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샤

 


호소카와 가라샤
細川ガラシャ
(1563년 ~ 1600년 8월 25일, 음력 7월 17일)
[image]
1. 개요
2. 작품 속 가라샤
2.1. 문학
2.2. 오페라
2.3. 드라마
2.4. 영화
3. 서브컬쳐 속 가라샤


1. 개요


'''져야 할 때를 알아야 비로소 세상의 꽃도 꽃이 되고 사람도 사람이 된다.'''

'''(散りぬべき 時知りてこそ 世の中の 花も花なれ 人も人なれ)''' - 가라샤의 사세구

일본 전국시대 인물
아케치 미츠히데의 셋째 딸로 원래 이름은 타마코(玉子). 후에 가톨릭에 귀의해 가라샤(ガラシャ[1])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당시 일본에서는 현재와 달리 혼인 후에도 부인은 원래 성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크리스천 중에서는 서양식으로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경우가 있어 가라샤도 남편의 성을 따랐다. 그래서 아케치 타마코, 호소카와 가라샤로 구별 지어 부르기도 한다.
전국시대의 소문난 미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뭔가 범접할 수 없는 기품까지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가라샤가 어린 시절, 미츠히데와 친한 호소카와 후지타카가 가라샤를 보고 너무 귀여워서 "아저씨한테 한 번 안길래?" 했더니 고개를 젓길래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안아주실 거면 손을 옷자락으로 덮고서 안아주세요"라고 대답했다 한다. 이 때 미츠히데가 구두로 약속했던 허혼이 진짜가 되어 후지타카의 아들 호소카와 타다오키에게 시집가게 된다.
혼노지의 변 후에 미츠히데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패해 죽자, 가라샤는 주군을 배신한 반역자의 딸이 된다.[2] 또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에 심취하기로도 유명했기 때문에 가문의 존속을 위해서는 가라샤와 연을 끊고 추방해야 된다는 의견이 가문 내에서 나왔다. 그러나 타다오키는 가라샤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그러지 않고 가라샤를 유폐하는 정도에 그쳤다.[3] 전국 시대에 금슬이 좋은 부부의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것이 코바야카와 타카카게의 경우인데, 타다오키와 가라샤도 그에 뒤치지 않을 만큼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사이 타다오키는 애첩을 두고 있었고, 돌아와 이를 접한 가랴샤는 남편과의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더불어 유폐되어 있던 동안 불안하고 힘들던 가라샤는 시녀들의 영향으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곧 독실한 신자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 일본에 온 포르투갈 상인들이 '''인신매매'''를 하거나 선교사들의 꾀임에 넘어간 다이묘들이 사찰을 멋대로 부수고 승려들을 내쫓는 등의 물의를 빚게 되었다. 이로 인해 히데요시의 분노를 사 결국 가톨릭이 금지되고 선교사들과 상인들은 추방된다. 타다오키도 신자들을 박대하기 시작했는데, 가라샤는 신자 중에서도 특히 규범이 될 만큼 가톨릭에 빠져 있었다. 때문에 타다오키는 가라샤의 시녀들의 코를 자르거나 유곽에 팔아치우기도 했다고 한다.
가라샤에 대한 타다오키의 집착을 보여주는 일화가 여럿 전해진다. 가라샤가 정원에 나와 대야에 손을 씻고 있는데 정원사와 잠시 눈이 마주쳤다. 이를 본 타다오키는 매우 분노하며 뛰어가서 당장 정원사를 베어 죽였다. 가라샤는 타다오키의 집착에 이미 진절머리가 난 상태여서 대야에 피가 튀어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타다오키가 급흥분하며 "'''넌 같은 여자다'''"라고 하자, "'''악마의 마누라로는 뱀이 제격이겠지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잘못을 저지른 가신을 가라샤가 감싸자, 타다오키가 더 화를 내며 아예 그 가신을 죽여버린 일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타다오키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 모양. 그리고 가라샤는 이렇게 죽은 이들의 머리를 모아 장식하였다고 한다. 결국 타다오키와 시아버지인 호소카와 후지타카까지 사과해서 이 머리들을 간신히 치웠다고 한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타다오키가 동군에 가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시다 미츠나리는 병사를 보내 가라샤를 인질로 잡았다. 가라샤는 남편에게 해가 되는 것을 우려해서 자살을 하려 했는데, 자살을 금지하는 가톨릭 교리 때문에 자살을 할 수는 없었으므로 가신인 오가사와라 히데키요에게 자신을 죽이고 주거에 불을 붙이라고 명했다. 시신은 이탈리아인 선교사가 수습해 염을 했다고 전해진다. 타다오키는 이 사건으로 격분했는데, 가라샤가 죽었음에도 아들인 타다타카의 정실은 살아서 도망치자 아들에게 이혼을 명했고 아들이 그것을 거부하자 아들을 폐적했다.[4] 이 사건으로 이시다 미츠나리가 놀라서 인질 정책을 관뒀다. 또한 이것이 원인이 되어서 타다오키는 세키가하라 전투가 발발하자 누구보다도 먼저 동군에 가담했다.
가라샤의 시녀가 후에 증언한 바에 의하면, 가라샤는 이시다 미츠나리가 군대를 보내 잡으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피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녀가 다시 그녀에게 와보니 이미 그녀는 죽어 있었다는 것이다. 타다타카의 정실과 가라샤의 딸, 타다오키의 여동생 등은 도망치는데 성공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만 남편에게 해가 되는 것을 우려해서 도망치지 않고 자살한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재미있게도 가라샤를 죽인 오가사와라 히데키요의 두 자녀도 키리시탄이었고 예수회 선교사들과 긴밀한 관계였다는 점에서 히데키요가 예수회 선교사들의 지시로 도피하려는 그녀를 살해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하지만 아래 항목에서 알 수 있듯이 가라샤의 오페라가 나온 것은 20세기가 되어서이다.[5] 또한 상술했듯이 부부 생활이 하도 피폐했기에 그냥 인질극을 계기로 평생 쌓인 스트레스가 폭발해 자살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존재한다.
참고로 가라샤의 다른 아들들 중 타다토시는 오사카 전투 당시 아버지를 따라 막부군에 참가하고 오키아키는 도요토미 군에 참가한다.

2. 작품 속 가라샤



2.1. 문학



2.2. 오페라


  • 수도자 출신[6] 작곡가 빈첸조 치마티(Vincenzo Cimatti : 1879년 ~ 1965년)가 가라샤를 주제로 하여 오페라를 작곡했다. 제목은 문자 그대로 호소카와 가라샤(Hosokawa Grazia).

2.3. 드라마


[image]
[image]
[image]
공명의 갈림길에서의 가라샤. 배우는 하세가와 쿄코
고우 ~공주들의 전국~에서의 가라샤. 배우는 미무라(ミムラ)
사나다마루의 가라샤. 배우는 하시모토 마나미.

2.4. 영화


[image]
  • 마계전생(1981년판) 원작소설에는 등장하지 않는 후카사와 감독판 오리지널 캐릭터이다. 아마쿠사가 영화내에서 최초로 전생시킨 마계인으로 등장한다. 해당 영화에서는 실제 역사와는 조금 다르게 미츠나리의 침공으로 인해 주거가 이미 불타고 있었고, 그녀의 죽음도 자의로 청한 것이 아니라 가문의 명예를 위해 가신이 죽여버리는 것으로 나오는데, 전생을 위해서는 이승에 대한 미련 혹은 원한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레인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작에는 없는 캐릭터이지만 원작자인 야마다 후타로는 자신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신의 한 수라며 극찬했다고 한다.

3. 서브컬쳐 속 가라샤



3.1. 전국무쌍 시리즈


가라샤(전국무쌍) 참조.

3.2. 전국란스의 범용 캐릭터


전용 포트레이트는 존재. 합전에서 란스와 아케치 미츠히데를 10차례 이상 함께 출전하게 한 후, '대만족 서비스'에서 '아케치 미츠히데를 괴롭힌다'를 두 차례 선택하면 아케치 대신 가라샤가 들어온다. 별다른 이벤트는 없는 범용 캐릭터. 능력치는 아케치보다 좋은 정도지만 만족도를 20이나 쓰기에는 좀...
여캐릭이면서도 캐러크리가 나질 않는다.

3.3. 노부나가의 야망


[image]
[image]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image]
노부나가의 야망 창조
노부나가의 야망에서는 호소카와 타다오키의 아내. 반에디터로 살펴본 능력치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백만인의 신장의 야망에서는 아케치 타마라는 이름으로 어린시절 일러 등장. 최강히메결정전에서는 아케치가 다이묘로 등장한다. 그런데 창조에서 아버지가 능력이 출중한 것에 비해 부하들이 영 형편이 없다. 오죽하면 영웅집결을 할 때 히메무장에서 일반무장으로 전환해보면 초기에 군사 역할로 대신하기도 한다. 다만 역사반영인지 일러스트 하나만은 끝내주게 좋다. 삼국지 시리즈로 따지자면 조운, 손견, 손책, 주유, 육손, 초선 등에 비견될 정도로, 일러스트만큼은 최상급 수준이다.

3.4. 지휘봉의 행방


[image]
비주얼 신장 170cm, 비주얼 연령 22세, 취미는 남만(서양)의 소품 수집, 좋아하는 것은 별사탕.
호소카와 타다오키의 처. 자신을 가두어놓은 남편을 원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이해하고 그 뜻에 순종하고 있다. 크리스천으로, 특히 '시련을 견디는 자는 행복하다'는 성경 구절을 마음에 들어하는 듯.
요도도노의 부탁을 받은 이시다 미츠나리가 오사카 성에서 요도도노의 보호(사실상 인질)를 받기를 청하러 갔으나 그녀는 이미 남편 타다오키의 편지를 받고 인질이 되느니 자결할 것을 결심한 후였다. 저택을 떠나지 않겠다는 가라샤에게 미츠나리는 '죽는 것보다 살아서 사랑을 관철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가라샤는 생긋 웃으며 미츠나리의 요청을 수락한다.
그러나 바로 그날 밤 호소카와 저택에 불이 나 저택은 전소되고 가라샤도 사망한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타다오키는 미츠나리가 인질이 되기를 강요한 탓에 아내가 자결했다고 여기고 분노에 차 폭주하여 미츠나리에게 달려드나, 가라샤에게 자결을 강요하는 타다오키의 편지가 조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미츠나리에 의해 그녀가 살해된 것이라는 진상이 밝혀진다.
가라샤 주위에 커다란 백합은 분위기상 묘사된게 아니라 진짜 등에 이고 있는 것이다. 타마키가 그 점을 지적하려 하였으나 미츠나리가 "세상에는 건드리지 않아야할 것이 있다"며 제지했다. 괴이한 디자인 탓에 스텝진 사이에서는 '특징계'로 분류된다고 하며 우치카게의 쇠사슬와 안의 옷의 꽃 문양은 갇혀있다는 점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3.5. 효게모노


이시다 미츠나리가 체포해 오라고 보낸 병사들에 맞서서, 신의 가르침에 반하는 자살 대신 남편의 가신들을 지휘하여 싸우다가 죽는 편을 택했다. 남만에서 들어온 12연장 조총(다빈치 설계...;)으로 무장하고 이시다가 보낸 병사들을 2파까지 물리치다가 집중 사격에 맞고 절명. 이시다의 부하들은 무사도 아니고 여자인 가라샤에게 지휘관급까지 목숨을 잃은 것은 수치라고 여겨 그녀의 죽음을 자살로 조작했다.

3.6. 태합입지전


[image]
여기서의 이름은 타마(玉). 키리시탄답게 목에 십자가를 하고 있는 일러스트이며 정상적으로는 타다오키로 플레이했을 때 아니면 얼굴 보기도 힘들다. 타다오키로 플레이할 때 세키가하라 합전 이벤트시 분기가 있는데 여기서 우에스기 토벌에 참가할 경우 역사대로 가라샤가 인질이 되고 자결하는 이벤트가 발생하며 다른 동군 다이묘들처럼 이후 전투 승리시 영지를 받는데, 토벌에 참가하지 않고 관망할 경우엔 가라샤는 생존하지만 영지 변화없이 그대로 도쿠가와에 종속된채로 오사카의 진 이벤트로 이어진다.
[1] Gratia의 당시 일본식 표기[2] 이 여파는 생각보다 굉장해서 아케치 미츠히데는 일본사의 대표적인 배신자, 반역자가 되었다. 후에 아케치 미츠히데와 똑같은 관직(휴가노카미)을 받게 된 자가 '''재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거절했다. 한때 다케다 신겐이 아들 다케다 카츠요리한테 작은 관직이라도 하나 얻어주려고 온갖 고생을 다했을 정도로 관직은 당시에 중요한 것이었는데, 그런 이유로 거절할 정도라면 얼마나 아케치 미츠히데에 대한 인식이 안좋았는지 알 수 있다.[3] 보통이라면 호소카와 가문이 역사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호소카와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마음에 들었던 덕분에 히데요시의 허락을 맡고 가라샤를 데려온다.[4] 다만 아들의 폐적에 관해서는 며느리가 마에다 토시이에의 딸이었기에 정치적 문제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긴 한데, 정작 본인은 아케치의 딸을 평생 끼고 살았다는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5] 작곡자가 처음 일본에 온 것이 1926년이다.[6] 참고로 소속은 예수회가 아니라 살레시오 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