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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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박규채(朴圭彩)
'''아호'''
범농(凡農)
'''출생'''
1938년 12월 15일(85세), 인천광역시
'''신체'''
172cm, 71kg
'''학력'''
양정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농학과 학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문학석사
고려대학교 자연자원대학원 이학석사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데뷔'''
1962년 서울중앙방송 공채 탤런트[1]
'''가족'''
슬하 1남 2녀
'''종교'''
불교

실제로 시청자들에게 좀 더 낯익은 모습은 이 영상과 같다.
1. 개요
2. 배우 활동
3. 출연작
3.1. TV드라마
3.2. 라디오 드라마
3.3. 영화
4. 기타


1. 개요


대한민국의 연기자 및 영화배우. 1938년, 일제강점기 경기도 인천부(현 인천광역시)에서 출생하였다. 본격적으로 연기자 활동하기 이전엔 1957년에 연극배우로 데뷔 하였으며, 1961년에 문화방송 라디오 성우 연기자로 활동 했다.

2. 배우 활동


1962년 한국방송공사 전신인 서울중앙방송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였다. 한국방송공사 공채 출신이나, 주요 활동 작품은 문화방송 작품이 많은 편. 특히 80년대 들면서 제1공화국에서 이기붕역을 시작으로 공화국 시리즈 조선왕조 오백년 시리즈에 많이 출연하였다. 2006년 연개소문이후로는 간간히 얼굴을 비추는 편.
주로 현대사를 다룬 드라마에 많이 출연했으며, 이기붕, 김성곤 등의 정치인 역할도 여러번 담당했다.

3. 출연작



3.1. TV드라마



3.2. 라디오 드라마


  • 일요 기획드라마 이웃(MBC) - 나레이션

3.3. 영화



4. 기타


거부실록에서 김갑순역으로 '민나 도로보데스'[2]라는 대사를 하였는데, 원래는 실존 인물인 김갑순이 자주하던 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방영 당시 희대의 사기사건인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이 터지고 그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이 상황을 풍자하는 80년대 유행어로 발전하였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기간에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 지지하는 찬조 연설을 하였는데, 이는 최초로 야당 후보 찬조 연설한 연예인이었다고 한다. 당시 제5공화국 끝 무렵이었지만, 연예인들이 정치적 소신을 내기는 쉽지가 않았었던 걸 감안하면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이 일로 방송계 윗분들에게 단단히 찍혀서[3] 1987년 ~ 1988년에는 방송가에서 거의 퇴출 상태로 있었다가, 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퇴출이 없던 일도 있었다. 결국 이 때 고생을 했던 탓에 정치 쪽에는 깊이 관여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담으로, 김영삼이 개신교 신자인데 비해 박규채는 불자인데, 나중에 이에 대해 묻자 정치적 신념과 종교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현답을 남기기도 했다.
위의 찬조연설 등의 인연으로 김영삼대한민국 대통령국가장 때 장례위원회로 일원으로 선정되었다.
연예계에서 주당으로 유명했으나, 전립선암 2기를 진단받은 이후부터는 을 끊었다고 한다.

[1] 정식 데뷔 이전에 1957년 연극 데뷔, 1961년 문화방송 라디오 성우연기자 특채로 데뷔하였다.[2] みんな どろぼう(泥棒)です, '모두가 도둑놈들이다.'라는 뜻 이다.[3] 좀 더 정확히 얘기자하면 KBS 정구호와 MBC 황선필이 아직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이었고, 아무리 민주화가 진행되고 노조가 결성되었고 시청료 거부운동으로 시청료 징수율이 50% 밑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눈치를 안볼수 없게 된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꼬장을 부리는 임원진이나 중간간부가 있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