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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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작가, 방송인, 언론인, 정치평론가, 스포츠기관단체인, 전 정치인. 2000년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대표적인 보수진영의 저격수로 활동했다. 당시엔 진보진영의 주요 타깃이 되어 '전여오크'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이후 박근혜와 소원해지면서 친박 안티도 늘게 되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박근혜에 대한 비판수위가 높아지면서 박근혜를 진작부터 평가절하했던 과거 발언들이 다시 재조명받았고,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에는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취지의 인터뷰로 한 번 더 주목을 받게 되었다. # ##[6] 기타 내용은 후술 문단 참조."여러분,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이 나쁜 놈입니다. 그러나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입니다!"[5]
2. 활동
2.1. 정계입문 전
1981년 KBS 공채 9기 기자로 입사하였고[7] KBS 뉴스파노라마와 와이드 정보 700의 제작을 맡다가 1989년부터 1991년 상반기까지 뉴스센터 700 - KBS 아침 뉴스의 앵커를 맡았다.
그러다가 1991년 5월 20일에 KBS 뉴스광장이 신설되면서 일본 도쿄로 발령이 나서 1993년까지 약 2년 6개월간 KBS 도쿄 특파원으로 지냈다. 이때 일본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은 없다라는 책을 펴내었는데, 책이 잘 팔리다 보니 기자 시절보다 더 크게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추한 한국인들의 반례로 내놓은 책이었지만 표절이었던 것이 문제. KBS를 퇴사한 뒤 랴미쥬 프로덕션이라는 회사도 차리며 강연이나 방송 출연, 서적 출간, 칼럼 기고 등을 활발히 하였고, 1997년 6월 30일부터 1998년 12월 31일까지 정홍택 前 한국영상자료원 이사장과 함께 792 뉴스대행진 5, 6부를 진행하였다. 2000년대 중반 이후의 전여옥의 행보를 보면 놀라운 일.[8]
당시로서는 꽤나 진보적인 스탠스의 페미니스트였다. 이문열의 소설인 <선택>을 크게 비판하고[9] 자유로운 성교육을 주장하였으며,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라는 책도 이 시기에 펴내었다. 사실 1980년대 당시 KBS가 공영방송사라고는 하지만 전두환의 끄나풀이나 마찬가지였고, 자연히 그와 관련한 더러운 일들을 많이 목격해본 입장이었던 영향이기 때문일 것이다.
2.2. 정계활동 당시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06년 한나라당 지원유세 도중 지네딘 지단이 월드컵 결승에서 마르코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한 이유가 "너 노사모지?"라고 마테라치가 놀려서 지단이 홧김에 박치기를 했다고 하는 농담도 선보였다. 오죽하면 반기문이 UN 사무총장에 출마했을 때도 깠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언론인 출신답게 언변은 꽤 수준급이였다.
이후 보수진영의 대표적인 저격수로 김대중, 노무현을 비롯한 많은 반대편 인사에 대한 독설을 퍼부어 안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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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는 당시 진보색이 강했던 디시 정사갤에서 전여옥을 초청해 간담회를 가지기도 했는데, 이때 '''전여오크를 관광시켜 주겠다'''라고 호기롭게 떠들었던 정사갤 고정닉들이 간담회에선 유시민도 말빨로 부들거리게 했던 전여옥에게 완전히 참 상기된 굴욕적인 단체사진만 찍히고 돌아오는 일명 "여옥대첩"이 터졌다.[10] 자세한 건 키보드워리어나 정치사회 갤러리[11] 문서 참고. 어찌 보면 본인이 의도하진 않았겠지만[12] , 한국 인터넷 문화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친 사람.
한편 위 사건으로 인터넷계의 큰 변화가 생겼다. 여옥대첩 이후 전여오크를 털어주겠니 하면서 입만 털던 진보계열의 고닉들은 사회활동단체 활동 등 나름 잘 나간다 했었으나 전여옥에게 입진보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면서 참패했다. 이들이 온갖 조롱을 들으며 정사갤에서 탈갤하면서 열린우리당 행사에도 초대받던 정사갤은 급속도로 우경화되고 여러 정치 드립을 디씨 전체에 보급하여 당시 디시인사이드의 수도 역할을 하던 코미디 프로그램 갤러리 및 국내야구 갤러리의 우경화에도 기여했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진 한나라당 최고위원을 역임하였다. 처음에는 박근혜가 당대표였던 시절 박근혜를 보좌했으나,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이명박을 지지하면서 친이계가 되었다.[13] 이후부턴 쌓인 게 많았는지 박근혜의 사생활까지 거론해가며 치부를 까발렸는데, 2012년엔 <i전여옥>이란 책까지 내며 박근혜를 맹비난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통합민주당 김영주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14] 당선 이후 민주당이 공직선거법 위반(허위 학력 및 경력 기재 등)으로 고발했지만 대법원의 원고패소 판결로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2009년, 노무현 대한민국 대통령 서거 당시 조문소를 영등포구청 내 지하 벙커에 만드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영등포구청 지하층 제일 구석진 방으로, 지상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한참 걸어나올 정도로 후미진 곳이라 구청직원들도 잘 안 가는 곳으로 평소에는 예비군훈련 시설이다. 조문소가 만들어진 후에 딱 한 번 방문은 했다.
2012년에 박근혜가 당권을 잡자, 새누리당을 탈당하여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생각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고[15] 사실상 정계은퇴 수순을 밟게 되었다. 진작부터 "낙선하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선언을 한 상태였고, 오래 전부터 "정치인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은퇴하게 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2.3. 정계은퇴 이후
독설가로 유명했던 과거의 이미지와는 달리 말투가 조곤조곤해졌고, 인상도 정치하던 시절보다 많이 밝아졌다.[16][17]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TV 출연을 통해 상당히 정치참여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래도 왕년의 전여옥을 알던 네티즌들은 '''"정치에서 멀어진 후 독기가 빠진 것 같다"'''고 평하기도 했다. 확실히 정치를 한창하던 시기의 그녀와 정치에서 멀어진 그녀가 정말 딴 사람처럼 보인다는 말도 나올 정도.
19대 총선 이후로는 회장을 맡기도 했던 한국여자야구연맹 고문으로 있다. 사실상 언론엔 얼굴 비출 일이 거의 없는 직책이라 그렇게 잊혀져갈 것이라고 여겨졌는데…[18] 2016년 10월 박근혜 정부 최대 오점으로 남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고, 과거 변절자로 비난받으면서도 박근혜를 맹디스했던 그녀가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오래간만에 대중들에게 얼굴을 비췄다. '내가 모신 박근혜… 그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 박근혜 대표 연설문 모처 거치고 나면 '걸레'돼 오더라, 친박들은 모두 귀머거리·장님이냐.
그리고 2016년 11월 2일 TV조선의 시사프로그램 <박종진의 라이브쇼>에 출연하며 방송에도 오래간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서 '''"새누리당은 수습이 아니라 수술을 해야 한다."''', '''"지하경제라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지하정치는 처음 들어본다."''',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공백 논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나도 부모의 입장으로서 그 7시간을 절대 용서할 수는 없다."''' 등 강도 높은 이야기를 마구 쏟아내었다. 또한 "더 이상 정치에는 미련이 없으며,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을 앞둔 12월 8일에는 월간지 신동아와 자신의 신간 <오만과 무능> 출간을 주제로 인터뷰를 가졌다. 박근혜의 됨됨이, 최태민 및 최순실과의 관계 등을 거론하며 박근혜에게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이 없음을 다시 강조했다. 또한 한국의 보수에 대해 다시 한번 비판하며 정계로 돌아갈 생각이 없음을 재확인하였다.
2016년 12월부턴 채널A의 정규편성 프로그램인 외부자들에 고정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은근히 정봉주랑 케미가 잘 맞는다. 1회 방송에서 1990년대에 자신의 방송프로에 당시 민간인이었던 박근혜가 초청되었을 때의 일화를 말했다. 녹화 이후 회식을 할 때 최순실이 같이 있었는데, 박근혜 바로 옆에서 말없이 식사하던 최순실이 자기 자리에서 먼 위치에 있는 반찬을 건너편에서 함께 식사하던 방송국 직원에게 갑자기 내놓으라고 해서, 직원이 약간 놀라다가 얼른 그 반찬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걸 박근혜 바로 앞자리에다가 태연히 갖다 놓았고, 그 장면을 본 전여옥은 속으로 많이 놀랐다고 한다. 그게 박근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반찬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전여옥이 더 놀란 것은 박근혜가 이런 최순실의 무례를 보고도 조금의 타박조차 하지 않고, 반찬을 보며 어린아이처럼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는 점이었다고 한다.
2회 방송에선 과거 자신의 (특히 노무현에 대한)발언들을 해명하며, 그 당시 자신은 노무현이 지역주의 타파, 진영논리 극복, 검찰 개혁 시도 같은 장점도 많았지만 '대통령 못 해 먹겠다' 같은 권위가 사라지는 발언을 스스로 하는 점들이 안타까웠다고[19] 생각했는데, "정치일선에서 물러난 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친했던 지인과 대화도 나누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책도 접하고 하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며, "우리가 불편할 정도로 너무 솔직했던 대통령이었고, 그땐 이해가 안 됐지만 지금은 이해된다. 나 역시 지금은 과거와 달라진 점이 많다."는 취지의 언급을 하였다.
2017년 2월엔 SBS의 특별기획 프로그램인 대선주자 국민면접에 출연했다.정계 은퇴 이후의 이미지는 가히 격세지변으로 방송을 하는 정봉주나 진중권 같은 진보논객들과는 스스럼 없이 어울리거나 그들이 진행하는 방송에 게스트로도 출연하는 등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정치적 입장도 과거 강경 우파적 입장을 대변했다면, 최근엔 사드배치 문제나 한미동맹 문제에 있어서만 다소 완고한 태도를 취할 뿐, 낙수효과의 한계를 인정하거나 재벌의 폐해를 적극 지적하는 등 과거였으면 안 했을 법한 입장도 개진하고 있다. 또한 과거 날카롭게 날을 세우던 참여정부에 대해서도 그 성과를 언급하고,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에는 나름 호의적인 입장[20] 이었으며 강경화 외교장관 지명으로 인한 논란에도 적극적으로 그녀를 두둔하는 등, 과거와 사뭇 다른 포지션과 중도적 이미지[21] 로 변하는 듯 하다가 최근엔 아예 반정부 성향 즉 원래 포지션인 강경보수로 돌아갔다. 최근에는 같이 외부자들에 출연했던 언론인 안형환과 합리적 보수를 자칭하며 안전빵빵이라는 유튜브 방송을 공동으로 시작했다. 방송의 내용은 당연하게도 문재인 정부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다.
2020년 김종인이 야권 대선 주자로 백종원을 거론하자, 정치와 거리를 둔 채 사업 잘 하고 있는 백종원에게 큰 실례를 저질렀다며 맹렬하게 비판하며 예전의 독설가스러운 면모를 다시 보여줬다. 김종인이 허언뿐이 했다는 말은 덤. 또한 김종인한테 아부를 한다며 오세훈과 원희룡도 함께 까기도. #
2.4. 전여옥TV
전여옥은 토론 프로그램 등에서도 합이 잘 맞았던 안형환과 '안형환, 전여옥의 안전빵빵' 이라는 채널명으로 활동하다가, 합동방송을 접고 채널명을 '전여옥TV'로 바꿔 혼자 활동중이다. 컨텐츠는 여옥대첩, 뉴스부티크로 나뉘는데 컨텐츠의 성향이 달라지는 것 같지는 않고 요일에 따라서 이름이 바뀌는 모양. 전여옥은 생방송과 유튜브를 진행 하면서 재선 전 국회의원으로써 넓은 인간관계와 요새 이슈가 되는 인물의 과거사 등을 증언하곤 하는데, 전여옥이 언급한 사람은 다음과 같다.[22] 2021년 들어 라이브 방송에서 자신의 정치 성향과 맞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 사진을 올려놓고 생김새를 비하'''하는 식의 방송을 진행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 컨텐츠의 질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한명숙 전 민주통합당 대표는 전여옥과 함께 떠난 해외 연수에서 같은 호텔 방과 비행기도 같은 줄에 탔다고 한다. 외 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한명숙은 갑자기 전여옥에게 본인이 면세점에서 산 명품들을 맡겨버리고 먼저 출국장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상황 파악이 안되었던 전여옥은 후에 카메라를 피해 짐을 맡겼음을 알고 속으로 “저 여자 욕심이 많 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 강경화가 부부문제 때문에 상담을 요청했다고 한다. 일화에 따르면 강경화의 남편은 실용주의적이고, 무조건 반반으로 나누는 사람이라 그릇하나를 사도 반으로 나누는 사람이였다고 한다. 심지어 강경화의 남편은 자신만 들을 오디오 플레이어를 살 비용마저 반반으로 한다는 말에 전여옥이 “그걸 왜 내. 본인이 들을려고 사는건데” 라고 말하니 강경화는 “집에 있으면 저도 좀 듣고...하지 않을까 해서..” 라고 말했다. 대답을 들은 전여옥은 강경화가 맹하다고 생각했는지 설득을 포기했다고 한다.
- 안희정과 친분이 있었던 사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가끔 식사나 술자리를 하는데 정치 얘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고.[23][24] 어느날은 술자리를 마친 전여옥과 안희정이 헤어지면서 전여옥은 안희정이 관용차를 타고 서울을 올라가는 장면[25] 을 보고서는 ‘저러다 큰일날거 같은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진짜로 큰일이 터졌다.
3. 사건·사고 및 논란
4. 여담
-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 반지의 제왕 1편에 대해 혹평을 해[26]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비웃음을 샀다.해당 평론 반지의 제왕은 아카데미에서 감독상, 작품상 등 주요 부문을 포함해서 1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4개 부문에서 수상하여 평단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27] 사람마다 관점과 취향이 다르니 비판은 할 수 있다고 쳐도 뜬금없이 아무 상관 없는 조지 루카스를 비판해서 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의 부재를 스스로 드러냈다.
- 2011년 12월 이준석이 한나라당 비대위원으로 선임되자 전여옥이 그를 ‘들러리’로 규정한 적이 있다. 그러자 이준석은 2012년 1월 2일경 한 방송사에서 전여옥을 ‘변절자’라며 받아쳤다. 이에 분노한 전여옥은 다음날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아이들까지 정치하나? 부끄럽고 가슴이 아프다.”, “문화대혁명 때의 홍위병 같다”, “어느날 갑자기 스타가 되어버린 연예인은 마약에 손대거나 자살한다”라는 비난과 저주를 쏟아냈다.‘변절자’로 몰린 전여옥, 이준석에 “홍위병” 맹비난 이러한 젊은 인재들이 정치판에 기웃거리며 정치인들에게 이용당하는 지도 모르고 그것을 본인들의 위세로 믿고 허세를 떠는 걸 굉장히 안 좋게 본다. 당시 상황을 보면 전여옥이 일방적으로 독설을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한이 안 풀린 것 같다. 전여옥은 2016년말 컴백하여, 시사저널에 "과거 이준석이 박근혜의 홍위병이 되어 나를 공격했다."라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고, 같은해 12월 신동아에서는 "2012년 박근혜 키즈의 일원인 L이 나를 면전에 두고 '배신자'라고 했다가 방송 끝나고 '전 의원님 너무 좋아합니다. 식사 모시고 싶습니다.'라며 꾸벅 인사하는데, 너무 놀랐다. 이건 정치 9단도 하기 어려운 일 아닌가. 유시민은 토론 중에 싸우다가 쏘아보고 가는 일관성이라도 있지."라고 비판하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비판의 선봉장이 되어 다시 언론에 나오는 일이 잦아졌는데, 인터뷰 할 때마다 틈틈이 이준석을 비난하는 것으로 보아 쌓인 것이 많은 듯 하다. 같은달 부터 시작한 채널A 시사토크쇼 외부자들에서도 이준석 이야기만 나오면 '어린애들은 절대 정치하면 안 돼요'라며 광분 한다.
- 정치를 다시 할 생각이 없는 이유로 "나는 캐릭터가 뜨겁고 순진하다. 거짓말을 못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 '꿀단지엄마'라는 닉네임으로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전여옥 블로그 최근 강경보수 발언을 이곳에서 쏟아내고 있다.
- 박근혜의 연설문에 대해서는 "박근혜가 연설문 작성만 하면 그걸 들고 어딘가를 다녀왔는데, 그러면 그 연설문은 걸레가 되어 돌아왔다''[28] 고 말했다. 그런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마자 곧바로 "그러면 그렇지. 그 쓰레기 연설문이 최순실의 짓이었구나."라고 말했다.
- 국회의원 재직 시절에는 워낙 안티가 많다보니, 앞서 언급한 2009년 민가협 폭행 사건 당시 네이버 뉴스에서는 축배를 드는 댓글로 대동단결했다. 기사 1 기사 2
- 본인의 유튜브 방송에서 유시민을 자주 언급하며 "어용 지식인이라 부르기 한심한 수준의 학력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며, 독일 유학 가서 학위도 받지 못한 위선적인 사람"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보면 유시민에 대한 감정이 상당히 좋지 않은 것 같다.[29]
- tvN 토론대첩에 출연하여 대학생 패널들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5. 선거 이력
6. 둘러보기
[1] 절세를 위해 전세를 주었던 집에 들어와 수리해서 살고 있다고 한다.[2] 결혼을 늦게 한 편이라 첫째(아들)를 38세에 낳았다. 그러한 관계로 첫째가 1997년생(27세)이다.[3] 국민생각이 득표율 미달로 해산된 이후 현재까지 무소속이다.[4] 2020년 2월 14일 기준[5] 영어권 격언(Fool me once, shame on you; fool me twice, shame on me.)이며 조지 W. 부시가 말실수를 한 걸로 유명하다.[6] 하지만 알고 있어도 대놓고 폭로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당장 2014년 정윤회 문건 특종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가장 가까이 간 세계일보 기자들이 어떤 수난을 당했나 생각해보자.[7] 당시 KBS 내 기자는 300명 중 5명만이 여성이었고, 그마저도 뽑아주는 게 KBS뿐이었다고 한다.[8] 전여옥의 KBS 시절 동료였던 정미홍이나 박찬숙도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2010년대 들어 막장 발언으로 악명을 날리게 된 정미홍도 한때는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조순을 도와주기도 했던 친 민주당 인사였고, 박찬숙도 언론통폐합 당시에 해직되어 1987년이 되어서야 복직된 대표적인 해직기자인데, 2000년대 초부터 보수적인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해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냈다. 다만 지역구 낙선 이후 2009년에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정치계에서 은퇴했다.[9] 그런데 책의 뉘앙스가 사실 문제가 있었다. 책의 주인공이자 이문열의 조상인 장계향이 시종일관 현대 여성들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투로 말하며, 여성은 가정에서 남편과 시부모를 섬기고 집안일과 육아만 해야 한다고 강요하였다.[10] 이후 진중권 - 일간베스트 간결의 인터넷 토론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11] 사실 어쩔 수 없는 게, 여유 있게 시간을 두고 조사를 해서 글을 쓰는 인터넷과 눈 앞에 대면한 상태에서 하는 토론은 차이가 크다. 필요한 자료를 모두 준비해와야만 하고, 자료에서 밀리면 토론 자체가 성립이 안 되기 때문. 전여옥이 가끔 비논리적 발언으로 유명했어도 언론인, 국회의원, 그리고 대변인 출신인데 정보력에서 인터넷 잉여들이 상대가 될 리가 없다.[12] 본인도 tvN '토론대첩' 출연당시 자신의 블로그에서 여옥대첩의 후일담을 지인으로부터 알게 된지 얼마되지 않았다고 밝혔다.[13] 이때 나름 유명한 사건이 일명 전여옥 우비 사건이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추모식 당시 박근혜가 비가 오는데도 그 비를 맞으면서 의도적이라 할 만큼 우비를 쓰질 않자, 주변 사람들이 전여옥을 보고 "박 대표님께 우비 모자 안 씌워드리고 뭐하냐?!"고 한마디 했는데, 이때 전여옥은 "'내가 무슨 무수리도 아니고 이런 것까지 해야 되나?'라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한다.[14] 당초엔 뉴타운 바람을 타고 무난하게 당선될 것이라 예상되었지만, 실제 선거에선 박사모에서 낙선 대상으로 지목한데다 친박연대 후보가 출마하여 8.8%를 얻으며 보수표가 분산, 불과 민주당 후보와 988표(1.2%)차로 신승했다.[15] 국민생각은 지금 사라진 득표율 미달 정당 해산 규정으로 인해 해산되었다.[16] 일부 전현직 정치인들의 정계 입문 전, 정계 시절, 정계 은퇴 후 사진을 비교해보면 인상 차이가 확연히 난다. 정계 활동을 하게 되면 계파 갈등, 주도권 싸움, 정적들의 공격 등과 같은 잦은 정치적 싸움과 갈등으로 인해 늘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아무래도 인상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안철수, 한선교를 보라.[17] 유시민 역시도 정계은퇴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로, 본인의 사진들을 보고 느낀 바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 적이 있다.[18] 최태민 일가의 미움을 사 신변의 위협을 받아서 그동안 숨어지냈다는 루머도 있었다. 그리고 "박근혜와 갈라선 후 협박전화, 협박메일이 많이 왔다"는 말로 신변위협을 느꼈음을 어느 정도 시인하기도 했다. (동아일보), (tbs).[19] 하지만 전여옥 본인이 보수를 자처하던 입장에서 생각해도 대통령이 스스로 권위를 깎는 행위가 마음에 안 드니 자신이 나서서 대통령을 조롱하고 권위를 더욱 깎는 미숙아, 인큐베이터 발언을 했다는 것은 다소 앞뒤가 맞지 않다. 대통령의 권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노무현 개인에 대한 호불호와 상관없이 대통령이라는 직책에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발언의 수위로써 매우 부적절했다.[20] 그러나 지금은 매우 비판적인 입장이다. 한 인터뷰에서는 문재인의 지적 능력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21] 강경화 장관과는 80년대 중반 KBS에서 같이 근무해서 친분이 있는 관계이다. 물론 그렇다고 친분 때문에 마냥 두둔한 건 아니고.[22] 어디까지 개인의 일화이므로 완벽한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23] 원래 정치인들 끼리 개인적으로 만나면 정치얘기를 잘 하지 않는다고 한다. 더군다나 안희정은 민주당계 정당 출신이기 때문에 보수인 전여옥과 정치를 개인적으로 할일은 더더욱 없다.[24] 서로 이념이 다르기도 하는것도 있지만, 하도 정치얘기만 해대니 피곤하기도 해서 개인적인 자리에는 얘기를 잘 하지 않는것도 있다고 한다.[25] 당시 휴일이였고, 서울은 온전히 개인적인 사정때문에 간것이라고 했다고 한다.[26] 처음 도입부까지는 괜찮다고 했으나, 갈수록 대사가 늘어지고 마지막에 "2002년 겨울, 속편을 기대하세요"라는 자막이 뜨며 영화가 끝날 땐 화가 나서 치를 떨었다고. 같은 평론에서 물랑 루즈도 같이 깠다.[27] 당시만 해도 아카데미의 보수성이 매우 강하던 시절이라 판타지/SF 장르의 작품이 주요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것만으로도 파격적인 사건이었다.[28] 당시 연설문 초안 작성을 담당했던 건 다름아닌 유승민이었다. 전여옥은 직접적으로 "유승민은 글을 잘 쓴다"고 언급하기까지 했다. 유승민을 좋아하건 싫어하건, 그가 달변에 달필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29] 역으로 유시민 역시 전여옥에 대해서 감정이 상당히 좋지 않다. 다시 말해 불구대천의 관계.[30] 2012.3.9 탈당
국민생각 입당
국민생각 입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