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 가쓰히로
[image]
黒田 勝弘(くろだ かつひろ) / Katsuhiro Kuroda
일본의 신문 기자/언론인. 구체적으론 우익 성향의 산케이 신문 논설 위원 겸 서울지국장을 맡고 있다.
한국에서 오래 생활한 대표적인 지한파 일본인 중 한명이지만, 그만큼 한국에 대한 비아냥이나 디스에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으로(...), 지금은 대외 활동이 뜸해 인지도가 줄어든 편이지만 200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극우논객으로 제법 명성을 떨쳤다.
1941년 오사카부 오사카시 태생으로 교토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였다. 교도통신(共同通信)에 입사하여 서울주재원으로 파견되면서 한국과 연을 맺게 되었다.
일본 현지에선 한국 지사에서 '''30년 이상''' 근무하며 거주한 언론인으로 유명하다. 본래 교도통신 기자였던 그가 산케이신문으로 이직한 것도 가능한 한 한국에 오래 남아있을 수 있게 해준다는 조건을 제시해서 이직했을 정도로 한국에 관심이 많은 지한파로 유명하며 한국에 관한 저술만도 30종 이상 펴내고 '''부인도 한국 사람'''이다.
지금은 일본극우기자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전두환 정권 시기 한국에 부임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군사정권에 비판적인 기사도 제법 썼고 야당, 재야 인사들과도 친분을 쌓아 공안 당국에게 마크를 꽤나 당하기도 했다.[1] 다만 이 부분은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한국 못지 않게 일본의 정치 스펙트럼도 알고보면 매우 복잡하다. 좌익도 신좌익, 국제주의, 스탈린주의,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 사회민주주의 등 다양한 정파가 존재하고, 우익도 왕정복고파, 군국주의, 공화주의, 자유주의, 민족사회주의 등 엄청나게 복잡하다. 구로다나 가세 같은 경우는 우익 중에서도 입헌군주제나 그에 준하는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부류로, 당시 한국은 군사독재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비판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처음부터 한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었다고 볼 순 없는 것.[2]
1990년대 MBC의 모 프로그램에 한복을 입고 출연해서는 경상남'남'도 출신이라는 드립을 치기도 했다. 상당한 미식가로 일본에서의 저술 중에는 한국 음식에 관한 책이 있기도 하다. 일본에서도 먹는 것이긴 하지만 특히 고래고기나 말고기를 좋아한다고. 그중에는 보신탕을 좋아한다는 서술도 있다.
그가 출간한 미식책에서는 깨죽 덕에 겨우 복통을 고쳐서 당시 집주인에게 고맙다는 글까지 있다. 다만 한국 음식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상당히 낮춰 보고 있다. 맛있다고는 해도 세련되다거나 조리가 깔끔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국적이고 야성적이라는 어투. 이 자의 한국 음식에 대한 상투적인, 그리고 최대의 찬사는 '''야취(野趣)가 있다.''' 즉, 야성적이고 소박하다는 말이다.
KBS에서 당시 정부 슬로건이었던 한식 세계화를 주제로 다큐를 만들었을 때 잠깐 출연하여 삼계탕을 예로 들며 손님에게 닭을 부위별로 요리하지 않고 한마리를 통째로 내놓는 한국의 식문화가 넉넉하고 푸짐하다며 예찬한 적도 있었다. 양두구육 운운을 했다가 혼쭐나기 불과 몇 달 전이다.
스스로는 그의 발언이 국내 언론에서 마구 확대 해석되어 도마에 오르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예를 들면 권희로의 한국 송환에 비판적인 기사를 써서 한국 언론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는데, 사실 기사의 논조는 일본인들에게는 살인을 저지른 범법자에 불과한 자를 마치 개선장군인양 추켜세우는 당시 정계와 한국 언론에 대한 질타였다. 그리고 이후 권희로가 치정 문제, 정착금 문제로 온갖 사건을 일으키고 감방에 가는 신세가 되자 이 부분은 재평가되기도 했다.
구로다 본인의 서술로는 자신에게 가장 비판적인 한국 언론사가 조선일보라고 한다. 그런데 재밌는건 그의 둘도 없는 친구가 월간조선 출신이자 지금도 조선일보 계열에서 꽤 인맥이 큰 조갑제라는 것이다.
2010년대 들어선 '''"고령이라서 신변에 위험한 발언은 자제한다"'''고 한다. 하지만 물론 우파 경향을 숨기고 있는건 '''전혀''' 아니다.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극우파 잡지 "SAPIO"(소학관)에도 정기적으로 <서울의 바람(ソウルの風)>이란 기사를 싣고 있고 "정론"(후지/산케이 미디어그룹)에도 한 번씩 기사가 실린다. SAPIO에서는 김완섭과의 대담 기사도 실린 적이 있다.
정론이 구 보수우익의 대변지라면 SAPIO는 신우익의 대변지이다. 이를테면 정론에는 미국 비판은 잘 오르지 않으나, SAPIO는 매 호마다 양념처럼 오른다. 혐한 기사도 자주 오르는 편인데, 사실 SAPIO는 한국 까기용으로 김완섭과 고 젠카라는 전문요원(?)을 두고 있기도 하다.
신문이 신문이니만큼 일본 우익 독자의 입맛에 맞추어 글을 쓰는 경향이 강하다. 30여년 동안 그 글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그네들의 구미를 잘 맞추어주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글을 통해 짐작해 보자.
구로다의 칼럼이나 인터뷰를 보다보면 일본인의 다테마에(建前, 겉마음)와 혼네(本音, 속마음) 개념이 어떤건지 대략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비빔밥을 양두구육이라고 한 뒤 논란이 일자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강 한국을 칭찬하면서 얼버무린 뒤 다음 칼럼부터 어김없이 한국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반응을 번역한 게시물들로 일본인의 혼네만 보게 되거나, 오프라인에서 일본인과 만나서 다테마에만 보게 되는 일반적 경우와 달리 혼네, 다테마에 모두를 접해볼 수 있는 산 표본인 셈.
사실 구로다가 겉으로 한국을 칭찬해주는 경우도 파고 들어가면 교묘히 비꼬는 뉘앙스가 강하다. 논리나 자기 발언에 대한 옹호, 극우파에 대한 비판이나 옹호 이런 모든 걸 제쳐두고, 일단 한국을 비아냥거리는 것 자체에만 집중해서 그의 발언들을 보면,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대강만 봐도 바로 반박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구로다의 기사는 일본 내에서만 연재되며 한국에서는 극단적인 기사의 경우만 언론을 통해 소개되고, 구로다 본인이 한국 미디어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도 않고 한국 네티즌이 구로다에게 접촉할 수 있는 경로도 별로 없는지라 구로다는 여전히 일본 내에서 반한 소재로 쓰이기 쉬운 소리를 계속하고 있다.
30년 이상 한국에서 근무했으니 당연하지만 한국어에 매우 능숙한 편이다. 한글을 읽고 쓰는 것, 듣는 것은 물론이고 말하는 것조차 일본인 특유의 억양이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상당한 한국어 실력을 선보인다. [3] 다만 토론 같은데선 확실히 긴장도 되고 말도 빨리 해야돼서 그런지 종종 티가 나는 편이다.
서강대학교에서는 이 사람을 교양과목 강사로 초빙했는데, 취업비자로 입국한 외국인의 직업변동사항에 대해서 신고를 해야 함에도 구로다는 신고를 안해서 벌금형을 받은 전력이 있다.
간혹 한국 언론이 일본의 극우인사들에 대해 취재를 할 때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한 예로 PD수첩에서 혐한 성향을 가진 한국인들에 대해 취재를 할 때 구로다를 통하여 당사자와의 연결을 시도하였으며, 이 장면은 해당 방송에서도 나온 바 있다.
2005년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일본측 패널로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한 적이 있다. 재밌는건 그때도 신변의 위험 때문에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는데, 이 때 '그런 걱정 안해도 된다'고 '한국은 표현의 자유가 존중되는 나라'라는 뉘앙스로 답변해준 사람이 당시 100분 토론 사회자이자 MBC 아나운서였던 손석희이다.
그러나 의외로 TV에서의 발언은 글보다 수위가 매우 낮았다. 예를 들어 글로 자주 썼던 "한국인들은 일본 지배를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는 발언 대신에 "한국인들은 좀 더 이성적으로 당시를 볼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돌려 말했는데, 아마도 언급한 신변의 위험이나 자신의 혐한적 생각이 직설적으로 방송을 타면 한국인을 더 자극하여 반일감정을 더욱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랬을 확률이 높다. 때문에 TV에서 구로다의 화끈한 혐한 발언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조금 실망하기도 했다는 듯하다.
1993년에 후지 테레비 서울 지국장이었던 시노하라 마사토가 한국군 기밀을 털려다가 적발된 '시노하라 사건'이 있었다. 한국군 K-1 전차의 구체적 스펙을 털려고 한국군 장교와 국회의원에게 접근했다가 영관급 장교 몇 명이 이 사람에게 인사청탁을 하면서 2급 군사기밀을 넘겼는데, 결국 기무사에 의해 시노하라 지국장은 간첩죄로 체포되었다. 미국 같았으면 징역 수십 년을 때릴 만한 죄였지만 한국에서는 집행유예를 선고했고, 시노하라는 1심 판결이 나자마자 일본으로 황급히 귀국했다. 이때 구로다는 이 사건을 보고 울어주던 한국 아줌마를 칭송하는 투로 정이라면서 일본인을 따뜻하게 대해주는게 고맙다는 식의 글을 실은 적이 있다. 다만 알고 보면 이 아줌마는 시노하라의 아내였을 가능성도 있다. 시노하라는 구로다와 마찬가지로 한국 여자와 결혼했다.
90년대에는 좋은 생각이란 월간지에 한국에 대해 정이 많다느니 어쩌니 하는 긍정적인 글을 쓴 적도 있었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책들을 보면 한국인들에게 의외로 호감적인(?) 시선들이 느껴지는 내용도 제법 있다. 혐한류를 위시한 대놓고 한국 까기가 목적인 저질책들이 범람하는 일본 현실에서 그가 쓰는 기사는 어찌보면 나름대로의 균형있는 시각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지한파(知韓派)일 뿐 친한파(親韓派)가 아니다'''. 좀 더 세밀히 분석해보면 한국에도 일본 정부나 우익 등으로 인해 일본을 싫어하지만, 일본 음식이나 문화, 관광은 좋아하고 사람들 개개인에 대해선 호감을 갖는 사람이 있듯, 구로다도 한국에서 오래 살다보니 몇몇 한국인에게 든 정은 분명 있을 테지만 정치적으로만 보자면 전형적인 우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유사한 케이스로는 2013년 이글루스를 한바탕 뒤흔들었던 이마무라 사건의 장본인이 있다.
실제 그의 논조가 일본 보수 우익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논설위원이니만큼 그가 쓰고 있는 기사는 팩트의 전달이라기보다는 일본 보수우익의 시각과 구미에 맞춰 재단된 정치적 대변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보수우파 + 지한파라는 입장은 상반된 것도 아니고 성립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런 만큼 그가 쓰는 기사의 행간을 짚어내어 일본 보수우익의 시선을 짚어내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구로다의 글에 대해 관심을 주는 것에 대한 여부는 여러분의 머리로 알아서 판단하자.
한편, 이런 구로다에 대하여 조갑제는 무비판적으로 나몰라라 하는 점 때문에 욕을 먹기도 한다. 북한 비난에 대해선 서로 좋아라 사이좋게 협조하지만 구로다가 한국에 대하여 비아냥거릴때 조갑제는 입에 지퍼를 채우고 어떤 반응도 안 보이기 때문. 오죽하면 '한국의 보수를 논한다'라는 책자에서 보수를 옹호하던 다른 논객들이 조갑제를 보수의 망신이라며 비난할때도 바로 구로다를 거론하며 이런 혐한을 옹호하는 게 한국의 보수라고 알려졌으니 한국 보수가 욕먹는다라고 까기도 했다.
黒田 勝弘(くろだ かつひろ) / Katsuhiro Kuroda
1. 개요
일본의 신문 기자/언론인. 구체적으론 우익 성향의 산케이 신문 논설 위원 겸 서울지국장을 맡고 있다.
한국에서 오래 생활한 대표적인 지한파 일본인 중 한명이지만, 그만큼 한국에 대한 비아냥이나 디스에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으로(...), 지금은 대외 활동이 뜸해 인지도가 줄어든 편이지만 200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극우논객으로 제법 명성을 떨쳤다.
2. 활동
1941년 오사카부 오사카시 태생으로 교토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였다. 교도통신(共同通信)에 입사하여 서울주재원으로 파견되면서 한국과 연을 맺게 되었다.
일본 현지에선 한국 지사에서 '''30년 이상''' 근무하며 거주한 언론인으로 유명하다. 본래 교도통신 기자였던 그가 산케이신문으로 이직한 것도 가능한 한 한국에 오래 남아있을 수 있게 해준다는 조건을 제시해서 이직했을 정도로 한국에 관심이 많은 지한파로 유명하며 한국에 관한 저술만도 30종 이상 펴내고 '''부인도 한국 사람'''이다.
지금은 일본극우기자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전두환 정권 시기 한국에 부임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군사정권에 비판적인 기사도 제법 썼고 야당, 재야 인사들과도 친분을 쌓아 공안 당국에게 마크를 꽤나 당하기도 했다.[1] 다만 이 부분은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한국 못지 않게 일본의 정치 스펙트럼도 알고보면 매우 복잡하다. 좌익도 신좌익, 국제주의, 스탈린주의,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 사회민주주의 등 다양한 정파가 존재하고, 우익도 왕정복고파, 군국주의, 공화주의, 자유주의, 민족사회주의 등 엄청나게 복잡하다. 구로다나 가세 같은 경우는 우익 중에서도 입헌군주제나 그에 준하는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부류로, 당시 한국은 군사독재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비판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처음부터 한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었다고 볼 순 없는 것.[2]
1990년대 MBC의 모 프로그램에 한복을 입고 출연해서는 경상남'남'도 출신이라는 드립을 치기도 했다. 상당한 미식가로 일본에서의 저술 중에는 한국 음식에 관한 책이 있기도 하다. 일본에서도 먹는 것이긴 하지만 특히 고래고기나 말고기를 좋아한다고. 그중에는 보신탕을 좋아한다는 서술도 있다.
그가 출간한 미식책에서는 깨죽 덕에 겨우 복통을 고쳐서 당시 집주인에게 고맙다는 글까지 있다. 다만 한국 음식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상당히 낮춰 보고 있다. 맛있다고는 해도 세련되다거나 조리가 깔끔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국적이고 야성적이라는 어투. 이 자의 한국 음식에 대한 상투적인, 그리고 최대의 찬사는 '''야취(野趣)가 있다.''' 즉, 야성적이고 소박하다는 말이다.
KBS에서 당시 정부 슬로건이었던 한식 세계화를 주제로 다큐를 만들었을 때 잠깐 출연하여 삼계탕을 예로 들며 손님에게 닭을 부위별로 요리하지 않고 한마리를 통째로 내놓는 한국의 식문화가 넉넉하고 푸짐하다며 예찬한 적도 있었다. 양두구육 운운을 했다가 혼쭐나기 불과 몇 달 전이다.
스스로는 그의 발언이 국내 언론에서 마구 확대 해석되어 도마에 오르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예를 들면 권희로의 한국 송환에 비판적인 기사를 써서 한국 언론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는데, 사실 기사의 논조는 일본인들에게는 살인을 저지른 범법자에 불과한 자를 마치 개선장군인양 추켜세우는 당시 정계와 한국 언론에 대한 질타였다. 그리고 이후 권희로가 치정 문제, 정착금 문제로 온갖 사건을 일으키고 감방에 가는 신세가 되자 이 부분은 재평가되기도 했다.
구로다 본인의 서술로는 자신에게 가장 비판적인 한국 언론사가 조선일보라고 한다. 그런데 재밌는건 그의 둘도 없는 친구가 월간조선 출신이자 지금도 조선일보 계열에서 꽤 인맥이 큰 조갑제라는 것이다.
2010년대 들어선 '''"고령이라서 신변에 위험한 발언은 자제한다"'''고 한다. 하지만 물론 우파 경향을 숨기고 있는건 '''전혀''' 아니다.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극우파 잡지 "SAPIO"(소학관)에도 정기적으로 <서울의 바람(ソウルの風)>이란 기사를 싣고 있고 "정론"(후지/산케이 미디어그룹)에도 한 번씩 기사가 실린다. SAPIO에서는 김완섭과의 대담 기사도 실린 적이 있다.
정론이 구 보수우익의 대변지라면 SAPIO는 신우익의 대변지이다. 이를테면 정론에는 미국 비판은 잘 오르지 않으나, SAPIO는 매 호마다 양념처럼 오른다. 혐한 기사도 자주 오르는 편인데, 사실 SAPIO는 한국 까기용으로 김완섭과 고 젠카라는 전문요원(?)을 두고 있기도 하다.
3. 화려한(?) 기사 모음
신문이 신문이니만큼 일본 우익 독자의 입맛에 맞추어 글을 쓰는 경향이 강하다. 30여년 동안 그 글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그네들의 구미를 잘 맞추어주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글을 통해 짐작해 보자.
- 2005년에 교전수칙에서는 도망치는 적을 추격하지 않는 법인데 이미 전투 의지를 잃은 적을 기어코 추격하다 전사한게 뭐가 자랑이라고 이순신을 떠받드나는 완전히 미친소리를 하며 진짜로 꼴값했다. 자기는 침략자들이 도망가면 잘가라고 인사라도 할건가?! 입만 산 허풍쟁이 미친기자가 전쟁이나 전투에 대해 뭘 아는가? 네 조상들 악행은 사과 안하고 그 상황에 교전수칙 타령이나 하는 진짜 미친놈이다.
- 2007년 당시 미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되기 전 구로다 기자는 서울발 기사로 위안부 문제 국제화 배경에는 북한이 배경에 있다는 개드립을 쳤다. 그럼 위안부 결의안 통과시킨 미 하원도 종북!? 또한 이 당시 국내 케이블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위안부는 한국의 경제적 사정, 즉 가난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 양두구육 논란을 일으킨 비빔밥 문제에도 한국은 '오징어' 같은 나라라며 일본인이 한국을 비판하는 건 무조건 듣기 싫어하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친노 세력이 배후에 있는거 아닌가하는 의문도 제기했다. 논란이 되어서인지 구로다 본인은 양두구육이란 말이 "일본에선 가벼운 농담입니다"라며 한국에서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잘 몰랐다고 해명했지만, 사실 양두구육이란 말은 일본에서도 거의 쓰이지 않는다.
- 또한 미녀들의 수다를 보고 '일본 여성들은 한국 남성들을 조심해라' 면서 한국 남성 전체를 성희롱범으로 싸잡아 비하하기도 했다.
- 2010년 월드컵을 맞아 한국인들이 월드컵에 이성을 잃었다, 언론들이 월드컵만 다룬다는 논조의 기사를 썼다. 정작 일본 언론들도 월드컵에 집중하기는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 "일본해라는 표기를 안 쓸 거면 일본뇌염이라는 표기도 쓰지 마라" 라는 칼럼을 썼다.
- 노래 "독도는 우리땅" 의 가사가 모순되어 있다"라는 내용의 칼럼을 기고했다. 하와이는 미국 땅이 아니라 미국의 식민지라는 견해도 주장했다.
- 광복절은 일본이 한국에 대한 통치를 포기한 날이라 하였다. 또한 한국은 자주 독립을 못했기 때문에 울분에 빠져 일본 정부에 사과와 보상을 주장하는 것이며, 인도는 자주독립을 했기 때문에 영국에 보상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긴 칼럼을 기고했다. 물론 헛소리다.
- 일본의 도호쿠 대지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한국의 원조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교과서에 독도 관련 표기와 관련해 논란이 일자 침몰하면 1억 명이 전부 독도에 붙어 살 건가?라는 제목으로 일본이 가라앉을 지경이니 한국이 독도를 양보하는 게 어떻냐는 드립을 치기도 했다.
- 2012년 2월 아키히토 덴노가 심장병 수술을 받고 회복했는데, 한국에서는 이에 대한 보도가 없다며 한국 언론을 비난했다.
- 주간조선 2228호에 수업 안 들어도 좋다! 실패해도 좋다! 단, 좋아하는 일을 하라! 교토대 노벨상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자신의 모교인 교토대학을 거하게 빤 적이 있었다.
- 산케이 신문에 "서울에서 여보세요"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데 읽어보면 한국이란 나라에 호감을 가지기 힘들게 만드는, 비꼬기와 돌려까기의 향연이다.
- 주간조선 2293호에선 자신도 놀란 일본의 반한감정이란 기사를 쓰며, 일본에선 자신이 친한이라고 욕먹는다는 개드립을 쳤다.
- 2015년 1월에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에서 부는 혐한붐에 대해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한국을 동정하는 마음까지 든다고 밝혔다.
- 2018년 5월 29일 외신기자간담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에게 '소녀상' 문제와 관련된 도발을 하였다가 역관광당하기도 하였다. #
3.1. 특징
구로다의 칼럼이나 인터뷰를 보다보면 일본인의 다테마에(建前, 겉마음)와 혼네(本音, 속마음) 개념이 어떤건지 대략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비빔밥을 양두구육이라고 한 뒤 논란이 일자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강 한국을 칭찬하면서 얼버무린 뒤 다음 칼럼부터 어김없이 한국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반응을 번역한 게시물들로 일본인의 혼네만 보게 되거나, 오프라인에서 일본인과 만나서 다테마에만 보게 되는 일반적 경우와 달리 혼네, 다테마에 모두를 접해볼 수 있는 산 표본인 셈.
사실 구로다가 겉으로 한국을 칭찬해주는 경우도 파고 들어가면 교묘히 비꼬는 뉘앙스가 강하다. 논리나 자기 발언에 대한 옹호, 극우파에 대한 비판이나 옹호 이런 모든 걸 제쳐두고, 일단 한국을 비아냥거리는 것 자체에만 집중해서 그의 발언들을 보면,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대강만 봐도 바로 반박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구로다의 기사는 일본 내에서만 연재되며 한국에서는 극단적인 기사의 경우만 언론을 통해 소개되고, 구로다 본인이 한국 미디어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도 않고 한국 네티즌이 구로다에게 접촉할 수 있는 경로도 별로 없는지라 구로다는 여전히 일본 내에서 반한 소재로 쓰이기 쉬운 소리를 계속하고 있다.
4. 여담
30년 이상 한국에서 근무했으니 당연하지만 한국어에 매우 능숙한 편이다. 한글을 읽고 쓰는 것, 듣는 것은 물론이고 말하는 것조차 일본인 특유의 억양이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상당한 한국어 실력을 선보인다. [3] 다만 토론 같은데선 확실히 긴장도 되고 말도 빨리 해야돼서 그런지 종종 티가 나는 편이다.
서강대학교에서는 이 사람을 교양과목 강사로 초빙했는데, 취업비자로 입국한 외국인의 직업변동사항에 대해서 신고를 해야 함에도 구로다는 신고를 안해서 벌금형을 받은 전력이 있다.
간혹 한국 언론이 일본의 극우인사들에 대해 취재를 할 때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한 예로 PD수첩에서 혐한 성향을 가진 한국인들에 대해 취재를 할 때 구로다를 통하여 당사자와의 연결을 시도하였으며, 이 장면은 해당 방송에서도 나온 바 있다.
2005년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일본측 패널로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한 적이 있다. 재밌는건 그때도 신변의 위험 때문에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는데, 이 때 '그런 걱정 안해도 된다'고 '한국은 표현의 자유가 존중되는 나라'라는 뉘앙스로 답변해준 사람이 당시 100분 토론 사회자이자 MBC 아나운서였던 손석희이다.
그러나 의외로 TV에서의 발언은 글보다 수위가 매우 낮았다. 예를 들어 글로 자주 썼던 "한국인들은 일본 지배를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는 발언 대신에 "한국인들은 좀 더 이성적으로 당시를 볼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돌려 말했는데, 아마도 언급한 신변의 위험이나 자신의 혐한적 생각이 직설적으로 방송을 타면 한국인을 더 자극하여 반일감정을 더욱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랬을 확률이 높다. 때문에 TV에서 구로다의 화끈한 혐한 발언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조금 실망하기도 했다는 듯하다.
1993년에 후지 테레비 서울 지국장이었던 시노하라 마사토가 한국군 기밀을 털려다가 적발된 '시노하라 사건'이 있었다. 한국군 K-1 전차의 구체적 스펙을 털려고 한국군 장교와 국회의원에게 접근했다가 영관급 장교 몇 명이 이 사람에게 인사청탁을 하면서 2급 군사기밀을 넘겼는데, 결국 기무사에 의해 시노하라 지국장은 간첩죄로 체포되었다. 미국 같았으면 징역 수십 년을 때릴 만한 죄였지만 한국에서는 집행유예를 선고했고, 시노하라는 1심 판결이 나자마자 일본으로 황급히 귀국했다. 이때 구로다는 이 사건을 보고 울어주던 한국 아줌마를 칭송하는 투로 정이라면서 일본인을 따뜻하게 대해주는게 고맙다는 식의 글을 실은 적이 있다. 다만 알고 보면 이 아줌마는 시노하라의 아내였을 가능성도 있다. 시노하라는 구로다와 마찬가지로 한국 여자와 결혼했다.
90년대에는 좋은 생각이란 월간지에 한국에 대해 정이 많다느니 어쩌니 하는 긍정적인 글을 쓴 적도 있었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책들을 보면 한국인들에게 의외로 호감적인(?) 시선들이 느껴지는 내용도 제법 있다. 혐한류를 위시한 대놓고 한국 까기가 목적인 저질책들이 범람하는 일본 현실에서 그가 쓰는 기사는 어찌보면 나름대로의 균형있는 시각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지한파(知韓派)일 뿐 친한파(親韓派)가 아니다'''. 좀 더 세밀히 분석해보면 한국에도 일본 정부나 우익 등으로 인해 일본을 싫어하지만, 일본 음식이나 문화, 관광은 좋아하고 사람들 개개인에 대해선 호감을 갖는 사람이 있듯, 구로다도 한국에서 오래 살다보니 몇몇 한국인에게 든 정은 분명 있을 테지만 정치적으로만 보자면 전형적인 우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유사한 케이스로는 2013년 이글루스를 한바탕 뒤흔들었던 이마무라 사건의 장본인이 있다.
실제 그의 논조가 일본 보수 우익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논설위원이니만큼 그가 쓰고 있는 기사는 팩트의 전달이라기보다는 일본 보수우익의 시각과 구미에 맞춰 재단된 정치적 대변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보수우파 + 지한파라는 입장은 상반된 것도 아니고 성립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런 만큼 그가 쓰는 기사의 행간을 짚어내어 일본 보수우익의 시선을 짚어내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구로다의 글에 대해 관심을 주는 것에 대한 여부는 여러분의 머리로 알아서 판단하자.
한편, 이런 구로다에 대하여 조갑제는 무비판적으로 나몰라라 하는 점 때문에 욕을 먹기도 한다. 북한 비난에 대해선 서로 좋아라 사이좋게 협조하지만 구로다가 한국에 대하여 비아냥거릴때 조갑제는 입에 지퍼를 채우고 어떤 반응도 안 보이기 때문. 오죽하면 '한국의 보수를 논한다'라는 책자에서 보수를 옹호하던 다른 논객들이 조갑제를 보수의 망신이라며 비난할때도 바로 구로다를 거론하며 이런 혐한을 옹호하는 게 한국의 보수라고 알려졌으니 한국 보수가 욕먹는다라고 까기도 했다.
5. 관련 문서
[1] 여담으로 이렇게 한국을 도와 친한파 소리도 듣다 나중에 뒤통수 때렸다고 평가받는 일본 인사는 구로다만 있는건 아니다. 1993년 '추한 한국인'이라는 제목의 혐한 서적으로 한국을 헐뜯은 가세 히데아키도 1970년대까진 일견 친한파로 평가받으며 한국 사회에서도 나름 인지도가 있었다. 그러던 그가 지금은 이시하라 신타로와 절친한 일본 극우견으로 활약한다. 일본 극우 홍보영화 프라이드나 무르데카 감수를 맡고 야스쿠니 신사에도 자주 나간다. 참고로 가세 히데아키는 책을 낼 때 한국인인 척하기 위해 박태혁이란 가명을 썼으며, 전여옥이 그를 깐 바 있었다.[2] 애초에 무조건적인 사랑은 친한이라고 보기도 애매하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줄도 아는게 진짜 애정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 다만 이들의 문제는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사항이 다수의 공감도 받지 못하고, 그렇다고 인류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냐면 그것도 좀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것.[3] 발음적인 측면에서, 아예 한국인으로 귀화한 호사카 유지 교수보다도 더 뛰어나다는 평가가 있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 유명한 일본인 가운데 가장 유창한 발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