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온 데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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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리온 데릭스(Leon Derricks)
'''생년월일'''
1974년 11월 24일 (50세)
'''국적'''
미국
'''출신학교'''
미시간 대학교 (1992~1994)
디트로이트 대학교 (1995~1997)
'''포지션'''
센터(KBL), 파워 포워드
'''신체사이즈'''
204cm,108kg
'''KBL소속팀'''
안양 SBS 스타즈 (2000~2002)
원주 TG삼보 엑써스 (2002~2004)
'''수상 내역'''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1회 (02-03)'''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2003'''
1. 소개
2. 선수 시절
2.1. KBL 입성 전
2.2. KBL에서의 활약
3. 은퇴 후


1. 소개


2000년대 초반 KBL에서 4시즌을 뛰었던 전 농구 선수. 장신임에도 넓은 시야를 가져 '''KBL 역대 트리플 더블 순위 공동 2위(8회)'''에 올라있다.[1] 센터 치곤 피지컬이 약해 골밑 존재감이 크진 않았지만 특유의 센스로 버티는 스타일이었으며, '''트리플 포스트'''[2]라는 KBL만의 신조어를 만들어 낸 인물이다.

2. 선수 시절



2.1. KBL 입성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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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기록
고등학교때 미시간 주에서 나름 유망주로 이름을 날렸고, 덕분에 그 유명한 '''"Fab Five"''' 시절의 미시간 대학교에 리쿠르팅 되었다.[3] 당시 미시간 대학교가 2년연속 NCAA 토너먼트 결승까지 진출했던 전미 최강팀이었던 탓에 1학년때는 출장기회를 잡기 힘들었고,[4] 크리스 웨버가 NBA로 떠난 2학년때에도 주완 하워드 등 선배들에 밀려 대부분 백업 빅맨으로 뛰었다. 이후 미시간 대학교 코치가 디트로이트 대학교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출장시간 확보를 원했던 리온 데릭스는 감독을 따라 1시즌을 스킵하면서까지 전학을 선택, NCAA 중위권 팀인 디트로이트 대학교에서 팀의 주전 파워포워드로 뛰며 2년을 보내지만 팀이나 개인성적 모두 별볼일 없었고, 평범한 선수로 졸업하게 된다.
NBA 드래프트 탈락 후, 미국 하부리그인 USBL과 스페인 하부리그, 아르헨티나 리그 등에서 뛰다, 2000년 KBL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을 신청했고, 1라운드 전체 6순위로 안양 SBS 스타즈 유니폼을 입는다.

2.2. KBL에서의 활약



2.2.1. 안양 SBS 스타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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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슛의 대가" 데니스 에드워즈(192cm, PF)와 짝을 이루어 안양 SBS의 주전 센터로 출전한 데릭스는, 1라운드에서만 2차례 트리플 더블을 기록하는등 스탯상으로는 연일 놀라운 활약을 펼쳤지만, 몸싸움이 약해 골밑이 탄탄한 서울 SK(서장훈-재키 존스)나 서울 삼성(아티머스 맥클래리-무스타파 호프)을 상대로 꽤나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팀은 1,2라운드 모두 4승 5패를 기록하며 중위권에서 좀처럼 치고올라가지 못했다.[5] 이에 김인건 감독은 팀의 백업센터였던 표필상을 급 주전센터로 올리며,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트리플 포스트"'''(에드워즈-데릭스-표필상)라는 전략을 들고 나왔고 이 작전이 놀랍게도 들어맞으면서 안양 SBS는 3라운드들어 무려 8연승 가도를 달리는 등 돌풍을 일으킨다.[6] 스피드, 득점력, 리바운드까지 다른 기량은 모두 떨어졌지만 몸싸움 하나만은 훌륭했던 표필상의 가세 덕분에, 데릭스는 상대팀의 외국인 센터 대신 단신 외국인 또는 토종 빅맨을 상대하게 되어 체력적 부담을 덜었고, 특유의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경기당 5~7개 정도의 어시스트를 배달, '''시즌 평균 20.6득점-12.2리바운드-5.8 어시스트'''라는 아름다운 스탯을 올리며 팀을 00-01 시즌 리그 4위로 이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트리플 포스트의 한축인 표필상이 무릎 부상을 당하며 빠지는 바람에 보디가드를 잃은 데릭스는, 서울 삼성과 만난 4강 플레이오프에서 상대팀 센터 무스타파 호프(200cm)를 상대로 체력 문제를 드러내며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00-01 시즌 종료 후, 득점왕에 올랐음에도 불구 나홀로 플레이로 비난받던 데니스 에드워즈가 재계약에 실패한 반면, 00-01 '''한시즌에만 트리플 더블 6회'''를 기록하는 등 유기적인 팀플레이의 구심점 역할을 해준 데릭스는 안양 SBS와 재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01-02 시즌엔 파워풀한 포워드 페넬 페리(196cm)를 파트너로 맞아, 은희석-김훈[7]-김성철과 함께 팀을 이끌었으나, 데릭스 특유의 패싱플레이가 상대팀에 많이 파악되면서 스탯이 다소 줄었고, 퍼넬 페리의 맹활약 덕분에 팀은 시즌 6위로 간신히 플레이오프에 올랐지만 경기를 앞두고 데릭스가 부상당하는 바람에 정작 6강 플레이오프에서 팀이 2패로 광탈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01-02 시즌 종료 후 데릭스는 팀과의 재계약에 실패하게 된다.

2.2.2. 원주 TG삼보 엑써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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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SBS와의 재계약 실패 후 중국 CBA 장슈 난강 드래곤스에 입단한 데릭스는 부족한 피지컬 탓에 장신들이 우글대는 중국무대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고, 부상까지 당하면서 퇴출되고 만다. 그러다 02-03 시즌 막판 정규리그 3위팀 원주 TG가 주전센터 데릭 존슨(204cm)을 부상으로 잃자, 존슨의 일시 대체 선수로서 시즌 막판 KBL에 재 합류하게 되는데, 비록 KBL판 샤킬 오닐이었던 데릭 존슨만한 파워풀한 존재감은 없었지만, 공격의 거의 90%가 1:1 포스트업이었던 데릭 존슨과 달리 워낙 피딩능력이 좋았던 데릭스의 합류 덕분에 루키 김주성을 비롯, 데이비드 잭슨[8]과 등 팀원 전체의 기록이 동반 상승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거기다 존슨의 약점이었던 기동력까지 갖춘 덕분에 플레이오프 상대였던 창원 LG, 대구 동양과의 스피드 대결에서도 밀리지 않으면서, 원주 TG는 팀 창단 이래 첫 우승이자 정규리그 3위팀 최초로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따낼 수 있었다.
02-03 시즌 우승에도 불구, 챔프전 MVP 데이비드 잭슨의 개인플레이와 수비력이 맘에 들지 않았던 전창진 감독은 잭슨과의 재계약을 포기했고, 데릭스의 경우는 플레이는 괜찮았지만 데릭스만 재계약할 경우 외인 트라이아웃에서 1R 지명권이 날아가기 때문에 역시 재계약을 포기, 이후 2003년 외인 드래프트에서 엄청난 탄력을 자랑하는 스윙맨 앤트완 홀(1R 7순위)을 지명한 원주 TG는 2라운드에서 우승 공신 데릭스를 다시 선발(2R 14순위)하며 우승전력을 고스란히 보존할 수 있었다. 전시즌 우승 전력 중 주전 포인트가드 김승기가 이탈한 대신[9] 상무에서 제대한 국가대표 신기성이 가세한데다, 2년차가 되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김주성의 맹활약 덕분에 원주 TG삼보의 전력은 한층 더 강해졌고 03-04 시즌엔 팀 창단이래 처음으로 정규리그 1위(40승 14패)에 오른다. 유일한 라이벌 전주 KCC 이지스에 비해서도 골밑의 높이가 워낙 우세하다보니[10] 거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원주 TG삼보의 2년 연속 우승을 점쳤으나, 시즌 막판 신산 감독이 단행한 울산 모비스와의 임대 트레이드로 무스타파 호프(201cm)를 03-04 시즌 한정 베스트 센터였던 R.F. 바셋(202cm)로 바뀌면서 골밑의 우위는 전주 KCC 쪽으로 넘어가게 된다. 양팀이 만난 03-04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리온 데릭스는 R.F. 바셋에게 현저히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홈에서 열린 챔프전 최종 7차전에서 노마크 덩크슛을 놓치는 등 12득점(9리바)에 그치며 25득점-15리바를 올린 바셋에 완패, 팀의 챔프전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만다. 03-04 시즌 종료 후 외국인 선수 제도가 트라이아웃에서 자유계약선발로 바뀌면서 찰스 민렌드-R.F. 바셋 (이상 전주 KCC), 앨버트 화이트 (인천 전자랜드)를 제외한 기존 선수 전부가 재계약에 실패했고, 데릭스도 이후 다시는 한국 무대로 돌아오지 못했다.
KBL을 떠난 후, 데릭스는 필리핀 PBA 알라스카 에이시즈 팀에서 1시즌을 더 뛴 뒤 은퇴했다.


3. 은퇴 후


은퇴 후 개인사업 중인데, 미국 학생 운동선수들의 경기 영상을 촬영하여 프로 및 대학팀 스카우터들에게 제공하는 일이라고 한다.
[1] 역대 1위는 통산 트리플더블 10회를 기록한 앨버트 화이트, 공동 2위에는 데릭스와 함께 주희정, 크리스 윌리엄스가 이름을 올렸다.[2] 00-01 시즌 김인건 감독이 이끌던 안양 SBS의 데니스 에드워즈(192cm)-표필상(200cm)-리온 데릭스(205cm) 3인방을 일컫는다. 단순 키만 큰 게 아닌 빅맨을 볼 수 있는 선수 3명을 동시에 내보내는 전술로, 보통 파워 포워드형 외국인 선수가 3번으로 올라가고 기량이 딸리지만 키가 큰 토종 빅맨(ex> 표필상, 박도경)이 상대팀 단신 외국인 선수를 마크함으로써 수비적 이점을 가져가게 되는, 외국인 빅맨과 토종빅맨의 기량차가 컸던 KBL에서만 통용되던 전술이다. 이후 트리플 포스트 전술은 유행처럼 번지면서 02-03 시즌 창원 LG(에릭 이버츠(198cm)-박도경(202cm)-데릴 프루(200cm)와, 04-05 시즌 원주 TG삼보(아비 스토리(192cm)-김주성(205cm)-자밀 왓킨스(204cm)), 10-11, 11-12 시즌 원주 동부 프로미(윤호영(197cm), 김주성(205cm,) 로드 벤슨(207cm))에서 사용한바 있다. 최근에는 16-17 시즌 원주 동부에서 웬델 맥키네스(192cm)-김주성(205cm)-로드 벤슨(207cm)의 트리플 포스트를 내세웠었다.[3] 크리스 웨버, 주완 하워드의 대학 1년 후배다.[4] 리온 데릭스가 1학년때인 90-01 시즌, 미시간 대학교는 NCAA 토너먼트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백인센터 에릭 몬트로스가 이끌던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교에 패해 2년째 준우승에 그친다. 그 유명한 미스터 타임아웃 사건이 일어났던 그 시즌이다.[5] 00-01 시즌 초 안양 SBS의 주전라인업은 은희석(or 홍사붕)-김성철-김재훈-데니스 에드워즈-리온 데릭스였다.[6] 은희석(189cm)-김성철(195cm)이 나서는 1,2번 포지션의 높이도 엄청나서 당시 안양 SBS는 장신군단 청주 SK(임재현-로데릭 하니발-조상현- -서장훈)을 제치고 주전 평균 신장 1위 팀이었다.[7] 공익근무요원 소집해제[8] 데릭 존슨이 뛸 때만해도 단순 3점슈터의 역할만 수행하던 외인 데이비드 잭슨은 데릭스가 합류한 플레이오프를 기점으로 현란한 돌파능력을 선보이며 국내 수비수들을 농락, 02-03 시즌 챔피언 결정전 MVP까지 수상하게 된다.[9] 울산 모비스 get: 김승기원주 TG삼보 get: 정훈, 박정완[10] 원주 TG삼보: 김주성-리온 데릭스 vs. 전주 KCC: 찰스 민렌드-무스타파 호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