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만주 관계

 




1. 개요
2. 퉁구스계와 몽골계의 대립
3. 그 외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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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과거 만주에서 서쪽에는 몽골의 조상인 산융동호, 동쪽에는 퉁구스 제족 중 하나였던 숙신읍루가 있었다. 동호는 흉노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일부는 선비산에 가서 선비족이 되었고, 선비족은 지역마다 모용부를 비롯한 여러 부족들로 나뉘어졌고, 몇몇 선비족들은 더 남하하여 오환산에 이주한 선비계는 오환족이 되었다. 오환은 훗날 선비족에 대다수 흡수되었고, 여기서 선비의 또다른 주요 부족들인 우문부와 단부, 이들에 갈라진 해족과 거란, 습족, 오라혼, 실위가 나타났다. 이 무렵 숙신은 여전히 원시 사회를 유지했고, 주변 국가들에 복속되었고, 시기마다 읍루, 물길, 말갈 등으로 불렸다.

2. 퉁구스계와 몽골계의 대립



2.1. 선비거란말갈(여진)


흉노가 망한 후 선비족들이 몽골 초원에서 활동하여 중가리아와 발하슈 호부터 만주 내륙과 요서, 요동까지 진출하여 패권을 잡았으며, 일부 숙신계 부족들도 이 때 선비족에게 잠시 복속되기도 했었다. 선비족 분열 이후 여러 부족 및 선비계 민족들이 나왔으며, 선비족들은 대다수 중원을 점령하여 중화 세계와 통합 및 동화되었을 때, 선비에서 갈라진 거란, 만주의 퉁구스족인 말갈은 남쪽으로는 고구려, 북쪽으로는 돌궐의 지배와 복속을 받았고, 수나라, 당나라 등 중국 고대 왕조에게 조공을 바쳤다. 7세기에는 당나라 동부 변방에서 거란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말갈은 일부를 제외하면 고구려 유민들과 합쳐 발해를 세웠고, 거란은 발해와도 친했고 왕래, 교류도 많이 했었으며 일부 거란족들도 발해인이 되기도 했었다.
10세기 무렵에는 칸이 된 야율아보기에 의해 거란이 통합되어 요나라를 세우고 강성해지자 중원을 침략하려 했고, 발해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발해는 말년 귀족들의 사치와 항락, 부패, 빈부격차와 신분 갈등, 고구려 유민계와 말갈계의 내분으로 혼란스러웠고 발해는 거란을 경계하였지만 동시에 거란을 얕보고 무시하기도 하는 등 두 나라들의 관계가 악화되어 거란이 발해를 침략했고, 발해는 거란의 침입을 어느 정도 막아내기도 했으나 부여성이 함락되고 최종 방어선이 뚫어져 수도였던 상경용천부가 함락되어 발해는 거란에 항복하여 발해인과 발해의 지배를 받던 말갈족, 훗날 여진족이 되는 일부 흑수말갈도 거란에 지배받게 되었다. 그러나 발해인과 여진족들은 자주 반란을 일으켜서 옛 부여의 만주평원(동북평원)과 동만주, 연해주와 아무르 강까지는 완전히 지배하진 못했고 간접지배에 그쳤다. 물론 늘 대립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서 거란은 남면제도로 중국 한족 다음으로 발해 유민들로부터 선진 기술과 문화를 받아들였고, 발해인들도 장군, 관리인으로 등용하기도 했었다. 또한 여진족들도 발해인처럼 다스리기도 했다. 하지만 거란은 동시에 여진족이 뭉치면 강한 세력으로 될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동시에 억압적으로 다스리기도 했었다. 발해인들에게도 무작정 호의만 주었던 건 아닌지라 이용만 하고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기도 했었다. 천조제 때는 조공을 무리하게 강요했고, 더 심하게 탄압을 하여 많은 여진족들은 거란에 불만을 품었고, 완안아골타를 중심으로 여진족들이 통합되어 금나라를 세워 거란에 대항했다. 거란에 반대했던 발해 유민들도 여진족과 힘을 합쳐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발해인들을 등용해 요나라와 한족, 발해인의 높은 문화와 기술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발해인들과도 갈등이 있었고, 금나라는 거란과 발해 유민들도 경계해 이들을 탄압하기도 했었으며, 통혼 정책을 장려해 거란족, 발해인들은 여진족과 혼혈이 되었다. 발해인들은 여진족들에 의해 중원으로 강제이주되어 여진족들과 같이 한화 및 여진족에 동화되어 거의 여진족에 흡수된다. 거란족들도 반은 여진에 동화되거나 흡수되기도 했지만 일부는 여전히 존재했다. 또한 금나라 뿐 아니라 몇몇 거란족을 비롯한 해족, 습족, 오라혼 등은 몽골을 건너 중가리아, 서몽골, 투르키스탄에 서요를 세웠다.

2.2. 여진만주족몽골


한 편 동호계의 지파였던 수렵채집민 실위는 여러 부족들로 갈라졌는데, 그 중 몽올실위는 훗날 아무르 강에서 몽골 고원으로 이주하여 수렵채집 대신 유목을 했으며, 요나라의 지배 때 맹고국이라 불렸고, 거란은 정복한 몽골 지역에 자치권을 주면서 간접 통치하되 동시에 간섭이 잘 없었고 심하게 탄압하지는 않았다. 요나라가 망한 후 금나라는 몽골에 철수했다. 그러나 몽골이 통합되면 강해져서 위협이 될 거라 여겨 몽골 부족들을 복속시켜 심한 간섭과 가혹한 탄압, 이간질을 부추겨 내분을 일으켜 몽골이 통합되지 못하게 하려했으나, 칭기즈 칸의 등장으로 카마그 몽골이 통합, 몽골 고원의 여러 민족들도 통합하여 금나라를 침입했다. 이 때 거란족들도 몽골을 도와준다.
중도를 함락시켜 만주는 사실상 금나라 밖에 떨어져 나간 월경지였고 이곳에서 거란인들의 부흥운동 및 여진족과 금나라 군사, 장수들은 호족이 되는 등 혼란스럽게 된다. 서역의 서요를 정복, 만주의 동요를 속국으로 삼고 후요를 멸망시킨 몽골은 서하를 멸망시킨 후 포선만노의 동하를 멸망시켰고, 거란족과 일부 여진족들의 도움으로 금나라도 멸망시켰다. 이후 거란은 1240년대에 일부 거란족만 제외하면 몽골에 흡수되었고 여진족은 몽골의 지배를 받게 된다. 끝까지 남은 여진인들은 만주에 여전히 있었고 원나라가 몽골로 달아난 이후 명의 지배를 받게 된다. 여진과 퉁구스 제족들은 몽골의 지배를 받은 영향으로 탄누 우량카이 등 다른 몽골계 민족들과 튀르크계 민족들과도 혼혈되었고, 문화적으로도 몽골의 영향을 받게 된다. 1616년 누루하치를 중심으로 여진족들은 다시 통합되었고, 후금을 세워 민족 이름도 "만주"로 바꾸었다. 여진족 외에 내몽골의 몽골족, 몽골계 민족들도 점령하여 복속했으며, 동맹을 맺으면서 만주족 황제가 동시에 몽골의 칸이 되기도 하는 등 반쯤 동군연합에 준하는 성격도 띄었다. 또한 팔기군도 형성해 처음에는 만주족만 구성되다가 훗날 몽골족과 그 외 민족들도 편입되어 24기로 늘어났다. 1636년에는 ""으로 바꾸고 주변 나라들을 제압하거나 정복하여 영토를 넓혔다. 단 몽골 전체가 청나라와 친했던 건 아니었다. 강희제는 반청이 강한 외몽골과 친청이었던 내몽골로 분리시켰으며, 건륭제 때는 청나라에 위협적인 오이라트계의 준가르까지 멸망시켜 청나라에 끝까지 항행한 준가르 부족들을 학살시키거나 추방시켰으며, 나중에는 일부 준가르 부족들을 살려주거나 받아들이기도 했다. 멀리 달아난 준가르 부족 및 오이라트계는 카스피해 서쪽까지 달아나서 칼미크인들이 된다. 준가리아와 몽골 서부는 물론 준가르가 지배했던 카자흐족과 타림분지의 위구르족까지 점령해 영역이 매우 커지게 된다.
그러나 건륭제 후기부터 인구 증가, 다민족들간의 갈등과 신분 갈등으로 내분이 나타났고, 서서히 약화되어 신장 북부인 중가리아, 외몽골과 내몽골, 만주도 잠시 러시아에게 잃기도 했었고, 연해주와 아무르 강 유역, 일리 지역의 절반 및 인근 지역들은 러시아의 영역이 된다.

3. 그 외


같이 있었던 시기도 있었던 만큼, 동시에 이웃나라/안 좋은 사이처럼 대립과 전쟁도 많았다. 이 점 때문에 만주족 계통 사람들과 몽골인 및 몽골계 민족 계통 사람들은 사이가 좋지 못하다. 대체역사이긴 하지만 만약 만주족 및 퉁구스 민족들, 그리고 거란의 후손으로 알려진 몽골계의 다우르족도 독립된 나라를 세웠다면 만주와 몽골은 사이가 나쁠 확률이 높다. 물론 청나라 때는 만몽연합 성격을 띄었지만 이는 내몽골의 몽골인들과 몽골계 제족들 정도에 불과했지, 외몽골과 신강 북부 중가리아에서는 차별과 경계의 대상이어서 청을 인정하지 않거나 침략자라고 봤다. 중가르가 청에게 보복우로 인한 학살들을 했던 것만 해도 알 수 있다.
한편 몽골은 거란 역사를 두고 몽골의 역사이기도 하다라고 주장하는데, 혈통과 언어적으로 몽골과 같은 몽골계에 속했기 때문이다. 만약 만주 또는 퉁구스 제족들이 자신들의 나라가 있었다면 몽골과도 이러한 갈등이 나왔을 수 있다. 다만, 거란의 근거지와 중심, 발원했던 곳이 만주의 일부이고, 중국화가 되기도 해서였는지 몽골사에서는 잠시만 나온다. 또한 몽골은 칭기즈 칸 이후의 역사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보니 그 이전인 선비, 거란 등은 언급해도 딱히 길게 언급하진 않는다. 사실 몽골계라는 공통점만 같을 뿐, 민족 정체성이 다른 것도 있을 것이다. 만주족과 다른 퉁구스 제족들도 혈통만 같지, 민족 정체성은 다르다고 여긴다. 그리고 지역별 부족들마다 다른 민족들과 접촉 및 혼혈되면서 다른 민족에 동화되거나 민족 정체성이 바뀐 경우도 많았다. 만주족이 '여진=만주'라고 언급했음에도 같다고 보기 힘든 이유도 이 때문이다.

4. 관련 문서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