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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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로버트 로즈(Robert Richard "Bobby" Rose)
'''생년월일'''
1967년 3월 15일 (57세)
'''국적'''
미국
'''출신지'''
캘리포니아 주 코비나
'''포지션'''
2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5년 드래프트 5라운드 전체 121순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지명
'''소속팀'''
캘리포니아 에인절스(1989~1992)
요코하마 베이스타즈(1993~2000)

<color=#373a3c> '''1993년 센트럴리그 최다 타점'''
1992년
래리 시츠
(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
100타점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히로사와 카츠미
(야쿠르트 스왈로즈)
'''94타점'''

1994년
타이호 야스아키
(주니치 드래곤즈)
107타점
<color=#373a3c> '''1999년 센트럴리그 최다 타점'''
1998년
마츠이 히데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100타점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53타점'''

2000년
마츠이 히데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108타점
<color=#373a3c> '''1997년 센트럴리그 최고 출루율'''
1996년
에토 아키라
(히로시마 도요 카프)
.431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444'''

1998년
마츠이 히데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421
<color=#373a3c> '''1999년 센트럴리그 수위타자'''
1998년
스즈키 타카노리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337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369'''

2000년
킨죠 타츠히코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346
<color=#373a3c> '''1999~2000년 센트럴리그 최다 안타'''
1998년
이시이 타쿠로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74안타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92안타(1999년)
168안타(2000년)'''

2001년
이시이 타쿠로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71안타
1. 개요
2. 선수 시절
3. 기타
4. 관련 문서


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일본프로야구 선수.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소속으로 뛰며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짧은 전성기를 이끈 외국인 선수랜디 바스, 터피 로즈 등과 함께 일본프로야구 최고의 용병 타자들 중 하나로 꼽힌다.

2. 선수 시절


1985년 드래프트 5라운드 전체 121순위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 입단하여[1]1992년까지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콜업 기회가 줄어들자 1993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 입단했다.
일본프로야구의 외국인 야수로서는 드물게 2루수[2][3]로 8년을 뛰면서, 통산 .325의 고타율과 4할 이상의 출루율로 베스트나인 6회에 선정되며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머신건 타선'''[4]의 중심에서 요코하마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입단 초창기엔 같은 시기에 요코하마에 입단한 신시내티 레즈1990년 월드 시리즈 우승 멤버였던 글렌 브랙스가 거물 용병으로 더욱 주목을 끌었으나, 그럼에도 브랙스와 함께 주전 중심타자 자리를 지키며 요코하마 타선을 이끌면서 이적 첫해인 1993년 94타점으로 타점왕을 수상하였고, 이후 브랙스가 1996년 부상 및 성적부진으로 은퇴하자, 바로 붙박이 4번 타자 자리를 꿰차며 요코하마 퇴단 전까지 대활약한다.
[image]
몬스터 시즌이었던 1999년의 성적이 적힌 야구 카드.
요코하마의 일본시리즈 우승 시즌인 1998년 .325/.413/.516 19홈런 96타점을 기록하며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고, 더불어 그의 커리어에서 유일한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했다. 1999년에는 요코하마가 '''팀타율 .291'''을 기록한 '머신건 타선'의 절정을 찍은 해였는데, 로즈는 그 해 '''.369/.439/.655 37홈런 153타점'''의 맹활약을 펼치며 수위타자와 타점왕, 최다안타 1위를 차지한다. 이 해 기록한 192안타는 2005년 아오키 노리치카가 202안타를 칠 때까지 센트럴리그 한 시즌 최다안타 기록이었으며, 153타점은 1950년 쇼치쿠 로빈스[5]의 코즈루 마코토[6]가 기록한 161타점을 잇는 일본프로야구 사상 역대 2위의 기록이다.
2000년에도 최다안타 1위, 타율 2위로 활약했지만, 적지 않은 나이와 다년 계약 요구를 놓고 요코하마 구단과 갈등이 생겨 은퇴를 선언한다. 하지만 이를 번복하고 2002년 오프시즌에 치바 롯데 마린즈에 입단했으나, 스프링 캠프에서 건강 문제와 외지 생활에 대한 가족들의 심한 반대에, 스프링 캠프 도중 열린 연습시합에서 계속 무안타에 머무르자, '''"야구에 대한 열정이 사라져 버렸다"'''란 말을 남기고 캠프 도중 퇴단하며 그대로 다시 은퇴하고 만다. 롯데 팬들에게는 먹튀로서 기억되는 원인.

3. 기타


터피 로즈와 같은 시대에 뛰었는데, 등록명의 발음만 같을 뿐[7] 인종(백인/흑인), 포지션(2루수/외야수), 플레이스타일(중장거리형 교타자/슬러거)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반대된다는 점이 주목을 끌기도 했다.

Come on Rose Victory
Hustle Bobby Go Go Go
Come on Rose Victory
Hustle Bobby Go Go Go
현역 시절 응원가는 당시 높은 퀄리티를 자랑하던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응원가[8]응원가도 답게 팬들 사이에선 명곡으로 유명하며, 현재도 요코하마의 찬스 테마[9]로 쓰이고 있다.
일본프로야구 최다인 3번의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은퇴 뒤에는 콜로라도에서 자신의 아이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야구 코치를 했다고 하며, 2013년부터는 텍사스 레인저스 산하 쇼트시즌 싱글 A 구단인 스포케인 인디언스에서 타격코치를 맡게 되었다. 2012년 팀 이름이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로 바뀐 뒤 가진 첫 홈 개막전에서 1998년 우승의 일등공신이자 팀의 간판이었던 마무리 투수 '대마신' 사사키 카즈히로와 맞대결했다. 그리고 암흑시대를 사는 요코하마 팬들은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10]

4. 관련 문서


[1] 드래프트 동기들을 보면 배리 라킨(1라 4순위), 배리 본즈(1라 6순위), 라파엘 팔메이로(1라 22순위), 랜디 존슨(2라 36순위), 데이비드 저스티스(4라 94순위), 채드 크루터(5라 109순위), 디온 샌더스(6라 149순위), 알 마틴(9라 198순위), 브래디 앤더슨(10라 257순위), 보 잭슨(20라 511순위), 존 스몰츠(22라 574순위), 짐 애보트(36라 826순위) 등이 있다. 심지어 볼티모어 오리올스로부터 14라운드 359순위로 지명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다음해 NBA로 간 델 커리도 있다.[2] 일본프로야구의 대표적인 용병 2루수로는, 로즈 이외에도 쿠바 출신으로 50~60년대 한큐 브레이브스에서 빠른 발과 화려한 수비로 활약한 로베르토 바르본,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전신인 타이요 훼일즈요미우리 자이언츠를 거친 거포 2루수 존 시핀, 한큐 브레이브스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활약한 베네수엘라 출신의 바비 마르카노 등이 있었다.[3] 그 외에도 2루수유격수 등 센터 내야수로서 데뷔한 외국인 선수들은 많았으나, 대부분은 일본프로야구에서 커리어를 거치면서 타격을 살리거나 자국인 유망주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다는 이유로 3루수, 1루수, 코너 외야수지명타자 자리로 이동하였다.[4] 당시 요코하마 타선은 이시이 타쿠로 - 하루 토시오호타준족 리드오프, 스즈키 타카노리 - 로버트 로즈 - 코마다 노리히로의 강력한 타력을 지닌 중심타선, 그 뒤를 받치는 사에키 타카히로, 나카네 히토시, 타니시게 모토노부, 신도 타츠야 등의 튼실한 타격력을 갖춘 하위타선 등의 좋은 타자들이 포진해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3할 초중반대의 고타율을 노릴 수 있는 컨택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한 시즌 10여개 언저리의 홈런을 날릴 수 있는 적당한 장타력과 단타, 2루타 머신으로써의 연타력까지 지닌 교타자들이었으며, 이 타자들이 단타, 2루타를 머신건(기관총)처럼 연타로 날리며 상대팀을 떡실신시키는 것이 당시 요코하마의 공격력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다. 1997~2000년까지 센트럴리그 수위타자(2000년 수위타자는 위의 중심멤버보다는 뒷 세대인 재일교포 스위치 히터 긴조 다쓰히코였다.)가 모두 요코하마에서 배출된 것은 당시 요코하마 타선의 특징을 가장 잘 알 수 있던 일화. 자세한 설명은 참고[5] 다이요 훼일스에 합병됐다. 어떻게 보면 로버트 로즈의 팀 선배인셈.[6] 1922~2003. 호타준족의 외야수로 시즌최다타점(161) 기록 외에도 시즌최다득점(161), 시즌최다루타(376), 10경기 연속 타점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앞의 기록들은 그의 커리어하이 시즌인 1950년에 기록했으며 51개의 홈런을 날리며 일본프로야구 사상 첫 한 시즌 50개의 홈런 기록자다. 타율 0.355, 51홈런 161타점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팀의 리그 우승에 공헌했고. 홈런왕, 타점왕, MVP를 차지했으나 타율 0.362를 기록한 후지무라 후미오에 밀려 트리플 크라운 등극은 무위로 돌아갔다.[7] 성(姓)도 다르다. 로버트 로즈는 Rose, 터피 로즈는 Rhodes.[8] 팀 동료 코마다 노리히로의 응원가도 고퀄리티다.[9] 주자가 득점권에 나가거나 역전, 끝내기가 기대되는 상황일 때 응원단이 트는 노래/구호이다.[10] 포수는 1998년 당시 요코하마의 주전 포수이자, 前 주니치 드래곤즈의 감독인 타니시게 모토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