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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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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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아멘토어: Pais Kòrsou (코르소우 국) / Kòrsou
네덜란드어: Land Curaçao (퀴라서우 국) / Curaçao
영어: Country of Curaçao (큐라소 국) / Curaçao
'''퀴라소'''는 네덜란드 왕국의 구성국으로 수도는 빌렘스타트다. 인구는 약 16만명으로 충청남도 당진시와 비슷하다
베네수엘라에서 북쪽으로 약 60km 떨어진 카리브에 있는 네덜란드 왕국을 구성하는 지역 중 하나다. 퀴라소는 포르투갈어 coração(코라상, 심장 또는 성심)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아메리카를 잇는 카리브의 중심지라는 뜻으로 붙여졌다. 네덜란드어 발음은 퀴라소보다는 포르투갈어 발음을 흉내낸 퀴라서우나 쿠라서우([kyːraːˈsʌu̯, kuːraːˈsʌu̯\])에 더 가깝다. 파피아멘토어로는 코르소우에 가깝다.
2. 역사
1499년 스페인인 알론소 데 오헤다와 이탈리아인 아메리고 베스푸치에 의해 발견되었다. 원래 원주민 아라와크족과 카케티오스 족 등 여러 민족이 살고 있었지만 1527년 스페인에 의해 히스파니올라 섬에 노동 노예로 끌려가면서 거의 멸족했다.
1634년 네덜란드는 함대를 퀴라소에 파견하고 1635년 항구 입구를 적의 함대로부터 지키기 위해 포트 암스테르담이라는 요새를 건설했다. 이어서 네덜란드는 공격을 시작했고 퀴라소에 있던 스페인은 저항했지만 섬에서 퇴출되었다. 1642년 네덜란드 서인도회사에서 푼타 항구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페트뤼스 스타위베산트[1] 의 관리 하에 흑인 노예 등을 도입해 옥수수, 땅콩 농장과 소금 생산 등으로 번창했다. 1651년 12명의 유대인이 섬에 정착하면서 1732년에 서반구에서 가장 오래된 유대교 회당을 지었다. 퀴라소는 무역 등에서 전략상 중요한 위치였기 때문에 프랑스와 영국 등의 공격을 당하기도 했지만 네덜란드는 지켜냈다. 프랑스 혁명 시기에 잠시 영향력을 잃기도 했지만 1815년 파리 조약에 의해 다시 네덜란드 서인도회사의 관리 하에 돌아왔다. 1854년 노예 제도가 폐지되었다.
2010년 10월 10일 네덜란드령 안틸레스가 폐지되면서 퀴라소는 단독으로 네덜란드 왕국의 구성국이 되었다.
3. 지리
ABC 제도에 포함되어 있다. 섬의 북쪽에는 최고 지점 크리스토 필버그 산(375m)이 있고 선인장이 군집되어 있는 일대는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1년 내내 무역풍이 불고 있어 최고 기온은 30°C 전후, 최저 기온은 25°C 전후다. 1~9월이 건기로 월평균 강수량은 50mm 이하며 10~12월이 우기로 월평균 강수량은 80~100mm다.
4. 정치
국가 원수는 빌럼알렉산더르고 네덜란드 왕이 직접 임명한 퀴라소 총독이 자치 수장으로서 지역을 대표한다. 그러나 의원내각제가 적용되어 실제 정치는 자치 의회에서 선출된 총리가 맡고 있다.
총선은 21석을 두고 비례대표로 선출되고 있는데, 정당들이 예비선거를 통해 득표율 1%를 넘으면 총선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5. 경제
1915년 베네수엘라 유전이 발견되면서 로열 더치 쉘이 퀴라소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처리하는 석유 정제 공장을 건설했다. 1920년에는 베네수엘라 해안에서 유전이 발견되었다. 1954년 퀴라소는 네덜란드령 안틸레스 제도의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1970년대의 오일 쇼크는 퀴라소의 정유 공장에 큰 타격을 주었다.[2]
퀴라소는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처리하는 석유 정제와 저장 시설 등 석유 정제 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또한 특산인 라라하 귤 열매의 껍질을 이용한 리큐르인 큐라소의 특산지로 유명하다. 그리고 관광 산업도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네덜란드령 안틸레스의 중심지로서 금융산업도 발전했으며, 조세 피난처로 유명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미국, 영국 등의 압력으로 2014년에 새로운 조세 제도를 도입하면서 조세 피난처로서의 명성은 상당히 쇠퇴했다.
카리브해 섬나라 대부분이 그러하듯,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거의 없는 곳이지만[3] 수도 빌렘스타트의 아름다운 항만 풍경과 해변, 온난한 기후 덕에 구미권에서는 꽤 유명한 관광지이다. 특히 은퇴한 노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성매매가 합법이라 매춘산업도 좀 있는데, 주변의 치안이 불안한 국가에서 인신매매로 넘어와 착취당하는 여성이 적지 않은 것으로 추산된다.
6. 주민
아프리카계 흑인과 네덜란드계 백인을 비롯해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교는 천주교와 개신교가 중심이다. 공용어는 네덜란드어지만 원주민들은 파피아멘토어를 폭넓게 사용한다. 또한 스페인어와 영어도 사용한다.
2010년대 후반 베네수엘라의 정치·경제 위기로 인해 난민들이 대거 유입되고 있다.
7. 스포츠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지만 작은 나라치고는 축구와 야구의 실력이 그럭저럭 갖춰진 나라다. 북중미 축구계의 다크호스로 꼽히는 퀴라소 축구 국가대표팀이 있고 퀴라소 출신의 야구 선수 중에는 MLB, NPB, KBO 등에서 뛰는 선수들도 꽤 있다. 네덜란드 야구 국가대표팀의 절대 다수는 퀴라소나 아루바 출신 선수들이 차지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의 내야수 안드렐톤 시몬스, LA 다저스의 투수 켄리 잰슨,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외야수 블라디미르 발렌틴, KIA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외야수 로저 버나디나 등이 퀴라소 출신의 유명 야구 선수들이다.
8. 관련 문서
[1] Petrus Stuyvesant, 3일 후에 네덜란드령 뉴암스테르담(현재 뉴욕)의 마지막 네덜란드 통치 주지사가 되었다.[2] 당시 베네수엘라는 엄청난 이득을 보았다.[3] 사실 소앤틸레스 제도 국가들 대부분의 밥줄이 조세 도피라는 것은 물론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공항이 없어 다른 국가를 경유해서 배를 타고 방문해야 하는 까다로움도 이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