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릉
1. 개요
한국사 및 중국사 속 임금들의 능호(陵號). '''宣'''릉과 '''禪'''릉이 있다.
2. 고려 현종의 宣陵
고려왕조 제8대 군주 현종 원문대왕이 안장된 릉. 당시 고려 행정구역 상 개경 송악산 서쪽 언덕(松嶽 西麓)에 있으며 현 북한의 행정구역상 개성특별시에 위치해 있다.
현종은 1031년 5월 본궐 중광전(重光殿)에서 붕어했다. 같은 해 6월, 태자 덕종이 왕릉에 안장했고 제사절차를 마쳤다.
능호는 선릉(宣陵)으로 선(宣) 자는 한자 의미론 베풀다란 뜻이 있고 시법 상으론 '선하고 성스러우며 견문이 넓은 경우를 선이라 한다.(聖善聞周曰宣)'라고 한다. 현종은 국가를 중흥시킨 임금이니 宣 자에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1]
2.1. 유적
현재 남아있는 유적으로 당시 구조를 추측한다면, 선릉은 총 4층으로 구성되있었으며 한 층마다 문인석 1쌍이 마주보고 서 있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높은 층에 있는 무덤은 병풍석에 둘러 쌓여져 있고 병풍석엔 십이지신상이 그려져 있던 것으로 보인다.
현 능역 앞은 옥수수밭이다. 현종의 선릉은 북한 치하의 고려왕릉 중 '그나마' 보존이 잘 되어 있는 편에 속한다.
2.2. 진짜 선릉의 유적인가?
이 무덤이 정말로 현종의 선릉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많다. 조선 세종 때까지만 해도 현종의 선릉은 수호인이 있어 어느 정도 관리가 되었던 것 같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선릉을 비롯한 고려 왕릉 대부분이 관리가 소홀해졌다.
조선현종 때의 기록을 보면 “이미 봉토는 다 훼손되었고, 사면석물은 대부분 매몰되어 어느 것이 현종의 능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라고 할 정도.
이후 순조 때와 고종 때 무덤에 왕릉 표석(表石)을 세우고 산지기를 두어 관리했지만, 여러 차례 도굴당한 것으로 보인다.
광무 9년(1905년) “고려 현종(顯宗) 선릉(宣陵)의 산지기가 보고하기를, ‘음력 정월 14일 밤에 알지 못할 어떤 놈이 능을 허물었습니다’라고 하기에 즉시 달려가 봉심하니 능이 허물어 진 곳이 3분의 1이나 되고 앞면의 판 곳은 깊이가 3, 4자 가량 되었습니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러한 기록을 볼 때 제1릉을 현종의 선릉으로 새로 파악한 것은 조선후기였고, 발굴된 유물도 거의 없기 때문에 제1릉을 선릉이라고 확증하기는 어렵다는 것.
선릉군 제1릉에서 남쪽으로 500m 정도 떨어져 제2릉이 자리 잡고 있고, 제1릉에서 남동쪽으로 200m 정도 떨어져 제3릉이 있다. 제2릉과 제3릉은 현재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없다. 선릉에 비해 제2릉과 제3릉이 규모 면에서 조금 작은 편이다. 현종의 제1비인 원정왕후가 1018년(현종 9) 죽은 뒤 화릉(和陵)에 장사지냈는데, 현종의 무덤에 가깝게 조성됐다는 점에서 두 능 중 하나가 화릉일 가능성이 있다. 현종의 제3비인 원성태후[2] , 제4비인 원혜태후[3] 의 무덤일 수도 있다.#
3. 조선 성종의 宣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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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조선 9대 임금 성종과 정현왕후가 안장되어있는 왕릉. 성종릉 또는 성종대왕릉이라고도 한다. 바로 한 울타리에 성종의 왕자이자 조선 11대 임금 중종이 안장되어있는 정릉(靖陵)이 있는데 이들 왕릉을 합쳐서 '''선정릉(宣靖陵)''' 또는 '''삼릉(三陵)'''이라고 부른다. 주변에는 선릉의 능침사찰[4] 인 봉은사가 있다.
3.1. 역사
1494년 조선 9대 왕 성종이 승하하게 되면서 당시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저자도리에 안장되었고 1530년 계비 정현왕후가 승하하면서 같은 곳에 왕릉으로 안장되어 지금의 선릉이 만들어졌고 이후 1544년 중종이 승하하면서 바로 한 울타리에 있는 왕릉인 정릉에 안장되어서 선정릉 및 삼릉이 형성되었다.
서기 1593년, 임진왜란 와중에 정릉처럼 도굴당했다. 선정릉 도굴사건 항목 참조. 그래서 빈 무덤이다.
1963년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일대가 서울특별시 성동구로 편입되었고 1975년 강남구로 분리되면서 이 지역일대가 개발화되었다. 그러나 선정릉 및 삼릉일대는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개발대상에서 제외되었고 오늘날에는 이러한 영향으로 지금은 도심화된 강남 한복판에 있는 왕릉이 되었다.
서쪽으로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의 선릉이 있고 동쪽으로 중종의 정릉이 있으며 선릉과 정릉이 멀리 떨어져있지만 한 울타리에 있었고 강남 한복판에서도 보기 드물게 소나무숲과 야산 등이 있기 때문에 개발 이전의 옛 광주군 언주면 시절의 강남을 말해주고 있다.
3.2. 여담
- 서울 지하철 2호선 선릉역이 개통되면서 서울 지하철 역사로는 최초로 조선왕릉 명칭이 들어간 역사가 되었고, 1996년에는 서울 지하철 7호선 (후일 6호선과 환승역이 되는) 태릉입구역이 두번째로 왕(후)릉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고, 2012년에는 분당선 강남 연장선에서 선정릉역이 다시 선릉과 정릉 묘역의 이름을 붙였다. 한편, 왕릉의 이름이 붙여진 역들이 다 성종/중종과 그 왕후의 릉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는 것은 우연하지만 신기하다.[5]
- 선릉의 올바른 발음은 유음화에 따른 [설릉]이 맞다.
- 현재 삼릉 모두 국가공인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유네스코 공인지정 세계문화유산이다.
4. 후한 헌제의 禪陵
헌제 유협이 산양왕으로 있던 현 허난성 슈우현에 만들어진 헌제의 능인데, 옛 기록은 없고 근래에야 보이는 것을 보아 삼국지빠들에게서 관광수입을 창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짜 유적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