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섭

 

'''서울특별시 마포구청장'''
'''민선1-2기'''

'''민선3기'''

'''민선4기'''
38-39대
노승환

'''40대
박홍섭'''

41대
신영섭
'''민선4기'''

'''민선5-6기'''

'''민선7기'''
41대
신영섭

'''42-43대
박홍섭'''

44대
유동균
[image]
1942년 7월 18일(음력 1942년 6월 6일) ~
1. 소개
2. 가족관계
3. 선거이력


1. 소개


朴弘燮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정치인이다. 종교개신교(장로회)이다.[1]
1942년 7월 18일에 경성부 대흥정(現 서울특별시 마포구 대흥동)에서 태어났고, 서울토박이이다.[2] 서울용강초등학교, 숭문중학교, 숭문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을 수료하였다.
병역은 미루고 미루다 고령으로 인하여 병역면제되었다.
이후 노동운동에 참여하여 크리스찬아카데미,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에서 활동하였다. 1980년대 초반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다 해직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마포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평화민주당이자 노웅래(더불어민주당)의원의 부친인 노승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통일민주당 노동정책연구소(위원장 노무현)에서 상임부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합류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 공천에서 민정계 박명환에 밀렸다. 김영삼 정부 때는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등을 지냈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마포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구청장인 새정치국민회의이자 1988년에 붙었던 노승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마포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으로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무소속으로 마포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였다가 한나라당 신영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하였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마포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마포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2. 가족관계


부인 차경애 여사와 2남이 있다.

3. 선거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마포구 갑)
통일민주당
25,012 (24.71%)
낙선(3위)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 마포구청장)
한나라당
64,345 (47.61%)
낙선(2위)

2002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 마포구청장)
한나라당
'''72,794 (54.72%)'''
'''당선'''

2006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 마포구청장)
무소속
23,858 (15.61%)
낙선(3위)

2010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마포구청장)
민주당
'''83,653 (49.17%)'''
'''당선'''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 마포구청장)
새정치민주연합
'''102,122 (53.11%)'''
'''당선'''


[1] 현재의 마포구 로고는 박홍섭 구청장에 의하여 만들어졌는데, 마포의 A 부분은 알파, O 부분은 오메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의 독실한 신앙이 반영된 것을 볼 수 있다.[2] 그가 진정한 서울토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대흥동이 일제강점기의 일부 시대를 빼고(이때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 대흥리였던 적의 시기는 1914년 ~ 1936년까지였다.) 경성부에 속했던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조선 시대에는 성저십리였다 할지라도 한성부에 속했고 서부 용산방 옹리하계(甕里下契) 지역에 속했기 때문에 더 큰 의미가 있다. 또한 그는 그의 조상을 포함하여 손자까지 5대째 대를 이어 살아왔기 때문에 진정한 서울 토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