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임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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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기업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2. 일생
1919년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태어났다. 만주 용정의 광명중학교를 마치고 만주국의 신경군관학교를 뛰어난 성적으로 수석 졸업하여 만주국 황제 강덕제로부터 은사품으로 금시계를 받았고,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제56기로 졸업했다. 봉천육군비행학교 조종과를 수료하고 만주군 항공부대의 중위로서 신의주 비행장의 전투대에 배치되어 근무하다가 일본 제국이 패망하였다.
광복이 되며 귀국하여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에서 일하며 남북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에도 함께 참가했다. 방원철, 최창륜 등과 달리 조선인민군 창설에 관여하지 않았고,[1] 1947년 월남하여 이범석이 이끄는 조선민족청년단에서 교무처장으로 일했다.
1948년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를 특7기로 졸업하고 대위로 임관했다. 육군보병학교 교장, 국방연구원 초대 원장 등을 지냈다. 1961년 만주군 1년 후배였던 박정희를 도와 5군단장으로서 5.16 군사정변에 참여하였고, 쿠데타가 성공하자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이 되었으며, 초대 건설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러나 건설부장관에 재직 중이던 1963년, 김동하, 박창암 등 군사정변 세력 내의 함경도 인맥이 연루되어 대거 제거된 반혁명사건으로 전격 체포되어 최초 사형을 구형받고, 이후 복역하던 중 3년 뒤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이후 말년을 한국항공정비주식회사 사장으로 지냈고, 1985년 11월 12일 사망했다.
3. 여담
- 일본에서는 삼무사건이라는 실패한 쿠데타 기도에 연루되었다는 소문도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