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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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황진혁 (黃振赫)
'''출생'''
경상남도 삼천포시
(現 경상남도 사천시)
'''학력'''
한국국제대학교 (음악학과 / 학사)
경상대학교 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 재학)
'''종교'''
개신교
'''직업'''
작가
'''데뷔'''
2014년 에세이 <청춘의 자화상>
'''소속'''
휴머니티스컴퍼니, 지역문화예술연구소
'''SNS'''

1. 소개
2. 생애
2.1. 약력
2.2. 상세
3. 활동
3.1. 명사여행
3.2. 저서
3.3. 강연
3.4. 기타
4. 여담
5. 보도자료


1. 소개


대한민국의 유명·저명인사를 찾아 여행 다니는 '명사여행가'이자 작가, 시인이다. 전직 호텔리어로, 벤처회사에 참여 하는 등 한때 경영분야에서도 활동했다. 그 외 방송, 칼럼기고 등 다방면의 활동이력이 있다.
국내의 명사들을 찾아 전국 각지를 다니며 이야길 나누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성공한 사람이 사는 방식은 어떤지가 궁금한 나머지 시작한 일이라고 하며[1], 명사들을 만난 소식을 자신의 SNS에 소개하고 있다. 현재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문화콘텐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2] 동기부여 강연자로도 활동 중이다.

2. 생애



2.1. 약력


  • 한국국제대학교 음악학과 연구조교(前)
  • 한국국제대학교 2부 총학생회 부회장(前)
  • MBC경남 라디오<정오의 희망곡> 고정게스트(前)[3]
  • SSONG(쏭)[4] 자문위원장(前)
  • KT&G 상상Univ. 경남합창단 부지휘자(前)
  • (주)남일대리조트 호텔 엘리너스 지배인(前)
  • 2014 한국국제대학교 신입생 입학식 졸업생대표 연설자(前)
  • 경남일보 경일춘추 필진(前)
  • 진주창의산업진흥회 '진주세계민속예술비엔날레 2019'[5] 제작지원(前)
  • 제 23회 하동야생차문화축제 평가위원(前)
  • 경상대학교 대학원총학생회 회장직무대리(前)
  • 경상대학교 대학평의원회 위원(前)
  • 경상대학교-경남과학기술대학교 대학통합 추진위원회 위원(前)
  • 지역문화예술연구소 소장(現)

2.2. 상세


'''그에게는 짙은 가난과 아픔을 지나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배려와 뜨거움이 있다.'''

- 지역 주간지 기사내용 中링크

성장기부터 투병생활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중학생 때 뇌종양 판정을 받은 일이 있으며, 같은 시기에 친한 친구가 장난으로 던진 돌에 한쪽 눈을 맞는 사고로 수정체가 탈구되어 약 10여 년간 시력을 읽은 채 살았다고 한다. 여기에 관해서는 본인의 저서 두 권에 부분적으로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당시 가해자 신분인 친구의 집안이나 본인의 집안 둘 다 형편이 매우 어려워서 수술비를 낼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6] 이후 수술을 했고,[7] 현재 시력은 어느 정도 회복 된 상태라고.
강연장에서 언급한 내용에 따르면 IMF사태로 가세가 기울어 전기와 보일러가 끊길 정도로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정에서 좋지 않은 일들을 겪은 많은 청소년들이 그렇듯 작가 본인에게도 자연스럽게 방황기가 찾아왔고, 소위 '수업 땡땡이'나 '상습지각'은 물론이고 지독한 게임중독자이기까지 했다. 그러다 '더는 인생을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들이 걸어온 삶을 알기 위해 여행을 다녔다. 이후 강연자, 작가, 호텔리어, 방송 출연 등 문화계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이름을 알리게 된다.

3. 활동




3.1. 명사여행


저는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사람을 대면하는 것이 낯설고 어색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려는 만나자마자 다 날아갔습니다. 황 작가의 자신감과 도전정신, 호기심 등이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 같았습니다. 역시 청춘이었습니다. 1시간 동안 청춘, 사랑, 만남, 이별 등 대화를 하다 보니 20년 전으로 돌아가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열정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즐거움입니다.

- 고수석(중앙일보 기자)

지역과 사상을 불문하고 수많은 명사들을 찾아 다녔다. 명사와의 만남을 본인의 SNS에 일기처럼 기록해두는데 주로 명사들의 생애에 관해, 그들의 성공담과 실패담을 이야기 나눈다. 소개된 명사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데 대표적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 일본 마루한 한창우 회장, 신원수 前 로엔엔터테인먼트 대표, 가수 인순이, 금난새 지휘자, JTBC, 성악가 조수미, 썰전에 고정출연한 유시민 작가와 박형준 교수, KBS 박선규 기자, 김용삼 前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 조광래 前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글배우 작가, 이외수 작가, 이병률 시인, 나태주 시인, 정목 스님 등이 있다.

3.2.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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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인 에세이 <청춘의 자화상>(왼쪽)과 시집 <연설(戀說:사랑이야기)>(오른쪽)

황진혁의 체험론은 그의 시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기왕의 시론이나 낯익은 기법의 시가 아니라 남성적 목소리로 영역을 부단히 넓혀나가는 운동적 성질을 띄는 것이 그의 시라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시단이 이제 영역을 넓혀나가는 한 조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육사유치환이 창백한 역사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황진혁처럼 선 굵은 동선을 만들면서 체험의 궤적을 그어나가며 그 뒤를 이어 나갈 것이라는 점은 어쩌면 귀한 사례로 기록되는 것이라 할 만하다.

- 강희근(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황진혁의 시어들은 진솔하고 따뜻하다. 아픔 속에서도 삶을 긍정하는 에너지가 스며있고 슬픔 속에서도 빛나는 유머와 웃음이 느껴지는 시인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들! 읽는 이에게도 용기와 희망을 주는 그의 시들을 볼 때마다 새로운 바닷가의 해송을 닮았다.

- 이해인(수녀, 시인)

에세이 한 권과 시집 한 권이 있다.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짝사랑 때문에 첫 책 <청춘의 자화상>을 출간하게 되었다.[8] 의도치 않게 작가로 데뷔하면서 이후 두 번째 저서인 시집 <연설(戀說:사랑이야기)>를 출간했다. 등단하지 않고 시집을 출간했기 때문인지 정작 본인은 시인으로 불리기보다 작가로 불리는 게 편하다고.관련영상(00:23)
두 번째 저서인 시집을 투고를 통해 출간했다고 한다.[9]관련영상(11:40) 앞의 영상링크에서 본인도 언급했지만 일반적으로 시집은 판매량이 적어 투고 작품으로 출판사에 낙점 받기란 매우 어렵다. 그것도 첫 시집이라면 굳이 말할 것도 없다. 투고 작품으로 출간된 시집이라는 점이나 등단시인이 아닌 작가의 시집에 강희근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이해인 수녀, 공광규 시인[10] 같은 시문학에서 명성 있는 시인들의 추천사가 실려 있는 드문 케이스의 작품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요즘 SNS에서나 등장하는 짤막한 글로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출간하는 작가들과, 작품이 어렵다는 이유로 잘 읽히지 않는 기성시인들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두 책에 나온 글은 여러 SNS페이지에 소개 되어 꾸준히 사랑받고 있으며, 독자들의 리뷰에서도 좋은 평을 받고 있다.

3.3.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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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들을 찾아다닌 활동으로 언론이나 방송매체에 소개되면서 자연스럽게 강연제안을 받아 강연자가 되었다. 학교, 카페, 교회, 협회, 직원연수 등 다양한 곳에서 연사로 초청 받아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
주로 명사들을 찾아다닌 여행기를 소개하는데, 이따금씩 본인의 인생이야기도 조명된 이후 기초생활수급자·투병생활·상습지각생·게임중독·성적 꼴찌에서 합창지휘자·대학벤처 자문위원·최연소 호텔지배인·칼럼니스트·작가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루트에서 좌충우돌했던 본인의 스토리로 희망을 전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동양고전 '삼국지'를 통해 역사 속 명사를 찾아가는 인문학강연을 레퍼토리에 추가해서 강연영역을 확대하는 등 다양한 테마를 갖고 있는 그의 강연은 동기부여에 있어 청중들에게 힘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3.4. 기타


작가로서의 활동 이상으로 타 분야에서의 활동이 많은 편이다. 대학 졸업 후 호텔리어로 취직했는데, 근무기간 4년 만인 만 26세의 나이로 최연소 호텔지배인이 되었다.관련기사 뿐만 아니라 벤처, 방송, 칼럼, 합창지휘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다. 한 번씩 대학 학생회 활동으로도 이름이 등장하는데, 진학한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학생회 관련 활동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관련영상(01:20)

4. 여담


  • '페북스타', '인싸'라는 용어가 생기기 전, '싸이스타'였다. 한때 인기였던 싸이월드에서 '투멤남'으로 여러 차례 메인에 노출되었으며 자작시 300여 편, 명사여행기 등의 활동으로 토탈 방문객이 10만 명을 넘겼다.[11] 투데이멤버 인터뷰 당시 대학 후배들을 위해 책을 출간하고 싶다고 했는데,[12] 이후 실제로 이루어졌다.
  • 대학 동문으로는 슈퍼스타K2와 판타스틱듀오에 출연했던 김성범과[13] 2010 MBC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수상한 이후 '보리구미'라는 팀으로 활동 중인 강보리가 있다.

5. 보도자료



[1] 저서 저자소개 참고.[2] 시인 장만호 교수를 사사하고 있다.[3] '황진혁의 참 좋은 당신에게'라는 코너를 진행했다.[4] '쏭드링크'라는 보이스 케어 드링크를 만드는 청년벤처사였는데, TVN <퍼펙트싱어 VS>에 협찬을 하기도 했다. 당시 유통망을 확보하기 어려워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결국 구성원 모두 그동안의 발주품만 정리한 후 각자의 길을 찾아갔다고.[5] 진주시의 유네스코 창의도시 선정을 위해 개최했던 국제규모 행사이다.관련기사 그리고 그해 11월, 진주시는 유네스코에서 공예·민속분야 창의도시로 최종선정되며 유네스코 네트워크 가입도시에 이름을 올렸다.관련기사[6] <청춘의 자화상> 에필로그 참고.[7] 사고 후 한참 뒤에야 수술을 했던 걸 보면 아마도 자비를 들여 수술한 것 같다.[8] <연설(戀說:사랑이야기)> 저자 소개 참고.[9] 첫 출간의 경우 출판사로부터 먼저 제안을 받아 데뷔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데뷔작 역시 투고를 통해 출간했을 확률이 높다.[10] 이 시집의 발문을 썼다.[11] 싸이월드에서 남성의 경우 '얼짱'을 제외하면 토탈 방문자가 10만 명이 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12] 현재는 싸이월드의 서비스 종료(사실상)로 해당 페이지가 존재하지 않는다.[13] 슈퍼스타K2에는 당시 조별미션에서 허각, 존박, 김그림, 현승희 같은 유력한 우승후보들이 속한 조에서 허각과 함께 살아남는 기염을 토했으나(존박과 김그림은 패자부활전으로 슈퍼위크에 진출했다.) 라이벌 미션에서 최준혁이 가사를 보고 노래하는 바람에 심사위원들과 함께 당황하며 탈락했다.(바로 앞에 탈락을 통보 받은 장재인이 노래를 너무 잘했던 탓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