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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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국민 엄마.''' 고령의 나이에도 특유의 사랑스러움과 애잔하면서도 폭발적인 연기력으로 전 세대에 걸친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1941년 경성부에서 태어나 1960년 이화여자대학교에 입학했지만 1961년 결혼하면서 학교를 중퇴했다.[3] 전원일기 덕택에 '한국의 어머니' 상으로 불리고 있으며, 거기에 1969년 개구리 남편 출연 이후로는 수십 년 동안 최불암과 부부로 출연한 작품이 많기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최불암과 부부 기믹으로 엮인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느릿한 말투가 특징이다.
그 덕택에 최불암 시리즈에서 최불암과 엮이는 일이 많다. 한창 최불암 시리즈가 유행할 무렵에 진짜 김혜자와 최불암이 부부인 줄 알았다는 국딩들도 많았던 것 같다.[4] 사실 당대의 국딩들만 오해한 것은 아니고 아줌마나 할머니들도 많이 한 오해이기도 하다. 부부로 같이 출연한 것이 30년은 족히 되니까 실제 최불암의 부인은 탤런트 김민자다. 웃기게도 전부 자로 끝나서 그런지 김민자도 김혜자와 친자매라는 소문이 돌았다. 정작 둘은 남남인데도 말이다.
그녀가 지금까지 출연한 광고는 대부분 CJ제일제당 계열사 관련 광고다. 한창 제일제당 광고에 나올 당시 제일제당은 김혜자를 단순한 CF 모델이 아닌 전무급으로 대우했으며, 김혜자도 20년 넘게 의리를 지켰다.
2. 커리어
1961년 KBS에서 뽑은 한국 최초 공채 탤런트 26명 중 1명으로 데뷔했다. 하지만 데뷔 직후 졸업 연수 작품을 찍은 직후 스스로의 연기력에 실망한 후 배우를 그만뒀다. 이와 관련해 김혜자는 배우가 되고자 하는 열망만 컸지 연기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해 도망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한 가정의 어머니로 살던 도중 27세의 나이에 다시 연기에 대한 갈망을 느꼈고, 3년 간 연극 무대서 ‘연극계 신데렐라’로 살아왔다. 이후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1969년 MBC가 개국하면서 스카웃되어 본격적인 TV 연기 활동을 이어갔다. 그래서 20대에는 TV 출연작이 많지 않다. 이후 MBC 드라마 '''개구리 남편''', '''강변살자''', '''학부인''', '''무지개''', '''신부일기''', '''여고동창생''', '''후회합니다''', '''당신''' 등의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MBC의 간판 스타이자 연기파 배우로 이름을 알렸고 다수의 최우수 연기자상을 수상하면서 톱배우의 반열에 올랐다.
1974년 MBC 제1회 탤런트 연기상에서 김혜자는 최불암과 나란히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였으며 1975년 출연한 '''신부일기'''로 제3회 대한민국 방송상 시상식에서 TV연기상과 제10회 방송윤리위원회상 시상식에서 TV드라마 부문 연기상을 수상했다. 이어 1977년 '''당신'''으로 1978년 제14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자상을, 이듬해 '''행복을 팝니다'''로 1979년 제1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차지하며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1975년부터 2002년까지 CJ제일제당 전속 모델로 27년동안 활동한 이력은 '''전원일기''' 출연과 더불어 그녀가 ‘국민 엄마’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한데 일조했다. 당시 제일제당의 대표 브랜드였던 다시다 광고 속에서 외쳤던 “그래 이맛이야”는 지금도 회자되는 그녀의 대표 유행어이다.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22년간 방영된 MBC '''전원일기''' 속 어머니 역으로의 출연을 계기로 ‘한국의 어머니’, ‘국민엄마’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된 최초의 여배우가 되었다. 그녀가 이 작품에 출연하는 중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많이 선보였지만 그녀의 이미지가 ‘인자한 한국형 엄마’로 고정되는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으니 그녀에겐 대표작임과 동시에 족쇄와 같은 드라마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81년에는 영화로 진출하여 스크린 데뷔작인 김수용 감독의 '''만추'''로 1983년 제2회 마닐라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1988년 방영한 김수현 극본의 드라마 '''모래성#s-3.1'''에서는 남편의 외도를 용서하지 못하고 이혼을 선언하는 중년의 중산층 주부 '현주' 역으로 열연을 펼쳐 드라마가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었고, 공채 데뷔 최초로 방송사 연기대상(MBC)을 거머쥐었다. 1989년에는 '''겨울안개'''에서 남편의 외도로 인한 배신과 자궁암 판정으로 시한부가 되어 죽음을 기다리는 여인 '명애' 역으로 다시 한 번 찬사를 받으며 백상예술대상 TV 부문의 대상을 두 번째 수상한다('''모래성#s-3.1'''과 공동). 이 시기를 김혜자의 연기이력에서 전성기로 볼 수 있으며 YouTube 등에서 찾아지는 편집영상으로도 그 엄청난 연기력을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다.
1990년대에 들어 황인뢰 감독 연출, 김희애, 하희라와 공연한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출연해 여전히 건재함을 증명하고, 김수현의 극본으로 1991-1992년 방영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는 가부장적인 남편 옆에서 기죽어 사는 그 시대의 엄마이자 아내 '순자' 역으로 출연하여 역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드라마가 신드롬을 일으키며 또 한 번의 연기대상(MBC)을 수상하였다. 1993년에는 고현정, 고소영 등과 함께 '''엄마의 바다'''(MBC)에 출연하여 인기를 이어갔고, 94년에는 KBS에서 제작한 24부작 대하드라마 '인간의 땅'에서 농장 주인으로 출연한 토니 커티스[5] 와 공연하기도 했다. 할리우드 스타가 한국의 드라마에 출연한 역사적인 사건이었지만 아쉽게도 이 드라마가 쫄딱 망하는 바람에 이 놀라운 캐스팅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심지어 IMDB의 토니 커티스 필모그래피에도 이 드라마 출연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1995년에는 신은경과 함께 '''女'''라는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여기서 그 어떤 방법으로도 자식을 가질 수 없어 유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민숙 역을 맡았는데, 비록 시청률은 높지 않았으나 자식에 대한 집착과 사랑이 뒤섞인 복잡한 캐릭터를 뛰어난 연기력으로 소화해냈고, 이 당시의 열연이 봉준호 감독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이후 그를 주연으로 한 영화를 생각하게 된 계기를 낳았다고 한다.
1999년 MBC 드라마 '''장미와 콩나물'''에서 보수적인 남편 옆에서 고통받고, 네 아들들과 그 며느리와의 사이에서도 갈등을 빚는 아내이자 시어머니 '필녀' 역으로 안방극장에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안겨주며 20세기 마지막 연기대상(MBC)의 영예를 안았다. 특히 마지막엔 남편과 그 입장이 바뀌어 통쾌하게 복수를 하는 모습은 같은 갈등을 겪는 당시 여성들에게 사이다 같은 한 장면으로 남게 되었다. 2000년대 초 방송사들이 자연스럽게 탤런트 전속제를 풀기 전까지는 쭉 MBC 드라마에만 출연하였다. 이에 대해 그녀 스스로 ''한 때는 '김혜자를 보려면 MBC를 틀어야만 한다' 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방송사가 전속제를 푼 것이 조금은 섭섭했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MBC의 주말연속극 '''그대를 알고부터''', SBS와 MBC에서 각각 방영한 특집극 '''홍소장의 가을'''이나 '''봄날의 미소''' 등에 출연하였고, 주연이 아니면 거의 출연하지 않는 그녀가 예외적으로 MBC '''궁'''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2000년대에는 8, 90년대와 같이 굵직한 작품 활동이 많지 않았으나, 오랜만에 김수현의 작품인 2008년 KBS 주말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 타이틀롤로 출연하여 주부의 가출에 관한 화두와 함께 다시 한 번 진가를 인정받으며 그 해 연기대상(KBS)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2009년에는 1999년에 최진실과 공연한 '''마요네즈''' 이후 10년 만에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 출연하여 살인 누명을 쓴 아들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엄마 역으로 열연하여 국내뿐 아니라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11개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특히 2010년 LA 비평가 협회상의 여우주연상 수상은 아시아 배우로는 최초의 수상이었다. TV에서의 이미지가 영화에서도 고정되는 것이 염려되어 영화는 아주 과작으로 출연하는 그녀에게, 4년간의 꾸준한 구애를 보낸 봉준호의 끈기와 열정은 남다른 것이었고, 긴 세월 <전원일기> 이미지에 갇혀 조금은 흐려진 넓은 스펙트럼의 연기력이 모성 클리셰를 어둡게 비튼 이 작품에서 다시금 보여지며 대표작을 경신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김혜자가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시절의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느껴보지 못했던 세대들에게 <엄마가 뿔났다>와 <마더>는 당시 50년 가까운 경력과 60대 후반의 나이에도 주연의 자리에서 국민 배우로 대접받는 그녀의 힘을 증명한 중요한 작품이었다.
2011년에는 JTBC의 '''청담동 살아요'''의 '혜자' 역으로 그녀의 경력 최초 시트콤에 출연하여 초기 JTBC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었고, 2015년 KBS에서 방영한 김인영 작가의 '''착하지 않은 여자들'''로 오랜만에 지상파 나들이를 하였으며, 이듬 해인 2016년엔 노희경 작가의 tvN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기억을 점차 잃어가는 노년의 '희자' 역을 맡아 많은 울림을 안겼다. 2016년 이후 한동안 작품 활동이 없다가 2019년 JTBC '''눈이 부시게'''란 작품으로 복귀하였다. 당초 25살의 '혜자'가 시간을 잘못 돌려 70대 노인이 되었다는 설정으로 대부분의 시청자들에게 일반적인 판타지 소재의 드라마로 예상되었으나, 드라마 후반부 25살의 혜자는 없고 70대의 혜자가 치매에 걸려 모든 일을 상상하고 있었다는 게 밝혀지며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특히 자신의 치매 증세를 인지하게 되는 10회의 후반부 과거 자신의 모습(한지민)과 마주보는 바닷가의 장면과 병실에 누워 읊조리는 대사, 그리고 마지막회 엔딩의 나레이션은 김혜자란 배우가 왜 대한민국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 배우인지 알 수 있게 해준 장면이었다.
다음은 '''눈이 부시게''' 마지막회의 엔딩 나레이션이다.
위 대사는 이후 열린 55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수상소감으로 또 한 번 많은 울림을 남겼다.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했다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오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였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평소나 인터뷰 때 모습을 보면 소녀같으며 나긋나긋하고, 드라마에서는 만인의 어머니 역할을 많이 맡아왔지만 자식에 대한 집착으로 유괴를 감행하다 처절하게 응징받는 여자역을 맡았던 1995년작 MBC 드라마 '女(여)'나, 비뚤어진 모정에 폭주한 어머니의 모습을 연기한[6] 마더와 같은 작품에서의 특별한 역할에서도 모두 최고 수준의 연기를 보여주는 걸 보면 이 배우가 얼마나 훌륭한 지 알 수 있다. 김혜자의 연기는 단순히 배역을 소화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연기 그 자체에서 작품의 주제의식은 물론, 작품에 대한 해석의 여지를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면모가 있다. 7~80년대 중년 여배우의 배역이 가정주부에 국한되어 있던 한계만 아니었더라면 얼마든지 보다 광범위한 연기를 선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어느덧 80대의 나이지만 여타 원로배우들은 조연에 머무르고 있는 것과 달리 김혜자는 아직도 작품 선정 기준에서 본인이 '''주연'''이 아니면 캐스팅을 고사한다고 한다. 아예 조연 출연 제의는 소속사에서 바로 커트할 정도로, 80대임에도 그 연기력과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사실상 80대 여배우 중 나문희와 함께 원톱 주연을 소화할 수 있는 극소수의 여배우인 셈이다. 동갑의 나문희가 오랜세월 조, 단역연기로 버티다 지금도 살아남아 존재감을 뽐내는 생존자 유형이라면, 그녀는 경력의 시작부터 주연으로 출발하여 TV 아이콘이 되고, 영화와 연극 등 연기라는 카테고리로 할 수 있는 모든 작업에서 지금까지도 최고의 배우로 대접받았다. 그녀의 선배는 물론 후배 배우들마저 주연에서 조연으로 밀려나고 사라진 이 긴 세월동안 과작은 하였을지언정 끝까지 주연의 자리에서 대표작이라 할만한 작품을 꾸준히 경신해온 경력은 정말 희귀하다고 할 수 있다. 계속해서 매체가 다양해 지고 있는 만큼 이런 경력의 배우를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다시 찾아보기란 아주 아주 드문 일이 될 것이다. 2019년 현재에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배우 중 김혜자의 몇 안되는 선배 원로배우 김영옥은 "완벽한 배우로 인정한다. 어디에 내보여도 나무랄 데 없는 배우는 틀림없이 그녀이다. 김혜자씨가 저렇게 큰 역, 주류를 이루는 역할을 많이 하는 것이 부러웠다"고 언급했다.
방송사 연기대상 4회 수상(MBC 3회, KBS 1회)이고, 백상예술대상의 TV부문 대상 수상 또한 무려 4회이다. 이미지가 고정되어 있는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롱런하면서 엄청난 결과물도 여럿 만들었다는 데서 말이 필요 없는 본좌급. 드라마와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 무대에서도 뛰어난 연기를 여럿 보여주었는데 특히 '''셜리 발렌타인'''과 '''다우트'''는 레전설급으로 회자되고 있으며, 2013년에 선보인 모노드라마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 또한 그녀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3. 봉사활동
연예인들이 방송국 카메라와 함께 해외 봉사를 가고 그 내용을 영상으로 담는 방식의 자원봉사의 선구자격 인물[7] 로 처음 아프리카를 방문했을 때 죽어가는 아이들 앞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몸을 떨며 울기만 하는 모습이 방송되면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어 해외 긴급구호에 대한 인식을 재고시킨 주인공이다. 월드비전의 사랑의 빵이 바로 이때 김혜자가 만들어 낸 기적같은 자선의 결과물. 이후 이십여년 간 자신의 긴급구호활동을 정리한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출간해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머무르기도 했다. 절친인 김수미의 이야기로는, 실제 성품도 알려진 이미지와 똑같다고 한다. 쉬는 날에 쌀 가마니 등에 이고 고아원에 기부 활동을 하러 다녔다고.
4. 개인사
SBS에서 토요일 심야에 방영했던 토요미스테리 극장 40회에 어린 시절 이야기가 간략하게 나온 적이 있다. 일제강점기 및 6.25 전쟁 당시 가족이 몰살당할 위기에 처했지만, 큰언니의 기지로 몇 번이나 화를 넘겼다고 한다.
한국의 국민 어머니상으로 불리는 여배우지만 실제로는 요리실력이 영 좋지 않을 뿐더러[8] 남편도 김혜자가 집에서 살림을 하기보다 연기 활동에 매진할수 있도록 응원하는 편(당시로선 드문 남편상이 아닌가!)이어서[9] , 요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때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골초였다.[10] 흡연의 계기는 사실 심한 입덧 때문이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의외로 이러한 케이스들이 많다고 한다. 심지어 임신 전에는 담배 냄새가 역해서 싫어했던 여성이, 임신 후 갑자기 담배 냄새를 갈구하는 사례도 있다고. 임산부에게서 나타나는 이미증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서민 어머니 연기를 많이 했지만, 어릴 적 집의 거실만 200평이었고 매일같이 댄스파티가 열렸다고 하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 살림은커녕 자기 몸 돌보는 수준의 생활도 매우 서툴다고 한다. 남편도 별세하기 전까지 '당신 나 없이 어떻게 살아'라며 김혜자를 걱정할 정도였다고.[11]
현재 음식사업에 종사하는 아들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으로는, 자녀에게 따뜻하고, 아주 잘하지는 못해도 여느 어머니와 비슷한 수준으로 음식도 잘 만들어 주셨다고. 인터뷰 출처 판단은 독자의 몫.
'''김수미'''와는 아주 친한 사이라서, 김수미가 어려울 때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김수미가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워서 주변 사람들에게 여기저기서 몇백만원씩 급하게 빌리고 다녔는데, 김혜자가 그 소식을 듣고 찾아와서는 "얘, 넌 왜 나한테 돈 빌려 달라는 소리를 안 하니? 추접스럽게 몇백씩 꾸지 말고, 필요한 돈이 얼마나 되니?"라며 물어보더니"이거 내 '''전 재산'''이야. 나는 돈 쓸 일 없어. 다음 달에 아프리카에 가려고 했는데 아프리카가 여기 있네. 다 찾아서 해결해. 그리고 갚지 마. 혹시 돈이 넘쳐나면 그 때 주든지."라고 하며 정말로 '''전 재산을 빌려줬다'''고 한다. 승승장구 결국 김수미는 빚을 청산하고 나중에 김혜자에게 빌린 돈을 다 갚았다.
김혜자와 김수미 둘다 전형적인 어머니상을 잘 연기하지만, 방향은 각각 다르다. 김혜자는 전통적인 현모양처의 이미지라면, 김수미는 괄괄하고 입담이 걸쭉한 어머니의 모습이 강하다. 후술할 슈퍼스타 감사용에서의 모습이 예외. 물론 김혜자 역시 때로는 현모양처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서 색다른 이미지의 어머니상도 잘 연기한다.
일→집→교회→일→집→교회 생활을 무한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생활은 단순하다고... 독실한 신자로 알려져 있다. 나이차이 많이 나는 남편과 일찍 결혼했다. 가정주부로 평범한 생활을 할 수도 있었지만 연기가 너무 하고 싶었고 다행히 이해심 많은 남편이 배우로서의 생활을 허락해 주었다고, 남편의 든든한 지원으로 연기를 할 수 있게되어 고마운 마음에 촬영이 끝나거나 없을 때엔 한눈팔지 않고 집에만 있었다고 한다.
남편이 김혜자보다 11살 연상이었는데 상당한 애처가에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암이라는 병이 그렇듯 안타깝게도 원인도 모를 췌장암이 발병했고 1998년에 사망했다.
류시화와도 친분이 있는지, 함께 인도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때 김혜자는 매니저에게 맡기듯 류시화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따라다니기만 했는데 어느날부턴가 류시화가 앞으로의 일정과 상황, 어떻게 다녀야 하는지 대처방법 등을 몇번이고 반복해서 얘기를 하더란다. 김혜자는 '어차피 같이 다닐건데 왜 저렇게 설명을 하나' 하고 의아해 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됐는데 그러던 어느날 아침 류시화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알고보니 류시화는 혼자 다니던 여행에 익숙한 사람인데 일행이 돕지는 못할망정 '다 알아서 해주세요' 하는 식으로 따라다니기만 하니 답답해서 탈주를 한 것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말도 안통하는 타국에 홀로 남겨진 김혜자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지만 분노가 가라앉고 나니 류시화가 몇번이고 반복해서 얘기했던 숙소나 지명, 일정 등을 되새기며 어떻게든 혼자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나중에는 김혜자도 이해하고 다시 친하게 지낸 듯.
'쓰레기 같은 고민했구나'라는 짤방으로도 유명한데 사실은 스스로에게 한 말. 원본은 무한도전(2015년 12월 19일 459회)의 무한뉴스에서 인터뷰할 당시 모습이다. 해외 봉사활동을 갔을 때 '이곳의 상황에 비하면 서울에서 했던 고민 따위는 쓰레기 같은 것이었다'라고 표현한 것이다.당시 상황
5. '''김혜자 도시락'''
오랜 기간 식재료 관련 광고 모델을 해왔고, ''''그래 이 맛이야''''라는 다시다 광고의 멘트로 유명했기 때문에 요리와 관련된 이미지가 있으나, 선술했듯이 실제 요리 솜씨와는 영 거리가 멀다고 한다. 김혜자 본인도 도시락을 직접 만들면 아이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미안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
절친 김수미 씨의 말에 따르면 찌개도 제대로 못 끓이는 실력이라고. 김수미와 함께 한 인터뷰에서 김수미는 이를 언급하며 진짜 '한국의 어머니'는 자신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사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슈퍼스타 감사용 코멘터리에서 보면 감독과 이범수, 류승수 모두 김수미는 진정한 한국의 어머니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참고로 앞서 언급했듯이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김수미의 연기는 그동안 코메디에 가려진 김수미의 정극연기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작품.
이후 김혜자의 친아들은 진짜로 못하냐는 질문을 받자 완전 못하는 정도는 아니고 자신은 "어머니가 끓여준 쇠고기 미역국"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아무튼 방송에서의 이미지를 백분 살린 '''GS25'''의 ''''김혜자 도시락''''은 출시 이후 대박을 터뜨렸고, 어쩐지 값만 비싸고 맛없을 것 같은 편의점 도시락의 이미지를 일신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김혜자 도시락''''은 이미지 마케팅의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맛뿐 아니라 내용물도 튼실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상태라 2014년 8월 기준 과대포장, 부실한 내용물로 악명높은 창렬푸드로 이골이 난 사람들에게 '마더 혜레사'로 불리고 있는 상황. 더군다나 한솥 역시 2014년 리뉴얼 이후 서서히 창렬스러워지기 시작하는 판국이니 도시락 계에서는 거의 마지막 희망이다.[12] 이에 '창렬'의 반대말로 '혜자'가 떠오르는 등 인터넷에서의 반향은 폭발적. ''''김혜자 도시락'을 기점으로 편의점 도시락의 품질이 급격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편의점 도시락은 사실상 김혜자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정도다.
혹자는 한자로 은혜로울 혜(惠) 자에 너그러울 자(慈) 자를 써서, '''은혜롭고 자비롭다'''는 뜻으로 표기하기도.[13] 한편 김혜자 도시락으로 성공을 거둔 GS25는 홍석천 도시락 시리즈도 내놓았으며, 세븐일레븐에서는 젊은 남성 고객을 겨냥해 혜리(걸스데이)도시락을 내놓는 등 PB상품 마케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CU또한 백종원도시락을 출시를 하였다.
직접 보고 느껴보자. 김밥을 보면 밥이 거의 98%를 차지하는 그런 편의점 김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도시락을 납품하는 업체 사장이 김혜자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다만 친아들이 품질관리에 개입하고 있다고는 한다. 여기서 와전된 듯. 김혜자 본인도 단순히 이름을 빌려준 정도가 아니라 직접 제조공장을 찾아가기도하는 등 그 품질을 확인하고 계약을 했다고 한다.
이하 메뉴에 대해서는 편의점 도시락 항목을 참고할 것.
2017년 봄 들어서 초상권 계약이 만료했는지 김혜자 씨의 사진이 사라졌다.
6. 출연작
6.1. 드라마
6.2. 영화
6.3. 광고
6.4. 뮤직비디오
- 런치백 - 치킨은 살 안쪄요 살은 내가 쪄요 (2017)[17]
7. 수상경력
7.1. 이색적 수상 기록
- 백상예술대상 4회 TV 대상, 4회 TV 여자 최우수연기상에 빛나는 엄청난 대기록의 보유자이다.
- 백상에서 공교롭게도 해당 년대의 마지막 해인 ___9년에, 회차로는 _5회차 때 대상을 수상했다. 1979년 15회 시상식 때 드라마 '행복을 팝니다'로 대상, 1989년 25회 시상식 때 드라마 '모래성'과, '겨울 안개'로 대상, 2009년 45회 시상식 때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로 대상, 그리고 2019년 55회 시상식 때 드라마 '눈이 부시게'로 대상을 차지했다.
- 1999년 35회 시상식은 4월 초에 열렸는데, 98년에 출연한 작품이 없어 아쉽게도 이 때엔 대상을 수상하지 못했다.[26] 그런데 99년엔 MBC에서 장미와 콩나물로 그 해 연말에 연기대상을 받았는데, 만약 해당 작품이 한 해 먼저 방영되었다면 99년 백상부문의 경쟁이 그리 심하지 않아 TV부문 대상의 주인공도 김혜자일 수 있었다.
8. 여담
[1] 남편은 1998년 췌장암으로 사망했다.[2] 이화여대를 다녔던 경력 때문에 간혹 감리회 신자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지만 장로회 신자가 맞다. 남대문교회 권사로 재직 중이며, 모태신앙이다.[3] 과거 이화여대의 금혼 규정 때문에 중퇴한 것으로 보인다. 전두환의 부인 이순자도 결혼하면서 학교를 그만뒀다. 금혼 규정은 구한말 이화학당을 설립하고 운영한 미국인 여선교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신체적ㆍ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어린 소녀들을 강제 조혼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어린 여학생들이 부모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시집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선교사들이 설득도 하고, 심지어 방학을 없애기까지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금혼 규정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었고, 2003년 폐지되었다.[4] 일반인이던 김혜자 남편은 가끔씩 아내가 촬영하는 현장에 와서 지켜보곤 했다고 한다. 어느 날 최불암과 둘이 부부 역할을 맡아 이부자리에 같이 누워있는 연기를 하는데 갑자기 최불암이 김혜자에게 속삭이며 아무래도 (김혜자의) 남편이 온 것 같다며 슬쩍 거리를 두더라고 한다. 순간 뜨끔해서 자리를 박차고 남편을 찾아가니 이미 찬바람 일으키며 떠난 뒤였다고 한다. 아무리 연기라지만 자신의 아내가 외간 남자와 한자리에 있는 것이 못마땅했던 모양이다.[5]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의 그 배우 토니 커티스다. 제이미 리 커티스의 아버지.[6] 관광버스에서 아들의 잘못을 덮은 기쁨을 표현함과 더불어 그러한 일련의 행위들에 대한 무거운 죄책감을 잊기 위해 추는 춤은 범접할 수 없는 포스를 내뿜는다.[7] 다 쇼라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또 실제로 쇼를 하는 연예인들도 있지만, 연예인이 출연하는 자원 봉사 방송이 사회에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8] 김혜자와 친한 후배인 김수미의 말에 따르면, 손자들이 밥먹고 싶다고 조르면 즉석밥을 데워준다고...[9] 물론 남편도 사람인지라, 전원일기 촬영장에 찾아왔다가 최불암과 김혜자가 한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촬영장면을 보곤 기분이 상해서 자리를 떠난 적이 있다고 한다.[10] 현재는 금연한 상태. 어느 날 평소처럼 담배를 피웠더니 맛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져서 끄고 다시 피우고, 바꿔가며 피워봤지만 역시나 담배 맛이 예전같지 않게 느껴져서 끊게 되었다고...60대가 되어서야 금연하게 되었다고 한다.[11] 그녀가 주연으로 나왔던 MBC 드라마 엄마의 바다의 설정이 유복한 가정주부로 살다 남편의 사업실패와 사망으로 생계전선에 뛰어들어 온갖 풍상을 겪는 것인데 묘하다.[12] 현재는 백종원 도시락에 밀려서 양적 면에선 2위로 밀려났다. 질적 면에선 백종원 도시락과 공동 1위.[13] 프로필에서도 나와있듯이 실제로 김혜자의 이름에는 은혜로울 혜를 쓴다. 다만 자는 아들 자로, 이는 일본식 작명법의 영향.[14] 첫 KBS 출연작이자 대상 수상작[15] 현빈, 탕웨이 주연의 동명의 영화는 이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실은 1981년 작도 리메이크지만... 김혜자가 탕웨이와 같은 역할이다. 이 영화로 마닐라 국제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16] 전 모델 시미켄은 태생적인 논란 끝에 잘렸다. 계약이 끝나기도 했고.[17] 놀랍게도 김창열과 동반출연 했다.[18] 백상예술대상 첫 대상[19] MBC 첫 대상[20] 백상예술대상 두 번째 대상[21] MBC 두 번째 대상[22] MBC 세 번째 대상[23] KBS 첫 출연, 첫 대상[24] 백상예술대상 세 번째 대상[25] 백상예술대상 네 번째 대상[26] 남편이 췌장암에 걸린 뒤 불과 한달 반 만에 작고하였다. 그로 인해 작품 출연이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