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스토니아 관계
1. 개요
러시아와 에스토니아의 관계.
에스토니아는 러시아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 교류의 규모가 큰 나라이다. 하지만 에스토니아는 국민들의 반소련, 반러시아 감정이 심한 나라이다.
에스토니아에서는 소련과 싸우기 위해서라지만 나치 독일의 SS에서 복무한 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을 정도이다. 이에 러시아 네티즌들은 에스토니아를 ESStonia라고 깐다. 한편 에스토니아의 유대인들은 일반 에스토니아인들과 달리 홀로코스트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반독감정 또한 강하다 보니 나치 독일과 소련의 에스토니아 침략과 관련하여 일반 에스토니아인들 및 러시아인들과 삼파전을 벌이기도 한다.
2. 역사적 관계
2.1. 중세
러시아인들의 에스토니아 정착 역사를 결코 짧지 않은 편인데, 중세 키예프 공국에서 오늘날의 타르투에 해당하는 장소에 유리예프라는 도시를 건설하였다. 이후 독일에서 리보니아 검의 형제기사단이 에스토니아를 침공하고 가톨릭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정교회를 믿는 루스인들은 에스토니아 동부로 밀려났다. 독일인들과 덴마크인들은 에스토니아인 농노들을 명목상으로는 기독교로 개종시켰으나 중세 당시 에스토니아인들은 문맹이라 성경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고 농노로 규정되어 교육은 커녕 막대한 봉건적 의무를 지고 심각한 차별을 받았기 때문에, 명목상으로만 기독교를 믿되 실질적으로는 토속 신앙을 유지하는 편이었다. 이런 상황은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일부 에스토니아계 부족들(세투인 등등)도 다를 바 없어서 이들 역시 명목상으로만 정교회에 속하고 실질적으로는 심지어 서기 18, 19세기까지 토속 신앙을 촌락 생활을 중심으로 삼았었다.
2.2. 근세
근세 스웨덴이 오늘날 에스토니아 북부에 해당하는 에스토니아 공국을 점령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스웨덴은 농노제가 없거나 약했던 나라로 당시 에스토니아인들은 스웨덴의 통치를 선정으로 여기며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이러한 소문이 퍼지며 , 17세기 러시아 정교회에서 탄압받던 고의식파 신자 수천여 명이 러시아 제국의 박해를 피해 페이푸스 호수 넘어 당시 스웨덴 영토였던 에스토니아 일대에 정착했다. 스웨덴 통치 시기의 기억은 시대가 지나 계속 이어지면서 에스토니아인들에게 반독일 감정 뿐만 아니라 반러 감정을 부추기는 계기가 되었다.
2.3. 근대
대북방전쟁 과정에서 러시아는 스웨덴을 격파하고 에스토니아를 점령한다. 당시 에스토니아 사회는 지주와 상공업자나 독일인. 농노는 에스토니아인으로 사용 언어/민족별로 철저히 계급이 분화되어 있었으며 에스토니아인들이 사회 상류층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독일어를 배우고 독일인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러시아 제국에서는 에스토니아 점령 초창기에는 에스토니아 독일인들의 사회 기득권을 그대로 인정해주었지만, 에스토니아인 농민들의 권익을 조금씩 향상시키기 시작했고 상당수의 독일인들은 더 나은 사업 기회를 찾아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다른 도시들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독일인들이 이주하고 남은 자리에는 러시아인 관료, 군인들이 유입되었다.
2.4. 전간기
에스토니아는 1차대전 이후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으로 독립하였다. 에스토니아에 거주하던 러시아인 상당수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소련으로 교체되는 혼란기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주저하였고 그 결과 전간기 에스토니아 인구의 약 7.3~8%는 러시아인이었다고 한다. 이들 중 절반은 나르바, 이반고로드 같은 국경 지대 이외에도 탈린 등지에 거주하였다. 소련에서 탄압받던 정교회 사제 혹은 일부 잉그리아 핀인 등 핀란드계, 에스토니아계 소수 민족들이 에스토니아로 탈주하는 경우도 있었다.
2.5. 현대
1941년 나치 독일이 에스토니아를 점령하였고 이후 나치 독일과 소련의 격전장 중 하나가 되었던 에스토니아는 1944년 소련군에게 합병당하였고, 독립국이었던 에스토니아는 소련 내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편입당했다. 소련 점령 이후 러시아인 인구가 대거 에스토니아로 유입되었을 뿐만 아니라 에스토니아 내 반소련 민족주의 세력 상당수가 카자흐스탄이나 시베리아 일대로 추방당했다. 소련 점령의 결과 에스토니아의 러시아인 인구는 1945년 약 23,000여 명에서 1991년 475,000여 명 정도로 증가하였다. 당시 러시아인 외에 우크라이나인과 벨라루스인까지 합할 경우 총 에스토니아 내 동슬라브인 인구는 551,000여 명으로 당시 에스토니아 인구의 약 35%를 차지했었다. 1945년에는 러시아와 인접한 이반고로드가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영토로 할양되었다.
소련 시절 에스토니아는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함께 소련에서 가장 소득수준이 높은 지역이었다. 자신들과 언어, 문화가 흡사하고 마찬가지로 한 때 러시아 제국 영토였으나 2차대전 이후에도 독립을 유지한 핀란드가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고 선진국에 진입한 것을 본 에스토니아인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소련으로부터 분리독립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에스토니아는 소련을 탈퇴해 독립국이 되었고 자국 내 거주하는 러시아인들에게 에스토니아어를 구사하지 못할 경우 시민권을 주지 않는 방식을 사용하여 무국적자로 만들었다.[1]
2.6. 21세기
에스토니아는 2005년 러시아의 2차대전 60주년 전승기념일 참가를 거부했다.
2007년에는 '소련 해방군 동상'(…)을 철거해서 에스토니아에 있는 러시아인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러시아에서는 모스크바 주재 에스토니아 대사관이 털렸다. 이로 인해 토마스 헨드리크 일베스 에스토니아 대통령이 "에스토니아가 소련의 잔재를 청산했다는 이유로 러시아로부터 부당한 위협을 받고 있다. 러시아가 더욱 문명국답게 행동해 주기를 부탁한다"고 말했을 정도로 대립각을 세운 적이 있다.
이 때 분노한 러시아 네티즌들이나 정보기관이 에스토니아 사이트에 공격을 가하며 에스토니아의 인터넷망 사이트가 줄줄히 다운되며 에스토니아 국가체계가 거의 2주 동안 마비됐었다.
2017년 5월 26일에 에스토니아 정부는 자국 러시아 총영사관의 외교관 2명을 추방한다고 발표했다. 물론 러시아는 이에 대해 반발했다.
2018년 6월 4일에 에스토니아의 전 대통령인 토마스 헨드리크 일베스는 러시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옴스크, 톰스크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발언했다.#(러시아어)
2018년 6월 25일에 유럽 소수민족 권리보호 연방위원회에서는 결의안에서 에스토니아내 러시아 학교의 보존을 호소했다.#(러시아어)
에스토니아의 기자는 에스토니아내에서 러시아어의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고 밝혔다.#(러시아어)
2020년 9월 17일에 에스토니아의 도시 할살루에서 에스토니아인 교사와 러시아인 교사가 만나 서로 교류를 갖는 행사가 있었다.#(러시아어)
양국의 문화교류가 일부 있다보니 러시아어를 배우러 오는 유학생들도 일부 존재한다.
2021년에 나발니가 구속된 것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에스토니아는 갈등을 빚고 있다. 그리고 에스토니아측이 러시아 외교관 1명을 추방하자 러시아측도 에스토니아 외교관 1명을 추방한다고 밝혔다.#
3. 경제 교류
양국은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러시아 갑부들 중 에스토니아에서 경제적인 업무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에스토니아에 진출한 다국적기업, EU내의 기업들도 러시아어와 관련된 업무를 하는 경우도 많다.
4. 갈등
4.1. 영토 분쟁
에스토니아는 소련에 합병된 이후 라트비아처럼 일부 영토가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넘어갔는데 이 땅은 에스토니아 독립 이후에도 여전히 러시아 땅이라 러시아와 갈등을 벌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레닌그라드 주에 속한 이반고로드(에스토니아식 이름으로 야닐린)로, 나르바 강을 경계로 에스토니아 국경도시 나르바와 바로 인접해 있다. 공교롭게도 두 도시 양쪽에 중세시대 에스토니아 성채(나르바 성/이반고로드 성)가 마주보고 서 있어서 독특한 분위기이다. 에스토니아 동남부에도 역사적으로 에스토니아 땅이지만 러시아가 점유한 부분이 약간 있다.
4.2. 민족 분쟁
에스토니아에는 에스토니아인이 65%, 러시아인이 28% 정도를 차지하는 데다 둘이 동부와 중서부로 나뉘어 살다보니 동화는 지지부진하고 민족갈등이 심각하다. 러시아인의 비중은 1922년에는 8.2% 정도로 10% 미만이었으나 소련에 합병된 이후 동부의 러시아인이 많았던 지역이 러시아로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인의 비중은 늘어나 1989년에는 30.3%에 달했다. 그러나 독립 이후로 에스토니아는 에스토니아어를 못 하는 거주자에게 에스토니아 시민권을 주지 않는 등[2] 의도적으로 에스토니아 땅에 살고 있던 러시아인에게 불이익을 주었고, 이로 인해 러시아인의 비중은 날이 갈수록 줄고 있는 중이다.
2014년 기준으로는 인구의 25.2%가 러시아인이며 이 중 대부분이 탈린이나 동(東)비루 주 일대의 나르바 등 도시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상당수의 에스토니아인과는 달리 러시아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으며, 에스토니아에서 다른 데서는 다 철거해버린 블라디미르 레닌의 동상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도시가 나르바일 정도. 그 외에도 소련시대 상징물들을 일부러 떼지 않고 남겨두고 있다. 다만 러시아로 이주한 러시아인들이 많다 해도 러시아의 국민소득과 복지 수준이 에스토니아보다 평균적으로 뒤떨어지는 편인지라, 아직도 불편을 감수하고 에스토니아에서의 삶을 고수하는 러시아인들 및 아예 에스토니아로 돌아온 러시아인들도 있는 편이고, 러시아 본국의 러시아인과는 약간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으로 치면 재미교포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에스토니아의 러시아 민족도 에스토니아어 구사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조금씩 늘고는 있다.
지금도 에스토니아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 7%가 에스토니아 국적도 없고 다른 나라의 국적도 없는 무국적자인데 대부분이 소련 시절 건너온 러시아계이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푸틴 정권의 독재를 피하기 위해 에스토니아로 망명하는 러시아인들이 일부 늘고 있다.
5. 관련 문서
- 러시아/외교
- 에스토니아/외교
- 러시아/역사
- 에스토니아/역사
- 러시아/경제
- 에스토니아/경제
- 러시아인 / 에스토니아인
- 러시아어 / 에스토니아어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동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북유럽 국가
[1] 이 과정에서 에스토니아에 거주하는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들 뿐만이 아니라 일부 고려인들도 무국적자가 되어 심각한 고초를 겪었다 한다.[2] 이게 생각보다 큰 페널티인게 에스토니아어는 사용자수가 그리 많지 않은데다가 문법이 꽤 난해해서 인구어족 계통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능숙해지기 쉽지 않은 언어이다. 거기에다가 소련시절에는 에스토니아어를 필수과목으로 배우기는 했어도 러시아인 학생들은 그리 열성적으로 배우지는 않았기에 에스토니어 하면 간단한 단어나 인삿말 정도나 아는 수준인 경우가 태반이라서 이러한 조치의 충격이 생각보다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