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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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는 1996년 제1회를 시작으로 2020년 제25회를 맞이한, 부산 지역을 넘어 아시아 영화계의 최대 비경쟁 영화제이다. 현재는 홍콩국제영화제(HKIFF)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시아권의 대규모 영화제로 자리잡았다.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 센텀시티 일원에서 매년 10월 초에 개최되어 10일간 진행한다. 당시 문공부 기획관리실에 있던 김동호[3] 당시 집행위원장이 영화진흥공사장에 취임하면서 작지만 권위 있는 영화제를 만들자는 취지로 추진, 당시 중앙대 이용관 교수, 부산예대 김지석 교수[4] , 영화평론가 전양준 등의 주도로 만들었다.[5]
초청영화들은 장르에 구애되지 않고 다양하게 선정한다는 것이 BIFF가 내세우는 상징성이다. 즉 할리우드 제작 영화에서부터 칸·베를린·선댄스영화제 수상작, 애니메이션 외에도. 독립영화, 예술영화, 단편영화 등의 영화들도 초청의 대상이다.
개·폐막작을 제외한 모든 영화는 2회 상영이 기본이며 개막일에는 개막작 이외엔 상영하지 않는다.[6] 야외 상영은 하루에 한번,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20시에 상영한다.
이 영화제를 기획했던 1990년대 당시에는 "부산에서 무슨 영화제냐."하는 우려의 시선이 가득했으나, 1996년 제1회 대회의 대흥행으로 전국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그리고 이후 셀 수도 없이 유사 영화제(광주국제영화제, 여수국제해양영화제, 춘천국제영화제, 충무로국제영화제 같은 영화제들)가 우후죽순으로 생겼다가 대다수가 사라졌으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포함 전주국제영화제나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괜찮게 남은 편이다.
초창기 주요 무대는 중구 남포동이었다. 1회 영화제 당시만 해도 해운대구 일대는 아에 개발이 되어있지도 않을 뿐더러 당시에는 부산의 동쪽 변두리였다. 현재의 해운대 주요 상영관은 그 당시 수영비행장이였다.
남포동 일대는 영화 마지막 상영이 끝나는 12시 즈음이면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아버려서 갈 데가 없었는데, 외국 게스트 집행위원장과 평론가들과 함께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밤새 술을 마셨던 게 부산국제영화제의 명물 스트리트 파티가 되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초창기 게스트들이 아직도 그때를 잊지 못하고 "그때가 정말 좋았다."고 한다고. 왕가위가 폭탄주를 만들고 벽에 휴지를 던져 붙이고, 술 먹다 보니 옆자리에 칸 영화제의 티에리 프레모 집행 위원장과 대만의 허우사오시엔 감독이 있고, 해운대 포차촌에 갔더니 장동건과 오다기리 조가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광경.
이후 남포동 일대에 PIFF(현재의 BIFF) 광장이 조성되고 원도심의 쇠락 속에서 새로운 활기를 맞는 계기도 되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 수록 커지는 규모에 비해 영화관 시설이 낡고 협소할 뿐더러 비프광장로 주변으로 확장을 할 수 없다 보니 새로운 장소를 찾던 중 해운대 쪽이 적합하여 행사들을 조금씩 옮겨갔다.
그러나 영화 상영과 이벤트가 서로 이원화가 되어 불편함을 겪었는데 그 이유는 부산 시가지 남쪽과 동쪽 끝에 있는 남포동과 해운대 간에는 어림잡아 1시간이 넘는 이동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결국 영화의전당 등 핵심 시설이 완공된 2011년 16회 BIFF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운대 일대에서만 모든 것을 진행 및 상영하였다가, 남포동 일대 상인들의 엄청난 반발로 인해 2012년 17회부터는 메가박스 부산극장이 다시 상영관으로 추가되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역부족이였는지 2017년 제22회부터는 새로 개관한 부산영화체험박물관을 포함해 비프광장에서 각종 행사를 추가 진행하기로 했다.
이후 2019년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부터는 롯데시네마 대영 상영관으로 공식 상영작들을 다시 상영하게 되었다.
서병수 시장과의 갈등과 다이빙벨 논란은 해당 문서로. 이후 취임한 오거돈 시장이 임기 동안 1000억을 지원해 소생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오거돈 "BIFF 독립·도약 기금 4년간 1000억 조성" 이에 영화 단체들도 2018년부터 보이콧을 전면 해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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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산국제영화제는 1996년 제1회를 시작으로 2020년 제25회를 맞이한, 부산 지역을 넘어 아시아 영화계의 최대 비경쟁 영화제이다. 현재는 홍콩국제영화제(HKIFF)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시아권의 대규모 영화제로 자리잡았다.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 센텀시티 일원에서 매년 10월 초에 개최되어 10일간 진행한다. 당시 문공부 기획관리실에 있던 김동호[3] 당시 집행위원장이 영화진흥공사장에 취임하면서 작지만 권위 있는 영화제를 만들자는 취지로 추진, 당시 중앙대 이용관 교수, 부산예대 김지석 교수[4] , 영화평론가 전양준 등의 주도로 만들었다.[5]
초청영화들은 장르에 구애되지 않고 다양하게 선정한다는 것이 BIFF가 내세우는 상징성이다. 즉 할리우드 제작 영화에서부터 칸·베를린·선댄스영화제 수상작, 애니메이션 외에도. 독립영화, 예술영화, 단편영화 등의 영화들도 초청의 대상이다.
개·폐막작을 제외한 모든 영화는 2회 상영이 기본이며 개막일에는 개막작 이외엔 상영하지 않는다.[6] 야외 상영은 하루에 한번,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20시에 상영한다.
2. 역사
이 영화제를 기획했던 1990년대 당시에는 "부산에서 무슨 영화제냐."하는 우려의 시선이 가득했으나, 1996년 제1회 대회의 대흥행으로 전국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그리고 이후 셀 수도 없이 유사 영화제(광주국제영화제, 여수국제해양영화제, 춘천국제영화제, 충무로국제영화제 같은 영화제들)가 우후죽순으로 생겼다가 대다수가 사라졌으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포함 전주국제영화제나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괜찮게 남은 편이다.
초창기 주요 무대는 중구 남포동이었다. 1회 영화제 당시만 해도 해운대구 일대는 아에 개발이 되어있지도 않을 뿐더러 당시에는 부산의 동쪽 변두리였다. 현재의 해운대 주요 상영관은 그 당시 수영비행장이였다.
남포동 일대는 영화 마지막 상영이 끝나는 12시 즈음이면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아버려서 갈 데가 없었는데, 외국 게스트 집행위원장과 평론가들과 함께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밤새 술을 마셨던 게 부산국제영화제의 명물 스트리트 파티가 되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초창기 게스트들이 아직도 그때를 잊지 못하고 "그때가 정말 좋았다."고 한다고. 왕가위가 폭탄주를 만들고 벽에 휴지를 던져 붙이고, 술 먹다 보니 옆자리에 칸 영화제의 티에리 프레모 집행 위원장과 대만의 허우사오시엔 감독이 있고, 해운대 포차촌에 갔더니 장동건과 오다기리 조가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광경.
이후 남포동 일대에 PIFF(현재의 BIFF) 광장이 조성되고 원도심의 쇠락 속에서 새로운 활기를 맞는 계기도 되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 수록 커지는 규모에 비해 영화관 시설이 낡고 협소할 뿐더러 비프광장로 주변으로 확장을 할 수 없다 보니 새로운 장소를 찾던 중 해운대 쪽이 적합하여 행사들을 조금씩 옮겨갔다.
그러나 영화 상영과 이벤트가 서로 이원화가 되어 불편함을 겪었는데 그 이유는 부산 시가지 남쪽과 동쪽 끝에 있는 남포동과 해운대 간에는 어림잡아 1시간이 넘는 이동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결국 영화의전당 등 핵심 시설이 완공된 2011년 16회 BIFF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운대 일대에서만 모든 것을 진행 및 상영하였다가, 남포동 일대 상인들의 엄청난 반발로 인해 2012년 17회부터는 메가박스 부산극장이 다시 상영관으로 추가되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역부족이였는지 2017년 제22회부터는 새로 개관한 부산영화체험박물관을 포함해 비프광장에서 각종 행사를 추가 진행하기로 했다.
이후 2019년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부터는 롯데시네마 대영 상영관으로 공식 상영작들을 다시 상영하게 되었다.
서병수 시장과의 갈등과 다이빙벨 논란은 해당 문서로. 이후 취임한 오거돈 시장이 임기 동안 1000억을 지원해 소생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오거돈 "BIFF 독립·도약 기금 4년간 1000억 조성" 이에 영화 단체들도 2018년부터 보이콧을 전면 해제했다.
3. 집행부
- 이사장[7]
- 집행위원장
4. 상영관
- 해운대구 센텀시티
- 해운대구 좌동
- 중구 남포동
- 과거 상영관
-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센텀시티)
- (구) 메가박스 해운대 (우동)
- 메가박스 부산극장 (남포동)
5. 프로그램
- 갈라 프레젠테이션(Gala Presentation)은 동시대 거장감독들의 신작 및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화제작을 상영하고 감독, 배우 등이 내한해 관객과의 만남을 가지는 섹션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대표하는 섹션이다.
- 아이콘(Icon)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은 동시대 전세계 거장들의 신작들을 소개하는 섹션이다.
- 아시아 영화의 창(A Window on Asian Cinema)은 다양한 시각과 스타일을 지닌 아시아 영화감독들의 신작 및 화제작을 소개하는 섹션으로 비경쟁 부문이다.
- 뉴 커런츠(New Currents)는 아시아권 신인 영화 감독들의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장편의 경쟁 부문이다. 단순히 아시아의 새로운 재능을 발굴하는 역할을 뛰어넘어, 아시아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확인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영화제의 대표 경쟁 부문으로, 대상 격인 뉴 커런츠상을 비롯해 KNN 관객상 등이 시상된다.
- 한국 영화의 오늘(Korean Cinema Today)은 상업영화와 예술영화, 블록버스터에서 독립영화까지 망라하여 한국영화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영화들을 선보이는 섹션이다. 파노라마 부문은 중견 감독의 화제작을 중심으로 그 해 상영된 상업영화 등을 재상영하며, 비전 부문은 신인 감독의 작품을 소개한다.
- 한국 영화 회고전(Korean Cinema Retrospective)은 한국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특정 감독이나 의미 있는 주제의 회고전을 통해 한국영화사를 재조명하는 장이다.
- 월드 시네마(World Cinema)는 세계적인 거장과 중견 작가들의 신작 및 유수 국제영화제 수상작을 포함하여 한 해 비아시아권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소개하는 섹션이다.
- 플래시 포워드(Flash Forward)는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감각과 예술로서의 영화에 대한 뚜렷한 작가의식을 보여주는 비아시아권 감독들의 신작을 소개하는 섹션이다. 뉴 커런츠처럼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작품을 상영하며 경쟁 부문이다.
- 와이드 앵글(Wide Angle)은 영화의 시선을 넓혀 색다르고 차별화된 비전을 보여주는 단편영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실험영화 분야의 수작을 모아 선보이는 부문으로 경쟁 부문과 비경쟁 쇼케이스로 구분된다.
- 오픈 시네마(Open Cinema)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신작 및 국제적인 관심을 모은 화제작을 야외 특별 상영장에서 상영하는 프로그램이다.
- 특별기획 프로그램은 해마다 그 해의 기획된 특별전을 선보이는 부문이다.
- 미드나잇 패션(Midnight Passion)은 작품성과 오락성을 겸비한 호러, 사이언스 픽션, 컬트 영화 들을 신작 위주로 소개하는 부문으로, 심야상영을 진행하며 3편씩 묶여서 연속 상영한다.
- 부산 클래식(Busan Classic)은 예술적 성취로 영화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 작품을 소개하는 부문이다. 2018년에 신설되었다.
6. 상
- 뉴 커런츠상
뉴 커런츠 경쟁부문. 2개 작품씩 선정되며, 부산국제영화제의 대표 상에 해당한다.
- 지석상
아시아 영화의 창 섹션에서 특정 작품들을 후보로 선정해 수여한다. 2017년 타계한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를 기리기 위해 시상한다.
- 비프메세나상
와이드 앵글의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 선재상
와이드 앵글의 단편 경쟁부문
- 올해의 배우상
- KTH상
한국영화의 오늘_비전과 뉴 커런츠의 한국 작품
- KBS독립영화상
한국영화의 오늘_비전과 뉴 커런츠의 한국 작품
- 한국영화감독조합상
한국영화의 오늘_비전
- 국제영화평론가협회(FIPRESCI)상
뉴 커런츠
- 아시아영화진흥기구(NETPAC)상
한국영화의 오늘-비전과 뉴 커런츠의 한국 작품
- 시민평론가상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 KNN관객상
뉴 커런츠
플래시 포워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 부산시네필상
와이드 앵글의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 한국영화공로상
7. 역대 영화제
- 월드 프리미어는 전 세계 최초 상영이고, 인터내셔널 프리미어는 제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최초 상영을 말한다.
7.1. 역대 상영작
8. 논란
9. 여담
- 개막작은 흥행이 잘 안 된다는 징크스가 생겼다. 때문에 대중성에 초점을 맞춘 영화는 아니라는 평.
- 한때, 로마국제영화제와 스케줄이 겹치는 바람에 월드 프리미어 문제로 곤혹을 겪었으나, 로마쪽이 개최일을 뒤로 밀었다.
- 뉴욕영화제로 인해 GV 게스트가 분산되는 경우도 있는데 일례로 아사코 I & II GV는 카라타 에리카와 히가시데 마사히로는 부산에 왔고, 반대로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는 뉴욕으로 갔다. 전반적으로 스케줄 문제로 최대한 시간을 아껴야 하는 아시아 배우들이 부산에 오는 편.
- 화제작 같은 경우 상영 회수가 딱 한 번 있는 경우가 많아 원성이 높다.
- 인터넷 예매는 거의 매진이나, 현장 구매자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다. 2016년부터 국제적인 화제작을 제외하고는 현장 판매용 좌석이 빈 자리가 많아지고 있어, 국제영화제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이다. 현장 예매분을 원래 20%에서 40%로 올려버린 운영 측의 안일함도 있다.
- 한국에서 가장 크고 활발한 영화제인만큼 한국 시네마테크에 상영되는 영화 자막 대다수는 부산국제영화제 쪽에서 만든게 많다. 자체적으로 자막제작팀을 갖추고 있으며 그럼에도 부족한 일손은 자원봉사자와 부산지역내 자막제작 협력업체의 도움을 받고 있다.
- 규모 있는 국제행사답게, 자원봉사자와 단기 스태프들을 해마다 모집하고 있다. 문체부 주관 행사인지라 정부차원에서 대학들에게 출석협조를 해줄것을 요청하기 때문에 자원봉사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대학에서 국제행사 참여와 같은 사유로 공결 처리가 가능하다. 그래서, 학기도중에 참가하는 사람도 많고 평균 연령이 매우 젊은 편이다. 외지에서 오는 사람을 위한 KTX 비용 지원[14] , 10만원 상당의 협찬 의복 지원, 식비와 심야교통비(택시비) 지급등의 혜택은 물론 배우와 감독, 영화인들을 직접 만나고 수행할 수 있는 흔치않은 경험을 할 수 있다.[15] 그리고 자원봉사 경험자들이 스태프 지원을 하고, 영화제 법인에 입사하여 주요 직급[16] 에서 활동하는 경우도 많을 정도로 상당히 인기있는 자원활동 중 하나. 700여명을 뽑는데 2000명 가까운 사람이 지원하며, 외국인 자원봉사자들도 있다.[17] 보통 대학교 기준 1학기 말 즈음에 선발하는데, 관심이 있다면 영화제 홈페이지를 챙겨보다가 지원하면 된다.
- 2018년 행사에서는 태풍 콩레이가 부산지역을 직접 강타하여 여러모로 고생을 하기도 했다. 해수욕장에 설치된 가건물인 비프빌리지가 사용도 얼마 못해보고 철거되는가 하면, 상영관에서 전력 공급 불안정으로 상영 도중 영사가 잠시 중단되는 영사사고가 발생하기도 하였다.[18] 다행히 영사기를 재가동하고 재생이 멎은 부분을 찾는 20여분의 시간동안 현장 자원활동가와 스태프, 그리고 관객과의 대화(Guest Visit)를 위해 자리했던 통역가와 진행자들이 임기응변으로 잘 대처하여 대량의 환불 요구가 나오는 등의 큰 소란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다음해인 2019년에는 태풍 미탁의 영향을 받아, 부산국제영화제는 2년 연속으로 태풍의 영향을 받았다.
- 영화제에서 제작해 입힌 한국어 자막은 요즘에는 매우 보기 드문 세로 자막으로 출력된다. 가로 자막이 나오는 영화는 제작자 측에서 미리 자막을 준비해왔거나,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어 자막 작업까지 깔끔하게 마무리된 상영작이라고 보면 된다. 이는 영화 상영 포맷인 DCP에 자막을 입히지 않고 별도로 준비된 프로젝터로 영화관 한켠에서 자원봉사자와 자막 협력업체가 자막을 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제에서 주로 출입구 위에 위치한 자리(2~3석씩 이루어져있는 자리)는 판매를 하지 않는다. 자원봉사자들이 상주하면서 영사 상태 점검과 자막 출력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1] 부산의 영어 표기가 로마자 표기법 개정으로 2000년에 Pusan에서 Busan으로 바뀌었지만, PIFF 자체가 너무나도 유명해져서 브랜드화되었기 때문에 한동안 그냥 그대로 PIFF를 사용하다 2011년에 부산국제영화제의 영문 약칭을 PIFF에서 '''B'''IFF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방콕국제영화제(Bangkok International Film Festival), 브리즈번국제영화제(Brisbane International Film Festival) 표기와 같고, 발음이 고기(beef)가 생각나는 단어로 비판받고 있다. [2] 홈페이지 주소로 BIFF.com이 사용되지 않는데, 홈페이지 개설을 늦게 하면서 BIFF.com 도메인을 외국인이 구매, 6천만원에 판매하겠다고 제안했다고...[3] 영화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 배우 등으로 영화계에서 직접 활동한 인사가 아니라 순수 행정 관료 출신이다. 대단한 시네필이었고, 영화제 개최를 위해 전세계 영화인들을 직접 찾아갔다고.[4] 이후 부집행위원장 자리까지 올라갔다. 2017년 5월 18일 칸 영화제 참석 도중 심장마비로 타계.[5]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050802000120 [6] 2018년에는 상영취소와 상영중단 작품이 꽤 나와, 이 원칙도 흐지부지되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7] 과거 부산광역시장이 당연직 조직위원장을 맡다가 2016년부터 민간으로 전환되었다.[8] 2007년부터 이용관과 공동 체제.[9] 2011년까지 김동호와 공동 체제. 2015년부터 강수연과 공동 체제.[10] 2016년까지 이용관과 공동 체제.[11] 옛 해운대역 쪽에 있었던 메가박스 해운대점 입주건물인 스펀지가 철거되며 상영관이 변경되었다.[12] 여담으로 본사직영점이 아니라서 그런지 시설은 안습이었다. 씨너스 시절 장비와 인테리어를 거의 대부분 그대로 쓰고있었으며 2000년대 중반 멀티플렉스의 시설수준과 인테리어를 유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영사기 교체가 제때 되지 않았는지 화면이 상대적으로 어둡고 일부 관에서는 실크스크린에 얼룩이 져있기도 할 정도였다. 이전 상영관에는 돌비 에트모스까지 있었던걸 생각하면 사실상 고육지책급의 상영관 선정이었던 셈. 하지만 이후 좌석 교체, 실크스크린 교체작업은 물론 내부 리모델링까지 최근 메가박스가 밀고 있는 보라색과 검정색 위주의 디자인으로 바꿨으며, 가장 큰 문제였던 영사기까지 최근 개업하는 영화관 수준의 장비로 싹 교체해 시설이 매우 좋아졌다.[13] 누적 구매된 좌석의 수이며, 실 관객수는 아니다.[14] 2017년까지는 우등고속 기준으로 지급하였으나 오거돈 시장 당선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영화제에 들어오는 지원이 굉장히 늘었다고 한다[15] 운좋으면 사진 촬영도 할 수 있는데, 영화제측에서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영화인들에 대한 존중의 뜻에서 먼저 촬영 요구를 하지 않도록 교육한다. 사진촬영을 하는 경우는 배우나 감독들이 자원봉사자들 혹은 스태프와의 촬영을 먼저 요청해오는 경우. 영화사 측에서 관객들에게 간혹 선물로 한정판 굿즈나 포스터등을 나누어주는 경우도 있는데 감독이나 배우들이 감사의 표시로 여분을 자원봉사자들에게 주기도 한다.[16] 심지어 영화제의 중역급인 프로그래머(상영 영화를 선정하는 위치에 있다)중에서도 자원봉사자로 인연을 맺은 사람이 존재할 정도이다[17] 이들은 주로 의전분야나 자막번역에서 활동한다[18] 영사기에는 산업용 고전압이 인가되므로 전력문제에 민감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