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계 러시아인
1. 개요
조상이 중국에서 러시아로 건너온 러시아 국민을 가리키는 말이다. 넓은 의미로는 한족, 만주족, 몽골족, 위구르족을 가리지 않고 조상이 지금의 중국 땅에서 온 것을 기준으로 하지만, 대개는 좁은 의미인 한족계 러시아인만을 가리킨다.
2. 역사
코칸드 칸국은 청나라의 조공국이 되기 전에는 청나라의 서쪽 변방을 약탈하여 한족, 만주족, 몽골족을 포로로 끌고 가는 경우가 잦았다. 이때 끌려간 이들은 둥간족의 조상이 되었는데, 코칸드 칸국의 영토가 러시아 제국의 치하에 놓이게 되면서 이들 중 일부가 지금의 러시아 땅으로 이주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본격적으로 한족들의 러시아 이민이 시작된 것은 러시아 제국이 청나라로부터 연해주를 할양받아 본격적으로 청나라와 국경을 맞대게 되면서부터였다. 이러한 일을 계기로 청 황실은 러시아가 만주를 노릴 것을 염려한 나머지 봉금령을 해제하여 한족들이 만주에서 거주할 수 있게 하였는데, 이렇게 만주로 이주한 한족들의 일부는 아예 국경을 넘어 러시아로 이주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연해주에 살던 한족들은 스탈린이 시행한 대숙청에 의해 강제로 타지로 이주당하거나 일부는 굴라크로 끌려가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중화민국과 소련이 차례대로 세워진 후에는 공산주의 성향 한족들이 소련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국공내전에서 중국 공산당이 승리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후에는 공산주의 성향 한족들이 그냥 중국에 남았으나, 이후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민족과 사상을 가리지 않고 많은 중국인들이 고통받게 되면서부터는 공산주의 성향 한족들이 소련으로 이주하는 일이 다시 많아졌다.[1] 이 당시 소련이 중국에 비해 훨씬 잘 살던 시절인 만큼 러시아에 살던 화교들은 중국 본토에 살던 이들보다는 훨씬 풍족하게 살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소련 해체로 러시아 전체가 혼란에 빠진 뒤에는 중국계 러시아인들이 조상의 나라인 중국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으며 반대로 중국인들이 러시아로 이주하는 일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훗날 블라디미르 푸틴의 정책으로 러시아의 국력이 소련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회복된 후에는 러시아로 돌아가는 중국계 러시아인들과 새롭게 러시아로 이주하는 중국인들이 늘어났다. 시진핑이 각종 실책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면서 현재는 문화대혁명 때와 비슷하게 러시아로 정치적 망명을 하는 중국인들도 생겨나고 있다.
2020년 기준으로 중국계 러시아인은 러시아에 100만명 정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과 일본에서의 반중정서 때문에 러시아로 이민을 가는 중국인들도 적지 않다.
중국하고 인접한 하바롭스크에는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데 지역의 고급 농사 인력들을 중국인들이 다 차지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스킨헤드 같은 일부 반중 성향 러시아인들은 중국어 억양의 어눌한 러시아어[2] 로 중국인 흉내를 내며 중국계 러시아인들을 비하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중국 경제의 성장으로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러시아를 따라잡으면서[3] 러시아에서 중국인을 마냥 무시할 수 없게 되었고,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에 경제를 의존하고 있는 특성상 러시아로부터 많은 양의 자원을 수입해나가는 중국이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러시아가 유럽도 아니고 아시아도 아니고 뭐냐라는 식의 자조적인 농담이 나돌기도 한다.
3. 중국계 미국인과의 관계
미러관계를 배제하고 봐도 그다지 사이가 좋지는 않은 게, 이는 중국 본토에서 화남 지역과 화북 지역 간의 갈등이 일어나는 것의 연장선상에 가깝다. 중국계 미국인들의 조상이 대체로 화남 지역(특히 광동 지역) 출신인 반면, 중국계 러시아인들의 조상은 화북 지역(특히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북 3성과 신장 위구르 자치구) 출신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4] 종교적으로도 차이가 있는데, 중국계 미국인들이 기독교 중에서는 가톨릭이나 개신교 세가 강하고 불교 중에서는 정토교나 선종 세가 강한 반면, 중국계 러시아인들은 기독교 중에서는 정교회 세가 강하고 불교 중에서는 티베트 불교 세가 강한 편이다. 물론 둘 다 무종교인들도 적진 않다.[5]
물론 중국계 미국인들과 중국계 러시아인들 중에서도 조상이 문화대혁명을 피해 각각 미국과 소련으로 도망쳐온 경우라면 마오쩌둥을 비판하는 데 있어 한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다만 문화대혁명 당시 미국으로 도망친 중국인들이 대체로 반공 성향이 많았던 반면, 소련으로 도망친 중국인들은 공산주의 자체를 싫어하기보다 마오쩌둥 개인의 역량을 비판하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는 의견차를 보이기도 한다.
4. 러시아의 중국계 무슬림
4.1. 러시아의 둥간족
상술한 것처럼 코칸드 칸국이 청나라의 서쪽 변방을 침공하여 끌고 온 한족 포로들의 후손들이 둥간족이다. 이들은 대체로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많이 거주하지만, 중앙아시아가 러시아의 지배를 받은 역사가 있는 만큼 러시아에도 거주한다. 일반적인 중국계 러시아인들과 달리 자신들이 중국계 후손이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4.2. 러시아의 후이족
후이족이 러시아로 대거 이주한 것 자체는 1862년에 지금의 간쑤성과 산시성에서 일어난 회민 반란 진압을 피해 도망친 게 시작이었지만, 이 때 러시아로 이주한 후이족 대다수는 상술한 둥간족에 동화되었고 일부는 타타르인 등 러시아의 비중국계 무슬림 민족에 동화되었다. 러시아에서 후이족이 둥간족 등에 동화되지 않고 계속 정체성을 유지하게 된 것은 문화대혁명을 피해 소련으로 망명한 것이 본격적인 시작이다.
러시아의 중국계 무슬림 중 후이족 정체성을 유지하는 이들은 둥간족에 비하면 중국계로서의 정체성이 상대적으로 더 강한 편이다. 물론 이와 별개로 중국 공산당과의 악연 탓인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와는 선을 긋는 경우도 적지 않다.
4.3. 러시아의 중국계 타타르인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이주해온 타타르인이 중국 현지의 황인계 주민들과 통혼하여 황인화되면서 형성된 중국 타타르인이 이후 조상의 나라인 러시아로 돌아온 케이스다. 중국의 러시아 타타르인 혈통 이주민들은 위구르족, 카자흐족, 후이족 등 황인계 무슬림과 통혼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중국의 주류 민족이 한족이다 보니 한족과 통혼하기도 했다. 문화대혁명 때는 중국의 다른 무슬림 민족들처럼 소련으로 도망치기도 했으며, 시진핑 정권 이후 중국 정부의 무슬림 탄압이 다시 강해진 현재도 중국 타타르인이 러시아로 망명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5. 러시아의 만주족
중국에서 러시아로 이주한 만주족의 후손들이다. 2010년 인구조사 기준 공식적으로 15명이다.[6] 신해혁명 때 혁명군의 만주족 학살을 피해 만주로 도망친 만주족 중 일부가 아예 국경을 넘어 러시아 제국으로 도망치기도 했고, 이후 중화민국 정부의 지속적인 만주족 탄압을 피해 러시아 제국(러시아 혁명 전까지)이나 소련(러시아 혁명 이후)으로 망명하는 만주족도 존재했다. 문화대혁명 때는 자신들 편을 들어줬다가 이내 자신들을 새로운 불행에 빠뜨린 마오쩌둥 정권에 실망하여 소련으로 떠나는 만주족도 존재했다.
청나라 말기 이후로 만주족 대다수가 한족 문화에 거의 동화되었기 때문에, 현재 이들은 문화적으로 한족계 러시아인들과 큰 차이가 없는 편이다. 물론 만주족으로서의 정체성만큼은 아슬아슬하게나마 남아있어서, 전통문화와 관련된 행사에서 여성들이 청나라 만주족 여성의 복장(치파오)[7] 을 입는 등 한족계 러시아인들과의 차이점을 부각시키기도 한다.[8]
6. 러시아의 알바진인
나선정벌 당시 포로로 잡힌 루스 차르국 병사들 중 루스 차르국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청나라에 남은 이들이 한족들과 혼혈됨으로써 황인화되면서 형성된 민족인 알바진인이 훗날 조상의 나라인 러시아로 돌아온 케이스다. 알바진인 중 일부는 러시아 제국의 연해주 병합 이후 러시아 제국으로 이주하기도 했으며, 문화대혁명을 피해 소련으로 도망치기도 했다. 이들은 러시아 현지 백인들과의 통혼으로 다시 백인화된 경우도 적지 않다.
7. 타즈인
청나라 말기에 연해주로 이주한 한족들과 연해주 현지의 퉁구스계 주민들의 혼혈결합으로 생겨난 민족. 언어학적으로는 그냥 중국계 러시아인으로 분류되지만 생물학적으로는 퉁구스계로 분류되기도 한다. 사실 문화적으로도 일반적인 한족계 러시아인들보다는 퉁구스계에 더 가까운데, 퉁구스계 혈통 자체도 주로 나나이족과 우데게족 혈통이 많다 보니 만주족과도 차이가 있는 편이다. 그리고 현재는 언어학적으로도 그냥 중국계 러시아인이라고만 보기는 애매해졌는데, 타즈인의 언어인 타즈어가 만주어처럼 극소수 노인들만이 알고 있는 사실상의 사어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 타즈인 대다수는 러시아어를 모어로 쓰고 있다.
타즈인이라는 명칭은 원주민이라는 뜻의 중국어 '타찌'가 어원이며, 러시아 제국의 연해주 복속을 계기로 타즈인이라는 명칭이 본격적으로 자리잡았다.
8. 대만계 러시아인
대만인 혈통의 러시아인. 주로 조상이 국부천대 이후 중화민국 정부의 횡포를 피해 대만을 떠나 소련으로 이주해온 본성인(특히 공산주의 성향)인 경우가 많다. 일반적인 북중국계 러시아인들에 비해 존재감은 적다.
9. 홍콩계 러시아인
홍콩인 혈통의 러시아인. 냉전 시절 홍콩 내 공산주의자들은 공산국가로 망명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 중 중국 공산당을 지지하는 이들은 중국 본토로 망명하였고 소련을 지지하는 이들은 소련으로 망명하였으며 후자의 경우가 오늘날 홍콩계 러시아인 대다수의 조상이 되었다. 이들 중 일부는 홍콩 반환 이후 홍콩으로 돌아오기도 하였다.
10. 러시아의 동남아시아 화교
동남아시아 화교들이 다시 러시아로 이주한 케이스. 주로 냉전 시절 동남아시아 공산권(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화교들이 소련으로 이주해온 케이스다.[9] 물론 같은 시기에 동남아시아 비공산권 국가들(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필리핀)의 화교들 중 모종의 이유로 공산주의자가 된 이들이 소련으로 망명하기도 했다. 보통의 중국계 러시아인들과 달리 남방 한족 혈통이 많다 보니 보통의 중국계 러시아인들과는 다른 정체성을 가졌다.
11. 중국계 러시아인 목록
11.1. 실존
- 럭키 리(Lucky Lee) : 러시아 스트립 클럽 협회 회장
- 유준주(刘兆彭) : 19세기 말 러시아 제국에서 초빙한 차 재배 전문가. 오늘날 조지아 서부에서 고품질의 차 재배 생산이 이루어지도록 기여했다.
- 페트르 얀
12. 관련 문서
[1] 이 때 공산주의 자체에 완전히 실망해버린 한족들은 국공내전 종전 후 자본주의 성향 한족들이 많이 망명했던 대만·홍콩·마카오·싱가포르로 이주하여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온전히 유지하기도 했고 아예 자본주의 진영의 최강국인 미국으로 이주하기도 했다.[2] 다른 나라로 치면 ~해체, 협화어, 칭글리시와 비슷한 포지션이다.[3] 물론 정치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중국이 러시아보다도 더욱 퇴보한 상태다. 자세한 건 시진핑/비판과 논란 문서 참고.[4] 물론 반대로 중국계 미국인이면서 북방 한족 혈통인 경우와 중국계 러시아인이면서 남방 한족 혈통인 경우도 소수나마 존재한다. 전자의 경우 중국계 한국인, 중국계 일본인, 중국계 러시아인이 다시 미국으로 이주한 경우가 많으며 후자는 후술할 내용처럼 동남아시아 구 공산권 지역(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의 화교(이쪽도 중국계 미국인 대다수처럼 남방 한족 혈통이 많음)가 냉전 시절에 다시 소련으로 이주한 경우가 많다.[5] 중국계 미국인의 51%가 무종교인이라는 조사결과가 있다.[6] 현대 만주족이 국적을 막론하고 자신이 만주족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는 걸 감안하면, 실제로는 더 많을 수도 있다. 현재는 러시아의 영토인 연해주가 지리적 의미에서 만주의 일부로 간주되고, 현재까지도 연해주에 동북 3성에서 건너온 중국인들의 후손이 많이 거주하는데 동북 3성 한족들은 만주족 등 퉁구스계 민족들과의 혼혈로 퉁구스 제민족의 피가 흐르니 말이다.[7] 한족 여성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전통문화와 관련된 행사에서 한푸 계통의 옷을 입는다.[8] 이는 중국과 대만의 만주족도 마찬가지이긴 하다.[9] 특히 러시아의 캄보디아 화교 후손들은 조상이 킬링필드를 피해 소련으로 망명해온 케이스가 많다. 같은 공산국가라도 킬링필드 당시의 소련은 민주 캄푸치아와는 비교 자체가 실례일 만큼 평화롭고 안정된 나라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