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다

 


1. 개요
2. 의미
2.1. 음식을 이로 부수다 (기본 의미)
2.2. 다른 사람을 비난하다
2.3. 곰곰히 생각하다
2.4. 메시지 등을 무시하다
3. 형태와 역사
4. 다른 동사와 비교
5. 다른 언어에서


1. 개요


한국어의 동작 동사(active verb) 중 하나.
기본적으로 치아를 이용해 안의 내용물을 갈고 자르는 행위를 의미한다.

2. 의미



2.1. 음식을 이로 부수다 (기본 의미)


'씹다'는 '물다' 같은 동사에 비해서는 음식 관련으로 쓰이긴 하지만 '먹다'는 음식물이 위장으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반면 '씹다'는 입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칭하여 의미가 다르다. 예컨대 은 씹기는 하지만 먹어버리면 곤란하다.
어떠한 음식이건 간에 씹다라는 표현은 사용이 가능하지만 주로 고기, 오징어, 등의 질긴 음식들에게 주로 사용된다. 죽 같은 것, 하다못해 밥 같은 것만 해도 '밥을 씹어먹는다'라고는 잘 하지 않는다. 밥도 물론 적당히 씹어먹긴 하겠지만 '씹어먹어야겠다'라는 생각을 갖고 씹지는 않기 때문이다. '밥을 꼭꼭 씹어먹어야 한다'와 같이, [특별히 더 신경써서 씹는다]의 상황이 전제되어야지만 밥 같은 것에도 '씹다'를 쓸 수 있게 된다.
또한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것에만 쓸 수 있어서 '참외를 씹다', '수박을 씹다'라는 표현은 어색하다. 비슷하게 딱딱하더라도 호두처럼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것만 '호두를 씹어먹었다' 식으로 쓸 수 있다.
예외적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도 입 안이나 근처에 있는 대상에는 '씹다'를 쓸 수 있다. '를 씹다', '입술을 씹다', '볼을 씹다' 등. 또한 이러한 경우 먹기 위해서 꾸준히 씹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로 '씹었다'라고 '--' 결합형으로만 쓰인다는 것이 특징이다. 입술의 경우 긴장했을 때 잘근잘근 씹는 행동을 상정할 수도 있어서 '입술을 씹는다'와 같은 문장을 쓸 수도 있다.
담배 중에서는 물담배, 코담배, 그냥 담배 등등과 더불어 씹었다가 뱉는 식으로 사용하는 씹는담배(입담배)도 있다.
관련 의성어로는 '질겅질겅'이라는 표현이 있다. '질겅거리다', '질겅대다', '질겅질겅하다' 류의 파생어들이 있다.

2.2. 다른 사람을 비난하다


  • 그는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공연히 씹는다.
  • 야당여당의 날치기 통과에 대해 맹렬히 씹었다.
  • 나도 그 위선적인 목사를 씹고 싶었지만 하도 더러워서 상대하기가 싫었던 것이다.≪황석영, 어둠의 자식들≫
위의 의미에서 확장되어 '비난하다'라는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다. '비난'도 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있고, 씹으면 입 안에서 박살이 나는 것도 의미 연상에 기여했을 것이다.

2.3. 곰곰히 생각하다


  •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껌을 씹는 게 아니라 생각을 씹는 거였다. ≪박완서, 도시의 흉≫
입으로 우물우물거리는 동작이 '받아들이려고 열심히 노력하다'라는 인상을 주었는지 이와 같이 의미가 확장되었다. 이는 영어 'ruminate'도 비슷하다.
'곱씹다'의 경우 원래 1번 의미로도 쓰였으나 오늘날에는 이 의미로만 쓰인다. '되새기다'도 원래는 '씹다'의 의미가 있었으나 '되새김질'이라는 명사와는 달리 '되새기다'라는 동사는 이 의미로만 쓰이는 것은 '곱씹다'와 마찬가지.

2.4. 메시지 등을 무시하다



재미있게도 3번 뜻과는 정반대이다. 3번 뜻이 '우물우물 신경 써서 먹음'에 집중했다면 4번 뜻은 '이빨로 부숴버림'을 의식해서 확장된 의미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이 의미는 아직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려있지 않다.
이 의미로부터 '읽씹'이라는 유행어새로 만들어졌다. '읽고(도) 씹는다'의 어간만 따온 줄임말이다.

3. 형태와 역사


乳ᄂᆞᆫ 졋 머길 씨오 哺ᄂᆞᆫ 시버 머길 씨라 <'''월인석보 23:92a'''>

이제 사ᄅᆞᆷ이 다만 밀만 씨버 머그면 날이 ᄆᆞᆺ도록 ᄇᆡ 고프디 아니ᄒᆞ니라 <'''신간구황촬요: 4a'''>

15세기에는 '십다'로 나타나지만 비교적 이른 시기인 16세기에 경음으로 나타난다. 한국어는 어두에서 거센소리와 평음간 기식의 차이가 작아지는 특성이 있으므로 기식의 측면에서 거센소리에 가까운 'ㅅ'은 어두에서 'ㅆ'과 비슷해지게 된다. 특히 마찰음의 경우 /ㅣ/와 같은 고모음에 기식 구식 구간이 지극히 짧아지기 때문에 'ㅅ'와 'ㅆ'가 아주 비슷해지게 된다(이경희·이봉원 1999: 63)[1]. 한편 딱히 음운론적으로 근거가 있는 얘기는 아니지만, '부수다→뿌수다'도 그렇고 깨고 부수는 류의 파괴 동사는 경음화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어 동사 가운데 초성으로 ''을 포함한 몇 안 되는 동사 중 하나이다. 그 외의 ㅆ초성 동사는 '싸다\[똥·오줌을 싸다 / 포장하다 / 이 싸다]', '쌓다', '썩다', '썰다', '쏘다-쐬다', '쑤다', '쓰다[맛이 쓰다 / 글을 쓰다 / 도구를 쓰다 / 모자를 쓰다]', '쓸다' 등이 있다. 간혹 '삶다', '세다', '(곰팡이가) 슬다'와 같이 수의적으로 'ㅆ'로 경음화되는 단어들도 있다. 이 가운데 '씹다'는 명사 ''이 욕설로 쓰이기 때문에 특히나 어감이 강한 편이다.
어간 종성에 ㅂ을 포함한 동사이다. '굽다', '눕다'와는 달리 ㅂ규칙 동사이다. 'ㅂ다' 동사로는 '굽다', '깁다', '꼽다', '낍다(방언)', '눕다', '돕다', '뽑다', '업다', '입다', '잡다', '접다', '줍다', '집다', (동사) / '덥다', '맵다', '밉다', '좁다' (형용사)가 있다.
오늘날에는 보조 용언으로 쓰이는 '싶다'와 음상이 비슷하지만 '싶다'는 '씹다'와 달리 '-브다' 형태였던 시절이 더 길었다. '보고프다'와 같이 'ㅡ다' 꼴로도 나타나는 것이 그 흔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싶다'는 '밉다'와 같이 형용사 파생 접미사 '-브-'가 결합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4. 다른 동사와 비교


'먹다'와 관련된 동사로는 '핥다', '빨다' 등이 있다. '씹다'가 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핥다'는 , '빨다'는 입술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 차이점. 셋 다 '핥아먹다', '빨아먹다', '씹어먹다' 합성이 가능하다.
'물다'는 행위의 측면에서는 비슷한 면이 있으나, '먹다'와의 관련성이 '씹다'보다 더 낮다. '씹다'는 [섭취]가 목표이지만 '물다'는 [공격]이 목표라는 것이 큰 차이. '깨물다'는 '깨다'와 '물다'가 어간합성된 것이다.
'갉다' 역시 주로 치아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 '씹다'와 비슷하지만, 치아로 부순다기보다는 가루를 내어 반복한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이 '갉다'는 '갉아먹다'로 주로 쓰이며 아예 합성어로 인정되었다.
'새기다'는 사전적으로 '소나 양이 풀을 씹다'라는 의미가 있으나 자주 쓰이진 않는다. 여기에 반복 접두사 '되-'가 붙어 파생한 '되새김질'은 반추동물이 위에서 음식을 올려보내 다시 씹는 것을 의미한다.

5. 다른 언어에서


한자로는 '咀嚼'이다. 두 글자 모두 '씹을 저, 씹을 작'으로 '씹다'라는 의미이지만 현대 한국어에서 '저작' 이외에 다른 단어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咀는 간혹 '저주하다'의 의미인 詛를 대신해서 사용되기도 한다.
현대 중국어에서도 위와 동일하다. '咀嚼(jǔjué)'도 쓰고, 단독으로는 '嚼(jiáo)'를 쓰는 모양. 되새긴다는 뜻일 때에는 'jiào'로 성조만 바뀐다. 네이버 중국어 사전을 기준으로 중국어 '嚼'에도 1, 3번의 의미는 있지만 2번의 의미는 없는 듯하다. 한편 '嚼'에는 '지껄이다'라는 의미가 있다는 점이 '씹다'와는 다르다. 한국어 '씨부렁대다'가 '씹다'에서 파생했을 가능성이 있긴 하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은 네이버 한자 사전에 '섶에 눕고 쓸개를 씹는다'라는 뜻으로 풀이되어있다. 하지만 '嘗'은 '맛볼 상'이므로 엄밀히는 핥아서 맛만 확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영어로는 'chew'이다. 한국어 ''은 씹어먹는 것만 지칭하지만 영어 'gum'은 고무 수지를 모두 부르는 말이기 때문에, 한국어로 '껌'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서 '츄잉껌(chewing gum)'이라는 단어를 쓴다.
'되새김질'을 의미하는 'ruminate'는 1번 의미와 3번 의미를 모두 지니고 있다.
일어로는 '噛む(かむ)'이다. 한자는 '깨물 교'로, 한국어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한국어와는 달리 '噛む'는 '깨물다'의 의미로도 쓸 수 있다. 씹어서 먹는 '껌(ガム)'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이걸로 말장난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오미가와 치아키 등.

[1] 이경희·이봉원(1999), 한국어 평마찰음과 경마찰음의 음향적 특성, 한국어학 제10권, 1999.12, 47-66.