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벡

 

[image]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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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제프 벡
JEFF BECK
'''
'''멤버'''
(개인자격)
'''입성 연도'''
'''2009년'''
'''후보자격 연도'''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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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제프 벡(Jeff Beck)
'''본명'''
제프리 아널드 벡(Geoffrey Arnold Beck)
'''국적'''
영국 [image]
'''출생'''
1944년 6월 24일, 잉글랜드 서리 웰링턴
'''소속'''
야드버즈, 제프 벡 그룹, BBA 등
'''활동'''
1964 ~
'''장르'''
블루스 록, 사이키델릭 록, 인스트루멘털 록, 재즈 퓨전 등등
'''악기'''
기타
'''링크'''

[image]

76세의 나이인 2020년 라스베이거스 콘서트 영상
1. 개요
2. 그의 음악적 특성
3. 활동
3.1. 야드버즈 시절
3.2. 초기 : 제프 벡 그룹과 벡, 보가트 앤드 어피스
3.3. 전성기 : 솔로 시절과 얀 하머와의 조인트
3.4. 이후의 활동
4. 그 외


1. 개요


제프 벡은 영국록 음악 뮤지션이자 '''록 역사상 최고의 기타리스트 중 한 사람'''이다.
한국에선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와 함께 소위 록 3대 기타리스트라는 타이틀로 불리며[2], 저 두 사람과 함께 야드버즈에서 기타를 연주했던 사람이다.

2. 그의 음악적 특성


그는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와 달리 상업적으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상업적인 성공과 이미 완성한 연주기법에 머물러 안주했던 그들과 달리, '''끊임없이 자신의 연주기법을 실험하고 새로운 연주기법을 도입하며 연주패턴을 변화하고 발전시킨 기타리스트로, 기타리스트 본연의 자세론 가장 존경받는 기타리스트이다.'''
그는 초기에 결성된 멤버로 밴드를 계속 이어갔다면 멤버들의 뛰어난 실력에 의지하여 충분히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어 안락하게 지금까지 밴드활동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계속 음악적 스타일을 변화시켜가며 실험하면서 그때마다 밴드를 해산하고 새로운 멤버를 맞아들여 자신의 음악적 스타일에 맞는 밴드를 결성하고 가장 그 음악적 컨셉에 맞는 작품을 발표해왔다.
그래서 그에게서 딱 한가지 음악적 특성을 정의한다는건 바보같은 짓이다. 그는 초기에는 누구나 그랬듯 블루스에 기초한 록 연주를 들려주었고 이후 최초의 하드록/헤비메탈 스타일의 연주를 들려주었지만, 이후 재즈적인 연주나 컨트리/서던록에 기반한 연주쪽으로 기울기도 했고, 잠시 초창기 로커빌리같은 연주를 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노년기에 들어서도 실험적인 정신은 쇠퇴하지 않아 90년대 이후엔 테크노일렉트로니카에 경도된 연주도 시도하기도 했다.
현재 왼손은 코드를 짚기만 하고 핑거스타일로 검지와 엄지 등으로 현을 치는것과 동시에 나머지 손가락으로 비브라토 암을 흔들거나 치면서 독특한 톤을 내는 연주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 25주년 공연에서 비틀즈 A day in the life를 연주하는 이 영상을 보면 어떤 스타일인지 알 수 있다. 비브라토 암의 존재 이유를 누구보다 잘 나타내주는 기타리스트고 독보적인 연주실력을 보여준다.

3. 활동



3.1. 야드버즈 시절


그는 1944년 6월 24일 잉글랜드 월링턴에서 태어났다. 10살때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하기도 했고 처음에는 베이스를 배우기도 했지만 이후 기타를 배우고 척 베리리틀 리차드같은 초기 로큰롤 음악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2년제 아트 스쿨을 다니면서 세션 활동을 하다가 에릭 클랩튼이 탈퇴한 야드버즈에 가입해 지미 페이지와 함께 기타리스트로 활약하게 된다. 그는 야드버즈에 들어와 에릭 클랩튼이나 지미 페이지와 달리 굉장히 록적인 감성이 충만한 거칠고 그루브한, 초기의 하드록이라 할만한 걸출한 연주를 보여주며 주목을 받게된다. 'I'm Not Talking', ' Jeff's Blues' 같은 곡들은 지금 들어도 신명나는 훌륭한 로큰롤 넘버들이다. 그래서 제프 벡 때의 야드버즈가 최고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야드버즈를 지미 페이지한테 맡기고 탈퇴하면서, 밴드를 아직 결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미 페이지, 존 폴 존스, 니키 홉킨스, 키스 문같은 쟁쟁한 멤버들의 도움으로 Beck's Bolero라는 싱글을 낸 뒤[3] 곧 그의 밴드 1기 제프 벡 그룹을 결성한다.
이때 잠깐 핑크 플로이드에서 탈퇴한 시드 바렛을 대신해 기타리스트로 들어오란 부름을 받았지만 무산되었다.
여담으로 이 시절에 욕망(Blow Up)이란 영화에 지미 페이지를 포함한 야드버즈 멤버들과 함께 특별 출연하게 되었는데 영화를 위해 Train Kept A-Rollin'의 가사를 개사한 Stroll On을 연주하던 중 앰프가 맛이 가서 기타로 앰프를 몇방 때리다 피트 타운젠드마냥 기타를 부숴버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적이 있다. 실제로 제프 벡은 무대에서 이런 거 잘 안한다. 관련영상보기

3.2. 초기 : 제프 벡 그룹과 벡, 보가트 앤드 어피스


그는 보컬로드 스튜어트, 베이스에 로니 우드[4], 키보드에 니키 홉킨스[5], 드럼믹 웰러[6]라는 거의 크림에도 밀리지않는 사기적인 멤버로, Truth(1968)와 Beck-Ola(1969), 두 앨범을 발표한다. (Truth때는 드러머가 토니 뉴먼으로 바뀐다.) 근데 초기에는 제작자 미키 모스트가, 밴드의 리더는 직접 노래를 불러야한다는 말도 안되는 고루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 제프 벡이 직접 Tally Man 등의 노래를 불렀다[7]. 어쨌든 이 두 앨범은 록 역사상 위대한 앨범들로 인정받고 있으며, Truth가 블루스 록 본연의 모습을 잘 지키고 있다면, Beck-Ola는 좀더 초창기 헤비록에 경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Truth에는 야드버즈의 곡 Shapes of Things과 레드 제플린의 앨범에도 들어있는 윌리 딕슨의 고전 You Shook Me가 실려있고(사실 레드 제플린의 지미 페이지가 제프 벡의 스튜디오를 찾아온뒤 절친인 제프 벡의 아이디어를 훔쳐 자기네 앨범에도 이 곡을 실었다고 한다.) 제프 벡 솔로명의로 발매된 싱글에 수록된 Beck's Bolero(볼레로 리듬에 맞추어 연주되다가 나중에 폭발하는 키스 문의 활화산같은 드럼이 압권이다.), 로드 스튜어트의 보컬과 니키 홉킨스의 피아노가 빛나는 최고의 블루스 Blues De Luxe가 명곡이다.
  • Beck-Ola에는 앨비스 프레슬리의 고전 All Shook Up, Jailhouse Rock 과 나중에 론 우드와 로드 스튜어트가 따라 나가 결성한 밴드 페이시즈도 지네 앨범에 싣는 Plynth, 그리고 당시로서는 굉장히 무겁고 헤비한 The Hangman's Knee와 Rice Pudding이 실려있다. 이건 제프 벡이 앨범의 라이너 노트에서 직접 밝혔듯이 당시 초창기 헤비록을 선도한 밴드 바닐라 퍼지의 영향을 받아 무겁고 반복적인 베이스 비트를 음악에 도입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밴드는 로드 스튜어트와 론 우드 등 멤버들끼리의 갈등으로 곧 해산되고, 제프 벡은 보컬리스트 바비 텐치, 키보디스트 막스 미들턴, 드러머 코지 파웰(!!!)을 받아들여 제 2기 제프 벡 그룹을 결성한다. 이들은 R&B 냄새가 충만한 Rough and Ready, Jeff Beck Group 두 앨범을 발매한다.
이후 제프 벡은 이 밴드도 해산시키고 위에 언급된 바닐라 퍼지의 드러머 카마인 어피스와 베이시스트 팀 보거트와 함께 새로운 밴드 벡 보거트 앤 어피스(Beck, Bogert & Appice)를 결성하고 셀프 타이틀로 한 장의 앨범과 일본 한정 라이브앨범을 낸다.

  • 드러머 카마인 어피스와 베이시스트 팀 보거트는 제프 벡 그룹 때 멤버들보다도 더 굉장한 연주자들이었고, 이들은 이 앨범에서 당시 딥 퍼플과 레드 제플린에 전혀 밀리지 않는, 오히려 더 능가하는 엄청난 연주를 들려준다. 그야말로 면도날같은 제프 벡의 리프와 솔로 임프로바이제이션, 카마인 어피스의 파워 드러밍과 엇박 가득한 분절음의 폭포수, 팀 보거트의 육중한 베이스 라인. 이들의 음악은 이미 어느정도 여기서 재즈로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재즈록 퓨전의 대표주자였던 기타리스트 존 맥러플린의 밴드 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의 음악에 영향을 받은것으로 보이는데, 얼마후 이 밴드 멤버들과 음악적 교류를 가지게 되기도 한다. 보컬은 드러머인 카마인 어피스가 맡았고, 스티비 원더의 원곡 Superstition과 톱니바퀴같이 꽉맞아 들어가는 엄청난 연주 하모니의 대곡 Lady, 아름다운 발라드 Sweet Sweet Surrender 등이 명곡이다.

3.3. 전성기 : 솔로 시절과 얀 하머와의 조인트


제프 벡은 벡 보거트 앤 어피스도 또 해산하고 솔로로 활동하며 '''Blow by Blow'''라는 앨범을 내는데, 이 앨범을 흔히 '''제프 벡 최고의 앨범'''이라고 얘기한다. 재즈적인 지향성이 이미 확고해진 상태에서 일렉기타가 발휘할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다 실험해본 걸작중의 걸작이라고 얘기한다. 비틀즈의 She's a Woman, 스티비 원더의 Cause We've Ended as Lovers, Thelonius(재즈 연주자 델로니어스 몽크를 의미한다), Freeway Jam 등등 명곡이 넘쳐난다.
이후에도 Wired 같은 명반을 내고, 위에서 얘기한 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 출신의 키보디스트 얀 하머와 협연한 라이브 앨범 Jeff Beck with the Jan Hammer Group Live를 내는데 이 라이브 음반 역시 대단한 명반이다. 재즈적인 필링이 넘실넘실 차오른다

3.4. 이후의 활동


앞서 얘기한 것처럼 제프 벡은 어떤 한 장르에 갇히지 않고 계속 변화와 실험을 계속해왔다. Big Town Playboys란 밴드와 함께 로커빌리를 시도해보기도 했고, 스티비 레이 본, 잭 브루스(베이시스트), 코지 파웰 등의 앨범에도 참여하기도 하고, 위의 전 멤버였던 로드 스튜어트와 다시 만나 아름다운 커티스 메이필드의 고전 가스펠 블루스 People Get Ready를 협연하기도 했다.
현재는 테크노나 일렉트로니카 쪽으로의 실험도 시도하고 있다.

4. 그 외


케이온!아키야마 미오가 말한 ジ자로 시작하는 기타리스트들 중 한 명으로[8] 기타리스트의 역사는 제프 벡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고 평한 바 있다. 쿡TV 자막에서는 '지'자로 시작하는 기타리스트라 하여 '''지'''프 벡으로 오기.
죠죠의 기묘한 모험 5부의 주인공 죠르노 죠바나가 좋아하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한국 남성 락 리스너들 사이에선 세션 베이시스트로 있었던 탈 위켄필드가 유명한데, 1986년생의 어린 여자인데다 억압받지 않고 연주에 집중하는 의미에서 노브라로 공연을 하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인터뷰에 의하면 이 처자는 제프 벡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즉 덕업일치. 지금은 멤버가 아니다.
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에서 그의 연주곡 You Know What I Mean이 오프닝 BGM으로 쓰인다.
그의 기타 컬렉션을 보면 기타 브랜드는 잘 가리지는 않는 편인 듯하다. 1990년대부터는 Fender Stratocaster를 애용하여 시그네춰 기타가 출시되어 있지만, 의외로 1980년대 중반에는 헤비메탈 기타 브랜드로 유명한 Jackson의 솔로이스트 모델을 사용한 적도 있다.[9] 비브라토 암을 이용한 연주를 하기 때문에 흰색 바탕에 베이지 색의 Fender Stratocaster(스트라토캐스터)를 주로 쓰지만 가끔 Les Paul(레스폴)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럴땐 Les Paul을 사용한 연주를 할거라고 미리 코멘트를 하기도 한다.
역시, 영국인이라서 당연히 축구를 좋아하는 데, 토트넘 핫스퍼의 팬이라고 한다.
또한 아스톤빌라울버햄튼 같은 많은 영국 구단들은 그의 노래 Hi ho silver lining을 응원가로 사용하기도 한다
https://youtu.be/nRxT0Fe0Yd0
흔히 같은 야드버즈 출신이자 한국에서는 3대 기타리스트라는 표현으로 같이 묶이는 지미 페이지에릭 클랩튼의 절친이기도 하다. 제프 벡의 로큰롤 명예의 전당 입성 시 지미 페이지가 제프 벡을 소개하였다.
믹 테일러가 탈퇴한 후 열렸던 세기의 롤링스톤즈 리드 기타 오디션에 참가했었다. 1000:1의 경쟁을 뚫고 당첨됐던건 제프 벡의 옛 동료 로니 우드였다. 아무래도 다루기 힘든 스타일의 연주자였으니 믹 재거키스 리처즈에겐 좀 과했을것이다. 심지어 믹은 그렇게 키스가 스티브 메리엇을 데려오자고 해도 거절했었으니까 말이다.
에릭 클랩튼과는 자주 협연을 한다. 이영상의 Moon River 연주는 정말 톤이 끝내준다.
내한 공연을 3번이나 했다. 모두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했으며 매번 모든 공연이 매진되었다. 2번째 공연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였던터라 옷에 노란 리본을 달고 연주했다. 추모의 의미로 당시 셋리스트에 들어있지 않았던 People get Ready를 연주했다.[10] 첫번째 공연때는 베이스, 드럼외에 키보디스트를 대동해 재즈 스타일의 곡들을 들려줬었고, 두번째 공연때는 키보디스트대신 리듬기타를 대동하여 조금 더 하드한 음악을 들려줬었다. 많은 연예인들이 그의 공연을 보러 찾아왔다. 첫 공연때는 공연 전 앞쪽에 앉아있는 배철수에게 싸인 받으러 줄 서있는 사람들을 볼 수도 있었다.

[1]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5가지 헌액 카테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이자 공신력이 인정되는 '공연자(Performers)' 명단에 한하여 기록하도록 함. 나머지 부문의 헌액자들은 따로 문서 내 헌액명단에 수록해주길.[2] 이 3대 기타리스트라는 건 1970년대에 어느 일본 음악기자가 그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 주장한 3대 기타리스트라는 표현이 한국에 들어와서 마치 확고한 정설인 것처럼 정착된 건데, 오직 한국에서만 유행해온 표현일 뿐이고 한국 이외의 나라들에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표현이 아니다.[3] B사이드는 Hi Ho Silver Lining[4] 훗날 롤링 스톤즈의 기타리스트가 된다.[5] 1집에서는 세션이었고 2집부터 정식 멤버가 된다.[6] 믹 웰러 전에 앤슬리 던바(Aynsley Dunbar)가 드러머로 있었지만 금방 나갔다.[7] 물론 제프 벡의 가창력은 처절하게 안습.[8] 일본어 표기가 '''ジ'''ェフ•ベック[9] Ambitious의 뮤직비디오에서 주황색 솔로이스트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그의 2번째 솔로이스트. 여담으로 첫번째 솔로이스트는 핑크색.[10] 그의 대표적인 곡이지만 당시 투어에서는 다른나라에서 연주하지 않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