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용도
1. 개요
華容道[1]
삼국지에 등장하는 지명. 현재의 후베이성(호북성, 湖北省) 징저우시(형주시, 荆州市) 젠리현(감리현, 监利县)의 서북쪽 지역이다.[2] 현재도 깡촌으로 자주 홍수피해를 보고 있다고 한다.
깡촌에 불과한 화용도가 어느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게 된 것은 당연히 삼국지연의때문이다. 적벽대전에서 대패한 조조가 화용도를 통해 탈출했는데 화용도는 좁은 절벽으로 적은 수의 군대만 통과할 수 있는 지역이라 한다. 게다가 길이 하도 험한 탓에 군사들더러 바위를 깎고 나무를 베는 등 길을 '''만들면서''' 가는 것도 모자라, 병사들이 힘들어서 쓰러지자 '''그대로 밟고 지나가게 했다.'''
2. 정사
흔히 알려진 삼국연의의 관우와 조조 이야기와는 달리 정사에는 그저 단순히 치열했던 퇴각전중 하나였다.
산양공제기에 따르면[3] 당시 적벽에서 대패한 조조가 화용도까지 도주했는데, 당시 화용도는 진흙뻘 지역이라 진군이 어려웠고 결국 부상병까지 동원해서 길을 만들어서 간신히 퇴각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과정에서 사망자가 엄청나게 나왔지만 이런 강행군 덕분에 유비군의 추격을 간신히 피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이 도주과정에서 조조 본인이 유비의 추격을 뿌리치고 '유비 그놈이 계책 쓰는게 늦어서 그렇다니까'라고 도망가는 와중에 비웃는 부분까지 산양공제기에 있다. 사실 이건 좋게 말하면 대패하고 달아나는데 총사령관인 자신이 멘붕하고 있으면 병사들 사기와 후일 도모에도 악영향이 가니 억지로라도 기죽지 않은 모습을 보이자 않으려는 허세고, 나쁘게 말하면 정신승리. 당연하지만 군주가 퇴각하는 상황이라면 후방 부대가 조조를 엄호했을거고, 아직 적벽에서의 전투도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 유비가 조조한테 달려와서 불 지르면서 막아세울 여유가 있었을까? 그냥 도주하면서 자존심 지키려고 한 말일 것이다.
훗날 한중 공방전 때 유비가 법정의 진언을 받아들여 하후연을 전사시키자 '그렇 그렇지. 유비 그놈 머리에서 나온 전략일 리가 없다.'고 발언을 했지만 이것도 역사학자이자 정사 삼국지의 주석을 단 배송지가 ''''신 송지가 보건대, 촉과 한중은 입술과 이의 관계와 같으니 유주(劉主-유비)의 지모가 어찌 이에 미치지 못하겠는가? 장차 계략을 펼치기 전에 법정이 먼저 말했을 뿐이다. 무릇 좋은 모책을 들어 써서 공업을 이루는 것은 패왕된 자로서 누구나 그러하지 않던가? 위무(魏武-위무제 조조)가 이를 남의 가르침으로 여겼다면 또한 용렬하지 않은가! 이는 아마도 욕되고 한스러운 나머지 한 말로, 사실을 헤아려서 마땅한 말을 한 것은 아니다.'''' 라며 조조가 또 정신승리를 한 것으로 짚었다.[4] 연의와 달리 관우와 마주하지 않았지만 만약 정사에서도 관우와 마주쳤다면 관우가 은의를 따지더라도 자신의 주군은 유비를 위해 사적인 감정을 접고 대국적인 임무를 수행하려고 조조를 보내줄 생각은 없었을 터이며, 만약 조조를 죽였다면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는 등 예의를 다른 식으로 갖췄을 것이다. 더군다나 제갈량이 이러한 대국적인 문제에 대해 어처구니 없는 결정도 내리지는 않았을 테니 관우가 감정으로 인해 그르칠 수 있거나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면 관우가 먼저 기습하게 만든 뒤 장비나 조운 같은 장수들에게 중요한 곳에서 매복하라고 시켰을 것이다.
창작물에선 연의의 화용도 에피소드가 워낙 유명하고 해석할 거리가 많은 매력적인 에피소드이기 때문에 이 에피소드를 다루는 걸 포기하지 않고 각종 다양한 해석을 내놓곤 하는데 정사만 놓고 봤을때는 유비는 조조를 어떻게든 추격해서 사로잡거나 죽이려고 했던게 맞다고 할 수 있다. 당장 하북이 완전히 평정된지 1년밖에 안된 상태에서 원소처럼 조조가 급사했다면 자식들간의 분란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고[5] 설령 원소 자식들처럼 개판이 나지 않더라도 당시 조조의 아들 조비, 조창, 조식 등의 위상이 하북과 중원을 규합하고 천자를 옹립한 조조의 위상을 대체할 수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하다못해 원소도 관도 이후 2년은 살아서 세력을 규합했는데 조조는 그런 기회조차 없게 된다는 소리기 때문이다. 또, 조조를 죽이지 않고 사로잡기만 해도 그 자체로 유비에겐 엄청난 이득이다. 조조를 놓쳐서 그 세력을 정비하게 놔두는 것보다 죽이거나 잡아서 인질로 해두어 강대한 조조 세력을 교란할 수 있는 이득이 오히려 더 많다.
3. 연의
역사에서 단순한 퇴각전이었던 화용도 전투가 유명해진 것은 나관중이 쓴 소설 삼국연의의 영향이 크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의 83만[6] 군대가 적벽대전에서 손권군의 도독 주유의 화공에 의해 크게 패배하고, 여기에 연합한 유비군의 협공까지 받아, 조조군은 의 대군 중 겨우 몇천의 패잔병만 남아 강북으로 한참 도망하고 있었다.
한편, 제갈량은 조조군의 도주 루트도 정확하게 꿰고 있어서 조운, 장비 등을 보내 매복하게 하지만, 유독 관우에게만 아무 임무도 주지 않는다. 답답해진 관우가 왜 자신은 보내지 않느냐고 묻자, 제갈량은 가장 중요한 관문인 화용도가 남았는데 관우님은 조조의 은혜를 입었으니 조조를 놓아보낼 것이라 보내지 않았다고 대답, 이에 관우는 자신이 이미 안량, 문추를 잘라서 은혜를 갚았으니 그럴 리 없다면서 '관우가 조조를 풀어주면 처벌을 받고, 조조가 화용도로 가지 않으면 제갈량이 처벌받는다'는 내용으로 내기하게 된다.
관우가 출전한 후, 유비는 '관우는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라 아무래도 풀어줄 것 같다'고 걱정하지만 이 역시 제갈량의 계산이었다. 제갈량이 천문을 보니 어차피 조조는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었고, 하여 관우를 보내서 풀어주게 하면 예전에 졌던 빚도 갚게 되기 때문이었다.
하여 도망가던 중에 이미 장비와 조운의 기습을 받아 조조군은 거의 모든 전의를 상실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겨우겨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다 화용도로 향하는 갈림길에서 길이 두 개로 갈라져 있었는데, 큰 길에서는 연기가 안 나는데 작은 길에서는 모닥불을 피운 듯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에 조조는 작은 길로 가자고 했는데, 좌우에서 묻자 "제갈량의 함정이다. 작은 길에 불을 피워서 큰 길로 유도하여 우리를 기습하려는 계책이다. 그러니 작은 길로 가자."라고 대답하여 좌우에서 감탄했다. 그리고 가다가 쉬던 중에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매복하던 '''관우'''의 군대가 튀어나왔던 것이다. 사실 아까 갈림길에서 모닥불을 피운 것도 제갈량의 계책이긴 했지만, 조조가 스스로 속아넘어간 셈이다. 제갈량은 조조가 허허실실-즉 계책에 밝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조가 지나치게 의심하여 잘못된 판단을 하게끔 유도한 것이다.조조 : 주유와 제갈량은 정말 꾀가 없어! 나 같으면 딱 이 길에다 군대를 매복시켰을 텐데 말이지. 그랬으면 우리 모두 꼼짝 못하고 잡히는 거 아니겠나?[7]
관우 :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8]
이 때 조조는 이젠 죽기살기로 싸워볼 수밖에 없지 않냐고 얘기하지만, 장군들은 사람이 어찌어찌 노력할 수 있다고 해도 말은 도저히 힘이 없어 싸울 수 없다고 하고, 모사 정욱은 이전에 조조가 관우를 잘 대해준걸 생각하고 조조에게 관우를 회유하라고 간한다.
그래서 조조는 관우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자기가 이전에 당신을 잘 대해줬으니 이번에 제발 살려달라고 빌자, 관우는 안량, 문추를 베어 그 빚을 다 갚지 않았냐고 반박했다. 그러자 조조는 그 이후에 관우가 자기를 버리고 유비에게 가면서 자신의 장수들을 벤 오관육참의 일을 자기가 용서해주지 않았냐고 대꾸했다. 그리고 관우 당신은 춘추를 숙독했으니 은혜를 갚는 도리를 알고있을 거라고 말했다. 게다가 조조의 군사들까지도 울먹울먹 하면서 동정심을 유발하는 상황. 말이 좋아 군사지 거지도 그런 상거지가 아닌 꼴을 본 관우가 연민의 감정을 느낄 정도면 이들이 얼마나 처참한 몰골이였는지 짐작가능...
이에 찔린 관우는 조조를 풀어줘 도망치게 하고 만다. 조조만 풀어주려 했는데 부하들까지 도망가자 크게 고함을 친다. 하지만 부하들이 말에서 내려 눈물로 호소하고, 마침 장료가 뒤에서 따라오자 결국 그들까지 살려 보내줬다고 서술한다.
이후 관우는 유비군으로 복귀했는데 제갈량은 관우가 조조를 붙잡아올 줄 알았다는듯이 연회를 준비하고 관우가 오자 짐짓 축하의 술을 권했다. 그러나 관우가 조조를 붙잡아오지 못했다고 하자 제갈량은 조조가 화용도로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관우가 조조가 왔는데 놓쳤다고 대답하자, 제갈량은 그럼 수하의 장수들은 몇이나 잡았냐고 물었고 관우는 그 조차도 단 하나도 잡지 못 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 모든 걸 이미 예상한 제갈량은 관우 당신이 조조를 일부러 놓아준 것이 아니냐고 추궁했고 관우는 면목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제갈량은 군에 명을 내려 명령에 불복종한 관우를 처형하라고 했다.
이에 유비가 '우리 삼형제는 같은 날에 죽기로 맹세했으니 그 맹세를 깰 수 없다'며 용서를 빌고, 이에 제갈량은 마지못한 척 유비의 도량을 내세우며 관우를 용서해 준다.
화용도의 내용은 연의 상에서 제갈량의 지력을 보여주고 작중 관우가 가진 조조에 대해 찝찝한 감정을 풀어주는 사려깊은 배려를 보여준다. 여기에 관우의 의협심, 유비군 내부의 결속, 제갈량이 군율을 언급함으로서 임협 집단의 성격이 강했던 유비군의 성격이 변화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관우는 충(忠) 이전에 협(俠)의 상징이다. 관우는 자신의 주인인 유비를 평생동안 사모하고 따랐으며, 높은 사람에게는 오만했지만 아랫사람들에게는 너그러웠다. 협객은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갚으며, 사사로운 정을 소중히 여긴다. 법과 정의에 연연하지 않고 인간적인 감정을 우선시한다. 때로는 그를 위해 자기 목숨도 내던진다. 협객은 그 행하는 바가 비록 정의에 어긋난다 하더라도 그 말에는 반드시 믿음이 있고, 행동은 반드시 과감하다.이미 약속한 일은 반드시 이행하며 자신의 위급함을 돌보지 않은채 남의 위급함을 돕고, 사생존망의 위급함을 겪었어도 그 능력을 뽐내지 않으며 그 덕을 자랑하는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화용도는 관우가 선비가 아니라 협객이었기에 가능한 창작이라고 할 수 있다.
김홍신 평역판에서는 유비가 무릎을 꿇은 이유[9] 를 "군사(참모) 제갈량의 체면을 살려주되 관우를 살리기 위한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어째 유비가 제갈량에게 너무 매달리는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지도. 참고로 이 대목은 적벽대전 앞부분에서 제갈량이 장수들을 도처에 파견한 뒤 관우의 처사에 대해 유비와 얘기하는 부분을 넣어 복선을 뿌린다.[10]
연의의 페이크 최종보스인 조조를 잡을 절호의 기회였던데다, 제갈량과 관우의 대립이 나오는 등 여러 모로 떡밥이 많기에 꽤 유명한 이야기.(전략) 한편 장수들이 각자 군사를 이끌어 나간 이후, 유비가 공명에게 걱정하듯이 말했다.
"아우(관우)가 성품이 온화하여 조조를 살려 보내줄까 걱정입니다."
하지만 공명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렇다고 관운장을 보내지 않는 것도 양책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운장을 보내는 것이 하늘에 이치에 맞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유비가 의아해하자 공명이 설명해 주었다.
"제가 천문을 보았는데 조조의 군사는 심하게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조가 죽을 운명은 아니었습니다. 기왕 조조가 죽을 운명이 아닌 바에야, 관운장이 속 편하게 인정을 베풀도록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유비는 감탄하며 말했다.
"과연 군사께서는 모든 것을 예상하시고 그리 하신 것이오?"
"군사를 부리는 일이다 보니 모든 것을 파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하구로 가셔서 싸움 구경이나 하시지요."
관우가 의리냐 군령이냐로 고민하는 부분이 문학적으로 호평을 받아 삼국지연의를 까는 루쉰조차 "이 부분만은 훌륭하다"고 평가할 정도. 삼국지연의의 대표적인 창작 장면이니 나관중의 필력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볼수 있다.
4. 2차 창작에서의 해석들
화용도는 정사에서는 그저 퇴각전에 불과했으며, 연의에서도 단순히 조조의 협객스러운 면모와 제갈량의 몇 수를 내다보는 지략을 띄어주기 위한 장치이지만 후대에 와서 연의보다도 더 많은 해석이 덧붙여졌다. 참고로 이러한 해석들 대부분은 모두 연의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별개의 해석들이다. '''연의는 고전소설임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숨겨진 저의가 있거나 등장인물의 생각을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없는 서술트릭까지 등장하기도 하는 현대소설과는 다르게 고전소설은 그냥 등장인물이 말하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해석의 중심은 작중 최고의 천재인 제갈량이 왜 조조의 은덕을 입은 관우가 의리에 흔들릴 걸 전혀 감안하지도 않고 마지막 매복지점에 관우를 배치했느냐는 점이다. 후대 해석에서 주로 파고드는 부분은 바로 제갈량이 '점술'을 쳐봤다는 부분. 원작 연의에서 화용도의 결말은 단순히 조조가 지금 죽을 운명이 아니라서 제갈량이 관우에게 속편하게 은혜 갚을 기회를 주었다는 식으로 퉁치는데 이는 다른 부분에서의 제갈량에 대한 묘사와는 사뭇 다르다. 연의의 제갈량은 나중에 북벌할 때 초주가 점괘가 안 좋아 북벌을 하면 안 된다는 만류에 시절이 어느 때인데 그런 걸 믿느냐고 할 정도로 현실적인 인물이다. 적벽대전 에피소드에서도 동남풍을 점술로 불러오겠다고 주변인들에게 호언장담한 것은 뻥카였고, 제갈량이 날씨와 천문에 밝아 그 시기에 일시적으로 동남풍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묘사된다. 다시 말해 제갈량은 점을 치고 신봉하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는 것.[11]
이는 연의에서 제갈량을 더 띄워주려다 보니, 사실은 조조를 놓친 것도 다 제갈량의 계획이었다는 전개를 펼쳤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점괘가 나온 것인데 이게 오히려 현대에 들어서는 제갈량을 운명론자처럼 만들어버린 것이다. 일단 중국 쪽은 운명이니 뭐니 하는 게 봉건미신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서 심의에 걸릴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현실적인 해석을 내놓으려 하는 편이고,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일단 단순히 운명탓이라고 하면 이야기가 밋밋한지라 부차적인 해석을 덧붙이는 경우가 많다.
고우영 삼국지에서는 관우와 제갈량이 2인자의 지위를 놓고 대립했다는 설정을 택했다. 유비와 제갈량이 화용도 에피소드 끝마무리에서 조조가 죽을 운명이 아니라는걸 이야기하는 것까지는 연의의 원래 스토리와 같지만, 이후 제갈량의 독백으로 "관우는 기를 꺾어놔야 자신이 편하다."는 투의 생각을 내비친다. 제갈량은 유관장 삼형제가 다 모인지 한참 뒤에나 편입한 굴러온 돌이고 유비군에선 원래 관우가 참모이자 2인자의 역할을 했으므로 자신의 지위는 관우에게 있어서 불편할 수 밖에 없다는 것. 이에 따라 제갈량이 천문을 봐서 조조의 수명이 아직 한참 남았음을 본 것은 사실이지만, 유비에게 ''''관우가 이번에 은혜를 완전히 다 갚도록 배려했다'고 말한 것은 적당히 둘러댄 것'''이고 실제로는 이를 자신이 활용하여 관우의 기를 꺾고 자신에게 득이 되려 했다는 내용.[12]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서도 유비가 제갈량에게 처음부터 관우가 조조를 놓아줄 것을 알고 있었느냐고 묻자, 제갈량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조조의 운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적벽대전을 통해 조조의 위나라와 손권의 오나라가 더해져 천하삼분지계의 토대가 드디어 마련되었다 말한다. 이에 유비도 "조조와 손권, 그 어느 쪽도 만만치 않소. 그들과의 싸움은 지금부터가 시작일 것이오"라면서 결의를 다지고, TV 애니메이션은 이 장면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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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장면에서 일본의 유명한 짤방감인 '''게엑, 관우!'''도 등장했다. 요코야마 미츠테루 작품은 사람이 피폐해지면 저렇게 지저분한 다크서클이 생기는 묘사가 나오는데, 화용도의 조조는 삼국지에서 저 다크서클 묘사의 정도가 탑을 달린다(...)
중국 드라마 84부작 삼국지에서 제갈량의 말을 통해 주장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조가 죽으면 조조군은 조조 아들들 중에서 조조의 후계를 결정하느라 순식간에 형주를 빠져나가 본거지인 강북으로 가버려서, 형주가 텅빈 이때 기세가 오른 손권군이 순식간에 형주를 차지하면, 당시 머물 곳이 없는 유비군은 계속 근거지가 없이 떠돌 수밖에 없고, 대업도 영영 이룰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조조를 살려두어 형주의 조조군이 계속 주둔하게 해서, 조조군과 손권군이 싸우는 동안 어부지리로 형주를 빼앗아 근거지를 마련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드라마 삼국에선 주유 역시 조조를 죽일 생각이 없어서, 조조를 일부러 유비 쪽으로 몰았다는 내용으로 해석했다. 이유는 유비가 조조를 죽이게 해 조조세력과 유비세력을 철천지 원수로 만들어 서로 싸우게 만들고 자기네만 이득을 챙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갈량도 주유의 의도를 꿰고 있기에 조조를 정말 죽여서 주유에게 낚일 생각은 없어서 전리품만 챙기게 하고, 어차피 조조를 죽이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관우를 화용도에 배치한다. 당시 조조는 병사들이 죄다 도망가 27명만 남을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었는데, 화용도에 이르자 조조 역시 유비와 동오 세력은 조조 자신을 죽일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히려 자신이 가는 길이 사는 길임을 언급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조를 버리고 도주해버린 패잔병들은 모조리 매복에 걸려서 몰살당하지만(화용도에 들어가기 직전, 정찰병이 돌아와 보고한다), 끝까지 조조를 따라 사지로 들어간 병사들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화용도에서의 대면이 명장면인게, '''조조가 스스로 검을 들고 관우 앞에 나아가 대영웅의 손에 죽는 것은 영광이라 하고''', 관우가 고뇌하다 패잔병들과 조조를 모두 보내주자 '''군령으로 다스려질 관우의 안위가 걱정되어 차마 못 간다고 버티다가''' 억지로 끌려간다. [13] 안그래도 연의에서 조조가 관우에게 콩깍지가 단단히 씌여있는데 드라마에서는 위의 설정과 조조라는 캐릭터의 해석, 그리고 조조역 배우 진건빈과 관우역 배우 우영광의 명연기까지 더해지며 명장면이 연출되었다.
삼국전투기에서는 84부작 삼국지와 삼국의 내용을 적당히 믹스 시켰다. 지금 조조가 죽으면 위나라가 후계자 다툼으로 분열되어 오나라가 득세를 하여 천하삼분지계가 무너질 것이며, 추격망의 끄트머리인 화용도에 유비군을 배치한건 유비가 강릉에서 출격한 조인의 구원군에게 죽기를 바란 주유의 계책이니 그냥 철수하자는 것이다.[14] 다른 점이라면 제갈량은 적당히 빠지자고 하는데 관우가 여기에 반대하고 남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관우는 조조의 애원에 못이겨 결국 돌아간다. 그리고 관우는 이때의 징계로 유비의 형남4군 원정에 참전하지 못하고 강릉을 공략하는 주유의 진영에 남는다. (이것도 유비의 형남4군 원정을 원활하기 진행하지 못하게 하려는 주유의 제안이었지만.)
화봉요원에서는 아예 조조랑 관우는 조연이고 진짜 주 전개는 '''제갈량과 사마의의 첫 대결로 묘사된다'''. 그래서 전개가 기본 화용도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정분 따위로 큰 일을 그르친다는 식의 전개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 화봉요원답게, 관우와 조조의 태도 묘사 자체도 다르다.적벽의 화공 이후 주유와 노숙은 화용도의 일은 유비에게 사실상 암묵적으로 떠넘겼는데 사실 처음에는 곽가가 죽기전에 화용도에 진채를 세웠고 적벽에서 개털린 조조가 화용도의 안전을 확보해 두라는 곽가의 당시로선 납득 불가능했던 안배 덕분에 추격대로 부터 벗어나는 듯이 보였으나 곧이어 추격대가 다가오는 것을 알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조조 역시 역병에 걸려서 쓰러졌다가 화타의 약으로 간신히 살아난다.
한편 화용도에 있던 제갈량은 관우와 조조간의 관계를 들먹이며 짓궂은 우려를 내비치는데, 관우쪽이 우습지 않다고 잘라 대답하며 자신은 오로지 큰형님을 위해 큰 공을 세우고 싶은 생각 뿐이라며, '''당장에라도 조조를 붙잡을 의욕이 만만함을 밝힌다.''' 그리고 화용도는 '''제갈량의 수공에 당해 침수된다.'''[15] 폭우와 수공으로 인한 물난리 앞에,이미 사기도 군율도 전부 증발하고만 상황에서 유비군의 공격에 조조군의 아비규환이 펼쳐지고 관평 등이 이미 배치를 끝내 퇴로가 막힌 가운데 치중도 바닥이 났으며 관우의 맹공에 조조군의 궤멸은 시간문제. 조조가 자살까지 생각하며 조조군 장수들 모두 다 틀렸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사마의만은 조조를 살릴 계책을 강구하고...마침내 조조군은 유비군에게 완전히 패배하여 '''조조군의 장수들은 모조리 포박당하고 조조 역시 사로잡힌다''' 관우는 조조를 사로잡은 후 기다렸다는 듯이 칼을 들고 조조를 참하려 하는데 ...여기서 사마의가 나서서 강하의 유비를 자신의 군이 위협하고 있음을 알린다. 그러나 제갈량은 이런 말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결국 두 사람은 제갈량과 사마의는 서로 암묵적으로 서로가 자기의 목적에게 필요한 사람임을 직감한다. 제갈량은 여기서 조조를 죽이고 자신이 협천자를 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내부의 한 조정과 외부에서 적벽의 기세를 타고 욱일승천하는 주유와 대결하는 상황 자체를 원하지 않았기에 조조를 죽이지 않은것이었다. 제갈량은 현 황제 유협이 아닌 자신의 주군 유비가 진짜 한의 황제에 오르는 천하삼분을 원했고, 사마의는 궁극적으로 조조에게 복수를 하길 원했다. 제갈량은 사마의야 말로 자신이 찾고 있던 '한의 군사'임을, 사마의는 제갈량이야 말로 자신의 조조에 대한 복수를 도울 '책사'임을 인정하고,그 목표를 위해 두 사람 모두 '오로지 승리뿐,결코 패배하지 않아야 함'을 맹세하며, 대결의 순간이 아직 찾아오지 않은 지금 자신들은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공통의 인식'을 확인한다.
결국 이 둘의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조조는 화용도에서 살아나는데 처음부터 제갈량이 조조를 죽일 생각 따위는 없었다는 걸 알게 된 관우는 착잡한 심정을 금하지 못한다. 이에 제갈량이 해명하길 공과 명성을 하찮게 보는 것이야 말로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인덕으로 이제 관우는 그런 인의와 오만을 모두 갖춘, 전신 여포를 뛰어 넘는 천하에서 가장 윤색된 존재로서 남을 것이라는게 말을 하고 관우는 그런 그에게 '천하에 공명만이 관우의 마음을 알아준다' 라면서 씁쓸하게 답례한다. 원래 관우와 조조의 드라마가 되었어야 할 화용도에서 이 두 사람을 완전히 밀어내고 제갈량과 사마의가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해먹은 꼴이 되었으니 이 정도면 거의 재창작의 영역. 까놓고 말해서 작가가 기존 화용도와는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어서 이랬던거 같은데 기존전개를 너무 많이 변용시킨데다가 제갈량과 사마의의 암묵적 동맹이라는 초전개까지 나와서 영 아니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천지를 먹다 2에서는 화용도 전투를 마지막 스테이지로 설정했다. 해외판으로 하면 조조를 제한 시간 내에 죽이는 거 밖에 방도가 없지만 일본판 또는 아시아판으로 플레이시 놔준다는 선택지가 있다. 즉 천지를 먹다 2는 엔딩이 총 3개인 셈인데 그 중 진엔딩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 엔딩은 해외판으로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동명의 RPG 게임에서도 중요하게 묘사된다. 조조를 비롯해 부하들은 병사수가 최소 9000에서 9800에 이르는 괴물들인데 이걸 상대해야 하는 유비 패거리는 장수당 300명 안팎(...) 이라는 처절함 속에 서주에서 발리게 되는데 처음으로 조조에게 빅엿을 먹이는 부분. 물론 적벽대전 시점에 레벨이 꽤 올랐지만 제대로 싸우면 여전히 유비군이 패배하지만 동남풍을 불러와 손권군이 난입, 화공과 화살로 조조군 병력을 세자리수로 줄이고 이걸 이벤트 형식으로 유비가 추격할 수 있다. 단 역사가 뒤틀릴 걸 염려해서인지(?) 턴 제한이 있어서 절대로 죽일 수 없다. 만약 메모리 에디터 등을 이용해서 연노같은 무기를 미리 얻어놔서 전멸시키면 게임이 다운된다.
삼국지 13에서는 가상 시나리오 중에 이걸 컨셉으로 한 화용도의 변 시나리오가 있다.[16] 조조가 화용도에서 관우와 만나지 못한 채 죽고, 그 영향으로 조비, 조식(?), 조창(???)이 서로 위나라를 차지하려고 후계자 다툼을 시작해 위나라는 셋으로 분열되어 버리고 그 틈을 탄 유비가 북진(!)을 해서 형주 북부와 허창을 함락(!!) 헌제를 구출한 뒤 천하 제패를 노린다는 것이다. 한편 손권도 조조가 없는 틈을 타 합비를 먹고, 마등은 장안을 먹은 상태. 물론 가상 시나리오니 그러려니 하자. 참고로 기반 세팅이 개판인 시나리오로 악명이 높은데 군주 소속지가 제대로 안 되어 있어 몇몇은 이동이 막혀있고 군주인 조비, 조식, 조창보다 작위가 더 높은 장수들이 즐비해 명령이 안 먹히거나 관직을 삭탈할 수 없는 등 제대로 안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이런 점과는 별개로 드라마 삼국과는 달리 화용도에서 조조가 죽었을 때 벌어졌을 가능성은 이쪽이 좀 더 높다.
삼국지 14에서는 전작 화용도의 변 계보를 잇는 조가분열이라는 시나리오가 나온다. 여기서는 전작의 조비, 조식, 조창에 조웅까지 사파전이 된다.
삼국지전기에서는 조조가 관우를 만나자 자네를 여기로 보내다니 공명도 제법이라고 칭찬하며 관우에게 목을내놓는것이라면 추한꼴을 보일수 없다면서 죽음을 받아들이려 하고 관우역시 조조를 베려다 의리를 저버릴수가없기에 차마 베지못하고 대신에 자신의 마음속에있는 승상은 확실히 베었다면서 다음번에 만나면 더이상 승상이라고 부르지않겠다하며 놓아준다. 참고
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는 3편 맹장전 조조의 개인 열전과 4편 전투 시나리오인 적벽도망전으로 구현됐다. 조조 열전은 원작처럼 조조가 추격하는 연합군과 매복을 뚫고 탈출 지점까지 거의 다 오면 관우가 나타나서는 의리는 지킨다며 그냥 퇴각한다.(이때 관우를 때려잡을 수 있고, 그가 탄 적토마도 뺏어탈 수 있다. 관우는 그냥 거점 밖으로 퇴각하도록 인공지능이 설정되어 저항을 안 한다. 보통 자동 퇴각 이벤트 발생이 된 논플레이어 캐릭터는 공통적으로 이렇다.) 적벽도망전도 조조군일 경우 전개는 3의 조조 열전과 대동소이하나 연합군일 경우 반대로 관우가 조조를 놓아주며 퇴각하는 걸로 시작하고 이 후 플레이어가 조조를 추격해서 탈출하기 전에 쓰러뜨려야 하는 전개로 간다. 6편에서는 촉군 적벽대전 시나리오 후반부 관우로 플레이를 할 때 관우가 조조를 보내주는 이벤트가 구현된다. 7편에서는 조조군 시나리오 사실 모드일 때 엔딩 컷씬에서 묘사.
5. 기타
클로츠키(Klotski)라는 폴란드 퍼즐[17] 의 중국식 명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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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가장 큰 블럭(조조)을 빼내는 건데,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사실 시대 및 원작 고증은 안 된 걸 금방 알 수 있다. 황충은 적벽대전 시점에서 형남 장사쪽에 있고, 마초는 적벽대전이 벌어진 장소에서 한참 먼 서북 관중 지방 군웅으로 있을 때다.
중국 속담에서는 "조조 얘기를 하니 조조가 온다."는 말이 있는데, 연의에서는 이 화용도에서 조조가 관장조 이야기를 하니 관장조가 오지만(...), 정사에서는 유비가 조조의 듣보잡 부하들을 쳐바른 뒤에 "날 이기려면 조조가 직접 와서 싸우게 해라"고 호언장담하다가 진짜로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와서 패주하는 일들이 여러번 있었다. 유대와 왕충이라던가.
[1] 직역하면 빛나는 얼굴의 길. 적벽 전투 이전부터 있던 지명이다.[2] 『中国历史地图集』第三册 28-29쪽[3] 정사 삼국지 무제기의 주석으로 인용됨.[4] 그리고 정확하게 기록은 안 나왔지만 적벽대전 직후면 조조는 강에서 육지로 달아나는 상황이고, 유비와 주유 연합군은 추격을 막기 위해 후미에 남아있는 조조의 수군을 뚫느라 시간이 걸렸을 거다. 당연히 화계를 시도하는 것이 늦어질 수밖에 없던 상황이다.[5] 원소보다 더 심각한게 원소는 원상을 미리 후계자로 세워놓기라도 했는데 이때 조조는 후계자 준비를 아예 안 했다.(...) 실제로 조비는 자기가 왕위계승자로 확정되고 왕위에 오른 후 경쟁자이던 조창과 조식을 중앙에서 내쫓아 버렸는데,(심지어 조창은 조비를 만나고 난 후 얼마 안 지나서 석연치 않게 요절하여 당대 귀족들 사이에서는 조비가 조창을 독살했을거라는 소문이 흘렀다. 세설신어가 이러한 귀족들 사이에 떠돈 루머가 존재한다.) 조조가 적벽에서 패전하고 전사했다면 동생들과 사이좋게 지냈을지 의문이다.[6] 떠벌리기는 100만[7] 참고로 이 말은 3번째나 한 말이다. 앞의 두번에선 각각 장비와 조운이 튀어나왔다. 차이점이라면 마지막 마디가 다른데, 앞의 두번에서는 '우리가 전멸하지 않는다 해도 크게 타격을 입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아마도 이때엔 그나마 좀 여력이 있었던 것 같았다.[8] 이 장면은 연의에서 보기 드문 개그 씬이기도 하다.[9] 참고로 연의 원작에서는 꿇은 일이 없다. 유비 입장에서도 어차피 제갈량이 진짜로 관우를 죽일 속셈이 아닌 걸 아는지라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10] 김홍신 평역판 기준.[11] 다만 이는 단순히 화용도에 대한 후대 해석의 뿌리가 여기에서 비롯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충돌의 이유는 연의의 설정충돌로 봐야한다. 삼국지연의도 잘 파고들면 생각외로 느슨한 설정이 많다. 첫 대면때 명장이라고 인정해놓고 오호대장군 임명 에피소드에서 황충에게 딴지를 거는 관우가 대표적이다.[12]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 이문열이 이런 작품적 해석을 교묘히 이용해 관우와 제갈량 대립설을 오랫동안 밀었다.[13] 근데 조조가 사기를 위한 깃발도 똑바로 들게 하면서 관우에게서 도망할땐 그딴거 버리라고 한다, 어차피 살아날거 쇼를 한 것이다. [14] 드라마 삼국과 다른점은 삼국전투기의 주유는 조조를 죽일 생각이 있었지만 화용도까지 조조를 잡지 못한다면 조조를 죽이는건 실패한걸로 치고 유비가 조조를 죽인뒤에 조인에게 죽으면 최고지만 유비가 조조를 죽이기 전에 조인의 구원군이 와서 협공을 당해 죽든 유비만 죽이면 된다는 계략이었다.[15] 더불어 유비군은 '''방수 군화'''를 신고 있는데, 이를 개발한 것이 유비라고 한다.[16] 참고[17] 흔히 러시 아워로 알려진 주차장에서 차 빼는 퍼즐의 원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