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image]
'''Die Religion … ist das Opium des Volks.'''[1]
-
출전: Zur Kritik der Hegel'schen Rechtsphilosophie (헤겔 법철학의 비판을 위하여)
1. 개요
공산주의 철학자인 카를 마르크스가 헤겔의 『법철학 강요(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를 비평하면서 한 말. 이 어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종교에 대한 관점에 대해 알아 볼 필요가 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74년 프랑스 사회주의자 루이 블랑키의 추종자들이 종교 금지를 내세우자 다소 조롱하는 투로 그런 금지는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고 오히려 "박해는 달갑지 않은 신념을 부추기는데 가장 효과적이다."라며 이를 일축했다. 쉽게 말해 하지 마라고 하면 더 하려고 들 테니 그냥 놔두라는 말이다.
이렇듯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종교를 금지하기는커녕 종교가 국가와 무관한 사적인 문제로 남아야 하고 종교의 완전한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볼셰비키의 정책이기도 했는데 레닌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설명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종교의 사회적 근원인 소외, 착취, 억압 등이 사라져서 종교가 점차 사멸하는 것만이 진정한 종교의 폐지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놓고 봤을 때 '''종교'''는 마르크스주의자들 관점에서 사회적으로 문제되는 요소가 있을 때 생겨나는 것이며 사회주의의 이상이 이루어지면 자연히 도태되어 사라질 구시대의 유물이자 악습으로 취급한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 국가의 지도자였던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는 말년에 건강이 악화되자 성직자에게 기도를 부탁하며 종교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국가는 종교에 관여하지 말아야 하며 종교 단체는 국가와 아무 관계도 없어야 한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종교를 아주 자유롭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종교가 없다는 것도, 즉 모든 사회주의자가 보통 그렇듯이 무신론자라는 것도 자유롭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앙을 이유로 시민을 차별하는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공식 문서에 시민의 종교를 명기하는 것도 무조건 폐지돼야 한다.
2. 상세
마르크스 생전 아편은 널리 퍼진 마약이면서 동시에 '''진통제'''였다. 21세기인 지금으로 대입해보면 프로포폴 정도 되는 셈. 마르크스가 종교에 대해 한 이야기는 단지 종교가 '고통에 대한 일시적인 위안을 준다는 것' 뿐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현실의 고통[2] 을 감수하게 만들고 현 상태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약하게 만든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굳이 진통제가 아닌 '아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르크스가 헤겔법철학비판에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말한 문맥을 보면 종교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3]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투쟁은 간접적으로 종교를 정신적인 향기로 삼는 세상에 대한 투쟁이기도 하다. 종교적인 고통은 실제 고통에 대한 표현이면서 동시에 실제 고통에 대한 항의이기도 하다.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들의 한숨이며, 무자비한 세상의 본질이며, 영혼 없는 상황의 핵심이다. '''그것은 인민의 아편이다. 인민에게 환상의 행복인 종교를 폐지하는 것은 인민의 진정한 행복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그들의 현재 상태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그들이 환상을 필요로 하는 상태를 포기하도록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비판은, 초기 단계에는, 종교가 후광이 되어주는 눈물의 골짜기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위의 글의 의미는 명백하다. 종교가 주는 환상이 인간에게 커다란 해악을 끼치고 있으므로, 종교를 강하게 비판하고 투쟁해서 종교의 실체를 폭로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종교를 없애고 종교 없이도 행복한 환상의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가 진통제라는 바람직한 도구라는 의미로 볼 수도 없고, 종교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는 태도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종교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쇠사슬에 나 있는 상상 속의 꽃들을 잡아뽑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쇠사슬을 아무런 환상이나 위안 없이 견디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쇠사슬을 벗어던지고 살아있는 진짜 꽃을 잡게 하기 위해서이다. 종교에 대한 비판은 인간을 미몽에서 깨어나게 만들어, 환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감각을 회복한 인간으로서 생각하고 행동하여 자신의 실체를 변화시킴으로써 스스로 진정한 태양 아래로 걸어나올 수 있게 한다."
마르크스 본인 역시 아편에 대해 관대하지 않았다. 마르크스가 아편전쟁에 대해서 뉴욕 데일리 트리뷴에 기고한 글을 보더라도 아편은 마약(drug)으로서 일반적인 상품(goods)과는 구별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글에서 마르크스는 심지어 아편을 '''독'''(poison)으로, 아편을 즐기는 것을 '''자살'''(suicide)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레닌 역시 종교가 다수의 사람들을 짓누르는 도구이며, 종교가 주는 '천국에서의 안식'에 대한 환상 때문에 사람들이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잃는 반면 부자들은 종교가 요구하는 값싼 자선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천국행 티켓을 거둬들일 뿐이라며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원문] 그리고 레닌은 권력을 잡고 명백하게 교회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1922년에는 성직자들을 처형하라는 명령을 내려 그 결과로 14000~20000명의 성직자들이 실제로 처형되었다. 이를 러시아 정교회 조직과의 정쟁만으로 해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물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러시아 정교회지만, 러시아 안의 소수민족들이 믿던 가톨릭 교회나 유대교, 이슬람교, 티베트 불교 역시 마찬가지로 박해를 당했기 때문이다. 레닌과 볼셰비키가 종교를 박해하지 않았다는 것은 실제 역사를 무시하고 '상상 속의 꽃들'로 도피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잡지인 개벽 제63호에 실린 '반기독교운동에 관하야'라는 글을 보면 이런 부분이 있다. (1925年)
그리고 만해 한용운이 1938년 잡지 《삼천리》에 게재한 <반종교운동의 비판>이란 논설문의 일부분을 보자.70여 년전 파리콤뮨을 경험한 시대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종교는 인민을 아편중독환자로 만드는 아편독이다!』하여 만히는 종교의 기원과 종교의 폐해을 명정히 하여 과학적 메스로 종교가 인민의게 아편독이 되는 것을 표명하엿거니와 20년전, 농민과 노동자의 천하가 된 노국청년들은 그 보담도 좀 방법이 달러서 『신을 사형집행한다』은 형식으로 신의 모형을 만드러 수래 우에 실고 시가에 끄집고 도라다니면서 시위적으로 반종교운동을 하엿다 합듸다.
또한 탈북자들은 북한이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고, 제국주의자들의 무기라는 교육을 귀가 닳도록" 가르쳤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북한 정부가 ‘모든 종교는 아편이라고 교시하고 있기 때문에 신앙인들은 정신 이상자 취급을 받는다고 말한다.# #공산당은 그 유물론적 견지에서 종교를 아편이라 하고 신앙을 酩酊(명정)이라 하야 일절 종교를 배격한다. 그 결과 10월 혁명 이후 곳 공산당의 종교압박 즉 반종교운동이 개시돼야 교회는 파괴되고 성상은 유린되고 다수의 승려는 학살되얏다.
식민지 시절에도 이미 이런 인식이 있었음을 쉽게 알 수 있고[4] , 또한 탈북자들의 증언에서도 북한 정부가 주민에게 마르크스의 저 문장을 들어 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지속적으로 주입시키고 있음이 명확하다. 그런데 남북 분단 뒤에 남한으로 귀순한 어떤 특정 인물이 저 문장을 의도적으로 왜곡 해석한 것 때문에 사람들이 잘못 인식하게 되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한국이 마르크스주의 연구가 그리 성행한 나라가 아니라고는 해도, 마르크스주의 포럼이 2001년 이후 매년(2013년 현재 13회) 열릴 정도의 연구는 진행되고 있고, 사회과학계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연구를 전문분야로 삼는 사람의 수도 적지 않다. 그러면,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평생을 바친 수십명의 학자들이, 독일어 원전까지 읽어가면서 일개 소설가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줄 리도 없다.
철학자 강유원도 해석에 관한 논란에 대해 "마르크스의 말은 종교를 비판하기 위해서 한 것"이라고 짧게 답한 바 있다. 참고
사족이지만 영화 티벳에서의 7년에선 중국과 티벳의 관계가 험악해졌을 때 달라이 라마를 알현하러 온 중국군 장군이 달라이 라마의 훈훈한 덕담을 다 듣고는 쌩까면서 "종교는 아편이오!"라고 한마디한다.
2.1. 마약이 아니라는 주장과 반박
이를 오역이라고 하는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Das religiöse Elend ist in einem der Ausdruck des wirklichen Elendes und in einem die Protestation gegen das wirkliche Elend. Die Religion ist der Seufzer der bedrängten Kreatur, das Gemüth einer herzlosen Welt, wie sie der Geist geistloser Zustände ist. '''Sie ist das Opium des Volks.'''
-
종교적 비참은 현실적 비참의 표현이자 현실적 비참에 대한 항의다.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들의 한숨이며, 심장 없는 세상의 심장이며, 영혼 없는 상황의 영혼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 사실 이건 오역이 아닌 의도적인 왜곡으로 북한에서 귀순한 학자인 이항구가 의도적으로 종교 = 마약이라는 개념을 만들기 위해서 마르크스의 말을 자기 의도대로 자르고 꼬아놓은 것이다. 실제로 당시 아편은 마약이라기 보다는 진통제라는 개념이 더 강했다. 마르크스의 이 말이 나온 것은 1844년이고, 당시에 진통제는 아편이 거의 유일했다. 마르크스 역시 진통제로 아편을 사용하고 이에 대한 긍정적 언급을 한 적이 있었다.[5]
- 종교에 대한 사회주의의 기본적인 태도를 보자면 동시대 그의 파트너였던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종교에 대한 사회주의의 태도에 대해서 "그대로" 라고 답하였다. 이는 비록 종교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는 가지지만 일정 이상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의도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본래 뜻대로 보자면 종교는 치료제가 아닌 진통제에 불과한 것으로서 필요하긴 하지만 오용하면 위험한 존재라는 의미다.[6] 댓글 참조.
다만 이 번역이 오역이며 마르크스의 본래 의도는 '진통제이지만 치료제는 아니기에 필요하기는 하지만 오용하면 위험하다'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낮다. 종교에 대한 마르크스의 입장은 그의 저작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이 문서 곳곳에서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즉, 종교를 진통제에 비유한 의도는 '병을 치료하는 수단이 아닌 단지 통증을 가라앉히는 수단' 이라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탈북 학자-작가인 이항구가 마르크스의 주장을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종교는 아편'이라는 인식을 만들었다는 주장은 더욱 해괴하다. 후대 사람이라면 몰라도 선대 사람들의 인식까지 바꿔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3. 카를 마르크스가 처음 한 말인가?
그러나 이런 말을 마르크스가 처음 했는지는 약간의 이론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비슷한 말이 이미 있기 때문이다.
보다시피 '''인민의 아편'''은 놀랍게도 사드 후작이 먼저 소설에서 썼다. 그가 단순한 야설가가 아니라 사상가로 대접받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놓고 종교를 아편이라 쓴 문헌은 다음과 같다.Quoique la nature donne beaucoup à ton peuple, il jouit de peu. Mais ce n'est pas l'effet de son inaction ; cet engourdissement a sa source dans ta politique qui, pour tenir le peuple dans sa dépendance, lui ferme la porte des richesses ; d'après cela, son mal est sans remède, et l'état politique n'est pas dans une situation moins violente que le gouvernement civil, puisqu'il tire ses forces de sa faiblesse même. La crainte que tu as, Ferdinand, que l'on ne découvre ce que je te dis, te fait exiler les arts et les talents de ton royaume. Tu redoutes l'œil puissant du génie, voilà pourquoi tu favorises l'ignorance. '''C'est de l'opium que tu fais prendre à ton peuple,''' afin qu'engourdi par ce somnifère, il ne sente pas les plaies dont tu le déchires. Et voilà d'où vient que l'on ne trouve chez toi aucun des établissements qui donnent de grands hommes à la patrie : les récompenses dues au savoir y sont inconnues, et, comme il n'y a aucun honneur ni aucun profit à être savant, personne ne se soucie de le devenir.
자연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많은 것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이를 누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의 게으름 탓이 아닙니다. 이런 마비현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 의존상태를 유지하도록 하는 당신의 통치방식에서 기인(起因)한 문제이고, 부(富)는 그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들의 고질병에는 백약(百藥)이 무효(無效)하고, 나약한 중에서 강함을 찾으니, 체제가 민정(民政)만큼이나 난폭합니다. 페르디낭, 당신의 두려움, 내가 당신에게 말해준 것들이 들통나면 어쩌나 하는 그 두려움은, 당신의 왕국에서 예능(藝能)과 기능(技能)을 추방(追放)했습니다. 당신은 천재들의 날카로운 눈을 두려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무지(無知)를 조장(助長)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백성들에게 준 것은 아편(阿片)입니다.''' 그 아편에 취해, 그들은 당신이 가하는 자신들의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인(偉人)이 당신의 세(勢)가 닿지 않는 곳에서만 나오는 것입니다. 이곳에는 지식에 의한 보상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똑똑해져봤자 명예도 이득도 없으니 누구도 장래를 도모(圖謀)하지 않습니다.
《줄리엣 이야기 - 악덕의 번영》(Histoire de Juliette, ou les Prosperites du vice) 5부, 사드 후작, 1797년, 줄리엣이 국왕 페르디낭을 비난하는 장면
이렇듯이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과 종교가 아편이라는 말이 모두 선례가 있다. 아마 카를 마르크스는 이 두 가지 말을 섞어 적절히 나타내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Ihre sogenannte Religion wirkt blos, wie ein Opiat''' : reizend, betäubend, Schmerzen aus Schwäche stillend.
너희가 말하는 이른바 '''종교라는 것은 그저 아편 노릇을 할 뿐이다.''' 매혹하고, 마취시키고, 나약함에서 오는 고통을 잠재우는 노릇 말이다.
-《꽃가루》(Blütenstaub), 예명: 노발리스(Novalis) 본명: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프라이헤르 폰 하르덴베르크(Georg Friedrich Freiherr von Hardenberg), 1798년
4. 마르크스 원전을 통한 이해
사실 아편이 마약이냐 진통제냐 같은 논쟁보다 중요한 것은 원전에서 마르크스가 어떻게 종교를 분석했느냐 하는 사실이다.
마르크스의 종교 분석에 있어서 알아야 할 것은 첫째로 마르크스가 종교에 대해 "지배 계급의 도구"라는 환원론적 견해를 제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둘째, 마르크스의 종교분석에 있어서의 결론, 셋째로 마르크스주의는 종교활동의 금지를 전혀 암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이 목차의 내용 또한 원전이 아닌 존 몰리뉴등의 2차, 3차 대중저술들을 통한 간접인용 형식으로 마르크스철학의 종교분야를 서술하고 있으므로 더 깊이있는 탐구를 위해서는 마르크스-엥겔스의 《On Religion》, 엥겔스의 《반뒤링론》" 블라디미르 레닌의 《Socialsim and Religion》 등의 원전을 읽으시는 편이 나을 것이다.
4.1. 마르크스의 종교 분석의 시작점
먼저 마르크스의 종교 비판은 18세기 말엽부터 마르크스의 활동시기까지 종교비판을 전개한 학자들, 프랑스의 백과전서파나 다비스 슈트라우스와 포이어바흐 같은 청년 헤겔 학파의 주장을 대체로 수용하면서 전개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헤겔 법철학 비판》의 서문에서 마르크스는 최초로, 그리고 가장 풍부하게 종교 분석을 전개한다.
그리고 포이어바흐의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그대로 이용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독일에서 '''종교 비판'''은 본질적으로 끝났다. 그리고 종교비판은 모든 비판의 전제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왜 인간이 종교를 만들어야 한다고 느끼는가''' 하는 문제로 곧장 나아간다.반종교적 비판의 기초는 '''인간이 종교를 만들지''' 종교가 인간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역사유물론적 종교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은 '소외'를 가리킨다. 인간이 종교를 만드는 이유는 자기 노동으로부터, 자기 노동의 생산물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채, 비록 자신이 만들었지만 자신이 통제할 수 없고 오히려 낯선 힘으로 자신을 지배하는 세계에 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해서 초월적 힘이나 힘들이 인간을 지배한다고 상상하지만 사실 이런 초월적 힘이나 힘들은 인간의 두려움, 희망, 염원이 투사된 것일 뿐이다.종교는 아직 역경을 딛고 자립하지 못한 인간이나 이미 자신을 다시 잃어버린 인간의 자기의식이자 자각이다. 그런데 '''인간'''은 세계의 바깥에 웅크린 추상적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인간의 세계''', 즉 국가, 사회다. 이 국가와 사회는 '''세계에 대한 전도된 의식'''인 종교를 만들어 낸다. 왜냐하면 이 국가와 사회가 '''전도된 세계'''이기 때문이다.
4.2. 종교는 단순한 지배계급의 도구가 아니다
마르크스는 다음으로 박사학위 논문 몇 개를 써도 될 만한 주제와 사상들을 단 하나의 문장에 담아 종교의 다양한 사회적 기능을 설명한다.
여기서 이미 마르크스가 단순히 지배계급의 도구로 종교를 환원적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란 것이 밝혀지며 더욱 유명하며 이 항목의 제목이 된 문장을 포함한 다음 구절에서는 더욱 분명히 밝혀진다.종교는 세계를 설명하는 일반 이론이고, 세계에 대한 백과사전식 개요이고, 이해하기 쉬운 세계의 이치이고, 세계의 정신적 체면이고, 세계의 열광이고, 세계에 대한 도덕적 승인이고, 세계를 근엄하게 보완하는 것이고, 어디서나 위안과 정당화를 제공하는 보편적 토대다.
이 구절에 비추어 보면 마르크스는 종교를 지배자들이 사람들을 기만하고 조종하는 수단으로만 이해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종교는 현재 상황에 타협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현실의 불행을 표현하고 이에 항의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마르크스는 이해하고 있었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종교는 이 두 가지 모순된 구실을 동시에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기독교의 경우 지배 수단으로서의 역할과 저항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모두 가졌고 다른 종교들도 비슷하다.'''종교적''' 고통은 현실의 불행의 '''표현'''이자 현실의 불행에 대한 '''항의'''다. 종교는 천대받는 피조물의 한숨이고, 몰인정한 세계의 인정이고, 정신을 상실한 현실의 정신이다. 종교는 사람들의 '''아편'''이다.
- 복음서의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오복음서, 산상수훈)"에서 보이는 저항적 기독교 ↔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라(루카복음서)", "권세 있는 자에게 복종하라(로마서)"에서 보이는 제국통치종교로서의 기독교
- 봉건귀족 및 군주와 유착한 가톨릭과 정교회 ↔ 맹아 상태의 부르주아지의 탄생을 알린 개신교.
- 1525년 독일 농민전쟁에서 귀족들의 편에 서서 농민들을 박해한 루터의 보수적 개신교[7] ↔ 토마스 뮌처가 이끄는 혁명적 개신교
-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인종 격리에 찬성한 네덜란드 개신교 ↔ 데스몬드 투투 주교의 성공회
- 미국 인종차별에 저항한 마틴 루터 킹의 그리스도교 ↔ 보수적 인종 차별 우파들의 그리스도교
- 남아메리카 과두지배 체제를 옹호하는 반동적 가톨릭 ↔ 빈민에 크게 공감하는 급진적 해방신학
- 성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혐오발언을 일삼는 보수 기독교 ↔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퀴어신학
4.3. 마르크스가 내린 결론
제일 처음 얘기한 바와 같이 마르크스가 이러한 분석에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간단히 얘기해서 종교를 없애려면 세계를 변혁해서, 사람들이 더는 종교에 의지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더 은유를 써서 길게 강조하면따라서 종교에 반대하는 투쟁은 간접적으로 '''내세에 반대하는 투쟁'''이 되는데, 내세의 '''향기'''가 바로 종교다.
사람들의 '''허구적 행복인 종교가 폐지되어야 사람들이 실제로 행복해질 것'''이다. 행복의 조건에 대한 허상을 버리라는 요구는 허상이 필요한 조건을 버리라는 요구다. 따라서 종교 비판은 종교가 후광 노릇을 하는 현세에 대한 맹아적 비판이다.
비판은 사슬에 꽃혀있던 가상의 꽃들을 뽑아냈다. 인간이 환상이나 위안 없는 사슬을 계속 차고 있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슬을 벗어 던지고 살아 있는 꽃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진리의 내세가 사라진 뒤에 현세의 진리를 확립하는 것은 역사의 과제다. 인간의 자기소외의 신성한 형태가 폭로된 뒤에 신성하지 않은 형태 속에 있는 자기소외를 폭로하는 것은 역사에 기여하는 철학의 당면 과제다. 따라서 천상에 대한 비판은 지상에 대한 비판으로, 종교에 대한 비판은 법에 대한 비판으로, 신학에 대한 비판은 정치에 대한 비판으로 바뀐다.
5. 부정적 영향
종교에 대한 재평가를 통한 학문적 업적과 별개로, 오늘날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종교에 대한 핍박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하더라도, 마르크스의 종교에 대한 관점은 냉전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종교인들이 희생된 원인을 제공하였다. 물론 이런 비판은 이교도를 학살한 종교에게도 똑같이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런 논리로 많은 종교인을 희생시킨 건 전형적인 권력 중독일 뿐이다.[8] 공산주의 국가의 종교에 대한 탄압으로 종교인들의 공산주의에 대한 평가는 매우 낮다.[9] 북한이나 옛날 중국, 몽골,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루마니아, 알바니아처럼 학살 수준의 탄압이 이루어진[10] 나라도 있고, 동독,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소련,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등에서는 표면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듯 했지만 실제로는 천천히 말려죽이는 것에 가까웠고, 어느 공산국가나 성직자는 정상적인 생활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리고 급진적인 무신론, 반종교 이념은 비단 현실사회주의권의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아나키즘 세력도 역사적으로 공유해왔다. 특히 사회적으로 종교의 영향력이 강할수록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전투적 무신론 성향도 강해지는 법이라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 제2공화국의 경우 오히려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아나키스트 민병대들이 카톨릭 교회 방화, 성직자 처형에 열을 올리는 반면 대외적인 이미지도 신경써야 되는 집권 여당인 사회노동당 정부와 여기 연립한 공산당이 오히려 자제를 촉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현실 공산권은 기본적으로 종교 탄압 정책을 일반적으로 밀었지만 정치적 필요나 여건에 따라 오히려 완급 조절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베트남의 월맹정권은 베트콩 시절부터 남베트남 내 반체제 운동에 불교계의 참여가 상당히 크고, 남베트남 응오딘디엠 대통령 가문과 측근들의 카톨릭이란 공공의 적이 있어 대충 직접적인 체제 비판은 하지 않는 선에서 불교계와 적당히 타협을 봤고, 라오스의 경우 프랑스 식민시절부터 그나마 이웃 베트남과 비교해도 기본적인 식민지적 개발 자체도 너무 안되 공산주의고 나발이고 누가 정권을 잡던 간에 기본적으로 실무 관료를 할수 있는 식자층 자체가 여전히 상좌부 불교 승려들 뿐인지라 되려 공산정권이 불교계를 적극 포섭한 사례도 있다. 중남미 경우도 20세기 초중반에는 멕시코 혁명 이후 혁명 정부가 반동적인 카톨릭계 상대로 크리스테로 전쟁이란 거대한 무장 반란까지 겪으면서 반종교 기조를 유지했지만, 특히 20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종교계와 가까워지는 성향을 보인다. 중남미는 원래 식민지 시절부터 식민당국, 유럽계 백인 정착자들 상대로 원주민이나 탈주노예들의 권익을 옹호하던 반체제 사제 집단의 전통도 강한지라 성직자들 본인들이 오히려 급진 좌익 혁명운동에 투신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20세기 후반엔 해방신학이란 조류도 생기면서 연대의 여지도 더 커졌다.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만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본격적인 정치적 도전만 없으면 카톨릭계와 딱히 대립각을 새우지 않았으며 특히 카스트로 말년 혁신적 성향의 프란치스코 교황과는 적극적으로 가까워지려는 모습을 보였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이나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도 해방신학계 쪽으로 카톨릭계를 포섭하려는 태도가 일반적이다. 특히 21세기 들어와선 중남미 현지에서 무섭게 성장하는 주로 친미 우파 성향 복음주의 개신교란 공적을 상대로 점점 더 중남미 좌파와 카톨릭계의 관계가 더 가까워지는 듯한 모양새이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종교를 탄압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리를 칼 마르크스를 비롯한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차지했다. 사상가들의 동상을 세우고, 우상숭배를 하면서 새로운 '종교'를 창시한 것.
어떻게 보면 종교 탄압 및 자유권, 인권 침해의 떡밥을 던져준것이다.[11] 또한 사람에 따라서는 모욕적인 말이 될 수 있다.[12]
6. 기타
마르크스의 어록 중에서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와 유명세를 다투고 있으며, 종교 비판에서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신은 죽었다와 쌍벽을 이루어 자주 인용되는 명언 중 하나다. 당연하겠지만 종교의 권위가 크게 떨어지고 수많은 종교인들이 희생된 원인이라는 점 때문에 종교인들에겐 희대의 망언취급을 받는다.
어쨌든 마르크스 사상의 근간은 철저한 유물론이기 때문에, 마르크스가 종교를 부정적인 의미에서 아편이라 일컬었든 종교의 순기능을 얼마간 인정했든 최종적으로 추구한 바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마르크스 사상은 종교를 극복하고, 종교를 통한 위안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사족이지만, 기계의 신화로 유명한 사상가인 루이스 멈포드는 저 말을 뒤집어 현대에는 "아편이 인민의 종교가 되었다."라고 하였다.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의 신앙의 옹호자 퀘스트를 하다보면 옥센푸르트 대학의 학생들이 길가의 성지를 부수는 걸 볼 수 있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옥센푸르트 대학의 '''프리드리히'''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는 모양. 위쳐란 걸 밝힌 뒤엔 괴물과 싸우다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말도 하는 걸 봐선 누가봐도 교수란 인간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패러디.
특이하게도 공산주의 국가였던 남예멘과 아프가니스탄(1987년 이후)은 국교를 채택하고 있었다.
레이몽 아롱은 마르크스의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를 비틀어 '(마르크스주의는) 지식인의 아편'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