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현(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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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농민이자 대한제국의 전 하급 관료. '''김일성의 할아버지'''이다.
2. 생애
1871년 평안도 평양부에서 만경대 산당지기이자 묘지기인 김응우의 외아들로 태어났으며, 김응우가 일찍 사망하여 소작살이로 어려운 생활을 했다.
젊은 시절 음서로 관직에 나가는데 성공해 미관말직을 전전했는데, 대한제국 시기인 1903년 황해도 배천군 부군수 자리에서 파직된 후에는 다시 농민이 되어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이보익과 결혼하여 김일성의 아버지인 장남 김형직 등 3남 3녀를 낳았다. 일찍 부모를 잃은 김일성을 양육하였다고 전해진다.
1945년 손자가 소련군을 앞세우고 돌아온 뒤로는 대동군 태수를 지냈지만 1년 만인 1946년에 사임했고 이후로 손자가 내각수상에 선출되어 본격적으로 국가원수 자리에 오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농업성 예하 고급특별고문역보좌관이라는 명예직을 맡았다가 1년만인 1949년에 은퇴하고 여생을 보내다가 1955년에 세상을 떴다.
3. 여담
당시 노인으로서는 장수하여 84세의 고령으로 사망했다. 비슷한 시기를 산 이승만과 함태영 정도는 아니더라도 당시로써는 단명했다고 할수없는 김구가 74세, 여운형이 61세까지 산것을 감안하면 오래 살다간 셈이었다, '''자신의 손자가 씻을 수 없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저지르고 그 책임을 남로당에게 돌려 숙청하는 꼬라지까지 다 지켜보고 간 것이다.''' 사실 관료로써 재능이 뛰어난 인물은 아니었고 이 때문에 농사지어 겨우 먹고사는 처지가 되었다가 말년이 되어서야 손자의 덕을 봐서 드디어 자리를 얻었지만 이미 북한정부가 수립될때즈음이면 나이가 들었던 탓에 은퇴한 인물이라 김일성과 그 형제를 기른것을 빼면 그리 특출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북한에서 우상화를 위하여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면서까지 우상화 되고 있다.
농업 간부 재교육을 위한 김보현대학은 1994년 그의 이름을 따서 개칭한 명칭이며, 만경대의 묘지에는 그의 반신상이 세워져 있다.
김일성에게는 할아버지이지만 1912년 생인 김일성보다 5살 연하로 1917년 생인 박정희의 아버지인 박성빈과 1871년 생 동갑내기이다. 박성빈 쪽이 박정희를 무려 46살에 낳았기 때문이다. 물론, 김보현과 김일성 사이에 들어가는 김형직은 1894년 생으로 박성빈의 차남 박동희(1895~1967)와는 불과 1살 차이밖에 안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