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일

 

역임한 직위
[ 펼치기 · 접기 ]


[image]
프로필
성명
박세일
출생
1948년 5월 12일
출생지
서울특별시
사망
2017년 1월 13일(향년 68세)
정당
[최종]
가족
아내 조미경
아들 박태정, 딸 박선정
본관
밀양 박씨
병역
병역면제(고도근시)
종교
불교{법명: 영성(領星)}[1][2]
1. 개요
2. 여담
3. 선거이력
[clearfix]

1. 개요


朴世逸
대한민국정치인이다.
1948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서울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3]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미국 코넬 대학교 대학원 노동경제학 석사 및 동 대학원 경제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한국산업은행 조사부 법제조사과에서 근무하다가 한국개발연구원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그리고 모교인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경제학 교수를 지냈다.
1994년부터 1998년까지 김영삼 정부의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 및 사회복지수석비서관을 지냈다. 당시 정책기획수석으로 김영삼 대통령이 1994년말 호주 시드니에서 발표했던 세계화 선언을 주도하였다. 사실상 21세기 대한민국을 규정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혹은 미국화 노선을 국내에 처음 제시한 인물이다. 박세일의 세계화론은 이후 대한민국 보수정당의 지배적인 이념이 되었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집권한 민주당계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도 받아들이면서 박세일이 제시한 정책과제들이 차례로 실현되었다. 김영삼 정부에서 추진하다가 실패했던 로스쿨이 대표적이다. 참고 시론.
김영삼 정부 이후로는 한국개발연구원 정책경영대학원 초빙석좌교수를 지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제 국회의원 제2번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2005년 신 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ㆍ공주 지역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 통과에 반발하여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고 이성구서울특별시의회 의장이 승계하였다.
2006년부터 새로운 보수의 과제로 선진화 개념을 주장하면서 한반도선진화재단을 창립하여 이사장을 지냈다.
2012년 초 국민생각을 창당하였다. 같은 해 치러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생각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초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 김회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7년 1월 13일 오후, 위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68세. #

2. 여담


  • 한국법경제학회의 초대 회장을 지냈는데, 한국법경제학회는 그가 출연한 기금을 토대로 2009년부터 매년 위공법경제학상을 시상하고 있다.# '위공'(爲公)은 《예기》의 '天下爲公'이라는 구절에서 따온, 박세일의 아호이다. #
  • 2019년에 서울대학교 로스쿨 교수들이 그의 주저 《법경제학》의 개정판을 냈다.

3.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2번)

-
당선
2005.3.15 의원직 사퇴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서초 갑)

7,101 (7.32%)
낙선 (3위)


[최종] [1] 서울대학교 총불교학생회 출신이며, 초대 청불회장이기도 하다.[2] 참고로, 법명은 아호이기도 하다.[3] 네이버 프로필에는 서울법대 졸업으로 써 있지만, 한국개발연구원 프로필에는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으로 기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