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지마 사토시

 


'''제 3세대'''
나가타 유지
텐잔 히로요시
'''코지마 사토시'''
나카니시 마나부
[image]
'''剛腕 / COZY ONE LARIAT '''

1. 프로필


[image]
'''본명'''
코지마 사토시
小島 聡(こ じま さとし
'''생년월일'''
1970. 9. 14 (54세)
'''신장'''
183cm
'''체중'''
108kg
'''출생지'''
일본 도쿄도[image] 고토 구[image]
'''가족 관계'''
형 RYO[1]
'''유형'''
올드 스쿨 + 브롤러
'''시그니쳐 무브'''
'''래리어트'''[2], 후두부 래리어트[3]
머신건 찹[4]
잇챠우조 엘보[5]
DDT
_라이딘 버스터_[6]
브레인버스터[7]
코지코지 커터[8]
'''피니쉬 무브'''
CCD[9]
'''계승 웨스턴 래리어트'''[10]
'''별명'''
'''Cozy'''[11]
'''강완(剛腕(ごうわん)'''
'''테마곡'''
CRUSH DYNAMITE (1991 - 1996)[12]
RIDE OVER 〜煽風(せんぷう (1996 - 1999)
Stylus (2005 - 2010)
'''Rush!! (1999 - 2005; 2010 - )'''[13]
'''데뷔'''
1991년 7월 16일
홋카이도 오비히로시종합체육관
'''신일본''' '91섬머 크래쉬 3일차
vs 야마모토 히로요시
'''SNS'''

1. 프로필
2. 소개
3. 경력
3.1. 입단 전
3.2. 신일본 프로레슬링 1차 (1991 ~ 2002)
3.4. 신일본 프로레슬링 2차 (2010~)
4. 여담
5. 둘러보기


2. 소개



G1 클라이맥스 27 PV

'''" いっちゃうぞ!バカヤロー! "[14]


(간다! 바보 자식아!)'''

'''" 1+1(いちたすいち2(じゃないぞ。オレたちは1+1(いちたすいち200(にひゃくだ。10倍(じゅうばいだぞ10倍(じゅうばい! "[15]


(1 + 1은 2가 아니라고. 우리들(텐코지)은 1 + 1해서 200이다. 열배라고 열배!)'''

신일본 프로레슬링 소속의 프로레슬러. 일본 프로레슬링계 최초로 신일본 프로레슬링과 전일본 프로레슬링 의 삼관 헤비급 챔피언 벨트와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 벨트를 동시에 거머쥔 선수로, 텐잔 히로요시, 나카니시 마나부, 나가타 유지와 함께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제 3세대"로 분류된다. 특히 동기이자 친우인 텐잔 히로요시와 맺은 텐코지(テンコジ) 태그가 유명하다.

3. 경력



3.1. 입단 전


고등학생 때 유도 선수였으나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코지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프로레슬러가 되려고 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노리츠[16]에 취직하여 2년간 샐러리맨 생활을 하다가 어렸을 때 스탠 핸슨을 보고 품었던 프로레슬러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퇴직, 1990년 10월 1일 국제 프로레슬링 출신 프로레슬러인 애니멀 하마구치의 짐에 들어가 4개월의 수련을 거치고 1991년 2월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하였다.

3.2. 신일본 프로레슬링 1차 (1991 ~ 2002)


5개월간의 연습생 생활 끝에 7월 16일 6개월 먼저 데뷔한 야마모토 히로요시와의 대결에서 데뷔전을 치뤄 5분 40초만에 패하며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한다. 이듬해인 92년 3월 24일 '자유인' 니시무라 오사무(西村修)에게 첫 승을 거뒀다.
93년 3월에는 영 라이온배 쟁탈 리그전에 첫 참전,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야마모토의 전승을 깨는 데 성공했으며 6월 15일에는 WAR와의 항쟁전에서 선전하는 등 꾸준히 경험을 쌓다 94년 3월에 열린 영 라이온배 쟁탈 리그전에 다시 참전하여 나가타 유지, 나카니시 마나부, 오오타니 신지로, 타카이와 타츠히토 등 쟁쟁한 경쟁자들에게 모두 이기고 최초로 전승 우승이라는 기염을 토한다.
그해 12월 해외 무사수행을 떠나 영국, 독일을 거친 후 96년 1월 4일 도쿄돔에서 열린 레슬링 월드 1996에서 복귀하였고, 6월 IWGP 도전자 결성 리그에서 우승해 6월 11일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 하시모토 신야에게 도전했지만 11분 51초만에 수직낙하식 DDT를 얻어맞고 패하고 만다.[17] 8월에는 G1 클라이맥스 6에 첫번째로 출장하나 1승 3패에 그쳤다.
이듬해인 1997년에는 나카니시 마나부와 ''''불 파워즈''''를 결성하여 태그 챔피언 전선에 뛰어들었고 2월 16일 료고쿠 국기관에서 IWGP 헤비웨이트 태그팀 챔피언 후지나미 타츠미 & '이나즈마 전사' 키무라 켄고 팀에게 도전했으나 나카니시가 썬더 레그 래리어트에 당하면서 패배했다. 이 패배에 굴하지 않고 5월 3일 그사이 나카니시와 초슈 리키 & 사사키 켄스케에게 넘어가 있던 IWGP 태그팀 챔피언십에 재도전, 코지마가 11분 34초만에 드래곤 슬리퍼로 초슈에게 승리하면서 그 둘에게 챔피언 등극 21일만에 함락이라는 굴욕을 안겨준다.[18]
98년 8월에는 G1에 다시 참가하여 1차전에서 텐잔, 2차전에서 야스타 타다오를 꺾고 베스트 4까지 갔으나, 9월에 망막 박리 판정을 받고 두달간 링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10월 19일 코베 월드 기념홀 흥행에서 돌아온 코지마는 "무토 케이지니까 의미가 있다. 쵸노의 nWo가 아니야. 무토의 nWo니까 들어갔다!"라며 nWo JAPAN에 가입하였고, 텐잔 히로요시와 그 유명한 ''''텐코지(天コジ)''''를 결성하여 99년 1월 4일 레슬링 월드 1999에서 텐류 겐이치로 & '고독한 사무라이' 코시나카 시로의 IWGP 태그팀 챔피언십에 도전했고, 텐잔이 코시나카를 다이빙 헤드벗으로 잡아내며 다시 IWGP 태그팀 챔피언에 오른다. 두달 후 벨트를 사사키 켄스케 & 코시나카 시로에게 내준 코지마는 7월 20일에 무토 케이지의 IWGP 헤비급 챔피언에 도전했지만 23분 10초 피겨 포 레그락에 이겨내지 못하고 패배하며 무관으로 해를 마무리한다.
이후 2000년 2월에 nWo가 쵸노 마사히로를 수장으로 하는 TEAM 2000에게 흡수당하자 텐잔과 여기에 가입하여 7월 20일에 300일 이상 태그팀 챔피언을 방어 중이던 나카니시 마나부 & 나가타 유지에게 도전했고, 21분 33초만에 코지마가 래리어트로 나카니시를 꺾으며 IWGP 태그팀 챔피언에 다시 올라 당시 최다인 6회의 방어전을 치루며 430일간 챔피언 자리를 지키게 된다. 같은 해 11월 텐잔과 G1 태그 리그에 출장한 코지마는 준결승에서 G-Eggs 소속의 나카니시 마나부와 요시에 유타카를 꺾고 결승전에 올라갔지만 이이즈카 타카시와 G-Eggs를 벗어나 이이즈카와 태그를 맺고 있던 G-Eggs의 수장 나가타 유지의 태그팀에게 패배하며 준우승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2001년 2월에 고토 타츠토시와의 태그로 후쿠다 마사카즈의 죽음 이후 복귀한 초슈 리키에게 승리하고 6월 6일에는 전일본의 카와다 토시아키와 첫 대전을 치뤄 패배했지만 깊은 인상을 줬으며, 8월 G1 클라이맥스에서 래리어트로 쵸노 마사히로무토 케이지를 연달아 격파하는 등 물오른 폼을 보여주고 있던 코지마는 9월 23일 후지나미 타츠미 & 니시무라 오사무에게 패배하며 430일을 지켜오던 IWGP 헤비급 태그 팀 챔피언을 내주며 텐잔과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12월 G1 태그 리그에서 기어코 우승을 차지하며 텐코지의 완전 부활을 선언한다.

3.3. 전일본 프로레슬링 (2002 ~ 2010)


하지만 시대는 바야흐로 안토니오 이노키가 이노키즘으로 신일본을 좀먹고 있을 때. 이노키즘에 완전히 질려버린 코지마는 스승인 무토 케이지가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이탈할 때 본인도 이노키즘에 반발하며 1월 24일 고라쿠엔 홀에서의 텐코지 vs 사사키 켄스케 & 니시무라 오사무 경기를 마지막으로[19] 1월 31일에 신일본을 탈단하고 무토 케이지와 함께 전일본 프로레슬링으로 이적하였다.[20]
2월 9일 전일본 고라쿠엔 홀 흥행에서 난입하며 전일본 커리어를 시작한 코지마는 2월 26일 전일본에 공식 입단했고, 3월 말에 펼쳐진 전일본 챔피언 카니발에 출장하여 A블록 1위로 챔피언 카니발 우승 결정 토너먼트에 진출하지만 결승전에서 무토 케이지의 암바에 패배하며 고배를 마셨다.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4월 13일 무도관에서 타이요 케아와 삼관 타이틀 차기 도전자 결정권에서 승리하며 도전권을 얻어낸 코지마는 삼관 타이틀전에 데뷔하여 스탠 핸슨에게 원조 래리어트를 사사받는다. 그리고 7월 19일 전일본 섬머 액션 시리즈 9일차. 삼관 챔피언 텐류 겐이치로에게 도전한 코지마는 무토 케이지의 다리 지옥을 병행해 지천명을 넘긴 텐류를 공략해 나가며 손에 땀을 쥐는 명승부를 남기지만 끝끝내 텐류의 파워 밤에 격침당하며 아쉬운 패배를 하고 만다.[21]
8월 30일엔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출연한 빌 골드버그에게 4분 30초만에 넥브레이커로 초살당하는 굴욕을 겪고 말았다.[22] 자존심에 상처를 크게 입은 코지마였지만 마음을 추스린 후 북미 원정을 떠났고 9월 26일 메이저 리그 레슬링에서 제리 린을 이기고 공석이던 ML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차지하며 제 2대 MLW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11월 말에는 세계 최강 태그 리그전에 타이요 케아와 함께 출전, 파죽지세로 결승해 진출했으며 12월 6일 결승전에서 제로원 듀오 다나카 마사토 & 오오타니 신지로를 맞아 14분 39초만에 래리어트를 다나카에게 작렬,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태그 챔피언에 올랐다. 12월 15일에는 제로원에도 참전하여 오오타니 신지로에게 싱글 승을 거두기도 했다.
2003년 1월 4일에는 신일본 도쿄돔 대회인 레슬링 월드 2003에 일일 참전하며 약 1년만에 하루 뿐이지만 신일본으로 돌아왔고, 텐잔과 텐코지로 출장해서 쵸노 마사히로 & 나카니시 마나부를 잡아냈다. 2월에 제로원과 전면전이 펼쳐지자 전일본의 대표격으로 출전을 거듭하며 몸을 아끼지 않았으며 활약했지만 6월 8일에 세계 태그 토너먼트에 출장했다가 무토 케이지 & 아라시에게 패배하며 세계 태그 챔피언 벨트를 내줬고 6월 20일엔 MLW 하이브리드 헬에서 마이크 어썸에게 패해 MLW 월드 헤비웨이트 타이틀까지 내주며 벨트를 전부 잃고 만다. 7월에는 다시 제로원에 참전해서 제로원의 리그전인 히마츠리에서 오오타니 신지로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지만 9월 6일 삼관 타이틀을 놓고 벌어진 토너먼트에서는 오오타니에게 역으로 잡혀 버렸다. 11월에는 카즈 하야시(시류)와 세계 최강 태그 리그에 참가, 저스틴 크레디블 & 자말에게 승리하고 세계 최강 태그 리그에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12월 5일에는 시류 기믹을 들고 나온 카즈 하야시에 맞춰 더 그레이트 사스케의 가면을 쓰고 '그레이트 코(小)스케'로 분장하고 출전해서 카사이 준 & 텐구카이저를 꺾고 아시아 태그 챔피언 도전권까지 따냈다.
2004년 1월 2일 시류와 그레이트 코스케(...)는 쿠로다 테츠히로와 미스터 간노스케의 아시아 태그 타이틀에 도전해서 아시아 태그 타이틀을 기어코 획득해냈으며, 18일에는 반년을 넘게 세계 태그 챔피언 타이틀을 지키던 무토 케이지 & 아라시에게 도전해서 다시 타이틀을 되찾아오며 전일본의 태그 타이틀 두 개를 모두 가져왔다. 연초를 끝내주게 시작한 코지마는 기세를 이어 4월에 챔피언 카니발에 출장했으나 준결승에서 사사키 켄스케에게 막히며 챔피언 카니발 2연패의 꿈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고 설상가상으로 6월에는 나가타 유지 & 켄도 카신에게 세계 태그 챔피언 방어전에서 패하며 세계 태그 챔피언 벨트를 신일본에 넘겨주고 말았다.
코지마는 이윽고 7월, 프로레슬링 NOAH의 도쿄 돔 흥행 마지막에 미사와 미츠하루에게 정장 차림으로 대결을 요청, 7월 18일에 매치가 성사되어 전일본의 링에서 미사와와의 드림 매치를 치루게 되었다. 치열한 경기 끝에 터진 에메랄드 플로전을 맞고도 일어나는 저력을 보여줬으나 미사와가 진 피니셔 타이거 드라이버 '91을 5년만에 봉인을 풀어버리고 작렬시키며 패하고 말았다. 이후 슬럼프에 빠져버린 코지마는 9월에 싱글 7연전을 가져 제 1전에서 혼마 토모아키에게 신기술 CCD를 선보이며 승리를 거뒀고, 다섯 경기를 CCD로 내리 승리, 마지막 자말과의 경기에서도 래리어트로 간신히 승리를 거두며 슬럼프를 벗어났다. 11월엔 세계 최강 태그 리그에 다시 카즈 하야시와 출전했으나 결승전에서 타이요 케아 & 자말에게 패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그치게 되었다.
2005년 1월 4일에 2년만에 신일본의 도쿄돔 대회인 토우콘 페스티벌: 레슬링 월드 2005에 출장해서 니시무라 오사무를 잡아내며 해를 시작한 코지마는 2월 16일, 역대 최다인 '''10번'''[23]의 방어전을 치루며 '''529일'''간 초 장기집권을 이어나가며 절대 무너지지 않을것만 같은 포스를 뿜어내던 카와다 토시아키의 삼관 헤비급 챔피언에 도전했다. 래리어트를 몇 발이나 터트리며 27분간의 대격전을 펼친 끝에 코지마의 최후의 계승 웨스턴 래리어트가 터지며 기어코 철옹성과도 같았던 카와다가 쓰리 카운트를 내주고 말았고, 염원하던 삼관 헤비급 챔피언 자리에 처음으로 오르는 대 쾌거를 이룩했다.[24] 타이틀 전이 끝난 다음 코지마는

저는 어렸을 때부터 프로레슬링 팬이였고, 장래의 꿈도 '21세기가 되면 챔피언 벨트를 두르는 것'이라고 썼었습니다. 그게 이렇게 실현되어 기쁩니다. 오늘 하루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이 벨트를 꼭 껴안고 이불 속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지탱받아서 여태까지 해올 수 있었습니다. 최강, 최고는 아니더라도 생기가 있는 챔피언으로 있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소감을 밝혔다.
불과 4일 뒤인 2월 20일 뉴이어 골드 시리즈 12일차에는 앞서 전해 12월 11일 싱글 매치에서 30분 무승부를 기록했던 과거의 최고의 파트너이자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 텐잔 히로요시와 역대 처음으로 IWGP 헤비급 챔피언과 삼관 헤비급 챔피언이라는 양대 단체의 상징과도 같은 벨트를 서로 걸고 두 번째 싱글 매치를 치뤘는데, 60분 한판 승부에서 59분 49초까지 가는 혈투 중의 대혈투 끝에 60분을 10초 남기고 텐잔이 끝끝내 일어나지 못하게 되며 KO승으로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차지, '''양대 일본 메이저 단체의 메인 타이틀을 동시에 차지하는 최초의 진기록'''을 남기며 일본 프로레슬링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25] 3월 26일에는 나카무라 신스케가 IWGP 벨트를 찾으러 도전을 걸어왔으나 또다시 60분을 전부 채우는 경기 끝에 무승부를 기록하며 IWGP 타이틀을 되찾아가는데 실패하고 돌아서야만 했다. 4월에는 다시 전일본 챔피언 카니발에 출전, 챔피언다운 면모를 보여주나 준결승에서 자말을 만나 가로막히고 말았으며, 5월 14일에는 신일본 도쿄돔 흥행에서 텐잔과 IWGP 헤비급 타이틀 2차 방어전을 치뤘는데 절치부심하며 칼을 갈아온 텐잔의 집념은 무서웠고, 결국 오리지널 TTD에 침몰당하며 IWGP 헤비급 챔피언을 텐잔에게 도로 돌려주게 되었다.

3.4. 신일본 프로레슬링 2차 (2010~)


2010년에 전일본 프로레슬링을 탈단하고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프리 신분으로 참전해 그 해 G1 클라이맥스에서 우승을 하였다. TAKA 미치노쿠, 타이치, NOSAWA 논외, MVP와 악역 스테이블인 가칭 코지마군을 결성하여 활동한다. 그리고 마카베 토우기를 이기고 IWGP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하며 승승장구하다가 2011년에 레슬킹덤에서 타나하시 히로시에게 타이틀을 잃고, 동년 5월엔 마카베와의 싱글 매치에서 패배한다. 이에 타이치, TAKA 미치노쿠에게 축출당했고 이 둘은 스즈키 미노루를 리더로 옹립하며 스즈키군을 결성한다.
2011년 9월 19일에 신일본 프로레슬링 소속으로 재입단하며 텐잔 히로요시와 다시 '텐코지'로 태그팀을 결성한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신일본 프로레슬링이 NWA와 교류를 했는데, 2014년 1월 4일에 레슬킹덤 8에서 랍 콘웨이를 이기고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하지만 동년 6월 2일에 NWA가 개최한 라스베가스 대회에서 랍 콘웨이에게 타이틀을 뺏긴다. 2016년 3월에는 시바타 카츠요리가 1990년대 초반에 데뷔한 본인을 포함한 제3세대 프로레슬러들에게 도발을 걸자 시바타의 NEVER 오픈웨이트 챔피언십에 도전했지만 패한다.
키즈나 로드 2016 6일차 흥행인 2016년 7월 3일에는 맷 사이달 & 리코셰와의 태그로 케니 오메가 & 영 벅스를 이기고 NEVER 오픈웨이트 6인 태그팀 챔피언십을 차지한다. 경기 직후 텐잔 히로요시를 불러 본인은 벨트를 가지고 있다면서 그간 G1 참전의 열망을 드러내던 텐잔 히로요시에게 G1 클라이맥스 26 출전권을 넘긴다. 이 일로 나이토 테츠야와 일부 팬들에게 비난을 받게 되지만 G1 클라이맥스 26 대회 기간에 텐잔 히로요시의 세컨드로 나와 그와 함께 했고, 텐잔은 2승 7패의 부진한 전적을 기록한다.
맷 사이달이 마약 소지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고,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참전을 못하게 된다. 이에 디스트럭션 인 고베 2016에서 데이비드 핀레이 & 리코셰와 팀을 맺어 애덤 콜 & 영 벅스를 이기고 공석이 된 NEVER 오픈웨이트 6인 태그 타이틀을 되찾는다. 그리고 레슬킹덤 XI에서 EVIL & SANADA & BUSHI에게 NEVER 오픈웨이트 6인 태그 타이틀을 잃었다.
IWGP 헤비웨이트 태그팀 챔피언십 도전자였던 혼마 토모아키가 치명적인 목부상으로 결장하게 되어 그의 태그팀 파트너인 마카베 토우기도 도전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신일본 창단 45주년 기념 대회에서 텐잔 히로요시와 함께 도전한다. 당일 혼마 토모아키의 주기술인 코케시 시전에 성공하는 등 발군의 활약으로 야노 토루 & 이시이 토모히로를 꺾고 IWGP 헤비웨이트 태그 타이틀을 차지했다가 사쿠라 제네시스 2017에서 워 머신(핸슨 & 레이먼드 로우)에게 타이틀을 잃는다.
G1 클라이맥스 27에 출전해 오카다 카즈치카, EVIL 등의 후배들과 좋은 경기를 만들었지만 1승 8패라는 기록으로 대회를 마무리한다. 2018년 1월 말에 왼쪽 무릎 앞 십자인대 단열 부상 진단을 받고 전력에서 이탈했다가 같은 해 9월 9일 치바 대회에서 복귀한다.

4. 여담


  • 코의 'cozy'라고 써 있는 클립이 트레이드 마크인데, 사실 비염이 심해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 샐러리맨 생활을 하던 도중 프로레슬러가 되고싶다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좋아하던 여자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해서로, 프로레슬러로서 빛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겠다라는 일념으로 본격적으로 프로레슬러를 목표로 하게 되었다고 한다.
  • 곤충을 굉장히 싫어하는데, 이를 알고 있던 장난의 화신 하시모토 신야가 코지마의 기숙사 방에 매미 100여마리를 풀어놓는 바람에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간 적이 있다(...) 옆방에 있던 나카니시 마나부한테 매미 좀 잡아달라고 부탁해서 나카니시 마나부가 다 잡은 후에야 간신히 방에 돌아갈 수 있었다.
  • 소문난 빵 애호가로, 원정을 가면 그 지역에 유명한 빵집을 돌아다니는게 취미. 불릿 클럽의 'Bullet club 4-4-4-life'를 'Bread club 4-4-4-loaf(덩이)'로 패러디하는 등 트위터에 빵 사랑을 영어로 열렬하게 써재낀 결과 이 빵 사랑을 외국 팬들도 알게 되어 해외 원정때마다 대량의 빵 선물을 받고 있다.
  • 슬하에 딸 하나를 두고 있으며, 소문난 애견가이기도 해서 쿠키(~2017)라는 이름의 치와와를 시작으로 럭키와 사라라는 이름의 치와와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

  • 담배도 피지 않고 주량도 적은 편이지만 해외 무사수행이 결정된 후배 타카하시 히로무의 송별회에서 술을 진탕 마신 후 텐잔이 택시에 태워 집에 보냈는데, 상태가 뭔가 좋지 않은 걸 느낀 부인이 119를 불러서 그대로 실려갔고 급성 알콜 중독 진단을 받아 그대로 링겔 신세를 졌다. 나중에 회상하길 히로무가 해외로 떠나는게 쓸쓸해서 너무 마셔버렸다고(...) 코지마를 구급차에 실어갈 때 코지마가 워낙 두꺼운 몸의 소유자다보니 한두명으론 택도 없다고 느낀 구급대원들이 동료들을 더 불렀고, 최종적으로 여섯 명이 필요했다고 한다.
  • 2017년 가을까지 피처폰을 써왔다고 한다.

5. 둘러보기


[image] '''역대 G1 클라이맥스 우승자'''
'''2009'''

'''2010'''

'''2011'''
마카베 토우기

'''코지마 사토시'''

나카무라 신스케
[image]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의 태그팀'''
E&C
(에지 & 크리스찬)
(2000)


'''텐코지'''
(텐잔 히로요시 & '''코지마 사토시''')
(2001)


로스 게레로스
(에디 게레로 & 차보 게레로)
(2002)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MVP (최우수 선수상)'''
사사키 켄스케
(2004)

'''코지마 사토시'''
(2005)

스즈키 미노루
(2006)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투혼상'''
마카베 토우기
(2009)

'''코지마 사토시'''
(2010)

모치즈키 마사아키
나가타 유지
(2011)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기능상'''
키쿠타 사나에
(2001)

'''코지마 사토시'''
(2002)

아키야마 준
(2003)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최우수 태그팀 상'''
BURNING
(아키야마 준 & 코바시 켄타)
(1999)

'''텐코지'''
(텐잔 히로요시 & '''코지마 사토시''')
(2000)

자도&게도
(2001)
[image]
'''역대 레슬킹덤 메인 이벤트'''[★]
'''2007.1.4'''
태그팀 매치
'''_무토 케이지_ & _쵸노 마사히로_(O) vs 텐잔 히로요시(X) & 코지마 사토시'''
'''2011.1.4'''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타나하시 히로시 vs 코지마 사토시'''(C)


[1] 본명은 코지마 료(小島 亮(こ じま りょう). 코지마 사토시보다 4살 위로 35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일본의 하드코어 펑크 밴드 테츠아레이(鉄アレイ, 뜻은 강철 아령)의 보컬. 일반인들에겐 별로 알려져있던 사실이 아니였으나 코지마 사토시가 트위터에서 직접 밝히면서 알려졌다.[2] 래리어트의 달인의 명성의 걸맞게 코너식 등 다양한 곳에서 활용하며 에이프런에 있는 상대의 다리에 래리어트를 써서 상대의 속도를 떨어트리는 경우도 있다. 반격 스팟 등에서 쓰는 래리어트는 보통 왼팔로 갈기는데 당연히 왼팔에도 남들 허벅지만한 팔뚝이 달려 있기 때문에 충분히 위력적.[3] 전성기 때는 정말로 상대 뒷목을 냅다 후려갈기는 위험천만한 기술이었만 선수 보호가 중요한 시대가 오면서 타점이 많이 내려가 사실상 어깨 맨 윗부분을 친다.[4] 상대를 코너로 몰아놓고 역수평 찹을 연타하는 기술로, 코바시 켄타의 영향을 받아 사용하는 기술. 이후 상대를 반대편 코너로 보내고 점핑 엘보 후 잇챠우조 엘보로 이어진다. 안타깝게도 머신건 찹의 임팩트 자체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안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5] 다이빙 엘보 드랍. 머신건 찹과 점핑 엘보 이후 상대가 쓰러지면, 특유의 "잇챠우조 바카야로!!"라는 외침과 함께 탑 로프에 올라가서 쓰러진 상대에게 다이빙 엘보 드랍을 날린다. 나이가 들어 예전만은 못하지만, 젊었을 때에는 엘보우 드랍 자체도 깔끔하고 위력적으로 잘 넣었다.[6] 시팅 스파인 버스터. 말 그대로 무릎을 꿇으면서가 아니라 앉으면서 쓰는 스파인 버스터로 코지마가 개발한 기술이다. 이름의 유래는 초자 라이딘에서 따왔는데, 이유는 코지마가 광팬이어서였다고.[7] 오른손잡이임에도 브레인버스터만은 주로 왼쪽에서 쓰는게 특징.[8] 커터. 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를 동경해서 사용하기 시작한 기술로, 다른 사용자들같이 재빠르게 쓰지는 못해서 반격기나 기습기로 쓰기는 힘들지만 전성기 체중이 115kg언저리로 일본 내에선 충분히 헤비급인 코지마의 전신의 체중이 실린 묵직함과 호쾌함은 일품. 주로 상대 복부에 토킥을 먹인 후 사용하며, 원래는 피니셔로 쓰려 했으나 '''그''' 래리어트를 버리고 피니셔로 밀기엔 무리였던지라 포기하고 페이스 체인지용 주력기로 쓴다. 큰 경기에선 탑 로프식도 사용.[9] 오버 더 숄더 리버스 파일드라이버. 에메랄드 플로전 준비자세에서 상대의 목을 왼손으로 잡은 다음 왼발을 크게 들어올리며 자신의 왼쪽에 고각으로 내리꽂는 기술. 2004년 9월 17일 혼마 토모아키와의 싱글전에서 처음 나왔으며, 두 달 전인 7월에 미사와 미츠하루의 에메랄드 플로젼을 얻어맞은 이후 거기에 영감을 얻어 비디오를 반복해서 돌려보며 개발한 기술로, 에메랄드 플로전과 반대 쪽으로 찍는 것이 특징. 기술 이름은 'Cozy Crush Dynamite'의 약자로, 초심으로 되돌아간다는 의미를 담아 자신의 첫 테마곡인 'Crush dynamite'에서 따온 이름이자 친우 텐잔의 TTD(텐잔 툼스톤 드라이버)와 대조를 이루게 맞춘 이름이다.[10] 오른팔 러닝 래리어트. 래리어트의 개발자인 스탠 핸슨에게 래리어트를 직접 전수받은 유일한 계승자 코지마 사토시의 전가의 보도. 다른 래리어트 사용자들과 달리 전신을 전부 이용하기보다 스탠 핸슨식으로 몸통의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후려치는게 특징으로, 오른팔의 서포터를 왼손으로 벗겨 던지는 예고 동작을 하는데 정말 멋지게 던진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어마무시한 팔뚝 두께를 자랑하는 코지마가 전속력으로 달려간 다음 전력을 다해 오른팔로 후려치는만큼 위력은 스탠 핸슨만은 당연히 못해도 스탠 핸슨을 계승했다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을만큼 확실하며, 초창기보다 오히려 나이를 조금 먹은 후에 요령이 생겨서인지 쓰는 방법과 임팩트가 더욱 좋아지는 신기한 모습을 보여준다.[11] 성씨인 '코지마'의 앞 두글자가 영미권에선 익숙한 단어인 'Cozy(코지)'와 동일한 발음인 것을 이용한 유서깊은 별명으로, 영미권에선 본명만큼 유명한 별명.[12] 신일본 초창기 영 라이온 시절부터 사용하던 곡.[13] 1999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하여 전일본 이적 후에도 사용했던 곡. 이후 Stylus로 바뀌었지만, 2010년 신일본 재참전 이후 다시 사용하고 있다.[14] 머신건 찹 - 상대를 반대편 코너로 보내고 점핑 엘보 - 굴려서 눕혀놓고 다이빙 엘보 드랍을 쓰러 올라가기 전에 항상 왼팔을 뻗으면서 하는 말. 여기서 '바보자식(バカヤロ)'은 상대를 가리키는게 아니며 "제가 바보니까 제 자신을 말하는 겁니다"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15] 일명 '열배 발언' 내지 '텐코지 이론'. 1999년 3월 5일 고라쿠엔에서 열린 하이퍼 배틀 99에서 텐잔 & 코지마 & 히로 사이토 vs 코시나카 시로 & 사사키 켄스케 & 나가타 유지에서 히로 사이토가 핀을 내줘 패배한 이후에 내뱉은 말. 일본 프로레슬링계를 대표하는 우정 태그팀 텐코지를 대표하는 명언이다. 사실 1 + 1을 열 배 하면 당연히 20인데 왜 100배가 아니고 10배라 했는지, 무슨 숨겨진 의미가 있었는지 나중에 코지마에게 묻자 단순히 계산 착오였다고(...) 2006년에 정정 발언까지 했는데도 원본의 임팩트가 너무 큰 나머지 원본이 트위터에서 큰 화제가 되는 바람에 정정발언은 소리소문없이 묻혔다. 나중엔 본인도 즐겨 쓰는 경지에 이르렀으며 심지어 발언 후 17년 뒤인 2016년 작 용과 같이 6: 생명의 시에서도 쓰였다.[16] 일본의 주택설비기기 전문 회사.[17] 하시모토는 이 벨트를 7번 방어해내며 장장 489일을 지켜내다 97년 8월 31에게 사사키 켄스케에게 내줬다.[18] 이 타이틀은 8월 10일 사사키 켄스케와 야마자키 카즈오에게 패하면서 내줬다.[19] 경기는 16분만에 텐잔이 TTD로 핀을 따내며 승리했고, 아무 말 없이 떠나는 코지마에게 텐잔이 "코지마, 나가라, 문어자식아! 전일본에서라도...어디에서라도! 힘내라 자식아!"라고 말해주는 감동적인 장면이 마지막이었다.[20] 무토 케이지는 코지마에게 이적을 권유한 이유에 대해서 "당시 신일본 소속 선수들 중에서 밝고 긍정적이었다고 할까, 어두워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나가타 유지나 나카니시 마나부같은 선수들은 아마추어 레슬링 특유의 소극적이고 음침한 부분이 느껴졌다. 따라서 내가 하려고 했던 단체의 성격과는 맞지 않았기에 선택하지 않았다."라고 ~ 말한 적이 있다.[21] 이 경기는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2002년 올해의 경기 2위에 이름을 올렸으며. 별점은 ****3/4로 텐류는 만 50세 이상의 선수(만 52세 5개월)가 받은 역대 최고평점을 기록하게 되었다.[22] 락업 시작 자체가 1분 이후, 경기 총 시간 4분 30초동안 나온 기술 수를 한 손가락 안에 셀 수 있을 정도의 졸전이었으며 넥브레이커로 마무리된 이유는 상종가를 올리고 있던 코지마가 이 졸전의 기획을 듣고 자존심이 크게 상해 잭해머에 핀을 내주는 것에 반발하며 한사코 거부했기 때문이었다.[23] 미야하라 켄토가 2018년 10월부터 2020년 3월까지 10번을 방어해내며 타이 기록을 세우며 이 기록의 갱신에 도전했으나 3월 23일 스와마와의 11번째 방어전에서 패하며 기록 갱신이 좌절되었다.[24] 이 경기는 ****3/4의 평점을 받으며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2005년 올해의 경기 7위에 이름을 올린다.[25] 원래는 60분 시간 초과 무승부로 끝날 예정이었는데, 당시 이렇게 긴 경기가 거의 없어지고 말았던 신일본의 환경 때문인지 텐잔의 움직임이 50분이 넘어가자 현저히 안 좋아 졌으며, 결국 버티지 못하고 탈수 증세를 일으키며 완전히 탈진해 쓰러졌기 때문에 KO 처리로 59분 49초만에 코지마 사토시가 승리하는 것으로 즉석에서 결과가 변경되어 코지마가 역사적인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