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죽었다

 


1. 개요
2. 원전
3. 의미
4. 해석
5. 여담


1. 개요


예수를 더이상 신(God)으로 보지 않는 현세태를 표현한 니체의 말이다. 니체에 따르면 이 문제는 소크라테스가 육체에서 분리된 영혼이 존재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시작되었는데,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시간이 지나도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영혼의 힘인 '이성'을 '육체'보다 더 강조함으로써 육체적인 삶을 도외시하는 문제가 생겨버렸다는 것.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이성 중심의 사고방식을 플라톤이 이데아 사상으로 계승하였고, 플라톤의 '이데아'를 그리스도교가 '신(God)'의 개념으로 계승함으로써, 이러한 이원론의 문제는 고착화되었다. 이렇게 그리스도교는 '현실의 삶'보다 '죽음 이후의 영혼의 삶'(천국에서의 삶)을 더 강조하기에, 천국을 강조할수록 '현실에서의 삶'은 점점더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신은 죽어야 된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다.
그렇다고해서 '이성'이 없어져야 된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니체는 이성''''만''''을 중요시하는 기존 철학에서 벗어나, '이성'과 (삶의) '광기'가 서로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삶의 광기'를 '이성'으로 적절하게 포장해야 된다는 것이다. '삶의 광기'만 있으면 우리는 술이나 마약을 하면서 파멸에 이를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우리는 이성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성'만 있다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천국에서의 삶을 살기위해 '현실의 삶'을 외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둘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것.

2. 원전


'''Gott ist tot.'''

'''신은 죽었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의 발언이다. 다만 니체의 말로 유명해졌을 뿐 Gott ist tot라는 명제를 니체가 가장 먼저 제시한 것은 아니다.
이 문장이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그의 저서인 《즐거운 학문》에서 나온 한 미치광이의 말이다, 원문을 보자

그대들은 밝은 아침에 등불을 켜고 시장으로 달려가 쉴새없이 이렇게 외치는 미치광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신을 찾는다! 나는 신을 찾는다!"

주변에 신을 믿지 않는 자들이 많이 서 있었으므로, 그는 더 많은 조소를 일으켰다. 길이라도 잃은 것인가? 누군가가 말했다. 어린아이처럼 길을 못 찾고 헤메는 것인가? 또 다른 이가 말했다. 아니면 그는 숨는 것인가? 우리를 두려워하는 것인가? 여행을 하던 것인가? 이민을 위해 온 것인가?—이렇게 그들은 소리치고 웃었다. 미치광이는 그들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고 그들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신은 어디에 있지?" 그는 부르짖었다; "내가 가르쳐주리라. 우리가 신을 죽여버렸다—너희와 내가! 우리 모두는 신을 죽인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이런 일을 행하였단 말인가? 어떻게 우리가 바닷물을 전부 마셔버릴 수 있었단 말인가? 누가 우리에게 지평선 전체를 쓸어내어 버릴 스펀지라도 주었는가? 우리가 이 지구를 해로부터 풀어주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것은 이제 어디로 움직이는가? 우리는 어디로 움직이는가? 모든 항성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는가? 우리는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뒤로, 옆으로, 앞으로, 모든 방향으로? 아직도 위쪽이 있고 아래쪽이 있는가? 우리는 끝없는 허무 속에서 헤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빈 공간의 흐름을 느끼지도 못하진 않는가? 계속해서 추워지지는 않는가? 밤이 우리를 점점 궁지로 몰아가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아침에도 등불을 켜야 하는 것은 아닌가? 아직도 사토장이들이 신을 땅에 묻고 있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아직도 신이 부패해 가는 냄새가 나지 않는가? 신 또한 부패한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은 채로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여버렸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

여기서 신을 죽였다는 말은,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 가치가 부재하게 된 상황을 가리킨다.
신은 죽었다는 표현을 주요하게 언급하는 니체 이전의 사상가로는 헤겔이 있다. 헤겔은 시대정신이 가리키는 정명제로 '신은 죽었다'를 제시하는데, 그 까닭은 칸트의 비판철학이 신을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치부함으로써, 그리고 근대에 대두된 유명론이 신을 단지 이름 뿐인 것으로 규정해 버림으로써 신을 죽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곧 신은 죽었다가 되살아난다는 말을 덧붙이는데, 그에 따르면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것이 신의 본질이며, 그리고 인간 속에서 인간이 신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신이고, 마침내 차이를 극복하고 절대적 단계에 이른 정신은 소생의 과정을 거쳐 부활한 신인 것이다. 다시 말해 헤겔에게는 절대정신, 이성이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자신을 세계 안에서 실현해 가는 과정이 역사이다. 하지만 세계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본 니체는 이런 계몽주의적인 사고를 거부하고 개인이 스스로 의지를 통해 가치를 창조하여 신을 대체하는 것을 추구한 것이다.
이후로도 신은 죽었다는 명제가 다른 철학자들의 저작들에서 발견되고는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니체의 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경우 이 명제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전체를 관통하는 본질주의, 즉 절대적 관념에 대한 부정이 되며 헤겔적이라기보다는 니체적이다.

3. 의미


세상에는 하나의 정답도 없고, 그래서 신성한건 더더욱 없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니체는 '객관성'이란게 헛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철학자들이 말하는 객관적이란거는 국어적인 의미에서 'A라는 개인이 보고 B라는 개인이 보고 C라는 개인이 봐도 맞는거'가 아니다. 대신 데카르트가 말한 객관성인데, 신적인 의미에서 절대적인 객관성을 말한다. 즉, 인류가 모두 동의하는 수준정도가 아니라, 모기가 보고 외계인이 보더라도(...), 100만년 전에도, 100만년 이후에도, 우주 어디에 가더라도, 심지어 우주가 끝나고 다시 우주가 시작되더라도 유지되는 수준의 진리를 말한다. 이런 터무니 없는 진리를 추구하는 이유는 서양 철학자들이 기독교 신학과 투쟁해온 역사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어지간히 공고한 과학적 진리조차도, 모두 한시적인 가설에 불과하거나, 진리에 확실히 도달했다고 확신이 영원히 불가능한 그런 상태에 놓여있다. 그저 인간의 언어로 자연을 기술한것에 불과하다. 더불어 니체는 수학조차도 인간의 언어에 불과하다는 관점을 취한다.
이렇게 객관적 정답이란게 없으니 인간에게 꼭 이래야 한다거나, 이것이 정답이다 라는건 존재 할 수가 없다. 자연히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과 진리도 그저 자기네가 가진 관점을 편협하게 확신을가지다 못해 남에게 강요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추구해야할 절대적인 가치[1]는 없다.'는 말이다. 우선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니체가 정의한 '확신자'와 '초인(Übermensch)'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니체가 정의한 '확신자'는 궁극적인 최후의 진리를 잡았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제 자신들이 궁극적 진리를 알았다고 생각함으로써 더이상 변화나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안주하려 한다. 또 자신이 진리를 알고 있다는 이유로 말미암아, 다른 진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귀 막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들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니체는 이들이 이러한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그들이 진정으로 참된 것을 알고 있다는 확신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고, 그러기에 인간의 '확신'이 '의심'보다 위험스럽고 독단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그에 비해 '초인'은 어떤 주의(ism)에 안착하지 않고 항상 움직이며 나아가는 자이고 몰락하는 자이며, 그렇게 몰락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상승하는 자이다. 예를 들자면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던 한 사람이 신앙이 가진 모순들과 불일치함등에 꾸준히 의심하며 질문을 던져가며 끝내 더 나은 신앙을 만들거나 또는 그 신앙을 몰락하게 하여 더 나은 사상체계를 발전시킨다면 이는 '초인' 이고, 해당 신앙에서 발견된 모순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신앙무오설등을 설파하며 매일 12시간 이상 기도를 올려야 하는 교리등을 따르며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면 이들은 '확신자' 이며 '노예'인 것이다. 이러한 '초인'들은 자기가 따르던 이념이나 주의가 지닌 논리의 제한성, 혹은 그 한계를 알고 있기에 끊임없이 이행하는 자이고, 그러므로 모든 주의에서 벗어나 있다. 참언으로 초인, 위버멘쉬(Übermensch, 영어로는 Over + human)는 무지막지한 능력을 가진 '슈퍼맨'이 아니라, 이 진실되고 변화하는 세계에서[2] 자신의 모든 것을 극복하여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가장 완벽한 '극복하는 자'이다.[3] 힘에의 의지 또한 이 모든 것을 극복하는 순수한 '힘으로서의 의지' 그 자체이지만, 과거 오역으로 인하여 권력으로 번역하는 오류를 범하였다.[4]
이에 니체는 궁극적으로 인간이 항상 의지하고 따를 수 있는 진리, 혹은 절대자가 없는 세계란 어떤 것에도 고정되거나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극복의 과정에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인간은 이러한 운명을 고대 신앙이 그러했듯 두려워 하며 '신의 분노'라며 포장하거나, 혹은 '이런 끝없는 고통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숙명이 바로 인간의 한계'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일부분이자 자기 것으로 인식하며 긍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비유하자면 신의 사망 이후 '초인'으로 사는 것을 인간의 숙명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선언은 보편적인 절대 불변의 진리를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선전 포고이며, '초인'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5]

4. 해석


니체의 사상은 초인(超人)에 의한 힘에의 의지의 추구이며, 초인(위버멘시)이란, 신이 없는 세상에서 허무를 극복하고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살고자, '자신의 삶 그 자체'를 긍정하는 사람이다.
19세기를 비롯한 이전의 유럽은 기독교 정신이 지배하는 세계였으며, 인간이 신에 귀의하여 신의 의지(이성적 진리의 세계)에 따라서 삶을 영위하는 도덕적 세계였는데, 이것은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권력의지와는 대립된 가치 체계이다.
니체는 세기의 반항아처럼 기독교의 도덕적 세계관에 반항하면서 그와는 대립되는 새로운 윤리, 즉 천상(天上)의 이라는 타율에서 벗어나, 고독하지만 자기 자신의 존엄성을 기초로, 자기가 스스로 지상적(地上的) 선악의 기준을 세우려는 초인의 윤리를 부르짖은 것이며, 새로운 윤리에 의해 기왕의 형이상학적 개념 구도를 타파, 초월하는 새로운 신(새로운 가치 창조자)이 되고자 하는 것이 니체의 목적이다.

만약 신들이 존재한다면 어찌 우리는 우리가 신이 아니라는 것을 견딜 수 있겠느냐! 그런고로 신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6]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한 이유는 기독교로 대표되는 유럽의 형이상학적 가치체계의 종말을 선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초월적 존재에게 의지하는 것은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것에 불과하며, 천국과 종말론에 기대어 내세의 삶을 더 중요시하는 기독교적 사고방식은, 암암리에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삶을 덜 중요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내세의 천국을 목적으로, 현실을 희생시키는 노예도덕이다. 이러한 기독교의 미신적 사고체계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매우 극단적인 표현으로 주장한 것이, 바로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인 셈이다.[7]

5. 여담


  • 인용되는 빈도는 카를 마르크스의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와 쌍벽을 이룬다. 실제로 니체는 기독교를 적나라하게 비판하였으며, 그 비판을 대표하는 아포리즘(명언)으로 자주 사용되는 구절이다.
  • 이와 관련해서 니체와 신과 청소부를 동시에 등장시키는 농담도 있었다. 이 낙서는 만화 광수생각에도 나온적이 있다. 다만 여기선 변형되어서 낙서를 지우면서 '걸리면 죽는다'로 바뀌었다. 사실은 독일에서 수입된 농담이라고.
>"신은 죽었다." -니체-
>"니체 넌 죽었다." -신-
>"니네 둘 다 죽었다." -청소부 아줌마-
  • ||<:>{{{#!wiki style="margin:-5px -1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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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에 관련된 전통적인 낙서 패턴이 하나 있으며, 벽에다 다음 세 줄을 쓰면 된다.
뒤의 두 문장은 소소하게 차이가 있는 다양한 파생형들이 있다. ||
  • 2019년 3월 19일 루벤 랭던이 페이스북에서 뉴스위크를 비판하면서 '언론은 죽었다'라고 패러디하였다. #
  •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다룬 일상 4컷 만화 니체 선생에서도, 불교를 공부하는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이 "손님은 신"이라고 진상을 부리는 취객에게 "신은 죽었다."며 손놈의 얼굴에 바코드를 찍는다.
  •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는 자신을 보지 못하는 신이 자신의 종족을 완전에 이르게 하기 위해 자신을 죽이는 신의 화염에 최후를 맞는다. 그것이 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고 한다. 자신이 돌보던 종족이 마침내 기쁨에 찬 목소리로 '신은 죽었다'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사실 새 시리즈에선 말 그대로 신의 살해가 아닌 숨겨진 뜻 - 절대적 진리의 부정 - 역시 드러난다. 바우 성주의 신념에 가득 찼을 때가 가장 위험한 때라는 말이나 계속해서 나타나는 도덕에 대한 부정 등이 그 예.
  • 2014년에 개봉한(한국 2015년 개봉) 미국 영화 "신은 죽지 않았다(God's Not Dead)"에서는 "신은 죽었다"를 모티브로 하되, 내용은 정반대로 학생들에게 신의 죽음을 강요하는 교수를 상대로 학생인 주인공이 신은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이 명제에 대한 깊은 철학적 고찰보다는 기독교적인 믿음을 강조하는 기독교적인 영화다.[8] 그리고 후속작으로 2016년에 개봉한(한국 2017년 개봉) 신은 죽지 않았다 2도 나왔는데, 무신론 수업을 강요하는 학교 선생에 대해서 한 교사가 투쟁하는 내용을 법정 드라마로 다루고 있다. 역시 기독교적 믿음이 주제이다. 두 영화 다 작중에서 기독교가 탄압받는 듯한 연출이 있는데, 실상은 정반대다. 사회 절대다수가 기독교인이고 광범위하게 근본주의가 횡행하고 불신자는 아예 정치출마도 못하게 법으로 정한 주도 많은 곳이 미국이다. 현실의 미국 사회에서 특히 남쪽에서는 무신론자에 대한 인식은 꽤 나쁘다. 다만 무종교인에 대해서는 그나마 나은편.[9] 다만 2010년대 이후로는 무종교인의 증가로 이러한 인식은 많이 사라졌으며 종교적인 곳은 치안이나 사회가 개판이라는 인식이 많이 생겼으므로 이는 어느정도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지금 미국은 무종교인 인구가 가톨릭 인구를 추월했다. 단, 이 배경이 북미나, 한국, 유럽이 아닌 곳들이라면 제법 맞아떨어지는데, 영화에서처럼 기독교 신자가 타인에게 말로만 당하는 박해만 받게 되면 다행일 지경인 기독교공포증 국가는 전세계에 아주 많다. 특히 대표적인 곳으로는 중동 및 이슬람 문화권 국가들이다. 물론, 이슬람권 국가들은 무신론자가 살기에도 무척 힘든 곳이다. 3편인 신은 죽지 않았다 3: 어둠 속의 빛까지 나왔다.
  • 인디 게임 제작 팀 hc에서 만든 비주얼 노벨five colors volunteers에서는 토끼가 미쳐버리자 갑자기 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주변 인물들이 이를 인정하지 않자 토끼는 화를 내고 결국 주변에서 억지로 인정하게 되는데 이때 토끼가 말한다.
  • 2008년 KBS 예능프로 1박 2일의 강원도 인제 편에서 멤버들간 퀴즈대결을 벌이다가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한 사람을 맞추라는 문제가 나왔는데 여기서 강호동은 "신이 왜 죽어요"라는 오답을 내놓았고 오답에 대한 벌칙으로 물대포 세례를 맞았다.
  • 신을 죽이는 방법에선 신을 죽이는 주문으로 나오는데 "신 ○○○은/는 죽었다" 이런 구조다.
  • 비와이와 심바 자와디의 곡 Neo Christian Flow에서 "신이 죽었다고 말했던 니체는 죽었다"라는 가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언급됐다.
[1] 플라톤의 이데아, 종교의 신, 정의, 자본가들의 자본, 과학, 이성 등등등.[2] 니체는 천국과 지옥, 이데아를 변화하지 않는 거짓 세계라고 두고 두고 말했다.[3] 원광대학교 철학과의 김정현 교수는 Ubermensch를 '초인'이 아니라 '극복인'으로 번역한다.[4] 이 '위버멘쉬'는 아돌프 히틀러도 그 개념을 오해하여 오용, 악용했다. 그런데 그 근본 원인은 히틀러에게 이론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사악한 니체의 여동생이었다. 니체를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 일생동안 속였다. 위버멘쉬를 권력의지의 개념으로 자리잡게 한 것도 그녀의 만행.[5] 여기서 나오는 '초인(위버멘시)'은 초능력을 가진 영웅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절대 진리라는 '신(God)'이 없는 자리에, 자신 스스로가 그 공백을 감내해 내고 허무를 극복하여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야 된다는 뜻에서 '초인'(위버멘쉬)라고 부른 것. 이 '초인'이라는 말이 오해의 소지를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최근에는 '극복인'으로 부르기도 한다.[6] 윌 듀런트의 《철학 이야기》, 최혁순 역에서 인용.[7] 니체는 그의 책 《안티크리스트》에서 기독교를 심하게 비판하였다. 또한 나머지 그의 책에서 기독교를 일관되게 비판하고 있다. 너무 적나라하게 비판을 하여서 낯이 뜨거워질 정도(...) 니체의 기독교 비판을 다양하게 해석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니체가 기독교를 일관되고 신랄하게 비판했다는 것은 그의 책 한 권만 읽어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물론 니체는 인간의 이성과 절대적 진리, 수많은 다른 권위에 대해서도 비판하였다. 하지만 그 중심에 기독교가 있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사실이다. 따라서 기독교 말고도 다른 권위에 대해서도 비판했으니 '신은 죽었다'는 말을 가지고 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니체의 생각과는 정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 셈. 적어도 니체는 기독교를 심각하게 비판하였고 '신은 죽었다'는 아포리즘을 그 비판에 사용했다는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8] 그 예로 무신론자라고 주장하고 그것을 강요하는 교수가 실은 어릴 적, 기독교 신자였다가 하나님이 자기 기도를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상처를 입은, 사실상 도킨스나 크리스토퍼 히친스 이상의 반신론자라는 것이다. 물론 그가 무신론자이면서 반신론자일 수도 있지만... 그런데, 유신론자나 종교인이었다가 상처를 받고 무신론자가 된 사례는 의외로 제법 흔하다.[9] 물론 냉전시기에 이루워진 반공정서 때문일수도 미국에서는 무신론자는 공산주의와 연관되어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