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만주 관계
1. 개요
동유럽과 만주의 관계에 대해 다루는 문서이다.
2. 역사적 관계
2.1. 근대, 현대 전기
루스 차르국이 시베리아를 개척하고 청나라 국경을 탐사할 당시 탐사대의 주력은 카자크였다. 카자크 외에도 러시아 제국이 시베리아를 건너 외만주도 개척할 무렵,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활동을 하다가 정치적 이유로 유배, 정치적 수용소 등으로 강제이주되거나 경제적 이유로 땅을 개척하러 온 우크라이나인들도 적지는 않았다. 훗날 외만주에 정착한 우크라이나인들은 젤레나 우크라이나를 세워 러시아 내전 때 러시아 및 소련에 저항한 적도 있었지만 언급했듯이 적군에 패배하여 훗날 소련령 만주 또는 러시아 만주가 되었다. 우크라이나인만큼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벨라루스인들도 이주했으며, 러시아 혁명 및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연해주로 온 벨라루스인들도 있었다. 1926년 아무르 강 유역 일대와 연해주, 하바로프스크에도 소수의 벨라루스인들이 있었으며, 몇몇은 훗날 이 지역들에서 활동했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관련 단체들에 들어온 벨라루스인들도 있었다.
한 편 중국 만주에도 러시아인과 함께 동구권 이주민들이 간혹 넘어오기도 했었는데, 러시아 프리모리예에서 건너왔고 주로 러시아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은 중국에서 러시아인으로 분류되었다. 벨라루스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도 러시아 내전 시기, 러시아 적군에 패배하여 만주 및 연해주, 하바로프스크까지 도망치거나 중화민국에 의해 백계 러시아인으로 분류되어 중화민국에 살거나 만주를 더 넘어서 오세아니아, 캐나다와 미주까지 도망치기도 했었다. 일본이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웠을 때에도 이들은 러시아인들과 같이 백계 러시아인으로 분류되었다. 1931년 하얼빈에서는 약 2만명에서 3만명 정도의 우크라이나인들이 거주했었고 공동단체들도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벨라루스인들도 포함되었다. 만주에 있었던 반공 성향의 일부 우크라이나 독립 집단들은 백계 러시아인들처럼 일본과 동맹을 맺으려 했던 적도 있었다. 물론 일본이 패배했던 데다가, 전쟁이 끝나기 전부터 이미 일본은 백계 러시아인들을 생체실험 대상자로 여기기도 했던만큼 백계 러시아인, 우크라이나 독립세력, 벨라루스 독립세력 등도 이용만 하려했고 차별을 가했다.
2.2. 2차 세계대전 이후
만주, 외만주에 남은 벨라루스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은 만주의 원주민들과 접하면서 혼혈이 되었고, 문화적으로 일부는 소수민족에 동화된 부분도 있다. 참고로 소련 시기의 영향으로 러시아(유럽 러시아 지역 포함)와 우크라이나까지 소수로 온 퉁구스계 이주민들도 있다. 다만 우크라이나의 퉁구스계 이주민들은 극소수이다보니 우크라이나로 이주한 퉁구스족들은 이미 대부분 사회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동화되었거나 혼혈이 되었다.
2020년 하바롭스크 시위가 벌어지자 2020년 벨라루스 시위에도 영향을 주었고, 하바로프스크의 러시아인들과 벨라루스인들은 벨라루스 반정부 시위자들을 지지하고 있다#.
3. 관련 문서
- 러시아/외교, 중국/외교
- 극동 연방관구
- 만주
- 러시아 내전
- 만주사변
- 중일전쟁
- 퉁구스, 숙신, 만주족
- 러시아계 중국인, 중국계 러시아인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동아시아 국가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동유럽 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