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프랑스 제20대 대통령
발레리 마리 르네 조르주 지스카르데스탱
Valéry Marie René Georges Giscard d'Estaing'''[1]
'''출생'''
1926년 2월 2일
독일국 라인란트팔츠 주 코블렌츠
'''사망'''
2020년 12월 2일 (향년 94세)
'''국적'''
프랑스 [image]
'''신체'''
189cm
'''학력'''
장송드사이 고등학교
루이르그랑 고등학교 (졸업) (-1942년)
리세 루이르그랑 프레파 과정 (학사)
에콜 폴리테크니크 (공학 / M.A.) (-1946년)
국립행정학교 (졸업) (-1951년)
'''정당'''
'''대중운동연합''']] (2002년-2004년)'''
'''직업'''
정치인, 공무원
'''가족'''
父: 에드몽 지스카르데스탱
母: 마르테 지스카르데스탱
弟: 올리비에르 지스카르데스탱 (기업인)[2]
배우자: 아네이몬 지스카르데스탱 (1952년 결혼)
슬하: 2남2녀
'''종교'''
가톨릭
'''재임기간'''
'''1974년 5월 27일1981년 5월 21일'''
1. 개요
2. 일생
2.1. 유년기
2.2. 정계 입문
2.3. 사망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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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전 대통령. 1974년에서 1981년까지 제20대 프랑스 대통령을 지냈다.

2. 일생



2.1. 유년기


프랑스 산업가 집안의 아들로, 경제학자 아버지 에드몽 지스카르데스탱이 루르 점령 때 임지로 가 있던 독일 코블렌츠에서 태어났다. 루이 르 그랑 명문 고등학교 재학 당시 레지스탕스에 들어가 저항군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46년에 에꼴 폴리테크니크를 6위로 졸업하고 1948년에는 국립행정학교에 입학한다. 그 전에 캐나다 퀘벡 주몬트리올에서 대학강사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프랑스 국립행정학교(ENA) 졸업 후 프랑스 학술원의 연구원으로 있었다. 

2.2. 정계 입문


1956년 29세의 젊은 나이로 하원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1962년에는 샤를 드골 대통령에 의해 재무부 장관으로 발탁되었으나 1966년 재정수지 흑자전환에도 불구하고 미국 수입품에 과다한 관세를 부과한 것과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이 노동자의 파업을 유발한 것이 문제가 되어 경질되었다.
이 후 드골 대통령과 결별하고 독립공화당을 창당했고, 1969년 조르주 퐁피두 내각에서 재무장관으로 다시 임명되었다. 1974년 퐁피두 대통령이 갑자기 사망하여 그 후임을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에서 프랑스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과 격돌하여 1차 투표에서는 패하였지만 토론회에서 프랑수아 미테랑을 압도하면서 2차 투표에서 승리하여(겨우 40만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1973년 오일 쇼크로 인한 경기침체로 지지율이 나빠져서 1977년 지방선거에서 기록적인 참패를 거두었고, 덕택에 1978년 총선에서 실권을 넘겨줄 것으로 예측되었지만 의외로 우파가 득표율에서 간발의 차이로 승리를 거두면서 예상과 다르게 실권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지방선거에서 계속해서 패배하는 악재도 있었다. 그럼에도 미테랑에게 여론조사상으로 상당히 앞서 있었기에 1980년까지만 해도 재선될 것으로 예측되었지만 경기침체가 계속된데다가 2차 선거를 앞두고 토론회에서 미테랑에게 밀리는 바람에 발목을 잡혀 1981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게 되면서 결국 재선에 실패한다.
재임 중 유럽 경제공동체(EEC)를 강화하여 뒤에 유럽 연합(EU)으로 발전하게 하는 초석을 닦았으며, 서방 7개국 정상회담(G7) 창설에서도 주도적 구실을 맡았다. 1984년 프랑스의 전직 대통령으로써는 처음으로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이력도 있다.

2.3. 사망


2020년 9월 폐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12월 2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사망 원인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라고 한다. 아무래도 최근까지 앓아왔던 폐질환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병세가 악화되어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국가의 종, 진보와 자유의 정치가"라는 추모 성명을 발표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스 전직 대통령들인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수아 올랑드도 추모글을 올리거나 성명을 냈다.
5일. 장례식은 생전에 살던 중부 루아르주 오숑 지역에서 조용히 열렸다.# 가족 및 지인 약 40명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됐다. 프랑스 국기와 유럽연합(EU)기로 둘러싸인 관을 운구됐다.

3. 여담


ENA, EP, EN 세 학교 졸업장을 모두 다 가지고 있다.
189cm의 장신으로 프랑스 대통령 중 샤를 드골 다음으로 자크 시라크와 함께 2위에 올라있다.
자기 자신이 귀족 가문 출신[3]임에도 프랑스는 공화국이란 이유로 귀족 가문 출신의 명사들에게 작위를 붙여서 공식 호칭을 해주는 관례를 폐지한 바가 있다. 프랑스는 1870년 나폴레옹 3세프랑스 제2제국이 무너지고 제3공화국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식적인 귀족 제도를 폐지했지만, 앞서 말했듯이 귀족 칭호를 붙여주는 정도의 관례는 여전히 존재했는데 이를 폐지한 것.
2020년에 독일 여기자가 2018년 당시 인터뷰 중 자신을 성추행 했다고 폭로하며 지스카르 데스탱을 고소했다.
역대 프랑스 대통령 중 가장 장수를 누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데스탱은 엘리자베스 2세(1926년 출생) 영국 국왕과 동갑이기도 하였다. 데스탱 재임기간 중에 총리를 역임하고 차차기 후임 대통령을 역임한 자크 시라크(1932년 출생)가 먼저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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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에 엘리자베스 2세, 지미 카터와 함께[4]

[1] 성(姓)이 지스카르데스탱이다. 지스카르와 데스탱이 합성된 성.[2] WFC 의장을 역임하기도하였다.[3] 원래 프랑스에선 샤를 드골처럼 귀족가문의 출신이면 성 앞에 전치사인 de(의 출신)를 붙였었다. 그래서 본래 지스카르데스탱의 데스탱도 에스탱(Estaing)이라 불러야 하나 귀족가문이었으므로 de가 붙어 모음 충돌로 데스탱(d'Estiang)이 된 것이다.[4] 엘리자베스 2세도 영국 역사상 최장수 국왕이고 지미 카터 또한 미국 역대 최장수 대통령이다. 이 둘 모두 현재까지 살아있으며,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도 94세로 장수했고 가장 장수한 프랑스 대통령이지만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