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3상대
1. 개요
'''구 3상대(
- 도쿄상과대학(
東京商科大学 ) 약칭은 도쿄상대(東京商大), 현 히토쓰바시대학 - 고베상업대학(
神戸商業大学 ) 약칭은 고베상대(神戸商大), 현 고베대학 - 오사카상과대학(
大阪商科大学 ) 약칭은 오사카상대(大阪商大), 현 오사카시립대학
일본의 구 학제에서 상대[2] 은 위 3곳밖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3상대라 부른다.
2. 상호 관계
- '세 대학간 교류 협력에 관한 협정' - 2010년, 단순한 학생들 간의 교류 차원을 넘어 대학 간 교육 및 학술 상의 연계를 목적으로 체결됐다.
3. 역사
상과대학 승격 이전인 고등상업학교 시절부터 위 세 고등상업학교[9] 는 3년제였던 다른 모든 고등상업학교들과 차별화된 4년의 수학연한을 갖추고 있었다.이러한 수업 연한의 차이는 세 학교가 구제 상과대학으로 승격하게 되는 최대 근거가 되었다. 특히 도쿄고등상업학교는 4년제 수업 연한 이후 2년제의 전공과를 설치하여 도합 6년의 수업 연한을 갖추고 있었는데 이는 구제고교 3년 + 제국대학 3년에 필적한다고 간주되어 해당 전공과 졸업생은 학사 칭호를 수여받았던 유일한 고등상업학교였다.[10]
3상대의 방향성은 각기 달랐는데 히토츠바시대학의 전신인 도쿄상업대학은 경제학을 기반에 둔 기초 분야에 집중하는 경향을, 고베대학의 전신인 고베상업대학은 일본 최초로 경영학과를 설치하는 등의 실무 교육 중심으로, 오사카시립대학의 전신 오사카상과대학은 마르크스경제학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11] 이하 부분 발췌 번역
- 도쿄상과대학의 전신, 도쿄고등상업학교 시절에는 대학 승격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상업의 학문화의 활로를 상학 근처에 있는 경제학이나 법학, 정치학, 그리고 역사·철학·사상·문학 등을 연구·교육함으로써 찾아내려고 했다.[12] 1920년에 도쿄상과대학으로 승격해 상사, 은행, 보험, 해운 등에서 일하는 고급 비즈니스맨의 육성을 목표로 했다. 도쿄상과대학의 경제학에는 마르크스 학파, 황도파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흔히 말하는 근대 경제학이 주류였다. 유럽의 고전학파, 신고전학파 경제이론이 학문의 중심이었고 독일 역사학파의 영향을 받아 역사적인 연구도 활발했다. 게다가 경제를 실증적으로 연구하는 전통도 있었다. 즉, 경제사상과는 구별을 분명히 하는 경제학이 도쿄상과대학의 특징이었으며 전후 히토츠바시대학에서도 이 특징은 계속되었다.
- 고베상업대학의 전신, 고베고등상업학교에서는 법학, 경제학, 혹은 동경고상(東京高商)의 철학, 역사학 같은 학문은 최소화하고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터득해야 할 실천적 과목들을 가르치겠다는 방침을 고수했다. 이후 1929년 대학으로 승격되면서 고베상업대학(神戶商業大學)이 되었다. 이때 먼저 구제대학으로 지정된 두 상과대학과 다르게 상업대학이라 명명했는데 이는 도쿄, 오사카와의 차이를 강조하고 실무, 실업을 중시하기 위해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나 싶다. 고베상업대학은 경영학 과목에 충실을 기했기에 오늘날 일본 경영학에서 고베대학의 높은 위치를 만들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중간에 오사카제국대학에서 합병교섭이 있었지만 고베상업대학으로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 오사카상과대학은 위 두 상대와 달리 마르크스경제학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고 있었다. 본래 상인의 도시인 오사카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모순되는 두 사상이 공존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13] 게다가 오사카상과대학은 다른 두 상대에 비해[14] 제국대학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 제국대학의 경제학 강좌들은 대체로 마르크스경제학에[15] 경도되어있었는데,[16] 교토제국대학에서 옮겨온 일단의 학자들이 오사카상과대학의 교수단을 이루었다는 것이다.[17] 특히 초대 학장이 된 '카와다 시로'는 학칙을 개정해 국가의 규제에서 벗어나 학문의 자유를 추구하도록 한것, 그는 마르크스 신봉자가 아니었으나 그에 가까운 교원들을 새로이 채용한 것 등이 있었다. 그래서 전쟁 당시 오사카상과대학에서 학문의 자유를 주장하며 마르크스경제학을 공부한 것이 오사카상대사건으로 이어졌는지도 모른다.[18]
4. 평가
- 3상대 설립 이후 '천하의 3상대'(天下の三商大)라 불리며 세 학교는 명실상부한 상학의 전당으로 당시 도쿄제국대학을 필두로 한 7제대(七帝大)와 경쟁했다고 한다.[19]
- 실제로 고베상업대학이 승격된 1929년에 오사카제국대학과[20] 나고야제국대학은[21] 존재하지 않았으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제국대학에서 상경계열 학부를 가진 제국대학은 도쿄제국대학과 교토제국대학 뿐이었다. 도호쿠제국대학[22] 규슈제국대학[23] 경성제국대학[24] 다이호쿠제국대학[25] 은 문과계열이라고는 1920년대에 들어서야 설치된 '법문학부(法文學部)'[26] 단 하나에 불과했다. 이외에 홋카이도제국대학, 오사카제국대학, 나고야제국대학은 종전 때까지 법문학부는 커녕 문과 계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즉, 현재 구제국대학의 문과는 전후 신제대학이 되면서 구제고등학교를 흡수하거나[27] 관공립대학을 병합하면서[28] 만들어진 경우가 많아 비교적 역사가 짧다.
- 똑같은 신입사원도 학력에 따라 봉급을 차별하던 시대 기준으로 보면 구3상대는 상과대학 승격 후 제국대학과 동등 내지 거의 유사한 수준으로 취급받았고, 게이오기주쿠대학•와세다대학 등 최고 사립대학에 비해 확실히 상위 클라스로 대접받았다.
> 전후 도쿄대학 문학부 사무장을 지낸 尾崎盛光의 명저『日本就職史』(1967年刊)에 따르면 메이지 말기의 관립/사립학교 문과 졸업생의 초봉 격차를 "제국대학 100엔에 대해서 히토쓰바시(당시 도쿄고등상업학교) 60~70엔, 게이오 50~60엔, 와세다는 30~40엔을 동등한 것"으로 본다. 기업이 사원을 채용할 경우 출신 학교마다 초임 봉급의 차등을 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사립대학이 정식 구제대학으로 승격한 다이쇼 시대 이후에도 엄연한 급여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어 "大戦景気"시대의 일본우선(日本郵船)에서는 제국대학, 상과대학(히토츠바시) 졸업생의 초봉은 80엔, 와세다·게이오와 지방고등상업학교 60~65엔, 소케이를 제외한 사립대학이 50~55엔이었다(寿木孝哉,『就職戦術』). 대체로 제국대학-관립상대-소케이-기타사립대학이라는 순서로 평가받으면서 신입 사원은 같은 기업에 취직하더라도 차별 대우를 감수해야 했다.
>-反東大の思想史
>-反東大の思想史
- 전쟁 전 미츠이, 스미토모, 미츠비시 등 재벌계 대기업의 초봉은 제국대학과 상대는 80엔, 고등상업학교나 소케이는 70엔, 그외 사립대학은 60엔이 평균이었다고 한다.[29]
- 제국대학은 고급관료와 고등교원[30] 양성을 목표로 했기에[31] 사기업 취직자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민간부문에서 구3상대 출신은 사실상 최상의 학벌을 가진 최고의 상학 전문가 대우를 받았다. 구3상대가 아니라 심지어 구제전문학교급인 고등상업학교 졸업자들 역시 재벌 기업들에서 우대하면서 모셔갈 정도였다고 한다.
- 기업과 경영, 시장에 대해 연구하는 상과대학인 만큼 3상대는 임원 배출에 있어서도 탁월한 모습을 보여준다. 危ない大学에서 소개된 상장기업임원 출세예상지수[32] 에 따르면 전 대학 중 히토쓰바시대학은 230.5점으로 3위, 고베대학은 135.3점으로 5위, 오사카시립대학은 108.2점으로 6위를 기록했다.[33]
- 주요 대기업의[34] 중간관리직 배출에 있어서도 탁월한 면모를 보여준다.[35]
- 금융권 취업에 강하다. 2017년 금융권 top10 기업 취직자 수가 국공립대학 중 상위권이다. [36]
- 현재에도 최고 사립대학인 소케이와 마찬가지로, 구 제국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학교들이다.[37] 법학, 경제학(경영학) 입시 기준, 히토쓰바시대학은 교토대학과, 고베대학은 나고야대학과, 오사카시립대학은 홋카이도대학과 비견되는 입결을 보여준다.
- 상경계 교원들을 많이 배출해 낸 대학들이다.[38]
- 세 대학 모두 법과대학원, 즉 로스쿨을 가지고 있으며 평균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는 대학들이다. 헤이세이17~28년간 사법시험 평균 누적 합격률에서 히토쓰바시대학은 1위, 고베대학은 5위, 오사카시립대학은 15위를 차지했다.[39]
5. 기타
- 현재 히토쓰바시대학을 제외한 두 대학은 의학부와 이공계학부를 모두 가진 종합대학이 되었다.[40]
- 2022년 오사카시립대학이 오사카부립대학과 통합해 아예 새로운 대학, 오사카공립대학 되므로 구 3상대의 전통이 이어질 지는 미지수.[41]
- 세 대학 모두 제국대학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대학이다.[42]
- 국제화가 비교적 덜 된 대학들이다. 실제로 세 학교 모두 슈퍼글로벌대학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43]
- 재미있게도 세 학교의 스쿨 컬러에 붉은색 이 들어가 있다[44]
6. 관련 링크
[1] 또는 상업대학[2] 상과대학 및 상업대학[3] 2018년은 고베대학에서 담당[4] 3상전과 마찬가지로 2018년은 고베대학에서 담당[5] 창립자 모리 아리노리[6] 상법, 상업강습소가 전신인 두 학교와 다르게 처음부터 고등상업학교로 설립되었다.[7] 창립자 대표 고다이 도모아쓰[8] '승격'이 아닌 '설립'인 이유는 문부성이 지정한 위 두 학교와 다르게 관립 고등상업학교 유치에 실패한 오사카시가 독자적으로 설립했기 때문이다.[9] 나가사키고등상업학교(본과 3년, 해외무역과 1년), 야마구치고등상업학교(본과 3년, 지나무역과 1년)까지 포함한 총 5개교[10] 다만 도쿄고상•고베고상이 개교시부터 4년제(예과 1년+본과 3년)였던 것과 달리 오사카시립고상을 포함해 이후에 설립된 고등상업학교들은 모두 3년제로, 도쿄•고베 대비 상대적으로 짧은 수업 연한 때문에 졸업 후 학사에 준하는 학위를 취득할 수 있던 도쿄고등상업학교 전공부(2년제) 진학이 어려웠다. 때문에 수업연한 연장이 숙원이었는데, 야마구치고상이 1915년 문부성령 제17호에 의거 지나무역강습과(1918년 지나무역과로 개칭)를, 나가사키고상이 1917년 문부성령 제6호에 의거 해외무역과를, 오사카시립고상이 1920년 에 바로 본과(3년) 수료 후 교육을 담당하는 연구과(1년)를 설치해 4년제로 승격을 먼저 달성한 후 대학승격운동을 개시하였다.
[image] 참조.[11] 출처: 三商大 東京・大阪・神戸――日本のビジネス教育の源流 -橘木 俊詔-(著)[12] 저자는 이를 제국대학과의 격차를 줄이려고 애쓰는 것이라 평했다.[13] 원래 맑시즘은 자본주의의 성숙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오사카는 좋은 여건을 갖췄다고 평가될 수 있겠다.[14] 도쿄상과대학은 상법강습소 시절부터 미국인 윌리엄 휘트니를 교장으로 초빙해 실무 상학 위주의 교육을 했고, 상과대학 승격운동 당시 도쿄제국대학 경제학부로 포괄하려는 문부성의 시도에 대항해 신유사건을 발생시키는 등 격렬히 저항함과 동시에 도쿄제대와 차별화된 별개의 대학이 되기 위해 더욱 더 실무 교육을 강조한 바 있다(참조). 고베상대와 기타 고등상업학교들 역시 부기부터 시작해서 실무 교육에 천착하였다.[15] [image][16] 도쿄제국대학, 교토제국대학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도쿄제대의 분교격이었던 모든 제국대학이 거의 비슷했다고 한다. 오사카 출신으로(...) 대만에서 소학교, 구제중학교 그리고 나고야의 제8고등학교를 거쳐 1924년 도쿄제국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호세이대학 교수를 지내다 1927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재정학강좌 담당교수로 부임한 미야케 시카노스케(三宅鹿之助) 교수 역시 학내 맑시즘 조직의 지도교수로서 법문학부에서 리강국, 박문규, 최용달, 박치우, 신남철, 김태준, 박치우 등의 쟁쟁한 공산주의자들을 제자를 길러냈고 공산주의자 도피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당해 징역 3년을 살았다. 출처 참조. 재정학강좌 담당교수인 미야케와 함께 경제연구회 지도교수를 맡았던 스즈키 경제학강좌 담당교수 역시 강의를 온통 마르크스 이론의 소개와 해설로 메웠다고 한다. 김용직,「김태준 평전」, 일지사, 2007. 97쪽.[17] 1933년 교토제국대학의 타키가와 사건 참조.[18] 시간이 흐르고 주류 경제학이 정착한 현재, 오사카상과대학의 후신인 오사카시립대학에서는 마르크스 경제학 색체가 거의 사라졌다[19] 출처: 고베대학 대학원 경영학연구과[20] 1931년 설립[21] 1939년 설립[22] 1907년 개교, 1922년 8월 법문학부 설치, 1923년 법문학부 제1회 신입생 입학[23] 1911년 개교, 1924년 9월 법문학부 설치, 1925년 법문학부 제1회 신입생 입학[24] 1924년 예과 개교, 1926년 법문학부 설치[25] 1928년 개교 및 문정학부 설치[26] 다이호쿠제국대학의 경우는 법학과가 없이 '문정학부(文政學部)'였다.[27] 제국대학에 흡수된 구제고등학교 고등과(대학예과)는 주로 교양학부가 되었다. 홋카이도대학은 홋카이도제대 예과를 교양학부로 개편하고 법문학부를 신규설치했고, 오사카대도 구제고등학교인 오사카고등학교와 나니와고등학교를 흡수해 교양학부로 삼고 법문학부를 신설했다. 나고야대는 제8고등학교를 교양부로 개편했다. 기타 문과 학부가 존재하고 있었던 제국대학들도 마찬가지.[28] 나고야대는 1948년 나고야경제전문학교와 오카자키고등사범학교를 흡수해 법경학부와 교육학부의 모체로 삼았고, 오사카대는 2007년 오사카외국어대학을 외국어문학부로 흡수함.[29] 출처: 早稲田と慶応 名門私大の栄光と影 - 橘木 俊詔 (著) [30] 구제고등학교, 구제전문학교, 구제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의 교원[31] 일본제국 정부는 1918년 대학령 개정을 통해 제국대학 이외의 대학 설립을 허가하기 시작한 후에도 제국대학 출신들에게 배타적인 특혜를 줬다. 법학부 졸업자에게는 고등문관시험의 1차 시험을 면제하여 고급관료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고, 문학부 졸업자에게는 무시험검정에 의해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어느 곳에서든 교원이 될 수 있는 자격증을 줬다. 민간기업에서도 제국대학 출신자에게는 동일한 노동을 하는 사립대학 출신자보다 봉급을 더 주는 것이 관례였다. 국가는 제국대학 출신자에게 각종 특혜를 주고, 제국대학 출신자는 국가의 충직한 신민(臣民)이 되는 완벽한 공생관계였다. 신동아 2005년 12월호 경성제대 입시 대소동 발췌.[32] 산출방법 : 각 대학 출신 임원수를 그 대학의 기업 취직 학생수로 나누고, 와세다대학을 100.0으로 잡고 산출.
각 대학의 기업 취직 학생수는, 각 학부의 학생정원에 대해, 이하의 비율을 조정함.
법, 정, 경 등의 사회과학계열의 정원의 100%
공학부, 약학부, 농학부 등의 이과계학부는 정원의 70%
인문과학계열 학부와, 이학부는 정원의 50%
의학, 치학, 교육학부(교원육성계열)에 대해서는 정원의 0%
출처: 危ない大学―大学選びのための最新学校経営事情 - 中村 忠一 (著)[33] 참고로 지수를 계산할 때 기준이 된 와세다대학은 100.0점으로 8위를 기록했다. 1위는 360점인 도쿄대학, 2위는 264점인 교토대학, 4위는 167.4점인 게이오기주쿠대학이 차지했다.[34] 3대 메가뱅크, 종합상사, 정부계열 금융기관 등[35] 국공립대학 중 히토츠바시 2위, 고베 4위, 오사카시립 10위링크[36] 고베 3위, 히토쓰바시 4위, 오사카시립 6위
[image][37] 물론 문과, 특히 상경기준. 이공계열에서의 차이는 상당하다.[38] 외국대학 출신을 제외하면 히토쓰바시대학 3위, 고베대학 4위, 오사카시립대학 9위. [image] 출처[39] 이외에 제국대학, 소케이, 주오대학, 치바대학, 도쿄도립대학 등이 높은 합격률을 기록했다.출처[40] 그래도 히토쓰바시대학은 4대학연합을 만들어 단과대학의 한계를 넘으려 노력하고 있다.[41] 딱히 문제는 없다. 현재의 고베대학, 오사카시립대학도 여러 학교와 합병해 만들어졌어도 3상대의 전통이 이어져왔기에.[42] 특히 히토쓰바시대학이 그렇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초명문대학이지만 잘 모르는 사람은 이름만 듣고 사립대학인 줄 안다.[43] 히토쓰바시대학은 최근 열심히 국제화에 힘쓰고 있지만 다른 두 곳은 아직 갈 길이 멀다.[44] 고베대학은 레드, 그린, 블루/오사카시립대학은 레드, 블루, 그레이
[image] 참조.[11] 출처: 三商大 東京・大阪・神戸――日本のビジネス教育の源流 -橘木 俊詔-(著)[12] 저자는 이를 제국대학과의 격차를 줄이려고 애쓰는 것이라 평했다.[13] 원래 맑시즘은 자본주의의 성숙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오사카는 좋은 여건을 갖췄다고 평가될 수 있겠다.[14] 도쿄상과대학은 상법강습소 시절부터 미국인 윌리엄 휘트니를 교장으로 초빙해 실무 상학 위주의 교육을 했고, 상과대학 승격운동 당시 도쿄제국대학 경제학부로 포괄하려는 문부성의 시도에 대항해 신유사건을 발생시키는 등 격렬히 저항함과 동시에 도쿄제대와 차별화된 별개의 대학이 되기 위해 더욱 더 실무 교육을 강조한 바 있다(참조). 고베상대와 기타 고등상업학교들 역시 부기부터 시작해서 실무 교육에 천착하였다.[15] [image][16] 도쿄제국대학, 교토제국대학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도쿄제대의 분교격이었던 모든 제국대학이 거의 비슷했다고 한다. 오사카 출신으로(...) 대만에서 소학교, 구제중학교 그리고 나고야의 제8고등학교를 거쳐 1924년 도쿄제국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호세이대학 교수를 지내다 1927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재정학강좌 담당교수로 부임한 미야케 시카노스케(三宅鹿之助) 교수 역시 학내 맑시즘 조직의 지도교수로서 법문학부에서 리강국, 박문규, 최용달, 박치우, 신남철, 김태준, 박치우 등의 쟁쟁한 공산주의자들을 제자를 길러냈고 공산주의자 도피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당해 징역 3년을 살았다. 출처 참조. 재정학강좌 담당교수인 미야케와 함께 경제연구회 지도교수를 맡았던 스즈키 경제학강좌 담당교수 역시 강의를 온통 마르크스 이론의 소개와 해설로 메웠다고 한다. 김용직,「김태준 평전」, 일지사, 2007. 97쪽.[17] 1933년 교토제국대학의 타키가와 사건 참조.[18] 시간이 흐르고 주류 경제학이 정착한 현재, 오사카상과대학의 후신인 오사카시립대학에서는 마르크스 경제학 색체가 거의 사라졌다[19] 출처: 고베대학 대학원 경영학연구과[20] 1931년 설립[21] 1939년 설립[22] 1907년 개교, 1922년 8월 법문학부 설치, 1923년 법문학부 제1회 신입생 입학[23] 1911년 개교, 1924년 9월 법문학부 설치, 1925년 법문학부 제1회 신입생 입학[24] 1924년 예과 개교, 1926년 법문학부 설치[25] 1928년 개교 및 문정학부 설치[26] 다이호쿠제국대학의 경우는 법학과가 없이 '문정학부(文政學部)'였다.[27] 제국대학에 흡수된 구제고등학교 고등과(대학예과)는 주로 교양학부가 되었다. 홋카이도대학은 홋카이도제대 예과를 교양학부로 개편하고 법문학부를 신규설치했고, 오사카대도 구제고등학교인 오사카고등학교와 나니와고등학교를 흡수해 교양학부로 삼고 법문학부를 신설했다. 나고야대는 제8고등학교를 교양부로 개편했다. 기타 문과 학부가 존재하고 있었던 제국대학들도 마찬가지.[28] 나고야대는 1948년 나고야경제전문학교와 오카자키고등사범학교를 흡수해 법경학부와 교육학부의 모체로 삼았고, 오사카대는 2007년 오사카외국어대학을 외국어문학부로 흡수함.[29] 출처: 早稲田と慶応 名門私大の栄光と影 - 橘木 俊詔 (著) [30] 구제고등학교, 구제전문학교, 구제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의 교원[31] 일본제국 정부는 1918년 대학령 개정을 통해 제국대학 이외의 대학 설립을 허가하기 시작한 후에도 제국대학 출신들에게 배타적인 특혜를 줬다. 법학부 졸업자에게는 고등문관시험의 1차 시험을 면제하여 고급관료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고, 문학부 졸업자에게는 무시험검정에 의해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어느 곳에서든 교원이 될 수 있는 자격증을 줬다. 민간기업에서도 제국대학 출신자에게는 동일한 노동을 하는 사립대학 출신자보다 봉급을 더 주는 것이 관례였다. 국가는 제국대학 출신자에게 각종 특혜를 주고, 제국대학 출신자는 국가의 충직한 신민(臣民)이 되는 완벽한 공생관계였다. 신동아 2005년 12월호 경성제대 입시 대소동 발췌.[32] 산출방법 : 각 대학 출신 임원수를 그 대학의 기업 취직 학생수로 나누고, 와세다대학을 100.0으로 잡고 산출.
각 대학의 기업 취직 학생수는, 각 학부의 학생정원에 대해, 이하의 비율을 조정함.
법, 정, 경 등의 사회과학계열의 정원의 100%
공학부, 약학부, 농학부 등의 이과계학부는 정원의 70%
인문과학계열 학부와, 이학부는 정원의 50%
의학, 치학, 교육학부(교원육성계열)에 대해서는 정원의 0%
출처: 危ない大学―大学選びのための最新学校経営事情 - 中村 忠一 (著)[33] 참고로 지수를 계산할 때 기준이 된 와세다대학은 100.0점으로 8위를 기록했다. 1위는 360점인 도쿄대학, 2위는 264점인 교토대학, 4위는 167.4점인 게이오기주쿠대학이 차지했다.[34] 3대 메가뱅크, 종합상사, 정부계열 금융기관 등[35] 국공립대학 중 히토츠바시 2위, 고베 4위, 오사카시립 10위링크[36] 고베 3위, 히토쓰바시 4위, 오사카시립 6위
[image][37] 물론 문과, 특히 상경기준. 이공계열에서의 차이는 상당하다.[38] 외국대학 출신을 제외하면 히토쓰바시대학 3위, 고베대학 4위, 오사카시립대학 9위. [image] 출처[39] 이외에 제국대학, 소케이, 주오대학, 치바대학, 도쿄도립대학 등이 높은 합격률을 기록했다.출처[40] 그래도 히토쓰바시대학은 4대학연합을 만들어 단과대학의 한계를 넘으려 노력하고 있다.[41] 딱히 문제는 없다. 현재의 고베대학, 오사카시립대학도 여러 학교와 합병해 만들어졌어도 3상대의 전통이 이어져왔기에.[42] 특히 히토쓰바시대학이 그렇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초명문대학이지만 잘 모르는 사람은 이름만 듣고 사립대학인 줄 안다.[43] 히토쓰바시대학은 최근 열심히 국제화에 힘쓰고 있지만 다른 두 곳은 아직 갈 길이 멀다.[44] 고베대학은 레드, 그린, 블루/오사카시립대학은 레드, 블루, 그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