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 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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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K FOLEY '''
1. 프로필
2. 소개
3. 데뷔 전
4. 현역 시절
5. 은퇴 후
6. 이모저모
7. 둘러보기


1.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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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kind
Dude Love
Cactus Jack[1]
Mick Foley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본명'''
Michael Francis Foley Sr.[2] (마이클 프란시스 폴리 시니어)
'''별칭'''
'''The Hardcore Legend'''
the king of hardcore
Mankind
Cactus Jack
Dude Love
good ol' saint mick
'''출생일'''
1965년 6월 7일
'''출생지'''
미국 인디애나 주 블루밍턴
'''신장'''
191cm (6' 3" )
'''체중'''
130kg (287 lbs)
'''피니시 무브'''[3]
맨더블 클로
더블암 DDT
캑터스 드라이버[4]
'''경기 스타일'''
하드코어 + 스턴트맨 + 브롤러 + 올라운더
'''테마곡'''
'''Wreck'''[5]
Whole Lotta Groove[6]
Dude Love[7]
Schizophrenic[8]
Fued[9]
EXIT (Ode To Freud)[10]
'''주요 커리어'''
CWA 태그팀 챔피언 1회
북부 아메리칸 챔피언 3회
IWA 월드 태그팀 챔피언 (IWA 일본 버전) 1회
NAW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NWL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OMW 북부 아메리칸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SCW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SCW 태그팀 챔피언 1회
USWA 월드 태그팀 챔피언 1회
WCWA 월드 라이트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WCWA 월드 태그팀 챔피언 2회
ECW 월드 태그팀 챔피언 2회
WCW 월드 태그팀 챔피언 1회
'''WWF 챔피언 3회'''
WWF 하드코어 챔피언 1회[11]
WWF 태그팀 챔피언 8회
'''TN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TNA 레전드 챔피언 1회




맨카인드 테마곡
캑터스 잭 테마곡
듀드 러브 테마곡
믹 폴리 테마곡[12]

2. 소개


[image]

'''"Bang, Bang!"'''

'''''만약 신께서 내게 천국으로 가는 사다리를 내려준다면,난 그 끝까지 올라가서 세상을 향해 기꺼이 엘보우 드롭을 날리겠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순간들이야."'''[13]

[image][14]

"엄청 무서웠지, 완전 쫄았다고."

"근데 왜 그러셨어요?"

'''"... 난 믹 폴리니까, 그게 내가 할 일이었거든."'''

--

2016년 3월 14일 RAW[15]

"Foley's God"

WWE, TNA, GFW 소속 프로레슬러.
북미 하드코어 프로레슬링의 전설격인 인물로,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 더 락, 트리플 H와 함께 프로레슬링 업계 최고의 황금기였던 애티튜드 시대를 상징하는 전설적인 레슬러이다. 언뜻 보기엔 카우치 포테이토가 떠오르는 배불뚝이 털보 아저씨처럼 보이나 이미지와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과격하고 처절한 경기를 만들어내는 재주가 뛰어난 프로레슬러이다. 특히 이 아저씨하면 대표적인게 악과 깡으로, 일반 스틸 케이지보다 훨씬 높게 설치되는 헬 인 어 셀 철장 꼭대기에서 몇번이나 추락[16] 등 몸을 아끼지 않는 스턴트로 이름을 날렸다. 다양한 기믹을 소화했으며, 인디 단체나 ECW 등 PPV형 레슬링에서나 볼 수 있던 하드코어 레슬링을 애티튜드 시대 지상파 방송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일등 공신이다. 단순히 쓰는 수준을 벗어나서 '''압정'''을 뿌리고 자기가 거기에 박힌다거나 와이어 두른 야구 방망이[17]를 휘두르는 등 광기에 가까운 수준의 기믹을 지녔다.
주요 기믹으로는 맨카인드, 듀드 러브, 캑터스 잭이 있다.[19]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쉽과 통합되어 사라진 초대 하드코어 챔피언이자 영구수여자이기도 하다. 또한 월요일 밤의 전쟁에서 WWE가 WCW와의 시청률 전쟁에서 역전을 이룬 순간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20]
그를 상징하는 기술은 더러운 양말 친구인 미스터 사코(Mr.Socko)를 손에 끼우고 상대 입에 쑤셔넣는 맨더블 클로다.[21] 미스터 사코를 사용하기 이전에는 맨더블 클로를 쓰는 손가락 부분만 가죽으로 감싼 채 등장해 그 손을 상대의 입 안에 집어넣어 시전했다. 이외에도 더블암 DDT나 오리지널 파일드라이버도 피니시로 자주 사용했다.[22]

3. 데뷔 전


인디애나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가족이 뉴욕 롱아일랜드로 이사를 갔다. 부친은 고등학교에서 스포츠 클럽을 관리하는 직업을 갖고 있었는데, 이것이 믹 폴리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다양한 단체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가장 흥미를 가졌던 것은 아마추어 레슬링이었다. 고교시절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로 활동하기도 하며 훗날의 프로레슬러로서 기본기를 다졌다. 어린시절 상당히 수줍음을 많이 탔지만[23] 축제나 행사 때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일을 할 때면 똘끼를 발휘하여 여장으로 하이스쿨 퀸에 등극하기도 했다.
지미 스누카가 피칠갑을 하고 스틸 케이지 꼭대기에서 슈퍼플라이 스플래시를 하는 모습을 경기장에서 두 눈으로 지켜보면서 프로레슬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24] 친구와 함께 집 안마당에서 레슬링 연습을 하고 자신을 홍보하기 위한 홈비디오를 제작하기도 한다. 이 홈비디오에는 훗날 WWE에서 사용할 히피 스타일의 '듀드 러브' 기믹이 등장하는데, 당시에도 똘끼는 어디가지 않아 집 지붕에서 매트 위로 뛰어내리는 대담무쌍한 모습을 보이고 "보고 있나, 빈스 맥맨?"을 외치기도 한다. 정식으로 도미닉크 데누치라는 레슬러에게 훈련을 받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프로레슬링에 뛰어들게 된다. 멀리 피츠버그까지 가서 프로레슬링 수업을 받는 열정을 보이다가 WWE에서 자버로 한 경기를 가지는 제안을 받게 된다.

4. 현역 시절


1983년 당시 아버지의 이름을 딴 잭 폴리라는 링네임으로 WWF에 1회성 자버로 출연했다. 평범하게 패배한 경기였음에도 그때 맞은 클로스라인이 너무 아파 며칠 동안 식사조차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25] 하지만 레슬링에 대한 열정을 더욱 커져만 갔고 '캑터스 잭'이라는 캐릭터로 독립단체에서 활동하게 된다. 인디 시절부터 캐릭터를 구축하기 시작했는데, 카메라 앞에서 자해를 하고 스턴트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테리 펑크는 이 시절 처음 믹 폴리를 보고 미쳤지만 멋있다고 생각했다.
일본 등 해외에서 경험을 쌓다가 1991년 WCW에 데뷔해 스팅, 베이더, 내스티 보이즈 등과 대립하며 명경기들을 만들지만 WCW는 그를 메인이벤터의 재목으로 보지 않았다.[26] 하지만 콘크리트 바닥에 몸을 날리는 등 몸을 아끼지 않는 모습에 관중들은 환호를 보낸다.
WCW 소속일 때 ECW에 출전해 사부와 경기를 가진 뒤 1994년에 ECW로 이적해 하드코어 매치로 명성을 쌓았다. 당시 테리 펑크와 미국 및 일본 등지에서 바브 와이어 매치 등 잔혹하고 과격한 매치들을 소화했다. 한편 Forgive me, uncle Eric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나와 WCW를 찬양하고, ECW를 비난하면서 하드코어 매치에 반대하는 기믹을 소화하기도 했다.

그러다 1996년 계약 제의를 받고 WWF로 이적해 음울하고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맨카인드란 기믹으로[27] WWF 레슬매니아 12에서 언더테이커를 공격하면서 데뷔했다. 언더테이커와 보일러룸 매치나 생매장 매치 등 격한 대립 및 경기를 가졌고, 숀 마이클스의 WWF 타이틀에 도전하기도 했다. 이후 짐 로스의 추천으로 유쾌하고 박애주의 성향의 히피 기믹인 듀드 러브로도 활동하는데[28] 자신의 기믹 중 제일 연기하기 힘든 캐릭터였다고 한다.

'''Owww, have mercy!'''

짐 로스와 인터뷰를 하는 세그먼트에서 점점 더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지는 모습을 연기했다. 그러다 다소 뜬금없이 당시 뉴 하트 파운데이션을 상대로 혼자서 고군분투하던 스티브 오스틴의 친구가 되고 싶어했다. 스티브 오스틴 vs. 오웬 하트&브리티시 불독의 핸디캡 매치에서 오스틴의 태그팀 파트너가 되고 싶어 Austin 3:16 티셔츠를 입고 적극적으로 어필했지만 돌아온 건 스터너였다. 오스틴은 쿨하게 "너 같은 괴물은 필요없어"라고 응수했다. 이에 다음 주 Raw에서 스티브 오스틴 vs 오웬 하트&브리티쉬 불독의 경기 도중 듀드 러브의 모습으로 새로운 등장음악과 함께 나타나 맨카인드 같은 괴물 말고 듀드 러브와 파트너가 되라고 한다. 탐탁치 않아하던 스티브 오스틴은 듀드 러브를 파트너로 받아들여 승리함으로써 믹 폴리는 WWF내에서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을 첫번째 타이틀로써 차지한다. 하지만 그 해 섬머슬램에서 오웬 하트의 파일 드라이버에 스티브 오스틴의 목이 부러지게 되어 경기를 치를 수 없게 되자 태그팀 파트너인 믹 폴리 역시 월드 태그팀 타이틀을 반납해야했고 둘의 태그팀도 붕 뜨게 된다.

1997년 9월 22일 RAW에서 캑터스 잭 기믹을 WWE에 선보여 트리플 H를 이긴 한편 WWF 로얄럼블(1998) 매치에서는 캑터스 잭, 맨카인드, 듀드 러브의 세가지 기믹으로 세번이나 출전했다. 하지만 모두 탈락하고 만다. 캑터스 잭으로서 WWF 레슬매니아 14에서 체인소 찰리[29]와 팀을 이루어 태그팀 타이틀을 차지하기도 했다. 한편 빈스 맥맨의 밑으로 들어가 듀드 러브로서 스티브 오스틴의 WWF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타이틀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특히 WWF 인 유어 하우스 22: 오버 디 엣지에선 특별 심판까지 맡으며 듀드 러브의 승리를 지원했던 빈스 맥마흔은 이에 분노해 링에서 무릎을 꿇으라고 종용하고 듀드 러브는 이를 거부하다 해고되지만 바로 맨카인드로 복귀했다.
그리고 언더테이커를 다시 공격하면서 대립해 1998년 6월 28일 WWF 킹 오브 더 링(1998)에서 그 유명한 헬 인 어 셀 매치가 열렸다.[30] 이 경기에서 두 번이나 철창 꼭대기에서 떨어지면서 관중들의 열렬한 환호를 얻었다.[31] 하지만 너무나 과격했던 스턴트 덕분에 생니가 2개나 부러지고[32], 어깨는 탈골이 되었고 신장 하나가 파열되었다. 믹 폴리의 아내는 너무나 과격한 경기 탓에 울음을 터뜨리는 등[33] 경기 내내 마음고생이 심해 이 때문에 은퇴할까 고민했다고 한다. 빈스 맥마흔은 경기 후 믹 폴리에게 고마움과 걱정을 담아 '''"두번 다시 이런 미친 짓은 하지 말게."'''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믹 폴리 본인은 추락의 충격 때문에 경기 과정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해 자서전을 쓸 때도 이 경기에 대해서는 경기 영상을 보면서 썼다고 한다. 두 번의 엄청난 추락과, 간절히 말리는 의료진을 뿌리치면서 경기를 마쳤던 그의 투혼으로, 기존의 음울했던 맨카인드란 캐릭터는 잃게 되었지만 팬들의 열광적인 인기를 얻으며 메인이벤터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헬 인 어 셀 매치 후 맨카인드가 인기를 끌면서 선역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고, 음울한 정신병자 맨카인드의 기믹도 개그 캐릭터로 바꾸는 수 밖에 없었다. 이때 맨카인드의 상징 중 하나인 미스터 사코가 등장했고, 초대 하드코어 챔피언이 된다.

1999년 1월 4일 RAW에서는 당시 WWF 챔피언이었던 더 락에게 도전해서 DX와 스티브 오스틴의 도움을 받으며 처음으로 WWF 챔피언에 등극했다.[34] 1999년 2월 15일까지 WWF 타이틀을 주고받으며 대립하던 더 락과 1999년 8월에 태그팀을 맺어 락 앤 삭 커넥션으로 활동했다. 더 락 특유의 말빨과 맨카인드의 미스터 사코를 동반한 개그씬으로 인기를 끌며, 1999년 9월 27일 둘의 세그먼트는 8.4%의 시청률을 기록해 RAW 사상 역대 최고 시청률을 남겼다.
그리고 1999년 연말 각본상으로 실권을 잡은 트리플 H에 의해 더 락과 일자리를 건 경기에서 패해 해고되었으나, 2000년 초반 트리플 H와 대립하면서 캑터스 잭 기믹으로 복귀해 WWF 로얄럼블(2000)에서 트리플 H에게 압정 위 페디그리를 맞고 패하지만[35] 경기 후 실려가는 트리플 H를 공격했다.[36] 2000년 2월 27일 WWF 노 웨이 아웃(2000)에서는 트리플 H와의 헬 인 어 셀 경기에서 커리어를 걸고 WWF 챔피언십에 도전해 또 헬 인 어 셀에서 몸을 던지는 혈투를 벌여 패배했지만 은퇴를 번복하고 WWF 레슬매니아 2000을 끝으로 은퇴했다.[37]

5. 은퇴 후


본명인 믹 폴리로서 RAW의 커미셔너로 활동하면서 각본상으론 WWF 섬머슬램(2000)에서 더들리 보이즈, 하디 보이즈, E & C 세 팀이 최초의 TLC 매치를 열게 하고, WWF 아마겟돈(2000)에서 빈스 맥마흔의 훼방에도 6인 헬 인 어 셀 WWF 챔피언십 매치를 부킹하다가 2000년 12월 해고되었다. 그러다 WWF 레슬매니아 17에서 빈스 맥마흔과 셰인 맥마흔 경기의 스페셜 레프리로 등장하면서 복귀한다.[38] 이후로는 WWF 관련 프로그램들에 출연하다 2001년 10월 인베이전 각본이 끝날 무렵 커미셔너로 복귀했다. 그러나 복귀 후 WWF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11월 빈스 맥마흔의 요청으로 WWF를 떠났다.
2003년 6월 트리플 H케빈 내시의 헬 인 어 셀 경기 특별 심판으로 복귀했으나, 랜디 오턴릭 플레어에게 공격당했다. 12월에는 스티브 오스틴 대신 GM을 맡기도 하지만 랜디 오튼과 맞서기 두렵다는 이유로 WWE를 떠났다. 이 기간 동안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글을 쓰다가 WWE 로얄럼블(2004) 30인 로얄럼블 매치에서 21번으로 등장할 예정이었던 테스트를 쓰러뜨리고 대신 출전하여 랜디 오턴을 탈락시키고 난투극을 벌인다. WWE 레슬매니아 20에서 더 락과 락 앤 삭 커넥션으로 다시 뭉쳐 에볼루션과 맞서지만 랜디 오튼에게 RKO를 맞고 패했다. 이에 WWE 백 래쉬(2004)에서 랜디 오턴의 인터컨티넨탈 타이틀에 도전하며 노 홀즈 바드 매치를 가지나 패했다.
칼리토, JBL, 에지 등을 상대하거나 WWE 로얄럼블(2008)에 참가하는 등 가끔씩 경기를 가지는 한편 레프리나 매니저, 스페셜 게스트 등으로 WWE 뿐만 아니라 ROH 등의 미국 독립단체를 포함해 일본의 HUSTLE 등에 출연했다. 2008년부터 스맥다운의 해설자로 활동하다 빈스 맥마흔의 갈굼에 불만을 품고[39] 2008년 9월부터 2011년 6월까지 TNA에서 활동했다.
WWE 로얄럼블(2012) 매치에 깜짝 출연한 후 WWE 서바이버 시리즈(2012)에서는 팀을 만들어 CM 펑크의 팀과 대결할 예정이었으나 펑크가 WWE 챔피언십 경기를 가지게 되면서 상대팀이 돌프 지글러 팀으로 변경되었다.[40] 믹 폴리의 팀은 코피 킹스턴, 케인, 대니얼 브라이언, 랜디 오턴, 마지막에 합류한 미즈로 네임밸류는 돌프 지글러의 팀보다 앞섰지만 서로 호흡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데 이어 막판 돌프의 역전 슈퍼킥으로 랜디가 탈락하면서 패배했다. 그 대신 리카르도 로드리게스에게 맨더블 클로를 시전했다.
그리고 2013년 1월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연설 중 '''"한번도 크리스 제리코를 꺾어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하자 제리코가 흔쾌히 무대 위로 올라와 누웠다. 이에 믹 폴리가 그 위로 엘보우 드랍를 시전한 데 이어 심판을 자처한 CM 펑크와 관중들이 다함께 카운트를 해서 이겼다. 영상

2014년 WWE와의 레전드 계약이 만료된 후 재계약을 거부하고 제프 제럿의 단체인 GFW에서 임원으로 잠시 활동하다가 2014년 12월 1일 WWE 샵의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 산타 복장을 하고 딸 노엘 폴리와 함께 등장했다. 노엘은 이전부터 트위터로 감상을 자주 올려 블리처 리포트에 올라왔는데 WWE에 성인으로 등장한 건 처음이었다.[41]
2016년 3월 14일 RAW 백스테이지에서 마주친 딘 앰브로스에게 '횃불을 넘겨주는 것'이라며 선물상자를 건넸는데, 그 안엔 바비(가시 철선 야구방망이)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WWE 레슬매니아 32에 깜짝 등장해 숀 마이클스스티브 오스틴과 함께, 뉴 데이를 꺾고 마이크로 건방을 떨던 리그 오브 네이션즈를 혼내준 뒤 뉴 데이와 함께 춤을 췄다.
2016년 7월 18일 WWE RAW에서는 커미셔너인 스테파니 맥마흔에 의해 RAW의 단장으로 임명된다. 스맥다운 라이브는 단장 대니얼 브라이언이 커미셔너 셰인 맥맨과 사이가 괜찮은 반면 믹 폴리와 스테파니는 위태위태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2017년 3월 20일 RAW에서 미뤄뒀던 고관절 수술을 받기 위해 스테파니 맥맨에게 해고당하는 각본으로 하차했다.
2018년 9월 10일 RAW에 오랜만에 출연하여 스테파니 맥맨과의 상의 하에 WWE 헬 인 어 셀(2018)의 유니버셜 챔피언십 특별 심판을 맡았다고 발표하며 특별 심판으로서 PPV 출연이 확정되었다.

6. 이모저모


  • 헬 인 어 셀 매치에 4번이나 출전하면서 헬 인 어 셀의 상징 중 한 선수로 자리잡았으나 2무 2패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 미국 시즌 로봇 워를 진행하기도 했다.
  • 하디 보이즈 자서전에 의하면 하디 보이즈가 출혈 장면을 넣으려고 믹 폴리에게 조언을 구하러 갔는데, 폴리는 그 자리에서 자기 이마를 직접 째면서 설명을 해줬다고 한다.
  • 프로레슬러 생활 내내 격한 경기들을 자주 소화하다보니 그의 몸은 여기저기 꽤나 망가져 있다. 한쪽 귀가 안들리고 콩팥 하나가 깨졌으며 앞니가 부러진 상태이다. 게다가 두개골에 금이 간 적도 있고 뼈도 성한 곳이 거의 없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의료보험이 안습한 상태인지라 정확한 치료는 받지 못해 아직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워낙 목숨걸고 레슬링을 하다보니 발생한 직업병이다.
  • 글솜씨가 좋아 여러 자서전에, 동화책도 썼다. 특히 그의 자서전은 3권 연속 뉴욕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 릭 플레어와 실제로 갈등을 빚은 적이 있다. 믹 폴리가 자서전에서 WCW 시절의 릭 플레어는 잘못된 부킹을 했다고 비판했고, 이에 릭 플레어가 믹 폴리는 레슬러가 아닌 스턴트맨에 불과하다며 기량적인 측면에서 강력하게 비판했다.[42] 이후 RAW의 백스테이지에서 릭 플레어의 악수 요청을 거부한 뒤 릭 플레어가 자기 자서전에 사인을 해서 준다면 경매에 부칠 생각이라고 비아냥거리다가 릭 플레어에게 주먹으로 맞아 싸움이 벌어질 뻔했으나 주위 사람들이 뜯어말렸다고 한다. 하지만 2006년에 화해해 함께 각본을 수행하고 경기를 가지거나, 릭 플레어의 딸인 샬럿을 호평하는 등 관계가 원만해졌다.
  • 몬트리올 스크류잡 당시 크게 분노해서 일하러 오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하루 지나서 돌아왔다. 자서전에 따르면 정말 심하게 분노하고 WWF에 대한 환멸감이 생겨서 선수에게 이런 짓을 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에게 말하러 오던 빈스 루소에게 어떻게 이런 짓을 할수 있냐고 악담을 퍼붓고 집에 가버렸다고. 빈스 맥맨에게 자신은 쇼에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메세지를 남겼고 다음 날 쇼에도 불참했는데, 그 쇼에서 브렛 하트를 조롱하는 세그먼트가 나오고 자신을 따라서 WWF를 떠날 것이라고 얘기했던 다른 선수들이 등장했고[43] 빈스 맥맨이 제발 회사로 복귀해 달라고 애원하자(빈스 맥마흔이 강경한 태도를 취하지 않은 유일한 선수였다고 한다.) 믹 폴리 본인도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생각에 결국 돌아왔다. 믹 폴리가 복귀를 결정하자 동료 레슬러들은 그를 환영하고 WWF 측에서는 그가 빠졌던 쇼의 출연료를 평소의 두배로 정산해주었다고 한다. 브렛 하트는 믹 폴리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편들어준 것에 감사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 아이들을 위한 기부활동이나 군부대나 군병원 위문 방문 등 자선사업에도 적극적이다.
  • 골수 민주당 지지자다. 그래서 공화당 강세인 주에서 장난스런 마이크웍을 한 적도 있고, 2004년 WWE 익스피리언스에서 골수 공화당 지지자인 JBL과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 이후 인류의 미래가 걱정되다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무하마드 하산(본명 마크 코파니)[44]이 활동하던 2004년 말 이라크에 파견된 미군부대를 위문할 때 영상을 틀어놓은 다음 무하마드 핫산에게 위대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 미국이라며 찬양하는 마이크웍을 했었다.
  • 베이더와의 경기도중 로프에 귀가 끼었고[45] 그대로 2/3가 잘려나갔다고 한다. 그 와중에도 경기를 "강행"했다고 한다. 첫번째 자서전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이야기로, 병원에서 간호사가 "레슬링은 다 가짜 아니었어요?" 하고 놀랐다는 일화도 나온다. 언더테이커와의 헬 인 어 셀 매치에선 앞니를 잃었고, 그간 경기하면서 온 몸에 꿰멘 자국이 325바늘 이상이라고 한다.[46]
1998년 30인 로얄럼블 매치에 캑터스 잭, 듀드 러브, 맨카인드로 총 세 번 출전했지만 3번 다 탈락했다.
  • 2013년 12월 국제 과일 케이크 먹기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경기 후 냅킨이나 주머니에 케이크 일부를 숨긴것이 발각(...)되는 바람에 실격처리되었다. 그러나 최고의 의상상으로 금색 트로피를 수여받았다고.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667198853301522&l=668481019a
  • 2014년 로얄럼블에서 대니얼 브라이언이 로얄럼블에 출전하지 못한다면 TV를 부숴버리겠다고 했는데, 끝내 브라이언이 로얄럼블에서 나오지 못하자 손수 TV를 박살내는 걸 영상으로 찍어서 인증하였다.# 그리고 2015년 로얄럼블에도 대니얼 브라이언의 우승을 예상한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으나 브라이언은 조기에 탈락한다.
  • WWE 레슬러들을 소재로 한 만화책 스토리를 집필하기도 했다. 제목은 WWE Superstars로 첫 스토리 아크 제목은 머니 인 더 뱅크이며, 범죄 느와르물이다. 레슬링과 느와르적 요소를 적절히 버무린 센스가 일품인데, 머니 인 더 뱅크는 비자금이 가득 들은 돈가방이며 , 존 시나의 You can't see me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존 시나가 대중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 못하고 "그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 있는 처지"를 한탄하는 독백에 나오며, 후반부에 대니얼 브라이언과 랜디 오턴이 머니 인 더 뱅크를 두고 추격전을 벌일 땐 대니얼이 사다리를 가지고 천장의 환풍구로 도망가는 장면이 있다. CM 펑크의 은퇴 이전이라 펑크가 혁명을 꿈꾸는 반항아 검사로 나온다. 대니얼의 YES! 챈트는 악당들을 관광보내며 대니얼이나 그 동료들이 외치는 구호로 후반부엔 악당들을 시민들이 엎어버리면서 구호를 외친다. 트리플 H와 스테파니, 빈스 맥마흔은 도시를 지배하는 사악한 기업가로 나오며 쉴드는 도시를 과거의 평화로운 시절로 되돌리기 위해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과격한 경찰 특공대로 등장한다. 크리스찬의 경우는 별칭이 캡틴 카리스마이니만큼 경찰 고위직으로 등장한다.
  • 만화 원피스의 등장인물 스팬담 장관이 맨카인드의 가면을 쓰고 있다. 이에 믹 폴리가 트위터에다 기믹 표절이 아니냐고 언급했는데, 팔로워들이 오다 작가가 프로레슬링 팬이고 믹 폴리 이외에도 다른 레슬러들의 오마쥬 캐릭터들이 나온다고 언급해주자 기분좋게 넘어갔다.
  • 다른 레슬러들이 자식들에게 자신이 실전을 한다고 했다가 나중에 동심파괴로 아이들을 실망시키는 일이 있는데, 믹 폴리는 좀 다른 방향으로 동심파괴를 했다. 폴리는 자식들에게 자신은 링위에 올라가서 다른 선수들과 즐겁게 노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헬 인 어 셀에서 두번이나 낙하한 뒤 아이들은 아버지는 노는게 아니라 다칠수도 있는 위험한 짓을 한다고 깨달았다.
  • 데미안 샌도우를 좋아해 샌도우가 WWE에 있던 때에 그의 푸쉬를 원한다고 밝혔다. 한편 매니저를 한다면 어떤 선수를 도와주겠냐는 질문에 베키 린치라고 밝혔다.[47]
딸인 노엘 폴리는 남자친구[48]와 '링사이드'라는 팟캐스트를 운영하며, 종종 선수들을 인터뷰하거나 WWE에 특별 출연하기도 한다. 180cm가 넘는 엄청난 장신이며 CM 펑크의 팬이다. 믹 폴리와 그의 아내는 노엘이 레즈비언이었으면 했다고. 장남인 듀이 폴리는 WWE에 보조 작가로 입사했다. 2016년 8월 Nxt Takeover Brooklyn ii에서 믹 폴리와, 딸인 노엘 폴리가 함께 경기를 관람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7. 둘러보기


[image]
'''2000년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image]
'''2013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image] '''PWI 선정 올해 감동을 준 레슬러'''
론 시몬스
(1992)


'''캑터스 잭
(1993)
'''

브렛 하트
(1994)

[image] '''PWI 선정 올해의 경기'''
1998년
6월 28일
킹 오브 더 링
헬 인 어 셀 매치
언더테이커 vs '''맨카인드'''
1999년
1월 24일
로얄럼블
WWF 챔피언십 아이 큇 매치
더 락 vs '''맨카인드'''
[image]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의 레슬러'''
브렛 하트
(1997)


'''믹 폴리
(1998)
'''

스티브 오스틴
(1999)

[image] '''레슬링 옵저버 선정 최고의 인터뷰어'''
릭 플레어
(1994)


'''캑터스 잭
(1995)
'''

스티브 오스틴
(1996)

크리스 제리코
(2003)


'''믹 폴리
(2004)
'''

에디 게레로
(2005)

에디 게레로
(2005)


'''믹 폴리
(2006)
'''

존 시나
(2007)

[image] '''레슬링 옵저버 선정 최고의 브롤러'''[49]
스탠 핸슨
(1990)


'''캑터스 잭/맨카인드/믹 폴리
(1991 ~ 2000)
'''

스티브 오스틴
(2001)

[image]
'''역대 노멤버 투 리멤버 메인이벤트'''[★]
'''1995.11.18'''
태그팀 매치
'''테리 펑크 & 타미 드리머 vs 레이븐 & 캑터스 잭'''

'''역대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
'''2000.4.2
레슬매니아 16'''
WWF 챔피언십
'''트리플 H vs 더 락 vs 빅 쇼 vs 믹 폴리'''
[1] 상단 이미지에도 있는 본인의 현상수배 전단이 프린트된 검은색 복장이 더 유명하다. 기믹이 없는 2001년부터의 믹 폴리는 주로 이 복장을 입고 나온다.[2] 믹 폴리의 차남(3남 1녀 중 셋 째) 역시 아버지와 같은 이름을 쓰면서 Sr.(시니어)가 붙게 되었다.[3] 기믹에 따라서 피니쉬가 변하였는데 맨카인드 때는 맨더블 클로, 듀드 러브 때는 더블암 DDT, 캑터스 잭 때는 파일 드라이버를 피니쉬로 사용했다.[4] 브렛 하트의 파일드라이버와는 다르게 바지를 잡고 DDT처럼 찍어버리는 형태. 사실 이게 원본에 더 가깝긴 하다. 현재는 스텀 풀러 파일드라이버로 개명되었다.[5] 'Fued' 테마를 사용하던 맨카인드가 생애 첫 WWF 챔피언이 된 다음 RAW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2000년 이후 믹 폴리로서 등장할 때 이 테마를 사용한다.[6] 캑터스 잭 기믹.[7] 듀드 러브 기믹.[8] 맨카인드 기믹.[9] 맨카인드 기믹.[10] 맨카인드 기믹 초기때 사용한 테마곡이다. 피아노소리로 잠잠한 소리라고 한다.[11] 초대 챔피언[12] 원래는 맨카인드의 두 번째 테마곡으로 맨카인드 기믹이 어두운 기믹에서 유쾌한 기믹으로 바뀌면서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후 본명으로 활동할 때도 이어졌다.[13] CM 펑크와의 세그먼트 중 나온 대사. 여기서 언급하는 '순간'은 KOR 98에서의 그 범프를 의미하는 것으로, 믹 폴리 본인의 타이틀 커리어의 자잘한 횟수보다도 훨씬 더 기억되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는 당시 WWE 챔피언십 장기 집권을 하던 펑크가 방어전을 피하려던 것을 꼬집으려던 의도였으며, 어쨌거나 이 이후 펑크는 '''434일'''의 타이틀 집권의 막을 내렸다.[14] 전설적인 KOR 98에서 언더테이커가 헬 인 어 셀 꼭대기에서 폴리를 던지는 장면. 저 당시의 아나운서 테이블은 지금처럼 잘 부서지도록 설계되지 않아 대단히 위험했고, 언더테이커도 너무 위험한 연출이라 믹 폴리에게 제발 하지 말자고 부탁했다. 하지만 믹 폴리가 끝내 고집을 부려 이런 액션이 연출된 것이다. 떨어지고 나서도 언더테이커는 믹 폴리가 정말로 죽은 줄 알고 간담이 서늘했다고 한다. 믹 폴리는 이 추락외에도 두번이나 더 떨어져서 후유증으로 현재도 고생하고 있다.[15] 백스테이지에 출연해 브록 레스너와 싸우려는 딘 앰브로스를 만류하다가, 언더테이커헬 인 어 셀 매치를 가질 때 천장에서 떨어질 때 두렵지 않았는지 묻자 대답한 말. 이후 딘 앰브로스 역시 '''"전 딘 앰브로스예요, 그래서 하는 겁니다"'''라는 말로 맞받아쳤다. 그러자 믹 폴리는 딘 앰브로스에게 자신의 바비(가시 철선이 감긴 야구방망이)를 선물했다.[16] 보통 언더테이커와의 헬 인 어 셀, 노 웨이 아웃 2000에서 트리플 H와 벌인 헬 인 어 셀의 추락 이 2개가 베스트로 꼽힌다. KOR 98의 헬 인 어 셀 매치 중 케이지에서 추락한 믹 폴리는 그 자리에서 아나운서 테이블에 충돌했었다. 이 당시에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강철 뼈대에다가 플라스틱을 붙여서 만들어진 테이블 대부분이었다'''. 지금의 아나운서 테이블마냥 '''잘 부서져서 충격을 분산시켜주는 재질이 아니었던 것이다'''. 범프와 관련해서 다른 하이플라이어와 믹 폴리의 체구를 비교해보면 살아있어서 다행인 수준. '''실제로 이 경기로 인하여 생니 두개가 뽑혀나가고 어깨가 탈골 되었으며,신장 한개가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다.''' 오죽했으면 빈스 맥맨이 달려와서 '''다시는 이런 위험한 경기를 하지 말라'''고 말렸다고 한다. [17] barbed wire baseball bat. 바비(Barbie)란 애칭으로 부른다.[18] 하지만 WWE에서도 캑터스 잭 기믹으로 잠시 활동한 적이 있다. 바로 상술한 노 웨이 아웃 2000의 트리플 H와 붙은 헬 인 어 셀 경기에서 믹 폴리는 특이하게도 캑터스 잭으로 등장하였다.[19] 기본적으로 다 WWE에서 수행하긴 했지만 WWE에서는 주로 맨카인드로, WWE 외에서는 캑터스 잭 기믹으로 활동했다.[18] 듀드 러브는 WWE에서 1998년 초중반에만 수행한 기믹이다.[20] WCW로부터 0.6의 시청률을 뺏어온 믹 폴리의 WWF 챔피언 등극 순간과, 역대 RAW 최고 시청률을 선보인 세그먼트의 주인공이다. [21] 턱 안쪽의 뼈가 없는 말랑말랑한 부분을 3번째와 4번째 손가락으로는 입 안 혀 아랫쪽에서, 엄지 손가락으로는 입 밖에서 잡고 세 손가락이 맞닿는 기분으로 꽉 움켜쥐는 서브미션 기술이다. 일본 및 ECW에서 각종 하드코어 매치를 치르면서 이미 몸이 많이 상한 상태였던 믹 폴리는 WWF에 이적할 때 몸에 최대한 무리가 가지 않는 기술을 찾다가 샘 셰퍼드가 창시한 맨더블 클로를 장착한다.[22] 애티튜드 시절에는 이후보다 비교적 기술의 제한이 덜했고 파일드라이버같은 위험한 기술도 자주 사용되었던 편이다.[23] 데이브 멜처는 믹 폴리가 일반적인 세그먼트나 프로모는 탁월한데, 유독 여성과 포옹하는 등 여성이 연관되면 티나지는 않지만 좀 어색한 모습을 보인다고 평했다.[24] 훗날 이에 대한 헌사로 트리플 H와 스틸 케이지 매치를 가졌을 때 스틸 케이지 꼭대기 위에서 엘보 드랍을 시전해 승리했다.[25] 이 영상 9위에 나오는데, 그때만 해도 지금의 절반인 147파운드(68~9kg)의 마른 몸이었다.[26] WWF에서 WWF 챔피언이 되기 전에는 믹 폴리 본인도 일본에서 태그팀 타이틀 몇번 만져보는 게 커리어의 전부일 것이라고 여겼다.[27] 모티브는 하수구 괴물이다. 계약 당시 기믹에 대한 아이디어를 이야기하자 빈스 맥마흔이 감탄했다고 한다.[28] 듀드 러브는 믹 폴리 자신이 어린 시절 고안했던 기믹이다.[29] 테리 펑크의 WWE시절 기믹이다. 일본에서는 형인 도리 펑크 Jr과의 태그팀으로도 유명했고 근육맨의 테리맨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하기도 했고, 90년대 초 한번 은퇴한 뒤 복귀하여 일본의 데스 매치 단체 및 ECW에서도 활동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고 WWE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30] Pro Wrestling Illustrated에서 선정한 1998년 올해의 경기에 선정되었으며,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에서 선정한 1998년 올해의 경기 2위에 이름을 올렸다. 게다가 믹 폴리는 각본이 아니라 실제로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투혼을 발휘하여 명경기를 만든 후 당일 열린 스티브 오스틴과 케인의 WWF 챔피언십 경기에 난입하는 초인적인 모습을 보인다. [31] 짐 로스는 각본상 중계가 아니라 진심으로, 이제 충분하니 빨리 경기를 중단하라면서 안절부절 못한다. 실제로 중계진들은 중계의 생동감을 주기 위해 경기의 결과나 전개에 대해서는 전혀 정보를 받지 않은 채로 중계를 한다. 당시 언더테이커는 추락한 믹 폴리를 보며 죽은 줄 알았다고 회고했다.[32] 철창에서 두 번째로 떨어졌을 때 철제 의자가 함께 떨어져 입을 강타했기 때문에 이가 부러졌다. 이 때문에 믹 폴리는 앞니 두 개가 지금도 없다.[33] 믹 폴리의 첫번째 자서전에선 경기 당일까지도 집에 헬 인 어 셀 경기에 대한 얘기를 전혀 안했다고 한다.[34] 이 장면은 WWF와 WCW의 흥망을 결정한 결정적인 장면중 하나로 꼽힌다. 당일 WCW 나이트로에서는 믹 폴리가 WWF 챔피언에 등극한 것을 방송으로 스포일러를 했는데(당시 WCW는 생중계, WWF는 녹화방송이라 가능한 일) 정작 케빈 내쉬와 헐크 호건의 WCW 월드 헤비웨이트 타이틀 매치가 일명 Finger Poke of Doom이라는 병크 속에 막장으로 끝났다. 당시 WCW에서는 어떻게든 WWF를 견제하고 시청률을 끌어내리기 위해서 자기 회사에 있던 듣보잡 믹 폴리 따위가 단체의 메인 챔피언이 될거라며 스포일러를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시청자들이 스포일러를 듣고 정말로 믹 폴리가 챔피언이 되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약 60만명'''이(시청률 0.6%) RAW로 채널을 돌렸다는 사실이다.[35] 원래는 믹 폴리가 압정 위로 백 바디 드랍을 접수한 뒤 일반 페디그리를 맞고 패하는 각본이었지만 믹 폴리가 킥아웃한 뒤 즉석에서 압정 위 페디그리를 제안해 주저하던 트리플 H가 그대로 이행하면서, 돌발적인 슛을 싫어하는 빈스 맥마흔이 질책을 했다고 한다. 경기 후 믹 폴리는 이마가 찢어져서, 트리플 H는 무릎이 찢어져서 의료용 스테이플러를 맞아야 했다.[36] 2000년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 2위에 이름을 올렸다.[37] 믹 폴리가 밝힌 후일담에 따르면 빈스 맥맨은 극단적인 하드코어 경기 때문에 믹 폴리의 몸이 심하게 망가진 것을 알고 그를 은퇴시키려고 결정을 내렸지만, 믹 폴리에게 레슬매니아 순간을 주지 못한다면 그건 부끄러운 일이라면서 은퇴를 레슬매니아로 연기했다고 한다.[38] 당초 레슬매니아 17에서 빈스 맥마흔과 붙을 상대는 믹 폴리로 계획되었으나, 믹 폴리 본인이 거부해서 셰인 맥마흔이 빈스와 붙었다. 당시 믹 폴리는 앞으로 경기를 가질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거절했으며, 후에 빈스 맥마흔과의 경기를 거부한 걸 후회한다고 밝혔다.[39] 빈스 맥마흔은 촬영 도중에 해설자들이 쓰고 있는 헤드폰으로 자신의 지시를 강조하면서 갈구는게 심한 것으로 악명높다.[40] 라이백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변경되었다.[41] 어렸을 때 믹 폴리가 더 락에게 WWF 로얄럼블(1999)에서 WWF 챔피언쉽을 뺏긴 날 경기를 보고 우는 모습이 포착된 적 있다. WWF의 백스테이지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경기 후 백스테이지로 가면서 우는 노엘을 달레느라 진땀을 빼는 믹 폴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시 믹 폴리는 수갑을 찬 채 머리에 무수한 체어샷을 맞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붕대를 감으면서도 딸 달래랴 좋은 경기였다고 인사하러 오는 동료들 상대하랴 바쁜 믹의 모습을 볼 수 있다.[42] 믹 폴리의 명경기로 회자되는 경우는 마인드 게임에서 숀 마이클스와 가진 WWF 챔피언십 매치를 제외하면 거의 다 하드코어 매치이며, 숀 마이클스와의 경기도 중간에 반칙이 되지 않는 선에서 의자와 아나운서 테이블을 이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브렛 하트크리스 제리코는 믹 폴리가 단순한 하드코어 레슬러가 아니라 프로레슬링 실력도 훌륭하다고 칭찬했다. 스티브 오스틴은 믹 폴리가 운동신경이 별로지만 링에서의 스토리텔링 능력과 경기운영이 그 모든 것을 커버하고도 남는다고 호평했다. 믹 폴리 본인도 자신의 신체능력이 떨어지는건 인정했기 때문에 창의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약점을 커버하려했다. 그래서 창의적인 경기를 하는 딘 앰브로스, 케빈 오웬스 그리고 사샤 뱅크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본다고 섬머슬램 2015의 소감을 이야기하던 도중에 밝히기도 했다.[43] 믹 폴리는 몬트리올 스크류잡 사건 자체보다 이들의 행동에 더 환멸감을 느꼈다고 한다.[44] 어머니가 요르단인이란 이유 하나로 아랍계 반미주의자 각본을 받았다. 실제론 아버지를 따라 이탈리아계에 정체성을 두고 있었고 무슬림조차 아니었다.[45] 그냥 끼이는 정도로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당시 경기하던 곳에서 링 로프를 너무 타이트하게 설치해놔서 참사가 벌어졌다고 한다.[46] 이는 2000년대 중반까지의 꿰멘 수이고, 이후에도 WWE와 TNA에서 격한 경기를 했으니 더 많을 것이다.[47] 믹 폴리는 포 호스위민 모두를 NXT 시절부터 칭찬하곤 했다.[48] 열렬한 레슬링 팬인데, 노엘은 이 남친 외의 남자에게는 끌리지 않으며, 근육덩어리 남자에겐 큰 관심이 없다고 한다. 이 남자친구는 노엘보다 키가 상당히 작지만 개성 넘치게 잘생긴 편이다.[49] 역대 최다 수상자[★] A B 오른쪽이 도전자, 밑줄이 승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