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버트 화이트
1. 소개
'''KBL 통산 트리플 더블 10회(역대 1위)'''에 빛나는 KBL 최고의 올어라운드 플레이어. 리카르도 포웰과 더불어 인천 전자랜드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손꼽힌다.
04-05 시즌부터 외국인선수 선발이 자유계약제도로 변경되던 당시, 트라이아웃 출신임에도 재계약에 성공한 단 세 명의 선수(찰스 민렌드, R.F. 바셋, 앨버트 화이트) 중 한 명이다.[1]
2. 선수 시절
2.1. KBL 입성 전
잉스터 고교 시절부터 화이트는 각종 매체에서 뽑는 전미 유망주 명단에 항상 포함되는 전국에서 주목하는 선수였고, 고교 졸업반 때는 '''미국 청소년대표팀'''에 선발되어 스테판 마버리, 샤립 압둘라임 등과 함께 1994 FIBA America U-18 챔피언십에 출전하기도 했다. 이후 전미 유망주들이 총 출동하는 맥도널드 올어메리칸까지 선발된 화이트는 케빈 가넷, 빈스 카터, 폴 피어스, 천시 빌럽스 등 쟁쟁한 선수들과 함께 뛰며 전국적인 명성을 확인하기도 했다.
대학시절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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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졸업 후 당시 최강팀 중 하나였던 미시간 대학교에 진학한 화이트는 신입생임에도 곧장 주전 스몰 포워드 자리를 꿰찼고, 평균 9득점-4.7리바운드를 올리며 활약하며 팀을 5시즌 연속 NCAA 토너먼트로 이끌지만, 1라운드에서 텍사스 대학교에 패해 탈락하고 만다.
2학년이 되어 본격적으로 팀 에이스가 될것으로 기대를 받던 화이트는 그러나, 시즌 도중 감독과의 트러블을 일으키며 시즌 전경기 출장정지라는 자체 중징계를 받게 되었고, 결국 팀을 이탈해 미주리 대학교로 전학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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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생의 출장제한 규정으로 인해 한시즌을 유급한 화이트는 미주리 대학교 2학년으로 편입, 97-98시즌부터 미주리 타이거즈의 유니폼을 입고 뛰게 되었다. 첫시즌부터 평균 10.9점-4.9리바-2.1어시스트를 올리며 팀의 주축멤버로 자리잡은 화이트는, 3학년때는 평균 '''16.3점-8.7리바-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내 득점-리바-어시스트 1위의 독보적인 에이스가 되었고, 미주리 대학교를 4년만에 NCAA 토너먼트로 이끈다. 미주리 대학교가 1회전에서 뉴멕시코 대학교에 패하면서 미시간대 신입생 시절이후 또한번 1회전 탈락의 쓴맛을 보지만, 화이트는 고교시절의 명성과 실력을 서서히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에 자신감을 얻은 화이트는 3학년을 마치고 얼리엔트리로 NBA 드래프트에 나서게 된다.[2]
하지만 1999년 NBA 드래프트는 엘튼 브랜드, 배런 데이비스, 숀 매리언, 론 아테스트, 스티프 프랜시스 등... 향후 NBA 10년을 주름잡는 선수들이 대거 등장한 한해였고,[3] 대학기준으론 만능선수지만 NBA 레벨에선 모든게 어정쩡했던 화이트는 어느 팀에도 지명받지 못한다.
NBA 드래프트에서 낙방한 화이트는 미국 하부리그 CBA의 수폴스 스카이포스에 입단, 2시즌을 보냈고, 이후 또다른 하부리그인 USBL을 거쳐 2001년엔 영국 리그에 진출했다. 2002년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02-03 시즌 CBA 락포드 라이트닝에서 뛴 화이트는 시즌 종료 후 02-03 시즌 CBA 세컨드팀에 선발되기도 한다. 이후 2003년 KBL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에 지원한 화이트는 전체 2순위[4] 로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에 뽑히며 만 26세의 나이로 처음 한국 무대를 밟게 된다.
2.2. KBL 시절
2.2.1.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2003~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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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시절 기록
02-03 시즌 7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던 인천 전자랜드는 새 외국인 콤비 화이트-제이슨 윌리엄스(200cm)와 주포 문경은의 맹활약 덕분에 시즌 내내 상위권을 달렸고, 4라운드에 7연승, 6라운드엔 6연승 가도를 달리며 리그 4위라는 호성적을 거둔다. 골밑이 약한 팀 사정상 파워 포워드로 나선 화이트는 "더블더블머신" 윌리엄스와 함께 시즌 전경기를 소화하며 '''평균 26.2점-8.8리바-7.5어시스트'''를 기록했는데, 득점은 찰스 민렌드(전주 KCC)에 이어 전체 2위였고, 포워드임에도 불구하고 '''어시스트 전체 3위'''에 오르며 KBL 팬들에게 '''"포인트포워드"'''의 진수를 보여주었다.[5]
특히 KBL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트리플 더블을 02-03 시즌 한시즌에만 무려 8번이나 달성하며, 기존에 리온 데릭스가 00-01 시즌 안양 SBS 시절 세웠던 기록(6회)을 넘어섰다. 1라운드 서울 SK와의 경기에서 첫 트리플 더블을 기록한후 내내 소식이 없다가, 4라운드에 2번, 그리고 시즌 막판이던 6라운드에만 무려 6번의 트리플더블을 기록했는데, 리그 최종전이었던 원주 동부와의 경기에서 화이트는 득점은 18점에 그쳤지만 리바운드 19개, 어시스트 19개를 기록하며 시즌 8번째 트리플더블과 동시에 20점-20리바-20어시스트라는 엽기적인 트리플더블을 세울뻔하기도 했다. 그러나... [6]
6강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당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서장훈-주희정 콤비가 건재한 리그 5위 서울 삼성의 우위를 점쳤지만, 부천 홈에서 열린 1차전에서 화이트가 18점-10리바-12어시로 트리플더블을 올리며 맹활약하며 첫승을 가져갔다. 이에 서울 삼성 김동광 감독은 시즌내내 출장기회가 거의 없었던 파이터 수비수 김택훈을 2차전 선발로 출장시켜 화이트를 막게 했고, 김택훈의 파울성 수비에 평정심을 잃은 화이트는 슛성공률 16%, 턴오버 6개로 최악의 플레이를 보이며 8점에 그쳤고 2차전을 내준다. 이후 절치부심한 화이트는 3차전에서 본격적으로 득점사냥에 나서며 42점을 올렸고 인천 전자랜드는 연장 접전끝에 서울 삼성을 물리치고 '''인천 프랜차이즈팀 사상 최초로 4강'''에 진출한다.
디펜딩 챔프 원주 TG삼보와의 4강전에서 팀은 비록 김주성-리온 데릭스의 높이에 막혀 스윕패를 당했지만, 3경기 평균 25.7점-10리바-6.7어시스트로 맹활약한 화이트는, 다음시즌 외국인선수 선발제도가 자유계약제도로 변경됨에도 불구, 인천 전자랜드 팀 수뇌부의 큰 신뢰를 얻으며 재계약을 맺었다.
4강 신화의 주역 유재학 감독이 물러나고[7] 부임한 신임 감독은 FA가 된 전시즌 주전 슈팅가드 조동현을 내준 대신 2살 많은 수비전문선수 박규현과 단신 포인트 가드 김태진을 각각 2억 4100만원, 1억 1500만원의 거금을 주고 데려온데다, 최명도를 벤치로 밀어내고 목포대 출신 2년차 가드 박상률을 주전 1번으로 내세우는 등 당최 이해할수 없는 행보를 계속했고, 여기다 화이트의 파트너로 데려온 전 NBA 리거 하이램 풀러(203.3cm)[8] 는 자유계약 선수라곤 믿기지 않는 허술한 플레이만 보여주다 6경기만에 기량미달로 퇴출된다. 풀러에 이어 여수 골드뱅크-창원 LG 시절 괜찮은 센터였던 마이클 매덕스(199cm)에, 전 NBA 리거 가이 루커(204.2cm)[9] 까지 모두 함량미달이라, 전시즌 4강팀 인천 전자랜드는 주전 멤버 중 문경은-화이트 단 두명만 선수구실을 하는 팀으로 전락해버렸고, 평균 23.3점-9.5리바-5.4어시로 변함없는 활약을 보여준 화이트의 분투에도 불구 인천 전자랜드는 시즌 최하위로 추락하고 만다.
05-06 시즌 가 단장으로 물러나고 제이 험프리스를 KBL 최초의 외국인감독으로 임명한 인천 전자랜드는 화이트를 한번더 신임하기로 하고, 새 외국인선수로 유럽리그에서 이름을 날린 리 벤슨(203cm)을 데려오며 전력을 정비한다. 하지만 믿었던 화이트가 2번째 경기만에 무릎부상을 당하며 이탈했고, 대체 외국인선수들(해롤드 아세노, 온타리오 렛)과 기존 국내선수들 모두 허접한 경기력만 보여주면서, 인천 전자랜드는 그저 리 벤슨의 원맨팀으로 전락하며 리그 최하위로 추락하고 만다.
3라운드 들어 돌아온 화이트가 팀의 연패를 잠깐 끊어주긴 했지만, 3라운드 중반 갑자기 토종 에이스 문경은을 서울 SK에 트레이드로 내보내고 고작 임효성, 김일두를 받아오는 단장의 희생정신 덕분에 인천 전자랜드는 바닥을 벗어나지 못했고, 많은 KBL 팬들은 이때부터 '''개그랜드'''라는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새롭게 KBL에 입성한 자유계약 외국인선수들과의 기량차이가 슬슬 드러난데다 부상 후유증까지 있던 화이트는 이전 2시즌에 비해 활약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결국 4라운드 막판 팀으로부터 퇴출통보를 받고 3시즌간 뛴 인천을 떠난다.[10]
2.2.2. 원주 동부 프로미 (2006~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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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시즌 초 새로 뽑은 외인 로베르토 버거슨(193cm)의 저조한 득점력으로 고민하던 원주 동부 전창진 감독은 단 4경기만에 버거슨을 퇴출시키고 앨버트 화이트를 영입한다. 신기성의 FA 이적 후 제대로 된 1번이 없어 고민하던 원주 동부로선 포인트포워드 화이트의 리딩능력이 필요했고, 거기에 김주성의 아시안게임 출전 공백을 대비 팀의 주득점원 역할까지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06-07 시즌은 핏마 교주, 단선생, 민둘리, 오예돼지 등 자유계약으로 선발된 유럽 빅리그 출신들이 판을 치던 시즌이었고, 자유계약선발 첫시즌(04-05)까지만 해도 어느정도 활약해주던 화이트는 이 괴물 외인들의 틈바구니에서 명함을 내밀기 힘들었다. 거기다 화이트는 전창진 감독이 가장 싫어하는 "공격 막히면 나몰라라 난사"를 일삼으며 게임을 망치는 일이 잦았고, 기대했던 리딩능력조차 안드로메다로 가며 원주 동부는 하위권으로 추락하고 만다. 결국 화이트는 4라운드를 마치지 못한채 퇴출되고 슈터 빈센트 그리어(189cm)로 교체된다.
원주 동부에서 방출된 후 미국으로 돌아간 화이트는 CBA 피츠버그 익스플로전에서 뛰며 07-08 시즌 평균 12.6득점-4.8리바의 여전한 활약을 보였고, 이후 푸에르토리코, 베네수엘라, 이탈리아, 캐나다 리그 등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베네수엘라 리그 시절엔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3. 시즌별 성적
4. 기타
- 고교시절이던 1994년 미국 청소년대표팀에 뽑혀,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1994 FIBA America U-18 대회에 출전했고 미국팀을 우승으로 이끈바 있다. 이듬해 열린 세계대회 때는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오른쪽 아래(12번)이 화이트다. 스테판 마버리(5번), 샤립 압둘라힘(13번)의 앳된 모습도 보인다.)
- 미시간 대학교 신입생이던 1995년, 1회 나이키 훕서밋에 나서는 미국 대표팀에 케빈 가넷, 스테판 마버리, 샤립 압둘라힘 등과 함께 선발되어 세계 유망주 올스타와 경기를 치렀다. 이 경기에서 화이트는 팀내 최다인 13점을 올리며 미국팀의 승리를 이끌었는데, 이때 세계 올스타팀에는 9년후 KBL에서 만나게 될 현주엽(고려대 1학년)이 뛰고 있었다.[11]
- 2002년에 미국 전체를 떠들썩하게한 미시간 대학교 농구부 금품수수 스캔들 당시 크리스 웨버, 로버트 트레일러 등과 함께 용의선상에 올랐던 선수 중 한명이다. 1990년대 초반 Fab Five(크리스 웨버, 주완 하워드, 제일런 로즈, 지미 킹, 레지 잭슨)을 비롯, 수년간 유망주들을 대거 스카웃하며 일약 강팀의 반열에 올랐던 미시간 대학교가, 알고 보니 크리스 웨버 등 고등학교 선수들의 대학 입학을 빌미로 금품을 제공했던 사실이 드러났고, 결국 미시간 대는 2002-03시즌 포스트시즌 출전 금지, 1992, 93시즌 준우승과 1997년 NIT 우승을 포함한 7시즌 기록 말소, 선수 스카웃 금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화이트의 경우 미시간 대학교 입학 조건으로 총 3만 7천달러를 받은 혐의로 FBI 조사를 받았는데, 최종적으로 기소되지는 않았다.
[1] 하지만 이 중 바셋은 04-05 시즌 단 3경기만에 한계를 드러내며 퇴출되고 만다.[2] 미주리대 관계자들을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1년 더 대학을 다니고 드래프트에 나가라고 설득했지만, 자녀를 부양(;;)해야 한다는 이유로 조기 진출을 선택했다.[3] 무려 2라운드 전체 57순위로 뽑힌게 마누 지노빌리였고, 크리스 앤더슨은 아예 지명조차 받지 못했다.[4] 1순위는 전주 KCC에 뽑힌 찰스 민렌드.[5] 이바람에 팀의 주전 가드들인 최명도, 조동현는 그 비중이 크게 줄어들어 버린다.[6] 이 날(2004년 3월 7일)은 KBL 기록사에 가장 수치스러웠던 날로, 이 경기에서 인천 전자랜드의 문경은은 3점슛 22개로 무려 66점을 올렸고, 원주 동부 김주성은 21점-15리바-'''11블록'''을, 만년 벤치멤버 정훈은 24점-12리바-10어시스트로 이 경기에서 총 세 선수가 트리플 더블을 올렸다;;; 같은 날 울산 모비스 우지원이 3점 21개 포함 70점을 올렸는데, 이 모든 게 문경은, 우지원 두 선수의 3점슛왕 타이틀 경쟁 때문이었고, 팬들의 비난이 거세지자 KBL은 이후 기록에 의한 시상을 폐지한다. [7] 계약 종료 후 재계약하지 않고, 본인의 친정팀(기아자동차)이라 할 수 있는 울산 모비스 신임 감독을 취임했다.[8] 03-04 시즌 NBA 애틀랜타 호크스에서 총 4게임을 뛰었다.[9] 02-03 시즌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달랑 3게임을 뛰었다. 앞서 하이램 풀러도 그렇고, NBA에서 단 몇경기 뛴 선수들 중에는 활용이 애매한 롤플레이어 수준이 워낙 많아 NBA 경력만 가지고 실력을 판단해선 안된다. 하지만 우리의 는...[10] 화이트의 대체 외국인으로 2003년 NBDL(지금의 NBA D리그) 퍼스트팀 출신의 테픈 해밀턴(197.6cm)이 합류하는데, 여기서 또 개그랜드다운 사건이 터진다. 테픈 해밀턴과 기존에 있던 리 벤슨과의 신장합계가 400.6cm이 되어 6mm 차이로 영입이 불가능하다는게 확인된 전자랜드는 이에 팀의 A to Z였던 리 벤슨을 대구동양의 안드레 브라운(202cm으로 벤슨보다 1cm 작다;;)과 트레이드하는 결단을 한다. 역시나 의 작품.[11] 현주엽은 한쿼터(10분)만 뛰면서 슛 2개에 턴오버 하나만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