카웃했다고...[53]실제 명지대 농구부 93학번인 윤제한[54]이 맡았다. 명성대와의 결승전에서 이동민을 맨투맨으로 마크해 좀처럼 슛을 쏘지 못하게 만들지만[55], 동민이 종료 버저와 동시에 에라 모르겠다하고 하프라인에서 던진 3점이 운좋게 골인되면서 좌절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리타이어(...)한다.

3.5. 동민의 가족


  • 동민의 아버지(신귀식) - 동민에게 신라대에서 명성대로 유턴하게 만든, 어찌보면 만악의 근원. 적어도 이분이 자신의 형편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며 성운고 감독에게 동민의 명성대 진학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면, 적어도 호성은 한을 품고 죽지 않았을 것이고, 철준이 동민을 증오하거나 재수를 하는 일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 동민의 어머니(엄유신) - 오랜 기간 신부전증으로 투병하다가 동민이 농구대잔치 결승전에서 역전 3점을 성공시키며 우승하는 중계장면을 보고 그 순간 세상을 떠난다. 동민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신동파의 광팬이었고, 동민이 농구를 시작하게 된 것도 어머니 때문이었다고 한다. 사실 동민이 신라대에서 명성대로 유턴한 이유는 어머니의 치료비를 지원받기 위해서였다. 어머니 때문에 친구들을 배신하면서까지 명성대에 갔고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지만 농구대잔치[56]에서 우승하던 그 순간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동민의 절망은 컸다.

3.6. 철준의 가족


  • 윤철식(장항선[57]) - 윤철준의 아버지. 전형적인 욕데레 스타일의 아저씨로 보이지만, 주변사람을 만나면 아들 자랑을 항상 하며[58], 트럭을 몰면서 야채장사로 생업을 이어가는 사람이 자기 아들 대학 보내겠다고 트럭을 팔아서 대학 입학 등록금을 떡하니 마련해 주는 등 사실은 그 시절 아버지들처럼 츤데레를 잘 연기하였다.[59] 충청도 사투리가 일품이다.(주요 대사는 "우리 철준이 나이스여!") 식사 때마다 소주 1병씩을 비우시는 분. 의외로 아들 말고 다른 사람에게는 좀 덜 툴툴대는데, 다슬이 대하는 거 보면 며느리바보가 될 조짐이 보인다.[60] 연애 때는 나긋나긋한 남자였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61].
  • 윤영아(전유진[62]) - 전형적인 브라콘 스타일의 여동생. 아버지와 오빠에게 굉장히 헌신적인 모습을 보인다.

3.7. 기타


  • 삼광국민학교[63] 감독[64](고 전운) - 1회 오프닝에 나오는 동민, 철준의 초등학교 시절 감독. 연습에서 싸웠던 동민, 철준을 선발출전 시키지 않고 벌을 주다가 나중에 동민, 철준이 반성하고 있다고 하자 그제서야 교체출전시킨다.
  • 성운고등학교 감독[65](강석우) - 동민, 철준의 고등학교 시절 감독.
  • 양호성(박철) - 이동민, 윤철준의 고교 시절 절친. 동민에게 배신당한 뒤 방황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비록 짧게 나왔지만 철준이 각성하여 마음을 다잡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한다. 지금의 뚱뚱하고 코믹한 이미지가 아닌, 샤프하고 잘생긴 청춘스타 박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작품.[66]
  • 이찬식 - 이동민, 윤철준의 고교시절 절친이자 이동민의 배신으로 낙동강 오리알이 된 친구 중 다른 하나.[67] 졸업 후 셋이 가끔 술을 마시며 신세한탄과 이동민 원망을 하다 군대에 입대한다. 휴가나와서 자기랑 호성이 한 풀어줄 녀석은 너밖에 없다며 농구를 계속 할 것을 부탁하고는 그 뒤엔 등장이 없다.

3.8. 꿈의 캐스팅


MBC에서 1994년 1월 3일 ~ 동년 2월 22일까지 1달간 방영한 손지창, 장동건, 심은하, 이상아[68] 주연의 스포츠 월화 드라마. 조연으로는 당시 대표적인 꽃미남 청춘스타였던 이종원, 박형준, 박철에 대표적인 터프가이 허준호에다가 떠오르는 여배우 신은경 등까지 가세했는데 오늘날에는 다시 보기 힘든 '''꿈의 캐스팅'''이다.
이들의 당시 위상을 설명하자면
  • 손지창은 그 당시에 싱어송라이터 + 원톱급 배우였다.[69] 저 당시 이 레벨에 둘 수 있는 남자연기자는 최수종, 손지창, 김민종 정도였다. 심지어 최수종은 손지창, 김민종과는 나이가 10살 가까이 차이나는 저때 당시 이미 30대 초반이었던 인물이므로 청춘스타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살짝 있었고[70], 사실상 동시대 청춘스타로만 한정하면 손지창, 김민종 투톱 체제라고 보면 된다.
  • 장동건은 물론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장동건의 위상에 비할바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방송가에서 한참 밀어주던 시기였다. 우리들의 천국에서 이미 뜨기도 했었고...
  • 심은하는 무명 신인이었지만 홍보 단계에서부터 이미 미모가 드러난지라 기대를 한참 모으며 기대가 되던 신인이긴 했었고, 결국 이 드라마 1회 방송만에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린 배우가 되었다[71].
  • 이상아80년대 당시 톱 주연급이던 최수종, 손지창, 김민종 등과 상대역이 가능했던 몇 안되는 톱 여배우였다. 저때는 이미연 원톱에 김혜수, 이상아가 2위권을 노리는 정도의 위상이었다고 한다.
  • 허준호는 연기력과 터프가이의 개성, 신은경은 통통튀는 매력으로 나름 독자적인 위치를 가진 배우들이었다. 허준호는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크레딧은 차지할 수 있는 주조연급 배우, 신은경은 여타 드라마에서 서브 여주 정도는 가능한 배우였다.
  • 이종원은 지금이야 약간 살이 찌고 나이를 먹고 이미지가 바뀌어 불륜 전문 배우로 계속 캐스팅이 되지만, 저 당시에는 피지컬과 외모를 동시에 갖춘 몇 안되는 청춘 스타였고 서브 남주는 가능한 배우였다.
  • 박형준은 그 당시 손지창, 김민종, 장동건 등과 한단계 아래이긴 하였지만 그래도 경쟁하던 레벨이었고, 그 역시 음반을 두어장 낸 가수이기도 하였다.
  • 박철은 갑자기 살이 찌고 탈모를 겪으며 아저씨 컨셉으로 전환한 것이지, 저 당시에는 무려 꽃미남 배우의 대표주자였고 서브 남주 정도의 위상은 가진 배우였다. 박철과 비슷한 패턴을 밟은 사람이 신해철이고, 신해철도 그 당시에는 우수에 찬 꽃미남 싱어송라이터였다.
  • 박재훈은 원래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워낙 미남이라 바로 스타덤에 올랐고 뒤이어 여기서 얻은 인기를 이용해 KBS로 가서 딸부잣집에 비중 높은 조연으로 캐스팅되었다.
  • 그 외에 조연급 배우들도 각자 나름대로의 위치를 가진 중견배우들과 청춘스타들이 총집합되었었다.
그래서 이미 어떻게 보면 드라마 기획 단계 기준으로는 주연급인 손지창, 장동건, 이상아부터가 한 드라마에서 다 함께 보기 힘든 캐스팅이었고, 위에 언급한 배우들마저 오늘날 기준으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도 한 드라마에서 한꺼번에 보기 힘든 구성이다.
비교적 최근작으로 그나마 비교가 가능하기는 한 드라마 캐스팅은 2013년작 상속자들이 있다. 꽃보다 남자, 미남이시네요를 통해 한류스타로 발돋음한 이민호, 박신혜 등에 흥행불패 작가 김은숙의 참여는 상당한 해외 자본의 투자를 이끌어내었고, 그러한 상황에서 당시의 한창 유망주로 꼽히던 김우빈, 강하늘, 김지원 등이 가세하고, 유명 아이돌인 크리스탈, 강민혁[72], 박형식 등이 참여하는 캐스팅이었다. 이미 주연이었던 이민호, 박신혜는 말할 필요가 없고 앞서 언급한 인물들은 상당수가 주연급 이상으로 성장했다. 경제상황과 시대적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대략 100억대를 상회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제작비의 큰 차이가 발생했다. 하지만 제작비라면 몰라도 90년대 당시의 저 배우들의 위상과 비교하면 상속자들 캐스팅이 급이 1~2단계 이상 씩 낮은 것은 사실이다[73].

3.9. 배우들의 위상 변화


상술했던대로 꿈의 캐스팅이었고 대성공을 한 드라마였으나 이 드라마를 기점으로 각 배우들의 위상이 변하게 된 특징이 있다. 지금으로 봤을 때는 상전벽해가 따로 없을 정도... 이후 세대들은 손지창이 탑급이었다는 것에 놀란다던지, 박철이 꽃미남 배우였다는 것이 의아하였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 문서에서의 그런 서술들은 사실이다.
  • 손지창 : 최고급 스타였으나 장동건보다 살짝 아래가 되었다. 물론 장동건이 그만큼 인기가 있었다는 것이지 톱급에서 내려왔다는 얘기는 아니다. 전교 1등에서 전교 2등으로 내려갔다고 생각하면 딱 맞는 정도이다. 애초에 김민종과 콜라보인 더 블루도 있기도 했고... 사실 손지창의 커리어에 종말을 알린 것은 10여년 후인 영웅시대 조기 종영+사업 시작 이후이다. 그리고, 손지창은 지금도 사업에만 매진하고 있는 중이다.
  • 장동건 : 떠오르는 청춘스타이긴 하였고 최고급까지는 아니었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손지창을 뛰어넘는 톱급 배우가 되었다.
  • 심은하 : 그냥 신인 여배우였으나 첫 회가 방송되면서(...) 탑 여배우로 등극하게 된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아니라 방영과 동시에 스타가 되어갔던 전무후무한 경우다.
  • 이상아 : 원래는 다슬이 배역이었다는 얘기가 있다.[74] 그러나 심은하의 등장으로 인하여 시간이가면 갈수록 안정적으로 주연을 맡던 위치에서 주조연급으로, 이혼도 하고 풍파를 겪으며 몇년 후에 다시 조연급으로 위상이 낮아지게 된다. 꽤 긍정적인 역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 신은경 : 이 당시 신인이었으나 이 드라마를 기점으로 톰보이스러운 매력을 어필하며 영화계에 진출하여 액션 배우로 대성하였으며 오직 신은경 하나 때문에 찍은 영화인 조폭 마누라 시리즈로 대성하게 된다.
  • 박철 : 이 당시만 해도 무려 꽃미남 배우였고, 가끔 주연도 가능하며 서브남주 정도는 가능한 위상이었으나, 이 드라마를 기점으로 개그 캐릭터를 맡는 조연급으로 위상이 낮아지게 된다.
  • 박형준 : 역시 꽃미남+장신+몸짱 배우에 서브남주 정도는 되는 위상이었고 실제로 이 드라마에서도 실력있고 호감있고 긍정적인 역할에 서브남주 정도 되는 배우였으나 희한하게도 조연급으로 위상이 낮아지게 된다.
  • 이종원 : 역시 꽃미남+장신+몸짱 배우였으나 95년작인 젊은이의 양지라던가 98년작인 청춘의 덫 등의 메이저급 흥행드라마들에서 메인 빌런으로 등장하며 조강지처를 배신하는 배신남 이미지 전문 배우가 되고 만다(...). 위 출연자들과 비교해본다면 위상이 크게 올라간 건 맞긴 한데, 이상한 쪽으로 올라가버린 케이스.
  • 박재훈: 아예 단역이었는데 인기 정상급 배우로 올라갔다. 이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 중 가장 위상 변화가 큰 배우이다.

4. 결말


함께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던 철준의 한영대와 동민의 명성대가 농구대잔치 결승에서 맞붙게되고 치열한 접전 끝에 철준의 뜬금없는 덩크슛 으로 한영대가 승리. 이후 수년이 흘러 철준과 다슬은 결혼, 시골 초등학교의 교사 와 농구팀 감독으로 살아가고, 그런 두 사람 앞에 국가대표로 맹활약 중인 결혼한 동민[75]이 나타나 오랫만의 회포를 푼다. 그리고 철준의 제자들이 '둘 중 누가 농구를 잘하냐?'고 질문하자 그 질문에 답해주기 위해 1 ON 1 시합의 점프볼을 하면서 엔딩.

5. 드라마의 영향력


뭐니뭐니해도 이 드라마의 최대 히트는 다슬이 심은하[76]이다. 심은하를 대한민국 대표배우로 만든 대표 흥행작. 그리고 당시 최고의 하이틴 스타였던 손지창의 인기가 정점에 이렀던 시기로 오프닝 중간에 손지창의 머리칼로 물 튀기는 씬에 당시 여성들이 여럿 쓰러졌으며, 대학교 농구장에선 꼭 머리를 물로 적신 다음에 저거 따라하는 사람이 있었다한다.
다만 이 드라마를 계기로 무동이네집에서부터 절정 인기를 누렸던 손지창은 사그라지고 대신 장동건이 뜬다. 또 절정의 인기는 아니었지만 당시 이미연 다음으로 인기를 누렸던 하이틴스타 이상아도 심은하에게 밟힌다.[77] 덧붙여 신은경은 이 드라마에서는 뜨지 못했다. 신은경이 뜬 건 같은해 나온 드라마 종합병원. 하지만 이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당 드라마에 왈가닥 캐릭터로 사상 첫 주연 캐스팅 됐으니 드라마 덕을 본 셈.[78]

당시 인기리에 연재되던 슬램덩크와 맞물려서 농구의 인기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79] 이와 함께 이 드라마가 방영되던 시기에 열렸던 93-94 농구대잔치에서 문경은(90)-이상민(91)-우지원(92)-서장훈(93) 의 환상적 라인업을 가졌던 연세대가 맹위를 떨치고 있어 드라마의 시너지효과도 높았다.[80][81]
특히 아래 나오는 대학농구 선수들 마지막 승부 세대는 웬만한 연예인은 범접도 못할 정도의 유명스타가 되었고[82] 그런 인기를 바탕으로 1997년 프로농구도 출범[83]했다.
게다가 후술하다시피 드라마 주제곡와 OST 일부가 타 방송사인 KBS의 가요톱10 무대에까지 올랐으며, 김민교가 부른 주제곡은 아예 1994년 3~4월 5주 연속 1위에 올랐고 극중 주인공을 맡은 손지창의 '사랑하고 있다는 걸' 또한 1994년 4월 6일자에서 1위 후보까지 올랐다. 당시 영상

5.1. 마지막 승부 세대


이 드라마가 한국 스포츠, 특히 농구에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노리고 키우거나 그런게 아니라 마침 이 시기에는, 실제로 재능있는 농구 유망주들이 많이 나왔던 시기로 이들이 대학생이 되면서 실업선배들과 겨룰 수 있었고 그 덕에 스타급으로 성장한 젊은 농구 선수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 데다 마지막 승부 드라마의 버프까지 받으면서 88올림픽 국가대표 세대인 선배들, 기아자동차의 허재, 강동희, 김유택[84], 삼성전자의 김현준, 김진, 서대성, 현대전자의 이충희, 이원우, 이문규 등의 선배들과 대결구도까지 자리잡았다.
그 덕에 문경은, 이상민, 우지원, 전희철 등 외모까지 받쳐주는 대학 스타들이 주도하던 농구대잔치의 인기는 최절정에 달했고 이때 대학무대에 등장했던 90~94학번대 선수들은 일명 '''마지막 승부 세대'''라는 별명을 얻으며 농구라는 종목 자체의 인기 상승을 주도했고[85], 그 결과물이 바로 이들의 마지막 종착점이었던 KBL.
이때 등장한 선수들 중 마지막이자 한국 농구의 주역인 서장훈이 2013년 3월 은퇴하면서 이제야 한국 농구는 마지막 승부 세대에서 벗어났다고 할 정도.
'''주요 마지막승부 세대'''
이들 중 연세대 선수들은 이후 국가대표선수들로 카메오로 출연했으며[87] 명지대 선수였던 윤제한은 신라대의 주포 배창훈으로 나왔다.

6. 미디어믹스


1995년 12월에 삼성전자게임화했지만, 결국 묻혀버린 비운의 작품이다.

7. 기타


일본 만화계의 슬램덩크와 함께 한국 스포츠 드라마 역사상 최대 그리고 최후의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슬램덩크>와 <마지막 승부>, <농구대잔치>는 폭발적인 시너지효과로 흥행에 성공한 케이스.
이 이후로 이런 저런 스포츠 드라마들이 많이 나왔지만 결국 망했다. 애초에 스포츠물은 흥행이 안 된다는 인식이 존재했다. 영화는 이현세 원작 이장호 감독의 공포의 외인구단 외에는 흥행작이 없어서 2008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성공할 때까지는 스포츠 영화는 안된다는 이미지가 존재했다. 송강호김혜수 주연의 YMCA 야구단[88]이나 이범수가 주연한 슈퍼스타 감사용도 흥행실패였고, 유오성 주연의 챔피언은 그야말로 재앙.
스포츠 소재 미디어물은 기본적으로 매니아들의 영역이다보니 흥행에 어려움이 따른다. 거기다 실제 촬영시에는 연기자들의 스포츠 훈련이 필요해서 촬영이 더더욱 어렵다. 본문에도 언급되지만 장두익 PD는 이후 장동건과 이종원을 다시 투입하고, 이승연전혜진을 동원한 아이스하키 드라마 아이싱을 제대로 말아먹으면서 흥행 붐이 꺾였다. 이후에 때려이 죽일놈의 사랑과 같은 격투 스포츠 쪽 드라마가 나왔지만 이쪽마저 시청률이 안 나오면서 결국 스포츠 드라마의 제작은 요원해졌다. 게다가 먼 훗날 다시 축구를 소재로 한 스포츠 드라마 맨땅에 헤딩이 제작되었으나, 사상 최악의 시청률 끝에 조기종영 크리를 먹고 만다. 한참 지나서 야구를 다룬 스토브리그가 나왔으나[89] 이 드라마는 선수가 아닌 프런트에 중점을 둔 색다른 길을 택했다.
드라마의 소재가 소재이다 보니 키가 큰 남자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되었다. 농구라는 조건과 그 당시 배우들의 피지컬이 지금과 달리 좋지 않아서 인력풀 부족에 시달렸으며, 그야말로 키 큰 남자 배우들을 싹싹 긁어모았다. 장동건, 손지창, 이종원, 허준호, 박형준, 박재훈, 박철, 이정훈, 오현섭(...) 등등 평균신장이 180cm를 상회하는 수준의 캐스팅이었다. 심지어 선수가 아닌 어른 배역에도 키 183cm의 김기현(...)이 들어가 있을 정도이다.
이 드라마에서 심은하는 유독 튀는 옷을 입는다. 외모 뿐 아니라 확실히 의상도 주변의 풋풋한 대학생과 다르다. 그리고 매회 반드시 눈물을 흘린다. (...)
심은하는 마지막 승부의 청순한 캐릭터 다슬이로 하루아침에 인기스타로 등극했다. 그러나 드라마 종방 직후 전남친과의 동거설이 터지면서 연기생활이 위태로울뻔 했으나, 때마침 김일성 사망이라는 큰 사건이 터지면서 대중의 관심이 옮겨가고 영리하게 인기 요인이던 청순한 이미지를 바로 버리고 다음 작품을 호러 드라마 M의 팜므파탈 캐릭터로 선택하면서 빠르게 이미지 변신을 해 위기를 넘겼다.
이 드라마의 오프닝에서 당시 배우들의 인기도를 읽을 수가 있는데, 1994년까지 아직 하이틴 배우 이미지를 벗지 못했던 장동건에 비해 '''손지창'''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정도였었다.(...) 그러나 드라마가 끝날 때 쯤에 가서는 장동건이 진 주인공으로 등극하게 되고 인기도 역전되기 시작한다.
배경이 90년대인지라 남존여비적인 요소가 어느 정도 들어간 드라마였는데 대표적으로 선재(이종원)가 수진(신은경)에게 '''"어디서 계집애가 감히..."'''라고 무시하거나 철준의 여동생이 진학도 못 하고 돈 벌어서 철준을 뒷바라지해주는 상황[90]이 나온다. 하지만 당시 시대 상황을 감안하면 이 드라마만의 문제는 아니고, 지금와서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따질 수 없다.
남녀차별적인 문제 말고도 음주운전에 상대적으로 너그러웠던 상황도 있다. 술이 잔뜩 취한 만재(허준호)가 새 차를 샀다며 억지로 동민(손지창)과 용호(박형준)을 태우고 가려는 장면도, 요즘 같아서는 상당히 크게 비판을 받을 수 있었던 장면 . 당장 김민구가 무슨 얘기를 듣고 사는지 생각해보면 정말로 격세지감이다. 저 세 사람 중 아무도 그 상황에서 "이러면 안 된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이 20년 사이에 크게 변했다고 봐야 하는 건지…[91]
충공깽스러운 돌발상황도 벌어졌는데, 마지막 승부를 촬영하는데 이동민이나 윤철준의 이름을 연호해야 하는 상황에서 관중들은 갑자기 '''"마이클 최, 마이클 최~"'''를 연발한 것이다. 이 때문에 원래는 연세대학교 농구선수였다가 부상으로 은퇴하고 연기자로 나왔던 박재훈이 순식간에 스타덤에 올랐으며 이 덕에 딸부잣집에 캐스팅 되었다. 서구적인 마스크에 188cm 에 달하며 덩크슛이 가능했던 박재훈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박재훈은 고등학교 시절에 시합 도중 큰 부상을 당했는데 이 때문에 왼쪽 어깨와 왼쪽 무릎의 연골을 제거해야만 했다.[92] 이 때문에 박재훈은 농구장면을 연속으로 오래 촬영할 수가 없었다.
90년대 드라마라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그리고 남성 캐릭터들의 필수요소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흡연 장면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현 시점에서는 공중파 방송에서는 흡연 장면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건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금지된다. 당시에도 담배가 건강에 매우 나쁘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고 있었지만, 성인 남성 사회에서는 그래도 상당히 흔했고, 사무실이나 집안에서 담배를 태우는 광경도 흔했다. 게다가 주인공 철준(장동건)은 여자친구인 다슬(심은하)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더러 있는데, 만약 오늘날에 비흡연자인 젊은 여성 앞에서 대놓고 담배를 피우는 남자가 있다면 거의 퇴짜 확정이다. . 그게 아니더라도 비흡연자에게 담배 냄새를 풍기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고, 오늘날에는 비매너로 인식된다.
코렁탕 드실 만한 설정도 있다. 극 중에서 재수에 성공해 한영대에 입학한 윤철준이 속한 농축산학과와 시합을 했던 농구 동아리 이름이 '''남농당'''이었는데 이는 '''남조선 농구당'''의 약자라고... 물론 저때는 이미 문민정부여서 저 정도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었을 시기이기는 하였다.
하지만 소소한 사고도 끊이지 않았는데 NG가 역대급으로 많은 드라마 중의 하나가 마지막 승부이다.[93][94] 겨울씬을 여름에 촬영하다 보니 지하철에 탑승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죄다 반팔인데 장동건 혼자만 점퍼를 입었다든지 하는 초대박급 NG를 내기도 했으며 손지창의 경우는 산악자전거로 계곡을 내려오는 씬을 찍다가 자전거가 크게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손지창의 팔뚝에 커다란 흉터가 났다. 손지창은 그런 몸상태로 병원에도 못가고 그냥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의 MC를 하는 등 이런 저런 스케줄을 소화하다가 뒤늦게서야 병원에 갔는데 손지창의 담당의사가 하는 말이 '''조금만 늦었어도 파상풍 때문에 큰일날 뻔했다.'''고 한다(...). 지하철 승강장 씬도 마찬가지였는데 일반인들이야 눈치 하나 채지 못할 수 있지만 철도 동호인 입장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슨 말이냐 하면 같은 열차가 지나가는데 열번[95]이 바뀌어 있다던가, 심지어 구동음 소리가 같은 열차인데도 다른 소리가 나는 등으로 오류가 많았다. 그리고 MELCO 초퍼와 GEC 초퍼 차량의 차이를 알고 있다면 당연히 외형에서도 소소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똑같아도 철도 동호인이 보기에는 아니라는 것.[96] 물론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애초에 MELCO 초퍼와 GEC 초퍼는 차량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무동력차가 아닌 다음에야 한 편성에 섞어서 운전할 수 없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심은하의 배역인 다슬이는 분명히 손지창, 이상아와 함께 '''종합대학교'''인 명성대를 다녔는데 '''초등교사'''가 되는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어이없는 결말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무리 90년대 초반이라도 있을 수가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97] 다만 김대중 대통령 시절 1997년 외환 위기와 교원정년 단축으로 인해 60대 초반 교사들이 대거 명퇴하면서 사범대 졸업생들에게도 초등교사 임용고시 응시 자격이 주어진 중초임용을 시행한 적은 있었다. 심은하가 90학번인데다가 결말이 장동건 은퇴후라는걸 생각하면 90년대 후반이나 00년대 초반이었을 테니 나름 적절한 고증일 수도 있다. 과거 빙그레 이글스 야구단에서 활약했던 지화동이 이 케이스로 초등학교 정교사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교대편입을 했을 수도 있다. 어쨋든 심각한 고증오류인 것은 사실.
실제 농구선수도 잠깐 등장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농구단 훈련장에서 찍을 때에는 삼성전자 선수들이 슈팅 연습을 하는 장면이 찍혔다. 김현준을 비롯하여 김진, 이창수 등이 나온다. 물론 뒷모습만. 그리고 기아자동차 체육관에서 찍을 때에는 아예 대놓고 기아자동차 마크까지 드러내며 간접 광고를 서슴치 않았다.[98] 기아자동차 체육관에서는 허재가 한영대학교를 졸업한 선배역으로 등장하며 당시 기아 감독인 최인선까지도 등장한다. 허재는 여기에 출연하며 몇 마디 대사를 하는 것만 나오는데, 이 장면을 찍으면서 NG를 많이 냈다고. 덕분에 허재의 후배 선수들이 허재를 "연기 못한다"고 놀려댔으며 촬영이 끝난 후 허재는 '''"농구보다 연기가 어렵다"'''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거기에 이동민과 윤철준이 국가대표로 차출되어 훈련을 하는 장면에 동원된 엑스트라들로 대학농구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당분간 시합이 없었던 연세대학교 농구팀(!!!)이 통째로 섭외되었다. 그 중에서 서장훈은 나중에 방송인으로 데뷔했다.
그런가 하면 명성대학교 선수 배역 중에 실제 배구 선수 출신이 있었다고 한다. 송국영인데,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현대자동차서비스 배구단(현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에 입단하여 활동하다 그만둔 선수이다. 장두익 PD의 말로는 여태까지 때리는 것만 하다가 던지는 것을 하려니 아무래도 본인에게는 어색했는지 촬영하면서 애를 먹기도 했다고 한다.
박형준[99], 이종원[100], 장동건[101]은 그래도 최소 기본 이상의 기량을 가진데 비하여, 메인 남자 주인공이었던 손지창의 슛폼[102][103]에 대하여 소소한 논란이 있었기도 하였다. 실제로 당시 탑급 메인 남자주인공은 최수종, 손지창, 김민종 정도였는데, 겹치기 출연을 배제하고라도 최수종은 비록 동안이고 운동신경이 좋은 배우였지만 연령대 자체가 출연진과는 10살 가까이[104] 차이가 나는 배우인데다가 농구 드라마를 촬영하는 것이라서 '''키 172cm에 불과한''' 최수종이 키 180cm 수준의 체격을 가진 이들과 어울리며 드라마를 찍을 수 없었고[105][106], 김민종은 농구에 아예 취미가 없는 배우였다. 그래서 김민종이 나온다면 박철 정도의 비중을 가진 배우로 나와야 하는데 그렇게 나올 수 없는 레벨이기 때문에 나오지 못한 것 같다. 결국 내세워야 하는 탑급 남자 배우는 그나마 농구 좀 한다고 얘기하고 다니던 손지창이었다.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손지창의 기량이 향상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사실 인력풀 문제일 수도 있는 것이[107] 그 당시 키 대충 크고 농구 좀 한다는 남자 배우들을 박박 긁어 모은다는 것이 저만큼이었고, 메인 남자 주인공인 손지창의 역할을 제일 농구 잘했다는 박재훈[108]이나 박형준[109]이 맡을 정도로 위상은 아니었기 때문에 벌어진 촌극이었다.

여기서 재미를 본 MBC가 장두익 PD를 비롯한 마지막 승부 팀으로 1996년에 아이스하키를 소재로 한 드라마 아이싱을 내놓으면서 마지막 승부 인기의 재림을 노렸다. 더군다나 마지막 승부에서 주연이였던 장동건이종원을 그대로 캐스팅하고 여기에 이승연 등의 호화 캐스팅을 가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재미를 보진 못했다. 조연으로 최강희유태웅, 김명수,[110] 경인선[111] 등이 출연했던 것 정도가 흥미로운 점.
손지창은 이 시기 이미 가수로 인지도가 있었고,[112] 심지어 김민종과 '더 블루' 라는 듀오까지 형성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이유로 마지막 승부 OST에도 참여했는데, 삽입곡으로도 사용된 그 노래가 손지창이 작사까지 한 '사랑하고 있다는 걸'이다. 같이 활동한 김민종이 귀천도애로 표절논란에 휩싸이고[113] 아래도 언급되지만 김민교가 부른 주제가도 표절논란을 겪었지만 손지창이 부른 이 노래만은 그런 논란이 없어서 진정한 명곡 취급을 받는다.
한편,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음에도 제작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지 못하여 필요 이상의 비용을 낭비했다고 회사 측으로부터 징계를 받았으며 심은하가 맡았던 정다슬 역은 당초 우희진, 고소영, 박소현 등이 물망에 올랐으나 영화 촬영 등으로 섭외가 안 되자 설득 끝에 심은하가 낙점됐다.
명성대학교의 촬영장소는 경희대학교 한영대학교의 촬영장소는 한양대학교이다.
이 드라마가 방영된 1994년 한 해동안 MBC가 미친듯이 걸작 드라마를 쏟아내면서 드라마 시청률을 완전히 독점했는데, 94년 드라마 시청률 상위 7위까지가 죄다 MBC 드라마였을정도로 '''드라마 왕국'''의 절정을 찍은 시기였다. 마지막 승부, 아들의 여자, 야망, M, 서울의 달, 사랑을 그대 품안에, 종합병원이 전부 94년에 방영되었다. 하지만 1995년부터는 막 전국방송으로 도약하기 시작한 SBS모래시계KBS2 주말 연속극 젊은이의 양지 등이 엄청난 강세를 보이면서 상황이 뒤집혀 MBC가 주춤하게 된다.

8. 주제가 표절 사건


슬램덩크와 더불어 농구 붐을 일으킨 드라마답게 작품 자체도 유명했지만, 가수 김민교[114]가 부른 주제가 '''마지막 승부'''[115] 역시 큰 인기를 끌며 작품을 빛내는 데 일조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KBS의 가요톱10에서 '''골든컵(5주 연속 1위)을 수상'''했을 정도다.
그 뒤 이 곡이 일본의 여가수 테라다 케이코[116]가 1992년 발표한 노래인 '파라다이스 윈드(PARADISE WIND)'를 표절했다는 사실이 1994년 당시 한 시청자의 제보로 제기되었고, 이 논란은 현재까지도 계속 회자되고 있다.

'''마지막 승부 주제곡'''

'''PARADISE WIND - 테라다 케이코'''
'''두 노래를 겹쳐서 들어보면 기본 코드가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다만 기본 코드를 제외한 세부적인 멜로디는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에 1994년 당시 공연윤리심의위원회(공륜)로부터 표절 판정을 받는 것만은 면했고, '''이미 드라마 방영 초기에 내부적으로 표절 문제가 제기되면서 일부 비슷한 멜로디도 수정되었다.''' 초기 버전은 일부 멜로디가 PARADISE WIND와 비슷한 '''번안''' 수준이었던지라 이걸 기준으로 했다면 당연히 표절 판정을 받아 퇴출되었겠지만, 수정판의 경우에는 군데군데 멜로디를 다르게 고쳐놔서 가까스로 표절 판정을 피할 수 있었다. 차라리 PARADISE WIND 저작권자에게 일정 금액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코드를 따왔더라면 표절 시비에서도 자유롭고 오히려 새롭게 편곡한걸로 일본에서도 화제가 되었을 법한데 그저 안습.
그리고 그 수정판이 현재 흔히 구할 수 있는 버전인데, 현재도 CBSKBS 등의 라디오 방송에서 가끔 수정판이 아닌 기존 버전으로 보이는 버전을 틀기도 한다. 또한 마지막 승부 드라마 본편에 삽입된 주제곡 음성을 들어보면 위 영상과는 멜로디가 중간중간 다르며 특히 후렴구 부분은 앞서 말한 Paradise Wind와 거의 같다. 1분 30초부터. 게다가 노래를 부른 당사자인 김민교조차 가끔 수정 전 버전으로 불렀는데[117] 이걸 보면 사실상 초기 버전이 얼마나 Paradise Wind와 같았는지 짐작 가능. 1994년 4월 6일자 가요톱10 1994년 4월 13일자 가요톱10
이는 다음의 실시간 음악찾기 서비스인 '방금 그 곡'에서도 구분이 가능한데, 수정 전 버전은 '(연주곡)'이 붙어 인식되고 수정판은 '(연주곡)'이 붙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1993년 발표한 BAAD의 君が好きだと叫びたい(슬램덩크 1기 오프닝곡으로 사용되었다.)의 전주 멜로디 일부를 표절하여 그대로 마지막승부 주제가의 전주에 사용했다. 참고로 노래를 부른 김민교는 현재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안방(?)인 MBC의 경우 1993년 10월 '결정! 최고 인기가요'를 폐지한 뒤 1995년 4월 인기가요 베스트 50이 부활하기 전까지는 가요 프로그램이 없었던 탓에 드라마 종영 후 자취를 감췄지만, 그 대신 KBS 가요톱10 무대에 오른 것도 모자라 '''1994년 3~4월 5주 연속 1위를 달성하여 골든컵까지 수상했다!''' 맨 처음 무대에 올랐던 1994년 2월 23일 방영분에서는 립싱크로 나오는 대신 '''농구 선수와 치어리더'''가 등장하는 화려한 무대로 주목받았고, 한달 후인 3월 23일자부터 5주 연속 1위를 할 때는 표절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새로운 편곡 + 후렴구 여성 코러스 추가로 색다른 버전이 되었다. 거기에 올 라이브로 김민교의 가창력이 돋보인건 덤. 1994년 4월 20일 5주 연속 1위 무대
[1] 해당 영상은 VHS판 영상인데, 본방 때는 제공자막이 떴다.[2] 현실의 연세대학교를 모티브로 하였다. 물론 이름은 명지대학교에서 따왔다. 유니폼도 당시 연세대 유니폼과 비슷한 색깔. 그러나 촬영장소는 전부 경희대학교이다.[3] 현실의 중앙대학교한양대학교를 혼합하여 모티브를 한 것으로 보인다. 전남 여수시에 있는 한영대학교와 무관하다.유니폼은 당시 한양대 유니폼과 비슷한 색깔이며 촬영도 한양대에서 했다. [4] 고려대학교를 모티브로 했다. 이름부터가 고려대를 비교하면서 따온 이름이며, 명성대와 명문대이고 라이벌 구도로 엮는 것 등. 당시 고려대 유니폼과 비슷한 색깔이다. 당연히 부산에 있는 신라대학교와는 무관하다. 거기다 방영 당시에는 부산여자대학이었다.[5] 케이블TV는 출발단계여서 지상파 외에는 채널이 없던 그 당시 한국 내에도 시청자가 많았다.[6] 본래 엔딩이 드라마 촬영중 변경되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이종원이 드라마 촬영 중 부상을 당하게 되고, 때문에 본래 엔딩에서 장동건이 부상으로 농구를 그만둔다는 설정이 이종원으로 변경되었다...[7] 당시 신부전증에 걸린 어머니의 치료비를 지원해준다는 명성대로 방향을 돌렸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끼워주기로 한 철준, 호성은 공중에 떠버리게 된다. 신라대 진학이 무산된 친구 호성(박철)은 방황하다 그만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철준과 동민의 사이는 순식간에 틀어져버린다. 그런데 정작 치료비를 지원받은 동민의 어머니는 결국 병이 악화되어 사망, 이후 다슬(심은하)을 통해 전후 사정을 알게된 철준은 동민과 화해를 하게되고 선의의 라이벌로 거듭나게 된다.[8] 사실 명성대에서 철준은 받아주기로 했는데 철준이 의리상 가지 않기는 했다. 극중에 이 이야기는 여러 번 나온다.[9] 당시 입학한 과가 농축산학과... 지금도 높은 편은 아니지만 당시에 농대의 이미지는 모든 대학의 최하위권 이미지였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합격한 과를 말하는 철준의 "농축산학과요..."라는 대사에서 시청자들이 "풋"하고 웃기도...시청자들은 그렇다 치고 드라마 안에서 장항선이 대놓고 '꼭 지 같은데 들어갔네...' 라면서 한마디 픽 쏘아붙이기도 했었으니..[10] 물론,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전공은 아니었다. 게다가 서울 소재의 유서 깊은 사립 대학인데...드라마 설정상으로도 명성대 정도는 아니라도 성적이 잘 나와야 들어갈 수 있는 대학으로 나온다.[11] 아무래도 득점을 하는 선수가 아니라 그랬던 것.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재능은 있으나 농구에 큰 열의도 없었던 듯 하다. 철준이는 재능은 있는데 게으르다는 호성의 대사도 있고, 본인이 복수심 말고는 농구하는 절박한 이유도 없단 이야기도 했고....[12] 지금이야 효율성을 따진다고 PER도 보고 하니까, 철준 정도 자원도 빛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도 골수팬이 아니라면 득점을 위주로한 누적, 평균 스탯을 보는 팬들이 많은 판국에 저 시대에 어시스트에 주력하는 철준이 주목받기는 어렵다. [13] 이전 각주에서도 나온 내용이지만 명성대에서는 철준까지는 같이 받아주기로 했었다. 하지만 철준이 "나더러 너(이동민)와 똑같이 치사한 놈이 되라는 소리냐?"며 거절.[14] 윤철준이 대학 2학년, 이동민이 3학년이던 때의 대학 대회 4강에서 철준의 버저비터로 한영이 명성을 이겼을 때, 빡쳐서 애들 군기 잡으러 왔다가 동민, 용호, 만재가 술을 마시면서 한 이야기에 따르면 철준의 실력이 확실히 강팀의 에이스 급으로 성장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셋 다 철준의 실력이 늘었던 것이 자기들의 패배 요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15]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가까운 예로 슬램덩크에 정대만이 2년 공백기로 인해 결국 마지막까지 체력적인 문제는 극복못했다는 걸 떠올려보자. 심지어 공백시기도 정대만보다 1년정도 느리다.(정대만 고1~2학년, 윤철준 고3~대1) 결정적으로 공백기동안 윤철준은 술, 담배를 엄청 했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이런 상황에서 공백기를 가진 선수가(공백기동안 운동도 전혀 안한) 에이스가 된다? 그냥 드라마라고 이해하고 넘어가자.[16] 포인트가드라고 한다지만 드라마에서의 플레이 스타일을 보면 무조건 슈팅가드이다. 포인트가드는 철준과 용호이다.[17] 이건 결국 이동민의 어머니가 위독하실 때 병원에 들렸던 미주가 이동민의 아버지에게 사정을 들은 뒤에야 알게 될 정도로 어느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이동민 아버지 말에 따르면 상황을 이야기하자는 말에 이동민 본인이 뭘 그렇게 구구절절하게 변명을 하겠냐며 자기 혼자서 나쁜 놈이 되어 떠안고 가겠다는 식으로 묻고 갔다는데 결과적으로 너무 안 좋게 된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 알겠지만 이동민의 아버지는 이유를 묻는 고등학교때 농구 코치에게도 죄송하다는 말 말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8] 다슬에게 동민의 사정을 전해 들은 철준이 동민에게 와서 다그치며 한 말인 "넌 임마, 진짜 배신자보다 더 나쁜 놈이야. 알어? 너 혼자서만 잘난 척, 최고인 척 모두 다 덮어 쓰고, 뭣도 모르는 우리한텐 한을 품게 하고 독을 품게 하고 악을 품게 하고, 그저 널 이기기 위해 몸부림 치고 발버둥 치는 그런 인간들로 만들어 버렸어. 그래, 나도 호성이도, 우린 너한테 친구도 뭐도 아니었어." 라는 대사는 이동민의 선택이 결과론적으로 친구들에게 어떤 마음을 먹게 되었는지를 잘 알게 해 준다. 본인은 그냥 구질구질한 사람이 되기 싫었던 것이겠지만 그게 절대 친구들을 위한 선택은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철준이 각성하게 되었지만...[19] 이상할 것까지는 아니다. 어떤 계기가 있으면 친해질 수 있다. 그리고 원 팀이 되어야 하는 운동부라는 것을 감안하면... 단지 시간이 꽤 걸려야 하는 일이 짧은 시간내에 화해가 되어서 갑작스러운 것이다.[20] 정말 진지 빨고 보자면, 명성대는 분명히 여러 학과가 있는 종합대학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립 종합대학 중 초등교육과를 가지고 있는 학교는 오로지 이화여자대학교밖에 없다. (2008년 제주교육대학교국립 제주대학교에 통합, 제주대학교 초등교육과가 됨) 그런데 명성대는 분명히 남녀공학이니까...[21] 그 당시 경제 수준으로 새내기 여대생이 스쿠프를 몰고 다닌 다는 것은, 지금으로 치면 외제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그 당시에는 교수들도 자전거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22] 그렇긴 한데 얘도 사람인지라 많이 서운해하기도 하고, 다슬이랑 관계가 어색해지기도 하고 한다.[23] 동민이 어머니 돌아가실 때 이동민 멘탈 챙겨주고 옆에서 제일 많이 위로해 준 게 미주... 그러면서도 동민이 자기 마음을 몰라주니 울면서 하소연을 하고... 동민도 받아들이게 된 듯..[24] 현실의 연세대학교를 모티브로 하였다. 물론 이름은 명지대학교에서 따왔다. 유니폼도 당시 연세대 유니폼과 비슷한 색깔. 그러나 촬영장소는 전부 경희대학교이다.[25] 오히려 초반에는 이동민보다 더 뛰어난 선수로 묘사된다. 명성대는 이미 장용호를 스카우트 했고, 이동민과 김선재 둘 중 하나만 잡으면 된다는 생각이었으며, 김선재를 잡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었는데, 고교 대회 결승전 성운고(이동민의 고교)vs세영고(김선재의 고교)와의 경기에서 역전 3점슛을 넣고 우승을 이끈 이동민의 활약상을 보고 김선재 대신 이동민을 스카우트한다. 결론적으로 대학 입학 때 랭킹은 장용호>이동민>김선재였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대학 생활 초반 청소년대표 선발에서도 이동민을 이기고 선발되는 등 초반에는 이동민보다 경쟁에서 약간 앞서는 선수로 나온다.[26] 처음에는 동민이 무슨 개수작이냐고 의심하였다.[27] 선배들이 집단구타를 할 때 종종 용호가 막아주었다. 처음에는 빌면서 막아줬고, 그 다음에는 자신도 주먹을 써보겠다(!)고 응수했다.[28] 한번은 호성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뒤 동민에게 "너같이 친구를 배신한 놈은 까야 제맛"이라면서 기합을 준 적도 있다.[29] 특히 경기 중 난투극 때 선재에게 구타당하는 동민을 보면서 눈이 완전 뒤집히며 흥분하는 장면을 보면 안다.[30] 이 때는 이동민을 아끼기 시작했을 시절이긴 했다.[31] 왕따당하는 사람이 받는 심리적인 고통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어떤 이유에서든 왕따 조장이라는게 지도자로서는 절대 실격인 이유[32] 현실의 중앙대학교한양대학교를 혼합하여 모티브를 한 것으로 보인다. 전남 여수시에 있는 한영대학교와 무관하다.유니폼은 당시 한양대 유니폼과 비슷한 색깔이며 촬영도 한양대에서 했다. [33] 자신의 마크맨이 누구이든 간에 이동민에게 달려든다. 포지션이 다른 선수를 감정으로 막으면 미스매치 및 수비공백이 생기니까...[34] 하도 얘네가 싸워대니까, 답답해하던 주장 용주가 얘네를 데리고 가서 술을 먹이면서 하소연을 한다. 둘 다 의외로 타도 이동민이라는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두 사람이 그 날부터 의기투합하게 된다. 윤철준은 이동민만 잡을 수 있다면 김선재에게 형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한다.[35] 농구부가 잠시 해체될 당시 폭력 조직에서 활동하다가 무릎을 다쳤는데, 명성대와의 경기 중에 루즈볼을 잡으려다 그 부위를 확인 사살당한다(...)[36] 그래서 다리를 절게 된다.[37] 극중 덩크슛을 한 인물들은 모두 작대기 덩크슛을 했고, 윤철준마저 마지막 장면에서는 의자의 도움을 받은 덩크슛을 시전하였다. 아무리 운동을 좋아한다고해도 장동건같은 일반인이 작대기 덩크라도 하려면 최소 185~190cm는 넘어야 한다.[38] 실제로 농구선수 출신이다.[39] 불륜 전문배우로 활동하는 그 사람 맞다.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 : 12번째 남자의 주인공 그 분!!![40] 주먹다짐을 하는 윤철준과 김선재에게 따귀를 날리지만, 21세기가 아니라는 시대상을 감안해야 한다. 그래도 술까지 사줘가면서 둘이 제발 화해하라고 어르고 타이른다.[41] 극중에서 키만 크고 힘이 없는 센터 자원으로 묘사된다. 당연히 김주성 급 기량이 아닌 것으로 묘사되었으니, 실업농구에서 그리 필요없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42] 저 시절에는 대학졸업장만 있어도 취업이 잘되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극중에 나온 한영대는 농구단을 갖춘 인서울대학이다. 적어도 중경외시 정도의 학교이다.[43] 실제로도 안목이 떨어져보이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가령 철준의 입단 테스트를 할 때 종순이 "2년 쉰 선수답지 않게 기초체력이 대단하고, 순발력도 있다", 용주가 "슛은 부정확하지만 근성과 센스가 있다"고 칭찬할 때 혼자만 특출난 장점이 없다고 혹평했고, 명성대 전에서 철준과 선재가 이동민에게 고의 파울을 시전하자 유 코치가 작전타임을 신청해 "그러다가 큰일난다"고 경고했지만, 이 분은 "이 페이스로 나가자"고 했다(...)[44] 철준과 선재가 시합에서 협력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홧김에 그만둔다고 말한 유학수를 달래며 자네가 없으면 난 어쩌냐고 말할 정도[45] 명성대 장용호가 제일 존경하는 농구선수라고 했을 정도. 제자(위에 나오는 영만이)스카웃 문제로 명성대를 찾아왔을 때 엄청난 빠심을 보여줬다.[46] 대표팀 선발 회의에서도 명성대 감독이 우리가 중국을 이길려면 유학수 같은 선수가 필요하다고 언급할 정도[47] ?를 표시하여 의아하다고 하였지만 농구단을 가지고 있을 인서울 정도의 대학으로 묘사된 한영대라고 생각한다면, 총장 전용 차량이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다. 보통 심지어 규모가 작다는 대학에도 총장 차량 운전직 직원 TO가 있다.[48] 고려대학교를 모티브로 했다. 이름부터가 고려대를 비교하면서 따온 이름이며, 명성대와 명문대이고 라이벌 구도로 엮는 것 등. 당시 고려대 유니폼과 비슷한 색깔이다. 당연히 부산에 있는 신라대학교와는 무관하다. 거기다 방영 당시에는 부산여자대학이었다.[49] 현재는 KBL에서 경기감독관을 하고 있다.[50] 그 당시의 서장훈이나 현주엽을 모티브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 내외곽이 모두 가능하며 극중에서 다룬 장면도 골밑 자원이다. 단, 드라마인지라 서장훈이나 현주엽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잘생긴(...) 윤제한을 데리고 촬영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서장훈은 그 후로 25년 후 최고의 예능인이 되고, 현주엽도 30년 후에 TV에 예능으로 출연하게 된다.[51] 이 얘기도 어폐가 있는데, 192cm의 키를 가진 현실의 윤제한도, 극중의 배창훈도 4,5번 포지션이다. 심지어 드라마 상에서도 외곽슛을 쏘긴 하지만 골밑에서 주로 활약하는 배창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마디로 그 당시 서장훈의 플레이를 모티브로 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1,2번 포지션의 장용호, 이동민과 맞설 일이 없다.[52] 더군다나 키 183cm의 김선재와 허준호를 현실에서 190cm대가 맡는 스몰포워드로 설정하고 183cm의 키 를 가진 오현섭을 195cm 정도가 맡는 파워포워드로 설정 하였다. 또한 키 188cm의 박재훈을 195~2m짜리가 맡는 센터자원으로 설정하였다. 사실 박재훈 정도의 체격이면 방송국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최대 피지컬이다. 따라서 방송과 스포츠 현장은 인력풀 자체가 다른지라 실제와는 다른 축척이 적용된다. 그래서 183cm인 두 사람이 190cm가 맡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따라서 192cm의 윤제한은 2m 이상의 장신 골밑 자원으로 묘사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드라마는 드라마라지만 딱봐도 192의 윤제한과 180의 손지창은 키차이가 확 나는데 같은 포지션으로 묘사할 리가 절대 없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180cm의 손지창도 마른 체격때문에 크게 보이지 않는 것이지 그 당시로는 키 크고 잘생긴 남자배우의 반열이었다. 178cm 최민수도 키 엄청 크다는 얘기를 들었을 정도였으니까...[53] 명성대 감독 말로는 자기네도 할만큼 해봤는데 상대가 안되더라고 했다. 작중 명성대가 돈 쓰는 걸로 뒤지는 학교가 아니라는 걸 감안한다면 뭐...[54] 후에 서울 SK 나이츠에서 선수생활을 했다.[55] 프로에 와서야 스몰포워드인 로데릭 하니발이 포인트가드인 이상민을 막았다던지, 2m인 최준용이 타팀 단신 가드들을 막았다던지 하는 일이 있긴 했으나 저 시대에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다. 왜냐면 윤제한 정도 되는 피지컬이면 저 당시 센터도 가능했었고, 심지어 각 팀마다 골밑자원이 모자랐기 때문에 4,5번인 배창훈이 2번 포지션인 이동민을 막는다는 것은 신라대 입장에서는 사치이면서, 명성대에게 인사이드를 내주는 결과를 맞이하기 때문에 슈팅가드 이동민 하나 막겠다고 이런 작전을 펼치는 것은 바보짓이나 다름없다. 더군다나 최고의 포인트가드인 장용호가 있기 때문에 장용호가 숨만 쉬고 있어도 명성대 골밑자원들에게 킬패스가 전달되게 되어 신라대의 골밑은 초토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차라리 이동민을 막느니 장용호를 막는 것이 승부를 위해서는 그나마 나은 상황이다.[56]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당시 농구대잔치는 국내 농구 한정으로 가장 큰 대회였으며 지금으로 치면 프로농구를 싸대기 날려버릴 정도의 위상이었다[57] 당시 장항선은 월, 화요일엔 MBC의 마지막 승부, 수, 목요일엔 KBS2의 폴리스에서 조직 보스 역으로 출연했는데, 마지막 승부에서의 철준이 아버지와 폴리스의 그 악독한 조직보스의 갭에 당시 어린 시청자들이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 카더라. 근데 뭐 여기서도 그다지 나긋나긋한 역은 아니었는지라...[58] 아들이 역전골로 명성대를 이기자 마자 아들자랑을 하며 한다는 소리가 '오늘 장사 땡이다..!! 술푸자, 술퍼...!!' 였으니 뭐...[59] 철준이 국가대표로 뽑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보이는 반응은 그야말로 츤데레의 교과서이며, 츤데레 문서에서 가장 잘 표현한 츤데레이다. 철준이랑 여동생 앞에서는 뭐 그까짓 것 가지고 수선피우고 난리냐느니 국가대표가 어디 이 놈 한 놈 뿐이냐느니 하더니만, 방에 들어가자마자 죽은 와이프 사진을 꺼내들고는 온갖 감정을 다 드러낸다.[60] 아들이 다슬이땜에 힘들어 하는 거 보고는 동네 선술집에 다슬이를 끌고가며 말발로 애 마음을 잡아놓을 정도니... [61] 철준이 대학 진학을 물먹고 방황하던 시절 보다 못해 집에 있던 농구코트를 부숴버렸을 때 철준이 화를 내며 따졌을 때 한 번 뒤엎고, 한영대 농구부가 해체되고 방황할 때 학교을 그만 다니겠다고 말하자 빡쳐서 또 뒤엎는다[62] 제4공화국(드라마)에서 그분으로 나온 배우. 현재는 중앙일보에서 디자이너로 근무 중이다.[63] 삼광초라고 했지만 극 중에서 묘사한 현재 시점에서 몇년 앞으로 당겨야하므로 80년대라고 생각한다면 아직 국민학교였다.[64] 사실 감독이라고 썼지만 초중고등학교에서는 교사만이 감독을 할 수 있고, 운동선수 출신은 코치까지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코치일 수도 있다. 물론 교육대에서 초등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임용고시에서 합격하여 이 학교에 부임했다면 감독다운 감독을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 인물이 고령의 인물로 표현되었는데 그 시절에 남자 초등학교 교사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아서 운동선수 출신이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감독을 맡았다고 한다면 말이 안되지 않다.[65] 사실 감독이라고 썼지만 초중고등학교에서는 교사만이 감독을 할 수 있고, 운동선수 출신은 코치까지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코치일 수도 있다. 물론 사범대에서 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임용고시에서 합격하여 이 학교에 부임했다면 감독다운 감독을 할 수 있다.[66] 사실 이 작품에서도 박철은 샤프하거나 잘생긴 이미지는 아니고 그냥 살 안찌고 잘생기기만 한 이미지였다. 잘 울고 유약한 이미지이기도 해서 오늘 날의 박철을 생각하면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이다.[67] 진학이 좌절된 윤호라는 친구가 하나 더 있는데, 그 친구는 졸업 후 배를 탄다(...)는 언급만 나온다.[68] 이전 서술에서는 이상아를 조연급이며 떠오르는 여배우라고 말했지만, 이미 80년대 말부터 청춘스타였으며, 엄연히 크레딧 4번째를 차지하는 최소한 서브여주는 된다. 당당히 주연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절대 조연이 아니다. 이 드라마 이전에도 그리고 살짝 그 이후에도 주연급 포지션은 갖고 있었다.[69] 굳이 최근으로 비유하자면 군대가기 전의 이승기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 가수나 MC로서의 위상이 비슷하다고 쳐도, 연기자로서의 위상이 워낙 차이가 난다.[70] 물론 최수종은 몇년 후에도 태조 왕건에서 무려 40대의 얼굴로 10대를 연기하게 된다. [71]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되었다.는 말이 이때 당시부터 유행했다.[72] 참고로 초기 캐스팅 기사에는 미남이시네요에서 주연급으로 출연했던 정용화가 참여한다고 했었다. # [73] 35살의 장동건과 현재 35살이 된 이민호의 위상을 비교해본다면 이민호가 1단계 이상 낮다. 나머지 배우들도 마찬가지이다.[74] 당시 주말 예능프로에 나온 담당 PD의 인터뷰에서는 최종후보로 남은 건 당시 전속탤런트 동기간인 심은하와 황인정(커리어는 거의 조연뿐이며, 어린이 뮤지컬 인어공주에서는 에리얼이었다고 한다). 다만 황인정은 그 무렵에 다른 드라마에 캐스팅 되면서 심은하로 확정되었다고 한다. 그 인터뷰대로라면 이상아는 당시 다슬이 배역의 초기 후보중 하나였던 듯하다. [75] 미주랑 결혼함.[76] 이 경우는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아니라, 첫 방송이 되는 동시에 스타가 되어갔었던 경우(...)[77] 당시 하이틴스타 계열은 이미연이 독보적인 가운데 이상아, 김혜수 등이 2위급에서 경쟁하는 구도. 김혜수는 고교 졸업후 살이 찌면서 하이틴스타의 명성을 잃었다. 그런데.. 96년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강조한 야한 수영복 사진(달과별이란 이름도 있다. 화장품 광고)을 게재한 후 건강미인으로 컨셉을 바꾸면서 최고 스타가 됐다!![78] 이해 연말 신은경은 CF의 여왕으로 등극해 절정의 인기를 누렸고 그다음에는 음주운전으로 아웃된다. 그리고 96년 영화 창으로 재기에 성공[79] 여기에 당시 한창 마이클 조던의 활약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NBA의 인기도 한 몫한다[80] 당시 연세대 농구부는 문경은의 입단 이후 실업팀과 맞짱을 뜨는 전력을 갖췄으며 이상민, 우지원이 줄줄이 입학하면서 최초 대학팀 우승 가능성이 거론됐다. 이후 93학번 서장훈이 입단하면서 결국 93-94시즌에서 우승. 연세대의 우승에는 이 드라마의 열기도 한몫했다는 썰도 있다.[81] 참고로 고려대가 우승후보급 강팀이 된 건 이듬해 현주엽(94)이 입단하면서부터다. 93-94 당시에는 중위권팀[82] 대표적으로 이상민, 우지원, 전희철, 문경은 등이 있었다.[83] 슬램덩크로 농구인기 상승, 마지막 승부로 대중적 농구인기 상승, 당시 농구대잔치의 미남 선수들로 여성들에 대한 농구인기 대폭 상승.... 결국 KBL이 출범되는 계기가 되었다.[84] 안타깝게도 유재학은 무릎부상 때문에 28세에 은퇴해버렸다.[85] 95, 96학번 선수들을 여기에 넣기도 하지만 이들은 드라마의 직접적인 수혜자로 보기 어렵다.[86] 대한민국 농구 역사상 최초로 1만 득점 달성을 이룩했다. 서장훈이 1만 득점을 달성할 수 있는 이유는 센터임에도 불구하고 슛터치가 뛰어나 중장거리 슛을 잘 쏜 덕에 롱런했기 때문이다.[87] 응답하라 1994 첫 회에 성동일쓰레기와 머리 끄댕이를 잡고 싸우던 성나정을 향해 "야! 이상민이 나온다!"고 말하는데 그 직후에 국대 유니폼을 입은 이상민의 레이업 장면이 나온다.[88] 이 쪽은 엄밀히 따지면 야구가 소재로 쓰였을 뿐 장르상으로는 코미디 영화지만.[89] 만화가 원작인 2009 외인구단은 논외고, 2011년작 영광의 재인이나 2012년으로 넘어가면서 바로 이어서 나온 난폭한 로맨스에서도 야구가 나오지만 둘 다 주요 소재는 아니다.[90] 당시에는 드물지 않은 광경이었다. 남매가 있는 집안인 경우 아들은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 후 대학 진학, 딸은 상업고등학교(주로 여상) 진학 후 취업인 집이 꽤나 많았다. 그보다 더 이전 세대의 딸들은, 상고조차도 진학하지 못하고 초등학교나 중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상경하여 버스 안내양이나 여공 등 열악한 일을 하여 오빠/남동생을 공부시키고 뒷바라지할 것을 강요당했다.[91] 사실 그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다. 차 가진 사람이 지금처럼 많지 않던 시기여서,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엄청나게 약했다. 꽐라가 되어 음주운전하다가 걸린 이야기나 아니면 경찰 피한 이야기 같은 걸 무슨 무용담처럼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정도였다. 음주운전의 해악이란 게 공익광고로 슬금슬금 언급하기 시작하던 때였고, 그나마도 음주운전이 잠재적 살인이니 하는 요즘의 인식이 아니라, 그냥 "너 죽거나 다치지 않으려면 음주운전을 하지 말라"는 정도.... 물론 비판받아야 할 일이긴 하지만 '''저땐 모두가 그냥 그러려니라고 생각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92] 실제로 이 부상 때문에 고교 때 1년 유급을 했고 연세대학교 진학 후에 부상이 재발해 더 이상 선수 생활을 이어가지 못했다.[93] 당시 유행하던 개그 프로그램 중에 '옥의 티'라고 드라마들의 오류를 찾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마지막 승부가 가장 많이 나왔다(…). 오죽하면 마지막 승부의 종영 이유가, 이 프로그램 때문에 하도 시달려서 그랬다는 루머가 생길 정도(…).[94] 물론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되고 애초부터 16부짜리 미니시리즈였다.[95] 열차 번호, 물론 1994년이니까 LED식 열번 표기가 아니라 롤지식 혹은 판때기식 열번 표기다.[96] 예를 들자면 2호선의 경우 전면부가 같은 외형일지라도 MELCO 초퍼는 열번 표시창 및 행선 표시창에 고무 테두리가 없고, 열번이 3자리 표기(MELCO 최후기형은 운전실 유리창 아래 부분에 4자리 판때기식 표기이다)이지만 GEC 초퍼는 열번 표시창 및 행선 표시창에 고무 테두리가 있고, 열번이 4자리 표기이다.[97] 아무리 옛날이라도 초등교육과를 가지고 있는 종합대학교는 이화여자대학교밖에 없는데, 문제는 손지창, 허준호, 박형준 등은 남자라는 것(...) [98] 이것 뿐만 아니라 드라마 전반부에는 당시 학생체육관 내에 있는 온갖 광고판이 등장한다. 현대자동차도 이 중 하나.[99] 이 분은 아예 체대 출신이다. 실제로 드라마가 뜨고 나서 예능프로에서 농구실력을 자랑한 적도 있었다.[100] 당시 연예계 대표적인 몸짱스타였다.[101] 대략 운동신경이 있는 이미지는 되었었다.[102] 어지간한 동호회 수준의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슛폼이 아닌, 근력이 없어서 공을 밀어서 던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오죽 어설펐던지 이 드라마를 훗날 평하던 딴지일보 모 기자는 '제발 이 드라마만은 외국으로 수출되지 않기를 바랬다'고 할 정도였다.[103] 그런데 손지창을 이해해줘야 할 것이 살이 좀 붙었다고 하는 지금도 상당히 마른 수준인데, 그 당시 손지창은 180cm의 키에 60kg 정도되는 난민 수준의 말라깽이 몸이었다. 완력 자체가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참고로 손지창이 그 당시 운동으로 농구를 즐겨하였던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촬영을 진행하면서 훈련을 열심히 하였는지 폼이 안정되어가기는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당시에 손지창이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작품은 그냥 똑똑한 꽃미남 이미지로만 주로 나왔었다. 물론 억새바람이라는 드라마에서는 싸움 좀 하는 이미지로 나오지만 시청자들이 생각하는 손지창과는 거리가 멀어서 그런지 몰라도 당시 흥행보증수표 수준이었던 손지창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평타 수준의 실적을 거두게 된다.[104] 손지창, 이종원, 장동건 등[105] 그런데 최수종과 비슷한 또래인 허준호도 나온거 보면 그게 단지 나이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106] 사실 나이보다 더 큰 문제는 키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허준호는 또래 연예인중에 키가 큰 편인 180cm이었고 최수종은 평균정도 밖에 안됐다. 그래도 명색이 농구 드라마인데 시기를 고려하더라도 이 드라마에 나오기에는 최수종이 많이 작은건 사실이다[107] 박철은 농구공을 만져본 수준이어서 그런지 당시 나름 입지가 있던 청춘 꽃미남 스타였음에도 불구하고 초반에 광탈한다.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이후의 박철의 커리어는 급이 낮아지게 된다.[108] 농구선수 출신이었지만, 당시에 신인급이나 다름없어서 손지창 역할을 맡기에는 당연히 무리가 있었다.[109] 체대 석사(!)까지 다닌 엘리트 체육전공자였고, 그래도 나름 인기 청춘스타였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손지창에 비해 두단계 정도 아래 레벨의 입지였던 것은 사실이었다.[110] 왜군 전문배우이며 '''미역으로 웰빙하라'''의 그 배우다.[111] 서울-인천간 철도 그런게 아니라 실제로 그 당시 나름 인지도 있었던 여배우 이름이다.[112] 그냥 가수가 아닌 자기 앨범의 전 곡을 작사를 하는 싱어송라이터였다.[113] 여러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석권하다가 일본 노래 표절로 확정되어서 방송출장 정지를 당했고 가요톱텐에서 표절에 대한 사과를 한 뒤 2년 동안 가수 은퇴 수순을 밟았다.[114] SNL 코리아의 그 사람과는 동명이인이며 옥슨 89의 임원으로 '청개구리'로 금상을 차지했다.[115] 1990년대 드라마의 법칙 같은 것이었다. 어째서인지 타이틀 OST는 항상 드라마 제목에서 따오곤 했다.[116] 5인조 여성 록밴드 SHOW-YA의 보컬리스트로 유명하다.[117] 후술할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KBS 가요톱10에서 3~4주 연속 1위를 차지한 직후의 무대인지라, 김민교 본인도 감정에 북받쳐 후렴구를 수정 전의 것으로 잘못 부른 듯. 그 직전 후렴구는 수정판으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