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 FIFA 월드컵 서독/지역예선
1. 개요
개최국 서독과 전 대회 우승팀 브라질이 자동진출권을 부여받았고, 나머지 14개의 티켓은 다음과 같이 배분되었다.
- 유럽 : 8.5장
- 남미 : 2.5장
- 북중미/카리브, 아시아/오세아니아, 아프리카 각 1장
1.1. 유럽 예선
1.1.1. 1조
- 플레이오프
1.1.2. 2조
- 누가봐도 전 대회 준우승의 위엄을 가진 이탈리아의 독주였다. 나머지 셋 모두 이탈리아에 게임이 되질 않았고[3] 이탈리아가 4승 2무 12득점 '''0실점'''으로 무난히 조 1위 달성. 이탈리아조차도 무실점으로 월드컵에 진출한 경우는 이 때가 유일하다고 한다. 터키와 스위스가 나란히 2승 2무 2패 콩라인을 차지하지만 실점이 하나 적은 터키가 2위, 스위스가 3위. 룩셈부르크는 1승 5패 2득점 14실점으로 또다시 광탈했지만 역시 터키를 상대로 1승을 챙긴 것에 의의를 둬야 했다.
1.1.3. 3조
- 유로피언컵(현 챔피언스리그) 3연속 우승한 아약스의 대활약과 전설의 요한 크루이프를 선두로 한 네덜란드, 역시 전력이 무섭게 상승세를 타고 있던 벨기에의 2파전이었다. 두 나라 모두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를 관광태우고 서로간의 맞대결에서 2무를 기록해 4승 2무의 성적을 거뒀지만 골득실에서 네덜란드가 24득점 2실점[4] , 벨기에가 12득점 '''0실점'''을 기록해 열 골이 앞서는 네덜란드가 1938 대회 이후 36년 만에 3번째로 본선에 진출했다. 벨기에는 '''4승 2무에 무실점을 거두고도''' 네덜란드에 밀려 '''본선 진출해 실패했다'''. '''단 한 골도 내주지 않고 한 번도 안 졌는데 본선을 못 밟은 나라'''는 1974년 '''벨기에가 유일'''하다. 더욱이 승점 동률을 기록한 네덜란드가 토탈 풋볼을 앞세우며 준우승을 차지하고 월드컵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는 것을 생각하면....... 안습도 이런 안습이 없다. 이 극강의 두 나라에 밀린 노르웨이는 그나마 월드컵에 첫 신고를 한 아이슬란드를 관광보내고 2승 4패를 기록, 월드컵에 첫 도전한 아이슬란드는...
1.1.4. 4조
- 다른 조처럼 극강의 나라가 없던 조였기에 치열한 개싸움이 예상되었고, 그 중에서도 루마니아와 동독이 티켓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했었다. 역시 틀린 바 없게 되어 동독이 5승 1패 18득점 3실점, 루마니아가 4승 1무 1패 17득점 4실점을 거두며 가까스로 동독이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게된다. 동독 루마니아간의 상대전적은 1승 1패로 호각세였지만, 3위 핀란드와의 싸움에서 월드컵의 향방이 결정된 것이었다. 루마니아는 홈에서 핀란드에 9-0 대승을 거두고도 원정에서 비기며 1승 1무를 기록한 반면, 동독은 2연승을 거두어 1점차로 월드컵 티켓을 따낸 것. 더욱이 같은 나라였던 옆동네 서독에서 열리는 월드컵이었으므로 더욱 뜻깊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서독에서 열린 이 월드컵이 동독이 진출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이었다. 이후 1990년 망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월드컵을 밟지 못했는데, 유일하게 진출한 이 대회에서 '''서독과 만나고 서독을 1:0으로 이김으로써 조 1위로 8강 진출...''' 통일 전까지 서로에게 많은 의미가 있었던 대회이기도 했다. 실제로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동방정책을 실시하며 폴란드에 사과하고 동베를린 방문했던 것도 이 때였으니. 한창 햇볕정책을 시도할 때쯤 열린 2002 한일월드컵을 생각하면 뭔가 통하면서도 은근히 대비된다.
1.1.5. 5조
- 처음에는 잉글랜드의 독주가 너무 당연시되던 조였다. 하지만 지난 대회에서 아깝게 미끄러진 폴란드가 절치부심 세대 교체를 이끌어내며 전력이 급상승하면서[5] , 세대 교체 실패로 전력이 크게 약화된 잉글랜드를 상대로 가둬놓고 패기를 시전했다. 첫 경기였던 웨일즈 원정에서 0-2 완패를 당했지만 잉글랜드에 홈에서 2-0 승리를 거두었고 웨일즈에 홈에서 3-0 대승을 거두며 조1위에 올라갔다. 그리고 잉글랜드 원정 단두대 매치에서 1-1 무승부, 결국 1승 1무로 상대전적에서 잉글랜드에 앞서며 총합 2승 1무 1패 6득점 3실점으로 36년 만에 통산 2번째 월드컵 티켓을 따낸다. 잉글랜드는 폴란드에게 밀린 것이 타격이 되어 1승 2무 1패 3득점 4실점의 초라한 성적을 남기며 광탈한다. 첫 경기였던 웨일즈 원정에서 1-0 승리를 거둔 것이 유일한 승리였다. 1950년 이후 월드컵 도전사에서 처음으로 지역예선에서 탈락한 대회였으며, 다음 대회에서마저 진출에 실패하며 축구종가의 명성을 제대로 구기게 된다. 같은 축구종가인 웨일스 역시 최하위로 광탈. 동구권의 듣보잡 취급하던 나라에 두 축구종가가 무너진 (영국 입장에서) 억세게 재수없는 조였다.
1.1.6. 6조
- 4조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한 방이 없는 고만고만한 조였다. 1970년 조 최하위로 광탈한 포르투갈에겐 명예회복의 기회였지만 에우제비오의 공백과 세대교체 실패로 다시 유럽 중하위권으로 내려앉은지 오래였고, 북아일랜드 역시 이렇다할 스타 플레이어가 나오지 않으면서 침체기를 겪을 때였다. 결국 승자는 이전 3회 대회를 연속 진출했던 불가리아였다. 총합 4승 2무 13득점 3실점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손쉽게 월드컵 4회연속 진출 티켓을 따낸다. 2위 포르투갈은 2승 3무 1패, 3위 북아일랜드는 1승 3무 2패. 각각 불가리아에 1무 1패씩 당하고 서로 무재배를 하면서 광탈했다. 만년 꼴찌 키프로스는 1승을 챙기며 전패의 치욕은 겪지 않았다.
1.1.7. 7조
- 플레이오프
1.1.8. 8조
- 사실상 체코와 스코틀랜드의 2파전. 덴마크는 당시만 해도 월드컵 본선을 단 한번도 진출 못했던 승점자판기 신세였기 때문이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전 대회 본선에 진출하기는 했지만 3전 3패 탈락이라는 굴욕을 겪었기에 재기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고, 스코틀랜드도 축구 종가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세 번 연속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며 체면을 구기고 있었기에 이번에야말로 이름값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결과는 스코틀랜드의 승리로 3승 1패 5득점 2실점, 조 1위로 진출. 체코슬로바키아는 2승 1무 1패 9득점 3실점으로 골득실에서 크게 앞섰음에도 승점 자판기 덴마크 원정에서의 무승부가 치명적이었다. 덴마크는 1무 3패 2득점 13실점으로 광탈. 이런 팀이 불과 12년 뒤에 3전 전승으로 16강에 진출하고 18년 뒤에 유로 우승컵을 따내고 22년 뒤에 8강까지 올라갈 줄 누가 알았을까..
1.1.9. 9조
- 이 조는 유일하게 1위를 해도 본선 직행을 못하고 남미와 플레이오프를 치뤄야 했다. 플레이오프행은 소련이 유력했는데, 프랑스가 한창 흑역사를 갱신중일때라 적수는 사실상 없었다. 예상대로 3승 1패 5득점 2실점을 기록, 세대 교체에 실패해 침체를 겪고 있었음에도 가볍게 조 1위를 따낸다. 프랑스는 승점자판기 아일랜드에게도 밀리며 1승 1무 2패 3득점 5실점으로 조 최하위를 찍는 굴욕을 겪는다.
1.2. 남미 예선
굵은 글씨가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국가들이다.
1.2.1. 1조
- 전 대회 4강에 빛나는 우루과이가 톱시드를 받았고, 역시나 우루과이가 본선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1970년 이후 전력이 급하강하면서 압도적인 성적을 보여주지 못하고 가까스로 1위를 수성했는데, 2위 콜롬비아와 승점이 같아 (우루과이 2승 1무 1패 6득점 2실점, 콜롬비아 1승 3무 3득점 2실점) 골득실에 의해 가까스로 본선 무대를 밟게 되었다. 이전의 막강한 화력은 온데간데 없었고 세대 교체에 실패하며 바닥을 드러낸 우루과이는 본선에서 톱시드는 받지만, 톱시드 받은 국가들 중 최악의 성적을 내며 광탈하는 굴욕을 겪는다.
1.2.2. 2조
- 전 대회에서 라이벌 브라질이 줄리메컵을 들어올리는 것을 지켜봐야했던 아르헨티나로서는 어느 때보다 중요한 대회였다. 다음 대회를 자국에서 열기 때문에 전초전의 성격도 강했고, 브라질의 독주를 더 이상 눈 뜨고 지켜볼 수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상대국인 파라과이 볼리비아 모두 아르헨티나에 월등히 뒤지는 전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3승 1무 9득점 2실점이라는 호성적으로 가볍게 본선 무대에 안착한다.
1.2.3. 3조
- 플레이오프
1.3. 북중미 예선
월드컵 참가국이 늘어남에 따라 1, 2차예선으로 나누어 치뤄졌다. 1조와 6조에 각 세나라, 2~5조까지 2개국이 플레이오프 형식으로 가리고 여기서 이긴 6개국이 최종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형식이었다. 1973 CONCACAF 챔피언십을 겸했다.
1.3.1. 1차 예선
1.3.1.1. 1조
멕시코가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1.3.1.2. 2조
과테말라가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1.3.1.3. 3조
온두라스가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1.3.1.4. 4조
네덜란드령 안틸레스가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1.3.1.5. 5조
아이티가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1.3.1.6. 6조
트리니다드 토바고가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1.3.2. 최종 예선
최종예선에서 대이변이 일어났다. 전 대회 개최국이자 8강 진출국인 '''멕시코가 3위로 광탈해버린 것이다!''' 아이티, 트리니다드 토바고에 밀리면서 2승 2무 1패, 3위로 미끄러지며 월드컵 연속 진출에 실패한다. 이 때의 탈락은 34년 대회에서 떨어진 이후 두 번째였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지역예선에서 미끄러진 것이었다. 게다가 전 대회에서 세계급 강호들을 상대로 분투했었으니 충격은 말이 아니었다. 북중미의 절대강자 멕시코를 누른 팀은 '''아이티'''로서 4승 1패 8득점 3실점을 기록하며 사상 첫 월드컵 진출에 성공했다.
1.4. 아시아/오세아니아 예선
대륙이 워낙 큰 관계로 A지역과 B지역으로 나눠서 예선을 치루고, 각 지역 1위 국가들끼리 플레이오프를 통해 최종 진출자를 가리는 형식이었다. A지역은 동아시아, B지역은 서아시아/오세아니아였으나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서아시아의 이스라엘이 A지역, 동아시아의 북한과 인도네시아가 B지역으로 들어갔다.
1.4.1. A 지역
1.4.1.1. 1조
홍콩과 일본이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1.4.1.2. 2조
이스라엘과 대한민국이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1.4.1.3. 토너먼트
- 준결승
- 결승
1.4.2. B 지역
B지역은 A와 다르게 각조 1위만이 올라와 최종 플레이오프 진출자를 가리는 방식이었다.
1.4.2.1. 1조
이란이 결승에 진출하였다.
1.4.2.2. 2조
1.4.2.3. 결승
호주가 최종 예선에 진출하였다.
1.4.3. 최종 예선
- 플레이오프
1.5. 아프리카 예선
역시 월드컵 신청국이 상당히 늘어나서인지 4라운드까지 경기롤 늘렸는데, 1~3라운드까지는 두 나라가 홈&어웨이 단판승부를 겨루는 형식이었다. 총 22개국이 참여한 1라운드부터 3라운드를 거치며 총 3개국으로 걸러졌는데, 마지막 4차예선에서 자이르(지금의 콩고민주공화국)가 잠비아, 모로코를 상대로 4전 전승 9득점 1실점의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며 본선행 티켓을 잡는다. 잠비아와 모로코는 나란히 1승 3패를 기록하며 광탈. 다만 아프리카에서 이렇게 좋은 성적을 내고도 본선에서는...
1.5.1. 1라운드
1.5.2. 2라운드
1.5.3. 3라운드
1.5.4. 최종예선
자이르가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1.6. 플레이오프
PO에서는 소련과 칠레가 맞붙기로 했었는데 소련에서 열린 1차전에서는 0:0 무승부를 거뒀다. 문제는 칠레에서 열릴 2차전을 앞두고 칠레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살바도르 아옌데의 사회주의 정권이 몰락하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집권한 것. 피노체트는 집권과 동시에 경기가 열릴 에스타디오 나시오날에서조차 정치범 수용 및 처형을 자행했다. 소련측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며 경기 장소를 옮길 것을 FIFA에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소련은 경기를 거부하여 몰수패로 칠레의 본선 진출이 확정되었다.
[1] 마지막 경기였던 스웨덴과의 홈경기에서 승리했으면 본선행 확정이었고 3-2로 이기고 있었으나 동점골을 내주며 탈락했다.[2] 스웨덴의 두 번째 골 페널티킥은 주심의 오심이었다. 공격수가 걸려 넘어지기 전에 이미 오스트리아 골키퍼가 잡은 상황이었는데 주심은 이걸 페널티킥으로 선언했다.[3] 이탈리아는 스위스, 터키에 1승1무씩 기록했다.[4] 네덜란드는 노르웨이를 홈에서 9대0으로 우주관광 보냈고, 아이슬란드를 상대로도 홈에서 5-0 원정에서 8-1로 골을 쓸어담았다.[5] 1972 뮌헨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