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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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김일성의 아버지이다.'''
집안은 할아버지 김응우 이래로 지주 이평택(李平澤) 집안의 묘지기였으며, 조만식의 숭실학교 후배이기도 하다.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났다. 숭실학교를 중퇴하고 이런저런 교사일을 전전하다가 1917년 조선국민회에 참가했으며, 이듬해 2월 평안남도 일본제국 경찰에 의해 검거되어 형사소추를 받다가 그 해 출옥했다. 이후 1919년 5월에 만주로 건너갔다. 이후 그는 무면허로(...) 한의원을 운영하면서[4] 아편을 취급하여 큰 돈을 벌었고 남만주의 독립운동 단체인 정의부 산하단체인 백산무사단의 회원으로 있었다. 관련 기사. 1925년에는 지린성으로 옮겨 활동하였다.
'''참고로 그는 엄청난 반공주의자였다.''' 그가 만주에 있을 무렵 남만주에선 공산주의 운동이 일어났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공산당들도 자신들과 사상이 다르면 반동몰이를 하여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핍박하며 살해하고 다녔는데 그런 행태를 여러 번 봐왔던 김형직은 성격이 원래 깐깐하고 강직하기도 해서 공산주의자를 상당히 미워하였다. 실제로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약도 팔지 않고 치료조차 해주지 않았을 정도라 한다.# 이런 반공 성향으로 인해 공산당에게 원한을 사 여러 번 테러를 당하기도 했고 결국 1926년 6월 5일 향년 31세로 '''공산주의 집단에게 피살당했다.'''
그의 아내 강반석 역시도 사회운동가로 활약한 바 있다. 북한의 선전선동이 많지만 조선국민회에 참가하고, 김형직이 공산주의자들한테 암살당한 이후, 강반석이 조선 내로 들어와 신간회에 '''민족주의자'''계열로 참가한 것도 확인된다고 한다.
아내(강반석)도 열렬한 독립운동가이면서 여성들에게 독립운동을 하자고 가르친 것도 모자라 힘든 가정에서도 열심히 남편을 도왔다.
'''반면에 그 아들은....'''[5]
2. 우상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김일성의 아버지가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살해됐다'''는 것이 아이러니. 다른 사람이었다면 반동분자에 적대계층으로 몰아 처형하거나 수용소에서 죽게 만들었을 텐데, 북한 김일성의 친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훗날 공산주의를 표방하며 수립된 북한 정권이 동네 이름까지 갈아치우며 우상화했다는 것.[6]
비록 공적이 다른 독립운동가들에게 밀리고 인지도도 부족해서 묻혀지긴 했지만, 김형직은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앞장섰고 이로 인한 수많은 고초를 겪었다.
전술했듯이 북한에서는 김씨왕조 우상화 작업의 일환으로 평안북도 후창군을 그의 이름을 따 김형직군으로 개칭했다. 그의 며느리이자 손자 김정일의 어머니인 김정숙의 이름을 딴 김정숙군(옛 함경남도 삼수군 신파면 일대)과 그의 동생인 김형권의 이름을 딴 김형권군(옛 함경남도 풍산군)도 이와 마찬가지 케이스다.
3. 남북통일 후의 재평가?
남북통일 이후에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흔적을 모두 없앨 때 김형직도 영향을 받는 것 아니냐는 주장들이 있지만, 애초에 김형직은 북한 정권 수립 이전에 사망해서 후손들의 악행과 일절 연관이 없다. 다만, 독립운동을 했다지만 생전에 한 업적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어서 건국훈장을 줄 가능성 역시 낮다.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야 경애하는 대원수님의 아버지라는 이유로 백두혈통의 선조로서 추앙하지만 남한 주민들 입장에서는 김일성 애비라는 것 외엔 그냥 듣보잡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남북통일 이후에 북한 주민들은 환영할지 모르겠지만,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을 대한민국(남한) 국민들이 쉽사리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7][8] 반대로 그의 민족주의적, 반공주의적인 측면을 부각한다고 해도 아들인 김일성이 벌인 죄가 너무나 크고, 역으로 북한 주민들의 반감을 살 수도 있다.
4. 여담
두 사람을 맺어준 선교사 넬슨 벨은 세계적인 복음 설교가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장인이다.
- 자식을 잘못 둔 탓에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피임의 사례로 처절한 고인드립을 당하고 있다. 예시 1 예시 2
[1] 부군면 통폐합 이후 행정구역 기준으로는 대동군 지역이다.[2] 지금의 숭실중고등학교.[3] 아들은 공산주의자 독재자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부분이다.[4] 가짜 세브란스의과대학 졸업장을 걸어놓고 활동했다.[5] 그래도 김일성도 보천보 전투를 지휘했을 정도로 유명한 독립운동가였으나, 광복 이후 미소군정과 냉전의 영향으로 독립운동가들이 각각 좌익과 우익으로 나누어지고 있었으므로 당시 김일성의 이러한 좌우익 선택은 당연한 것이었다.[6] 이점은 김일성의 할아버지인 김보현도 마찬가지여서, 김보현 역시 대한제국 관료로 근무하며 사회주의와 먼 삶을 살았지만 우상화 되고 있다.[7] 당장 건국훈장을 서훈받은 강진석이 김일성의 외삼촌이란 것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하물며 김일성을 낳은 아버지를 기리다니...[8] 설령 준다 할지라도 그 후손이 서훈받은 훈장의 현물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다름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