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석문
1. 개요
돌이나 금속 따위에 새겨진 글, 기록을 뜻한다.
고대 한국사의 경우 사서로 체계화되어 남아있는 기록이 부실하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역사서 중 가장 오래된 정사 삼국사기 역시 삼국시대 당시에 쓰인 것이 아니라 몇백년은 지난 후대인 고려 때 쓰인 것이다. 이렇게 기록이 부족한 상황에서 광개토왕릉비, 북한산 순수비 같이 금석문은 얼마 남지 않은 당대에 기록된 1차 사료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예를 들면 신라 태조#s-1.2 성한왕에 대한 기록, 백제의 매국노 예식진에 대한 기록, 연남생의 묘비에 기록된 연개소문 가문의 가계도 등 사서에 없거나 부족한 부분을 금석문을 통해 알 수 있다.
한국사에서 유독 고구려와 신라는 각지에 비석을 많이 세웠고 영토 확장, 지방 시찰, 법령과 판결, 외교관계, 수묘법 등 국가의 통치 행위에 관한 중요한 내용을 기록하고 알리는 데 활용하는 면모가 두드러진다. 반면 백제나 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여겨지는 고대 일본은 다른 기록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석문을 많이 남기지 않은 편이고 그 내용도 국가적 기록보다는 사찰 건립이나 지역 단위의 기록이 많다.
2. 한국의 주요 금석문 목록
- 경주 남산 신성비
- 광개토대왕릉비
- 단양 신라 적성비
- 대구 무술명 오작비
- 명활산성비
- 무령왕릉 지석
- 문무왕릉비
- 사천 선진리 신라비
- 사택지적비
- 영천 청제비
-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 울주 천전리 암각화
- 울진 봉평리 신라비
- 울진 성류굴 명문
- 임신서기석
- 점제현 신사비
- 충주 고구려비
- 진흥왕 순수비
- 척화비
- 포항 냉수리 신라비
- 포항 중성리 신라비
- 합천 매안리비
3. 외국의 금석문
- 로제타 석
- 함무라비 법전도 금석문의 형태로 전해진다.
- 고대 그리스나 고대 로마도 금석문이 있어서, 이를 편찬한 자료인 Corpus Inscriptionum Graecarum, Corpus Inscriptionum Latinarum이 간행되었다.
- 고즈케 삼비(上野三碑)
- 석각 유훈: 역사상에 존재하였다는 금석문으로 송나라를 건국한 송태조의 유훈을 새겨놓았다고 하며 새로 즉위하는 황제들은 입 무겁고 글 못 읽는 환관 하나와 함께 소리 없이 이를 읽었다고 한다. 북송 시절에는 극비중의 극비라서 아무리 총애받는 신하라 해도 그 존재조차 알 수 없었지만 정강의 변 이후 금나라 시절에 석각 유훈의 존재와 그 내용이 알려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