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국제공항/역사
1. 개요
김포국제공항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는 문서.
2. 건설과 한국전쟁
1939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 비행 훈련장으로 개장한 것이 김포공항의 시초다.[1]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케이조 신 공항 (京城新飛行場, Keijo New Airport[2] ) 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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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김포비행장에 주기되어 폐기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프랭크와 오스카 전투기들.
해방 이후에는 미군의 비행장으로 쓰였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북한 공군이 전투기를 앞세워 이곳을 공격해 왔고, 급기야 C-54 1기가 지상 주기중 파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 이후 미 공군은 급히 항공기들을 수원 비행장으로 이동시켰다.[3] 이후 미군은 이 비행장을 버리고 철수했고, 서울이 함락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김포공항도 점령된다. 이후 잠시 북한 공군이 비행장으로 이용하다가, 인천 상륙작전이 게시되고 서울이 재탈환되자 김포 공항도 다시 국군과 유엔군의 손에 넘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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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이 김포공항에 버리고 간 IL-10 공격기.
이후 1.4 후퇴로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빼앗겼고, 김포 공항은 다시한번 북한군과 중국 인민지원군의 손에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의 주도로 재반격이 펼쳐저 김포 공항은 재탈환되었다.
참고로 국군과 북한군, 미군만 김포공항을 이용한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호주 공군의 미티어 편대가 이곳에 주둔했었다.
3. 서울의 관문이 되다
1958년 여의도공항의 국제선 기능을 김포공항으로 옮겨 대한민국 대표 국제공항으로서의 기능을 시작하게 되었다. 1970년에는 북한 추종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당해서 북한으로 가던 한 일본 항공기를 이 공항으로 끌어들이고 항공 역사에 기록될 역대급 페이크로 무고한 인질들을 죄다 구출해낸 바 있다.[4] 1971년에 국내선 청사(현 한국공항공사 본사)를 증축하고 1988년에는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신활주로 부설 및 북동쪽에 국제선 신터미널을 준공해서 기존 국제선 터미널을 제1터미널(현 국내선청사)로 명명한 뒤 외국 항공사 전용 터미널로 바꾸고, 제2터미널(현 국제선청사)은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전용 터미널이 되는 등[5] 시설면에서 확장을 거듭한다.
현재는 잊혀졌지만 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의 아픔이 있기도 했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를 참조. 이 테러를 계기로 국내 국제공항의 보안 검색이 대폭 강화되어, 김포국제공항과 제주국제공항, 김해국제공항에서 외곽 검문검색제도가 도입되기에 이른다. 외곽 검문검색제도의 도입으로 공항 진입 차량의 검문 검색이 한층 강화되었을 뿐 아니라, 공항 청사 출입구에서부터 보안 검색대를 설치하여 항공편 탑승객 외에도 탑승객을 배웅하러 온 일반 방문객들을 비롯한 '''공항 청사에 들어가는 사람들 모두'''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야만 했던 적이 있었다.[6] 1992년 1월부터 청사 출입구 보안검색을 단계적 폐지하여 오늘날처럼 자유로워졌다. 그래도 경찰특공대가 2인 1조로 경비를 서고 있는 곳으로 장갑차도 간간히 놀러오는(...) 셈. 김해국제공항 등 다른 공항에서도 일반적으로 경찰특공대가 경비를 서지만, 민군 겸용 공항이라는 특성상 한 번씩 공항 청사에서 대테러 훈련이 이루어진다.[7]
1980년대 후반에 들어 외국인들의 한국 입국 증가와 함께 해외여행 자유화에 따라 해외여행객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김포공항은 늘어나는 항공 수요를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도달하게 된다. 당시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냐면 군사 및 귀빈용 공항이던 서울공항의 민간 개방 또한 검토할 정도였다. 거기다 인근 거주지역으로 인해 공항 운영시간의 제한(커퓨 타임) 및 확장이 불가능한 점 등의 한계에 따라 결국 1992년 인천의 영종도 및 용유도 사이를 매립한 부지에 신 국제공항인 인천국제공항을 착공하기에 이른다.
이때부터 시설 보수에 매우 인색해서 1990년대 후반에는 명색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항인데도 불구하고 비가 새는(...) 등 시설 노후화로 한 차례 언론에 대차게 까인 적이 있었다.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하기 직전인 1990년대 후반에는 이미 포화 상태를 한참 넘긴 수준이라 러시아워가 되면 지연 출발은 기본에 마치 교통 체증 마냥 비행기가 줄줄이 서서 대기하면서 1분 간격으로 이륙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착륙까지 치면 그야말로 아비규환(...).
4. 국제선의 소멸과 재취항
2001년 3월 29일에 인천국제공항이 개항되면서 국제선 기능을 모두 인천공항에 넘겨 주고 한동안 국내선 전용 공항으로 운영되었다.
인천공항이 개항하기 전날인 2001년 3월 28일 21시 10분에 호놀룰루발 노스웨스트 항공 009편의 착륙, 21시 50분에 타슈켄트행 우즈베키스탄항공 514편의 이륙을 끝으로 김포공항은 '국제선' 꼬리표를 떼었다.
국내선 청사를 기존의 국제선 1 청사로 이관, 기존 국내선 청사는 이마트가 입점, 기존 국제선 2 청사는 스카이시티라는 이름으로 개편되었다. 국제선 2 청사는 스카이시티로 리모델링 하면서 어차피 건물 좀 뜯어내고 손대야 하니 겸사 겸사 영화 총격전 및 충돌 장면 촬영을 허가한 적도 있다. 해당 영화는 2003년 개봉한 김석훈, 배두나 주연의 영화 튜브로, 이 영화 첫 장면에서 김포공항에서의 총격전이 나오는데, 그야말로 총격전으로 유리창이 다 깨지고 아예 차량이 공항 출국장 내로 진입하기까지 하여 출입구도 작살이 나는 등 김포공항 제2 청사가 쑥대밭이 된다.
이렇게 인천국제공항의 개항 이후 김포공항은 일본의 나리타 국제공항 - 하네다 공항 관계처럼 국내선 전용이 되었다. 그런데 정작 국제선을 죄다 빼고 나니 전체적으로 활주로가 그야말로 텅 비었고(...) 운항 가능 용량에 비해 취항지 수가 적은 건 곧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이에 김포국제공항의 운영 기관인 한국공항공사 측이 건설교통부와의 협의 끝에 하네다 공항과의 셔틀형 국제선을 2003년에 취항시키면서 국제선 기능이 부활하여 다시 김포'''국제'''공항으로 회귀한다.[8]
김포-하네다 항공편은 2002년에는 기간 한정 차터, 2003~2010년은 정기편에 한없이 가까운 '정기차터편'이었다가 하네다공항 D활주로 사용을 개시한 2010년 10월 31일부로 정기편으로 공식 승격되었다. 공식 승격이후 김포-하네다 슬롯은 한국 항공사 주간 일 6왕복, 일본 항공사 주간 일 6왕복으로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일본항공, 전일본공수가 각각 3왕복씩 배정받아 운행중이다. 아시아나항공의 김포-하네다 편명은 차터로 운행을 시작했다는 점 때문에 정기편으로 승격한지 한참 지난 2018년 현재도 4자리 편명을 사용한다. 대한항공은 2018년 동계스케줄부터 3자리 편명으로 바꿨다.
이후 국제선이 차츰 확충되어 2007년에는 중국 상하이(훙차오), 2008년에는 일본 오사카(간사이), 2010년에는 일본 나고야, 2011년에 중국 베이징, 2012년에 대만 타이베이(쑹산) 노선을 취항시키면서 말 그대로 동아시아 셔틀 노선을 전부 갖추며 수도권 제 2의 국제공항이 되었다.
김포공항은 도심 접근성에서 인천국제공항보다 상당히 유리하며, 약 1달러만 내면 '''20~40분''' 내로 갈 수 있는 장점[9] 을 살릴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 볼 때 김포국제공항이 노리는 것은 '''아시아 비즈니스 셔틀 공항'''인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 참조.
항공업계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홍콩, 광저우, 방콕 등 아시아 주요 도시에서 김포 노선을 열어달라고 로비를 한다는 카더라성 이야기가 꽤 들린다. 2017년 즈음 국제선 터미널 증축을 하면서 이 이야기가 다시 나왔는데, 이 당시 인천국제공항공사가 게거품을 물고 결사 반대하면서 단순히 카더라성 이야기가 아니게 된 상황.
하네다 공항 육성의 직접적 수혜자인 일본항공과 전일본공수는 일본에서 나리타 국제공항의 위상이 나날이 추락하고 하네다 공항을 다시 밀어주는 모양새를 보이자, 김포발 하네다 경유 유럽/미주 노선에 주목하고 있다. 인천-나리타 노선을 축소하고 김포-하네다를 집중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서울-도쿄간 비즈니스 수요도 있겠지만 김포발 하네다 경유의 환승 장사를 노린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김포발 하네다 경유 유럽/미주노선 항공권 예약이 가능하다.[10]
그 외에도 북한의 고려항공 전세기 역시 김포공항에 착륙한 적도 있었고, 중장기적으로는 홍콩 등 일부 신규 노선을 발굴할 계획 역시 있다.
[1] 김포공항 전망대의 안내문에 따르면 가미카제 자살공격대 훈련장으로 건설된 비행장이라 한다.[2] Keijo Airport 하고 혼동하지 말 것.[3] 한편 이 과정에서 한국전쟁의 첫 번째 공중전이 벌어졌는데, C-54 수송기를 호위하던 미 공군 소속 5기의 F-82 트윈 머스탱과 북한 공군 소속 5기의 La-9 전투기가 맞붙은 것이다. 이윽고 치열한 공중전이 벌어졌고, 전투 끝에 La-9 세 기가 격추당하고 북한 공군이 물러나면서 첫 번째 공중전은 막을 내렸다. 이후 같은 날 저녁에서는 미 공군 소속 F-80 전투기가 북한 공군의 IL-10 공격기 4기를 손실없이 격추시키는 대전과를 올렸고, 이는 한국 전쟁에서 제트 전투기에 의해 기록된 첫 번째 격추 전과로 남았다.[4] 단, 국토교통성 장관은 원래 인질과 트레이드되어 북한에 끌려갔다가 얼마 안 가서 JL351편과 같이 돌아왔다.[5] 제2터미널 개항 당시에는 아시아나항공이 취항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대한항공의 전용 터미널로 쓰였다.[6]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공항에서는 아직도 입구에서 보안 검색을 실시하고 있다.[7] 여담으로 일본의 나리타 국제공항도 최근까지 검문검색을 시행한 적이 있었다. 2015년 3월에 마찬가지로 비효율성 이유로 폐지했는데, 휴전선에서 30km밖에 안 떨어진 한국에서도 1990년대 이후로 안 하는 검문을(...) 최근까지 한 이유가 물론 있긴 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을 참조.[8] 재미있게도 일본은 나리타 국제공항이 전투민족들에 의해 고자가 되면서 국내선 수요만으로도 포화 상태이던 하네다 공항의 국제선을 증편하게 된다. 김포공항과는 다른 이유로 국제선이 부활한 셈이다.[9] 지하철로는 수도권 전철 5호선, 인천국제공항철도, 서울 지하철 9호선과 김포 도시철도를 예시로 들 수 있겠다.[10] 일본항공은 하네다 경유 김포 - 유럽발 항공권의 스케줄을 보면 타 외국계 항공사보다 환승 스케줄이 훨씬 좋다. 하네다 공항에서의 대기 시간은 1시간 20분 미만으로 환승 수속 시간을 제외하면 공항 대기 시간은 20~30분밖에 안 된다. 중국국제항공이나 중국남방항공 역시 김포공항 - 베이징 수도 국제공항 연결편을 이용한 서우두 발착 환승 장사에 열심이다. 그리고 ANA가 인천노선에 A320을 투입하는 등 규모에 어울리지 않는 운항을 하다 단항한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항공도 2018년을 기점으로 인천-나리타 노선을 단항하였다. JAL이 한국행 여러노선을 단항하며 꾸준히 김해 - 나리타 노선을 유지하고 김포 - 하네다에 꾸준히 대형 광동체 항공기만 투입해 온 것으로 보아 인천 - 나리타 노선보다 훨씬 수익성이 좋은 노선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